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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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멋져, 정말 멋져.

이렇게 즐겁고, 유쾌하고, 화끈하고, 찐득~하고, 절묘하고, 소박하고, 사랑스러우면서 슬플 수가 있다니.

처음에는 좀 심드렁하게 시작하여 뭔 소린가 싶었는데 몇 장 넘기지 않아 마리오와 네루다의 만남이 나오고, 마리오와 베아트리스의 만남이 나오고, 베아트리스와 그의 멋진 엄마(아, 그녀의 엄마는 정말 멋지고도 위대하다)의 대화가 나오면서 나는 처음에는 미소로 시작하여 실실 웃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딸내미들 앞에서 포복절도를 하는 바람에 해송이가 도대체 무슨 장면이냐고 읽어달라고 조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이 대목을 어떻게 중학생 딸애에게 읽어 주겠는가.

닭대가리 같으니! 지금은 네 미소가 한 마리 나비겠지. 하지만 내일은 네 젖통이 어루만지고 싶은 두 마리 비둘기가 될 거고, 네 젖꼭지는 물오른 머루 두 알, 혀는 신들의 포근한 양탄자, 엉덩짝은 범선 돛, 그리고 지금 네 사타구니 사이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고것은 사내들의 그 잘난 쇠몽둥이를 달구는 흑옥 화로가 될 걸! 퍼질러 잠이나 자!

위대한 시인 네루다의 평온한 노년에 연못에 돌을 던지듯 파문을 일으키며 자신에게도 메타포를 가르쳐 줄 것을, 사랑하는 여인과의 사이에서 뚜쟁이 노릇을 해 줄것을 요구하는 뻔뻔한 마리오도 사랑스럽고, 내치는 듯 하면서도 결국은 마리오의 수작에 장단 맞추어 해 줄 것 다 해주고 가르칠 것 다 가르치며 그 소박한 바닷가 마을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노구를 이끌고 비틀즈의 음악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는 대시인도 이 책에서는 위대함 보다는 친근함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 위대해 보인다. 시인도, 마리오도, 이 마을의 꾸밈없고 질펀한 사람들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리오가 숭배해 마지않는 베아트리스의 그 무시무시한 엄마.......^^

메타포를 가르치는 사람은 네루다이고, 그걸 배우는 사람은 마리오인데 이 책에서 메타포를 가장 시의적절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베아트리스의 엄마인 과부 여인이다. 저 위의 인용문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녀의 말은 거칠 것 없이 질펀하면서도 상황을 단번에 정리해 주는 칼과도 같다. 세계 어디서나 민중의 삶에서 시가 나오나니 우리도 고생하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입에서 촌철살인의 시의적절한 말씀이 튀어나오는 것을 자주 목격하는 바이다.

그래서 그런지 칠레라는 아득히 멀고도 먼 곳에서 벌어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그곳은 매우 가까운 곳이고 그 사람들은 다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치 이문구나 성석제 소설에서 사투리를 구사하며 능청을 떠는 등장인물들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게다가 갑자기 그 나락으로 떨어지는 결론도......군사쿠데타로 죄없는 주인공이 임의동행 형식으로 끌려가 사라져 버리는 그 장면은 우리들이 결코 생소하다고 말할 수 없는 장면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인간의 즐거움과 괴로움은 이렇게 비슷한 것인가, 이들을 그냥 행복하게 살게 해 주면 안되는 건가?

 어쨌든 하늘나라에서 이 작품을 읽은 시인 네루다는 물론 대만족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며 '미래는 랭보의 말대로 라는 것을 노동자, 시인, 그리고 선한 의지를 가지 사람들에게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불타는 인내를 지녀야만 빛과 정의와 존엄성이 충만한 찬란한 도시를 정복할 것입니다. 이처럼 시는 헛되이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라는 시인의 엄숙한 수상 소감을 듣고는 술과 노래, 춤으로 광란의 축하파티를 벌인 뒤 '백퍼센트 예식장에서 맺어진 대로라고 볼 수 없는' 질탕한 쌍쌍파티로 마무리한 것도 아마 불만은 아닐 것이다. '원님 덕에 나발 분다'고 신랄하게 중얼거린 베아트리스의 엄마만 빼고는 아마 모두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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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5-06-11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출어람이옵니다. 멋진 책에서 더 멋진 리뷰라니, 아이디에 '신'자를 넣으신 것이 괜한 변화가 아니셨구만요. ㅋㅋㅋ 리뷰를 읽고 깜짝 놀라서 추천합니다. (아직도 이 책 사놓기만 하고 안 읽었다는 ;;;)

깍두기 2005-06-11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무슨 이런 엄청난 찬사를요! 청출어람이라니 땀 뻘뻘;;;;;; 이 책을 아직 안 읽으셔서 그런 말씀 하시는 거예요! 읽고 나면 제가 그 멋진 소설을 좀 버려놨다는 걸 알게 되실텐데....^^;;;
그래도 추천은 덥썩 받고^^ (감사합니다)

미설 2005-06-12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보고 싶었는데 리뷰를 보니 더 읽어보고 싶어져요.

마냐 2005-06-1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신'이 그런 뜻이군여...호오..
암튼, 영화, '일 포스티노' 좋았는데....이게 원작인가 보죠? 영화보다 나을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 기막히 대사 하나만으로 짐작컨대 말임다...ㅋㅋ

하이드 2005-06-12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도 아끼고 있는데!

깍두기 2005-06-12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설님, 꼭 읽으세요. 후회 안 하세요. 강추!
마냐님, 아이참, 그런 뜻 아니라는 거 아시면서....영화는 못 봤는데 저는 항상 책 쪽에 점수를 더 주는 경향이 있어요. 영화도 보고 싶어요.
하이드님, 아끼고 안 읽고 있다 그 말이신가요?^^

하이드 2005-06-12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다들 재미있다고 하니깐, 진짜 책 읽기 싫을때 꺼내 읽어야지 . 하고 있어요. 아 그리고 perky님 말로는 이자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과 같이 읽으면 좋답니다.

딸기 2005-07-28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추천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