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나라 도둑 - 김주영 상상우화집
김주영 지음, 박상훈 그림 / 비채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다리고 기다리던 김주영 작가의 책이 나왔다. 극도의 흥분과 반가움 속에 냉큼 손에 집었다. 얼마전에 읽은 <똥친 막대기>의 잔잔한 감동을 또렷이 기억하면서 <달나라 도둑>이야기에 빠졌다. 상상우화집! 그 상상의 세계는 눈이 부시게 아름답지는 않았다. 왜, 우화집은 늘상 잔혹함(너무 과장되나?) 속, 기상천외한 이야기, 엉뚱하고 슬픈 이야기들로 가득찬 것일까? 그럼에도 뜻모를 훈훈한 감동이 밀려오는 것은 또 어찌된 영문일까? 정말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실상에서는 외면하고픈 많은 것(배고픔, 외로움, 남루함 등등)들이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아름답게 채색되고, 잔잔한 미소와 훈훈한 감동이, 가슴 찡한 그 이상의 것이 내 마음 속에 넘실거린다.

 

<달나라 도둑>은 5가지 화두(길, 소년과 소녀, 이야기, 인생, 꿈)속, 62개의 우화로 꾸며져있다. 각각의 우화들은 2장 정도를 넘지 않는다. 짧은데 몹시 뒤가 켕긴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매번 조마조마한 마음이 움찔거린다. 우리의 아픈 일상과 풍경(사라지는 골목길의 풍경), 굵직한 사건(기름유출사건)들도 잔잔한 이야기로 엮어 있다.

 



'길 위의 작가'에 걸맞는 길이란 화두가 참으로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의 아둔함과 마주하였다. 사막 속 오아시스를 찾아 여행을 떠난 나그네, 모래위 없어진 도로를 찾아 헤매는 그는 바로 나였다. 단지 한 발 내딛으면 되는 것을. 이야기 속 아찔함에 숨이 턱허니 막혔다. 외로움이 짝을 찾아 떠났다. 세계 곳곳을 헤매며, 외로움이 만났던 크레인 속 사나이, 미루나무, 괘종시계와의 만남,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훈훈함을 느끼며, 외로움이 남겨준 훈훈함에 깜짝 놀랐다.

 

소년과 소녀

풋풋하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풍경이 되살아났다. 단돈 50원을 손에 꼭쥐고 구멍가게를 찾던 그 신났던 발걸음이 개구쟁이 한 소년을 통해 생생하게 될살아났다. 몰래 훔친 돈으로 사먹은 사탕이 너무 많아 오도가도 못하는 개구쟁이 소년, 걱정이 많은 아이의 황당한 걱정들, 우물 속에 비친 자신을 퍼올리는데 열을 올리는 소년, 뜨개질 달인 소녀의 비극적 이야기를 통해 두려움의 허상을 보고 말았다.

 

이야기

기상천외한 이야기 속, 아찔함을 경험하였다. 유쾌한(?) 곰쥐의 이야기로 포문을 연다. 자신이 쥐라는 것을 잊어버려 겪게된 변고는 곰쥐만큼이나 '아불싸!'를 외치며, 그 익살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상형을 찾은 유명운동선수의 이야기, 인간과 동물의 전쟁, 그 사소한 잔인한 속, 동물들의 유쾌한 전투가 시작된다.  우리의 소소한 일상 속 작은 감정들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콕콕 나의 심장을 찌른다.

 

인생

외롭고 음산한 그리고 굴곡진 우리들의 삶이 한 가득이다. 일만 하고 욕만 먹는 송아지, 꽃에 갇힌 가족들, 신의 은총이 담긴 딸기 바구니를 둘러싸고 벌이는 동물들의 쟁탈전, 실연 후 반쪽 인생을 사는 그녀의 기구한 삶 속, 씁쓸함이 빚은 기발한 이야기들은 한 가득 삶의 지혜를 풀어놓는다.

 



기상천외한, 아니 허무맹랑한 꿈, 그리고 꿈에 대한 간절한 열망과 의지을 엿볼 수 있는 황당한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 가닥의 희망과 잔잔한 미소를 퍼진다. 인어를 꿈꾸는 그녀, 개구리의 등에 엎힌 족제비, 여우와 곰, 대도시 한 복판에 자리한 시들어가는 나무와 그 속에 둥지를 둔 소쩍새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꿈을 떠올려본다. 

 

기발한 상상의 세계 속 아찔하고 섬뜩한 이야기들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움찔움찔 놀라면서 나의 어리석음과 마주하다보니, 공허했던 나의 일상에 살며시숨통을 열어주었다. 잔인한 익살 속, 엉뚱하고 천진난만한 이야기들을 게걸스럽게 토해놓고 있는 <달나라 도둑>은 나의 폐허와 같은 마음을 훔쳐가버렸다. 어찌 고맙지 않으랴~ 길 위의 작가 '김주영', 그의 다음 작품들이 또다시 기다려진다. 벌써부터 설레니, 이를 어쩐담~

 

 

체질에 맞지 않는 약을 복용했을 때 부작용이 나타나듯이, 우리가 올곧은 삶과 어긋나는 길을 갈 때 거울은 사뭇 삼엄하고 뼈저린 언어도 꾸짖어줍니다. 신의 어깨를 기대지 않고도 고해성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래서 거울을 보는 일뿐입니다. 우리 인류가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성찰할 수 있는 수단인 거울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크나큰 행운인지요. (124쪽 거울에 비친 고해성사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