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스트 Axt 2020.7.8 - no.031, 창간 5주년 기념호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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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의 키워드는 '번역'

알랭 드 보통, 주제 사라마구, 특히 필립 로스 번역가로 각인된 정영목 번역가가 cover story 주인공이라 반가워하며 읽었다. 필립 로스와 프리모 레비가 절친이었다는 건 정말 의외. 극과 극 같으면서 시대를 견딘 모습은 닮은 듯도 하지만. 깜빡했는데 존 업다이크 『달려라, 토끼』도 정영목 선생의 번역이었다. 줄리언 반스 『연애의 기억』도 번역 좋았는데, 어째 정영목 선생은 편집증적인 남성 작가 번역을 잘 하시는 듯ㅎㅎ; 선생 번역으로 관심 책이었던 몇 가지 체크✔

 

 

 

 

 

 

 

 

한 달에 100페이지, 1년에 4권 번역이라 '시간이 노동력'이란 말씀에 매우 공감했다. 흔히 번역을 또 하나의 '창조'라고 하지만 '훌륭한 창조'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말씀에도 동감.

 

 

"정영목 : 번역의 기본적인 과제는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게 만드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매일 쓰는 말을 자의식을 가지고 다시 들여다보고, 다시 씹어보는 행위가 필요해요. 그 과정에서 생소하고 낯선 개념들이 들어오겠죠. 그걸 내 언어로 말하기까지 얼마나 괴롭고 힘들겠어요? 긴 시간이 걸릴 거예요. 그건 말로만 되는 게 아니라 구성원들에게 개념이 이해되고 공유되는 과정이 필요한 거니까."

 

 

이번 호는 번역가들의 번역 이야기가 대거 실렸는데

김영준 「윌리엄 트레버 『윌리엄 트레버』」

허유영 「우밍이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

김현우 「번역, 그 소심한 말 걸기」

김승욱 「번역을 업으로 삼은 사람의 반성문」

네 편이 재밌었다. 각각 생각하는 번역의 정의와 의미들을 들으며 함께 생각해보는 계기였다.

 

 

📖

"부담스러운 연상이 따르지만, 우리 시대에 번역은 화용론이다.

기호론 분야에서 의미론은 단어와 문장의 의미에 집중하는 데 반해, 화용론은 ‘주어진 언어를 있게 하는 언어의 주변을 설명하는 데 주력하는 분야로, 말하는 이, 듣는 이, 시간, 장소 등으로 구성되는 맥락 속에서의 언어사용을 다룬다’. 언어란 같은 단어, 같은 문장이라도 맥락에 따라 결정적 차이가 날 수 있으며, 의미와 의도의 엇갈림으로 반어, 풍자 같은 즐거움을 허락하기도 한다.

(중략)

어찌 보면 언어는 사람과 비슷하다. 옆 사람 눈치를 보는 버릇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번역이나 번역 비평을 할 때는 그 단위를 문장에 국한하지 말고, 문단(단락)으로 넓혀서 보자는 것이다. 문단 속에는 문맥이 일관되게 흐른다. 문단을 구성하는 문장은 저마다 독립된 의미를 갖고 있지만, 문맥이 없으면 대부분의 문장이 제 빛깔을 내지 못한다. 결국 번역할 때는 문장에만 집중하지 말고 문장과 문장의 흐름, 그 맥락이 빛을 발하게 하는 것이 번역자(또는 비평자)의 한 미덕이 아닐까 한다.

ㅡ 김한영 「연탄재를 위한 변명」

 

 

"존 버거는 번역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번역은 두 언어들 사이의 양자관계가 아니라, 삼각관계이기 때문이다. 삼각형의 세 번째 꼭짓점은 원래의 텍스트가 쓰이기 전 그 단어들 뒤에 놓여 있던 것이다. 진정한 번역은 이 말해지기 전의 무언가로 돌아가야 한다.(존 버거,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8쪽)

번역은 한 언어로 된 문장을 다른 언어로 변환하는 과정이다. 당연하다. 존 버거의 위의 문장이 번역 작업에 대한 통찰을 준다면, 입력언어와 출력언어 외에, ‘경험’을 언급했다는 점이다. 역시 당연한 이야기지만, 번역에 대한 이야기에서 너무 많이 빠져 있었던 그 경험의 영역. 번역의 과정에 개입되는 두 개의 언어보다 어쩌면 먼저 있었던 그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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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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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행위는 언제나 고백이다,라고 카뮈는 썼다. 조용히 문을 닫는 것도 고백이었다. 한밤중에 터뜨리는 울음과, 계단에서 넘어지는 것, 거실에서의 기침도 마찬가지였다.(니콜 크라우스, 『위대한 집』, 3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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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사람은 직접 자기 이야기를 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사례, 자신의 경험과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사례를 전하면서 슬쩍 자기의 이야기도 꺼내놓는다. 그런 방식의 표현밖에 못하는 사람, 도무지 전면에 나서지 못하겠는 사람들의 표현 방식, 그건 번역가의 방식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창작자가 표현하는 사람이라면 번역가는 인용하는 사람이라고 구분할 수도 있겠다. ‘조용히 문을 닫는 것도 고백이었다’라고 직접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그 문장이 전하는 어떤 경험을 알아볼 수는 있고, 그것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나의 경험에 대해서도 표현한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거면 됐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분명 어떤 식으로든 나의 경험을 내 밖에 내어놓은 것이 된다. 니콜 크라우스의 문장을 빌리자면 “옮기는 것도 고백이었다”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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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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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가 누구냐에 따라 그 음악은 다른 연주, 즉 ‘퍼포먼스’로 내게 경험된다. 동일한 악보에서 서로 다른 퍼포먼스가 나오는 것은, 연주자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고, 연주가가 원작에서 감지한 경험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안드레이 가브릴로프와 글렌 굴드의 차이에 대해 알게 된 후, 나는 번역도 어쩌면 연주에 가깝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외국어로 쓰인 원작을 우리말로 연주하는 작업, 퍼포먼스. 대부분의 독자들은 원작이 아니라 번역가의 퍼포먼스를 접하게 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글렌 굴드니 스뱌토슬라브 리흐테르니 하는 훌륭한 연주자들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은, 그들의 이름값에 버금가는 아름다움이나 뛰어남을 번역가도 온전히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을 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무언가를 옮겨서 전한다는 의미에서 두 작업에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 그리고 연주의 비유를 들면 사람들에게 번역 작업의 본질과 그에 따른 한계, 그리고 번역가의 ‘해석’에 대해 좀 더 쉽게 전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을 뿐이다."

ㅡ 김현우 「번역, 그 소심한 말 걸기」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많이 모았는데(e book으로는 분량 많은 제임스 서버, 헨리 제임스, 제임스 러디어드 키플링, 플래너리 오코너를 가지고 있음) 『윌리엄 트레버』가 없다니! 종이책이냐 e book이냐 매우 고민되지만 일단 장바구니로!

 

 

 

 

 

 

 

 

 

 

송지선 「레몽 크노 『연푸른 꽃』」 보고 장바구니에서 계속 대기 중이던 크노 책도 빨리 사고 싶어졌다.

 

 

📖

"레몽 크노(Raymond Queneau, 1903~1976)는 그의 작품들을 번역하고자 하는 자에게, 언어의 뿌리가 같은 로망어권이건 아니건, 면류관과 월계관을 동시에 씌워줄 작가이니 말이다. 일례로 이 책의 이탈리아어판은 한국 독자에게도 익숙한 이탈로 칼비노가 시도했고, 하나의 동일한 이야기를 바흐의 푸가 기법에 따라 99가지로 변주한 크노의 『문체 연습』을 번역한 움베르토 에코는 결국 이탈리아어로는 번역하기 힘들다며 한 가지를 다른 연습 버전으로 바꾸어 책을 옮긴 바 있다.

1960년에 수학자와 문학인을 중심으로 실험문학그룹 잠재문학작업실 울리포(OuLiPo)를 만든 장본인으로 곧잘 소개되는 레몽 크노. 그는 갈리마르출판사 플레이아드 총서 편집에도 관여했고, 1930년대 사르트르, 바타유, 메를로퐁티와 알렉상드르 코제브 밑에서 헤겔을 공부해 『정신현상학』에 관한 코제브의 헤겔 강의록을 1953년에 편찬하기도 했다. 아모스 투투올라의 『야자열매술꾼』을 프랑스어로 옮기고,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영화 〈한여름 밤의 미소〉 시나리오를 번역하기도 했으며, 루이스 부뉴엘 <애련의 장미> 대사를 쓰는가 하면, 칸영화제 심사위원도 했다가, 갖가지 영상작업 및 문학단체 활동도 했으나, 뭐니 뭐니 해도 그는 프랑스 현대문학사에서 기념비적 작품으로 남은 『문체 연습』(1947)과 『시 백조 편』(1961)으로 적어도 타국의 번역가들한테 꽤나 악명 높은 작품들의 창작자로 남아 있다. 현재까지 한국에 소개된 책은 소설 두 권 『지하철 소녀 쟈지』(2008)와 『연푸른 꽃』(2019)뿐인데, 그나마 한 권은 절판되어 헌책 가격이 세 배 가까이 호가되고 있다. 그렇다, 작가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없게 길게 한 건 이야기할 책이 번역의 (불)가능성을 재고하게 만드는 대표작들로 유독 자주 거론되는 작가의 만년작이라는 이유도 있고, 마침 그의 작품들이 곧 한국에 두 권 더 소개된다는 소식도 전하며 번역이라는 화두와 함께 미리 챙겨보자는 심산도 있다."

 

송지선 「레몽 크노 『연푸른 꽃』」

 

 

 

 

 

 

 

 

 

 

치매로 요양원에 계신 외할머니에 대해 "거리를 두고 미움을 털어내고 바라보니, 늙음도 병듦도 죽음도 할머니의 잘못이 결코 아니"었음을 사진으로 풀어낸 현다혜 「나의(羅衣)」 작업 좋았고, 이번 수록 소설 중에는 최진영 「피스」가 가장 좋았다.

모리스 블랑쇼 전집 마지막 권 『우정L’amitié』을 파스칼 키냐르 번역으로 반짝였던 류재화 번역가가 맡았다니 기대된다.

 

 

📖

"이 『우정(L’amitié)』 안에는 헤라클레스의 노역 같은 일을 고되게 하는 번역자를 위한 글이 위로와 응원처럼 실려 있다. 헤라클레스가 수행하는 힘든 일들을 동사적 관점에서만 보면 번역자의 그것과 흡사하다. 퇴치하고, 잡고, 청소하고, 따고, 발광하고, 살해하는. 그러나 종국엔 약간 쟁취한다. 시인이나 소설가, 문학평론가가 하는 일에 비해 저평가되거나 창조성을 인정받지 못해 굴욕당하지만, 번역가가 하는 일에 이미 문학 행위 본연의 것이 가장 ‘도착적’으로, 가장 ‘투쟁적’으로 있음을 블랑쇼는 이 글에서 피력한다. 헤라클레스가 바다의 양안을 한꺼번에 움켜잡은 것처럼 그에 버금가는 기동하는 강력한 통일력으로 두 언어를 보란 듯이 거만하고 의기양양하게 근접시킬 때 비로소 번역은 자신의 당당한 의무를 다한 것이고, 매력을 발산한 것이라고 응원한다. 블랑쇼가 번역자에게 요구하는 길은, 말라르메처럼 “시구를 파면서도” 프루스트처럼 “솟아올라” ‘전혀 다른 차원’(autre)의 세계를 만들라는 신성한 주문이다."

ㅡ 류재화 「모리스 블랑쇼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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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0-07-26 1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진영 <피스>만 안 읽었는데 꼭 읽어봐야겠어요. 이번 호 참 좋았어요. 잘 읽고 갑니다.

AgalmA 2020-07-27 10:08   좋아요 0 | URL
번역의 진기명기 같은 장면들을 바랐는데, 번역의 고통 담론들로 가득했던 거 같아 좀 아쉬웠습니다. 자본 문제도 있어서겠지만 해외 필진들과의 교류도 좀 많았으면 싶은데 예전보다 틀이 좁아지는 거 같은 점도 그렇고요.
최근 국내 소설들이 페미니즘적 접근으로 과몰입 상태인 거 같아 다양성이 부족하다 싶은데요. 최진영 단편은 소품 속에서도 많은 걸 보여줬다고 생각해 좋은 점수를 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