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하이드님은 올해가 가기 전에 여성주의 책을 몇 권 읽겠노라 하셨고, 거기에 휘모리님은 여성주의 책읽기 모임에 들고 싶지만 일 주일에 한권이 벅차 못하고 있노라 댓글을 다셨더랬다. 그렇다면 우리가 '한 달에 한 권씩 같이 읽기는 어떨까' 제안하니,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해, 알라딘 내에서 소모임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그렇다고 뭐 한 달에 한 번씩 직접 만나 토론이나 발제를 하자는 것은 아니고(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한 달에 한 권씩 여성주의 책을 읽고 그에 대한 글을 쓰는 걸로 대신하고자 한다. 


우선 첫 책은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

















- 읽어야 할 책: 수전 팔루디, 《백래시》

- 기간: 2018년 11월 30일까지

- 참여방법: 1. 말머리에 책제목 달기(예: [백래시] 그건 모두 반격이었다)

            2. 일주일에 관련 글 한 편이상 쓰기(페이퍼, 리뷰, 밑줄긋기, 백자평등)

- 참여자격: 해당 도서를 같이 읽어보고자 하는 누.구.나.



상벌은 정해진 바 없고 강제성도 없이 그저 책읽기에 좀 더 의욕을 뿜뿜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이니 누구나 참여 가능하게 했다. 아무래도 같이 읽으면 혼자 읽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앞으로 읽어야 할 책들은 리스트로 만들 것이고, 혹시 같이 읽고자 하는 책 있으면 추천 바랍니다. 아울러 이 '같이 읽기'에 대해 좋은 의견도 댓글로 받습니다.



12월 도서도 미리 예고합니다. '거다 러너'의 《가부장제의 창조》


앞으로 읽어야 할 책들은 이 글에 리스트로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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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 지음, 윤길순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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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하는 페미니즘- 여성주의 상상력, 반란과 반전의 역사
낸시 프레이저 지음, 임옥희 옮김 / 돌베개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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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팝니다- 상업화된 페미니즘의 종말
앤디 자이슬러 지음, 안진이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2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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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게 여성을 죽이는 법- 광고는 어떻게 생각과 감정을 조종하는가
진 킬본 지음, 한진영 옮김 / 갈라파고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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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성주의 책 같이 읽기 시작합니다.
    from 마지막 키스 2018-10-22 08:35 
    관련 글은 먼댓글이나 링크로 넘어가시면 볼 수 있습니다. <마이 리스트>로 썼더니 서재에 노출이 안돼서 그만..☞여성주의 책 같이 읽기☜
  2.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1월 책추천 받습니다.
    from 마지막 키스 2018-12-11 12:25 
    현재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12월 도서는 《페미사이드》 입니다. 1월에는 1월의 책을 정해야 하는데요, 어떤 책이 좋을지 추천 바랍니다. 현재까지 제가 생각해둔 책들과 또 추천 받은 책들은 이러합니다. 새로운 책 추천이어도 좋고, 이 중에서 어떤 게 좋겠다 하는 의견도 좋습니다. 아직 페미사이드 초반 읽고 있지만, 우리는 미래를 준비해야 하니까요. 1월의 도서 추천 받아요. 저는, 이 책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한 달 이란 시간이 있으니, 이 정도
 
 
 















이 책은 책을 사랑하고 책 읽는 행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요소가 아주 많은 책이다. 저자가 얼마나 책을 사랑하는지 한 줄 한 줄에서 그 애정이 뚝뚝 떨어진달까. 나는 아마 직장을 관두고 책읽기에 몰두한다 해도 저자만큼 많이 또 깊이 읽지는 못할 것이다. 게다가 필사도 한다는데, 그러니 읽는 책들을 자기만의 것으로 소화하기가 더 쉬웠을 테다. 그런 사람에게서 나온 책에 대한 글, 책 읽기에 대한 글이니, 책에 대한 책을 원하는 사람들이 반겨 읽을 만한 책이 아닌가. 부끄럽게도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도 이 책에 인용되어 있어, 저자가 정말 아주 다양한 분야를 읽는구나 생각도 했다. 어휘력도 상당한데, 내가 이날까지 독서해오면서 알지 못했던 단어들이 이 책에는 잘만 나와 있더라. 각주가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단어들이 수두룩. 아마도 깊이 있게 책을 읽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깊이 읽기 다양하게 읽기. 이 저자는 그 모든 걸 갖춘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남자 작가의 한계' 같은 걸 느꼈다.

이쯤되면 나는 '남자들은 여자의 신체를 질투한다'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약자의 편에 서고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저자임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넘기며 반원을 그리는 모양을 '어머니 젖가슴'에 비유한다. 어머니 품에 안겨 위로받던 기분을 책 읽으며 느낀다는 글을 쓰면서 표현한건데(책이 나를 위로한다는 뜻은 알겠다), 일전에 존 스타인벡도 《분노의 포도》에서 산봉우리였나..젖가슴에 비유하던데.. 둥그란 거 그냥 젖가슴으로 쓰는 거.... 너무 상상력이 빈약한 것 같다.

게다가 이 책에서 저자는 '한 사람을 내 관심의 자궁에 오래 품어야만 그에게 알맞은 책 선물이나 추천이 가능하다'고 한다. 왜 본인에게 있지도 않은 자궁을 가져올까? 왜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굳이, 부러, '자궁'에 빗댈까? 남자들 자궁 너무 갖고 싶나? 나는 책을 내는 행위를 '자식을 낳는다'고 표현하는 것도 거슬린다. 예전에 문희준은 라디오에 나와 앨범 한 장 내는게 자식 낳는 거 같다고 하던데, 자식 낳는 거 세상 부러운 행위인가? 자식 낳아봤는가? 그래서 책이든 앨범이든 그렇게 자식에 갖다 대는거야? 


SF 소설을 쓰라고 하면 대부분의 남자작가들이 그렇게나 섹스 로봇 얘기를 쓴다는데, 머릿속에 그냥 여자 신체, 여자와의 섹스 이것 밖에 없는 것 같다. 작가들이 뭐 특이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남자들이 다 그런데 작가들은 단지 그걸 글로 써내는 것 뿐인 것 같다.


미래에는 우리가 어떤 모습일까?

섹스로봇하고 섹스할 수 있어!



너나할 것없이 섹스로봇 얘기만 해대는데, 너무 다 거기서 거기잖아? 상상력이 발휘되는 지점, 비유하고자 하는 것들이 어쩌면 그렇게 다 자기들이 성적대상화 시키고 물화 시키는 여성의 신체나 여성의 신체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섹스인걸까? 너무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다.



너무 많이 보고 접해서 그런 것 같다. 너무 많이. 세상에 태어나 남자라는 성별로 살아가면서, 여자가 성적대상화 되는 걸 너무 많이 봐서, 너무 많이 경험해서. 여자가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물화 시켜서, 그래서 뭘 하든 가져와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너무 익숙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안되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여성의 신체를 마치 자기것인듯 가져오지 말고, 여성의 고통을 자기 것인듯 굴지말고, 여성이 섹스할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때, 한국 남자들이 쓸 수 있는 글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글을 쓸 수나 있을까? 김훈은 자신의 책에서 어린 여자아기 기저귀 갈아주면서도 저 안은 따뜻할 것이다.. 같은 말을 해대는데, 여성의 신체, 여성과의 섹스를 제외한 채로 한국 남자작가들은 글을 쓸 수 없는걸까? 글을 완성했다면 여자의 신체가 나오는 부분은 의식적으로 들어내고 살아남는 부분을 공개하는 게 그들이 앞으로 계속 문학을 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그런 거 들어내고 남는 게 있다면 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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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10-21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의 신체에 대한 이런 지나친 기대와 환상이 여성의 신체에 대한 멸시와 같은 선상에 있다고, 전 생각해요.
성녀이거나 마녀이거나. 완벽하게 순결하거나 철저하게 섹시하거나.
자궁을 갖고 싶냐,는 다락방님의 질문이 핵심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전에 정희진쌤도 여성의 가슴이 성애화의 중심이 된 건 남성들에게는 가슴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던게 기억나요. 정확히는 남자와는 구별되는 형태 때문이겠죠.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는 인류 초기 사회에서 ‘여성‘과 ‘여성의 생명력‘에 대한 사람, 남자들의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동경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쩜쩜쩜.

다락방 2018-10-21 17:58   좋아요 0 | URL
여성의 신체에 대한 이런 지나친 기대와 환상이 여성의 신체에 대한 멸시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 혐오인 것 맞죠. 그렇게 함으로써 또 여자들을 그 환상에 부응하는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로 나누기도 하고요. 너무 이상하잖아요. 여자 작가들은 글을 쓰면서 남성 신체를 빌려오지 않는데, 남자들은 마치 제것인마냥 가져와서 제맘대로를 써대니 말예요.

지나친 동경과 질투 같은 것이 여성을 혐오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같은 성별들이 저지르는 숱한 범죄에 대해서는 내버려두면서도 여성을 김치녀,된장녀,맘충으로 부르고들 있으니까요. 어떤 하나의 나쁜 점, 그것이 실제로 나쁘과 안나쁘고와는 상관없이 여성 한 개인의 어떤 점들을 지적하며 여성들을 모두 ‘그런 여자‘로 만들어 버리죠.

요즘 남자 작가들 책 읽으면서 턱턱 걸리는 걸 보면(고전이라고 다를 바 없고요), 이 사람들은 이렇게 여자들을 호명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가 없는가 싶더라고요.

이바구 2018-10-20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 작가의 책이나 이 책이나 직접 읽어보지 않아서 그 정도를 잘 모르겠지만 많은 작가들은 여성에 대한 멸시가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 시초 즉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여성의 신체에 빗대어 표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최근의 사회 현상처럼 무조건적인 남녀간의 성대결로 안봤으면 좋겠네요

다락방 2018-10-21 18:03   좋아요 0 | URL
저는 남녀간의 성대결로 보지 않습니다. 남녀간의 성대결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저는 이것이 일방적으로 남성이 여성을 혐오하고 있는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책에서 작가가 여성을 혐오하기 ‘위해‘ 이런 식의 표현을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너무 자연스럽게 이런 비유에 익숙해져있을 뿐이죠. 그 점을 남성작가의 한계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Jeanne_Hebuterne 2018-10-24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게 컴플렉스로 작용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어요. 물론 남자들에게 직접 물어보면 아니라고 말하던데, 진실은 저너머에!

다락방 2018-10-24 09:52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생각을 했어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 자궁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컴플렉스로 작용하는건가..하고 말이지요. 그래서 자꾸만 말을 해대고, 그래서 자꾸만 그걸 가지고 있는 여자를 깔아뭉개고 그러는 것 같다고 말이지요. 그 괜한 열등감과 질투심을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은오 2023-02-24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거 읽다가 다락방님 책 인용한 구절 보고 혹시 읽으셨을까 하고 찾아왔어요!! 그리고 본문 진짜 다 공감이요 ㅋㅋㅋㅋ 여자 신체부위가지고 비유하는거 나올때마다 아 졸라 깬다 짜증나네 하면서 읽었어요. 그리고 저는 남작가들이 가슴을 굳이 “젖가슴”이라 하는게 왜이렇게 싫은지 ㅠㅠㅠ표준어라한들 너무 싫다 아악

그리고 그 구절 넘좋더라구요. 소설 안읽는 사람한테 들이밀고 보여주면 그사람에게도 소설욕이 생길것만 같은 ㅋㅋㅋ

다락방 2023-02-25 12:35   좋아요 1 | URL
저는 위에 본문에도 썼지만 둥그런 것들 보면 여자 젖가슴만 떠올리고 말하거나 글 쓰는게 너무 한계로 느껴지더라고요. 상상력이 고작 거기에서 멈춰 버리는 한계요. 다른건 전혀 생각을 못하는. 그건 젖가슴도 마찬가지고, 무언가를 품을 때 자궁에 대는 것도 마찬가지고 ㅋㅋㅋㅋ 분노의 포도에서였나, 땅을 트랙터로 일구는 거 강간으로 표현하는 뭐 그런 것도 있었어요. 여하튼 그런게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하는건지, 뭘 보면 그냥 여자 신체나 섹스로만 보이는 것도 너무 별로고요. 그런 사람들이 깊게 생각한들 그 깊이는 도대체 얼마만큼일 것이며.. 굳이 젖가슴이라는 것도 어처구니 없죠. 여자들은 남자들 애기할 때 좆고추라고 안하잖아요. 전 여성혐오도 혐오지만 둥그런거 다 젖가슴.. 이러는거 진짜 그냥 한계로 느껴져요. ㅎㅎ

은오 님 바닷가 갔다가 돌아왔어요? 바다는 잘 있던가요?

은오 2023-02-25 22:0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좆고춬ㅋㅋ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휴...맞아요, 그렇습니다.
바다는 잘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 시집은 잘 있지 않습니다. 다락방님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이런게 시라면 난 시를 읽지 않으리ㅠㅠ 하다가 선물해주신 시집 읽으려고요!!!💕

다락방 2023-02-25 23:29   좋아요 0 | URL
은오님 럽 💕💕💕💕💕

은오 2023-02-26 02:22   좋아요 0 | URL
꺄 😆💕💕💕💕💕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글로리아 스타이넘 지음, 양이현정 옮김 / 현실문화 / 200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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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만난 친구는 요즘 독서를 하지 않고 있다면서 '올해가 가기 전에 《안나 카레니나》혹은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완독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안나 카레니나를 권하면서, 그 책을 읽으면 앞으로 하게 될 독서에 많이 도움이 된다, 그 책이 배경지식이 되어준다, 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독서가 얼마나 좋은지를 다시 한 번 말했다.


"책 읽는 거 너무 좋지 않아? 계속해서 읽다보면 그 책들이 쌓여서 내 배경지식이 되고, 그 배경지식을 가진 채로 책을 읽으면 기존과는 다른 것들이 보이고 또 생각하게 돼, 사고의 확장을 느낄 수 있는거지. 너무 좋지?"



페미니즘 책을 읽는 것은 그런 독서의 장점에 몇 가지가 추가된다. 세계 각지에서 어느 때고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 또 활동을 해온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한껏 힘이 나기도 하고, 기존의 내가 가졌던 잘못던 생각에 대해 반성하게도 해준다. 무엇보다,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싫더라' 하는 것들에 대한 답도, 페미니즘 책에서 찾을 수 있다. 그간 페미니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얼마나 많이, '아 그 때 내가 그래서 그런거구나' 하게 되는지 모른다. 나는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라고 말하면서 개념녀 코프스페 하는 대표적인 여자사람이었고, 그렇게 나 자신을 남성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했으며, 지금이라면 너무 끔찍했을 발언들도 해왔던 터다. 하나하나 그런 과거의 일들이 생각날 때마다 얼마나 내 가슴을 치는지 모른다. 무지했어, 나빴어. 많은 경우 무지는 독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포르노를 보지 못하겠다고 얘기해왔었다. 포르노에는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 그 당시의 내가 포르노를 보지 못하는 이유라고 생각해왔다. '어쩐지 싫고, 에로틱하게 나를 충동질하지 않는' 이유가, 그들 사이에 '스토리가 없어서인가' 보다 라고 생각한거다. 확실히 그저 남녀가 벗고 그저 육체적 관계만을 보여주는 영상들은, 로맨스 영화에 비해서 그 재미도 떨어졌고, 재미가 뭐람, 대체 이걸 왜 보고 있어야 하는걸까? 라는 의문을 갖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런 내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이 책,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을 읽으면서 나를 포함해 다른 많은 여자들이 포르노를 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알게 됐다.



'포르노그라피'라는 말은 그리스어 '포르네'(매춘부나 여자 포로)와 그래포스(서술, 묘사)를 합친 것이다. 그러므로 포르노그라피의 언어적 의미는 '성을 사는 것을 묘사한 것'이며, 권력의 불균형, 성노예화를 함의한다. 또한 다른 사람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묘사하는 것도 포르노그라피의 정의에 포함된다. (p.104)



간단히 말해 포르노그파리는 섹스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포르노그라피는 권력의 불균형에 관한 것이다. 권력의 불균형은 섹스가 공격의 한 형태로 이용될 수 있도록 하고 또 그렇게 이용되는 것을 필요로 한다. (p.105)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위험을 느끼는 여자들과 남성이 가해자인 것을 보면서 스스로의 품격이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남자들 앞에는 긴 투쟁이 기다리고 있다. 남자아이들이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하기 위해 여성을 지배하거나 정복해야 한다고 믿도록 키워지는 한, 어떤 형태로든 포르노그라피는 존속할 것이다. 그리고 성공하기 위해서, 또는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서 여자의 복종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에게 유리한 사회가 지속되는 한 포르노그라피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p.117)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포르노는 에로틱과 다른 것이라고 이 책에서 구분지어 주고 있다. 우리가 포르노속에서 보았던 발가벗은 남녀의 움직임은 그러니까 '섹스가 아.니.었.다.'. 나는 포르노에 대한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글을 읽으면서 어쩐지 울고 싶어졌다. 이것봐, 내가 괜히 싫어하는 게 아니었어. 어쩐지 눈물이 나지 않는가.



영화《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속의 '그레이'는 상대를 때리면서 섹스를 하는 사람이다. 순진했던 아나스타샤는 그레이를 사랑해서 그레이가 하자는 대로 하기는 하지만, 어느 날 그가 가죽 벨트로 엉덩이를 때렸을 때, 울면서 그에게 말한다.


'이게 당신이 원하는 거야?'


나는 때리면서 혹은 맞으면서 섹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냥 섹스는 '지루하니' 가끔은 그렇게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얘기들을 종종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너무 궁금하다.



상대와의 섹스가 '왜 지루할까'?

지루한 섹스를 왜 할까?

왜 '사랑하는데' 때리고 맞으면서 그걸 즐겨야 할까?



사랑하면 쓰다듬어주고 예뻐해주기도 시간이 부족한데, 사람이 살아봤자 백년인데, 거기에 왜 굳이 왜 때리고 맞는 시간이 포함되어야 할까? 예뻐해주기도 시간이 모자라 안타까운데? 나는 섹스중에 맞고 싶지 않다. '더한 재미'를 보자며 섹스중에 나를 때리고자 하는 것은, 내게는 폭력이고 두려움이다. 내게는 두려운 이 폭력이, 포르노를 수시로 보는 많은 남자들에게는 '섹스중의 재미'가 될 수 있다는 데에서 권력의 불균형이 온다. 그러므로 내가 '맞기 싫다'고 내 의사를 표현할 때 나는, '자극적이지 않고 재미없는 순진한' 여자가 되고야 만다. 나는 폭력이 싫은 것 뿐인데. 당신이 나를 때리는 순간을 나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인데.




이 책은 전체적으로는 아주 온건하다. 서문에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아직까지 이 책이 읽히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우며, 이 책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책이 되기를 바란다고 적고 있다. 나는 이미 아주 멀리 와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이 책이 온건하며 또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수시로 느꼈다. 특히나 이 책의 한국어 출간을 축하하는 '현경'의 글은, 2002년에 쓰여진 걸 감안해야 겠지만, 너무 후졌다. 50대의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젊어 보이고 아주 늘씬한 페미니스트라고 칭하고 있는 것이다. 아아, 아니에요, 예쁜 페미니스트가 필요한 게 아니에요. 축하하는 글을 읽고 잠깐 이 책을 읽지 말아야 하는걸까, 나에게 지나치게 온건한 거 아닌가 싶었지만, 이것은 나의 자만이었다. 나보다 앞서 페미니스트였으며 왕성한 활동을 했던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수시로 나는 뒷통수를 때리는 듯한 느낌을 받고 또 시야가 한층 넓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트랜스 젠더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는 한참이나 생각 속에 머물러야 했다. '앨리스 워커'와 ''린다 러블레이스'와의 인터뷰를 보면서는, 여자들은 계속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해야 할 말을 하고 있었구나, 새삼 생각했다. 나는 '린다 러블레이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보고서도 그녀를 백프로 신뢰하지 않았던 것 같다. 수시로 과거를 반성해야 했고, 또 수시로 '내가 괜히 그런 게 아니었어'라는 생각도 했다. 내가 한국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고 했을 때 왜 한국영화 무시하냐는 말도 더러 들었었는데, 그래서 흥행한 한국 영화를 보려고 하면 끝까지 보고 있기가 너무 힘들었다. 나는 그것들이 지나치게 폭력적이며 여자를 물화 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살아오면서 느껴지는 '촉'이라는 것이, 이제는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바니걸'로도 위장 취업해 일을 하고, 그 안에서 얼마나 여자들이 성적대상화 되고 물화되는지, 노동조건은 얼마나 취약한지에 대해서도 기사를 써냈었다. 그 안에서 그 일을 체험하는 것은, 하이힐과 꽉 조이는 옷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는데, 생생한 목소리들을 들으며 그것들을 겪었다는 것이 대단하고 또 고맙게 느껴졌다. 누군가가 이런 일들을 진작부터 해오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나는 어쩐지 부끄러워진다.



낙태와 할례 그리고 여성이 쓴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출판까지,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이 책에서 다뤄야 할 중요한 것들을 다루고 있다. 중간중간 '아, 이건 좀 시대에 뒤떨어졌지, 더 나아가야지' 할 때 조차도, 아마 그 당시에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지금! 계속 쓰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고 더 과격해져야 한다. 더 거칠어져야 한다.












분노는 행동을 위한 에너지를 일으키는 배터리와 같다. (p.23)

훌륭한 정치가를 뽑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좋은 책이 계속 출판되도록 열성적으로 운동을 벌일 필요가 있다. 비평가와 학자들은 안전하게 먼 나라의 작품들로 명작의 전당을 채우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네트워크와 출판사를 만들어내고 기존 질서를 바꾸기 위한 압력도 가해야 한다. 실제로 현재 많은 페미니스트와 다른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하고 있다. (p.182)

예전에 내가 갖고 있었던 남성우월주의적 편견을 생각해 보면, 그 편견 안에는 여성에 대한 경멸, 심지어 나 자신에 대한 경멸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사회에서 하등인간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 겪는 가장 가혹한 처벌이라 할 수 있다. 사회는 우리를 세뇌하여 우리 스스로 열등하다고 믿게 만든다. 설사 우리가 사회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다 해도 자신은 다른 여자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여자들과 어울리지 않으려한다. 열등한 집단이 아닌 우월한 집단과 동일시하려는 것이다. (p.219)

사실상 백인 남자들의 처벌 방식 중 가장 많이 애용되는 것은 조롱과 인신공격이다. 자기 주장이 강한 여자가 미모를 가지고 있거나 젊다면, 뒤에 든든한 남자가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런 여성이 성공하면 아마 남자 상사와 잠자리를 같이 했을 거라고 판단한다. 만약 늙은 여성이나, 남성의 기준으로 볼 때 매력적이지 않은 여성이 힘있는 행동을 하면, 남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해 복수하는 거라고 말한다. 남성의 부속물이 아닌 완전히 성숙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 행동하는 여성은 더러운 농담의 밥이 된다. 조롱은 기성 체제를 수호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첫 번째 무기이고 더 심한 공격이 그 다음에 이어진다. 그런 여성에게는 더욱 더 자매애가 필요하다.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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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카'는 몇 해전에 남편과 이혼했다. 아이 둘과 함께 살면서 정해진 기간에는 남편에게 가 아이들을 맡기고 돌아오는데, 어린시절 자신이 즐겨가던 해변가에 아이들과 함께 갔다가 거기서 해골을 발견하게 되어 경찰에 신고한다. 그 일로 알게된 경찰 '에릭'과 만나 함께 술을 마시는데, 이런 대화를 한다.







그러니까 무려 '경찰'씩이나 되는 에릭이 '쫓겨났다는 이유로 아내와 자식을 살해한 남자'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거다. 자신이 쫓겨났기 때문에. 울리카 역시 남편 '안데르스'와 헤어졌기에 남편에게 무기가 없음을 다행스레 생각한다. 또한 자신 역시 헤어졌지만 자신이 그렇게 전남편과 아이들을 총으로 쏠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이해를 못해는 울리카에게, 심지어 '경찰'인 에릭은 '니가 여자라서 이해를 못하는 거'라고 얘기하는 거다. 자신과 같은 남자들에게 그 일은 너무나 큰 일이라고.


그래서 아내와 아이들을 쏘는 걸 이해한다고?? 와, 경찰이라니, 가해자인줄. 무슨 경찰이 이렇게 아내와 아이를 쏘아죽인 남자에게 이입을 하지?? 이입할 상대가 따로있지. 어째서 이런걸까? 이 소설은 '스웨덴' 소설인데, 스웨덴에서도 역시 아내를 죽이는 남자,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에 대해 남자들이 감정이입하는 건 똑같은 건가? 공감능력 맨날 좆도 없다면서 가해자한테는 이입 졸라 잘해주시네.

애시당초 왜 아내가 남편과 살고싶어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다. 관심이가 없다고 한다 이들은...


이 소설을 읽다보면 이런 대화에서도 그렇고 '울리카'가 꼴페미가 될 확률은 매우 높아 보인다. 이혼한 후의 그녀를 보자.



남편은 '그 정도로 나쁘지 않다'고 하는 상황에서 여자는 이혼을 결심하는 거다. 이혼하고 난 후에 그의 뒤치닥꺼리를 하지 않게 되어 좋다고 말하잖아? 그러니 그녀는 여자로서 살아가면서 결혼하면 남편의 뒤치닥꺼리를 해야한다는 걸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고, 또한 경찰인 '남자'와 대화하면서, 그들이 '헤어지자고 하면 살인을 저지르는 남자 가해자'에게 이입하고 있다는 것 역시 경험하게 되었다. 이론이 아닌, 자신의 삶이 이렇게 부조리로 가득 차있는데, 그런데 작가는 이 소설을 쓸 당시에 아직 페미니스트라는 것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소설의 뒷부분에 어린 시절 알게된 남자와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남자는 페미니스트를 '가만있는 남자에게 시비거는 여자'로 보고 있었던 거다. 자신이 하게됐던 모임에서 유일하게 토론하려고 했던 사람이 페미니스트였는데, 그 여자가 공격한 대상은 그 모임에서 얌전히 가만 있던 남자라는 것... 그 대화속에서는 '어휴, 페미니스트 들이란..'같은 시선이 느껴진달까.




물론, 이 소설은 페미니즘에 대해 얘기하는 소설이 아니다. 북유럽 신화를 가져와서 어린 시절 있었던 미스테리한 사건에 대해 풀어가고 또 그 때의 사랑과 동경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인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이 작가가 신화와 미스테리를 잘 섞었구나, 라고 감탄하는 게 먼저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맞물리는 지점은 '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하고 놀라웠으니까. 그러나 책을 다 읽고 책장을 엎으면서 나는


'이 작가는 페미니스트가 아니구나, 적어도 이 소설을 쓸 당시에는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된 것이었다. 오, 조가비 해변이여, 하필 지금 니가 나를 만나 고생이 많다.....





울리카는 어린 시절에 만난 동년배 친구 '안네 마리'에게 호감을 느끼고 또 그녀를 동경하다가, 그녀와 친해지게 된다. 그 일은 그녀에게 너무나 기쁘고 벅찬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 울리카는 이렇게 표현한다.



세상에는 우리에게 오는 열쇠를 지닌 사람이 있다. 우리 안에 있지만 우리가 한 번도 들어가지 않은 방을 열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과 우리는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성별이 같고 연령도 어느 정도 맞으면 사랑에 빠진다. 다른 경우에는 마법에 걸린다거나 종속된다거나 표현이야 어떻든 하여간 그런 상황이 되지만, 사실은 두 경우 모두 똑같다. 나에게 안네 마리는 이런 열쇠를 지닌 사람이었다. 내가 처음 만난 사람. 그래서 그녀는 나에게 그다지도 큰 의미가 있었다. 반면 안네 마리에게 나라는 의미는 그 정도로 크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사라질까봐 늘 두려웠다. (p.84)




어쩌면 운이 좋았던건지, 혹은 좀 더 늦게 만나는 게 나았을지 모르겠지만, 울리카는 '안네 마리'라는 '나에게 오는 열쇠를 지닌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은 너무 특별하고 큰 의미를 지니게 되는데, 나는 이런 사람을 우리 모두가 인생에서 언젠가 한 번쯤은 만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울리카는 어린 시절에 만났지만 누군가는 이십대에 또 누군가는 삼십대에 또 누군가는 칠십대에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나에게 오는 열쇠를 지닌 사람이, 본인이 열쇠를 쥐고 있다는 걸 설령 알지라도, 그러나 그 사람에게 가는 열쇠는 내가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니가 나에게 오는 열쇠를 가졌다면, 나 역시 너에게 가는 열쇠를 가져야 함이 마땅하지 않는가. 그래야 딱 들어맞잖아. 너가 내 짝이고 내가 니 짝이고. 그런데 인간사가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고 명쾌하지도 않다. 당신은 나에게 오는 열쇠를 가졌고, 나는 저 사람에게 가는 열쇠를 가졌고... 그래서 당신은 나에게 너무나 큰 의미인데, 나는 저 쪽에게 너무나 큰 의미...아 빌어먹을 시츄에이션 이잖아. 인간사가 이렇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은 나에게 오는 열쇠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서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나 상대가 사라질까봐 늘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에게 그다지도 큰 의미'인 사람에게 '나는 그정도로 그 사람에게 크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는 건 너무나 시리지 않은가. 이건 드러낼 수 없는 아픔이고 드러낼 수 없는 가슴 시림이다. 한 겨울에 속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단지 두꺼운 외투 하나만 입은 느낌이랄까. 외투로 감싸지만 그걸 벗기면 시린 가슴...



인생....

열쇠.......

큰 의미...........





울리카는 서른 일곱이 되어 우연히 안네 마리의 오빠와 재회하게 된다. 당연히 그 역시 성인이 되었고, 조금 배가 나왔다. 이들은 십대에 해변가의 텐트 안에서 서로를 안았던 사이, 울리카에게는 쉽게 말해 첫남자.. 가 되는 것이다. 이들이 삼십대에 우연히 재회에 2박3일을 같이 있게 되는데, 서로의 변한 모습에 알아보지 못하기도 하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 얘기한다. 빵과 차를 함께 먹다가 어느새 그것은 와인으로 바뀌게 되는데, 나는 이들의 와인과 또 대화, 그 넓은 집에 둘만 있는 걸 보면서 '자지마...'하고 불안해졌다. 울리카야 이혼해서 싱글이지만 남자는 '아내가 사흘 뒤에 데리러 올거야' 라고 말했으니까. 그렇지만 이들이 잘 거라는 건 너무 뻔한 일이었다. 한 번 잤던 사이가 다시 자는 건 결코 어렵지 않은 일이고, 물론 그것이 십대 시절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잘 모르겠다.


사람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도덕적으로 살 순 없다. 머릿속으로 분명 '해서는 안돼'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일을 하게 되는 경우들이 더러 있다. 나만해도 수시로 집앞에서 무단횡단을 하는 통에 딱지를 끊기도 했으니까. 그러니, 나 역시도 울리카의 상황이 되면 거부하지 못하고 오히려 내가 원해서 그와 자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에게 아내가 있다는 걸 아는데... 알지만, 그런데 내가 막 너무 좋아했던 남자고 그러면 또 '에라이 저질러버려' 이러면서, '아 몰라 이 다음은 나도 모른다, 될대로 돼라' 이러면서 잘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내가 아내의 입장이라면.... 내 남편이 일한다고 나갔다가 우연히 옛날 여자 만나서 한 번 자고 들어왔다고 하면, 물론 내가 모르게 그렇게 하긴 하겠지만, 그런 일이 잇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돌잖아... 내가 그걸 알고나서 쿨하게 '오! 그래, 맞어, 이해해, 옛날 애인 만나면 한 번 잤던 사이니까 그럴 수 있지, 나라도 그랬을 거야, 괜찮아' 할 수 있을까? 아 시부럴 .... 짜증이 샘솟는데..... 그런데 내가 너무 사랑했던 남자를 우연히 만났는데 아내가 있다고 말하면 나는 또 입술을 꽉 깨물고 '너는 아내가 있으니까 겁나 자고 싶지만 안잘거야' 이렇게 할 수 있을까.....내적 갈등 진짜 오지게 하다가 아아, 현재를 즐기자... 또 막 이렇게 되면.... 아 힘들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음...

사는 건 고민의 연속이고 갈등의 연속이고 고통의 연속이어라.


걍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않게, 마주치고나서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없으니까, 거리를 걸을 때는 땅바닥만 보면서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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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는 동탄에 다녀왔다. 친구가 개인적 사정으로 동탄에 호텔을 잡아 하루 지내게 되었는데, 너 오지 않을래? 라고 내게 물었던 것. 나는 갈게~ 하고 자 가만있자, 동탄엔 어떻게 가야하나.. 차편을 알아보는데, 친구는 내게 '너는 수서역에서 SRT 타는 게 나을 수도 있어' 하길래 오, 그래? 하고 알아보니, 수서역에서 동탄역까지는 14분밖에 안걸리는 것이었다! 오오. 그렇게 수서에서 SRT 를 타고 동탄역에 내려 또 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하면서, 아아, 나는 왜 동탄에 오게 되었는가, 내가 동탄이란 곳에 오게될 줄 예전엔 미처 몰랐지, 낯선 곳에서 낯선 버스를 타고 낯선 거리에 내려 스맛폰의 표시된 지도를 따라 걸으면서, 아아, 나의 역마살이란 무엇..왜 가만있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는가... 하게 되었다.



친구를 만나 호텔에 짐을 풀고 잠시 쉰 뒤에 호텔 근처에 있는 공원에 갔다. 말이 공원이지 산과 연결되어 있어, 초행인 우리는 공원에 간다고 간것이지만 산을 타고 있었다. 그래봤자 낮은 산이어서 시간이 걸린 건 아니었지만, 예상외로 산길에 난 계단을 오를 때에는 힘들었어. 계단은 너무 힘들어..


그렇게 친구와 그 밤을 함께 보내고 다음날 아침 까페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친구의 크레마속 책을 살펴보았다. '박총'의 《읽기의 말들》을 보면서 당장 읽고 싶어졌고, 머릿속으로 이시간 이후에 내가 이 책을 살 수 있는 동선에 대해 생각했다. 수서역에서 내려 잠실까지 갔다 가기에는, 와인 한 병과 책 세 권이 들어있는 가방이 너무 무겁다. 그렇다고 집에 가방을 두고 다시 잠실까지 나가기에는 멀고 지친다. 그래, 그렇다면 동네에 있는 도서관에 가 책을 대출하자! 역시 나는 짱이야, 천재야, 하고 강동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책이 대출가능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래, 그러자!



그러나 집에 돌아온 나는 너무 지쳐서, 일단 엄마랑 함께 먹으려고 사온 빵을 흡입한 뒤에 양치를 하고 잠에 빠져들고야 만것이다. 아, 나여... 일어나니 밤 여덟시였고...... 서점에 가기도 도서관에 가기도, 그러니까 그냥 집에서 나가기도 너무 늦었어...나는 읽기의 말들을 포기한다....그러나 내 크레마에 내가 사둔 기억이 전혀 없는, '은유'의 《쓰기의 말들》이 있다. 오, 나여... 이건 언제 산거니? 어떻게 이 책을 사게 되었니????? 그래, 읽기의 말들 대신 쓰기의 말들을 한 번 읽어보자꾸나! 그렇게 나는 어젯밤에 이 책을 다 읽고잔 것이다. 



















책의 구성이 얼마전 읽은 '바바라 애버크롬비'의 《인생을 글로 치유하는 법》과 닮아 있었다. 다른 이의 쓰기에 대한 말들을 가져오고, 거기에 자신의 에세이를 덧붙이는 식. 딱히 내게 새로울 건 없었고, 글이 짧게 구성되어져 있어 크레마로 읽기에 더할나위 없이 잘 맞았다. 이 책은 평점이 매우 높은 편인데, 나로서는 왜그렇게까지 높은지 좀 의아하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이 책에서 가져갈 게 많았는가 보다.


책 속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이 말은 분명한 사실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런데 아주 사소한 그러나 기본적인 의문이 떠올랐다. 저 문장에서 남자와 여자의 성별을 바꿔도 무리없이 참인 문장인데, 그렇다면, '책을 안읽는 사람'은???


내 경우엔 책을 읽고 책을 좋아하고,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찾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니, 늘 그렇다. 그것은 책 속 등장인물이 그를 닮아서일 경우도 있지만, 에피소드가 우리의 역사와 닮아서일 수도 있고, 그저 그 자체만으로 너무 재미있거나 아름다워, 그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해 그를 떠올릴 수가 있다. 그러니 저 문장은 저 문장 그대로 순수하게 참이다. 그런데, 책을 안읽는 사람은?


책을 읽는 나는 내가 읽는 모든 책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찾아보게 되는데, 책을 안읽는 당신은, 나를 어디서 찾지? 설마....



안찾나?




책읽는 내가 억울하다... (으르렁)




일요일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 친구와 나란히 누워, 나는 친구에게 기본적인 트위스트 동작을 알려주었다. 누워서 할 수 있는, 아무나 할 수 있는 트위스트 동작. 친구는 내가 시키는대로 따라해보고서는 너무 시원하다고 했다. 그거 수시로 해, 라고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과일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호텔 방안에 이번에 새로 나온 에피톤 프로젝트 앨범을 틀어두었다. 나는 '딱히 좋지는 않아' 라고 틀어주었는데, 친구는 '노래 다 괜찮은데?' 라고 말했다. 그러네, 이렇게 아침에 같이 들어보니 또 괜찮네...하다가, 나는 얼마전에 오빠로부터 추천받은 이소라의 새 노래도 들려주었다.


여러분 같이 들어봅시다.






가사는 별 거 없는데 이상하게 좋다. 이소라 목소리 때문인가...




친구가 얼마전에 박미선이 텔레비젼에서 한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자신은 지금의 생활이 너무 안정적이고 편안해서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는 말이었다. 내게도 물었다. 넌 어떠냐고. 나 역시 20대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20대의 나는 술도 마셨고, 여행도 다녔고, 친구들을 만나 수다도 떨었고, 책도 읽었고, 영화도 보았고, 연애도 했지만, 그러나 그 시간이 내게 어떤 성장의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시간은 정체되어 있고 멈춰 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내 인생에서 그 부분을 싹 도려내어도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았던, 그런 시절. 나는 30대부터의 내가 좋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술을 마시고 여행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연애도 했지만, 30대에 비로소 하나씩 채워져나가고 충족되어져 나간 것 같다. 본격적인 성장은 30대부터 이루어진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일찍 성장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늦게 성장한다. 나는 매우 늦은 축에 속하는 사람인것 같다.



그건그렇고, 오늘도 나는 책을 살것이다. 읽기의 말들을 포함하여 장바구니를 이렇게 저렇게 정리해보는데, 5만원대로 맞추고 싶은데 아무리 줄이고 줄이고 또 줄여도 7만원대라서 고민이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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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8-10-15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락방님 제 직장과 가까운 곳에 오셨었다니 왠지 반갑네요~
친구와 호텔에서의 1박 넘 좋은데요? 낯선 곳에 가보는 경험도 좋구요~ 저도 30대의 제가 좋습니다:)

다락방 2018-10-15 17:44   좋아요 1 | URL
오오, 븅븅토토님 동탄에서 직장다니십니까? 반갑습니다!! 거기 엄청 고층 아파트들 많더라고요. 교통편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아아 나도 여기 이사올까‘ 싶어 친구가 급 검색해줬는데, 그 번화가의 좋은 아파트들은 비싸더라고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당연하겠지만 ㅠㅠ 그래도 새로 지은 것 같은 높은 아파트들 보니 살고 싶어졌어요. 차도도 넓고 사람은 별로 없어서 뭔가 조용할 것 같고....그렇지만.....대출을 몇 억씩이나 받아야 될텐데 그건 어찌갚나 싶고 말이지요... (시무룩)

우리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더 좋아하며 지냅시다, 븅븅토토님!! :)

transient-guest 2018-10-16 0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한번 가본 곳 같아요. 동탄신도시 어딘가, 그냥 아파트로 가득하던 기억이...

다락방 2018-10-16 07:56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정말 아파트가 가득해요. 그런데 아파트가 아주 많이 비어있더라고요. 몇 해전에 송도 신도시 갔을 때도 비슷한 광경을 봤거든요. 고층 아파트가 많은데 아파트가 비어있는... 아파트에 비해 사람이 현저히 적은 것 같아요. 두 곳 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