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youtu.be/9HO08GwRMG0

ㅡ 모임 별(Byul. org) / 영원이 시간을 관통하는 그 순간 나를 보지 말아요


*
음악도 공중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방식 아니, 거의 모든 게 거기 있는데
돌아서면 글자들(만, 이, 라도 ...... 조사는 취향대로 선택) 소용없이 느껴지는 한밤
믿지 않았어도 1인분이 안되는 무엇이 앞에 있다
아무리 많아도 두려움은 자신의 것. 덜 수 없어
도로시를 데려간 허리케인이 내게 올 확률은?
당도할 곳이 놀이동산 같을 거라고 꿈꾸지는 않았어 어차피 그곳도 혼자일 테니
혼자서 타는 롤러코스터 참 많았지
허공을 입안에 가득 채우고 세상, 사랑, 너 따위라 말하는 순간도 지나갔지
공중에서 만들어지고 무너지는 말, 실, 웃음과 울음
도무지 성근데 글자를 울타리로 숄로 후라이팬으로 망치로 빙빙 (휘, 서 ...... 접두어도 취향대로)두르고 있는 온밤
빙그르르, 그만둬
실을 잣지 않고 풀어두고 싶었다 세헤라자드도, 페넬로페도 사실 그랬을 거야
콜라주를 하는 걸까 콜라주가 되는 걸까, 우리는
자꾸만 빙그르르
다가와서 안녕
멀어지며 안녕
공중의 이 너무 많은 손, 선, 점, 면, 색.....
너무 모자랐고 너무 먹먹했지
허방인 걸 알면서 걸어갔지
당신과 나는 투명에 가깝게 겹쳤다 지나갔지



ㅡ Agalma




*

 

 

 

 

 

 

 

 

 

 

 

 


 

그러나 모든 것은 안개, 환유, 공공연한 비밀, 거대한 나무, 당신

꽃 핀 들판이나
낙타의 느린 보폭, 허술한 회계장부 같은 내 낡은 문장에
혹, 당신을 새겨 넣어도 좋을는지

그러나 당신에 대한 기억은 쥐라기 공원, 초인종, 내 몸이 기억하는
난해한 곡선 몇 개


ㅡ 송종규 / 낡은 소파 혹은 곡선의 기억 中


창밖에는 고개를 숙이거나 자괴감에 빠진 달빛들이 수북했다
(중략)
제 삶을 변명하고 싶은 문장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ㅡ 송종규 / 만년필 中
<공중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방식>


그녀가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내 머릿속에선 한파, 습기, 너머, 정사, 목격 같은 단어들이 한꺼번에 뒤섞였다.
(중략)
그녀와 나는 통로에 있는 옷걸이를 같이 썼다. 점심시간 한 시간을 제외한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그녀의 코트와 내 코트는 어깨와 어깨가, 팔과 팔이 서로 맞닿아 있었다. 마주 보고 포개져 있을 때도 있었고 먼저 건 사람이 뒤에서 안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 옷걸이는 그즈음 내 마음 한 쪽을 가장 저릿하게 하고 또 쓸쓸하게 했다.


ㅡ 최은미 / 창 너머 겨울 中 <목련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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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츠제럴드와 젤다의 사생활 이야기도 작품과 자주 비교 언급되지만, <위대한 개츠비>가 물질 만능주의 시대에 대한 비판적 작품이란 세간의 평은 사후적 왕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들이, 예술가들이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른다고 종종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을, 시대를 폭로하는 내부 고발자이기도 하겠죠. 글이 쓰는 자의 어떤 (것/식) 반영이라는 전제를 생각할 때.
작가-소설 간극이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어쨌든 독자인 우리는 제 3자이며, 작가는 소설과의 대결 속에서 독자를 생각할 여유가 없죠. 끊임없이 선택과 결단을 내리며 진행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작가는 자신의 소설을 읽지 못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블랑쇼의 말은 은유가 아니라 매우 사실적이라고 생각하며 동의합니다.
그래서 톰도, 데이지도, 개츠비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피츠제럴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고요.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_~;

2. 피츠제럴드의 <겨울 꿈>이라는 단편이 있는데, 개츠비-데이지의 과거에 대한 프리뷰 같기도 하죠. 뭐랄까. 피츠제럴드는 이런 스토리의 원형을 계속 재현하고 싶어했다는 생각도 들었죠. 하루키가 단편을 장편으로 확장하며 구축하는 공통된 모티브를 보듯이. 그래서 저는 <위대한 개츠비>에서 시대의 통속성보다 작가 자신이 어떤 동인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었을까가 궁금한 거죠.

통속 소설 관점에서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와 비교도 재미난 지점입니다. 통속성에 대해 그 작품은 파악하고 썼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작품의 이전인 <위대한 개츠비>가 더 모던한 건 당시의 낭만성 때문일까, 작가의 개성 때문일까 가늠해보게 되기도... <무진기행>의 통속성과 모던함...그런 것들이 스쳐가며... 보들레르가 모더니티를 변함없을 현대성으로 본 건 정말 적확하다고도~
결국 저는 <위대한 개츠비>는 내용의 통속성보다 전체를 지휘하는 모던함에 더 방점을 두게 됩니다. 제 취향이겠죠 :)


에이바님 리뷰에 대한 댓글
: http://blog.aladin.co.kr/769383179/80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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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12-11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표지도 마음에 듭니다^^

AgalmA 2015-12-11 12:47   좋아요 1 | URL
어떤 의미에서 삶은 참 애닯죠. 비슷한 것들은 서로 잘 모이고 어울리지만 반목하는 것도 기필코 있으며 공존하죠. 또한 그것들이 모여 전체의 조화를 보여주기도 하고...그래서 선과 악은 성질의 구분이지 완전한 이분법이 될 수 없는 것이죠. 바타유가 금기는 위반과 함께 성립한다고 했듯이.
나는 무엇을 모으고(생기게 하고) 무엇을 멀리하는가(버리려 하는가) 늘 관심을 기울입니다. 우리는 일종의 균형추, 잘만 한다면 고요롭기도 할 테지만 쉽게 광풍에 휩싸이기도 하고...

이런 말 해놓고,
즐거운 점심 시간 되세요~합니다. 하하))

북다이제스터 2015-12-11 21:07   좋아요 0 | URL
균형이란 것이 가능한지 균형이란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 생각 듭니다^^

AgalmA 2015-12-12 02:12   좋아요 1 | URL
예전에 객관이라는 게 존재하겠느냐 물으셨던 거란 비슷하신데요.
http://blog.aladin.co.kr/durepos/7797497

제가 말씀드린 균형이란 상태적인 것이지
완벽함이라든지 획득을 확신하는 추구를 담고 있는 정의적인 뜻은 아니었습니다 :)

2015-12-11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1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1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2 2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2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2 03: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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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2 0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2 0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2 0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예술가의 항해술
화이트 리뷰 인터뷰, 정은주 옮김 / 유어마인드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모든 것에 맥 놓고 있다 문득 이상한 발동이 걸릴 때 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2015 올해의 책 - 인문, 사회, 예술 분야에 이 책이 후보로 올라와 있지 않아 나는 음, 흠, 아니, 나라도? 읽을 책도 할 일도 많은데 이 책에 대해 굳이 내가? ..... 중얼중얼 한참 뜸들이다 이 글을 쓴다.

선정 기준이 판매량/독자 리뷰, 별점 집계, 북플/알라딘 도서팀 추천이라는데, 그렇게 선정된 책 중에 이 책보다 함량미달인 책도 더러 보여 가만히 지나칠 수 없었다. 우리는 특히 가만히 있는 걸 매우 싫어 하게 됐잖은가.

먹고사니즘에 바쁜 시대에 ˝예술가˝ 라는 범주가 대중적인 공감대를 많이 모을 수 없기도 했겠지만, 본문에서 줄리아 크리스테바도 개탄하듯이 현대의 우리는 눈앞만 좇기 바쁜데 `시간`, `유한성`에 대해 사고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그것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예술을 자세히 살피는 일은 여유로운 심신수양이나 여가생활로만 봐선 곤란하다. 우리의 인식과 시대를 점검하며 삶의 방향을 바꾸려는 치열한 노력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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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 타위만스(Luc Tuymans) 인터뷰](p148)

Q : 회화가 진화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회화가 다루는 건 예나 지금이나 특정한 공간의 한 순간이며 그것이 반드시 현실의 시공간일 필요는 없다고 보는가?

A : 회화가 다루는 것은 현실의 시간이 아니라 그려진 시간이다. 그것은 인간의 지각 자체에 내재하는 주요한 환상이다. 회화는 우리가 알고 있지만 말로 하기 힘든 시각적인 것들, 혹은 매우 물리적인 요소들로 만들어지며,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그 결과의 물질성을 바탕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잔상은 몹시 세밀하고, 되짚어내기가 극히 어렵다. 감상자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린 당사자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경우는 대부분의 작품을 어디서 끝냈는지를 여전히 알고 있기는 하나, 여하튼 대단히 복잡한 상황에 근거한다.

==============================

<예술가의 항해술>은 내가 지금껏 봐 온 예술 관련 책 중에 예술가들의 창작 구동력을 인문, 사회, 과학 여러 관점에서 체감하며 살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세상 참 좋아졌지. 슈테판 츠바이크가 온 재산을 투자해 초고, 악보, 필적 등을 모으며 얼마나 예술가들의 영감을 파악하려 애썼는지 비교해 보면 눈시울이.... 이젠 발빠르게 취재된 예술가들의 인터뷰를 언제든 편안히 볼 수 있게 됐어요, 츠바이크 씨ㅜ.ㅜ 작품보기 클릭도 얼마나 쉬운지...
이 책은 비평가들의 철학 번역기도, 삼단 구르기도 필요 없이 현재 작업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생각, 진행 중인 창작이 중계되는 알찬 보고서이다.
알 만한 사람들은 슬쩍만 소개해도 알겠지 싶어 요약 정리 리뷰를 안했는데, 이런 좋은 책 묻히는 게 안타까워 또 오지랖....난 정말 참...



● 이 책의 단점은 열거되고 있는 작가들에 대한 정보 미흡, 저작권법 때문이지 싶은 작품 이미지 부족이다. 직접 찾아보며 얻는 수확의 기쁨을 생각하면 버럭 할 일은 아닌 듯.
아래 몸통만 있는 작품도 그렇게 찾아보다 발견했다. 뤽 타위만스(Luc Tuymans) <Body>(1990)
... 아무 것도 아닌 것 같던 그림을 완성케 한 마지막 두 번의 결정적 붓질이 무엇이었는지 당신은 보는 순간 알 것이다. 왜 우리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엇을 표현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무엇을 느낄까. 그것을 철학하게 하는 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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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2015-12-10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판매량과 독자 평점이 가장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전 투표는 하지 않았습니다만(100자평 쓰는 걸 안 좋아해서..) 이게 왜? 라는 생각이 드는 책도 몇 권 있더군요. 아쉽기도 하고...
원래 인터뷰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은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AgalmA 2015-12-10 16:01   좋아요 2 | URL
결국 변곡점은 마케팅 효과라는 소리가 되는데,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그렇죠~_~...
<작가란 무엇인가> 흥미롭게 본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도 얻을 게 많습니다. 추천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2015-12-10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1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1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1 0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1 0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5-12-10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작가보단느 아무래도 현대 미술작가에 대해서는 더 무지해서 인터뷰 내용을 이해할 슈 있을까 싶지만 책은 탐나네요.

AgalmA 2015-12-11 03:57   좋아요 0 | URL
줄리아 크리스테바, 리베카 솔닛 등 인문과 사회학에서 두각을 보이는 작가 인터뷰도 일상과 철학을 잘 풀어서 얘기해주고 있고요. 예술가들의 솔직하면서도 상상력 가득한 이야기들은 어려움보다 흥미를 더 불러 일으킵니다. 최근 예술계 동향과 함께 그들의 사유 흐름도 살필 수도 있어 단순히 미술계 인터뷰가 아닌 인문교양서라고 봐야 할 듯 합니다~
 

옴니버스 선집인 『견딜 수 없는, 미쳐 버리고 싶은』, 『히치하이킹 게임』 왜 둘 다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책 제목으로, 책의 첫 작품으로 두었는지 누구나 젤 처음 떠올릴 짐작은 그의 유명세일 것이다. 그러나 연애적 사랑을 말할 때 결정적 파국의 낌새를 밀란 쿤데라만큼 잘 집어내는 작가도 드물지, 하며 내 결론은 마무리된다.
밀란 쿤데라 <히치하이킹 게임>과 <견딜 수 없는, 미쳐 버리고 싶은>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단편인데, 이 외에 더 있을 지도 모른다. 이것이 다 함께 묶인 단편집은 없나. 이 궁금증 때문에 밀란 쿤데라 전집 도전을?


*
주위의 다른 여자들처럼 그녀도 자기 육체를 편하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을 설득하는 특별한 방법을 개발한 적도 있었다. 거대한 호텔의 수많은 방 가운데 하나를 배정 받듯, 모든 인간은 수많은 몸 가운데 하나를 배정 받아 태어날 뿐이라고 혼자 되풀이해서 중얼거리곤 했다. 따라서 육체는 지극히 비개인적인 기성품 하나를 임의로 빌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법을 바꾸어 가며 이런 생각을 되풀이했지만 사실은 조금도 그렇게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런 정신과 육체의 이원성은 그녀에게 자꾸만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는 자기 몸 하나도 버거웠고 자신의 몸에 대해 너무도 많은 걱정을 했다.

ㅡ밀란 쿤데라 <견딜 수 없는, 미쳐 버리고 싶은>


요즘 아니 매순간 나는 인간과 감옥에 대한 연관성을 자주 생각하는데, 위 단편에서 `존재-호텔` 얘기를 보니 다른 비유도 생각났다.


*
다른 사람들이 교회의 축복을 느끼는 방식으로 나는 고독을 느낀다.
고독은 내게 있어서 은혜의 불빛이다.
내가 내 방문을 닫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칸토르는 학생들에게 무한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했다.
무한한 수의 객실을 가진 호텔 주인 한 사람이 있고,
이 호텔 객실에는 손님이 모두 들어차 있다. 거기에 손님 한 명이 더 도착한다.
그래서 호텔 주인은 1호실에 있는 손님을 2호실로 옮겨준다.
2호실에 있던 손님은 3호실로 옮긴다. 3호실 손님은 4호실로.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이렇게 하면 1호실은 새로 온 손님을 위해서 비워진다.
이 이야기에서 내 마음에 들었던 점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손님들과 주인 모두가, 한 손님이 자기 방에서 평화와 고요를 얻을 수 있도록 무한한 수의 작업을 지극히 당연하게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독에 대한 커다란 존중의 표시다.

ㅡ페터 회 『스밀라의 눈(雲)에 대한 감각』



인간과 자신을 가장 치열히 인식할 수 있는 고독한 공간, 감옥.....


*
하늘에서 쏟아진 빛은 유죄 선고를 받은 자들의 얼굴을 비추면서 거기에 담긴 진지함과 순수함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보여주었다. p 32

인간의 선량함은 보편성을 띠지만(마샥도 담배에 불을 붙여주거나 영화관에서 자리를 양보하기도 할 것이다) 지능까지 그와 같은 보편성을 띠지는 않는다. p165

그러나 교도소와 숲은 차이점이 있었으니 패러것이 사랑하며 거닐었던 숲의 공기에서는 늘 새로움의 향기가 묻어났으나, 여기 교도소에는 늙은 자신의 몸에서 풍기는 오래되고 고약한 냄새와 기만당하고 있는 뻔뻔한 죄수들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죄수들은 속고 있었다. 아니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었다. 더 월에서 들려온 소식은 죄수들에게 새로운 기운과 변화의 힘을 불러일으켰지만(대부분이 그 소식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임질과 성경 그리고 손목시계 끈을 둘러싼 말다툼 때문에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p175

그들은 회복 가능성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비록 어설프고 잔인한 대안이긴 해도 고행은 그들의 타락이 지닌 미스터리를 가늠할 수 있는 적절한 척도였다. p175

누군가가 이 세상에서 보게 될 마지막 장소가 법정이라면 어떡할 거냐고 물었지만 패러것은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되받아쳤다. 하지만 마룻바닥이든 침을 뱉는 통이든 낡아빠진 벤치든 그 무엇이라도 패러것은 붙잡고 매달렸을 것이다. 만약 그것이 그를 구원해줄 수만 있다면. p225

패러것은 치킨 넘버 투가 기꺼이 그에게 주고 싶어했던 무엇을 온몸에 흡수하는 듯했다. 갑자기 오른쪽 엉덩이에 통증이 느껴져 엉거주춤 일어나 살펴보니 의자에 치킨의 틀니가 놓여 있었다. ˝오, 치킨.˝ 패러것이 외쳤다. ˝내 엉덩이를 이런 식으로 꼬집는군요.˝ 패러것의 웃음은 가장 깊은 애정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이었고 그것은 곧 흐느낌으로 변했다. p228

두 개의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났고 몸이 기울어지는 것으로 보아 경사진 터널을 통과하는 듯했다. 그가 기억하기로 자신이 이런 식으로 운반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래전에 죽은 그의 어머니가 필시 어딘가에서 다른 어딘가로 그를 안고 간 적이 있었겠지만 그의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들려 가고 있노라니 순수와 깨끗함이라는 낯선 느낌이 엄습하면서 패러것은 마치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이렇게 나이 든 내가 누군가에게 실려 내가 지니고 있던 노골적인 정욕이나 경솔한 경멸, 원한에 찬 가식적인 웃음 따위는 결코 없을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있다니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그런 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그저 가능성에 불과했지만 그 경험만은 비록 높은 나뭇가지에 걸쳐 있는 오후 햇살처럼 유용하진 않아도 흥분되는 일이었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또 이렇게 어딘가로 들려 간다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 경험인가 말이다. p230

ㅡ존 치버 『팔코너』



중력 법칙과 인식의 한계를 생각하면, 인간은 더욱 죄수 같다. 11차원은 고사하고 3차원도 감당하기 어렵다. 시간이 부가된 4차원만 생각해도 패닉이 되기 일쑤다.


*
내 할아버지 스톤은 달 세계가 인류 역사상 유일한 개방형 감옥이라고 주장했다.

ㅡ로버트 A. 하인라인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개방형 감옥, 지구라고 다를까. 머물면서 갇힌 자.
밀란 쿤데라가 최근작 『무의미의 축제』에서 왜 그토록 ˝배꼽˝과 ˝방광˝에 집착했는지 이해되기도 한다. 아담과 이브는 배꼽이 없었을 테니 인간 근본에 대한 처절한 고민 아닌가.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배출본능 ˝방광˝은 또 어떤가.

잉태하고 배출하는 세계.
없음과 있음이 끝없이 산출되는 세계.
폭발은 왜 밖에서 안으로 오는 것이 아닌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구조인가. 차원이 밀려나며 다음 차원의 폭발이 일어난다. 빅뱅. 어느 차원에서도 객실은 대기 중이다. 손님은 말한다. ˝어, 이거 내가 생각한 것과 좀 다르네요.˝
커피를 마시며 답없는 생각을 잘도 한다. 쓸모없는 죄수 같으니. 나는 밖으로 전화를 몇 번 걸었다. 실질적인 밖인지 알 수 없다.
예약도, 투숙도, 감금도 지루한 경험이다.
호텔과 감옥, 입실과 퇴실은 반복된다.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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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12-06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칸토르의 예시를 그렇게 평화와 고요에 따른 자발적 행위(?)로 느낄 수도 있군요. 참, 내용은 경우 따라 다차원적 입니다

AgalmA 2015-12-06 23:16   좋아요 0 | URL
그래서 책도, 예술도 이렇게 산처럼 많은 거 아니겠습니까~_~

cyrus 2015-12-07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옥이라면 ‘사드’의 존재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가 샤랑통 정신병원, 바스티유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소돔 120일> 같은 글을 썼거든요. 사드는 자신의 성적 상상을 종이에 분출했어요. 프로이트식 해석이라면 펜은 성기, 잉크는 정액으로 볼 수 있겠어요. 사드의 글쓰기는 자위행위와 같아요.

AgalmA 2015-12-09 17:43   좋아요 0 | URL
사드와 장 주네는 감옥에서 빠질 수 없는 아이콘이죠. 한국엔 신영복 선생님이....상당히 다른 아우라ㅎ;;;

2015-12-09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9 17: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9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년엔 LG 아트 출근 도장을 부지런히 찍게 될 거 같다.
매년 1월 홈페이지에서 Compas 패키지 예매가 시작되는데, 선택량에 따라 총 15~40% 가량 할인 받는다. 회원 가입을 해 놓으면 예매 알림을 받을 수 있다. 2016년엔 볼 공연이 많아 기대된다.

http://www.lgart.com/UIPage/Azine/Azine_detail.aspx?Id=55124&SearSt&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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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6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6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9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9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