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라본 게 허공일까?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라자냐 장면 확인하고 싶어 읽었던 책에서는, 이미 결론을 알고 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비극을 만나 동시에 바닥으로 가라앉았더랬다. 그 비극속에서 빠져나오기가 몹시도 힘들었다. 어쩌라고, 어쩌라고.. 하면서 허우적허우적. 내친 김에 영화도 다시 보자 싶었다. 라자냐 장면도 확인할 겸.

'존'의 아버지는 일요일마다 라자냐를 만들었다. 왜 이 장면에 내게 와서는 '우리 어머니 라자냐는 알아주지' 가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다른 영화랑 헷갈린건가..


존과 사바나가 만나 2주간 뜨거운 사랑을 하고 군대와 학교로 돌아가는 굵직한 내용은 책과 같았지만, 다른 세부적인 것들은 책과 영화가 많이 달랐다. 책을 읽지 않고 영화만 보았다면, '저기에 왜 갑자기 저런 대사가 나와야하지?' 할 정도로 개연성이 부족해서 영화적 완성도는 딱히 느낄 수가 없었다.


오래전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내가 기억하는 결말은 이랬다. 존과 사바나가 헤어지고 존이 사바나를 찾아가는데, 사바나는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살고 있었던것. 사바나가 결혼한 남자는 이미 아이가 있었고 몸이 아팠는데, 이에 존이 조용히 치료비를 주고 뒤로 물러나는 것. 나는 이 영화가 여기서 끝난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나서 한 참 후에도 이 결말을 떠올리며 '그게 가능한걸까?'를 여러번 생각했었는데, 책을 읽고보니 내가 생각하는 결말은 그대로의 결말이었으나, 오! 영화의 결말을 달랐다. 나는 영화를 보았는데 어째서 결말은 책과 같은가. 어째서 내가 기억하는 영화의 결말은 다른가!


영화속의 결말은 달랐다.

일단 아이 있는 남자, 몸이 아픈 남자랑 결혼한 것도 맞고, 존이 그런 그녀에게 익명의 기부를 하여 치료비를 준 것도 맞았다. 그러나 그것은 사바나와 남편에게 2개월간의 시간을 가능하게 했고, 결국 사바나가 다시 혼자가 된것. 시간이 아주 오래 흘러, (아마도 5년쯤), 그들은 재회한다. 존은 그 사이에 수염도 기르고 훌쩍 나이든 모습으로 사바나와 마주치게 되고, 으앗, 정말이지 내가 생각하는 비극이 끝이 아니라 그 후에 한 30초쯤, 다른 결말을 보여주며 끝나는 것이다.



인생이란 어떻게 흘러가는 것일까, 굳이 그렇게 흘러가는 의미는 뭘까, 에 대해 생각했다.


일단 책에서는 사바나가 결혼하는 남자는 '싱글'이었고, 그러나 그에게는 자폐를 앓고 있는 동생이 있었다. 사바나가 그와 결혼하는 바람에, 그리고 남편이 병을 앓고 입원하는 바람에 아픈 동생은 사바나가 돌봐야 한다. 남편은 이에 사바나에게 미안해한다. 자신이 죽게 된다면, 저 아픈 아이가 사바나의 책임이 될텐데, 그걸 생각하면 너무나 미안해진다고.


영화 속에서는 사바나가 결혼하는 남자의 아들이 자폐를 앓고 있다. 그리고 그는 죽어가며 아이를 사바나에게 맡길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에서는 남편이 회복한다. 그리하여 사바나는 남편과 함께 남편의 동생을 돌볼 수 있을 것이고, 그러나 존을 가슴 한 켠에 묻어두고 살아야 할 것이다.


영화에서는 남편이 회복하지 못한다. 사바나는 이제는 자신의 아들이 된 그의 아들을 돌봐야 하겠지만, 존과 재회한다. 어쩌면 사바나는 존과 함께 완전히 다른 사랑을 하면서 힘을 내어 가정 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둘 모두가 가능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도 저런 식으로도 펼쳐질 수 있으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과거에 사랑한 사람을 가슴 한 켠에 묻어두고 살아야 하는 삶이 주어지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는 삶이 주어질 것이다.


영화속에서 사바나와 존이 '다시' 만나게 됐을 때, 그들이 다시 만나기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들은 이제 더이상 젊었던 시절의 그들이 아니며, 게다가 그들 각자에겐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의 다른 경험들이 쌓였다. 존은 전쟁에 나가 총을 맞고 부상을 당하기도 했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사바나에게는 결혼이 있었고 남편의 죽음이 있었고, 남편의 병으로 인한 가난도 있었다. 나는 바로 이 시간들이 그들에게 '왜' 필요했는가가 궁금했다. 거기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 하는 것 같았다. 어차피 존과 사바나가 만나 함께살 운명이었다면, 그 운명이 왜 처음부터 그들을 함께 살게 하지 않고, 그들 각자 떨어진 채로 살다가 그렇게 서로에게 다른 경험들이 쌓인 채로 다시 만나게 했는가, 그들에게 그 떨어져 있는 시간은 왜 필요했고, 그 시간동안의 그 일들은 도대체 왜 필요했는가. 굳이 그들을 떨어뜨려 놓고 다시 붙여놓은 것, 그리고 그 사이에 여러가지 일들을 섞어 놓은 것은, 운명이 도대체 어떤 말을 하기 위함인가.


그것은 그들에게 일어나야 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운명은 존과 사바나를 만나게 한 후, 그리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한 후에, '자, 너네가 언젠가 다시 만나긴 할거야, 너희들은 함께일거야, 그런데 그전에 잠깐 이런 일들을 겪고 와' 하고 세상으로 뻥- 차버렸는데, 그렇게 한 이유는 뭘까? 그것은 그들에게 더 행복하고 단단한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을까? 그들이 생각지 못했던 각자의 깊은 사연, 깊은 비극을 끌어안고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들이 더 어른이 되어 있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니까 '니네 조금 더 어른이 되어서 만나야 해' 라는 운명의 깊은 뜻이 있었던걸까? 어차피 그들이 함께일 거였다면, 도대체 왜 그 중간에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했으며, 도대체 왜 그 떨어져 있는 시간동안 각자의 비극을 겪어내야 했을까?



운명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사실 나는 운명에 대해 늘 생각한다.



알면서도 만난 책 속의 비극 때문에 며칠간 허우적댔다가, 예상하지 못한 영화속의 결말 때문에 갑자기 동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운명의 이 시점에 이 책을 읽고 또 이 영화를 보게 하는 것도 다 뜻이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 뜻은 무엇인가, 운명이여.....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영화 알라딘 이벤트에 당첨되어 응모권을 받았다. 나는 그 응모권으로 열 살 조카와 함께 이 영화를 보러 갔다. 오래전, 내가 중학교시절 극장에서 개봉했던 애니매이션 알라딘을 보지는 않았어서 이 영화의 주제곡은 알지만 영화 내용은 잘 모르던 상황에서 이 영화를 보게된건데, 극중 알라딘이 좀 ... 네..... 공주가 너무 아까워서 혼났네요. 영화 속에서는 '알라딘'을 '진흙속의 보석'으로 칭하는데, 보석인지.. 잘 모르겠고요. 침묵과 얌전함을 강요당하던 공주 '쟈스민'이 더이상 침묵하지 않겠다고 노래하며 발언하는 장면을 보는 것은 좋았으나, 뭔가 씅에 안찼다. 어떤 행동을 보여주기 보다는 그저 말..뿐이라서. 흐음. 저게 다인가.. 싶었달까. 게다가 악당 '자파'가 술탄에게 복수한다며 술탄의 딸인 쟈스민과 결혼하겠다고 하는 걸 보는 장면에서는 빡이 쳤다. 지금이 때가 어느 때인데 저 새끼들은 여자를 소유물 취급하는 것인가..


어쨌든 백성을 사랑하는 쟈스민이 그동안 여자 술탄은 없었다는 전통을 깨고 술탄이 되고자 하고 또 되는 것은 좋았지만, 여러가지로 딱히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영화를 다 보고난 후 조카와 밥을 먹으면서 영화가 어땠느냐 물었다. 조카는 좋았다고 했는데, 어떤 좀이 좋았냐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응. 공주가 용감해서."


아아. 용감한 공주를 보여주는 것은 이렇게나 중요하구나.



집에 돌아온 조카는 영화 보기 전에 보려고 했었는데 다 보지 못했다며 같이 앉아 오래전 그 애니매이션 알라딘을 보자고 했다. 나는 조카의 옆에 앉아서 보다말다 했는데, 일단 그림에서부터 너무 놀랐고!! 아니 무슨... 배꼽티 입고 다니면서 허리가 홀쭉한... 머리카락은 엉덩이 밑까지 내려오는... 아아 그림 너무 빻았네, 하면서 보다가 내용에 화들짝 놀라고만다. 그러니까 쟈스민 공주가 자파로부터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해, 자파를 교태스럽게 유혹하는 거다!


네?

지금 뭐하는거죠?

이거 아이들 대상으로 만든 거 아닙니까?



나 개당황. 같이 보고 있다가 그 장면에서 너무 놀라서, 야, 이거 지금 .. 애들 보는 만화가 이게 뭐야? 애들 보는 만화에서 무슨 악당을 몸으로 유혹해? 말투를 바꿔가며 자파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가까이 키스할 것처럼 다가가는데 진짜 너무 소름 돋는거다. 뭐하는거지?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너무 소름


이 만화를 보고나니 영화가 얼마나 나아진건지 알겠더라. 만화속에서 쟈스민은 그저 성적대상화 된 여자였고, 술탄이 될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영화는 더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며 발언하는 쟈스민을 보여줬고, 게다가 술탄이 되니까. 물론 내가 만족할만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부제인 '철도는 어떻게 세상을 바꿔놓았나'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으므로 신간인《철도의 세계사》가 내게 딱히 흥미롭지 않은데, 이 책의 원제가 책 표지 밑에 《Blood, Iron & Gold》인거다.

블러드?

블러드라고?

철도의 세계사를 얘기하는데 왜 블러드...가 나오는거지? 왜지? 나 이거 읽어볼까?


망설이고 있는데 이 책은 540 페이지.


아아... 이 책을 펼쳐볼 것인가, 말것인가... 피....는 왜 이 책의 제목에 들어가는 것인가. 왜죠?


















곽정은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고 방송에서 연애나 섹스에 대한 얘기를 하며 글로도 써왔다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 책이라면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었는데, 최근에 티비 프로그램 <연애의 참견>에서 몇 번 곽정은을 보고나니 궁금해지는 거다. 다른 이들의 연애 얘기를 듣고 본인의 생각을 말해주는데, 뭐랄까, 연애와 실연의 경험도 많은 것 같고 그 과정에서 많이 생각하고 발전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거다. 어쩌면 내가 곽정은의 책에 대해 읽지도 않고 편견을 가진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서, 한 번쯤 읽어보자, 하게 되었고, 그렇게 읽었는데.... 음...... 맥주 한 캔 따 유리컵에 부어놓고 책 읽을 완벽한 준비를 끝마친 뒤 읽기 시작했건만, 첫 페이지에서 나는 이런 글을 만난다.




땀 흘리는 남자는 언제나 옳다.

그것이 피트니스 센터이든 침대 위든.


하지만 땀 흘리는 여자야말로 진정 옳다.

그것이 피트니스 센터이든 그 남자의 위든. (p.12)



악!!!!!!!! 이건 뭐지. 이건 대체 뭐냐. 이건 뭐지. 이 세상의 오글거림이 아니다....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이걸 활자화된 책으로 만나다니... 너무 너무다 ㅠㅠ 첫 페이지서부터 삐걱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게.. 책으로 나와야 하는걸까. 게다가 페이지 구성이 이런식이다.










...... 진짜 뭐라 할 말이 없이 유감이다......



나는 곽정은이 이 책 한 권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너무 잘 알겠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말이고. 만약 그녀가 방송에서 나와 혹은 사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을 것이다. 맞아, 그렇지, 하고. 그러나 이것이 이렇게 한 페이지 안에, 마치 경구라도 되는 것처럼 짧게 박혀있으니 당황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나는 책의 물성을 사랑한다. 책 안의 내용도 사랑하지만, 책이 책다운 것을 좋아해. 이렇게 펼쳤을 때, 여백이 필요한 시집이나 그림책이 아닌 이상 이런 식으로 페이지 구성이 되는 것을 도무지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다. 물론 저 짧은 글을 그렇다고 연달아 밑으로 다다다닥 인쇄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문장과 저 구절은 다른거니까. 그리고 이 책이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진 것에 대해 오히려 더 좋아하고 또 이 글들 자체로 으악, 가슴속에 쏙쏙 들어온다며 충분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만 책에 담긴 내용과 또 책 자체의 물성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도무지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는 책이다.


당연히 다 읽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고, 나는 애시당초 내가 안읽어도 됐을텐데, 라고 생각한 내 촉을 앞으로 더 열심히 믿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끔 '어쩌면 내가 모르는 무언가 있지 않을까', '내가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해서 애써 시도를 해보면 번번이 '안했어도 되는구나..'를 실감하게 돼.



이 책의 세일즈 포인트는 꽤 높은데, 이것은 그러니까 잘 팔리는 책일것이다. 또한 잘 읽히는 책일 것이고. 사랑과 연애에 있어서 생각하는 일이 적은 사람에게는 생각을 도와주는 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충분히 생각하고 한걸음 내딛고 있는 사람들은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고, 그보다는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를 읽는 쪽이 바람직하다.







<경험담 3>


이런 말이 있다.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났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는, 함께 있을 때의 변해가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드는 것."

혼자 있을 때보다 행복해질 거라 믿고 연애를 택하지만

혼자 있을 때보다 되려 불행해지는 연애를 하게 된 이들에게 그 어떤 날카로운 조언보다 선명한 기준이 되는 말이다.


요즘 나는, 내가 변해가는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든다.

그걸로 됐다. - P199

<돌아보지 마>



자동차 핸들을 잡고 뒤를 돌아보는 일이 허락되는 건

브레이크를 완벽히 밟아 멈추어 서 있을 때뿐.

조금이라도 차가 움직이고 있을 때 뒤를 돌아본다면

비틀비틀 쿵.

사고를 내고야 말 것이다.


그러니까

돌아보고 싶다면 멈추는 것이 먼저.

달리기로 마음먹었다면 돌아보지 않기.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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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05-27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철도의 세계사> 보관함에 방금 넣었는데... 두께가... ㅜㅜ

다락방 2019-05-27 11:10   좋아요 1 | URL
저 책 읽고 나면 뭔가 확- 똑똑해져 있을 것 같아요! 두께가 어마어마하긴 하지만, 책 휙 살펴보니 사진도 많이 삽입되어 있는것 같더라고요. 의외로 금세 읽힐지도.... 전 무엇보다 철도가 바꾼 역사에 도대체 피가 왜 들어가나..그게 궁금해서 읽고 싶어요!

비연 2019-05-27 12:46   좋아요 0 | URL
일단 사야겠어요 ㅎㅎㅎㅎ 아 이 지름신 강림이라니.

블랙겟타 2019-05-27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러시아를 다녀와서 들었던 건데요.
당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지으면서 동원되었던 수많은 조선인, 중국인 노동자들이 척박한 환경에서 많이 죽었다고 하더라구요.
철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노동자들의 의미일까요?
아니면, 철도가 생기면서 전쟁에서의 신속한 대규모 병력투입이 가능하게 되어 과거보다 훨씬 대규모의 전쟁의 시대가 펼쳐진 의미로서 블러드일 것 같기도 하네요.( ´◔ ‸◔`)?

다락방 2019-05-27 12:49   좋아요 1 | URL
제가 머리말 을 슬쩍 봤는데요, 이런 구절이 있네요.

‘6장은 먼저 재앙적인 철도에 대해 다뤘다. 건설 과정에서 수천 명이 희생당하고 공사는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아마도 이런 뜻에서 블러드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고요, 머리말만 읽고 파악한 바로는 철도가 생김으로써 전쟁의 규모도 더 커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뜻에서도 역시 블러드가 나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네, 바로 블랙겟타님의 말씀처럼요.

뭔가 갑자기 겁나 읽고싶어지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공개 2019-05-27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고, 그보다는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를 읽는 쪽이 바람직하다.˝ 에 공감합니다!!!

다락방 2019-05-28 07:50   좋아요 1 | URL
예, 그러한 것입니다. 아니 도대체 독서공감 같은 훌륭한 책이 어째서 곽정은의 책보다 훨씬 덜 팔리는지 모르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디어존 - 아웃케이스 없음
라세 할스트롬 감독, 아만다 시프리드 외 출연 / UEK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이게 뭐야?? 내 기억 뭐지?? 왜 내가 결말을 완전 반대로 기억하고 있었지???
책과 너무 다르고 개연성도 떨어진다 생각했는데 결말 이거 뭐야 진짜 ㅋㅋㅋㅋ 너무 좋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마지막이라 별 하나 더 준다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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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친구들을 만났다. 스파게티와 와인의 조합은 굉장히 오랜만이라 기쁘고 맛있게 잘 먹고 우리는 자리를 옮겨 맥주를 마시러 갔다.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고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더 좋고 앞으로도 이렇게 먹고 마시고 수다 떨며 오래오래 지내자는 얘기를 하던 중에, 당연히 '건강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나는 친구들에게, '늘상 건강하자고 말하고 건강한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건강하자는 말이 부질없다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간 내가 그렇게나 체력이 좋고, 어떤 검사를 해도 다 이상없다 나오고(최근에 위내시경 했을 때 닥터는 30대 초반 사람들보다 더 깨끗한 위를 가지고 있다고 내게 말했다), 건강만큼은 자신있다 생각했지만 수술을 앞두고 있지 않냐. 우리가 건강하기 위해 하는 일들이 정말 우리를 건강하게 해주는걸까, 건강하자는 말은 부질없는 것 같아, 이래봤자 어디에서 갑자기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질지 모른다, 라는 얘기.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친구1이 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읽었다던 '김혼비'의 《아무튼, 술》의 한 부분을 얘기해주었다. 저자가 술에 취해 노래방에 갔다가 리모콘을 들고 택시를 탔고, 택시 안에서 마치 그것을 게임기인양 다루었던 일, 정신차려보니 지갑이 없었는데 노래방에서 연락와 지갑을 찾으러 갔다고. 노래방에서는 택시 기사님이 노래방 리모콘과 지갑을 가져다주셨다 말했단다. 저자는 택시기사님께 연락을 드려 감사하다 인사했다는데, 기사님은 끊으시며 '힘내요' 라고 했다는 거다. 당시 너무 우울하고 힘들어서 폭음을 했던 저자는, 이 말에 왈칵 울음이 터졌다고. 저자 자신은 그간 힘든 사람에게 '힘내라'라는 말은 무용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해왔다 했다. 그 말로 힘이 나지는 않을텐데, 그저 듣는 사람이 아무것도 할 게 없으니 그냥 자기 편하자고 하는 말이 힘내, 라는 말이 아니었던가 생각했던 것. 그러나 자기가 힘든 상황에서 갑자기 듣게된 힘내라는 말은 정말 힘이 되었다는 거다. 그러니 그 말이 안하는 것보다 낫다고, 설사 길에다 버리는 말일지언정 누군가는 주워갈 수 있는 거라고. 친구는 이 얘기를 들려주며, 우리가 '건강하자'고 하는 말이 결코 부질없지 않을 거라고 했다.


아, 여러분 너무 좋지 않습니까... 내 친구다, 여러분. 책을 읽고 그 책에서 일화를 가져오며 우리의 대화속에 스며들게 한다. 게다가 그것은 얼마나 맞춤한가. 제가 이런 친구를 사귀고 있습니다.



그래. 부질없지 않을 것이다. 요즘엔 건강하자는 말이 너무 부질없는 것 같다고 그렇게 궁시렁대고 살아왔는데, 아니다, 부질없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어떻게든 가 닿아서 의미와 힘을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야. 작용을 하고 있을 것이야.

여러분, 건강합시다.



그건그렇고,

나는 김혼비를 아직 한 권도 안읽어봤는데 주변에 김혼비를 읽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좋다좋다 말한다. 와- 나는 진심으로 김혼비가 부러웠다. 김혼비를 읽은 사람들이 이렇게 어디가서 좋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김혼비는 알까? 나도 이참에 김혼비를 좀 읽어봐야겠구먼. 며칠전에도 다른 친구가 김혼비의 책을 읽다가 내 생각난다며 본문을 사진 찍어 보내줬더라. 거기엔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다.



의사도 완전히 나을 때까지 무리한 운동은 절대 삼가야 한다며 정기적인 물리치료를 권했다. 물리치료실로 이동하기 직전, 진단을 받는 내내 최대 관심사였지만 마지막까지 미루고 미뤘던 질문을 조심스럽지만 다급하게 던졌다.

"술을 마시는 것도 안 좋을까요?"

당연하지, 인마. 이 질문은 왜 항상 꺼내놓고나면 이렇게나 바보 같을까? 몸 낫자고 간 병원에서 꺼내면 특히 더 그렇다. 하지만 안 물을 수도 없지 않은가. '안 마시면 좋겠지만 마셔도 크게 지장은 없어요' 정도의 답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저렇게 깔끔한 답이 아니어도 괜찮다. "마시지 마세요"라는 답일지언정 "음 …" 정도의 머뭇거림이나 약간의 갸웃거림 정도만 포착할 수 있어도 술꾼의 마음은 한결 편안해질 것입니다, 선생님. 자, 그러니까, 선생님?

"알코올이 근육 섬유를 파괴하기 때문에 나으실 때까지는 마시면 안 됩니다."

헉. 이런 쪽으로 이렇게 깔끔하게 대답하실 줄이야. 알코올이 근육 섬유를 파괴하는 거 누가 몰라요. 다만 모든 것에는 '어느 정도'라는 애매모호한 영역이라는 것이 있는 거 아닙니까. 거기에서 발휘할 수 있는 의사의 재량이라는 게 있잖아요. 흑. 의사의 재량 대신 그냥 나의 재량에 맡기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될 텐데 소심해서 또 그렇게는 못 하고 물리치료를 받고 와서는 사흘 동안 꼼짝 없이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병원을 찾아간 이유가 이것 때문은 아니었다. 정말이다. 첫 병원은 축구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찾았던 것이고, 이번에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찾았을 뿐이다. 정말이다. 물론 "술은 절.대. 마시면 안 되나요?" 라고 질문을 살짝 극단적으로 바꾼 것에는 온건한 답을 유도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아무튼, 술 中에서, 페이지는 모릅니다)





















아아, 내 얘기가 아닌가.


그러니까 나로 말하자면,

몇 해전에 산부인과를 찾았을 때 약을 처방해주는 닥터에게 나도 '술 마셔도 될까요?' 물었더랬다. 닥터는 '안된다'고 답했고, 나는 약국에 가 처방전을 내밀고 약을 받은 뒤, 그 날 술을 마셔야 하므로 약을 먹지 않았다... (네?)


엄마가 너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하하하하하.



몸이 아파 병원에 다녀오면 가족들은 항상 '술마시면 안되겠네' 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술 마시지 말란 말 안했어'로 대답하곤 했다.


"술 마셔도 되냐고 물어보긴 했어?"

"안했지."


당연히 안물어봤다. 안된다는 답을 듣기 싫어서. 나는 안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으므로 마셔도 되는것이다...



며칠전에는 내과에 갔다가 사정이 사정인지라, 슬며시 물어봤다.



"저.. 술 마셔도 될까요?"

"..... 마셔도 되긴 하지만, 안마시는 게 제일 좋긴한데..."


이에, 같이 갔던 남동생은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하냐고 나한테 잔소리를 했고, 아아, 닥터는



"남동생 말이 맞아요. 안드시는 게 제일 좋아요. 저는 아무것도 못들은 걸로 할게요." 하시는 게 아닌가.



그렇지만 나는 '마셔도 되긴 하지만'에 큰 의미를 두고...... 네, 어제도 마셨습니다. 아하하하하.



아, 김혼비 책 사야겠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연달아 두 명의 친구로부터 김혼비의 아무튼, 술 얘기를 듣게 됐어.




어제만난 친구2는 헤어질무렵 우리에게 빵을 줬다. 손바닥만한 파운드케익을 두개씩 줬는데, 나는 오늘 아침 아빠 드시라고 하나를 두고 나오고 하나는 내가 먹기 위해 가져왔다. 아빠로부터 맛있게 잘 먹었다는 연락이 왔다. 마침 아메리카노도 있겠다, 나도 빵과 함께 먹었는데. 아니, 이것은 무엇? 겁나 맛있는거다. 진짜 너무 맛있어서 친구에게 네가 어제 준 빵 짱맛있다고 고맙다고 연락했는데 아아....



하나를 아빠한테 준 게 후회가 되는 것이다...


두 개 다 내가 먹을걸...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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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019-05-24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락방님을 친구로 두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답니다.
아침에도 지하철에서 아무튼,술을 읽다가 내릴역을 놓칠뻔,,, 아니 놓치고 출근안하고 지하철에서 계속 책읽고 싶었어요 ㅋ
아무튼, 건강합시다!

다락방 2019-05-24 13:42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 저도 조만간 김혼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빵 다 먹었더니 배가 불러요. 빵 안에 치즈가 통째로 들어있어서 깜놀했고 정말 좋았어요. 이런 훌륭한 빵을 그 친구는 어떻게 알고 사준건지 모르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은 뭘까. 읽으면 읽을수록 더 재미있고 또 내가 얼마나 많이 모르는지를 알게된다. 그래서 다 알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고, 더 궁금해진다. 재생산, 낳는 문제 역시 마찬가지. 검색해보니 이 책이 보이길래 부랴부랴 사서 읽었다. 최근 SNS 에서 대리모 관련 언급된 글들 중에 상당수가 '더 활발하게 논의될 일'이라는 의견을 가진걸 보고 좀 뜨악스러웠기도 하고. 내가 누누이 얘기했던, '그건 좀 아니지'라는 감각에 대해 생각했다. 공부를 해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지만, 어떤 것들은 인간으로 살아가며 충분히 윤리적 감각으로 판단되는 게 아니던가.

















그렇게 읽게된 이 책은 여러명의 저자가 재생산에 대한 의견을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보이고 있는데, '캐시 오닐'의 <사이보그 섹스의 역사, 2018~2073> 는 그중 가장 재미있었다. 말 그대로, '재미'.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사이보그 섹스에 대해서 2018년부터 2073년까지의 일을 기록했다는 일종의 SF 소설 식이라고 이야기하면 될까. 캐시 오닐은 자신의 글에서, 2010년대에는 섹스로봇이 남성에 의해 만들어질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여성의 몸을 대상화할거란 우려가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이보그들은 아이들의 교육에도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고, 남성의 폭력으로부터도 여자들을 지켜주었다는 것. 즉, 이제는 과거에는 남성들이 폭력적이었대, 라는 역사를 알고 있다는 거다.



자기 소유의 로봇 친구와 가정교사가 생겼을 때 사람들에게 나타난 대체로 예상치 못한 중요한 결과는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관한 데이터는 쉽게 얻을 수 있고, 또 확실했다. 로봇과의 성관계가 실제 남성과의 성관계보다 훨씬 더 안전했다. (P.138)



로봇과의 섹스 같은 걸 상상해본 적은 없지만, 위의 구절을 읽는데 오, 너무 그럴듯한 거다. 로봇과 섹스를 한다면 확실히 남성의 폭력으로부터 안전할 것이고, 심지어 만족감은 훨씬 커지지 않을까. 얼마전에 여자1과 얘기하는데, 그렇게 오래 연애를 하면서 한 번도 상대 남성으로부터 만족감을 받아본 적이 없어, 다른 여자들이 표현하는 '울 것 같다'는 것이 도대체 뭔지 몰라 부러웠다는 거다. 그러나 얼마전부터 사귀기 시작한 연인과 비로소 (너무 좋아서)울 것 같은 기분을 알게 됐다는 것. 여자1이 만나온 남자들이 여자1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이건 뭐 여자1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나의 경우도, 그리고 내 주변의 대부분의 여자들도 사귄 남자들로부터 만족감을 다 얻지는 못했다. 오히려 상대 남자들에게 오구오구 잘한다를 계속 해줘야 했으며, 하기 싫어도 응한 적도 많았고, 만족하지 못해 짜증난 적도 대부분이었다는 것. 재밌는 건, 그러나 그들중 다수가 '나는 섹스를 잘해', '내 고추 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다. 하아-


아니, 그런데 섹스 로봇이라니... 백번 천번 생각해도 섹스로봇이 남자보다 훨씬 나을 것 같은데 아아... 캐시 오닐은 얼마나 적확하게 짚어냈는가!


캐시 오닐은 자신의 글에서 '상당수의 여성이 인간 남성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잃어버렸고(P.140)' 라고 썼는데, 아아, 섹스 로봇이 없는 지금 2019년...에도 나는 이미 인간 남성에 대한 관심을 잃은 바, 섹스 로봇이 생긴다면 캐시 오닐이 상상으로 써낸 글은 현실이 될것이다.



다시 처음의 책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 책을 읽는데 처음부터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의 《성의 변증법》이 언급된다. 아아, 드디어 이 책을 읽어볼 때가 되었구나 싶으면서, 앞으로 계속 여성주의 책 읽을 사람들에게도 성의 변증법을 읽어두는 것은 필요한 일이겠구나 싶었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획기적인 저서 『성의 변증법』에서 신체적 재생산 자체가 여성 억압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면서 출산을 대체할 새로운 기술들을 요구했다. 또 아이들이 가부장적인 가족 체제에서 고통받는 억압된 계층이라고 주장했다. -<동성애자가 아이들을 해방시키고 싶을 때>, 마이클 브론스키, p.148







재생산 관련된 여성주의 책을 더 읽어보고 싶다.



난자 공여자는 난임인 사람이 체외수정에 사용할 수 있도록 돈을 받고 난소 자극과 난자 채취 시술을 받는데, 공여자 대부분이 젊은 여성이다. 그들은 그 불쾌하고 위험한 절차를 밟겠다는 마음이 들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난자 공여 시장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경제적 불평등이 필요하다. 프랑수아즈 베일리스 같은 페미니스트 생명윤리학자들은 의학적 도움을 받는 재생산을 위해 난자 공여자를 착취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난자 공여 여성에게 가해지는 위험은 체외수정에 관한 윤리적 논쟁에서 종종 간과된다. 공여에 대한 낮은 보수가 문제가 되는 것은 건강상의 위험과 가난한 여성의 절박감을 이용한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과도한 보수 역시 지나친 유인책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신자유주의적 완벽주의, 크리스 캐포지, P.57-58



더 저렴한 대리모를 찾는 서구의 부모들은 인도, 태국 등지에 상업적 대리모 산업을 창출해왔다. 이런 국가들에서는 대리모 보수에 마음이 동하는, 위태로운 경제 상태에 놓인 여성들을 착취할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신자유주의적 완벽주의, 크리스 캐포지, P.58



더 깊이 들어가면, 재생산의 기술화는 신자유주의적 세계관과 일치하는 장애인 차별주의적 완벽주의 규범을 조장한다. 예를 들어, 부모가 되고 싶은 사람은 종종 완벽에 대한 특정한 문화적 이상의 전형이 되는 난자 공여자를 찾는다. 그리하여 대행사는 아이비리그 학생인 공여자를 찾는 광고를 낸다. 유전된다고 생각되는 바람직한 특성-지능, 운동신경, 음악적 재능-을 갖춘 잠재 공여자들은 웃돈을 약속받아 때로는 보수가 10만 달러를 웃돌기도 한다. 이런 관행에서 알 수 있는 점은 부모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식이 엘리트 계층에 포함되길 바란다는 것, 우리의 현재 경제 시스템이 설정한 전통적 기준에 따라 성공을 거두길 바란다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에서 하버드나 예일 대학교 학생이 되면 계층의 꼭대기에 자리하게 되고 경제적 성공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엘리트 생식세포에서 태어난 아이가 이 성공을 복제할 수 있길 희망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완벽주의, 크리스 캐포지, P.58-59









우리는 아이가 없는 커플을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저 커플은 아이를 낳길 원할까? 무슨 문제가 있나? 하지만 독신 여성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그녀가 아이를 낳으려 애쓰고 있다거나 아이를 잃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재생산에 관하여>, 머브 엠리 - P24

‘자연스러워‘ 보이는 재생산이라도 모든 재생산은 도움을 받는다. 어떤 형태의 도움은 보이지 않게 주어진다. 재생산이 정치적 문제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이 도움이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임신하기 위해 돈을 쓸 필요가 없는 사람은 임신에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임신하기 위해 몸을 변화시킬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면 임신이 힘들고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의사가 당신에게 상처를 주거나 조롱하거나 무시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아이를 낳기에 충분히 건강한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존재론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아이와 당신의 관계의 법적 상태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면 아이를 당신에게서 떼어 놓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자신의 안전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꼭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재생산에 관하여>, 머브 엠리 - P40

파울 B. 프레시아도가 『테스토스테론 중독자』(Testo Junkie)에서 지적했듯이, 전 세게적인 노동 불안정성-죄송, 유연성!-및 감정노동 경향을 설명하는 노동의 여성화 이론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이론은 ‘여성성‘이 무엇인지를 전제로 한다. 그럼에도 이런 접근 방식은 21세기에 돈을 받고 아기를 낳는 직업은 잘 설명하지 못한다. 편안한 집(캘리포니아주)또는 병원 기숙사(네팔, 케냐, 라오스)에서 돈을 받고 임신을 한 상업적 대리모들은 주 7일 24시간 일한다. 이들은 ‘유연‘하지 않다. 이들은 순전히 기술(techne), 창의성 없는 근육일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 자궁에 대한 꿈은 1960년대에 대체로 포기되었지만, 체외수정 기술이 완성되어 몸이 전적으로 이질적인 물질을 잉태할 수 있게 된 이후, 살아 있는 인간은 줄곧 ‘보조재생산기술‘이라는 완곡한 표현의 ‘기술‘ 부품이 되었다. -<어머니 역할>, 소피 루이스 - P43

기업이 특전으로 제공하는 난자 동결의 경우 그 주된 수혜자가 여성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실제로 그런 특전은 아이를 낳고 싶다는 여성의 소망보다 기업 쪽의 필요를 우선시하는 강요로 여겨질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지만 이러한 페미니즘의 역설도 야기한다.
누군가가 얻은 새로운 자유는 종종 다른 누군가가 받는 새로운, 혹은 더 심한 억압을 희생양으로 삼기도 한다. 정자 공여자와 달리 난자 공여자와 대리모는 의학적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된다. 예를 들어, 가장 최근에 내가 연구한 난자 공여자들 가운데 일부는 난자를 제공한 직접적인 결과로 심각한 합병증을 얻었다. 난자를 공여했던 사람이 나중에 불임을 겪기도 하는데, 예전에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고 해주었던 일을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페미니즘의 역설>, 다이앤 토버 - P78

나는 엠리가 가족을 만들고 싶은 모든 사람의 욕구를 수용하는 포용적 페미니즘의 미래를 요구한 것에 감사한다. 하지만 보수를 받고 재생산 기능을 제공해 그중 일부 가족이 활기를 찾도록 도와주는 제삼자들의 침묵이 마음에 걸린다. -<페미니즘의 역설>, 다이앤 토버 - P78

이런 저항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전 세계의 병원은 재생산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 보조재생산기술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판매한다. 보조재생산기술 서비스의 대다수가 안전하거나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입증되고 종종 실패로 끝나는데도 말이다. -<희망을 팔다>, 미리암 졸 - P79

자신의 난자를 냉동 혹은 판매하거나 대리모로 자궁을 ‘빌려줄‘ 젊고 건강한 여성을 모집하기 위해 업계가 사용하는 마케팅 전술에 자극받은 페미니스트와 생명윤리학자 들은 난자 동결과 대리모 산업이 가난한 여성의 재생산 노동을 착취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더 부유한 여성의 희망을 금전화하여 이득을 본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캠페인의 범위는 병원의 마케팅에 비하면 제한되어 있다. 병원은 환자가 구매하는 서비스의 안정성과 효과, 윤리적 영향을 대수롭지 않게 만드는 데 적극적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영향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는 환자에게 사실상 실험을 하고 있고, 종종 득보다 실이 많은 증명되지 않은 고가의 시술에 대한 청구서를 내민다.
이런 청구서를 받은 소비자 대부분은 성형 수술과 마찬가지로 수술비를 현금으로 지불하고, 따라서 보험이나 의사 추천 서비스에 의지하지 않는다. -<희망을 팔다>, 미리암 졸 - P80

그 때문에 비의학적으로 권고되는 보조재생산기술은 비교적 감독 체계가 느슨한 수상쩍은 세계다. -<희망을 팔다>, 미리암 졸 - P81

공식 기록들을 보면 2016년에 영국에서 난자를 해동해 정상 출산을 한 경우는 겨우 19퍼센트에 불과했다. -<희망을 팔다>, 미리암 졸 - P82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 인간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기적과 희망을 기대하는 연약한 생물이다. 혁신을 근사하게 묘사하는 것을 죄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자기를 보호하고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희망을 팔다>, 미리암 졸 - P83

강간은 여성의 시간과 공간을 통제하는 한 방법입니다. 밤에 남편 없이 혼자 밖에 나가지 않았어야지, 집안일을 하고 다음 날을 준비하면서 아이들과 집에 있었어야지, 밖에 나간다면 대비를 했어야지, 알잖아…… 강간의 위협은 여성의 시간과 공간에 가해지는 무언의 규율입니다. -<모든 여성은 일하는 여성이다>, 실비아 페데리치 - P105

폭력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종속적인 위치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강력한 형태의 착취를 가하는 데 항상 필요합니다. -<모든 여성은 일하는 여성이다>, 실비아 페데리치 - P105

치매에 걸리거나 가까이에 사는 가족이 없는 수백만 명의 노인에게 이 ‘시스템‘은 쓸모가 없다. 그래서 가정 방문 요양 분야가 떠오르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 가운데 하나다. 현재 미국에는 약 200만 명의 가정 방문 요양사가 있는데 주로 유색인종 여성이며, 대개 불법 노동자이고,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못한다. -<페미니즘으로 나이 먹기>, 제임스 채팰 - P128

이들 중 거의 4분의 1에 이르는 사람이 최저 임금보다 낮은 보수를 받는다. -<페미니즘으로 나이 먹기>, 제임스 채팰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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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9-05-23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윤리적 감각‘이 보편적 인권감수성에 기초한 상식일 수도 있지만 대리모에 대한 당신의 편견이나 선입견일 수도 있습니다. 그 ‘윤리적 감각‘에 대해 숙고해보시길 바랍니다. 의견과 의견이 경합하고 충돌하는 지점에서 당신의 윤리적 감각이 위치한 지점은 어디입니까?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6월 도서는,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입니다. 마침 제가 오늘 읽고 있는 책에서도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 언급이 있었는데요, 자, 어디 한 번 6월에도 빡세게 읽어봅시다.


음, 사실 6월 한 달은 쉴까...라는 생각을 며칠간 했습니다. 함께 읽어주시는 분들 최선을 다해 읽어주시는데, 제가 너무 매달 빡세게 몰아붙이는 것 같아, 여러분에게도 한 달 쉴 시간을 드리고 나도 한 달 쉴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 한 달 쉬다가 다시 할 수 있을지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해보는데까지 해보는걸로..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은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자, 가봅시다! 빠샤!


















다시 한번,

같이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덕분에 힘이 됩니다.

그리고 힘내세요!!



덧붙임)

7월 도서도 안내합니다. 쟝쟝님의 의견을 받들어,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로 하겠습니다. 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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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19-05-23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빠샤빠샤 ❤️

다락방 2019-05-23 15:28   좋아요 0 | URL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쟝쟝님 ♡

공쟝쟝 2019-05-23 15:55   좋아요 0 | URL
호잇 저두요! 진지하게 주제잡고 책읽기는 평생 처음이네요! 비록 이핑계저핑계대면서 미루기 일쑤지만 ^.^ 올해들어 제일 잘한 일!

공쟝쟝 2019-05-23 15:54   좋아요 1 | URL
참 다다음달에는 이 책 읽고 싶어요 (사실 1장까지 읽었는데 도저히 혼자서는 진도가 안나가는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예요.) 지금까지 읽은 책들 한번 정리도 할겸 ㅋ 고려해주세요 ㅎㅎ

다락방 2019-05-23 15:46   좋아요 0 | URL
고려고 뭐고 없어요.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7월 도서까지 정해진거네요. 7월에는 반드시 그 책으로 하겠습니다. 빠샤!

다락방 2019-05-23 15:48   좋아요 0 | URL
페이퍼 수정해서 올렸어요~~ >.<

공쟝쟝 2019-05-23 15:54   좋아요 0 | URL
오예~~~~~~!!ㅋㅋㅋ 고려 감사합니다!! 부지런히 읽겠습니당🌹

다락방 2019-05-23 15:59   좋아요 2 | URL
혼자 읽기 힘든 도서 같이 읽으면 읽게 되더라고요. 쟝쟝님이 읽기 힘든 도서, 우리 같이 읽어봅시다. 그렇게 진도 쭉쭉 빼봅시다. 빠샤!

블랙겟타 2019-05-23 18:42   좋아요 1 | URL
오. 혼자서 진도가 안난다면 함께!!٩(๑^o^๑)۶

다락방 2019-05-23 18:43   좋아요 2 | URL
함께함께!! 샤라라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블랙겟타 2019-05-23 18:48   좋아요 1 | URL
이것이 함께 읽는 이유겠죠? (V•̀ᴗ-)✰

레와 2019-05-23 15: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힘들텐데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다락방님, 응원합니다!!! 아자아자!!!!!

다락방 2019-05-23 15:33   좋아요 1 | URL
응원 고마워요, 레와님!
페미니즘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많이 알고 싶더라고요. 페미니즘 공부는 힘들지만 재미있어요. 오늘도 책 한 권 또 읽으면서 계속 갈증이 났어요. 계속 할거야. 히힛.

고마워요!

syo 2019-05-24 1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성의 변증법은 저도 같이 읽어요.
공부해야 되니까 안녕~ 그래놓고 지내보니 결국 읽을 건 다 읽습디다.....-_-

생각보다 별로 두껍지도 않네요.
6월 15일에 시험이니까 끝나고 나면 시작할게요.

그나저나 7월의 책 저거 어디서 많이 보던건데??

다락방 2019-05-24 11:26   좋아요 2 | URL
꺅 >.<
쇼님이 함께한다면 정말 좋지요, 좋다 좋다. 꺅 >.<
그래요, 쇼님. 일단은 시험을 잘 치릅시다. 합!격! ㅋㅋ

그쵸그쵸? 7월의 책도 좋아서 속으로 만세! 외쳤습니다 ㅋㅋ

공쟝쟝 2019-05-24 11:37   좋아요 1 | URL
고고싱🙌🏻🙌🏻🙌🏻

다락방 2019-05-24 13:41   좋아요 0 | URL
궈궈~~

블랙겟타 2019-05-24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른 5월 책 읽고 6월도 계속 달려가보겠습니다. (•̀ᴗ•́)و

다락방 2019-05-24 13:41   좋아요 0 | URL
오예~ 컴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