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래시] 페미사이드 같이 읽기
















뉴욕에서 시체 부검을 하는 검시관 '주디 멜리네크'의 책을 읽고 있다. 총상부터 화상, 자살에 이르기까지 죽음의 다양한 모습을 그녀는 맞닥뜨리게 되는데, 거기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남편이나 남자친구로부터 폭력의 희생자가 되어 살해당한 여성들의 시신도 있다. 남성에 의한 여성의 죽음은 비단 대한민국의 것만은 아니었다.


사흘에 한 번씩은 여자를 때려야 한다는 말이 우리에게도 있듯이, 스티븐 킹의 소설을 보노라면, 그들에게도 예전부터 말 안듣는 여자는 때려야 한다는 말이 있더라. 물론 소설속에서는 아내를 때려 숨지게 한 뒤, 남편이 혹독한 환영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그는 자기를 파괴하고, 아내의 죽음을 도운 자신의 아들도 파괴한다.


매일매일 빠짐없이 남성에 의한 여성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읽게된다. 어제도 역시 그런 기사를 마주쳐, 제발 그만 좀 죽여라, 울부짖고 싶었다. 남편이 아내를, 남자친구가 여자친구를, 전 남자친구가 전 여자친구를, 소위 흠모한다는 이유로 연인이 아닌 여자를, 길에서 만난 모르는 여자를, 그렇게 남자들은 계속해서 때리고 죽이고 있다. 매일매일. 남자들은 여자들을 죽인다.




12월 여성학 책 같이 읽기 도서, 《페미사이드》를 어젯밤부터 시작했다. 책 날개의 작가소개를 읽으며 세상에 이런 여자들이 있다고 감탄한 뒤, 나는 이런 헌사를 만난다.






남자들은 끊임없이 죽이고 여자들은 끊임없이 이것을 멈추게 하기 위해 애쓴다. 피해자와 희생자의 편에서 계속해서 이 일에 대해 언급하며 그들의 편이 되어주고,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하려는 여자들이 있다. 지독한 현실을 끝내자고 말을 건네는 여자들이 있다. 그렇다면 나 역시 그들의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연쇄살인을 포함하여 남성에게 여성이 살해당하는 살인사건들을 미디어에서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간에 페미사이드가 간과되어왔다는 사실은 특히 충격적이다. 이러한 살인사건들을 일으킨 여성혐오적 동기들은 미디어에 의해 종종 무시되곤 한다. 미디어에서는 여성들을 비난하거나, 종종 살인자를 짐승이나 동물로 묘사함으로써 인간성 곧 남성성을 부정한다. 언론매체가 여성살해를 다루는 방식은 페미사이드의 성 정치학을 덮어버린다. (서론, p.23)



굳이 영화의 초반에 강간씬을 넣고, 굳이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장면들을 넣으면서, 그러나 그것이'여성혐오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건, 말하면서도 부끄럽지 않나.

얼마전인가 주말에 채널을 돌리다 잠깐 멈추었던 드라마에서는, 남자가 여자 목을 조르는 장면이 나왔다. 내가 채널을 돌렸던 시간은 한낮이었는데(재방송이었을 것이다), 텔레비젼에서 남자가 자신의 양손으로 여자의 목을 조르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에 너무 놀라서,


"엄마, 저건 진짜 아니지 않아? 지금 저게 드라마에서 뭐하는거야?"

"그러게. 왜저러냐?"


미디어에서 여성을 살해한 남성들을 다룰 때, 위의 인용문처럼 그들의 '남성성'을 지워버린다. 그는 남성이 아닌, 정신이상자거나 미친놈 혹은 괴물이 되어 버리고, 그러면 여성혐오 살해 역시 뒤로 감춰지게 된다.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 해결 역시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것은 남성폭력에 다름아니다.



결국 남성이 이상적으로 구성한 여성성과 여성의 행동기준에 맞추어 여성들의 품행은 면밀히 조사되고 결점이 드러난다. 이러한 신화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것은 여성들에겐 '선 밖으로 한 걸음이라도 내디디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라고 읽히며, 남성들에겐 '너는 그녀를 죽일 수 있으며, 그러고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라고 읽힌다.

이러한 메시지는 경찰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여성들을 폭력범죄로부터 보호하고자 제시하는 충고에서도 쉽게 읽힌다. 여성들은 혼자 살지 마라, 동행인 없이(즉 남자 없이)밤에 외출하지 마라, 도시의 이러저러한 지역에는 가지 마라 따위의 충고를 일상적으로 듣는다. 영국에서는 6년 동안, 주간 야간 할 것 없이, 요크셔 리퍼Yorkshire Ripper(1975년부터 5년간 영국에서 13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그 밖에도 7명의 여성을 살해하려 시도한 피터 서트클리프Peter Sutcliffe의 별칭)때문에 웨스트요크셔 전체가 여성에게 안전하지 않은 지역으로 규정되었다. 이러한 충고는 여성들이 갈 수 있는 장소와 사람들 앞에서 취해야 할 행동방식에 제한을 둠으로써 여성을 통제하고자 한다. 공공장소는 남성들의 공간이며, 여성들은 남성들의 허락을 받고 조건부로만 그 공간에 들어갈 수 있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여성이 있어야 할 장소는 집이다. 그러나, 언급되는 일이 거의 없는 사실이지만, 집에서조차 여성들은 안전하지 않다. 핵가족 안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는 집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장소다. (서론, p.29)



밤늦게 다니는 것도 위험하고, 술 마시고 다니는 것도 위험하고, 처음 보는 남자를 따라가는 것도 위험하다고 그렇게나 말하면서, 그러나 여자가 막상 성폭행을 당하면 거기에 대해서는 꽃뱀이라고 의심하며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고 말하는 게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본인들의 입으로 '너 그러다가 큰일나, 늘 조심 또 조심해야지' 해놓고 '나 이런 일을 당했어' 하면, '진짜야? 강간이라니... 진짜 맞아? 너도 원한 건 아니고?' 이렇게 되어버려..


나한테 예쁘게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다니, 이 여자 괘씸해.

나랑 사귀어주지 않다니, 이 여자 괘씸해.

나랑 헤어지려 하다니, 이 여자 괘씸해.

나를 무시하다니, 이 여자 괘씸해.

이런 것들을 이유라고 들고와서 여자를 때리고 죽이는 게 그저 괴물이 하는 일이라면, 지금 대한민국에도 그리고 세계 곳곳에도 괴물이 너무 많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야. 그러나 그들이 괴물이라면,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괴물의 모습을 감추는가. 왜 하필 그 '여자'에게만 괴물의 모습을 드러내는가.



자, 괴롭겠지만 읽어보자.

저는 시작했습니다.


단발머리 님, 퍼론 님, 쟝쟝 님, 하이드 님, jsshih 님, 건조기후 님, 비연 님.

12월도 같이 읽어봅시다!


그리고 이것도 같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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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12-04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정신없어 아직 개시를 못했는데, 저도 오늘 저녁에 시작 예정요!

다락방 2018-12-04 11:21   좋아요 0 | URL
좋아요, 비연님! 우리 함께 12월 열심히 달려봅시다!

단발머리 2018-12-04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가 ‘선 밖으로‘ 나설 때, 분노하고 협박하고 그리고 여자를 죽이죠.
읽기 어려운 책인건 맞는것 같은데, 손에서 뗄수가 없네요.
진실을 직시하는 일은 언제나 고통스럽지만....
우리는 같이 가니까!!!

p.s. 올려주신 동영상 잘 봤어요. 갈 길은 머네요. 미국도 우리나라도....
근데 이 남자 진짜 똑똑하니, 완전 마음에 들어요.

다락방 2018-12-04 15:50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은 벌써 시작하신건가요?
제가 부지런히 따라잡겠습니다! 집에서 이상하게 책만 들면 졸려서 ㅠㅠ
네, 읽는 게 굉장히 고통스러울 것 같지만, 우리 열심히 읽고 또 이야기 나누어 봅시다.

저 남자 참 똑똑하지요? 저도 우연히 보게된 영상이라 처음 보는 남자인데, 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어요. 다른 남자들이 하지 못하는 걸 하고 있네요. 크-

단발머리 2018-12-04 15:58   좋아요 0 | URL
지금 검색해봤더니,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희극배우네요.
전 오늘 처음 본 듯 해요.
내용도 좋고 전달력도 대단해요.
전, 김제동이 생각나네요.
똑똑한 희극배우라고 하면 김제동 밖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8-12-04 16:25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전 헌법 이야기 하는 것만 들어봐서요.
걍 일반적인,이라면 급 아쉬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