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접만 받다 보니 그릇이 작아진 사내 이야기

 

 

 

 

 

 

 

 

 

 

 

 

 

 

 

 

 

 

 

조선일보를 구독 신청하지 않은 게 후회한다. 지난주 토요일 조선일보에 문제의 칼럼이 게재된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칼럼의 필자는 간장 두 종지를 가지고 우스꽝스러운 코미디 한 편을 완성했다. 필자가 칼럼 데드라인의 압박에 쫓겨 급한 마음에 이런 글을 쓴 것일까. 중국집에 간장 두 종지 더 달라고 주문했다가 주인에게 거절당한 자신의 경험을 야마로 잡을 줄이야.

 

필자는 그 당시 상황을 겪으면서 느꼈던 불쾌한 감정을 심하게 과장해서 표현했다. “간장님은 너 같은 놈한테 함부로 몸을 주지 않는단다. 이 짬뽕이나 먹고 떨어질 놈아. 그렇게 환청이 증폭되면서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이 문장을 쓰고 있을 필자의 만족스러운 표정이 상상이 된다. 아마도 여기가 칼럼의 웃음 포인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구독자의 썩소를 부르는 최악의 문장이 되고 말았다. 필자의 환청은 그를 괴랄한 정신 상태로 이르게 한다. 필자는 평범한 중국집을 매정한 '배급주의' 공기로 가득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받고, 식당 종업원에게 고마운 인사를 남기는 행동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필자가 더 이상 쓸 내용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아무 것 아닌 행동을 지적한다. 필자는 문제의 중국집이 어디인지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속 맺힌 앙금이 남아있는지 친절하게 힌트를 남겨주셨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언론에 종사하는 기자들은 수습기자 시절부터 이 말을 귀 아프게 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언론의 힘이 크고 위대하다는 뜻이다. 정치권력이 압도하던 권위주의 시대에 정의로운 언론인은 펜을 무기 삼아 온몸으로 진실을 기록했다. 그런데 펜이 생각 없는 사람에게 쥐어지면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는 해로운 무기가 된다. 언론이 무책임하게 휘갈긴 펜은 선량한 사람의 가슴 속을 후벼 파기도 한다. <간장 두 종지> 필자는 펜이 아닌 망나니 칼을 쥐었다. 칼날은 권력이 아닌, 중국집 종업원으로 향했다.

 

이번 해프닝을 계기로 <간장 두 종지> 필자, 그리고 그 글을 옹호하는 기자들은 자신들의 역할에 부끄러워해야 한다. 필자의 옹졸함을 공개적으로 야유하는 동료 기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조선일보 칼럼이 잘 썼는지 못 썼는지 따질 때가 아니다. 자신들의 무기를 엉뚱한 데서 사용하고 있다. 칼럼 한 편 가지고 보수·진보 기자들이 서로 펜 싸움질을 하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천명하는 장면

    

 

서슬 퍼런 유신 시대에 저항했던 언론인들은 펜을 제대로 쓸 줄 알았다. 그 당시 중앙정보부 직원이 언론사에 상주하면서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 하나하나 검열했다. 시위 상황을 알리는 기사가 있으면 누락되곤 했다. 이를 참다못한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은 19741024자유언론 실천선언을 발표했다. 자유언론 투쟁에 나섰고 이듬해 317, 134명의 언론인이 해직됐다. ‘자유언론 실천선언이 발표되기 전까지만 해도 기자들은 중앙정보부의 기세에 눌려 펜을 쥘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들은 펜 대신에 정부를 위한 나팔을 쥐고 열심히 불어댔다. 1971년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이 권력에 무력한 언론을 향해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학생들은 광화문 네거리 동아일보사 앞에서 동아일보 화형식을 진행했다.

 

정치 문제는 폭력이 무서워 못 쓰고, 사회 문제는 돈 먹었으니 눈감아주고, 문화 기사는 판매 부수 때문에 저질로 치닫는다.” (‘언론인에게 보내는 경고장중에, 유신215)

 

이 사건 이후로 기자들은 학생 시위 현장에 취재하러 가면 야유와 욕을 들었다. 취재해도 제대로 된 기사 한 편 쓰지 못하는 기자들은 권력 앞에 힘 못 쓰는 고자처럼 여겼다. 시위에 참여한 서울대 학생들이 농성장에 취재 기자들을 무시하는 팻말을 걸어둔다. 기자들은 그 팻말을 보는 순간,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한다.

 

기자와 개는 접근 금지

 

동아일보 기자들은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과 유신독재에 대한 분노로 몸을 떨기 시작했다. 권력이 은폐하는 진실을 캐내 국민에게 알 권리를 제공하겠다는 결의로 펜을 쥔다.

 

농성장 팻말을 본 기자 중에는 정연주도 있었다. 그때 당시 정연주는 동아일보 소속 기자였고, 자유언론 실천 성명 발표에 참여하여 해고당했다. 정연주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에 KBS 사장 자리에서 강제로 물러나는 고초를 겪었다. 그 이후로도 권력기관을 동원해 언론의 손발을 묶는 정부를 비판했다.

 

펜으로 부정한 자들을 고발하고, 사회적 약자를 살리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 언론인의 책임감이고 의무이다. 민주 정부 시절까지만 해도 언론은 사실 보도권력 견제를 못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권력 언론으로 군림하고 싶어 한다. 1974년 상황에 비하면 요즘 언론인들이 개보다 못한소리를 들어도 전혀 이상한 점이 없다.

 

<동아일보> 주필을 하다가 권력에 의해 쫓겨난 천관우권력 앞에 벌벌 떠는 언론을 연탄가스에 취해 비명 한 번 못 지르는 기절한 상태라고 비유했다. 참으로 이상하다. 이제 연탄을 쓰는 가구가 잘 없을 텐데. 아직도 언론인들은 연탄가스에 중독된 것처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심지어 자신들의 손에 쥔 펜이 정의의 칼인지 망나니 칼인지 구분도 못 한다. 분명히 제정신인데 이상하게 권력자들 앞에만 서면 무기력하다. 그런 기자들은 앞으로 기레기라고 부르지 말고, ‘고자라고 불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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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12-01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접만 받다 보니 그릇이 작아졌어요 ! 사람믄 무릇 그릇이 커야 합니다.

cyrus 2015-12-02 21:14   좋아요 0 | URL
칼럼 필자가 부장급이던데 회사에서 부장 대접 받지 못하면 부하들에게 눈치주는 사람일 것 같아요.

만병통치약 2015-12-01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화요리집˝에서 대접받을때는 분명 1인 1종지였겠죠 ㅋㅋ 근데 직원들 데리고 ˝중국집˝ 가니 전용 종지를 안 줘 ㅋㅋ / 부장님께서 서민용 중국집은 오랜만이라 감을 못 잡으셨답니다. ㅎㅎ

cyrus 2015-12-02 21:15   좋아요 0 | URL
그래서 필자가 글 쓰는 감도 못 잡았군요. ㅎㅎㅎ

레삭매냐 2015-12-01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를 찾아보고 나서 기자의 놀라운 문학적 비약에 대해 경탄을 금할 수가 없었네요.

cyrus 2015-12-02 21:18   좋아요 0 | URL
칼럼 필자가 주문한 음식 받으면 감사 인사를 하는 손님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해서 황당했습니다.

yureka01 2015-12-01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기자 보고 기레기라고 하더군요.
기자쓰레기.결국 펜이 쓰레기란 소리더라구요.

이젠 권력보다 자본에 휘둘리죠.
같은 기사 짜깁기와 베껴쓰기에 얼마나 뷰를 많이 찍는가 라는 거...

아마 양심이 살아 있는 기자는 스스로의 자괴감 때문에 버티기 힘들겠다 싶더군요.

cyrus 2015-12-02 21:19   좋아요 0 | URL
기자가 잘못 쓴 기사를 써서 욕 먹으면 신문 제일 구석에 짤막한 정정 보도 기사 내면 끝입니다. 크게 부끄럽지 않은가봐요.

2015-12-01 2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5-12-02 21:23   좋아요 0 | URL
창피스러운 기후총회 연설 봤어요. 그런데 조중동은 보도를 안하더군요. 그런 비판은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말이에요.

북다이제스터 2015-12-01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초 객관적 언론이란 것이 가능한 일인지 근본부터 궁금해 집니다.

cyrus 2015-12-02 21:25   좋아요 0 | URL
기레기들 때문에 정당하게 취재를 하는 진짜 기자들의 존재감이 알려지지 못해서 안타깝습니다.

CREBBP 2015-12-02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래기들이라는 별명이 괜히 따라다니는 게 아니죠. 발로 안뛰고 손가락으로 기스크린 따라다니며 `취재`하는 기래기들도 많은 시대에 뭐 자기는 대우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기래기들이야 널렸는데 무 써는 칼이라도 있으니 권력

cyrus 2015-12-02 21:28   좋아요 1 | URL
날로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팩트 검증을 제대로 안 하고, 일단 관심 끌 만한 기사가 나오면 내용을 똑같이 써요.

서니데이 2015-12-02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내용인지 원문이 궁금해졌어요. 지난주 토요일에 실린 글이면, 종이신문 대신 인터넷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cyrus님, 편안한 밤 되세요.^^

cyrus 2015-12-03 15:44   좋아요 1 | URL
앤드류대디님의 말씀대로 ‘간장 두 종지’ 칼럼 원문, 한겨레 만평, 그리고 문제의 칼럼을 소재로 한 다른 언론들의 칼럼을 같이 보면 좋습니다. 네이버 검색창에 ‘간장 두 종지’라고 치면 다 나옵니다. ^^

마키아벨리 2015-12-02 22: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원문에다 한겨레만평, 한겨레 칼럼까지 보셔야합니다

서니데이 2015-12-03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드류대디님, cyrus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