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토닌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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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대인의 절망과 외로움과 실패를 가장 극단적으로 가장 절절하게 보여주는 작가.
여성의 대상화, 인종차별 시선 등의 개선을 바라는 건 이젠 포기^^; 만능 창과 방패란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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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토닌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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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책을 죽 읽다 보면 전작들이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이제껏 나온 그의 모든 소설을 읽어온 바 이번 소설은 그의 소설 중 가장 역동적이다.
(※ 국내 출판된 우엘벡 책 중 완독하지 못한 건 베르나르 앙리 레비와의 대담집 『공공의 적들』 뿐이다.)

그의 소설은 공통적으로 성, 일의 성취와 자발적 포기, 권태, 무기력, 은둔 등을 다루는데, 이 책 초반은 권태와 무기력에 빠진 중산층 서구 엘리트의 모습으로 『투쟁 영역의 확장』, 『소립자』, 『지도와 영토』, 『복종』과 더 가깝고, 중반은 68세대가 추구했던 자유주의와 섹슈얼리즘, 과거 연인들과의 관계 고찰의 모습으로 『소립자』, 『어느 섬의 가능성』, 『플랫폼』과 닮았다. 후반부터 전개가 독특해진다. 직전의 전작 『복종』이 정치적 목소리가 강하긴 했지만 적극적인 저항까지 담지 못했다면 이번 『세로토닌』은 프랑스에서 실제 일어난 ‘노란 조끼 운동‘을 예견했다는 평을 들을만큼 사회 비판이 격렬하다. 점점 더 개판으로 돌아가는 세상 꼴을 보자니 당연했던 걸까. 물론 실패의 엔트로피로 향하지만. 자본주의 시대 ‘노동의 종말‘을 향하고 있는 지금이 어떤 꼴인지 자비 없이 보여준다.
19세기 말부터 1차 세계 대전 발발 전까지 벨 에포크(좋은 시절) 시대라고 말하지만 그건 먹고살기 좋았던 중상위층에게나 해당했다. 빈부 격차나 각종 차별이 더없이 치솟았던 시기이기도 했는데(토마 피케티 『자본과 이데올로기』 참조), 지금 우리도 그런 역사 속이다.


섹슈얼리즘을 문제적으로 다루는 솜씨는 조르주 바타유와 비슷하지만 바타유보다 우엘벡이 더 저돌적이다. 섹슈얼리즘과 계몽주의와 냉소주의가 뒤섞인 D. A. F. 드 사드가 20~21세기에 살았다면 미셸 우엘벡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곧 자살할 듯 말 듯 한 허무주의적이고 신랄한 문체는 에밀 시오랑이나 토마스 베른하르트와 비슷하다. 인종 차별과 여성 혐오를 많이 드러내는 미셸 우엘벡의 글이 불쾌한 부분이 많음(이번 소설엔 아동 관련 범죄까지...)에도 그의 글에 매료되는 건 절망의 끝까지 가보는 그의 적나라함이 폭력성과 환멸만으로 가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모든 것에 가차 없는 비판을 하는 한편 우리는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이고 굴레로 가득한 인생을 산다는 걸 비감히 고찰한다. 끝까지 조마조마하며 읽었는데 ‘사랑‘을 강조하며 끝나는(에로스적 사랑- 낭만적 사랑에 국한된 게 한계이지만 : 동성애를 혐오했던 바타유와 역시 닮았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은 우엘벡답지 않아 더 뭉클했다. 그에게나 지금의 우리에게나 가장 지독한 상실은 ‘사랑‘이다


˝우리가 생의 단 한순간도 어떤 신이 됐든 신의 개입이나 존재조차 느껴본 적이 없으면서도, 심지어 우리가 신의 호의적인 개입을 특별히 누릴 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우리의 삶에 누적된 허물과 과오들을 고려할 때 다른 이들보다도 더 자격이 없다는 것을 절감하면서도 바라는 어떤 것˝이 있는 게 인간의 삶이다. ˝지상에서 소유한 모든 것이 달랑 여행가방 하나로 압축˝되고 ˝인간관계를 맺는 시기는 이제 만기˝가 되었으며 이제부터는 ˝폐를 끼친 일에 사과하는˝ 일만 가득할 거라고 판단한 46살의 플로랑클로드는 같은 나이에 죽은 네르발과 보들레르를 떠올리며 결코 쉬운 나이가 아니라고 자조한다. 그는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이미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아무런 추억도, 다가올 기적에 아무런 기대도 없는 감정의 동절기로 조금씩 진입하고 있었고, 이 무력감은 직무 영역에서도 무산되는 사업이 늘어감에 따라 배가되었다.˝ 똑같은 한 주 한 주가 반복되면서 ˝우리가 대단한 일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이 조용히 자리 잡았고˝, 직업인의 삶은 ‘아무런 쾌락도 선사하지 않는 창녀‘처럼 생각되었다. 윗세대부터 우리 세대까지 파괴된 것을 재건하는데 철저히 무능했으므로 인류 문명에 대한 희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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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은 인생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시절이었다. 미래가 활짝 열려 있고,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는 유일한 시절. 이후로 펼쳐지는 성인의 삶, 직업인의 삶은 느리고 점진적인 정체와 다름없으며, 바로 그런 이유로 젊은 날의 우정, 학창시절에 맺었던 유일하게 진실한 우정은 성인의 삶의 문턱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리라. 우리는 우리의 좌절된 꿈의 산증인들, 명명백백한 추락의 산증인들과 대면하지 않기 위해 젊은 날의 친구들과의 재회를 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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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으로는 문제의 해결이 간단하나 실질적으로는 이제 더는 그렇지 않으며, 바로 그렇게 인류 문명은 요란하지 않게, 위험도 비극도 없이, 아주 미미한 유린만으로 거꾸러진단. 문명은 무기력과 스스로를 향한 혐오감으로 거꾸러진다. 사회민주주의가 제안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무것도 없고, 혹여 있다면 오직 영원한 그리움과 망각에의 호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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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도 불행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튼 조수간만은 살아오는 동안 흔치 않은 경험이었고, 육지를 뒤덮으러 조용히 밀려 올라오는 저 거대한 액체를 느껴보는 건 신기한 일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토크쇼 <우린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가 왁자하게 흘러나왔고 느리게 밀려오는 대양과 기묘한 대조를 이뤘다. 패널이 너무 많았고 다들 너무 크게 떠들었다. 이 오락 프로의 볼륨이 전체적으로 과도하게 높았다. 나는 텔레비전을 껐으나 이내 후회했다. 현실세계에서 무언가를 잃은 기분이었고 이야기 밖으로 밀려난 기분이었다. 내게 부족한 것은 어쩌면 핵심적인 것인지도 몰랐다. 게스트들의 캐스팅은 완벽했고 스튜디오엔 소위 중요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창밖을 보니 바닷물이 이제는 불안할 정도로 더한층 가까워진 듯 보였다. 다음엔 우리가 바다에 잠길 차례인가? 그 경우라면 약간의 기분전환이 되리라. 결국 나는 커튼을 닫고서 텔레비전을 다시 켠 뒤 볼륨을 죽였다. 이내 탁월한 선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대로 딱 좋았다. 오락 프로그램의 왁자지껄함은 그대로인 채로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즐거움이 더해졌다. 약간 정신 나간 듯하면서도 재밌는 미디어 인형들을 보는 것 같았다고 할까. 그것들이 분명 나를 잠들게 해줄 터였다.˝



현재의 일본인 연인 유주는 집단 성교에 빠져 있고 플로랑클로드의 의미는 그녀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파트너일 뿐이다. 그녀를 죽일까도 생각하다가 ˝자신을 원하지 않는 세계에 받아들여지기 위한˝ 필사적 노력을 끊고 자발적 실종을 택한 플로랑클로드는 인생을 결산하려는 의지 속에 의미 있었던 과거의 인연들을 찾아가지만 어떤 해답도 찾지 못한다. 과거 연인 클레르는 알콜 중독에 빠져 있고 유산으로 받은 부동산이 남은 희망이다. 유일한 친구 에메릭을 찾아간 플로랑클로드는 그와 마찬가지 처지인 에메릭의 몰락을 목도한다. 그는 ˝정말이지 우리가 다른 이들의 삶에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정도 연민도 정신분석도 이성적인 판단도 전혀 유용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스스로 불행의 메커니즘을 만들어낸 뒤 의미를 최대한 부풀˝려 질병 같은 그 메커니즘 속에서 죽음까지 도달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단테의 베아트리체‘와 같았던 카미유를 찾아가 몰래 훔쳐보기만 하다가 미혼모로 사는 것 같은 그녀에게 자신보다 아들이 더 중요할 거란 생각에 관계 회복을 포기한다. 세로토닌이 든 캅토릭스 부작용인 발기 부전은 남성으로서의 사형 선고였지만 그에겐 사형 선고의 추가 사항이었을 뿐이다. 사회적 관계는 모두 끝장났고 풍족할 줄 알았던 재산으로는 물가 상승으로 10년 밖에 버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자살을 계획한다. 그가 고골 『죽은 혼』이나 토마스 만 『마의 산』을 읽듯이ㅡ365일이 다 그렇겠지만ㅡ 특히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토마스 베른하르트 『몰락하는 자』와 미셸 우엘벡 『세로토닌』을 읽는다면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다. 인생이 잘 안 풀렸다고 생각하는 40대 중후반이라면 엄청난 공감과 더 치명적일 것.

관계를 원하고 사람을 필요로 하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망치기 일쑤여서 도덕과 윤리, 법이라는 가이드라인을 끝없이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행복은 결코 거기서 오지 못한다. 경계를 허무는 사랑을 생각해보라.

실패한 인생을 반추하는 주인공보다 주인을 잃고 전날부터 먹이도 먹지 못한 채 울고 있는 젖소들이 더 마음 아팠다ㅜㅜ

전 세계 공통으로 보이는 현상으로 외로운 자는 구강기로 퇴화해 요리에 열광하는 탐닉형 비만자, 약에 의존하는 건강염려증자, 흡연과 알콜중독 같은 중독자가 되기 십상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화려한 요리, 항우울제 캅토릭스 약도 아닌 플로랑클로드가 시종일관 마시는 칼바도스가 마시고 싶었다. 온갖 실망 속에 사람보다 사랑보다 그의 우울이 더 가깝게 느껴져서다. 정말이지 인간은 다양한 증상의 병리 병동이 되어가는 것 같다.



˝지난날 일어난 모든 일들은 영원히 일어난 것이고, 이제야 나는 그것을 알았으나, 그것은 닫힌 영원, 닿을수 없는 영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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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20-07-28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앞부분을 며칠 전에 미리 보기로 읽었습니다. 앞부분만 읽었을 때는 이 작가의 자가복제(혐오와 환멸만 늘어가는 서구 엘리트 남성의 넋두리)가 갈수록 심해진다는 느낌이 들어서 구매를 보류했는데 아갈마님의 리뷰를 읽으니 반드시 사야겠다는 판단이 서네요.
우엘벡은 확실히 호불호가 갈릴 만한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가에 대해서 험을 잡자면 한도 끝도 없겠습니다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 나라에 이런 글쟁이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ㅡ기껏해야 왕년의 장정일 정도만이 생각나네요ㅡ도 아쉽게 느껴집니다. ‘누가 뭐라고 하건 간에 내가 하고픈 얘기를 다 하겠다‘보다는 ‘나는 윤리적, 정치적으로 아주아주 올바른 사람이다‘라는 강박을 몇몇 소설가의 글을 볼 때마다 느껴지고는 합니다.

AgalmA 2020-07-28 13:35   좋아요 1 | URL
책날개에 (골초라 더 그랬을) 폭삭 늙어버린 우엘벡 사진에 먼저 심란해지죠. 그 인상이 퍽 강해 주인공 46세 플로랑클로드에 바로 겹치더군요. 초반은 수다맨님처럼 ‘또 이 상태냐-_-...에효‘ 하며 읽기 시작했는데요. 스릴러적인 게 있어서 초반 넘어가면 늘어지게 느껴지지 않아요. 재미 면에서도 메시지 면에서도 좋은 소설입니다.
이쯤 되면 우엘벡은 ‘서구 백인 엘리트 남성 넋두리‘ 대표 주자로 그게 트레이드마크가 된 것도 같고요;

장정일, 마광수가 그럴 수 있었던 건 그런 문화가 한국에 들어오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고 봐요. 두 사람 다 작품이 세련되지 못해서 더 그랬던 거 같지만 대중은 받아들일 준비조차 안 되어 있었죠. 지금 자본주의와 엮여서 팔릴 만 하니까 파는 거지 문단의 경직성과 배타성, 한국 대중 문화 경향은 크게 달라진 거 없다고 생각합니다. 풍부한 교양이 뒷받침되어야하고 좀 세련되어야 하는데, 한국 작가들에게 이게 참 부족해요. 등단과 작법에 몰두하고 등단하면 밥벌이로 글을 쓰니 뭐가 제대로 나오기 힘들죠. 나이 들면 지치고. 이제야 퀴어 문학도 관심을 좀 받나 했는데 거기도 악재가 겹치고...

한국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문화가 강해서 내면적으로 외부적으로도 자기검열이 심하죠. 요즘처럼 속사포 공격받기 쉬운 환경에서는 더 몸사리게 되고요. 상과 상금이라는 물질적 욕심도 더러 보이고요. 전업작가로 먹고살기도 힘든데 대중의 눈밖에 나면 작가 생명 끝나니 눈치 안 볼 수 없죠. 장정일도 다른 쪽으로 방향 틀어 겨우 기사회생 했고, 마광수는 철저히 몰락.
작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문화의 문제라고 봐야죠. 역량 있는 작가들의 싹을 한국 문화 전체가 자르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일본 경우, 다니자키 준이치로 같은 작가들의 외설적인 소설이 저는 작품적으로 크게 뛰어나다고 보지 않거든요. 하지만 일본 문화는 그런 걸 다 품는 건 한국과 비교됩니다.

수다맨 2020-07-28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단의 경직성과 배타성, 한국 대중 문화 경향은 크게 달라진 거 없다‘는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등단과 작법에 몰두하지만 교양의 풍부함과 작품의 세련미는 부족하다는 지적에도 역시나 동의하는 바가 큽니다. 결국에는 한국 문화 전체가 바뀌어야 하는데 이 변화를 이끌 만한 근본적인 동력이 어디에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창작 주체는 물론이고 이들을 인정(문단)하고 소비(독자)하는 집단에게도 나름대로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이것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난망하네요.

프랑스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지만 우엘벡과 같은 (여기저기에서 돌팔매 맞기 딱 좋은) 작가를 그럼에도 인정하고 소비하는 경향이 저쪽에는 있다는 것이 저로서는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는 ˝복종˝을 우엘벡의 작품군에서 가장 밀도가 떨어지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 책을 읽고 나니까 이런저런 걱정도 들더군요. ‘이런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가는 작가가 테러 당하는 거 아닌가‘ 헌데 우엘벡은 ‘정의‘나 ‘옳음‘ 같은 것들을 재인식시키는 소설보다는 ‘반동‘의 혐의가 붙는다고 하더라도 도발과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작가 같습니다. 바로 이 점이 저로 하여금 지갑을 열게 만들고요.

AgalmA 2020-08-01 00:04   좋아요 2 | URL
‘정의와 옳음‘을 말하는 소설은 많고 많아서 아예 그게 소설의 주제이자 지향점으로 굳어진 경향이 있죠. 미디어가 발달하기 전까진 글이 큰 사회적인 (고발) 목소리가 되어 왔으니까요. 지금 언론이고 미디어고 기레기 수준이니 <도가니>, <82년생 김지영>처럼 문학은 여전히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작가들이 당면한 좁은 틀은 섬세하게 잘 다루지만 넓은 스펙트럼으로 작품을 구축하고 있는가 하면... 글쎄요. 그런 소재 자체가 희박하고 감상적인 애국주의로 마무리되는 거 같거든요.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 프랑스 경우였다면 김봉곤 작가 일이 그의 모든 책 절판 처리되는 데까지 가지 않았을 겁니다. 미셸 우엘벡이 실존인물을 가져다 죽이고 살리고 원색적인 비난을 쏟는 데도 다른 걸로는 소송까지 갔지만 명예훼손 소송까지 가지는 않았죠. 김봉곤 작가를 두둔하는 게 아니라 각 나라의 포용성에 대해 저는 말하고 싶은 겁니다.

지금 한국의 대중문화의 큰 줄기는 두 가지로 볼 수 있겠는데요.
1. 미투 운동, 페미니즘
요즘 보면 프랑스 공포정치 분위깁니다. 기존 남성질서의 반성 없음과 권력 선점을 뺏기지 않겠다는 저항이 커서 더 그렇죠. 아무도 지지 않으려는 싸움이죠.
페미니즘의 근본적인 취지와 활동에 동의하나 이 움직임에 이성보다 감정이 더 실린 거 같아 우려가 많이 됩니다. 그만큼 남성들과 반목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니 갈등은 더 커지겠죠.

2. 인터넷 문화, 반지성주의
온통 몰려다니기 바쁜 sns 파이터, 유튜브 & 검색엔진 순례자 모습으로는 교양지식인은 커녕 나은 발전을 기대하긴 어려울 거 같은데 디지털문화가 앉은 채로 교양인 만들어 줄 거처럼 생각하는 거 같아 한숨이 절로 납니다. 배우려는 노력이 너무나 부족하죠. 먹고살기 바빠 책 볼 시간이 없다 말하는 건 지금 세대에겐 면피거리가 못 됩니다. 책이 편한 휴식거리로만 소비되어선 안 되는데 소비자, 출판사 모두 반성해야 합니다.

진화처럼 변화도 느리게라도 진행되는 거겠으나 ‘모두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저도 모르겠네요.

수다맨 2020-07-28 14:52   좋아요 1 | URL
아갈마님의 고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요즈음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고 심란했는데 달아주신 댓글을 읽으니 마음이 조금 든든하기도 합니다.
이 블로그에 ThanksTo를 누르고 ˝세로토닌˝을 구매했습니다. 아갈마님 블로그에 자주 방문하겠습니다.

AgalmA 2020-07-29 12:17   좋아요 1 | URL
제 부족함을 알아서 ‘고견‘이라 하실 만한 건 아닌 거 같고요^^; 덕분에 저도 이런저런 생각 정리 기회를 가지게 돼 고마웠습니다. thanks to도 감사하고요!
저 때문에 기대하셨다가 실망하시면 어쩌나 살짝 걱정도 되지만 우엘벡 작가 좋아하는 독자라면 큰 실망없이 읽을 책이라 생각합니다. 수다맨님 경우 <복종>보다는 좋아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추풍오장원 2020-07-31 2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분의 대화만 봐도 배울 점이 많군요..^^
김봉곤 전 읽지 않았고 앞으로도 읽지 않을 것 같지만, 국가권력도 아닌 시장에 의해 책이 절판당하는 사회는 뭔가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AgalmA 2020-08-01 00:43   좋아요 1 | URL
사회가 기준을 만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과정이고 숙의를 모은다면 좋은 결과도 낳겠지요. 장단점이 있겠습니다만 요즘 돌아가는 모양새가 여론 형성으로 거칠고 빠르게 해결하는 것 같아 많이 답답합니다. 페미니즘이 피해자의 위치에서의 접근법이 되는 거 같아 그 또한 우려되고요.
 
악스트 Axt 2020.7.8 - no.031, 창간 5주년 기념호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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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의 키워드는 '번역'

알랭 드 보통, 주제 사라마구, 특히 필립 로스 번역가로 각인된 정영목 번역가가 cover story 주인공이라 반가워하며 읽었다. 필립 로스와 프리모 레비가 절친이었다는 건 정말 의외. 극과 극 같으면서 시대를 견딘 모습은 닮은 듯도 하지만. 깜빡했는데 존 업다이크 『달려라, 토끼』도 정영목 선생의 번역이었다. 줄리언 반스 『연애의 기억』도 번역 좋았는데, 어째 정영목 선생은 편집증적인 남성 작가 번역을 잘 하시는 듯ㅎㅎ; 선생 번역으로 관심 책이었던 몇 가지 체크✔

 

 

 

 

 

 

 

 

한 달에 100페이지, 1년에 4권 번역이라 '시간이 노동력'이란 말씀에 매우 공감했다. 흔히 번역을 또 하나의 '창조'라고 하지만 '훌륭한 창조'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말씀에도 동감.

 

 

"정영목 : 번역의 기본적인 과제는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게 만드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매일 쓰는 말을 자의식을 가지고 다시 들여다보고, 다시 씹어보는 행위가 필요해요. 그 과정에서 생소하고 낯선 개념들이 들어오겠죠. 그걸 내 언어로 말하기까지 얼마나 괴롭고 힘들겠어요? 긴 시간이 걸릴 거예요. 그건 말로만 되는 게 아니라 구성원들에게 개념이 이해되고 공유되는 과정이 필요한 거니까."

 

 

이번 호는 번역가들의 번역 이야기가 대거 실렸는데

김영준 「윌리엄 트레버 『윌리엄 트레버』」

허유영 「우밍이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

김현우 「번역, 그 소심한 말 걸기」

김승욱 「번역을 업으로 삼은 사람의 반성문」

네 편이 재밌었다. 각각 생각하는 번역의 정의와 의미들을 들으며 함께 생각해보는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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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스러운 연상이 따르지만, 우리 시대에 번역은 화용론이다.

기호론 분야에서 의미론은 단어와 문장의 의미에 집중하는 데 반해, 화용론은 ‘주어진 언어를 있게 하는 언어의 주변을 설명하는 데 주력하는 분야로, 말하는 이, 듣는 이, 시간, 장소 등으로 구성되는 맥락 속에서의 언어사용을 다룬다’. 언어란 같은 단어, 같은 문장이라도 맥락에 따라 결정적 차이가 날 수 있으며, 의미와 의도의 엇갈림으로 반어, 풍자 같은 즐거움을 허락하기도 한다.

(중략)

어찌 보면 언어는 사람과 비슷하다. 옆 사람 눈치를 보는 버릇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번역이나 번역 비평을 할 때는 그 단위를 문장에 국한하지 말고, 문단(단락)으로 넓혀서 보자는 것이다. 문단 속에는 문맥이 일관되게 흐른다. 문단을 구성하는 문장은 저마다 독립된 의미를 갖고 있지만, 문맥이 없으면 대부분의 문장이 제 빛깔을 내지 못한다. 결국 번역할 때는 문장에만 집중하지 말고 문장과 문장의 흐름, 그 맥락이 빛을 발하게 하는 것이 번역자(또는 비평자)의 한 미덕이 아닐까 한다.

ㅡ 김한영 「연탄재를 위한 변명」

 

 

"존 버거는 번역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번역은 두 언어들 사이의 양자관계가 아니라, 삼각관계이기 때문이다. 삼각형의 세 번째 꼭짓점은 원래의 텍스트가 쓰이기 전 그 단어들 뒤에 놓여 있던 것이다. 진정한 번역은 이 말해지기 전의 무언가로 돌아가야 한다.(존 버거,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8쪽)

번역은 한 언어로 된 문장을 다른 언어로 변환하는 과정이다. 당연하다. 존 버거의 위의 문장이 번역 작업에 대한 통찰을 준다면, 입력언어와 출력언어 외에, ‘경험’을 언급했다는 점이다. 역시 당연한 이야기지만, 번역에 대한 이야기에서 너무 많이 빠져 있었던 그 경험의 영역. 번역의 과정에 개입되는 두 개의 언어보다 어쩌면 먼저 있었던 그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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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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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행위는 언제나 고백이다,라고 카뮈는 썼다. 조용히 문을 닫는 것도 고백이었다. 한밤중에 터뜨리는 울음과, 계단에서 넘어지는 것, 거실에서의 기침도 마찬가지였다.(니콜 크라우스, 『위대한 집』, 3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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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사람은 직접 자기 이야기를 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사례, 자신의 경험과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사례를 전하면서 슬쩍 자기의 이야기도 꺼내놓는다. 그런 방식의 표현밖에 못하는 사람, 도무지 전면에 나서지 못하겠는 사람들의 표현 방식, 그건 번역가의 방식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창작자가 표현하는 사람이라면 번역가는 인용하는 사람이라고 구분할 수도 있겠다. ‘조용히 문을 닫는 것도 고백이었다’라고 직접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그 문장이 전하는 어떤 경험을 알아볼 수는 있고, 그것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나의 경험에 대해서도 표현한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거면 됐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분명 어떤 식으로든 나의 경험을 내 밖에 내어놓은 것이 된다. 니콜 크라우스의 문장을 빌리자면 “옮기는 것도 고백이었다”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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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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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가 누구냐에 따라 그 음악은 다른 연주, 즉 ‘퍼포먼스’로 내게 경험된다. 동일한 악보에서 서로 다른 퍼포먼스가 나오는 것은, 연주자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고, 연주가가 원작에서 감지한 경험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안드레이 가브릴로프와 글렌 굴드의 차이에 대해 알게 된 후, 나는 번역도 어쩌면 연주에 가깝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외국어로 쓰인 원작을 우리말로 연주하는 작업, 퍼포먼스. 대부분의 독자들은 원작이 아니라 번역가의 퍼포먼스를 접하게 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글렌 굴드니 스뱌토슬라브 리흐테르니 하는 훌륭한 연주자들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은, 그들의 이름값에 버금가는 아름다움이나 뛰어남을 번역가도 온전히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을 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무언가를 옮겨서 전한다는 의미에서 두 작업에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 그리고 연주의 비유를 들면 사람들에게 번역 작업의 본질과 그에 따른 한계, 그리고 번역가의 ‘해석’에 대해 좀 더 쉽게 전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을 뿐이다."

ㅡ 김현우 「번역, 그 소심한 말 걸기」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많이 모았는데(e book으로는 분량 많은 제임스 서버, 헨리 제임스, 제임스 러디어드 키플링, 플래너리 오코너를 가지고 있음) 『윌리엄 트레버』가 없다니! 종이책이냐 e book이냐 매우 고민되지만 일단 장바구니로!

 

 

 

 

 

 

 

 

 

 

송지선 「레몽 크노 『연푸른 꽃』」 보고 장바구니에서 계속 대기 중이던 크노 책도 빨리 사고 싶어졌다.

 

 

📖

"레몽 크노(Raymond Queneau, 1903~1976)는 그의 작품들을 번역하고자 하는 자에게, 언어의 뿌리가 같은 로망어권이건 아니건, 면류관과 월계관을 동시에 씌워줄 작가이니 말이다. 일례로 이 책의 이탈리아어판은 한국 독자에게도 익숙한 이탈로 칼비노가 시도했고, 하나의 동일한 이야기를 바흐의 푸가 기법에 따라 99가지로 변주한 크노의 『문체 연습』을 번역한 움베르토 에코는 결국 이탈리아어로는 번역하기 힘들다며 한 가지를 다른 연습 버전으로 바꾸어 책을 옮긴 바 있다.

1960년에 수학자와 문학인을 중심으로 실험문학그룹 잠재문학작업실 울리포(OuLiPo)를 만든 장본인으로 곧잘 소개되는 레몽 크노. 그는 갈리마르출판사 플레이아드 총서 편집에도 관여했고, 1930년대 사르트르, 바타유, 메를로퐁티와 알렉상드르 코제브 밑에서 헤겔을 공부해 『정신현상학』에 관한 코제브의 헤겔 강의록을 1953년에 편찬하기도 했다. 아모스 투투올라의 『야자열매술꾼』을 프랑스어로 옮기고,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영화 〈한여름 밤의 미소〉 시나리오를 번역하기도 했으며, 루이스 부뉴엘 <애련의 장미> 대사를 쓰는가 하면, 칸영화제 심사위원도 했다가, 갖가지 영상작업 및 문학단체 활동도 했으나, 뭐니 뭐니 해도 그는 프랑스 현대문학사에서 기념비적 작품으로 남은 『문체 연습』(1947)과 『시 백조 편』(1961)으로 적어도 타국의 번역가들한테 꽤나 악명 높은 작품들의 창작자로 남아 있다. 현재까지 한국에 소개된 책은 소설 두 권 『지하철 소녀 쟈지』(2008)와 『연푸른 꽃』(2019)뿐인데, 그나마 한 권은 절판되어 헌책 가격이 세 배 가까이 호가되고 있다. 그렇다, 작가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없게 길게 한 건 이야기할 책이 번역의 (불)가능성을 재고하게 만드는 대표작들로 유독 자주 거론되는 작가의 만년작이라는 이유도 있고, 마침 그의 작품들이 곧 한국에 두 권 더 소개된다는 소식도 전하며 번역이라는 화두와 함께 미리 챙겨보자는 심산도 있다."

 

송지선 「레몽 크노 『연푸른 꽃』」

 

 

 

 

 

 

 

 

 

 

치매로 요양원에 계신 외할머니에 대해 "거리를 두고 미움을 털어내고 바라보니, 늙음도 병듦도 죽음도 할머니의 잘못이 결코 아니"었음을 사진으로 풀어낸 현다혜 「나의(羅衣)」 작업 좋았고, 이번 수록 소설 중에는 최진영 「피스」가 가장 좋았다.

모리스 블랑쇼 전집 마지막 권 『우정L’amitié』을 파스칼 키냐르 번역으로 반짝였던 류재화 번역가가 맡았다니 기대된다.

 

 

📖

"이 『우정(L’amitié)』 안에는 헤라클레스의 노역 같은 일을 고되게 하는 번역자를 위한 글이 위로와 응원처럼 실려 있다. 헤라클레스가 수행하는 힘든 일들을 동사적 관점에서만 보면 번역자의 그것과 흡사하다. 퇴치하고, 잡고, 청소하고, 따고, 발광하고, 살해하는. 그러나 종국엔 약간 쟁취한다. 시인이나 소설가, 문학평론가가 하는 일에 비해 저평가되거나 창조성을 인정받지 못해 굴욕당하지만, 번역가가 하는 일에 이미 문학 행위 본연의 것이 가장 ‘도착적’으로, 가장 ‘투쟁적’으로 있음을 블랑쇼는 이 글에서 피력한다. 헤라클레스가 바다의 양안을 한꺼번에 움켜잡은 것처럼 그에 버금가는 기동하는 강력한 통일력으로 두 언어를 보란 듯이 거만하고 의기양양하게 근접시킬 때 비로소 번역은 자신의 당당한 의무를 다한 것이고, 매력을 발산한 것이라고 응원한다. 블랑쇼가 번역자에게 요구하는 길은, 말라르메처럼 “시구를 파면서도” 프루스트처럼 “솟아올라” ‘전혀 다른 차원’(autre)의 세계를 만들라는 신성한 주문이다."

ㅡ 류재화 「모리스 블랑쇼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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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0-07-26 1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진영 <피스>만 안 읽었는데 꼭 읽어봐야겠어요. 이번 호 참 좋았어요. 잘 읽고 갑니다.

AgalmA 2020-07-27 10:08   좋아요 0 | URL
번역의 진기명기 같은 장면들을 바랐는데, 번역의 고통 담론들로 가득했던 거 같아 좀 아쉬웠습니다. 자본 문제도 있어서겠지만 해외 필진들과의 교류도 좀 많았으면 싶은데 예전보다 틀이 좁아지는 거 같은 점도 그렇고요.
최근 국내 소설들이 페미니즘적 접근으로 과몰입 상태인 거 같아 다양성이 부족하다 싶은데요. 최진영 단편은 소품 속에서도 많은 걸 보여줬다고 생각해 좋은 점수를 줬어요^^
 

 

 

 

 

2014년에 나온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이 전체 800여 쪽 중 평균 26쪽이 읽혀 호킹 지수 2.4%라고 한다. 경제학 책이 재밌는 건 아니지만 너무한 거 아닌가😅 신간 『자본과 이데올로기』(2020)는 1000여 쪽이 넘으니 호킹 지수가 더 걱정된다😅 난 『21세기 자본』을 완독했지만 힘들게 읽었던 기억 때문에 다시 펼치려면 짜증이ㅎㅎ;; 그래서 이번 신간은 e book으로 샀다. 보라, 얼마나 간편한 자태인가~ 에센스 북까지 한 번에 다 들고 다닌다. 크레마도 거추장스러울 땐 휴대폰으로 간편히~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빨리 여러 번 읽으려고 종이책 사면 주는 문학동네 브랜드전 사은품 우양산, 문진을 포기했다 T^T

개념 정리 등 길라잡이인 『자본과 이데올로기』 에센스북부터 읽고 본서를 읽으면 좋다.

이번 책은 경제학이 주력이 아니라 더 포괄적인 사회과학 서라고 봐야 할 텐데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급 스멜💙

슬라보예 지젝도 강변하듯 지금 자본주의 문제는 이데올로기 문제.

『21세기 자본』을 안 읽은 분이라면 종합된 이 책은 읽어보시길 추천.

 

 

 

📖

피케티는 모든 나라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다 불평등한데, 나름대로 그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각각의 불평등체제régime inégalitaire는 실제 지배계급의 구성도 다르고, 지배계급의 수탈방식도 다르며, 불평등을 설명하고 합리화하는 방식도 다르다. 전작이 불평등의 크기와 변동 추세를 주로 분석했다고 하면 이번 책은 여러 가지 불평등체제의 역사와 정치, 그리고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무대 전면에 등장한다. 불평등체제 중에서 세계 역사상 도처에 존재했고, 아주 오래 존속한 불평등체제로서 피케티가 이름 붙인 3원사회société ternaire 또는 3기능사회가 있다.

ㅡ 해제 : 이정우 『21세기 자본』 이후의 『자본과 이데올로기』

 

 

 

 

 

 

 

 

 

 

 

 

최근 사고픈 벽돌책이 많았다😑💦

작년 1월에 무라카미 하루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합본 1024쪽을 일주일 동안 읽었는데, 이번에 나온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합본은 800여 쪽으로 3일 걸렸다.

 

 

 

 

 

📘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일 차

'세계의 끝'의 성(城)과 문지기나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조직부터 카프카 냄새 풀풀~~

하루키가 두 세계를 오가는 구조를 짠 신호탄이었던 소설이라 능수능란보다 초창기 프레시함이 많이 느껴진다.

쌍둥이 같은 책, 향초, 향수가 나란히 있는 모습은 기묘한 기시감을 부르고, 거울처럼 마주하고 있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번갈아 읽기 시작한다.

벽돌책은 밤에 읽으면 금세 피곤해지므로 일과를 시작하기 전 아침에 읽는 게 좋다. 김난주 번역가가 이 책 번역을 통해 번역가로 뜨기 시작했고 35주년 기념으로 새 번역을 했다는데, 그래도 예스러움이 남아 있다. '방구석'이 아니라 '구석'이라 표현하는 게 훨씬 드라이했을 텐데ㅎㅎ

하루키의 트레이드 마크 문장인 '짐작이(도) 가지 않았다'만 보면 까르르😁

이번엔 스파게티와 연어 샌드위치를 먹어가며 읽을 정도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 같지만 오이 샌드위치 대목(88~89페이지)을 만나면 먹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다. 헛홋호호.

슬슬 한낮의 더위가 시작된다.

 

 

 

 

📘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2일 차

평일에는 한 번에 150페이지 정도 읽는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와도 괜찮겠나?"

하루키를 읽을 때 맥주 안 마시긴 어렵다. 오이 샌드위치 먹으려고 크림치즈도 샀다.

요즘 대형마트 아니면 max 사기 너무 어렵다. 편의점에서도 355ml는 없고 500ml만 간혹 볼 수 있다. 예전엔 그렇게 띄우더니 이젠 퇴물 취급.

하루키를 모델로 맥주 광고, 이젠 너무 늦었나. 일본 제품 불매 운동과 더불어 일본과 관련된 모든 것을 거부해야 한다며 일본 책도 읽지 말아야 한다는 극단까지 만나는데... 파시즘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사회에 만연한 갈등 공부가 절실해지는 요즘이다.

 

📖

"형사 피고인에 대한 평가 과정에서 두려움과 분노의 역할을 배제한다 하더라도 절도·폭행 살인 등과 같은 범죄를 막는 법 자체를 정당화하고, 법률 규제의 내용을 기술하기 위해서는 타당한 두려움과 분노라는 개념을 상당 부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반대자가 [감정에 대한] 호소 자체를 배제하게 되면, 그는 사람들이 손상에 대해 지니는 태도를 언급하지 않고 이러한 범죄가 왜 나쁜지 설명해야 하는 더 힘든 일을 안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전통적인 이해 방식을 대폭 수정해야 하는 엄청난 일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살인 폭행 등과 같은 행위가 왜 나쁜지를 일관되게 설명하려면 최소한 시민들이 그러한 범죄를 두려워하고, 이러한 범죄가 발생했을 때 분노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사실을 수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함축이 강조되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그렇다면 범죄자의 정신 상태를 평가하면서 '이성적인 사람'에 대한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다소 이상해 보이지 않겠는가?

전통적인 이해에 기대고 있는 이와 같은 대답은 [이 책에 담긴] 현재 계획 속에서는 완전히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기존 법률 관행에 의미심장한 변화를 줄 수 있는 제안을 내놓을 생각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변화를 제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내 목적에 부합하는 선에서 현재의 실행 방식으로 되돌아온다면 이는 모순일 것이다. 내가 제안하는 변화가 형법과 형법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감정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제거하려는 급진적인 변화에 비하면 작고 미묘한 것이라 해도 말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자유주의적 시각에서 이러한 반대에 대해 훨씬 더 강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

선택의 자유를 매우 중요한 선으로 여기는 자유주의는 가치의 문제에 대해 완전한 중립성이나 불가지론의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실제로 선택의 자유를 매우 중요한 선으로 간주한다는 사실 자체가 가치에 대해 중립적이지 않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자유주의 사회의 정치 문화는 가치 판단과 무관하지 않다. 자유주의는 도덕이 없는 개념이 아니라 부분적인 도덕 개념으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최근에 나온 자유주의 주장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는 찰스 라모어와 존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검토해 보자. 정치적 자유주의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라는 규범에 기반한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란 삶에서 좋고 소중한 것에 대해 [개인이 지니는]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는 것을 뜻한다.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종교적 세속적 시각이 존재하고, 이러한 시각 간의 불일치는 없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정치적 자유주의자들은 궁극적인 가치ㅡ예를 들면, 영혼불멸 사상이나 무엇을 개인적 덕성으로 볼 수 있는가와 같은ㅡ를 담고 있는 문제에 대해 사람들 사이에 일정 정도 타당한 불일치'가 존재한다고 여긴다. [그렇다고] 정치적 자유주의자들이 어떤 입장도 다른 것보다 낫지 않다고 보는 회의주의자는 아니다. 그들은 많은 경우 이러한 불일치가 이성적인 사람들 사이에 생길 수 있는 타당한 불일치라고 생각한다. 이 경우, 정치 사회는 그러한 차이를 사람에 대한 존중을 위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를 존중한다고 해서 정치적 자유주의자가 가치 중립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사람에 대한 존중은 하나의 매우 기본적인 '가치'이며, 이런 점에서 정치적 자유주의자들은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정치 사회의 많은 다른 측면에도 함의를 지닌다."

 

ㅡ 마사 너스바움 『혐오와 수치심』

 

 

 

 

 

 

 

 

 

 

📘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3일 차

비가 주룩주룩.

빗소리에 눈 뜨고 어린 내 화분들은 동자승처럼 비를 맞고 있다.

트리안은 2년 넘게 길렀는데 정글처럼 흐드러지려면 한참 멀었다.

산호수는 강한 생명력을 온몸으로 뿜는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한결같다. 나보다 기가 세.

라벤더는 자기 기분이란 게 확실하다.

율마는 꼿꼿한 어린 양 같다.

유칼립투스는 여리여리하게 보여도 만만하게 보는 걸 거부한다.

산세베리아는 내게서만도 10대 손이 넘게 번창 중이다. 주위에 분양도 참 많이 했다. 얘도 증증증...손(의미없는 구분)

바질은 두 달도 안 되어 열심히 잡아먹히는 중.

여름이 좋아.

책도 잘 읽힐 거 같은 비 오는 날.

계절 단어를 꼭 넣는 하이쿠를 지어도 좋은 날.

'세계가 끝난다'는 것은 지구 종말 스토리의 sf나 전쟁이 아니어도 한 사람이 죽을 때마다 실제로 일어난다. 파괴되거나 망가지는 것과 전혀 다른 정말 끝난다.

 

주말이라 세계가 끝날 듯이 몰아쳐 읽었다.

 

 

 

 

 

 

하루키는 나이 들어 읽을수록 더 공감하게 된다. 어렸을 때는 '나'라는 자의식의 힘겨움에 관심이 갔다면 주인공의 나이를 거친 뒤에는 돌이킬 수 없는 삶의 소회와 에티튜드, 그 만의 판타지가 눈에 더 밟힌다.

 

처음 읽었을 때처럼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결말을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여전히 생각했다.

'가출한 아내' 모티프는 이후 소설에도 계속 출현ㅎㅎ 『태엽감는 새 연대기』가 절정ㅎ

 

 

 

 

📘 하루키로 인한 책 사태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리뷰 쓰기 전에 '의식' 관련 책을 좀 살펴보다가 일이 커지고 있다.

 

프랭크 설로웨이는 저서 『타고난 반항아』 에서 출생 순서와 가족의 역학 관계가 개인의 성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뤘다. 즉 '출생 순서의 차이는 맏이와 동생이 전형적으로 차지하는 생태 지위의 차이'를 반영한다. 맏이는 부모와 자신을 더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부모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간에 공감하는 경향도 보인다. 동생들의 전형적인 전략은 손위 형제가 이미 차지한 생태 지위를 놓고 경쟁하면 성공할 수 있을지를 살펴'본다. 이 연구는 밀레니얼 세대, 페미니즘 세력의 적극적 사회 참여에 어떤 실마리를 제공한다. 부모 세대에 동조하는 맏이와 다른 전략을 꾀하는 동생, 자유로운 막내들은 급진적 변혁에 참여하는 경향이 많다. 여성 경우, 역사적으로 급진적 대의를 지지하는 여성들은 특이한 집단을 이루는 경향이 있다. 집단의 평균 남성보다 훨씬 더 자유주의적이고, 그들은 부모와 상당한 갈등을 겪었을 가능성이 더 높으며, 동생이거나 막내일 가능성이 높다. 『작은 아씨들』에서 둘째 조 마치와 막내 에이미의 성격이 그저 우연은 아닌 셈. 흥미로운 점은 외동들은 선택의 자유가 크므로 변수가 많은데, 급진적 우익과 적극적 사회 참여자 등등 지금 세대의 사회적 다양성을 유추할 수 있다. 외동아들이었던 하루키의 성향도 작품의 성격을 가꿔 왔던 바 흥미롭지.

그러나 이 책『마음의 과학』은 유전과 환경의 요인들을 번갈아가며 짚고 있으므로 끝까지 객관성을 견지하며 살펴봐야 한다.

📖

"태아는 이 양수에서 사실상 헤엄치고 있다. 우리는 테스토스테론, 이른바 남성 호르몬이 양수에 얼마나 많은지 분석했다. 사실 그것은 남성 호르몬이 아니다. 남녀 모두 그것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저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이 생산할 뿐이다. 남성은 그것을 고환에서 만들고 여성은 부신에서 생산한다. 그리고 남아들 중, 혹은 여아들 중에서도 개인마다 생산되는 양이 다르다.

(중략)

태아의 호르몬 생산 농도가 유년기 중반의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있다. 이것은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의 차이를 설명할 때 생물학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중략)

실험 결과 우리는 여아보다 남아가 전동 모빌을 더 오래 쳐다본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아보다 여아가 사람의 얼굴을 더 오래 쳐다보았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있는 성차였으므로, 경험이나 문화의 차이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생후 24시간 된 아기들이었다."

ㅡ 사이먼 배런코언 「동류 교배 이론」

"왜 아이는 그토록 오랫동안 무력한 상태로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말 그대로 아이를 그저 ‘살아 있도록’ 하는 데 그토록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일까?

조류와 설치류를 비롯하여 여러 종들을 살펴보면 긴 미성숙 단계가 고도의 융통성, 지능, 학습과 상관이 있음을 알게 된다. 까마귀와 닭을 보라. 까마귀는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라고 《사이언스》 표지에 실린 반면, 닭은 닭고기 수프가 된다. 까마귀는 닭보다 미성숙 단계, 즉 의지하여 사는 기간이 훨씬 길다.

특정한 진화적 생태 지위에 알맞게 설계된, 아주 섬세하게 빚어진 모듈을 선천적으로 가질 수 있는 전략이 있다면 그것을 갖추고 태어나는 것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전략을 쓸 수도 있다. 어떤 특정한 생태 지위에 딱 맞도록 설계되는 대신에, 새로운 환경을 상상하고 그것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비롯하여 자신이 찾아낼 수 있는 온갖 다양한 환경을 학습할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쓰는 전략이다. 하지만 그 전략에는 한 가지 큰 단점이 있다. 바로 그 모든 학습을 하는 동안 무력한 채로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ㅡ 앨리슨 고프닉 「놀라운 아기」

 

 

자유주의와 페미니즘의 연결로 문제가 복잡해졌다. 생물학적 결정 요인을 전면 거부하고 사회, 환경, 학습 등 외부 요인을 더 크게 끌어들여 성 문제를 젠더 문제로 바꿀 때 본질적인 걸 간과 혹은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뇌는 컴퓨터가 아니고(컴퓨터와 작동 원리가 유사하다는 것 자체를 거부)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다/없다는 논쟁에서도 그런 성질을 엿볼 수 있다. 사실상 모든 것이 우리를 만든다.

『마음의 과학』은 다 읽었고, 스티븐 핑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읽고 싶은데 전자책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사고 싶은 책 속속 등장, 착착 구매

☆ 미셸 우엘벡 『세로토닌』

『소립자』처럼 특색 있는 제목, 역시 우엘벡이다👍

 미셸 푸코 컬렉션으로 모은 『담론의 질서』

 발터 벤야민 선집 신간 『카프카와 현대』

 

 

 

 

 

 

 

 

 

🎁 알라딘 굿즈 / 7월 알라딘 굿즈

✔ 본투리드 머들러(나는 고양이로소이다, 2,000원)

- 플라스틱 막대가 부실해서 살살 사용해야겠음.

✔ 본투리드 티셔츠(빨강머리 앤, 5,000원)

북 파우치(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000원)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세트 파우치가 생겼다💙

※ 파우치와 동일한 문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권은 두꺼워서 지퍼 안 잠겨요😅

✔ 알라딘 우산(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3,500원)

- 지식교양 분야 사면 받는 사은품 중 하나.

✔ e book 사은품이 풍성해졌는데 홀로그램 유리컵(야생의 위로, 2,500원) 엄청 예쁘다😍

✔ 알라딘 21주년 포장팩

- 왜 안 오나요😭 포장팩을 여러 번 사고 있는데 계속 실패.

✔ 품절이다가 판매 재개된 6컬러 스티키 북마크 색깔이 예전보다 톤 다운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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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0원 하는 알라딘 큐브 메모지 3분의 2 크기인데 착한 가격의 미셸 우엘벡 떡 메모지 매우 흡족😘

빨리 샀더니 양장노트는 놓쳤다😢

 엘살바도르 엘 보르보욘

- 알라딘 원두는 이름이 날로 거창해짐ㅎㅎ

 하루키 리유저블 컵(2,000원)

- 파란색이 예쁘던데 랜덤 운이 없었다ㅜㅜ 

 

 

 

 

 

 

 

 

 

 

 

 

 

 

 

 

 

 

 

📘 모두에게 세로토닌이 필요한 날들

마스크도 쓰지 않고 어젯밤 내 앞을 막아선 중년 여자. 위험보다 도움 요청이 더 신경 쓰여 발길을 멈췄다. 예배 모임 단체 카톡 보내기를 대신해달라는 요구에 당황스러우면서도 화가 났다. 코로나19 전파가 대부분 이런 종교 모임인데 이들은 여전하다. 두려움을 신념으로 극복하는 게 어디까지 현명한 걸까. 신앙인은 종교를 방패 삼아 극도로 평가를 거부한다. 나는 무뚝뚝하게 도와줬고 집으로 돌아와 더 박박 씻었다. 잘못을 지적하거나 이러지 마시라고 설득해야 했을까. 이미 늦었다. 혼자일 때도 여럿일 때도 우린 자주 어리석고 미숙하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논픽션》은 제목대로 현실적이었다. 디지털로 인한 급격한 변화와 얽히고설켜 역설적인 불투명성은 고스란히 현대인의 성격이 되고 있다.

출판사 대표 알랭은 종이책과 e book의 각축 속에 어떻게든 실적을 올리고 싶어 한다. 그는 출판사 직원 로르와 외도 중인데 그녀를 통해 문화와 인식 변화를 체감한다. 그의 아내 셀레나는 연극배우였지만 인기 tv 시리즈에서 위기 대처 전문가 역으로 유명해졌다. 그녀는 현실에 타협하며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이미지로 변하고 굳어가는 게 싫다. 작가 레오나르와 외도를 하며 일탈도 하지만 가정으로 연극으로 돌아간다. 타협하는 건 보수적인 것이고 변화는 언제나 진보적일까. 글쎄. 레오나르는 실존인물들을 가져오고 자전적 연애사를 소설로 쓰며 소설의 인물과 독자가 읽어내는 인물이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관심과 평가의 경계가 없듯 많은 사람들은 그의 소설이 어느 정도 사실인지 계속 추궁하고 타인을 돈벌이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한다.(최근 김봉곤 단편들도 이런 논란에 휩싸였다) 레오나르의 아내 발레리는 정치인의 비서를 하며 현실적 노력보다 삐딱하게 논평하기 바쁜 지식인 무리들을 혐오한다. 그러나 그녀가 보좌하던 정치인이 성 매매를 하려 한 것을 수습하려는 그녀의 참여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남편의 외도 문제에서도 그녀는 비슷한 모습이었다. 진실이 드러나 자신의 사랑이 깨지기보다 보고 싶지 않은 부분을 외면하려 했다. 양비론이 아니라 나는 우리 각자가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담그고 있을 발과 보려 하지 않는 마음을 생각한다. 현실처럼 이 영화에서도 100% 전문가도 100% 진실한 자도 없다. 엔딩에서 레오나르는 포기하고 있던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을 발레리에게서 듣는다. 행복과 고통은 한 몸이다. 진심과 진실은 고정적이지 않고 불변의 가치도 아니다. 고 박원순 전 시장 사건과 관련된 여러 가지 것이 오버랩 돼 영화를 보는 내내 맘이 참...

박 전 시장에 대한 두둔과 배신감과 분노의 글들을 보며, 진보나 윤리의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사실상 '더 나은 세상'이라는 기치 아래 우리가 사람을 너무 효용의 가치로만 봐왔던 것은 아닐까. 인권과 사회를 위해 헌신해왔던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아니, 그럴 수 있다. 매우 매우 실망스럽지만 사람은 언제나 그럴 수 있었다. 그렇게 중요한 위치에서 어떻게 자기가 추구해온 모든 것에 반하는 이율배반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 자살은 비겁했다는 비난은 너무나 비판자 위주의 평면적 공격이다. 그 죽음은 책임 회피와 비겁과 논란의 종결만을 바란 의미만 볼 수 없다. 현실의 거미줄과 그 죽음의 기의들 때문에 우리는 더욱 혼란이고 고통스럽기에 빠른 해결을 촉구한다. 피해자 우선, 가해자 두둔으로 편향될 게 아니라 더 이성적으로 더 찬찬히 이 문제를 봐야 한다. 그래서 모두가 골치 아프고 고통스럽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라는 대사는 슬라보예 지젝이 문제의 매듭을 풀려고 끙끙댈 게 아니라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단번에 끊어야 한다고 한 것과 상통한다. 많은 암묵 속에서 그저 변화가 찾아오길 바랄 수는 없다.

 

 

그늘이 무척 아름다운 날들이 이어진다. 여름에만 가능한 풍경.

레오나르가 사람들을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드는 자기 소설의 의미에 대해 자조하자 알랭은 그런 걸 필요로 하는 독자도 있다고 말한다. 미셸 우엘벡도 그런 종류의 소설가다.

그늘 속을 오가며 미셸 우엘벡 『세로토닌』을 맘껏 우울해하며 읽었다.

모두에게 세로토닌이 필요한 날들.

 

 

 

 

 

 

 

📘 주말 나들이는 책방

 

 

 

 

알라딘 21주년 기념 크로스 럭키백(13,000원, 일 년 5만 원 오프라인 매장 할인 혜택)이 온라인 서점에서는 품절이길래 알라딘 중고매장 갔다. 품절에 당황하지 말고 신속히 대피...가 아니라 오프라인 매장으로ㅎㅎ

보통 에코백보다 아담한 사이즈고 손잡이, 크로스 끈 둘 다 있어 편리하다.

온라인에서 아이보리와 블랙 중 뭘 사나 고민하다 실물 보고 결정하려고 매장 왔는데 실물로도 한참 고민했다😂

올여름도 블랙 마니아로 가기로 했다ㅎㅎ

럭키백이 가장 인기였는데 3~5분마다 럭키백 결제 사항을 알리는 판매원의 목소리가 '당신, 안 사면 후회할 거야, 우후후' 경매장 분위기를 만들었다🤡

온라인에서 찜한 책은 제자리에 없어 못 찾겠거나 책 상태가 맘에 안 들어 안 사고 장바구니에 담아뒀다 보관함으로 옮겼던 책 구매.

프랑수아 줄리앙 『불가능한 누드』(2019, 들녁출판사)

- 서양 철학자이자 중국학자인 저자의 탐색이 궁금했더랬다. 왜 동양은 누드가 그토록 발전을 못했고 그것이 철학과 관념의 문제였다는 고찰.

역자가 지인에게 증정한 사인이 있는데 이런 책을 중고로 만나면 💦💦💦 역자에게서 영월 조선민화박물관에 조선 시대 춘화를 모은 '19금의 방'이 있다는 정보 습득.

김유림 『양방향』(2019, 민음사) 구매.

- 직접 보고 구매하려고 민음북클럽 온라인 패밀리데이 때 안 샀는데 읽어보니 호기심이 생겼다.

말괄량이 삐삐 우산파우치 실제로 보니 몹시 탐났지만 9800원이나 하고 굿즈는 럭키백 할인을 안 해줘서 참았다T^T)

럭키백에 책 담아 오려고 했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포장 봉투가 예뻐서 안 살 수 없었다😆 가방을 봉투에 담아오는 코미디🤣🤣🤣 선물상자 외에도 앨리스 포장 봉투도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다면 좋을 듯.

 

 

 

 

 

 

 

 

 

 

 

 

 

 

 

📚 베케트, 베케트, 베케트 - 회색도 흰색도 아닌

10번 이상 읽은 문장이 있다. 울컥 다리에 힘이 풀리는 순간이다. 출근길이 아니어도 어디에서도 적당하지 않은 마음과 속도로 더 회색으로 더 검정으로 향하라는 가속 페달이다. 같은 생각을 계속하듯 같은 노래가 되풀이된다. 무엇과도 마주치지 않고 도달할 장소는 현실에 없다. 쾅 부딪히는 소리는 났는데 닫힌 기억을 가질 수 없다. 가늠할 수 없어 슬픔도 기쁨일 수도 없다. 다만 수수께끼일 뿐. 카운팅을 헤아릴 수 없는 삶. 정신 차릴 수 없는 삶. 환생과 부활이라니 의심만큼 믿음도 인간적이지. 내가 나이지 않길 바라면서 같아야 한다는 이상한 기도와 요구. 구름이 동쪽으로 서쪽으로 움직인다고 말하듯이 상대적이라는 말, 착각이라는 말은 쉽다. 회색도 흰색도 찾을 수 없었고 현실과 꿈의 차이를 누구도 밝히지 못했다. 다시 질문이거나 수수께끼일 뿐. 문득 나타난 풍경이 그렇듯.

📖

"어느 날 그가 나에게 이제 놓아달라고 말한다. 그는 그런 동사를 사용했다."

- 사뮈엘 베케트 『죽은-머리들』

 

많은 문장가가 있지만 베케트는 미치게 만드는 문장가다.

 

 

 

 

1931년 비평집 『프루스트』

1933년 단편집 『발길질보다 따끔함』

1935년 시집 『에코의 뼈들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

1945년 미술 비평 『세계와 바지』

1953~4년 장편 소설 『몰로이』,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1946년 단편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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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 집필한 장편 소설 『와트』(1945년)는 국내 출간되지 않았고, 뒤이어 쓴 초기 소설 3부작도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 중 두 작품만 번역되었다.

베케트는 50~ 60년대에 희곡과 라디오극에 집중했다.

나는 『몰로이』, 『죽은 머리들/소멸자/다시 끝내기 위하여 그리고 다른 실패작들』(60년 대 중반 단편 선집), 『포기한 작업으로부터』(초기 단편과 후기 산문 모음), 『프루스트』 를 가지고 있다.

『발길질보다 따끔함』은 지금 배송 중이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도 곧 ✔

 

 

 

 

 

 

 

 

 

 

 

 

 

 

 

 

 

 

 

 

 

 

 

 

📖

"화자에게 작품 구조의 디딤돌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인 게르망트 대공 부인(전 베르뒤랭 부인)의 서재에서, 구조를 이루는 소재의 본질은 이어지는 오후 연회에서 밝혀진다. 그가 쓸 책은 이미 머릿속에서 형태를 갖춘다. 그는 여러 결함을 안고 있는 문학적 규범들이 작가로 하여금 타협하도록 강요함을 인식한다. 작가로서 그는 원인과 결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가령 주체적 욕망의 빛나는 투영은 이를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로 표현해 중지(왜곡)시켜야 할 필요가 있게 된다. 그가 가장 신중하게 관찰하는 대상들에게조차 마땅히 어울리는 가면을 수백 개 준비하기란 불가능하다."

ㅡ  사뮈엘 베케트 『프루스트』

 

 

이 대목을 읽으며 김봉곤 작가를 떠올렸다. 고 박원순 전 시장 일도 있어 사태가 악화일로였다. 실존 인물을 쓸 때 작가는 가공해야 할 필요와 책임을 진다. 자전적 글쓰기는 더 딜레마에 빠지는데, 능력의 문제도 있지만 실제 창작을 해본 사람은 안다. 실존 인물과 사실적 모습이 드러내는 아우라가 창작을 통해 윤색되는 게 싫다.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가감 없이 보이려 한 김봉곤 작가의 성향과 글쓰기의 지향에서는 더 문제였을 것이다. 자신과 문학 앞에서의 솔직과, 세계와 대상에 대한 윤리적 책임이 저울에 올라갔을 때 세계는 언제나 윤리에 기울라고 강요한다. 정신없이 요동치며 인간이 만들고 있는 이 세계는 진정 균형추인가. 김봉곤 사태에서 거론된 소설은 작품 자체만으로 봤을 때 나는 큰 점수를 주고 싶지 않았다. 논란이 된 대화들이 제일 불필요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발목을 잡다니... 그 소설들로 인해 다른 좋은 작품까지 폐기 처분되는 게 안타까웠다.  김봉곤 사태에서 민감한 타인의 사생활을 가져오며 동의를 구하는 과정도 가공도 없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는데, 요즘 지탄받는 사회적 윤리 문제보다 작가가 피해자들과 신뢰 관계를 만들지 못한 게 더 큰 요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본질적인 건 다르지만 나도 창작하는 지인들에게 내 표현 일부를 써도 괜찮냐는 물음을 받고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동의해 준 적 있다. 김봉곤 작가는 문학은 이래도 된다는 창작의 자유, 문학의 가치에 취했었던 거 같고 대상에 대한 존중과 배려도 잊은 것 같다. 그러나 요즘 사회는 반성보다 즉각적 처벌이 우선시 되고, 조금만 잘못해도 범죄자로 낙인찍는 거 같아 씁쓸하다. 반성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해서 이렇게 되는 거 같아 착잡하다.

 

 

 

 

 

 

 

 

 

 

📓 프란츠 카프카 『꿈 같은 삶의 기록』(카프카 전집 2, 솔출판사)

- 구판 팔고 개정판으로 교체했다. 내부 편집이 예전보다 깔끔해 흡족하다.

문제가 많았던 막스 브로트 판이 아닌 1980~1990년대에 걸쳐 독일 피셔출판사가 충실히 원본을 살린 카프카 전집의 결정본 ‘역사 비평판Kritische Ausgabe’.

'꿈과 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그의 글을 사랑하는 이들은 안다.

 

 

 

 

 

 

 

 

 

하루키 때문에 펼쳐든 『보르헤스의 상상동물 이야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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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8-15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봉곤 작가에 대한 AgalmA님 의견에 공감합니다. 방금 책을 읽기도 했고 논란이 된 대화부분이 맘에 들지 않았고.. 작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도 같고. .
정신없이 책 주문하고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AgalmA님의 격이 다른 책들에 감탄♡@_@;;

AgalmA 2020-08-19 21:00   좋아요 1 | URL
친한 사람들이니 괜찮을 거라 생각한 거 같거든요. 성인지 감수성, 윤리적 책임을 강도높게 묻고 책임을 져라 하는 공격적 질책으로만 볼 게 아니라 싶었습니다. 작가라는 자리도 공인이니 책임을 무겁게 지신 거 같은데, 지금으로선 그의 다음 책을 기다려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정신없이 주문과 죄책감... 같은 지병을 앓고 계셔서 의지가 됩니다ㅠㅋㅠ;;;)/
격은 무슨. 책세상이 워낙 넓으니 각자 자기 책 여행하기 바쁜 거죠 뭘ㅎㅎ;;
 
엘살바도르 엘 보르보욘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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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백, 원두 둘 다 먹어봐도 제 입맛에는 그냥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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