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최후의 숨결
에밀 부르다레 지음, 정진국 옮김 / 글항아리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은 어쩜 이리도 섬뜩할까? 왜? 나보다 나를 더 많이 아는 이를 만난 기분, 내가 미처 알지 못한 나에 대해 속속들이 꿰뚫고, 간파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파란눈의 이방인에게 비친 조선의 모습이 어떠했을지 궁금증이 생겼다. 기존의 여러 책들을 익히 들어보긴 했지만, 선뜩 손에 집히지는 않는 부류의 책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표지는 단연 압권이다. 정말이지 너무도 낯선 모습이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주 나의 호기심을 부채질하기에 충분한, 이 사진 한 장은 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에밀 부르다레'라는 프랑스인은 1900년 초 조선을 방문하여 4년간의 조선생활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탐사록, 견문록 형식의 이 책은 20세기 조선 관련 책 중에서는 널리 읽혔다는 점도 흥미롭다.

 

 

일본을 통해, 조선에 들어온 그는 부산, 서울, 평양, 금강산, 목표, 제주에 이르기까지 대한제국 곳곳을 누비며, 보고 들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곱씹으며, 조선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에 절로 감탄한다. 또한 통찰력 있는 그의 안목에 놀라는데, 일본 제국주의의 그 노골적인 침략의도를 간파한 그의 눈엔 무너져가는 대한제국의 모습이 너무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의 "세세하고 치밀한 묘사"는 이내 몰랐던 조선 아니, 버리고 잊어버린 과거, 전통과 마주하게 된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오히려 생생하게 옛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사람들, 풍습, 주변환경, 제도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깊이 파헤치고 있는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은 우리의 옛모습을 만나다는 설렘, 반가움과 함께, 뜻밖의 이야기에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가물가물 잊혀진 역사, 풍습, 제도와 만나며, 근대화 과정 속 변화무쌍함과 더딤이 빚어진 우리의 일면을 상세하게, 아니, 아주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너무 무관심했다. 아니, 눈 감고 귀 막은 채 오히려 알기를 두려워한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지난 역사 속 우리의 모습이 이젠 너무도 생경해졌다. 그래서인지, 나는 장례식과 결혼식 풍경들,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절차에 대한 에밀의 상세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생생한 묘사 다음으로 흥미로운 것은 "사진"이었다. 사진만 먼저 훓으며 그 낯섬과 마주하였다.  사진 속 인물과 풍경들은 너무도 생소해 당혹스러웠다. 이방인에 대한 조선인의 호기심은 이방인의 사진 속에 듬뿍 담겨있어, 오히려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또한 무너져가는 성벽, 기와은 대한제국의 앞날을 예견이라도 하는 듯, 너무도 애잔하게 가슴을 친다. 

 

나는 멀리 떨어져, 한참 거리를 두고 조선을 만나려 했었다. 하지만 '에밀'은 그렇지가 않았다. 물론 악취, 미신 등과 같은 몇 개를 제외하면, 조선의 것을 아주 열린 마음으로 마주하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에밀은 만나게 된다. 과연 난 지금 그처럼 열린 마음으로 세상과 마주하고 있을까? 편협함과 편견들로 무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파란 눈의 사내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알고 돌아가 이렇게 기록으로 남겼다. 어찌 고맙지 않을까? 하지만 참으로 창피한 일이기도 하여, 씁쓸함도 깃든다. '에밀 부르다레'의 눈에 비친 대한제국, 그 최후의 숨결을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면서도 또한 새롭게 활기를 불러일으킨다.

 

 

"백의민족의 옷도 머지않아 끝이 날지 모른다. 그날이 오면 이 나라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

흥미로운 일이다. 이 정부에서는 항상 큰 개혁은 옷으로 하려니 말이다. 옷이 중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잊은 정부인 것을(이 말은 조선인의 속담 아니던가)! 옷보다는 해묵은 제도를 개혁해야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과거에 주민에게 담뱃대 길이를 줄이라고 강요한 적이 있었다. 너무 건방져 보인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다음에는 옷소매를 줄이라고 했다. 또 그 뒤에는 모자의 챙을 줄이라고 했다. 도대체 어느 것까지 줄이라고 할지...... 오늘날은 색에 집착한다. 내일은 형태에 집착하리라. 하지만 정부는 불행하게도 극단적이며 낭비적인 관료제에 계속 사로잡혀 있을 듯하다."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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