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생 실습을 나가고 난 후 스스로 교사가 될 자질과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고작 한 달이었지만 중학생 아이들과 생각보다 교감이 잘 되지 않는다고 느꼈고 수업에 대한 열정도 크게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니 그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이었던가 확신이 안 선다. 아이들과 어쩌면 함께 했을 수도 있을 교실에서의 수업의 정경을 떠올리게 된다. 같이 읽고 쓸 수 있다면, 그 또한 지금은 짐작하기 힘든 의미가 있었을 것 같다. 어렵고 생각대로 안 되고 때로는 상처 받고 실망하고 무력감에 휩싸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 않은, 아니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십대에게 읽고 쓰기를 가르친 국어 선생님들의 이야기인데 이 둘의 현장은 외형적으로 사뭇 다르다. <우리들의 문학시간>은 과학고이고 <소년을 읽다>는 소년원이다. 한곳은 <코스모스>를 읽고 교사보다 더 쉽게 이해하는 아이들이 영재 교육을 받는 곳이고 다른 한 곳은 열일곱 살까지 단 한 권의 책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소년이 교사에게 인사하기 위해 간이 교실에 자유롭게 들어오지도 못하고 개인적으로 만화책도 소유하지 못하는 곳이다.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이들의 공통점은 십대라는 연령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생각지 않게 이 두 공간을 가로지르는 공감의 지대에서 두 공간의 십대들은 만난다. 좋은 글을 읽고 마음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편견은 와르르 무너진다. 윤동주의 시에 모두 진심으로 공감하고 소년원 친구들은 줄줄 암송해 내기까지 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진지하고 순수했다. 좋은 글 앞에서. 


<소년을 읽다>를 읽다 자주 가슴이 아렸다. 분명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이 가는 곳이다. 범죄에는 분명 피해자가 존재한다. 그들을 의식한다면 이 소년들의 국어 수업을 그저 낭만적으로만 받아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독방에서 시엽서의 시를 암송하며 시간을 보내고 책의 감상을 나누는 시간에 '먹고사는 일의 급급함'을 발표하고 십대의 아이들이 택배 상하차를 다룬 이야기에 가장 크게 공감하는 풍경은 이 소년들을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다. 아이이고 싶은데 아이에 머무를 수 없는 상황을 감히 상상해 본다. 일찍부터 친절하지 않았던 세상, 소년이기 이전에 생활인으로서의 역할을 먼저 강요하는 곳에서 재판으로 넘어온 경계의 이편에서 저자는 아이들을 만난다. 저자 또한 자신 앞에 있는 이 소년들의 열중하는 눈망울과 그 뒤안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낀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 아이들에게 이러한 좋은 삶과 좋은 읽기를 가르치는 일이 가지는 궁극의 의미에 대한 불확실성과도 닿아 있는 이야기다. 이곳의 아이들은 다시 세상으로 나가지만 그 세상은 그 아이가 떠나왔던 이 곳에 오기 직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테고 이것은 아이들이 좋은 삶을 사는데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회복하는 데 분명 우호적인 상황은 아닐 것이다. 암울한 전망과 현실로 여기에서의 아이들을 바라보고 재단하는 일은 어떤 관성처럼 아이들을 옭아맨다. 


금요일마다 만나서 소년들과 시를 외우고 책을 읽는 꽉 찬 시간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디에 쌓이고 있을까. 강 하구에 퇴적물처럼 조금씩 쌓이고 쌓이다가, 바다로 흘러가는 어귀에서 새로운 물길을 만나게 될까. 아니면 도로 옆에 쌓인 흙먼지처럼 풀꽃 위에 잠시 머물다가 , 휙 지나가는 자동차가 일으키는 바람에 흔적도 없이 흩어져버리고  말까. 사라져버리고 말까.

-서현숙 <소년을 읽다> 


실제 일 년 동안의 수업일기는 대단한 성취나 거창한 감동의 결말을 가진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극적으로 교화되어 근사한 성인이 되어 나타나는 장면도 없다. 대신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해주어 감사하다며 선생님에게 커피 두 잔의 기프티콘을 보내오고 선생님 건강하라고 안부 전화를 잊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담담한 장면들의 울림이 한층 더 크다. 사람을 믿지 않았던 아이들이 자신들과 일주일에 한번 책을 읽고 때로 짜장면을 사주었던 선생님의 건강을 신경쓰고 누군가와 함께 선생님이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겨나기까지의 여정은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읽는 일을 가르친다는 것은 그러한 것이다. 


나는 잘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잘 안다. 그래도 무언가를 함께 읽고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을 나누며 교감을 나누며 그들의 기억의 한 자락을 점유하게 되는 일은 분명 헤아리기 힘든 질량과 질감을 가지는 시간일 것이라는 점에서 다시 한번 부럽다. 그것이 세상의 풍파를 만나 깎이고 때로 스러진다 해도 거기 그렇게 한 구석에 오롯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 가지게 될 가치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하는 책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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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6-08 19: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교생 실습하신 적이 있으시군요.
저는 오래 전 주일학교 교사를 한 적이 있는데 저도 아이들 가르치는 건
정말 내일이 아니구나 했죠. 그래도 한 6년 했던 것 같습니다.
성경을 직접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가능했죠.ㅋㅋ
요즘 성경공부를 줌으로 하고 있었는데 정말 못할 짓이더군요.
근데 리더님이 참 열정 있으세요.
본인도 죽 쑤고 계시다는 걸 누구 보다 가장 잘 알고 계실텐데
저 같으면 일찌감치 포기했을 텐데 끝까지 해 내시는 걸 보면서
저의 주일학교 시절을 돌아보곤 했습니다.
중요한 건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끝까지 해 내는 것이구나 반성하게 되더군요.

blanca 2021-06-09 11:19   좋아요 4 | URL
스텔라님, 6년이나 그 일을 지속하셨다니 대단하시네요. 아, 요새는 다 줌으로 하는 분위기가 되어서. 그런데 이게 모여 하는 분위기랑은 또 다르더라고요. 아무래도 아쉬운 점이 많은데 지금 이 상황에서는 이게 또 최선이라... 맞아요, 그런데 그 끝까지 해내는 게 진짜 갈수록 더 힘들어져요. 그런데 저는 갑자기 요새 아이들이 마음으로 예뻐요. 뒤늦게--;; 이걸 좀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페크pek0501 2021-06-18 12: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때에 따라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저도 교생실습을 나간 적이 있는데 교사는 제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잡지사 기자 하다가
어찌어찌하여 나중에 뒤늦게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이외로 적성에도 맞고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수업을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ㅋ 인생엔 정답이 없음, 인 것 같아요.

blanca 2021-06-22 13:17   좋아요 3 | URL
페크님, 잡지사 기자 일 하셨군요! 저는 막 마음으로 애들이 이쁘고 그러지 않아 그게 이십 대에 나는 교사가 되지 못할 이유라고 판단내렸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나이 들고 나니 고등학생도 예쁘고 대학생도 예쁘더라고요. ㅋㅋ 귀엽고 아기아기한 아이들 뿐 아니라 뭔가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품어줄 수 있는 마음이 지금에서야 생기니...왜 이렇게 항상 타이밍이 어긋날까요. 뭔가를 할 수 있을 때에는 그게 싫고 참, 모르겠습니다.

초딩 2021-07-07 23: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blanca 2021-07-08 08:3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7-07 2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blanca 2021-07-08 08:31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해요.^^

얄라알라 2021-07-08 15: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링크 타고 들어와서 이제서야 글 읽고 갑니다. 축하드려요^^

blanca 2021-07-13 15:4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책과커피 2021-09-22 17: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넘 멋진글!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맛있는 글이네요~^^ 저도 주일학교등 2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뒤늦게 아이들이 그모습 그대로 예뻐요~

blanca 2021-09-23 11:36   좋아요 1 | URL
기대보다 너무 좋은 책들이라 감상에 젖어 봤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달라져도 아이들을 대하는 일은 어떤 특유의 가치와 보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김경욱 소설가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사실 별 기대가 없었는데 인터뷰가 너무 좋아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그가 신세대 소설가로 언론의 관심을 받았던 시기를 기억하고 있던 터라 벌써 지천명의 나이에 접어들었다는 데 놀라고 그러한 흐름에 뭔가 아주 예민하지만 더불어 담담하게 젖어들어가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가 그러한 나이들을 앞에 두고 있는 나로서도 참 와닿았다. 나이 드는 일을 예습하는 것이야 어불성설이겠지만 작가의 정제된 언어로 하는 이야기가 어떤 고갱이를 잘 포착해서 표현한 것 같아 두고두고 기억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이야기.


우리가 자연을 비정하다고 생각하는데 자연이 하는 일에는 선악이 없잖아요. 인간적인 관점이지요. 압도적인 힘으로 문명을 위협할 때, 우리 자신이 조그마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일깨울 때 우리는 자연을 악으로 묘사하게 돼요. 그런데 자연에게는 그런 의도 자체가 없죠. 영원불멸한 순환, 그 거대하고 무정한 사이클 위의 한 점으로 자기 자신을 느끼는 건 굉장히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사회적 존재로서 효능이 다하고 밀려나는 신세가 되더라도 자신의 존엄을 끝까지 지킬 수 있다고. 그렇기에 더더욱 존엄을 지켜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일 거에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문학이 아닌가 생각해요.

-Axt 036 김경욱 인터뷰 중















시간의 무정함은 내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해체시킨다. 나는 설사 주변부에 있었을지라도 거기에서 더 주변부로 밀려난다. 이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그럼에도 자신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힘으로써 문학을 이야기하는 그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 스스로가 이미 주류가 아니게 되었다는 것을 자신의 입으로 말하면서도 자신의 일이 가지는 의미, 자신이 추구하는 것의 가치를 믿는 사람의 모습이 거인 같았다. 대단한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그 어떤 숙명적 흐름 속에 자신을 내맡기면서도 내가 지향하는 그 무엇을 바라보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 살면 살수록 그것이야말로 진짜임을 실감한다. 














이 책의 저자 함성호는 건축가이자 시인이다. 그의 내면을 통과한 풍경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사랑하는 시들, 그의 추억들과 교차하여 잔잔하고 은은한 풍경화를 이룬다. 마포, 왕십리, 종각, 압구정, 대학로, 삼청동, 신촌, 홍대, 필동 등 무심코 지나쳤던 지명들의 연원과 역사가 다채롭다. 특히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우리의 땅에 가해진 횡포의 뒤안길로 사라진 숱한 서사들에 대한 복원이 인상적이었다. 청계천이 옥계라 불리던 시절을 뒤로 하고 뚜껑을 덮어 인공으로 수돗물을 흐르게 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던 이야기다. 종로에서 저자의 매형을 기다리다 꼬박 열두 시간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던 이야기도 일제시대의 적산가옥을 허물고 새집을 지어달라고 의뢰했던 노인에 대한 기억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단편 같다. 영추문 옆 사무실에서의 꿈들을 포기하고 나와야 했던 아픈 사연의 마감은 마음을 서늘하게 한다. "그래, 여기서 살았던 적이 있었지."라는 그의 이야기는 김경욱의 "자기 인생의 벨 에포크에 머물고 싶은 욕망"과도 만난다. 누구나에게 그런 곳이 있다. 내 인생의 벨 에포크는 언제였을까. 


언제나 열네 살일 것 같다. 읽었던 모든 활자가 실시간 영상처럼 떠오르던 시간들. 듣는 모든 음악이 콘서트장 현장에서처럼 생생하게 울리던 날들. 너와 나누는 모든 대화가 웃기고 슬프고 재미있고 무서웠던 시간들.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은 많지 않았지만 언제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어졌던 시간대를 통과해 온 것은 축복이다. 그 시간은 통과하며 사라졌다. 그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래, 그랬던 적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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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5-20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경욱은 장강명이나 김영하에 가려 잘 안 알려진 작가는 아닌가 싶어요.
우리나라 유수한 문학상도 받았는데.
저도 몇년 전 우연한 기회 읽고 글 정말 잘 쓰는구나 해서 저의 졸저에도 실었는데.ㅋㅋ
그래서 저도 조만간 악스트 사 볼까 생각중입니다.
덕분에 빛을 좀 받지 않을까 기대하게도 됩니다.

blanca 2021-05-21 13:05   좋아요 1 | URL
아, 그랬군요. 저는 아마 단편은 읽은 적도 있는 것 같은데 기억에 없더라고요. 시대의 각광을 받으며 등장했다 서서히 퇴장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잠시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학생을 통해 배운다는 게 참 인상적이었어요.

syo 2021-05-20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영하 김연수 선생님들보다 김경욱 선생님 작품을 먼저 접했었는데요, 당시 단편집 표지 사진 속에 어마어마한 꽃미남으로 한껏 당당했던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blanca 2021-05-21 13:06   좋아요 0 | URL
아, 소요님은 아시는군요. 저는 이미지로만 기억하고 있었고 작품은 사실 기억이 잘 안 나서... 주목을 받았던 것만 기억이 나요. 인터뷰 얘기 하나하나가 명문장 같더라고요. 글을 쓰는 사람은 모든 언어들이 내면에서 정제되어 나오는 건지...놀라웠어요.

transient-guest 2021-05-27 0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20대까지 읽은 책들은 지금도 머릿속에 장면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30대부터는 읽고 돌아서면 다 잊는 경우가 많네요.ㅎ
제가 아는 제 고향의 한국모습은 이제 거의 없어졌습니다. 도시에 가보면 산이 안 보일 정도로 빽빽하게 높은 빌딩으로 가득하고 그나마 워낙 개발이 빗겨간 몇 군데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추억속에 젖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blanca 2021-05-27 13:57   좋아요 1 | URL
그런데 사실 반 정도 산 건데 벌써 저도 자꾸 과거 얘기를 하게 돼서... 노인들 마음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요. 현실과 미래에도 시선을 좀 던져야 하는데...자꾸 학창 시절도 떠오르고요. 잘 나이들고 늙어간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실감합니다. 변화의 속도가 최근들어 더 빨라지고 있죠. 아직은 그래도 발 맞추려는 노력은 포기하지 않는 걸로 하려고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소비에 큰 죄책감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흥청망청 과소비를 했다는 건 아니고 책을 사고 무심코 테이크아웃 커피를 일회용컵에 담아 사먹는 일, 여러 물품들을 사고 추가로 쇼핑봉투를 받는 일, 음식물쓰레기를 새 비닐에 담아 버리는 행위 등을 종종 했다. 그러다 어떤 대단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점차 이런 행위들에 수반되는 설명하기 힘든 어떤 죄책감이 불현듯 시작됐다. 무언가 내 일상이 지구에 쓰레기를 보태는 일에 기여하고 있다는 강력한 실감이 들며 어떻게든 그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그러한 것들을 줄이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따라왔다. 내가 욕망하고 소비하는 것들로만 일상이 채워진다면 나의 존재 자체가 이 지구에 결론적으로 해악을 끼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무엇보다 나의 아이들, 후손들이 우리가 당연히 누렸던 자연의 공기, 물, 풀, 나무, 자유를 우리가 단지 존재했던 것만으로 오염되고 훼손되고 심지어 박탈된 채 경험해야 한다면 상상만으로도 아찔할 정도로 미안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의 저자 로빈 월 키머러는 아메리카 원주민 포타와토미족 출신의 식물생태학자이다. 향모는 그들의 언어로 윙가슈크라고 부르며 어머니 대지님의 머리카락이라는 뜻을 지닌 식물이다. "향모를 땋으며"라는 제목은 과학과 영성과 이야기가 서로 얽히는 과정의 은유인 셈이다. 그들 사이에 구비전승되는 창조 이야기로부터 출발하는 이야기는 그녀의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대지와 자연에 감사를 표하는 것으로 시작했던 아침 제의의 이야기, 이웃 할머니의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가 키머러의 어머니와 함께 성탄절 파티를 열어줬던 추억, 의대생들을 데리고 떠났던 학술여행에서 나눈 교감, 점박이도룡농 길가 구출 작전 등 자연과 호혜적으로 주고받는 감사의 여정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그녀의 "유정성의 문법"은 부족의 언어와 세계관의 렌즈를 통과한 자연이 어떻게 기존의 경직되고 진부한 명명의 틀을 깨고 빛나는 실재에 가닿아 우리의 딱딱한 가슴을 녹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범이다. 이는 무엇보다 우리 내면의 어두운 심연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방치되고 조장되는 욕망의 폭주 자체에 대한 진지하고 깊이 있는 천착에서 비롯된 혜안일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그녀의 언어는 공허하지 않고 사변적이지 않다. 


옛 가르침들은 모든 사람에게 윈디고적 본성이 있으며-우리가 스스로의 탐욕스러운 성격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간파했다. 스튜어트 킹 같은 아니시나베 연장자들이 우리에게 '스스로를 이해하려면 늘 두 얼굴-삶의 밝은 측면과 어두운 측면-을 염두에 두라'라고 상기키신 것은 이 때문이다. 어둠을 직시하고 그 힘을 인정하되 양분을 주지 말 것.

-pp.447 로빈 월 키머러 <향모를 땋으며> 



우리의 생존이 욕망을 떠나 가능할 수 있을까? 그 욕망이 항상 적절하게 이성적으로 제어될 수 있을까? 키머러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부족조차 우리 인간에게 어두운 본성이 있음을 그리고 그것을 완벽하게 제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한 예리한 자각이 있다. 그러나 그것에 전적으로 함몰되고 집착할 때의 그 추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고 우리가 훼손하고 남용해도 여전히 우리를 맞아주는 대지와 그 대지에 흐르는 물과 공기와 하늘과 생명들을 존중하고 어떤 미안함과 고마움을 잊지 않을 때 거기에서부터 우리는 달라질 수 있다고 그녀는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은 독자와 공명한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마다 우리 각자의 생존이 배출해내는 그 쓰레기들이 모여 산을 이루는 모습에 가슴이 무거워진다. 키머러의 어머니는 늘 "올 때보다 갈 때 더 좋은 곳이 되게 하렴."이라고 그녀에게 말하곤 했다. 과연 우리는 그럴 수 있을까. 영원한 숙제이지만 우리가 발을 딛고 숨쉬고 먹고 노래할 수 있게 해 준 대지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유의미하다고 믿고 싶다. 하나를 더 가지고 싶을 때 무심코 하나를 버리게 될 때 잠시 멈추어서 내 앞과 뒤를 돌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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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19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쓰레기 문제를 보면 안타깝더라구요. 특히 코로나 때문에 그런지 배달음식에 플라스틱이 너무 많더라구요. 가능하면 재활용품 잘 처리하고 플라스틱은 씻어서 버리려고 하고 장바구니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도 정책적으로 어떻게 조치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ㅜㅜ

blanca 2021-05-20 12:33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요. 특히 배달음식.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이 들면서도 또 다 해먹을 수도 식당을 자유롭게 다닐 수도 없으니까요. 요새 자꾸 지구의 수명이 유한하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코로나도 그렇고 인간이 무한정 쓰고 한계 없이 누릴 수 있다는 환각이 무참이 깨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 무언가 확 다른 시각, 자세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아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읽다 만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 완독한 경우. 몇 년도 전에 나는 이북으로 이 책을 샀지만 초반부를 좀 읽다 덮어버렸다. 재회할 일은 없을 거라고 여겼다.
















김금희 작가를 좋아하지만 어쩐지 좀 지루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초반부에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이야기는 이제는 참고 읽지 않겠다는 좀 묘한 결심을 한 터라 그렇게 되어버렸다. 즐겨 듣던 <서담서담>에서 <경애의 마음>을 다루었고 언젠가 다시 제대로 읽어볼까 고민만 하다 드디어 다시 읽기 시작하여 완독하게 되었다. 그리고 <경애의 마음>은 참으로 남다른 이야기구나, 다시 읽어 마땅했던 사연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떤 이야기는 작가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작가에게 도달하여 작가의 언어로 다시 우리에게 온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건 이야기의 당위성과 보편성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이 이야기는 그러한 이야기다.


반도미싱 팀장대리인 서른일곱살의 남자 공상수에게는 표면적으로 뒷배가 되어 줄 수 있는 든든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전혀 친하지 않은 정치인 아버지가 있다. 공상수에게 아버지는 대립하는 가치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삶의 한 요소다. 이 "융통성 없고 눈치 없는 인간"이 조직에서 그 덕에 쫓겨나지도 않고 호칭도 애매한 팀장대리로 8년 차 총무부 직원 박경애를 유일한 팀원으로 받아들이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경애는 공공연히 담배를 폈고 회사에서 농성대에 끼어 삭발을 한 전력이 있다. 그 둘은 한 마디로 조직에서 매우 튀는 세상과 불화하는 존재라는 공통점과 인천호프집화재사건 때 죽은 은총이라는 친구를 매개로 한 접점이 있다. 작가는 자본주의의 효율성에 반하는 두 존재가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과 자본주의의 효율성의 광기어린 집착이 빚은 참화의 중심에서의 친구의 상실이라는 이야기를 불러와 시종일관 우리가 간직하지만 어쩐지 드러내어 놓지 못했던 가장 우리다운 마음들에 따스한 시선을 보낸다. 


상수가 속해 있는 세계란 터무니없이 복잡하고 감정적이고 불안정한, 측량되지 않고 가시적이지 않은 것들에 열을 올리고 헛수고가 분명할 일에 봉사하는 백일몽에 빠진 인간들이 있는 세계에 불과하겠지만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김금희 <경애의 마음>


누구나 이런 세계에 살았던 경험이 있다. 전적으로는 아닐지라도 누군가는 이런 세계에 푹 잠겨 있고 어떤 이는 자신이 이 세계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다고 여기지만 그곳으로의 귀환을 꿈꾼다. 비효율적인 곳, 쓸모없음이 판치는 곳, 그럼에도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영토. 공상수가 끝내 포기하지 않는 그곳에서 마침내 경애와 포옹할 때 나는 작가의 마음을 짐작한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은 채 순하게 살 수 있는 순간은 삶에서 언제 찾아올까."


불가능한 비현실적인 순간을 포기하지 않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했다. 그 둘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거대한 세상을 대상으로 싸우기 위해 손을 잡고 그리고 넘어지고 그럼에도 다시 손을 잡는 이야기. 그리고 그러한 상수와 경애를 알아봐주는 주변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을 잠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는 위안을 준다. 현실을 반영하며 현실에 매몰되지 않는 것, 삶의 모순을 드러내며 그 긍정을 포기하지 않는 것, 이 모든 이야기가 이야기로서 끝날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쓰고 읽는 것에 대한 가치를 의심하지 않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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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5-11 1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주 드물지만 그런 경우가 있죠.
그럼 어찌나 안도하게 되는지.
하마터면 안 읽을 뻔했잖아요.
그 책도 되게 기뻤을 거예요.ㅋ

blanca 2021-05-12 10:06   좋아요 1 | URL
이런 경우 왠지 특히 더 뿌듯해지는 것 같아요. 책값도 아끼고요.^^

레삭매냐 2021-05-12 1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빌려서 읽다가
말았는지 어쨌는지 잘 기억이...

어쨌든 다 읽지 못한 것으로.

blanca 2021-05-12 10:16   좋아요 0 | URL
그죠. 빌려 읽으면 완독이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저도 읽다 말다 그러다 이번에 완독했어요. 지금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태반이 읽다 말다 반납하게 되더라고요.
 

나에게도 그런 입사 동기의 추억이 있다. 정말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데에 가까웠다. 밝고 맑고 친절했다. 그런데 설명하기 힘든 어긋남이 있었다. 그는 나의 결혼식을 앞두고 여러 번 전화가 왔다. 나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했고 여러 진행 상황에 대한 조언을 아낌없이 주었다. 참고로 나는 그의 결혼식에 이미 기꺼이 참석했고 동기 회비에서 갹출한 부조금 외에 개별적으로 추가로 또 부조를 했다. 아, 계속 치사해지는 것 같지만 향후 할 이야기에 이 부조금은 대단히 중요해진다. 그는 반드시 내 결혼식에 오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그건 내가 먼저 원하거나 부탁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연락도 없이 내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부조금도 조금 기대했던 선물도 없었다. 아, 이 사람을 어찌할까나. 사실 그는 내 결혼식에 오지 않아도 무방했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 전에 나에게 했던 그 지켜지지도 못할 약속과 마치 자신의 결혼식처럼 기대를 나타내던 그 모습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그 이후의 기억이 없다. 아마, 그는 아마도 또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에게 연락해 수다를 떨었지 싶다. 나는 진심으로 황당했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인간형인데 또 미워할 수도 없는...  그런데 그러한 인간을 다시 만날 줄이야.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의 처음 이야기 '잘 살겠습니다'에서 나는 마치 그 동기를 아는 사람이 살짝 비틀어 이야기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싱크로율 백퍼센트의 현현인 빛나 언니의 등장에 움찔했다. 아, 이런 인간형이 아주 드문 것은 아니구나. 그러니까 비호감인 것도 같은데 그렇다고 마구 미워할 수도 없는, 대단히 계산적인 것 같은데 또 영 어리숙한 결국 내가 지고 마는. 장류진은 회사라는 조직에서 우리가 흔히 사람에게 가졌다 배반당하는 신뢰와 기대를 기민하게 포착하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조직 안에서 나누는 교감은 어떤 한계와 의외성을 지닌다. 그것은 시스템이 각자에게 기대하는 몫과 그 시스템 안에서 자신이 가지는 페르소나의 격자와 충돌하는 개인성의 발견이다. 다른 환경, 다른 조직에서의 인간 관계의 역학과는 사뭇 다른 지점이다. 내가 빛나 언니를 미워하면서도 하려 했던 그 사소한 복수의 황당한 결말에서 언니를 결국 긍정할 수밖에 없었던 그 근방에서 나는 잊었던 그 동기에 대한 나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나는 그를 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었다는 것. 여전히 어떤 속수무책의 오지랖들에 어쩐지 넉넉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는 것. 잘 살고 있기를 바라게 된다는 것. 


대부분의 이야기가 어떤 허를 찌르는 기대의 배반의 변곡점을 지나 따스하게 마무리되어 좋았다. 특히나 마지막 <탐페레 공항>은 또 어떤 추억을 환기했다. 다큐멘터리 피디의 꿈을 지닌 화자가 아일랜드에 워킹홀리데이를 가다 들르게 된 경유지인 핀란드의 공항에서 만난 시각장애를 지닌 노인과의 교감. 연락처를 주고 받고 막상 바쁜 일로 답장을 보내지 못하나 가슴 한켠에 남는 그 어떤 부책감, 상대의 안부에 대한 염려. 


그리고 언어, 인종, 국경, 시간을 넘어 여전히 남는 서로에 대한 마음. 


<일의 기쁨과 슬픔> 덕분에 나는 잊은 그들 모두가 여전히 잘 살고 있기를. 그리고 우리의 어긋남으로 각자의 인생의 경로는 다시는 교차하지 못할 방향으로 선회했지만 그럼에도 나누었던 시간들이 가지는 그 가치와 무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어떤 안도감을 얻었다. 어떤 관계는 그렇게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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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1-05-10 0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혼식에 참석할 의사가 분명한 사람은 개인 사정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한다면서 미리 연락을 합니다. 입사 동기는 애초에 결혼식에 참석할 마음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인사치레를 한 것일 수도 있어요

blanca 2021-05-11 12:42   좋아요 0 | URL
너무 깊이 생각하다 보면 정말 이상하게 생각되어서 --;; 그러게나 말입니다. 여튼 결혼식에 얽힌 황당한 일들이 제법 많았어요^^;;

레삭매냐 2021-05-12 1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살면서 결혼식을 치르면서 관계
의 손절이 많이 이루어진다고
하더군요.

현장에 나타나지 않으면서 자연
스레 정리가 되는 게 아닌지...
사실 기대를 하지 않으면 출현하지
않아도 무방하겠지만요.

사람 사이의 관계란 그것 참.

blanca 2021-05-12 10:17   좋아요 0 | URL
저는 안 그러게 될 줄 알았는데 역시가 참 사람 치사하게 온 사람, 안 온 사람 확인하게 되더라고요. 훌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