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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벵이 주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김해생 옮김 / 샘터사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유교사상에 입각했기에 유난히 보수적이고 집안 살림은 주로 아내가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인근에 있는 중국은 남자가 주로 집안 살림을 한다고 하더라. 그런데 서구화되고, 남녀평등에 진보적인 유럽에서 느끼는 아내 즉 아줌마의 위치가 우리나라와 대동소이 하다는 사실에 동질감을 느꼈다. 어쩜 이리도 마치 우리나라 아줌마들처럼 대한민국 주부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는지, 읽는내내 내 얘기 혹은 주변 아줌마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며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엄마는 식탁에 함께 하기 보다는 왔다갔다 하면서 국 퍼주고, 더 달라는 소리에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게 된다. 고맙다고 느끼기는 커녕 부산스럽다고 하면서 '엄마는 희생하는 거 빼고는 낙이 없다'고 말하는 가족들을 보며 엄마는 진정한 희생이란 보상을 바라는게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아줌마들이 줄곧 한 미용실만 다니는 이유는 처음 새로운 미용실에 갔을때 '어느 분에게 머리하셨죠?' 하고 했을때 '처음이거든요' 하는 소외감과 내 존재를 알기나 하는지 하는 불안감을 한번쯤 경험한 아줌마라면 줄곧 한 미용실만 고집한다. '미용실 입성'이라고 표현한 제목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물론 나도 결혼하고 부터 다닌 미용실을 10년째 다니고 있다. 집이 어지러져 있을때, 계절옷을 바꾸어야 할때, 화단 정리를 할때, 베란다를 정리해야 할때 '누가 좀 치워야 하겠어?' 할때의 누가는 99%는 '엄마'라는 사실에 웃음이 나면서 한편으로는 주부의 부담감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교육열 높은 우리나라의 엄마들과 비슷한 '열성엄마'들의 문제. 즉 아이들과 함께 방학을 하고, 시험을 보고, 학원에 함께 다니는 엄마. 엄마의 이름은 없고, 아이가 곧 우리가 된다. '우리 시험은 어제 시작이야. 우리 수영 너무 못하잖아. 우리 개학하잖아'
대체 엄마의 진정한 삶은 어디에 있을까? 오로지 남편을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주부의 실상을 참으로 리얼하게 표현했다. 아내로써, 엄마로써, 며느리로써 완벽해야 하고, 무조건 희생해야 하고, 요리, 청소, 빨래, 학습지도 등 만능인이 되어야 하고, 맞벌이 부부는 이 모든 것과 함께 늘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고.....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 모든것은 주부의 그릇된 편견으로 인해서 자행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의 어머니가 못 먹고, 못 입고, 못 배우면서도 자식을 위해서는 최대한으로 잘해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현재의 나에게까지도 전염되었다는 것. 이제 슬슬 내 존재를 찾아내고, 내 삶을 위한 투자를 해야 하지 않을까?
좀 지저분하게, 대충대충, 때로는 굼벵이 처럼 느리게 느리게 살아보자. 물론 난 지금도 충분히 그렇게 생활하고 있지만....... 부담없이 즐겁게 재미있게 읽었는데, 주부로써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