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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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무라카미 하루키를 접한 것은 아직 하루키의 인기가 우리 나라에서 시작하기 전이었다.

대학교 입학하던 해에 처음 [상실의 시대]라는 책을 접하고 그의 쓸쓸하고도 섬세한 글에 공감을 느꼈다.

그리고 군대있을 시절 태엽갑는 새가 나왔다.

휴가 나올 때마다 한 권씩 구입해서 읽고, 제대 한 후에야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어렵고도 이해되지 않는 그 책을 읽으면서 왜 그런지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 책을 읽는 동안은 마치 세상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는 것 같은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그의 책을 몇 권 더 읽고...

바쁘게 세상을 살았다.

오랫만에 그의 신작이 나왔다고 떠들썩하게 [1Q84]를 광고할 때는 이 책을 읽을 여유가 없었다.

작년에 조금의 여유가 생겨 이 책을 구입하고...

또 그렇게 1년 가까이를 묶혀 두었다가 이제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Q84를 읽으면서는 젊은 시절에 느꼈던 그 공감하는 마음을 느끼지는 못했다.

젊은 날에 느꼈던 그 공감이 그리워 읽었건만 그 마음은 느껴지지 않는다.

하루키가 변했거나 내가 변했거나, 아니면 둘 다 변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변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하루키의 세계관과 그가 추구하는 소설적인 지향점과 같은 선상에 있다.


1권에서는 아오마메라는 여성과 덴코라는 남성의 이야기가 교차적으로 반복된다.

둘이 과연 어떤 연관이 있는지...

처음에는 거이 상관이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책 중간 정도에서 지하철에서 우연히 엄마와 함께 한 여자아이를 보며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덴코는 어린 시절 일요일이면 NHK 수금원이 아버지와 함께 수금을 했고, 그것을 가장 싫어했다.

그러다가 엄마와 함께 전도를 하던 같은 반의 그 여자 아이를 만난다.

학교에서 그 여자아이가 왕따가 되었을 때 덴코가 그 여자 아이의 편을 들어 준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여자아이는 덴코의 손을 잡는다.

1권의 후반부에 와서야 그 여자아이가 아오마메라는 언급이 나온다.

둘은 전혀 다른 세상을 살다가 선구라는 종교단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같은 목표점을 향해 가게 된다.



소설의 처음은 아오마메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녀는 택시를 타고 가다가 교통체증에 걸리게 되고...

그 택시 안에서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라는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약속을 맞추기 위해 고가도로에서 사다리로 아래 세상으로 돌아온다.

약속이란 다름아닌 한 남성을 죽이는 것...

그녀는 겉으로는 스포츠 강사로 일하고 있지만...

자신만의 은밀한 기술로 여성을 학대하는 남성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다.

자신의 절친한 친구가 남편에게 학대를 받다가 자살 한 후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신포니에타 음악을 듣고...

계단 아래로 내려 온 이후부터...

세상은 조금씩 뒤틀려 있다.

마치 메트릭스에서 주인공 레오가 세상에서 무언가 조금씩 뒤틀림을 발견하듯이...

경찰관의 제복이 바뀌어 있고, 총도 신형자동화기로 바뀌어 있었다.

결국에는 달이 두 개가 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이 살던 1984년과 다른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고 지금 자신이 속한 곳은 1Q84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녀는 어린 여자아이를 성적으로 학대한 선구라는 종교단체에 점점 다가가게 된다.


반면 덴코는 학원에서 수학강사로 일하며 소설을 쓰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소설을 쓴다기 보다 고마쓰라는 편집자에게서 소일거리를 받아 일하고 있다.

어느날 고마쓰가 제안을 한다.

신인상으로 출품된 [공기 번데기]라는 작품을 개작하자고...

공기번데기는 소제와 흐름에서 뛰어난 작품이지만...

글 솜씨는 형편없는 작품이었다.

결국 덴코는 이 작품을 쓴 후카에리라는 소녀를 만나고..

그녀의 공기 번데기라는 작품으로 그녀가 신인문학상을 타게 만든다.

그런데 카에리는 선구라는 종교 단체를 창시한 사람의 딸이었다.



1권은 선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오마메가 떨어진 1Q84의 세계가 어디인지...

후카에라가 쓴 공기 번데기의 리틀피플이 무엇인지...

덴코의 어린시절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이런 것들에 대한 궁금증만을 던져 주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특유의 초월적인 세계관이 등장하고...

현실세계와 연결하는 통로가 등장한다.

예전의 소설에서는 주로 우물이나 동물등이 상징으로 쓰였음...

또한 그 세상과 연결시켜 주는 어린 소녀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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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간 - 인문학자 한귀은이 들여다본 성장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와 그림
한귀은 지음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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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텔레비젼에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었다.

주로 기구한? 인생을 산 여성들의 삶을 드라마식으로 재연해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처음 그 프로그램을 보았을 때...

왜 저렇게 살았을까?

다른 방식도 있었을텐데...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점차 프로그램을 보면서 제목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인생이다.

물론 더 좋은 삶도 있었을 것이고...

후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인생인 것이다.

인생은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고, 그러기에 그것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이런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이 책에는 20대에서 60대까지 7명의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처럼 서술한다.

때로는 나이 든 화자가 젊은 날의 회상하는 이야기도 있다.

이야기에는 소설같은 세련된 표현 법도 없고....

인생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기교도 없다.

그냥 그 여성이 살았고, 지금 살고 있는 삶은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다.

때로는 후회가 섞인 어조로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관조적인 색체로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내용은 자신이 살았고, 살고 있는 여자로의 삶을 그대로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야기가 더 가치가 있다.

 

저자는 이런 그녀들의 이야기를 명화를 통해 다시 한 번 조명한다.

어떤 때는 따스한 동질감으로...

어떤 때는 그 아픔에 대한 연민으로...

어떤 때는 언니와 같은 조언으로...

 

예를 들어 맨 처음 등장하는 명은이라는 여성이 있다.

그녀는 지방대의 교육대학교를 나와 기간제 교사를 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신분상승을 위해 임용고시를 보고 교사가 되기를 원했으나..

교사이면서도 교사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기간제 교사에 머물러 있다.

이것은 결혼 시장에서 그녀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결국 그녀는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백화점에 물건을 훔치면서 그녀 안의 욕구를 잠시 만족시키며 산다.

 

이런 그녀의 삶을 쉽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이다!

자신의 가치에 더 집중하라!

사람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런 교과서적인 가르침이 무슨 도움이 될까?

모두들 정답을 몰라서 힘들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답을 향해 가는 과정을 괴로워서 힘들어 하는 것 아닐까?

저자는 그림을 통해 그 힘든 과정을 같이 아파한다.

그리고 언니같은 마음으로 그녀에게 따스한 충고를 건넨다.

저자가 명은이의 이야기에 삽입한 그림이다.

 

 

저자는 그림과 함께 명은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중독은 인간관계의 결핍에서 발생한 애착장애이다.

중돈의 진정한 처방은 단 한 가지, 사랑이다.

명은의 가장 큰 문제는 도둑질을 한다는 것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에 있었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 가장 선취도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마치 남자로서...

어머니의 삶을...

아내의 삶을...

딸의 삶을...

이야기로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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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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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에는 삶에 매여 하루 하루를 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금 교만한 생각으로는 그들을 경멸했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먹고 사는 것이 삶에 전부인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뭔가 남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하지 않는가?

거이 매일같이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시간이 점점 줄었다.

한 달에 가끔 한 번씩 정도...

그러다가 일 년에 한 번씩 정도...

어느덧 내 삶을 보니 젊은 시절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사람들의 삶을 살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에 매여, 가족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하루를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삶을 경멸하던 예전의 교만한 마음은 없어졌다.

그렇다고해서 이런 삶이 아름답거나 가치 있는 삶이라는고는 이야기 하지 못하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꿈꾸어야 하나?

다시금 나만의 가치있는 삶을 찾아야 하나?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를 읽으며 오랫 동안 하지 않았던 이런 생각들을 다시 하게 되었다.

모래의 여자는 실존주의 소설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카뮈나 카프카의 소설들이 오버랩되었다.

실존주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초현실주의적인 배경과 상황들도 계속해서 반복된다.

 

주인공 남자는 평범한 학교 교사이다.

(책의 끝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인 니키 준페이라고 언급되지만 소설 속에서는 계속해서 한 남자로만 불린다.)

그는 평범한 삶을 견디지 못해 곤충수집을 시작한다.

그것도 자신만이 발견하고,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그런 곤충을 발견하고자 모래 속을 뒤진다.

그러던 어느 날 곤충을 수집하기 위해 어느 바닷가의 모래 마을을 방문하게 된다.

그리고 마을 노인의 호의?로 모래 구덩이 속에 있는 한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된다.

그 곳에는 30대의 여성 한 명만이 기거하고 있었고, 외부와는 사닥다리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여자는 모래에 쌓여가는 구덩이 집에서 밤새 계속해서 모래를 퍼 담아 올리는 일을 했다.

다음 날 남자는 모래 구덩이를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아무도 사다리를 내려 주지 않았다.

남자는 그 곳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마을을 향해 고함도 치고..

여자를 윽박지르기도 하고...

여자를 묶어 놓고 탈출 방법을 묻기도 한다.

그러다가 결국 최후의 방법으로 자신의 옷과 헌 옷들을 묶어서 밧줄을 만들고...

여자가 자는 사이에 그 줄을 통해 모래 구덩이를 탈출한다.

그러나 마을 밖으로 달려 나갈 수록 길을 알지 못하고...

개에게 쫓기거나 깊은 모래 구덩이로 몸이 빠져간다.

결국 사람들에게 잡혀 다시 모래 구덩이로 돌아온다.

그리고 결국 체념하고 여자와 함께 모래를 퍼 나른다.

모든 소망을 잃어 갈 무렵 그는 모래 구덩이 속에서 물을 퍼올리는 유수장치를 만든다.

이제 이것이 그의 소망이 된다.

그 후 그는 탈출 할 기회가 생기지만 탈출하지 않는다.

오히려 망가진 유수시설을 고치며...

나중에 천천히 나가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읽었던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가 생각났다.

그리스 신화에서 시지프스는 인간으로서의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신에게 맞선 대가로 언덕 위로 돌을 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시지프스는 아침부터 힘들게 돌을 언덕 위로 올리면 그 돌은 저녁무렵 언덕 위에서 다시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면 시지프스는 다시 언덕 아래로 내려가 다음 날부터 또 돌을 올린다.

이 모든 것들이 신들이 시지프스에게 내린 형벌이었다.

카뮈는 이것이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부조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카뮈는 그런 부조리를 증오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그런 부조리의 삶에 오히려 행복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부조리와 행복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한다.

 

"행복과 부조리는 하나의 대지에서 나온 두 자식이다!"

 

소설 속의 남자는 이 부조리에 갇혀 있다.

모래 속의 세상은 그에게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세상이다.

왜 내가 모래 속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

이런 부조리한 삶이 어디있는가?

 

이런 부조리함은 단지 남자의 마음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래 속의 삶이 바로 그런 삶이다.

모래는 하루만 퍼 올리지 않아도 쌓여서 집을 무너뜨리려 한다.

그러기에 계속해서 모래를 퍼 올려야 한다.

같이 있는 여자는 이런 삶은 자신의 삶으로 받아 들인다.

밤에는 모래를 퍼 올리고, 낮에는 잠을 잔다.

 

남자는 이런 일상을 거부한다.

여자에게 왜 어리석게 이런 곳에 갇혀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남자도 차츰 여자의 삶에 동화가 되어 간다.

그도 밤에 모래를 퍼 올리고, 낮에 잠을 잔다.

 

차이가 있다면 그는 계속해서 희망을 꿈꾼다.

마지막에는 유치하게 보이는 유수시설이 그의 희망이다.

그 유수시설이 모래 속의 작은 일상일뿐임에도...

 

 

저자가 말하는 모래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야기한다.

형제도 없고, 끝임없이 이동하는 신기루와 같은 것들...

하루라도 퍼올리지 않으면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들...

그 속에서 잠을 자고, 그 속에서 밥을 먹고, 그 속에서 삶을 꿈꾼다.

그럼에도 남자는 그 모래 속에서 계속해서 탈출을 꿈꾼다.

 

 

저자는 이런 모래 속의 삶에서 카뮈처럼 행복을 발견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모래 속의 삶을 긍정하는 건지, 부정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단지 우리 인간의 삶이 모래 속의 삶이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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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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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처음 관심을 가지게 괸 것은 리틀리 스콧 감독이 영화화한 작품이라는 이유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에서 긴장감을 극대화 시키는 리틀리 스콧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에얼리언과 프로메테우스라는 영화이다.

 

 

 

다만... 프로메테우스 같은 경우는 영상미와 긴장감은 최고였는데.. 스토리가 무언가 어색했다.

만약 이 감독이 제대로 된 스토리를 가지고 영화화 한다면...

바로 차이들 44가 이 부분을 채워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왜 리틀리 스콧이 이 작품을 영화화 했는지를 공감하면서 읽었다.

작품 전체 분위기가 어둡고 암울하면서도 긴장감을 계속 유지한다.

그리고 작품 후반부에서 부터 드러나는 완벽한 사건의 결말들...

전 작품의 엉성한 결론을 채워줄 수 있는 작품의 원작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의 배경은 1950년대 스탈린이 통치하던 끔직한 소련사회이다.

그러나 소설의 시작은 1930년대 우크라이나 대기근 상황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홀어머니와 동생 알렉산더를 데리고 힘든 기근을 해쳐나가던 파벨은 우연히 집 잃은 고양이를 발견하게 된다.

당시는 고양이는 물론 쥐까지 모조리 잡아 먹던 기근시기였다.

파벨은 동생 알렉산더와 눈 속을 헤치며 고양이를 잡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성공의 기쁨을 누리는 순간 파벨은 누군가에 의해 납치된다.

 

그리고 소설은 아무런 설명없이 1950년대의 끔직한 소련의 스탈린 통치 시대로 이동한다.

주인공은 전쟁영웅이자 MGB(KGB의 전신) 핵심간부인 레오이다.

그는 국가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반체제 인사를 잡아들이는 일을 한다.

그러나 그는 차츰 국가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에 차츰 의심을 가지게 된다.

그가 잡아 들이는 사람 중에는 죄가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 쯤 부하의 아들 하나가 철길에서 입에 흙이 든 채로 살해된다.

완벽한 소련 사회에서 살인사건을 인정할 수 없기에...

단순히 사고로 처리한다.

그때부터 그는 흔들리기 시작하고, 아내를 고발하는 것을 포기한 대가로 변두리의 민병대로 좌천된다.

그런데 그 곳에서 부하의 아들의 시체와 똑같은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소련 사회에서 연쇄살인범은 존재할 수 없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국가체제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럼에도 레오는 아내 라이사와 함께 그 사건을 조사하고...

소련 철도를 따라서 44개의 동일한 사건을 발견하게 된다.

레오의 적인 바실리와 MGB는 그런 레오를 체포하고 아내 라이사와 함께 시베리아 수용소로 보낸다.

그럼에도 사건을 해결해야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레오는 아내와 함께 탈출해 연쇄살인범을 정체를 밝혀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가 흥행할 수 있으려면.....

사건의 범인이 정체가 마지막까지 드러나지 않아야 최고의 반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거이 중반부분에 범인의 정체가 암시 되어 있음)

 

 

이 소설을 읽으면서 1950년대의 스탈린 통치의 소련의 감시사회가 어떠했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국가가 절대적으로 옳으며 국가가 하는 일에 조금이라는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물론 의심을 품는 것까지 처벌의 대상이 되던 사회...

일단 감시의 대상이 되면 시베리아 수용소나 처형을 면하기 힘들었던 사회....

내가 살기 위해서는 부모형제, 아내와 남편까지 고발해야 했던 사회....

초반부는 그런 사회 속에서 주인공이 진실을 발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진실을 발견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대가는 끔찍했다.

 

소설은 이런 사회가 연쇄 살인범을 만들어 내고...

결국 연쇄 살인범 자신도 그런 사회가 만들어 낸 괴물임을 보여준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 내가 속한 사회를 생각해 본다.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이다.

소련이나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유와 풍요가 넘치는 사회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도 스스로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고...

자신에 대한 반대뿐만 아니라 의심까지도 용납하지 못하는 편협함이 존재한다.

그것이 사람을 숨이 막히게 하고...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범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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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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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기... 읽은지 20년이 지났지만 그 감동이 여전히 남아 있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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