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그래피(pornography)라는 말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매춘부에 관한 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단어가 처음 나온 시기는 19세기 중반이다. 19세기 이전까지 포르노그래피는 종교 · 정치적 권위를 비판하기 위해 은밀하게 만들어진 매체였다. 포르노그래피는 18세기에 이르러 인쇄 문화의 발달로 독자층이 확대되었고 이후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하나의 독자적 장르로 자리 잡게 된다. 왕족과 성직자, 귀족들의 문란한 성생활을 묘사한 포르노 팸플릿은 왕권과 교회를 희화화시키며 앙시앵 레짐(구체제)을 타파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 린 헌트 엮음 《포르노그래피의 발명》 (알마, 2016)

* 로버트 단턴 《책과 혁명》 (알마, 2014)

 

 

 

 

 

 

 

 

 

 

 

 

 

 

* 주명철 《계몽과 쾌락》 (소나무, 2014)

* [절판] 주명철 《서양 금서의 문화사》 (길, 2006)

 

 

 

 

 

 

 

 

 

 

 

 

 

 

 

 

*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장 자크 루소와 볼테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등으로 대표되는 계몽주의는 프랑스 혁명의 원리를 제공하고 근대 서구사회의 정체성을 구성한 가치다. 그러나 린 헌트, 로버트 단턴 등 역사학자들은 고도로 조직화한 지식 엘리트가 활약했던 계몽주의 시대가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다는 정설에 이의를 제기한다. 포르노 팸플릿은 루소의 《사회계약론》보다 훨씬 많이 읽혔다.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의 난잡한 성생활을 풍자한 포르노 팸플릿은 금서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금서의 유통은 교묘하다. 아무리 출판사를 단속하거나 유통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 해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 정보 수요가 있으면 공급도 따라가기 마련이다. 예컨대 프랑스 혁명 당시 금서들은 ‘철학 서적’이라는 은어로 불렸고, 가격이 저렴해서 노동자들도 사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포르노 팸플릿이 혁명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구체제를 무너뜨리게 한 '평등한 포르노'라 할 수 있을까? 프랑스 혁명 시대의 포르노그래피는 치명적인 함정을 깔고 있다. 혁명가들은 왕비의 성적 추문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서 왕권의 권위를 흔들었다. 왕비의 육체와 섹슈얼리티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는 대중의 환상은 일종의 성적 판타지이며 대중의 집단적 관음증을 부추겼다. 포르노 팸플릿은 남성에 의해 만들어지고 대부분 남성에 의해 소비되었다. 프랑스 혁명이 끝나면서 포르노그래피는 성적 쾌락 자체를 위한 매체로 변질하였다. 포르노그래피가 영화라는 매체와 만나자 그것은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면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더욱더 값싸고 상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다.

 

 

 

 

 

 

 

 

 

 

 

 

 

 

 

 

* 수전 브라운밀러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오월의봄, 2018)

 

 

 

숱한 포르노 영화에 ‘강간’ 장면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포르노 영화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줄거리는 전혀 모르는 남성과 여성이 만나 우연히 서로의 몸을 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여성이 처음에는 남성을 거부하지만 결국에는 성행위 자체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내용이다. 포르노 영화 제작자들은 성폭력이 남성들을 자극하는 성적 판타지라는 것을 알고 있다. 대부분의 남성이 성에 눈뜨는 시절에 포르노를 접한다. 나도 성적 호기심이 솟구치던 사춘기에 포르노를 봤다. 포르노는 호기심에 볼 수 있다. 하지만 포르노 영화에 묘사된 성관계는 ‘가짜’이며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왜곡하는 위험한 묘사’다. 포르노가 만든 성적 판타지 때문에 남성들은 단지 성행위 자체에만 집착하는 왜곡된 사고를 하게 된다. 또 포르노는 폭력적인 관계에 무감각해지는 위험성도 있다.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 속의 성폭력은 소위 ‘야한 것’이다. 포르노를 즐겨보는 남성들은 ‘성적으로 대상화’시킨 여성의 몸을 눈요깃감으로 바라보면서 감상한다.

 

 

 

 

 

 

 

 

 

 

 

 

 

 

 

 

* 수전 손택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 (현대미학사, 2004)

* [안 읽었어요!] 조르주 바타유 《눈 이야기》 (비채, 2017)

 

 

 

수전 손택은 포르노가 예술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녀는 조르주 바타유의 소설 《눈 이야기》(비채, 2017)를 옹호한 『포르노그래피적 상상력』(《급진적 의지의 스타일》 수록)이라는 글에서 독자에게 성적 흥분을 불러일으킨 포르노그래피의 효과가 저자의 의도든 아니든 간에 그것은 문학적 결함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라는 보편적인 단어로 포르노의 성적 판타지를 축소하거나 미화해선 안 된다. 순진한 관점으로 포르노를 접근하면 포르노가 사회에 끼치는 끔찍한 폭력성을 외면하게 된다.

 

 

 외설적 즐거움의 이름으로는 그 어떤 ‘평등한’ 포르노도, 기존의 포르노에 상응하는 여성 포르노도, 반전도 불가능하다. 포르노그래피는 강간과 마찬가지로 여성을 비인간화하고 성적으로 접근할 대상으로만 환원하도록 설계된 남성의 발명품이다. 이건이 도덕주의나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관능을 추구하는 일로 미화되어서는 안 된다. 포르노가 파는 주된 품목은 언제나 여성의 벌거벗은 몸, 여성의 노출된 가슴과 성기일 수밖에 없다.  (수전 브라운밀러,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617쪽)

 

 

포르노와 예술을 구분하는 기준은 작가의 의도와 보는 이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진다. 따라서 이게 포르노이고, 이게 예술이라고 구분하기 어렵다. 예술이 된 포르노 또는 젠더, 계급, 인종, 섹슈얼리티 등 다양한 정체성 범주를 포용하는 포르노 즉 모든 사람이 수긍하는 ‘평등한 포르노’는 절대로 성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 포르노는 성차별뿐만 아니라 인종차별, 성소수자 차별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수전 브라운밀러가 말했듯이 오늘날의 포르노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 또는 성 상품화하여 만들어진 ‘남성을 위한, 남성이 만든 발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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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5 2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16 13:38   좋아요 0 | URL
그런데 모든 페미니스트가 포르노를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반 포르노 규제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도 있어요. 그 페미니스트의 책을 아직 안 읽었어요. 곧 읽을 예정입니다. ^^
 

 

 

 

 

 

 

아시다시피 어제 선거 결과는 싱겁게 끝나버렸습니다. 이번 선거에 정의당을 지지했지만, 제가 기대했던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TK(대구, 경북)가 산소 호흡기를 뗄 뻔했던 자유한국당을 되살렸습니다. 더불어민주당도 선전했습니다만 자유한국당의 철옹성을 뚫는 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번 선거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후보 대부분은 눈에 확 들어 올 만큼 인상적이지 않았습니다. 바른미래당 후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선 때 불었던 ‘유승민 열풍’이 많이 사그라졌습니다.

 

대구 지역 언론들은 임대윤 민주당 대구시장 후보의 낙선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평가하고 있는데요, 이런 걸 요즘 말로는 ‘정신 승리’라고 하죠. 대구 시민들이 임대윤 후보자의 정치 능력을 믿어서 그에게 표를 줬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자유한국당의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속는 셈 치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찍어줬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걱정인 것은 대구 내 진보정당들의 입지가 좁아진 점입니다. 정의당은 대구, 경북 각각 단 1명만 당선자가 나왔고요, 대구시 · 구의원 비례대표 선거 득표율이 저조했습니다. 시의원 비례대표 득표율은 비례대표 의석 배분 기준인 5%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제가 지지했던 대구 달서구 비례대표 배수정 후보는 간신히 5% 이상 득표율을 얻는 데 성공했지만, 10.5% 득표율을 얻은 바른미래당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가슴 아픈 결과를 말하게 됐네요. 아쉽게도 배수정 후보는 비례대표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번 선거 운동을 하게 되면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TV로 보는 정치와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정치는 달랐습니다. 선거 과정과 규정이 이렇게 복잡할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TK 섬’에도 더불어민주당, 진보정당을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6월 13일 선거는 제겐 평생에 잊지 못할 날입니다. 선거 운동은 짧았지만, 정말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제 글을 보시고 배수정 후보를 알게 되어 응원해주신 분, 그리고 배수정 후보에게 소중한 한 표를 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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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4 1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15 18:15   좋아요 0 | URL
맞아요. 변화는 확 오지 않죠. 그런데 대구의 보수 사랑을 욕하는 사람들은 대구의 변화가 빨리 오기를 간절한가 봐요.. 대구에 한 번도 오지 않은 타 지역 사람들이 대구의 단면적인 모습을 보고 까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나고 속상합니다.

sprenown 2018-06-14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불어민주당이 싹쓸이 한것도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남북회담이나 북미회담 이슈때문인데.견제와 균형을 위해서 다당제에 맞게 진보와 보수 다양한 의견이 국정에 반영되어야 할텐데요.이 참에 개헌논의와 함께 선거구제 개편도 논의했으면 좋겠네요
사회적 합의가 필요 하겠지요.

cyrus 2018-06-15 18:17   좋아요 0 | URL
네, 지금 상황은 ‘위기’라고 생각해요. 더불어민주당 중심의 거대 이슈가 장기적으로 부각된다면 보수와 진보 야권 모두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붉은돼지 2018-06-15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 11시쯤에 제가 사는 달서구가 한두번 뒤집어져서 기대했었는데 아침에 확인해보니 유혈낭자하더군요 ㅜㅜ

cyrus 2018-06-15 18:19   좋아요 0 | URL
유혈낭자.. ㅎㅎㅎㅎ 달서구 선거 개표 결과를 잘 알고 있어서 무슨 의미인지 알겠습니다. ^^ 제가 살고 있는 동네인 서구도 마찬가지예요. 선거를 치르고 나면 TK만 적조 현상이 생깁니다.. ^^;;
 

 

 

세계박람회는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3대 국제 행사로 꼽힌다. 세계박람회를 개최할 경우 국가 위상을 높일 뿐 아니라 경제적 파급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에 세계 각국이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인다. 흔히 엑스포(EXPO)라고 불리는 세계박람회는 세계박람회기구(BIE)가 공식 인정한 공인 엑스포와 비공인 엑스포로 나뉜다. 비공인 엑스포는 전시 수준이나 규모가 공인 엑스포에 비교해 훨씬 규모가 작은 편이다. 참가국의 국가 명칭이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지역 행사로 치러진다. 우리나라는 공인 엑스포를 두 차례 개최했다. 1993년 대전 엑스포, 2012년 여수 엑스포다.

 

 

 

 

 

 

 

 

 

 

 

 

 

 

 

 

 

* 안나 잭슨 《엑스포, 1851-2010년 세계박람회의 역사》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

* [절판] 오룡 《상상력의 전시장, 엑스포》 (다우출판사, 2012)

* 이민식 《세계박람회 100장면》 (이담북스, 2012)

 

 

 

근대적 의미에서 최초 엑스포는 1851년 영국 런던 박람회[1]이다. 산업 혁명 이후 기술과 산업 분야에서 급성장한 영국은 이 성과를 전 세계에 과시하고 싶었다. 유리와 철골로 만들어진 전시관인 수정궁(crystal palace)이 세워져 경탄을 자아냈다. 박람회는 최첨단 상품과 기술 외에 보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대중오락을 갖춘 전시행사다. 런던 박람회를 시작으로 대중들은 다양한 볼거리를 접하기 위해 지정된 장소로 옮겨 다니며 관람이란 문화를 즐기기 시작했다.

 

 

 

 

 

 

 

 

 

 

 

 

 

 

 

 

 

 

* [절판] 권혁희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민음사, 2005)

* [절판] 요시미 순야 《박람회 : 근대의 시선》 (논형, 2004)

 

 

 

그런데 근대 박람회는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야망과 우월감을 교묘히 드러내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모든 것이 돈으로 값이 매겨지는 자본주의 체제인 만큼 사람도 돈의 힘에 밀려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한다. 근대 박람회는 산업혁명의 성과물과 식민지에서 얻은 재화를 전시하고 여기에 새로운 상품과 소비, 오락을 더해 대중의 욕망을 재현한 ‘스펙터클한 공간’이었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박람회는 상품뿐만 아니라 인간도 전시했다. 1851년 런던 박람회에서 수정궁을 선보이자, 이에 질세라 프랑스는 1889년 파리 박람회에서 에펠탑을 공개했다. 당시 에펠탑이 세워졌을 때 이 건축물은 파리지앵의 혐오 대상이었다. 문화 · 예술계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은 에펠탑을 파리의 우아함을 헤치는 철골 덩어리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프랑스 지식인들은 ‘인종 전시장’을 만든 파리 박람회의 부끄러운 전시계획에 대해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파리 박람회는 옷을 거의 입지 않은 식민지 원주민들을 모아놓고 전시했다. 가슴 아픈 일지만, 우리나라 사람도 세계박람회 전시대상이 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1889년 파리 박람회에 최초로 참가했다. 대한제국으로 국명이 바뀐 이후에도 박람회에 참가했으나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기면서 세계의 주변인으로 전락했다. 1907년 일본 도쿄에 열린 비공인 박람회(도쿄권업박람회)에서 조선인 남성과 여성 두 명이 유리관에 전시되었다.

 

 

 

 

 

 

 

 

 

 

 

 

 

 

 

 

 

* 마리아 미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갈무리, 2014)

* 장 메이에 《흑인노예와 노예상인 : 인류 최초의 인종차별》 (시공사, 1998)

 

 

 

근대 박람회의 인종 전시장은 인종주의만 재생산되는 공간이 아니다. 그곳에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가 서로 맞물리면서 작동하는 복잡하고도 강력한 억압 이데올로기가 재현되어 왔다. 16~17세기에 유럽은 중간무역과 식민지 정복을 통해 자본을 축적했다(여성을 착취하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구조를 분석한 마리아 미즈는 이 시기를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노예무역 상인들은 아프리카 민족을 납치하여 노예로 만들었다. 마리아 미즈는 무역이 발전하면서 노예제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 남성이 가부장 권력과 무기를 독점하는 ‘전사-사냥꾼’이 되면서부터 이미 나타났다고 본다. 노예사냥꾼, 노예무역상인 그리고 노예를 사고파는 자본가들은 아프리카 여성(흑인여성)‘야만인’ 또는 ‘성적 동물’로 취급하여 착취했다.

 

 

 

 

 

 

 

 

 

 

 

 

 

 

 

 

 

 

 

* [절판] 레이철 홈스 《사르키 바트만》 (문학동네, 2011)

*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9)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지평을 연 패트리샤 힐 콜린스는 흑인여성의 몸이 포르노그래피적 취급을 받았다고 분석한다. 노예가 된 흑인여성은 백인 남성 노예주의 쾌락을 채워주는 성적 대상으로 취급받았다. 특히 흑인여성의 몸은 ‘관음의 대상’으로 전시 · 소비되었다. ‘호텐토트의 비너스’로 알려진 사르키 바트만(사라 바트만)[2]인종주의와 성차별이 만들어 낸 포르노그래피의 희생양이다. 그녀는 런던 피커딜리 거리에 전시되었다. 피커딜리 거리는 신체 이형을 가진 사람들을 전시하는 프릭 쇼(freak show)의 본거지였다. 호텐토트(Hottentot)는 남아프리카 코이코이 족을 경멸적으로 지칭하는 단어다. 사르키 바트만은 엄청나게 큰 가슴과 특이한 엉덩이를 드러낸 반나체로 프릭 쇼와 서커스에 끌려다녔다. 백인들은 사르키 바트만을 야만적이면서도 이국적인 섹슈얼리티를 가진 벌거벗은 동물로 취급했다.

 

사르키 바트만 쇼는 ‘관람하는 포르노그래피’이며 박람회 인종 전시장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인종적 · 문화적 우월감으로 무장한 유럽인들은 제국주의적 시선으로 식민지인들을 구경했다. ‘야만인’의 전시를 통해 식민지인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려 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근대 박람회는 인간의 과시욕과 무지, 편견, 그리고 차별이 뒤섞인 장소였다. 박람회를 개최한 제국주의 국가는 식민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여 그녀들을 ‘비인간화’시키고, 오직 성적 대상으로만 재현 · 소비했다. 근대 박람회 인종 전시장과 사르키 바트만 쇼는 여성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현대의 포르노그래피를 닮았다. 근대 박람회는 ‘EXPORNO’ 또는 ‘XXXPO’[3].

 

 

 

 

 

[1] 흔히 ‘런던 만국박람회’로 알려졌으나 ‘만국박람회’는 일본식 표현이다. ‘만국박람회’ 대신에 ‘세계박람회’ 또는 ‘엑스포’라고 쓰자.

 

[2] ‘사르키’는 크리올어(아프리카 원주민 언어) 이름으로 바트만을 자신의 이름을 ‘사르키’라고 칭했다. ‘사라’는 영국식 이름이다. (레이철 홈스 《사르키 바트만》 14~16쪽)

 

[3] ‘EXPORNO’는 ‘EXPO’와 ‘Porno’의 합성어다. ‘XXXPO’는 ‘XXX(포르노그래피 도메인)’와 ‘EXPO’의 합성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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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전쟁 - 숨겨진 맛의 역사
톰 닐론 지음, 신유진 옮김 / 루아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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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교단의 회칙은, 수도사의 식사는 검약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수도사들에게 필요한 음식의 양을 원장이 정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우리 수도원에서도 수도사들은 식탁의 즐거움을, 탐닉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잖게 누리는 편이다. [중략] 참회와 덕행의 모범을 좇는 수도원들도 힘겨운 지적 노동을 하는 수도사들에게,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실질적인 식사를 제공한다. 그러나 수도원장의 식탁은 늘 기름지다. 귀한 손님이 거기에 앉기 때문인데, 원장은 이로써 수도원 땅의 소출과 요리사의 솜씨를 과시하는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상권, 134쪽)

 

 

움베르토 에코의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2009) 중세 연구가들조차도 탄복할 정도로 시대 고증을 충실히 반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박학다식한 에코가 고증하지 못한 것 있다. 그것은 바로 수도사들이 식사하는 장면(소설 상권 134쪽 참조)이다. 소설 속 수도사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수도원장이 손님에게 자랑하는 ‘기름진 음식’의 정체도 궁금하다. 수도사들의 식탁을 묘사한 내용 중에 구체적으로 언급된 음식의 수는 단 두 가지뿐이다. 꼬챙이에 꿰어 구운 돼지고기와 닭 요리다.

 

소설을 쓸 때 고증이 어려운 묘사를 구상할 경우, 상상력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과거 사람들은 음식을 맛있게 먹느라 여념이 없어서 자신들이 뭘 먹었는지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독 먹는 모습과 장면을 집중해서 보는 ‘먹방’‘쿡방(요리 방송)에 환호한다. 음식 관련 방송에 열광하는 주요 원인이 심리적 공허함, 1인 가족화와 경기불황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현대인들은 먹는 것 또는 먹방을 시청함으로써 일종의 대리 만족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먹방과 쿡방은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하는 ‘푸드 포르노’의 사례로 비판받고 있지만, 사람들이 선호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반영한 영상 텍스트이다. 그러므로 먼 훗날에 먹방 및 쿡방 유행이 시들어져도(과연 이런 날이 올까?) 후세 사람들은 과거의 기록으로 남게 된 먹방을 보면서 당대 사람들이 선호했던 음식을 확인하면서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유튜브와 TV가 없었던 시대에 살았던 옛날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았다. 과거에 유행했던 숱한 요리법과 음식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모습을 감추었다.

 

음식 문화는 시대에 따라 주어진 재료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음식을 어떻게 만들고 어떤 재료를 사용하면 어떤 변화과정이 일어나는지 등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들은 많이 있다. 그러나 역사학적인 자료나 연구는 매우 미흡하다. 《음식과 전쟁》(루아크, 2018)은 거대 역사 속에 가려진 음식 문화를 복원한 책이다. 저자는 음식에 관한 희귀 고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저자는 고대 요리책, 고문서, 삽화 등 오래된 자료에 기록된 음식, 식사 장면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우리가 잊고 있었던 ‘맛의 역사’를 추적해나간다. 이 책에 수록된 그림들은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과거 식문화에 대한 훌륭한 단서가 되어준다.

 

맨발의 은자(隱者) 피에르는 당나귀를 타고 거리를 쏘다니며 이슬람과 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에르는 1차 십자군 원정에 앞서 ‘민중 십자군’을 결성하여 원정길에 올랐다. 말이 십자군이었지 농민, 범죄자 등이 많이 섞인 오합지졸이었다. 민중 십자군의 패배가 눈앞에 드리우기 전에 피에르는 고향으로 피신했고, 그곳에 유대인의 잉어 양식 법을 전파했다. 전설에 따르면 예수가 피에르 앞에 나타나 두 가지 중대한 계시를 내렸다고 한다. 하나는 십자군 원정, 또 하나는 잉어 양식 법을 고향에 전파할 것.

 

유럽에 흑사병이 퍼지면서 프랑스 아미앵에서만 3만 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인근 도시에 발생한 엄청난 사망자에 비교해 프랑스의 수도 파리는 상대적으로 큰 화를 입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저자는 이에 대해 흑사병이 창궐할 시기에 유행했던 레모네이드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레모네이드는 세계 최초의 청량음료다. 레모네이드에 들어있는 구연산은 살균력을 지녔다. 레모네이드를 즐겨 마신 사람들도 모르는 사이 몸속으로 들어온 구연산이 잠복해 있던 전염병 세균을 없앴던 것으로 보인다.

 

루이 14세는 교활한 대식가였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다양한 연회를 열었는데, 당시에는 ‘무엇을 먹는가’보다 ‘많이 먹는 것’이 중요했다. 당시는 많이 먹는 것이 권력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귀족들이 참석하는 루이 14세의 연회는 밤 10시에서 밤 10시 45분까지 정확히 45분 동안 진행되었다고 한다. 자신을 음해하는 귀족세력의 반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매일 저녁에 만찬을 열었다. 왕의 저녁 만찬에 참석한 귀족들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귀족들이 침묵하고 있을 때 루이 14세는 마음껏 많은 종류의 음식을 맛보면서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는 ‘식인(食人)이다. 식인 행위 자체를 금기로 여겼기 때문에 식인 풍습을 역사적이고 문화적으로 접근한 자료가 희박하다. 유럽인은 식인 풍습을 ‘야만적인 문화’라고 비판했고, 식인 행위를 정신병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조너선 스위프트, 대니얼 디포, 허먼 멜빌 등의 작가들은 식인 행위를 묘사한 작품을 썼다. 특히 찰스 디킨스의 작품에는 식인 행위를 암시하는 묘사가 많다. 저자는 디킨스가 인육을 먹고 싶어 하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음식과 전쟁》은 인류의 발전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먹고 마시는 일에 밀접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수천 년을 이어져 오며 많은 이의 피와 살이 됐던 음식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는 저자의 글쓰기는 인간에 대한 또 다른 통찰을 제공한다. 음식은 단순히 맛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화 또는 역사로 남게 되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음식은 인간에게 필수적인 생존 수단일 뿐만 아니라, 본능적인 욕구를 채우는 것 이상의 큰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모르고 음식 문화를 이야기할 수 없고, 음식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음식의 가치를 설명할 수 없다. 음식이 어떤 역사적 배경 속에서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왔고, 그 속에 문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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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하면 흔히 대마초와 히로뽕 등을 떠올린다. 그만큼 많이 유통되기 때문일 것이다. 대마초는 마리화나, 해시시(하시시)라고도 불린다. 마리화나는 대마초의 잎을 말려 가루로 만든 것이고, 해시시는 말린 대마수지(꽃대 부분에 나오는 물질)를 반복 증류하여 용액 형태로 응축시켜 만든다. 해시시는 마리화나보다 환각성이 강하다.

 

 

 

 

 

 

 

 

 

 

 

 

 

 

 

 

 

* [절판] 샤를 보들레르, 테오필 고티에 외 《해시시 클럽》 (싸이북스, 2005)

* [절판] 조은섭 《포도주, 해시시 그리고 섹스》 (밝은세상, 2003)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마약 중독자였다. 그는 ‘해시시 클럽’의 회원이었다. 해시시 클럽에는 테오필 고티에, 빅토르 위고, 제라르 드 네르발 등 당대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가입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해시시를 즐겼고, 그 경험을 토대로 글을 남겼다. 《해시시 클럽》(싸이북스, 2005)에 수록된 보들레르의 글 『해시시의 시』는 1858년에 발표된 <인공 낙원>의 일부다. 이 책에서 보들레르는 해시시의 환각성을 ‘인공 낙원’으로 묘사했다. 그는 환각성 마약이 창작을 위한 삶의 질료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보들레르는 해시시 클럽의 회원이었으나 해시시를 즐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해시시가 주는 순간의 쾌락이 인간의 의지를 파괴한다고 생각했다.

 

중세 이슬람과 마약이 연결된 역사는 매우 길다. 암살자를 뜻하는 ‘assassin’은 아랍어 ‘하시신(hashishin)에서 유래됐다. 하시신은 ‘해시시에 중독된 사람’이라는 뜻으로 악명 높은 이슬람 비밀 암살단의 별칭이다. 이 비밀 암살단 이름은 우리가 아는 영어 ‘assassin’과 동일하다. 아사신은 이슬람 시아파의 한 갈래인 이스마일파의 과격 분파인 니자리파로, 암살을 정치적 무기로 삼았다. 당시 이슬람 주류 세력이었던 아바스 왕조의 실력자들을 잇달아 암살했고, 심지어 과격하기로 유명한 시아파마저도 아사신을 몹시 싫어했다. 아사신은 과격파도 철저히 지키던 무슬림 율법을 무시하는 극단적인 행보를 보였다.

 

 

 

 



 
















 

* 마르코 폴로 《마르코 폴록의 동방견문록》 (사계절, 2000)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상》 (열린책들, 2009)

 

 

 

니자리파는 깊은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 생활했으며 그들이 세운 알라무트(Alamoot)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알려졌다. 중세 학자들은 산에 은둔하는 니자리파의 우두머리를 산중 노인(또는 산노인[*], The Old Man of the Mountain)이라고 불렀다. 니자리파는 많은 군중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적을 처단했다. 적에 대한 징벌과 대중에 대한 교훈이라는 이중의 목적을 겨냥한 것이었다. 마르코 폴로는 13세기 후반 폐허가 된 알라무트를 방문했고, 자신의 책 《동방견문록》에 아사신을 언급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알라무트 요새 안에 ‘비밀스러운 쾌락의 정원’이 있다. 쾌락의 정원은 암살단원들의 훈련 장소이자 양성소다. 니자리파는 암살단원을 ‘살인 병기’로 세뇌하기 위해 마약성 약물을 이용했다. 폴로를 비롯한 유럽인들은 아사신의 전설과 신화를 믿었고, 이로 인해 아사신은 마약을 먹고 사람을 죽이는 잔인한 암살자의 대명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2009) 을 번역한  이윤기는 ‘산노인’을 설명한 역주에서 아사신을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공격한 자객’이라고 썼다.

 

 

  레바논 산중을 근거지로 회교 테러리스트 자객을 조직한 하산 이븐알사바에게 붙은 칭호. <자객(hashishiyya)>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한다. 자객을 <하시시야>, 즉 <하시시 중독자>라고 부르는 까닭은 이 조직의 구성원들이 <하시시>라는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페르시아, 시리아, 소아시아 등지의 지배자들, 혹은 십자군 시대에는 기독교도들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장미의 이름》 구판 상권, 323쪽)

 

 

이윤기 선생이 지금도 살아계셨더라면 이 역주 설명을 고쳤을 것이고, 새로운 개정판이 나왔을 것이다. 아사신을 ‘마약에 중독된 암살 집단’으로 묘사한 설명이 반론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 버나드 루이스 《암살단 : 이슬람의 암살 전통》 (살림, 2007)

* 아빈 말루프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아침이슬, 2002)

* 유발 하라리 《대담한 작전》 (옥당, 2017)

 

 

 

아사신은 니자리파의 악명 높은 암살 공격에 두려움을 떨던 유럽인들이 붙인 별칭이다. 니자리파는 자신의 암살단을 ‘아사신’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니자리파 암살단의 정식 명칭은 ‘피다이(fidā’ī)다. 암살단이 마약에 중독된 상태에서 공격을 감행했다는 확증은 없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니자리파 암살단은 공격 대상의 허를 찌를 정도로 치밀하고도 대담한 작전을 펼쳤다. 이런 그들이 마약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 암살을 감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암살을 시도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요새 안에 있다던 ‘쾌락의 정원’은 유럽인들의 과장된 상상이 만들어낸 가공 장소이다.

 

이미 오래전에 아사신의 신화가 허구임이 밝혀졌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사신이 ‘마약 중독’이 결합한 암살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아사신은 이슬람에 대한 서구의 편견이 반영된 단어다. 십자군 전쟁을 경험한 서구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에 향한 증오심을 잊지 못했고, 이슬람의 폭력성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아사신 신화’를 이용했다. 사실 아사신은 하시시와 전혀 관련이 없다. 아사신은 원래 이슬람권에서 상대를 경멸할 때 쓰는 단어였다. 아사신의 어원은 이슬람을 악의적으로 묘사한 서구의 기록에 의해 왜곡되어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과거를 고대, 중세, 근대로 나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중세시대와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예컨대 무슬림을 바라볼 때 이슬람 종교의 잔학성과 비인륜적 관습에 먼저 초점을 맞추곤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슬람의 실체는 과격하고 호전적인 이미지의 종교로 잘못 인식됐다. 모든 종류의 테러는 어떤 연유로 인해 그 누가 행하든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비윤리적 행위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적 · 문화적 배경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들의 무력 행위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이슬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이슬람교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이슬람문명과 그 역사를 두루 살펴야만 비로소 불식될 수 있다.

 

 

 

 

[*] 《장미의 이름》 구판 상권, 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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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2 1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13 13:05   좋아요 0 | URL
남미 마피아 카르텔의 돈줄이 마약이죠. 특히 멕시코 마피아는 정말 악명 높은 범죄조직이예요. 멕시코 출신 유튜버가 마피아 두목을 조롱하는 방송을 촬영했다가 살해당했고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치인들이 암살당했어요..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