난 정말 JAVA를 공부한 적이 없다구요
윤성우 지음, 김문석 감수 / 오렌지미디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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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VA 입문서로 제일 괜찮다는 소식 듣고 부랴부랴 샀답니다. 대입 면접용 참고 도서입니다. 부담없이 책을 펼칠 수 있습니다. -아들 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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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5
마이크 마퀴스 지음, 김백리 옮김 / 실천문학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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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만이 아는 대답

 

올해 노벨 문학상은 중국 소설가 모옌(莫言)에게 돌아갔다.『홍까오량 가족』이 그의 대표작인데, 소설 앞부분은 영화 ‘붉은 수수밭’의 소재가 되었다. 동양권에서 수상자가 나오니 친근감과 동시에 질투가 인다. 수상자 못지않게 후보군에 자주 오르는 작가들에게 관심이 간다. 고은, 무라카미 하루키, 밥 딜런 등인데, 그 중 밥 딜런에게 귀와 눈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가수로 알려진 사람이 문학상 후보로 오르내리니 생뚱맞으면서도 신선하다.

 

밥 딜런은 노래하는 시인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장식 어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6,70년대를 선도했던 저항 가수답게 메시지가 있는 노래를 부를 뿐이었다. 사회참여 및 반전에 관한 노래를 주로 불렀으니 노랫말이 자연스레 무겁고 의미심장하게 흘렀다. 그렇게 지은 여러 노랫말이 노벨상을 타도 좋을 만큼 문학성이 있으니 해마다 후보에 오를 것이다. 밥 딜런의 가사에 관한 평론이 발표될 정도이니 괜한 제스처는 아닌 모양이다.

 

몇몇 가사를 검색해봤다. 솔직히 문학성이 있는지 나로서는 판단이 서질 않는다. 비약과 은유가 심한데다, 정돈되지 않고 장황한 느낌이다. 영어 원문을 봐도, 번역된 우리말 가사를 봐도 그렇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외국인이 우리말 원문과 자국어로 번역된 것을 읽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문화와 언어가 다른 상태에서 ‘시적인 가사’를 제대로 짚어내기란 어렵다.

 

한데 그의 대표곡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들으면 왜 그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된다. 베트남 전쟁 참상 등을 겪은 세대답게 반전 메시지가 주는 노랫말이 시적이고 서늘하다. ‘얼마나 더 많이 머리 위를 날아야 포탄은 지상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타인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너무 많이 죽었음을 깨닫게 될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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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시원한 글쓰기
오도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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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 길이 있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가끔은 책을 덮고 풍경 속으로 들어갈 때 그 길이 보인다.

 

  뜻 있는 사람끼리 모여 글공부를 한다. 잘 익은 밤처럼 토실토실한 남의 글을 읽기도 하고, 덜 말린 대추 같은 누글누글한 제 글을 다듬어도 본다. 남의 좋은 글을 읽을 땐 감탄하고 부러워할 입과 맘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자신의 글을 숙제로 내놓아야 할 날짜가 다가오면 안절부절못한다. 남보란 듯 합당한 이유가 생겨 떳떳이 결석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글 좀 잘 써보고자 모였는데 글이 제 발목을 잡아 버린다. 이런 부조리한 상황이 있을까?

 

  잘 쓰고 못쓰고를 떠나 훈련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글쓰기는 부담스럽기만 하다. 만만하고 쉽다면 애초에 모임을 만들어 공부할 필요조차 없을 테니까. 결실의 계절이자 독서의 계절인 가을이 왔는데도 우리들의 쓰기는 지리멸렬하기만 하다. 수고 없이 좋은 글이 내 곁에 남을 리 없다. 그럴수록 책상 앞에 앉으면 압박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즐거워야 할 글쓰기가 괴로움이 된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무조건 쓰려고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글이 되지 않을 때는 글 밖으로 눈을 돌리는 게 맞다.

 

  활자 빽빽한 종이 대신 아름드리 소나무 솟고 늦은 민들레가 피는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이름 붙여 야외수업. 오늘 만큼은 숯불 삼겹살과 소주 한 잔도 풍경의 일부가 되어도 좋다. 밋밋한 평화보다야 울퉁불퉁한 들끓음이 글 소재로는 제격이 아니던가. 연필을 버려야 할 적당한 타이밍이었을까. 출석률이 좋은데다 여유가 넘친다. 유머가 길을 트니, 배려가 뒤따른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건, 반만 맞는 말이다. 때론 책을 버리고 풍경 속에 흠뻑 젖을 때 길이 보인다. 푸성귀 뜯고 씻던 시린 손, 쉴 자리 마련하려 굽히던 무릎, 연기 마셔가며 모닥불 피우던 잔기침 소리, 바람막이로 서서 따뜻한 물 끓여내던 환한 미소 이 모든 것들이 자연 속에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을 만들고 내고 있었다. 글은 책 속에 있는 게 아니라 그렇게 풍경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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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 나의 고전 읽기 9
김슬옹 지음, 신준식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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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날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보인다. 무엇보다 반갑다. 단순 국경일에 머물러 있는 한글날을 법정공휴일로 되돌려 놓자는데 의견을 같이 한 국회 문방위 소속 의원들이 법률안 발의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한글날은 다시 공휴일로 지정된다. 잘하면 내년엔 공휴일로 복원된 한글날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신세대들은 실감나지 않겠지만 내 기억 속 한글날은 언제나 공휴일이었다. 하지만 공휴일이 너무 많아 노동 생산력이 떨어진다는 기업들의 권유로 1991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되는 설움을 당했다. 경제 논리에 의해 몇몇 법정 공휴일이 추억 속으로 사라져갈 때 그 누구보다 한글날만은 살아남기를 바랐다. 청춘 시절부터 한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임을 지속해온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한글날 같은 의미심장한 날이 경제 논리 뒷전으로 밀려야 한다는 게 분통터지고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한글은 만든 날, 만든이, 만든 의도 등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문자이다. 이 중 창제 의도에 대해 나는 언제나 주목한다. 할 말이 있어도 글을 몰라 어찌할 줄 모르는 백성을 불쌍히 여겨 한글을 창제했다는 세종대왕의 말은 진실이다. 물론 거기에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온 백성에게 알려 통치권을 정당화하고 싶은데, 한문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기득권층은 자신들이 누릴 호사가 일반 민중에게 조금이라도 옮아가는 것은 꿈에도 원치 않았다. 일반 백성은 무지할수록 백성의 역할에 충실할 것이었다.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신하들이 훈민정음 반포를 그토록 반대하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피지배층과 효율적인 소통을 원했던 왕권과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고 싶지 않은 신권의 견제 사이에서 태어난 부산물이 훈민정음이었다. 극소수만 누리던 혜택을 일반 민중에게로 옮겨 가, 왕권 강화와 안정된 정국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던 세종대왕의 전략적 문자 혁명은 정작 당시에는 빛을 발하지 못했다. 후세대인 우리가 오롯이 그 혜택을 누리는 건 아이러니이자 행운이다.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훈민정음 창제의 의미와 역사적 의의를 살피는 것은 물론이고, 말글 하나된 민족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글 없는 한민족 백성은 생각하기조차 싫다.

 

 

 

***위의 책을 읽다 김슬옹 저자의 대학 학부 논문이 어느 정도 '훈민정음 창제의 정치적 의미'를 주제로 삼았지 않았을까 싶어 구할 수 있다면 구해 읽고 싶다.

  학교 다닐 때 다른 누군가 쓴 미니 논문을 읽은 적 있는데, 그 때도 한글 창제가 단순히 백성을 어여삐 여긴 사실을 넘어, 왕조의 통치권 확보와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기득권 신하들을 거치지 않고)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기능하였다는 논지에 신선한 충격을 먹은 적이 있다.

 삼십 년 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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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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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독이냐 정독이냐에 대한 답은 없다. 취향의 문제인데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정보를 습득해야 하거나 이야기의 흐름에 관심이 많으면 자연히 속독 쪽으로 치중하게 된다. 반면 읽어내야 한다는 강박이 없으면서 문맥 하나하나에서도 소우주를 발견할 만큼 의미를 부여하는 치라면 정독이 어울린다. 물론 읽는 주체뿐만 아니라 책의 종류와 내용에 따라서도 그 방향이 달라진다. 자기개발서 앞에서 정독을 고집할 필요 없고, 장자를 펼치면서 속독을 외칠 자 없을 것이다.

 

속독하니 자연스레 다독이 되는 사람들은 많다. 그건 이상할 것도 부러울 것도 없다.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하지만 다독자이면서 정독하는 사람들은 드문데,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책 읽기의 고수이다. 내가 진심으로 부러워하고 신기해하는 족속들이다. 책에 관한 온갖 정보와 리뷰를 공유할 수 있는 인터넷 서점에 가면 그런 사람들이 넘쳐난다. 밥벌이로서 할 일이 있으면서 짬을 내 읽는 것도 벅찰 터인데 많이 읽으면서 깊이까지 있으니 저들이 사람일까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많이 읽으면서 깊이까지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될 때는 차선책으로 적게 읽지만 깊이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많이 읽으면서 얕게 읽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겠나 하는 위안을 삼아보는 것이다. 고수가 아닌 한, 한 달에 삼십 권 읽는 것보다 세 권을 제대로 읽는 게 더 나은 독서법일 테니까.

 

그리하여 제대로 읽는다는 명분하에 내게 눈도장 찍힌 책들은 대개 지저분해져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에 매료된 상태에서는 밑줄 긋지 않을 수 없고, 접고 싶은 부분이 시시각각 나타나며 옮겨 적고 싶은 부분엔 별표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책이 더러워진 만큼 애정의 강도도 높아진다. 한 번 읽고 책장 안에 갇히는 것보다 자주 보듬어 닳은 것이 깊이 읽힌 것이니 사랑받아 마땅하다.

 

빨리 읽고 많이 읽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적게 읽더라도 깊이 다가와 내 의식을 한 방 때려줄 수 있는 서늘함, 그것이 제대로 된 읽기이다. 박웅현 저자가 소개한 것처럼 카프카가『변신』에서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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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10-07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까지도 속독에 주력하는 단계입니다. 제가 대부분 읽는 책들이 역사책인지라 같은 사건을 다룬 여러 사람들의 책을 읽고 어떻게 다른지, 어떤 것이 그 사건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물론 저도 인문학 책들을 읽을 때에는 내용을 곱씹으면서 읽습니다.

다크아이즈 2012-10-08 07:38   좋아요 0 | URL
속독, 다독, 정독 다 되는 알라디너 고수 중 한 분이 세인트님이시지요. 알라딘 올 때마다 '저것들은(죄송!!) 사람이 아닌 게야. 별종이야' 하는 생각이 드는 분들이 계신데 그 분 중에 님도 포함된다는 사실.

부러워하면 지는데, 마이 부럽습니다. 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