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덕질하기 좋은 날
오늘 아침에 cyrus 님의 글을 읽고(먼댓글로 연결되어 있음)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나는 책덕후가 아니다 ㅎㅎㅎㅎㅎ
나는 책을 읽다가 밑줄도 긋고, 접기도 한다. 그리고 책을 잘 빌려주는데, 돌려 받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래서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는 몇 번이나 샀는지 모른다. 아니, 빌려가면 왜 안돌려줘? 특히나 회사 동료들은 빌려 갔다가 퇴사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돌려주고 퇴사해라... 아..또 이렇게 쓰려는 거 아닌데 쓰다가 또 빡쳤네..
[스타킹 훔쳐보기] 시리즈와 [다락방의 꽃들] 시리즈를 일전에 헌책방에서 찾아내고 좋아서 중고를 구입했었고, 책장에 꽂아두고는 수시로 꺼내 읽었었는데,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이게 하도 낡은 책이라 그런지 책벌레가 생기는 게 아닌가! 나는 인터넷 검색으로 책벌레 없에는 무슨 약을 사다가 뿌리고는, 낡은 책은 죄다 팔아치워버렸다. 앞으로 낡은 책은 팔아야지, 하다가, 요즘엔 신간도 죄다 팔아버리는데, 그건 내가 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제가 월급날인데, 카드값 빠져나가고 나면 통장에 잔고가 없.... 그래서 내가 10월 한달동안엔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이고 약속을 잡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어제 집에 가서 또 술을 마셨다. 집 앞 삼겹살집에 갔는데 칠레산 삼겹살은 정말 지독하게 맛이 없었고, 그래서 소주 한 병을 채 다 비우질 못했다. 내 앞에 앉아 같이 고기를 먹던 동생은 '오늘은 술 안마실래' 해서 나 혼자 마셨는데, 술을 마시다마니 넘나 서운하고, 집에 엄마가 만들어둔 오이반찬 넘나 생각나는 것. 그래서 소박하게 집에 가서 오이반찬 꺼내놓고 나 혼자 술을 마셨다.

(참으로 정갈해 보이지만 이러다가 카레랑 미역국 가져왔고, 오이도 저거 모자라서 통째 들고와서 싹 다 비워버림 -_-)
남동생에게 나 음악 들어도 돼? 하고는 핸드폰에 있는 음악들을 랜덤으로 틀었는데, 혼자 홀짝홀짝 소주를 마시니 취해가지고, 중간에 빨래 다 돼서 빨래도 널고, 노래 나올때마다 겁나 따라 불렀다. 나는 노래방에 가는 건 싫은데, 이렇게 흥얼흥얼 따라부르는 건 참 좋아라 해서, 술에 취하고 노래에 취하고 에헤라디여~ 했는데, 핸드폰을 통해 들리는 노랫소리는 딱히 깔끔하거나 부드러운 느낌이 아니라 나도 싫어하고, 남동생도 싫었을텐데, 내가 그러게 그냥 냅뒀다. 고마워.. 그러더니 갑자기, "그 노랜 왜있냐?" 라고 물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쩐지 부끄러웠어 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노래가 이 노래다.
나는 " 내 마음이다" 이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왜 이 노래 들으면서 부끄럽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언제 넣었는지도 모르겠는데(한참된듯) 어쨌든 지난번 창원 가서도 들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부끄러.
어쨌든 그렇게 뭔가 질질 짜는듯한 노래들을 연달아 들으며 또 따라부르며 홀짝홀짝 술을 마시노라니, 남동생이 내게 말했다.
"소개팅이라도 시켜줄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빵터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됐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은 동생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천천히 소주 한 병을 다 마시고 취하고, 밤도 늦었고, 남동생은 '이제 그만해라' 해서 한 곡만 더 듣고, 하고는 한 곡 더 듣고 노래도 끄고 상도 치웠다. 설거지를 마치고 남동생 있는 데로 가서 술주정 했더니, 꼬장 부리지 말고 가서 자, 해가지고, 응, 하고 내 방으로 와서 방문 닫고 창문도 닫고 미니컴포넌트로 또 노래를 들었는데, 역시 사운드는 이게 갑이여...스맛폰 따위... 스맛폰 스피커 구려... 뭘 들었는지는 그런데 기억이 안나나...아 난다. 후훗.
미니컴포넌트는 오래전의 구남친중 한 명의 선물이었지. 잘 선택했다. 굿 초이스였어. 역시 사람은 쓸모있는 걸 받아야 돼.
근데 언제 잤는지 모르겠고 나는 지금 넘나 어지러운 것..고개를 숙이면 핑- 돈다... 인생이여.... 오늘부터 진짜 술 안마셔야지. 이래가지고 어떻게 야위냐...야위지말까.....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자.. 사실 나는 너무 긍정해서 탈이지...
아니, 근데 나 덕후 얘기 하고 있었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직 술이 안깼구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쨌든 나는 책덕후가 아니란 얘기다.
나는 책덕후가 아니고, 그냥 책 읽는 거 좋아서 읽는 정도에 불과하고, 그렇다면..나는 무엇의 덕후인가....생각해봤는데, 내가 덕후인 건 없는 것 같다. 난 무언가 수집하는 것도 안좋아하고(집에 뭔가 쌓이는 거 싫다..), 버리기도 되게 잘하고, 에 또.... 뭐 아무것도 없네.
난 그냥 내 기억의 덕후인가... 그뿐인가....
아 오면서 컨디션 한 병 사마실걸..어지러 미치겠네 ㅠㅠ
cyrus님, 고퀄 페이퍼에 술주정 페이퍼로 답해서 미안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