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송혜교와 박보검 주연의 <남자친구>를 보는데, 송혜교의 비서이자 친구가 송혜교에게 그런 말을 한다. '학창시절 콘서트에 다녀와서 선생님한테 혼날 뻔 했는데, 전교1등에 모범생인 니가 콘서트를 가주니까 니 덕분에 나도 안혼났다' 고. 이 부분을 보면서 아, 전교1등이란 무엇인가... 하였다.


전교1등..

나는 전교1등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전교 1등이 다 뭐야, 나는 반에서 1등도 해본 적이 없는걸.

그래서 어제 그 부분을 보면서 내가 1등을 한 게 무엇이었나를 생각해보았다.

유치원은 안다녔으니 패쓰하고 국민학교 6년, 중학교3년, 고등학교3년, 대학교 4년... 동안 1등해본 게 뭐가 있나?



없다.


없어.


없네.


학창시절 동안 물론 상장을 받은 적은 있었다. 표어짓기, 글짓기, 경필대회, 독후감 등등. 상장을 받아보긴 했지만, 그 상장도 상들 중에 중간정도였지, '대상' 같은 건 받아본 적이 없어. 무슨 그런 대회를 해도 간혹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잘하긴 했지만, '월등히' 잘해서 상을 탄 것도 아니었다.


어쩜 이래?


사람이 저마다 타고난 재능이 하나씩은 있다는데 나는? 나는? 왜 뭐 1등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계속 생각했다. 그래도 남들보다 월등히 잘한 무언가가, 1등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없다.


없어.



뭐하나 '제일' 인게 없네. 뭐하나 '최고'인게 없어.

'그건 니가 제일이지.', '그건 니가 최고야' 할만한 게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


인생 왜이렇지?



그러니까 학창시절에도 나는 언어영역과 외국어영역을 잘했는데, 그렇다면 그거 맨날 백점받고 내신1등급이냐 하면, 그게 아니라, 내가 다른 과목 이를테면 수리영역이나 사회탐구 영역보다 점수가 높다는 거였다. 서른 한살에 내 인생에 벼락처럼 내리꽂힌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 나를 어필하기 위해 쓸데없이, -아니, 무슨 서른 살에 학창시절 외국어영역 얘기를 했을까-, '나 외국어 영역 잘했다, 점수가 높았다'고 한껏 자랑한 일이 있었다. 그게 그와 나의 첫만남이었고, 나는 아마도 내가 무언가를 잘한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만점 받았던 것도 아닌데, 하나도 안틀리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다른 것에 비해 '적게' 틀렸던 것뿐인데, 그걸 가지고 잘한다고 한껏 으스댔지. 그러자 내 앞에 앉아 삼겹살을 굽던 그는 아 그러냐고 하더니, '저는 외국어영역 만점 받고 대학갔어요' 라고 했던 것이다. 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나..


나는 전교에서도 반에서도, 공부로도 그 뭣으로도 1등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만 1등을 자랑하고 싶어서, 내 여동생이 전교1등하면 자랑하고 다니곤 했다. 그러니까 나는 전교1등 못해봤지만 전교1등 동생 가진 여자... 반에서 1등했던 남자랑 연애했던 여자..쯤은 되시겠다.



그러니 당연 장학금 받아본 적도 없다. 이게 나이들고 나서 내가 장학금 한 번 못받아보고 학창시절을 끝내버렸다는 게 너무 서운한거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게 방통대였지. 방통대를 내가 우습게 봤다. 방통대가서 장학금 받으리라! 하고 들어갔어. 나는 또 내가 그게 될 줄 알았지. 그러나 나는... 나였다. 방통대 가서도 공부를 안하고 ... 장학금이 웬말이야..... 재수강 해야 되는 과목만 생기더라. 결국 한 학기 다니고 자퇴했지... 대학시절 학사경고 받았던 나여..왜 사람이 변하질 않아... 나는 공부는 정말 아닌거니?



어제 계속 잠들기 전까지 생각했다. 나는 정말 1등하고도 장학금하고 아무 상관없는 삶을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하는 것인가. 정말 1등해본 적 없나. 뭐라도 긁어보자, 뭐 있지 않을까? 하다가 생각난 게, 몇 해전에 문학동네 세계문학 리뷰대회? 거기에서 1등했던 게 생각났다. 그때 상품으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0권 받았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좋은 상품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그건 좀...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가 정말 1등한만큼 잘 써서 줬다기 보다는, 뭐랄까, 얘 책 읽고 맨날 글 쓰는 애니까 주자...라는 게 더 큰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해본다.



뭐든 꼭 1등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뭐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

이것만큼은 누구보다 최고인, 그런 거.

그런 게 없어, 그런 게...


앞으로도 내가 뭔가 1등할 일은 없겠지...


쓸쓸하다.


전교1등이란 무엇인가.....


나도 1등 하고 싶다.

나도 최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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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12-07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0권! 그게 더 부러운데요~!
다락방님은 알라딘 마을 1등 이시쟎아요~ 인기와 미모로~^^

다락방 2018-12-07 15:31   좋아요 0 | URL
알라딘 마을에서도 1등은 아닌 것 같아요.... 걍 오래 한 알라디너.......... 하하하하하.
세계문학전집 100권은 좀 좋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18-12-07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고신데요... 리뷰대회..100권... 완조니 리스펙트입니다! 저두 일등 해본적 없는거 같아요 ㅋㅋㅋ 힝..

다락방 2018-12-07 17:30   좋아요 0 | URL
살면서 일등 한 번 해봐야 할텐데요.... 앞으로 뭐가 남았을까요..... ㅜㅜ

공쟝쟝 2018-12-07 17:59   좋아요 0 | URL
페미사이드 빨리읽기? ㅋㅋㅋ 저는 다음달 페미니즘책 1등으로 빨리읽기를 목표로.. (이번달 이미 글럿어..)

다락방 2018-12-07 18:05   좋아요 0 | URL
그건 이미 틀렸어요 ㅜㅜ 저 아직 40쪽 이고 내일 술도 마셔야 하고.. ( “)

공쟝쟝 2018-12-07 18:07   좋아요 0 | URL
이번달은 단발머리님께ㅜ양보

단발머리 2018-12-10 09:48   좋아요 1 | URL
저한테 밀어주시기로 합의하신거예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안되겠다, 그럼 제가 페미사이드 빨리읽기 1등을 하는 걸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8-12-10 09:49   좋아요 0 | URL
전교 1등보다 문학동네 리뷰대회 1등이 더 멋진데요!!

다락방 2018-12-10 14:53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 가능성이 아주 높네요! 벌써 500 페이지 이상 읽으셨다니!! >.<

카스피 2018-12-08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전교1등은 커녕 전교 1등하는 친구 얼굴고 본 기억이 없네요ㅜ.ㅜ

다락방 2018-12-10 14:53   좋아요 0 | URL
ㅎㅎ 저는 그래도 전교1등 친구는 있었습니다. 으하하하.

붕붕툐툐 2018-12-10 1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매력 1등!!

다락방 2018-12-10 18:05   좋아요 1 | URL
어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븅븅토토님 너무 좋은 분!! 고맙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transient-guest 2018-12-11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평생 1등을 해본 것이 없네요. 이것 저것 다 좋아하기는 하는데 말이죠.ㅎㅎ 그저 오래 버티고 버티는 거 하나 잘해서 여기까지 왔네요.

다락방 2018-12-11 08:23   좋아요 0 | URL
오, 트랜님이 일등해보신 적이 없어요? 공부로는 일등 여러번 하셨을 것 같은데요! 완전 의외입니다!!

transient-guest 2018-12-11 09:02   좋아요 0 | URL
1등은 커녕...-.- 중학교 때 반에서 36등한 적도 있어요.ㅎㅎ 미국에 와서는 좀 나아졌지만 1등은 해본적이 없습니다.

다락방 2018-12-11 09:04   좋아요 0 | URL
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의욉니다 트랜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동지애가 생기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알라딘에는 일등해본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제 혼술을 하면서 무얼 볼까,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볼까, 무해한 박보검이 나오는 <남자친구>를 볼까 고민하며 술상을 차리는데, 내가 나에게 보낸 예약문자메세지가 왔다. <차이나는 클라스>에 '이상희 박사'가 나온다는 문자. 내가 엊그제 나에게 보낸 예약문자. 이거 놓치지 말자, 하고.

















우리나라 고인류학박사 1호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이상희 박사의 <이상희 선생님이 들려주는 인류 이야기>는 내가 사서 읽고 조카에게 선물했다. 조카가 이 책을 다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인류학이라니, 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분야라서 나는 <인류의 기원>보다 아이를 대상으로 한 책을 먼저 읽어야하는 게 아닌가 싶었더랬다.


어제 여동생에게 텔레비젼에서 이상희 박사 강의한다고 말했더니 여동생도 부랴부랴 틀고 보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우리나라 고인류학 박사 1호이고, 지금 미국에서 교수로 있다, 는 얘길 하는데, 여동생이 너무 멋지다고 감탄했다. 분야별로 관심있어서 전공자가 있다는 게 너무 짜릿하다는 거다. 여동생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바로 어제 아침에 내가 '뉴욕 검시관' 얘길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의학과 과학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여자.

















의학과 과학을 사랑한다는 얘기를 책에서 읽으니 나는 자연스레 생물교사인 여동생 생각이 났고, 생물을 사랑하며 학생들에게 생물을 가르치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 동생인지라, 아니나다를까, 이 책에 대한 얘길 해줬더니 너무 좋아했다. 동생도 이 책 다 읽으면 빌려달라길래, 어제 주문했다. 요즘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다가 좋으면 사는 패턴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또 안읽은 책은 안사는 게 아니야? 계속 산다.



그렇게 의학과 과학을 사랑하는 여자 얘기를 오전에 하고 고인류학 박사 얘기를 밤에 하노라니, 각자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똑똑함을 드러내는 여자를 보는 게 너무 좋고 짜릿한거다. 이건 일전에, 정치를 하고자했던 '엘리자베스 워런' 에게서도 느꼈던 바다.

















요즘 읽는 페미사이드 에서도 마찬가지. 두 명의 저자가 이것은 이상하다, 연구해봐야 한다 며 연구를 시작해 써낸 책이다. 게다가 혹여라도 자기들이 뭔가 놓치진 않을지 우려해 끊임없이 그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다. 자기가 연구하는 분야의 전문가이며 혹여 놓치지 않을까 하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까지. 너무 근사하지 않은가!


















아, 그러고보니 아이들 데리고 고래를 연구하려고 배를 탔던 여자 생각도 난다. 세상엔 고래를 연구하는 여자도 있어!! 














아, 그리고 작년에 내가 읽었던 최고의 책, 최고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도 있다!! 엄청 똑똑해. 이런 어마어마한 소설을 써내다니!!

















이렇게 각자의 분야, 심지어 내가 관심도 없었던 분야에서 열심히 전문적 지식을 쌓고 자신의 할 일을 하며 경험을 쌓은 여자들을 보는 것은 너무 좋다. 그것을 자기 혼자만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자 힘을 쓰는 여자들을 보면 진짜 너무 기운이 나고 힘이 되는 거다. 너무 멋져, 대단해! 이런 여자들이 있어서 아 세상에 이런 직업도 있구나, 아 이런 걸 연구할 수도 있구나, 생각할 수도 있고, 혹시 그렇다면 나도? 하며 이상으로 삼을 수도 있다. 너무 근사하지 않나.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가 맡은 역할로 세상의 많은 다른 여자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세상에 그것보다 더 멋있는 게 어딨을까.


부검의로, 고인류학자로 당당하게 우뚝 서서 똑똑한 여자들을 보니 너무 좋았다. 나는 이런 거 진짜 너무 좋아.

그런 한편, 아,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데 생각이 미치자 우울해졌다.

나도 뭔가 용기를 주는 사람이고 싶은데, 나는....뭔가 전문 분야가 없네. 자, 이 여자를 봐라 열심히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다! 하고 보여줄 만한 게 아무것도 없네. 언젠부턴가 나는 내가 어릴 적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을 너무나 후회하고 있다. 내가 학창시절에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면, 지금쯤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나를 보며 용기 뿜뿜할 수도 있었을텐데! 왜 나는 공부하지 않고 인생을 그냥 흥얼흥얼 되는대로 살았던가.... 아, 과거의 나여..돌아가라, 돌아가서 공부를 하라...Orz



그러나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설사 내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지금 이 순간 바로 즉시는 곤란하다. 무얼할 수 있을까, 무얼해서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다가, 나는 이렇게 용기를 줄만한 다른 여성들을 소개하는 걸로 내 소임을 다하고자 한다. 자 여러분 이거봐요, 뉴욕에서 시체를 해부하는 여성이 있어요, 의학과 과학을 사랑한답니다. 자, 여러분 이거 봐요, 대한민국 고인류학자1호는 미국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어요. 자 여러분, 고래를 연구하는 여자도 있습니다. 여러분, 여성혐오살해와 남성폭력에 대해 분노하며 글을 쓰는 여자들이 있어요. 가난이 대물림 되는 것은 이상하지 않냐고 정치를 하는 여자도 있어요. 세상 그 무엇보다 근사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소설가도 있어요. 우리는 언제든 어떻게든 여러가지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똑똑한 여자들의 글,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여자들의 글을 지금보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소개해야겠다. 이렇게 작고 약한 나, 이렇게 나약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중에 하나가 그것일 것이다.

아 진짜 똑똑한 여자들의 글을 읽는 거 세상 신나고, 나도 똑똑해지고야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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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12-06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문과라서 그런지 과학 공부하는 여자, 수학 잘 하는 여자가 마냥 멋져보여요!
저도 모르게 여성에게는 금지된 영역이다,라고 생각해서 그럴까요? 한계와 편견을 넘어선 여자들 정말 대단해요.

그리고... 다락방님 용기 주는 사람이예요.
다락방님의 위대한 여성 소개와 ‘해봅시다!’그리고 ‘컴온!!!’을 들을 때마다 전 용기가 막 샘솟아요!!!! 퐁퐁!! 퐁퐁!!

다락방 2018-12-06 10:30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단발머리님. 우리 사회가 언제부턴가 이과를 더 높이, 더 멋지겨 쳐줬던 것 같아요. 특히나 이과 남성들은 그 부심이 대단한것 같고.. 그럴 필요가 없는건데 말입니다.
그래도 수학잘하고 과학 잘하는 여자 보면 멋져요. 너무 멋져요. 그리고 그런 여자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남자들이 이과영역을 더 잘한다, 남자들이 수학 잘한다, 같은 걸 우리가 듣고 자라지만 않았어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여자들이 이과 영역에 진출해있을 텐데요. 아쉬워요.


헤헤, 해봅시다와 컴온이 용기를 준다 하시니 계속 하겠습니다.

해봅시다!
컴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카스피 2018-12-07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성을 압도하는 이과 여성(법의학자)이 나오는 추리 소설도 있는데 바로 본즈시리즈에요.미드 본즈의 원작소설인데 읽으시면 재미있으실 거에요^^

다락방 2018-12-07 08:04   좋아요 0 | URL
본즈 시리즈가 뭔가요? 그냥 본즈 시리즈라고 검색하면 무슨 만화만 나오는데요...

비연 2018-12-07 09:32   좋아요 0 | URL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84824

이 책인데... 품절된 듯...

다락방 2018-12-07 09:36   좋아요 1 | URL
방금 중고책으로 주문했어요. 회원중고 최상 있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배송비 내고 주문완료!

종이달 2022-03-19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어제는 집에서 혼술을 하면서 채널을 돌리다가 <연애의 참견>이란 프로그램을 보게됐다. 연애를 하면서 생기는 고민(이 사랑 계속할 수 있을까요, 끝내야 할까요)을 프로그램에 보내서 패널들이 자신의 의견을 얘기해주는 구성이었다. 뭐, 누가 뭐라하든 결정은 자신의 몫이니, 연애에 대해서라면 나는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어제 사연을 보낸이는 남자였는데, 자신의 여자친구가 학교에서 여신으로 불릴 정도로 미모가 빼어난데, 사귄지 1년이 되도록 뽀뽀를 제외한 스킨십도 한 적이 없고, 1박2일 여행도 못간다고 한다, 자신을 만날 때 표정도 별로 없다는 게 고민이었다. 이에 대해 남자의 친구는 '여자가 너무 예뻐 남자들이 하도 달라붙으니 그거 귀찮아서 널 그냥 남자친구로 세워둔 거 아니냐'라고 했고, 친구에게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내심 불만이 쌓여 술을 마시고 여자네 집앞으로 찾아가 '잠깐 보자'고 얘기한다. 여자는 '지금은 곤란하다'고 말하는데, 남자는 '너가 만약 안나온다면 나랑 헤어지자는 건 줄 알겠다'고 하며 기다린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여자는 나오질 않아, '아, 이 여자는 날 사랑한 게 아니었구나' 하고는 돌아가는데,

다음날 여자가 남자를 찾아온다.
남자는 '너 안나오면 우리 끝이라고 얘기했잖아,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라고 말하는데, 여자는 '너를 너무 좋아해서 그랬다, 점점 더 좋아져서 그래서 그랬다, 그리고 어제 나갔었다' 라고 말했다. 남자가 떠난 후에 여자가 나왔던 것. 여자가 풀메이크업을 하고 나오느라 두 시간여가 걸린 셈이었다. 머리도 감고 말리고 화장도 하고...

아이고....
알고보니 여자는 굉장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전남친과 연애하면서 여행을 갔는데, 여행지에서 화장을 지우고 자려고 하자 남친이 '너 눈이 왜이렇게 작냐'며 여친에 대한 태도가 확 달라진 것. 자신의 노메이크업을 보고 실망하고 태도가 달라진 그것 만으로도 상처였는데, 남자는 자신의 자는 모습을 단톡방에 공유해서는 '화장이 아니라 분장이다, 나는 얼굴이랑 몸매만 보는데 완전 우웩이다' 하는 메세지를 주고 받은 거였다. 단톡방 참여자들은 '진짜 얘가 걔 맞아? 대박..' 이런 식으로 응대하고...


여자가 화장이 과했을 수 있다. 화장으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화장 지운 걸 보고 '어 예쁜애가 아니었네' 할 수도 있다. 트로피 여친을 원해서 '이렇게 예쁘고 몸매 좋은 애를 사귀는 능력 좋은 나'를 과시하고 싶었는데, 그게 안되니 확 실망했을 거다. 트로피 여친을 원하는 것은 본인 자질의 문제다. 만족을 과시로부터 얻으려고 하는 것은 어차피 그 사람이 깜냥이 그것밖에 안되는 거니, 그건 그냥 그가 못난 거라고 할 수 있다. 트로피 여친(혹은 남친)을 원하는 것은 굉장히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을 자랑하고 싶어서' 사귀는 거였는데, 그 '이것'이 조금이라도 흠집나는 순간, 그것은 사랑도 뭣도 아니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트로피 애인을 원하는 것은, 아직 스스로가 뭘 원하는지를 들여다보지도 못하는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 하는 짓이라고 본다. 그건 본인 미성숙으로 생각할 수 있고 본인이 연애를 끝내면 된다, 그러나.



'잠든 여자친구의 모습을 사진 찍어 단톡방에 전송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그것은 '이것이 해서는 안될짓이다'에 대한 개념이 자리잡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건 몰카고 범죄다. 찍히는 줄도 몰랐던 나에 대한 사진이 게다가 불특정 다수에게 전송이 된다. 이건, 해서는 안될 짓이다. 몰래 찍어서도 안되고, 그걸 전송해서도 안된다. 왜 이게 장착이 안되지? 왜죠?
찍힌줄도 몰랐던 나의 사진이 불특정 다수에게 전송이 되어 그걸 보면서 게다가 품평을 한다. 그 단톡방에서는 아무도 '야, 여자친구도 니가 사진 찍은 거 알아?'라고 묻지 않은걸까? 왜 하나같이 '야 이렇게 생긴 애였다니 ㅋㄷㅋㄷ' 이러고만 있을까?

상대의 허락 없이 사진을 몰래 찍어서도 안되고 그것을 전송해서도 안된다. 이게 왜 자리잡지 않지? 이건 뭐 지킬 수 없는 힘든 일이 아니라 그냥 안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잖아. 왜 이 기본 도덕이 자리잡지 않지? 이건 그냥 인간이 인간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그냥, 단순하게, 그냥 지켜야 되는 거잖아.


여자는 자신의 사진이 과연 어디까지 그리고 누구에게까지 전송됐을지 알 수 없어 불안에 떤다. 길을 걸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손가락질할까봐 겁난다. 결국 학교까지 옮기고야 만다.



내가 내 단톡방에 있는 다섯명에게 이 사진 하나를 보냈다는 것은, 그들이 또 자신이 속한 다른사람들에게 사진을 전송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그 단톡방에서 낄낄거린 새끼들이라면, 다른 방에 그런 비슷한 부류가 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단톡방에서 전송받은 새끼들은 또 전송하겠지. 야, 화장할 때 이 얼굴인데 화장 지우면 이 얼굴이래 대박이지 낄낄낄.

내가 이미 상대에게 전송한 순간, '야, 다른 사람에게 전송하지마'가 과연 어떤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유포에 나 역시 힘을 보탰는데, '나는 했지만 너는 하지마~ 낄낄' 이것은 가능하기나 한것인가. 물론 그 단톡방에 있는 새끼들은 '야 다른 데가서는 하지마' 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여자의 트라우마는 쉽게 치유되지 못할 것이다. 지금 만나는 남자친구도 그녀가 '여신급 외모'라고 사귀었는데, 그가 아무리 '나는 다른 남자랑 달라'라고 자신의 입으로 말한들, 여자가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그녀의 트라우마가 사라지기 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중요한 건, 나는 그 트라우마가 좀 괜찮아지는 데에는 현재의 남자친구가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래, 나 화장 지우면 이런 얼굴이다, 왜, 뭐, 어쩔래.' 가 되기 위해서는 그녀가 화장하지 않은, 머리도 얼굴도 몸매도 제각각인 다른 여자들을 많이 보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될것이다. 여신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속에 둘러싸이기 보다는, '왜 여신이어야 해?', '왜 예뻐야 되는데?'를 말하는 사람들 속에 있어야 한다. 아, 그러게, 이 한 줌도 안되는 화장으로 나는 왜그렇게 힘들게 지냈지? 라고 스스로 깨달아야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남자친구를 만날 때마다 두시간씩 메이크업 해야 한다면, 그것은 또 여자에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가장 완벽한 모습의 나'를 보여주는 것은 자기만족이 아니다. 그것은, '그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나'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책을 읽고 이런 술을 마시고 이런 술꼬장을 부리고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행동을 하고 이렇게 생기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나다. 그녀에게는 '넌 화장 안해도 예뻐'라고 말하는 남자가 필요한 게 아니라, '우리는 우리가 편한대로 살아가도 된다, 남자의 품평에 우리의 가치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줄 다른 여자들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자의 전남친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도덕'이 필요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도촬을 하고 전송을 하면서 낄낄대고 웃어버리다니. 불법촬영도 남자가 했고 유포도 남자가 했는데, 왜 울고 트라우마를 가져야 하는 게 여자인가. 왜 학교를 옮기는 게 여자여야 하는가. 세상이 불법촬영하고 유포하는 남자들을 더 가혹하게 다루어야 한다. 돌을 던져야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건 안되는 거지'하는 도덕을 그들 스스로 갖추고 있길 바라지만, 그것이 싹수가 노랗다면 강제로라도 주입해야 하지 않겠나.


불법촬영 안된다, 다른 사람의 몸은 다른 사람의 것이다, 불법촬영 유포도 안된다, 다른 사람의 얼굴이나 몸을 가지고 낄낄대는 것은 안된다.


이 기본적인 도덕을, 굳이 강제로라도 알려줘야 하지 않겠나.

아 진짜 너무 싫고 너무 끔찍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의 얼굴을 찍고 그것을 돌려보고 낄낄대며 품평하다니. 세상 쓰레기들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장착되지 않은 것들. '어? 이건 안되는 건데..'라는 가장 기본적인 도덕이 장착되지 않았는데, 이 사회에서 어떻게 같이 살아가나.


'으,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찰나의 감정 혹은 생각이 나는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었다면, 그 '아님'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예의를 지키게 만들고 상식을 지키게 만들어주는 것이니까. 불법촬영을 하고 유포하며 낄낄대는 많은 사람들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뭐 어때' 이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자체가 장착이 안되어있는 것 같다. 여태 여성의 신체를 물화했던 남자들이라서, 내 마음대로 찍고 전송하고 품평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이걸 고칠 수 있을까? 그들에게 '이건 아니지 않나?'하는 기본적 생각을 가르치고 주입할 수 있을까? 왜 어릴 때부터 똑같은 나라에서 똑같은 교육을 받고 살았는데, 누군가는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생각하고 누군가는 '어머 못생겼어 찍어서 놀려야지'를 하게 될까? 뭐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페미사이드는 아직 조금밖에 읽지 못했지만, 아주 흥미롭게 읽히고 있다. 무엇보다 저자들이 끊임없이 세상에는 다양한 여자들이 있고 우리가 그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놓칠 수도 있다,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최선을 다하겠다 라고 반복해 말해주어 너무 좋았다. 이 책을 같이 읽고 있는 친구가 어제 무척 잘 읽혀서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둘다 좀 더 깊이있는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 역시 너무 갈증이 나고 목이 마른 거다. 가장 처음 생각한 건 대학원이었는데, 먹고 사는 게 중요한 나로서는 대학원에 진학하려면 반드시 이 직장이 필요하고, 그러나 직장을 다니면서 그걸 해낼 자신이 없다. 대학원 다니는 다른 사람의 학비를 보니, 그것도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고. 방통대에는 여성학이 없고, 대학들이 갖추고 있는 평생교육원도 여성학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 이래저래 여성학을 가르치는 대학들에 들어가 어떤 책들로 공부하는지 보고 우리 그걸 한 번 읽어볼까, 어제 친구랑 얘기했다. 그런 책들 리스트업 해서 우리 나름대로 커리큘럼을 짜고, 어떻게 '함께' 이것을 공부할 수 있을지 의논해보자, 고. 나처럼 친구도 목말라 하고 있었다. 더 하고 싶어, 더 공부하고 싶어, 하고.




















아마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공부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 먹고 살기 위해 일을 좀 해야하고,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 짬을 내어 공부를 하는 것은 웬만한 의지로는 쉽지 않은 일이니까. 게다가 나는 여행도 다녀야 하고 술도 마셔야 하고 요가도 해야 하고 할 게 너무 많다. 그래도 틈틈이 뭔가 시도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계속 생각해봐야지, 어떤 좋은 방법이 있나.



















아직 12월의 도서 페미사이드도 다 읽지 못했는데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다. 회사를 그만두고 책만 읽고 싶지만, 그러나 회사를 그만두면 책만 읽고 사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인생 뭘까..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하기 싫은 걸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삶... 그것이 인생.........


벌써 12월 6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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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12-06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례한 전남친이었군요. 이건 기본적인 예의에 대한 문제인데... 그런 일로 두고두고 남을 상처를 안게 된 여자에게... 무시하라고 소리질러 주고 싶어요. 내가 화장 지워서 이 얼굴인게, 뭐 어때서? 라는 당당한 마음을 가지라고. 전남친은 화장을 좋아한거네요. 그럼 너따위 필요없다고 얘기하면 된다고..

회사 다니면서 공부했었는데 정말 힘든 일이에요... 결국 논문 쓸 때는 회사 그만두고 처절하게(정말ㅜ) 지내다 학위를 땄던 기억이. 뭔가 학교를 다녀야만 공부를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커리큘럼이나 일종의 강제성이 없으면 계속 하기도 어려운 게 우리네 공부라는 것이라 항상 딜레마이긴 해요. 정말 배우고 싶은 건, 학교에 없지 않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하고 싶은 공부는 해야 하는 거고... 몇몇이 모여 학습 공동체를 만들고 진행하는 것도 괜챦은 방법 같아요. 페미니즘 연구자들을 초청해서 얘기도 들어보고. 누군가 총대를 잡고 진행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긴 하겠지만.

다락방 2018-12-06 09:56   좋아요 1 | URL
맞아요, 비연님. 기본적 도덕이 갖춰지지 않은 놈이죠. 무례하다는 것만으로는 너무 약한, 그런 놈이에요. 아오 너무 짜증나. 나쁜 짓은 전남친이 했는데 트라우마는 여자가 갖게 되었어요. 하아-

저도 회사 다니면서 공부하려고 방통대 갔다가, 워낙 공부하는 걸 싫어하기도 하는 사람인지라 자퇴했는데요, 이게 여간 힘든 게 아니더라고요. 퇴근 후에 강의를 듣는다는 게 정말이지 ㅠㅠ 제가 이 회사에서 맡은 일 때문에 대학원을 가기는 좀 무리가 있고 무엇보다 돈도 문제고요. 대학교 교수님께 연락해 청강을 듣는 것도 생각해보았지만, 아무래도 그걸 다 맞출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요. 스스로 해야하는데, 특히나 제 경우에는 공부에 대해서라면, 스스로보다 도움을 받는 게 좋은 것 같아서 좀 고민이 되네요. 비연님, 그런데 학위를 따셨다니, 정말 대단하셔요!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저도 계속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겠어요!

카스피 2018-12-07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가끔 보는데 실제 그런 일이 있을까 싶은 내용이 많더라구요.사실 성형보다 더한 것이 화장이란 말도 있는데 화장으로 실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자신을 가꾸려는 여성의 노력을 매도하거나 비난할 필요는 없단 생각이 듭니다.거꾸로 남성의 경우 상대방 여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되물어 볼 필요가 있지요.여친의 모습이 화장 전후가 크게 다른것에 실망했다면 그건 여친의 외모만을 사랑했단 뜻이기에 여성도 그런 남성에 크게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고 여겨집니다.
한가지 여성의 자는 모습을 여성 몰래 단톡방에 올린것은 참 남자로써 찌질한 놈이란 생각이 듭니다요.

다락방 2018-12-07 08:05   좋아요 0 | URL
찌질하다기 보다는 비열한 범죄자인 거죠. 해서는 안될짓을 한 놈이고요.
만약 여자가 저 당시에 바로 그 사실에 대해 몰랐다해도 언젠가는 저런 놈인걸 알게 됐을테니 진작에 헤어진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바람이 있다면, 저놈이 몰카를 찍어 단톡방에 올리는 놈이란 것이 소문 나는 거예요. 그래야 다른 여자들이 저 남자를 피해갈테니까요.
 
뉴욕 검시관의 하루 - 차가운 시신 따뜻한 시선
주디 멜리네크.T.J. 미첼 지음, 정윤희 옮김 / 골든타임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주디 멜리네크'는 외과 레지던트로 일하다 그만두고 법의병리학 을 새 직업으로 갖게 된다. 쉽게 풀이하면 부검의, 검시관이다. 시체를 보며 죽은 원인을 찾아내고 사망확인서를 발급해주는 일. 시체가 도착하면 일단 외부에 상처가 난 건 없는지를 살피고 그 후에는 몸을 갈라 그 안에 모든 장기와 뼈, 뇌까지 샅샅이 살펴본다. 몸에서 혹시 마약이나 약물이 나오진 않는지,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인지 공들여 찾아내서는 그것이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혹은 살인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하곤 한다. 게다가 유족들에게 슬픔을 전하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숨을 멈추기 전까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을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 유족에게는 '아니요 바로 사망해서 고통은 없었을 거예요'라고 거짓말해주는 일까지.



그녀는 이 일에 애정을 갖고 있다. 자신이 그간 의대에서 또 외과 레지던트로 일한 경험으로 알게된 지식을 다 쏟아 붓는다. 물론 같이 일하는 동료와 선배로부터도 가르침과 도움을 받고, 그래서 거기에 또 지식과 경험을 차곡차곡 쌓는다. 똑똑한 여자가 자기의 지식을 바탕으로 일을 하는 것, 그 일에 애정을 갖는 것, 동료들과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을 보는 것은 몹시 흥분되는 일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게다가 그녀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하는 일에 애정을 가진 게 보여서 즐거웠다. 매일 시체를 보고 시체에서 나는 냄새를 맡는 사람들에게 즐거웠다는 말을 하는 건 어쩌면 부적절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지만, 자신의 일을 즐기고 그 일을 일로써 잘해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실례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에이미 박사는 내 손에 들려 있던 두개골을 받아 자세히 살펴보더니 다시 돌려주었다. "뼈 하나하나마다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난 내 일을 정말 사랑해요." ( p.125)



그러나 역시 한 사람의 삶이 끝났다는 것을 보는 것, 아는 것, 전달하는 것은 즐거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사연을 접하노라면, 세상엔 이렇게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구나 싶고, 그만큼 다양한 죽음-내가 결코 알기를 원하지 않았던 종류의 것들까지-이 있구나 싶다. 사고사로 결론 날 수 있는 것인데 가족이 찾아와 그럴 리 없다고 사연을 들려준다거나, 자살한 아들을 인정하지 못해 계속해 사고사일거라고 평생을 주장하는 어머니라든가 하는 사연이, 과연 그냥 남의 일이기만 할까. 그녀의 상사는 그들이 해야할 일은 죽음에 대한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내는 거다, 이것이 살인사건인지에 까지 관여하는 건 아니다, 라고 하지만, 그녀는 혹여라도 누군가 억울한 죽음에 이른 건 아닌지 돕고 싶어한다. 



그녀가 처음 검시관 일을 하면서부터 맡게 되는 혹은 알게 되는 수많은 사연들에 대해 읽어가다가, 맙소사, 마지막 10장을 읽을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울어야 했다. 10장의 제목은 <충격과 공포>인데, 2001년 9월 11일의 일을 다루고 있다. 



의대에 다닐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맨해튼 어퍼 사이드에 위치한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에서 종양학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2001년 9월 11일 아침 뉴스를 보자마자 곧바로 아파트에서 제일 가까운 응급실로 달려갔다. 친구의 집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있었고, 응급실은 그로부터 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병원에는 심장병 전문의, 피부과 전문의, 노인병 전문의까지 온갖 동료 전문의들이 접수처 근처에 삼삼오오 모여서, 테러 현장에서 실려 올 환자들을 도울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먼저 바퀴 달린 들것을 모아 두었고, 부상 정도에 따라 구역을 나눴으며, 부목과 붕대를 준비했다. (p.252)



큰 사고가 일어난 소식을 접하고 자신이 무엇이든 도와야 한다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렇게 사고 현장으로 바로 달려간 친구 얘기가 10장의 처음인데, 이 때부터 계속 눈물이 났다. 당연히 검시관인 주디도 그 때부터 속속 도착하는 시체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일을 맡게 된다. 온전한 형태의 시신이 도착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왼쪽 골반 하나만 도착하기도 하고 또 바스러진 뼈들이 도착하기도 한다. 나는 이것을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너무 마음이 아파서, 도대체 주디는 어떻게 이 일을 견디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해야할 일이니 그것을 업무적으로 잘 처리하던 주디도, 나중에 소방관 두명의 시신이 도착했을 때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9월 11일 이후 나는 최대한 감정의 문을 닫고 전문가답게 처신하려고 애를 썼지만 두 구의 소방관 시신을 보자 더는 참을 수가 업었다. 첫 번째 남성은 어깨 윗부분에 아기 천사 모양의 문신이 있었다. 한쪽에는 티파니, 다른 쪽에는 헨리 주니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1975년과 1978년이라는 출생연도가 적혀 있었다. 바지 주머니에는 소방서 이름이 적힌 서류가 있었다. 서류의 이름과 문신에 새긴 아이의 이름으로 시신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서류는 다름 아닌 퇴직 신청서였다. 헨리는 50대 중반으로 20년이 넘게 소방관으로 일했다. 신원을 확인했지만, 소방 장비에 적힌 이름과 서류에 적힌 이름이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나중에 동료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쌍둥이 빌딩 테러가 발생할 당시, 헨리는 비번이었고 뉴스를 보자마자 가까운 소방서에 가서 다른 소방관의 장비를 급히 걸쳐 입고 현장으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두 번째 시신은 왼손에 아일랜드의 전통 결혼반지 클라다 링(두 개의 손이 하트를 마주 잡고 있고 그 위에 왕관이 씌워진 반지)을 끼고 있었다. 내 남편도 똑같은 반지를 끼고 다녔다. 지갑 속에는 9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들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소방관의 뒤틀린 손에 끼워진 결혼반지를 잡는 순간, 그동안 참고 있었던 눈물이 터졌다. 수술용 마스크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바람에 어떻게든 현장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마스크와 장갑을 벗어 던지고 무작정 뛰어나갔다. 그리고 작업용 텐트 밖에 바리케이드가 쳐진 구석으로 나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p.285-286)




주디를 비롯한 뉴욕 검시관 사람들이 모두 잠을 줄여가며 시신 신원파악에 나서고 경찰과 소방관들이 사건 현장에서 일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돕기 위해 스스로 오고, 구세군은 검시관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해주고, 계속해서 시신을 다루어야 하는 검시관들을 위해 정신과 상담센터도 마련되어 있다. 나는 이 모든 일들이 진행되는 것들이 감사하고 고마웠다. 어디에서 누구든 자신이 하는 일에서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누구도 다치지 말라고, 다쳤다면 치료해야 한다고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구나 싶으니, 자꾸만 눈물이 나는 거다. 누군가는 이 모든 것들을 파괴하려 했지만 또 누군가는 이 모든 것들을 다시 되살리고자 한다. 


사건 현장에 가서 부상을 입고 이마에 멍이 들었다가 그 멍이 점점 눈으로 내려온 주디의 동료가 있다.



신원 확인 작업을 하면서 에이미 젤슨 박사도 많이 치유된 것 같았다. 하루가 다르게 부상이 회복되었지만 여전히 흠씬 두들겨 맞은 듯한 모습이었다. 이마에 있던 시커먼 멍이 점차 눈 쪽으로 내려오면서 일명 너구리 눈이라고 불리는 양쪽안와주위혈종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재미있는 얘기해 줄게요." 어느 날 아침 작업을 위해 가운을 갈아입으면서 에이미가 말했다. "어제 한 경관이 조용히 할 얘기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따라갔더니 너구리처럼 시커멓게 변한 내 눈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당신 눈을 이렇게 만든 놈이 누군지 이름만 얘기하면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라고요. 그래서 깔깔 웃고 이렇게 대답했어요. '오사마 빈 라덴이에요. 잘 부탁해요.' 상대는 별로 재미있어 하지 않더라고요." (p.281)



나에게도 이건 별로 재미없는 농담이다. 그러나 나는 경관이 그녀의 상처에 관심을 갖고 혹시 모를 가정 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을 걱정해 그녀를 도우려 했다는 게 또 눈물나게 고마웠다. 그것은 응당 다른 사람들이 또 경관이 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서는 정말이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으니까. 폭력을 당한 사람을 다시 폭력의 현장으로 돌려보내는 게 그동안 이 곳에서 빈번하게 일어난 일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렇게 여자의 상처에 관심을 갖고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조용히 말하는 경관이라니. 




많은 죽음 앞에서 부정적 감정을 가진 많은 사연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주디가 이 일을 해내는 동안 그녀 주변에는 그녀를 돕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녀의 남편은 전업주부로 그녀가 밖에서 일하는 동안 집에서 아이를 돌본다. 게다가 그녀가 직장을 옮기면 그녀를 따라 옮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일하는 사람들 역시 그녀에게 다정하며 그녀가 앞으로 가야할 길에 축복을 바라준다. 테러가 있고나서 사람들이 모두가 내가 도울일이 없는지 현장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나는 10장을 읽는 내내 울어야 했다.



그녀는 아버지와 다정하게 지내던 딸이었는데, 그런 아버지가 자살을 했고 그것이 그녀에게는 오랫동안 상처이다. 그런 그녀가 만나는 시신들 중에는 당연히 자살사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아버지의 자살 때문에 가졌던 걱정과 상처들을 알고 있기에, 자살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 어떤 말을 전해야 할 지를 안다.



다음 날 피터 클라크의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는 어제보다 더 가슴이 아팠다. 13살밖에 안 된 딸이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며 완전히 무너져버렸다는 거였다. 우연히 가게에 걸린 웨딩드레스를 보았는데 그제야 결혼식장에 자신의 손을 잡고 들어가 줄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 결혼식에도 아버지가 참석하시지 못했어요. 13살 때 아버지가 자살하셨거든요. 그쪽 따님이랑 똑같은 나이였어요." 나는 미망인에게 말했다. "따님에게 자살은 유전병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해 주셔야 해요. 저 역시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충격이 조금 가셨을 때, 자실이 유전되는 건 아닐까 싶어서 제일 두려웠어요. 나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운명이 아닌가 싶었죠. 정말로 그랬어요. 어머니께서 따님에게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반드시 설명해 주셔야 합니다. 자살은 질병이 아니니까요. 똑같은 경험을 했던 의시가 하는 말이라고 전해주세요." 그 말을 끝나자마자 오랜 경력을 지닌 전문가로서의 자세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우리는 함께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나누었다. (p.211-212)



나는 그녀가 유족들에게 들려줬던 그녀의 모든 말들이, 그녀의 모든 생각들이 언제나 잘했던 것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기도 했을 거고 때로는 어떤 식으로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겪어내야 하는 것들일 것이다. 또한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스스로 더 성장하기도 할테고. 



그녀는 이 '죽은 사람'을 다루는 일을 결국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 시선이 나는 무척 좋았다. 



2년간 뉴욕 검시관 사무소에서 검시관으로 일하면서, 총 262구의 시신을 부검했고 그로부터 12년 후에는 총 2,000여구의 시신을 부검했다. 지금까지도 하루하루 인체에 대해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고 있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하고 과학과 의학을 사랑한다. 그리고 내 직업의 비과학적인 부분, 유족과 상담을 하고 경찰과 협업하고, 때로는 증언대에 서야 하는 상황까지도 사랑한다. 부검을 담당하는 의사로서 가장 힘든 역할은 바로 세상을 떠난 사람을 대신하여 말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의사는 연민의 감정을 잊어서는 안 되고, 이를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매일 죽은 자들을 마주하고 시신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 (p.320-321)




이 책의 책장을 덮고 나는 아, 정말 책은 좋구나, 하는 걸 또한번 느꼈다. 내가 책을 읽지 않았다면 검시관이란 직업에 대해 한 순간도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죽음의 모습에 대해서도 몰랐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돕기 위한 생각만으로 달려나갈 수 있다는 것도 읽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 자기 일을 사랑하는 똑똑한 여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어 기운이 났다. 책이야말로 세상에 다양한 사연과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수단이 아닌가. 책 너무 좋아 ㅜㅜ







파티의 해피엔딩은 역시 결혼 발표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바로 연구실 동료였던 카렌 투리 박사의 결혼 소식이었다. 카렌 박사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 참사 당시에 한 경사를 만나 오랜 시간을 함께 일하고 고생했다. 인류학자 에이미 박사가 중간에서 다리를 놓기는 했지만, 두 사람의 로맨스는 주선자의 큰 도움 없이도 자연스럽게 불타올랐다. 우리는 모두 그런 끔찍한 경험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무엇보다 다른 사람과 끈끈한 관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카렌과 경사의 관계는 점점 사랑으로 발전했다. (p.320)

법의학 병리학자, 즉 부검의라는 나의 직업은 지난 10년 동안 TV 드라마에 단골손님을 등장했다. 내가 업으로 삼는 일이 가상의 드라마로 소개될 때마다 나 역시 덩달아 짜릿함을 느꼈다. 강렬한 눈빛의 여자 검시관이 높은 스틸레토힐을 신고 가슴골이 드러나 보이는 의상을 걸친 채로 흐릿한 조명 아래 피투성이가 된 사건 현장에 등장한다. 드라마 속의 부검의는 즉각적이고 완벽한 진단을 내리며, 여기서 나아가 성적인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도는 가운데 동료와 위트 넘치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너털웃음이 터질 때도 있다. 실제 부검의들은 4주간의 수습 기간 동안, 단 일주일만 뉴욕의 살인 현장에 나갈 수 있으며 그것도 경찰서의 사건 조사 전담반이 동행할 때만 가능하다. 또한, 주로 발이 편한 신발을 신고 두툼한 바람막이를 걸치고 다닌다.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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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래시] 페미사이드 같이 읽기
















뉴욕에서 시체 부검을 하는 검시관 '주디 멜리네크'의 책을 읽고 있다. 총상부터 화상, 자살에 이르기까지 죽음의 다양한 모습을 그녀는 맞닥뜨리게 되는데, 거기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남편이나 남자친구로부터 폭력의 희생자가 되어 살해당한 여성들의 시신도 있다. 남성에 의한 여성의 죽음은 비단 대한민국의 것만은 아니었다.


사흘에 한 번씩은 여자를 때려야 한다는 말이 우리에게도 있듯이, 스티븐 킹의 소설을 보노라면, 그들에게도 예전부터 말 안듣는 여자는 때려야 한다는 말이 있더라. 물론 소설속에서는 아내를 때려 숨지게 한 뒤, 남편이 혹독한 환영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그는 자기를 파괴하고, 아내의 죽음을 도운 자신의 아들도 파괴한다.


매일매일 빠짐없이 남성에 의한 여성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읽게된다. 어제도 역시 그런 기사를 마주쳐, 제발 그만 좀 죽여라, 울부짖고 싶었다. 남편이 아내를, 남자친구가 여자친구를, 전 남자친구가 전 여자친구를, 소위 흠모한다는 이유로 연인이 아닌 여자를, 길에서 만난 모르는 여자를, 그렇게 남자들은 계속해서 때리고 죽이고 있다. 매일매일. 남자들은 여자들을 죽인다.




12월 여성학 책 같이 읽기 도서, 《페미사이드》를 어젯밤부터 시작했다. 책 날개의 작가소개를 읽으며 세상에 이런 여자들이 있다고 감탄한 뒤, 나는 이런 헌사를 만난다.






남자들은 끊임없이 죽이고 여자들은 끊임없이 이것을 멈추게 하기 위해 애쓴다. 피해자와 희생자의 편에서 계속해서 이 일에 대해 언급하며 그들의 편이 되어주고,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하려는 여자들이 있다. 지독한 현실을 끝내자고 말을 건네는 여자들이 있다. 그렇다면 나 역시 그들의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연쇄살인을 포함하여 남성에게 여성이 살해당하는 살인사건들을 미디어에서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간에 페미사이드가 간과되어왔다는 사실은 특히 충격적이다. 이러한 살인사건들을 일으킨 여성혐오적 동기들은 미디어에 의해 종종 무시되곤 한다. 미디어에서는 여성들을 비난하거나, 종종 살인자를 짐승이나 동물로 묘사함으로써 인간성 곧 남성성을 부정한다. 언론매체가 여성살해를 다루는 방식은 페미사이드의 성 정치학을 덮어버린다. (서론, p.23)



굳이 영화의 초반에 강간씬을 넣고, 굳이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장면들을 넣으면서, 그러나 그것이'여성혐오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건, 말하면서도 부끄럽지 않나.

얼마전인가 주말에 채널을 돌리다 잠깐 멈추었던 드라마에서는, 남자가 여자 목을 조르는 장면이 나왔다. 내가 채널을 돌렸던 시간은 한낮이었는데(재방송이었을 것이다), 텔레비젼에서 남자가 자신의 양손으로 여자의 목을 조르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에 너무 놀라서,


"엄마, 저건 진짜 아니지 않아? 지금 저게 드라마에서 뭐하는거야?"

"그러게. 왜저러냐?"


미디어에서 여성을 살해한 남성들을 다룰 때, 위의 인용문처럼 그들의 '남성성'을 지워버린다. 그는 남성이 아닌, 정신이상자거나 미친놈 혹은 괴물이 되어 버리고, 그러면 여성혐오 살해 역시 뒤로 감춰지게 된다.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 해결 역시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것은 남성폭력에 다름아니다.



결국 남성이 이상적으로 구성한 여성성과 여성의 행동기준에 맞추어 여성들의 품행은 면밀히 조사되고 결점이 드러난다. 이러한 신화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것은 여성들에겐 '선 밖으로 한 걸음이라도 내디디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라고 읽히며, 남성들에겐 '너는 그녀를 죽일 수 있으며, 그러고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라고 읽힌다.

이러한 메시지는 경찰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여성들을 폭력범죄로부터 보호하고자 제시하는 충고에서도 쉽게 읽힌다. 여성들은 혼자 살지 마라, 동행인 없이(즉 남자 없이)밤에 외출하지 마라, 도시의 이러저러한 지역에는 가지 마라 따위의 충고를 일상적으로 듣는다. 영국에서는 6년 동안, 주간 야간 할 것 없이, 요크셔 리퍼Yorkshire Ripper(1975년부터 5년간 영국에서 13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그 밖에도 7명의 여성을 살해하려 시도한 피터 서트클리프Peter Sutcliffe의 별칭)때문에 웨스트요크셔 전체가 여성에게 안전하지 않은 지역으로 규정되었다. 이러한 충고는 여성들이 갈 수 있는 장소와 사람들 앞에서 취해야 할 행동방식에 제한을 둠으로써 여성을 통제하고자 한다. 공공장소는 남성들의 공간이며, 여성들은 남성들의 허락을 받고 조건부로만 그 공간에 들어갈 수 있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여성이 있어야 할 장소는 집이다. 그러나, 언급되는 일이 거의 없는 사실이지만, 집에서조차 여성들은 안전하지 않다. 핵가족 안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는 집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장소다. (서론, p.29)



밤늦게 다니는 것도 위험하고, 술 마시고 다니는 것도 위험하고, 처음 보는 남자를 따라가는 것도 위험하다고 그렇게나 말하면서, 그러나 여자가 막상 성폭행을 당하면 거기에 대해서는 꽃뱀이라고 의심하며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고 말하는 게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본인들의 입으로 '너 그러다가 큰일나, 늘 조심 또 조심해야지' 해놓고 '나 이런 일을 당했어' 하면, '진짜야? 강간이라니... 진짜 맞아? 너도 원한 건 아니고?' 이렇게 되어버려..


나한테 예쁘게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다니, 이 여자 괘씸해.

나랑 사귀어주지 않다니, 이 여자 괘씸해.

나랑 헤어지려 하다니, 이 여자 괘씸해.

나를 무시하다니, 이 여자 괘씸해.

이런 것들을 이유라고 들고와서 여자를 때리고 죽이는 게 그저 괴물이 하는 일이라면, 지금 대한민국에도 그리고 세계 곳곳에도 괴물이 너무 많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야. 그러나 그들이 괴물이라면,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괴물의 모습을 감추는가. 왜 하필 그 '여자'에게만 괴물의 모습을 드러내는가.



자, 괴롭겠지만 읽어보자.

저는 시작했습니다.


단발머리 님, 퍼론 님, 쟝쟝 님, 하이드 님, jsshih 님, 건조기후 님, 비연 님.

12월도 같이 읽어봅시다!


그리고 이것도 같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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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12-04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정신없어 아직 개시를 못했는데, 저도 오늘 저녁에 시작 예정요!

다락방 2018-12-04 11:21   좋아요 0 | URL
좋아요, 비연님! 우리 함께 12월 열심히 달려봅시다!

단발머리 2018-12-04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가 ‘선 밖으로‘ 나설 때, 분노하고 협박하고 그리고 여자를 죽이죠.
읽기 어려운 책인건 맞는것 같은데, 손에서 뗄수가 없네요.
진실을 직시하는 일은 언제나 고통스럽지만....
우리는 같이 가니까!!!

p.s. 올려주신 동영상 잘 봤어요. 갈 길은 머네요. 미국도 우리나라도....
근데 이 남자 진짜 똑똑하니, 완전 마음에 들어요.

다락방 2018-12-04 15:50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은 벌써 시작하신건가요?
제가 부지런히 따라잡겠습니다! 집에서 이상하게 책만 들면 졸려서 ㅠㅠ
네, 읽는 게 굉장히 고통스러울 것 같지만, 우리 열심히 읽고 또 이야기 나누어 봅시다.

저 남자 참 똑똑하지요? 저도 우연히 보게된 영상이라 처음 보는 남자인데, 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어요. 다른 남자들이 하지 못하는 걸 하고 있네요. 크-

단발머리 2018-12-04 15:58   좋아요 0 | URL
지금 검색해봤더니,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희극배우네요.
전 오늘 처음 본 듯 해요.
내용도 좋고 전달력도 대단해요.
전, 김제동이 생각나네요.
똑똑한 희극배우라고 하면 김제동 밖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8-12-04 16:25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전 헌법 이야기 하는 것만 들어봐서요.
걍 일반적인,이라면 급 아쉬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