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11살 아들놈이랑 10살 딸놈(딸년이라고 하자니 욕같아서 ㅜㅜ)이랑 문제가 생겼습니다.
연필 한자루 때문인데요, 흰 연필에 캐나다 국기 단풍무늬가 보이는, 캐나다 기념품 정도 되겠습니다.
아이들이 예전에 다니던 영어학원의 선생님이 둘 다 캐나다 사람이었는데, 딸아이 선생님은 캐나다로 돌아가면서 이별 선물로, 아들아이는 뭔가 퀴즈대회에서 잘해서 그 상으로 받은 거랍니다.
그런데 어찌된 게 집에 연필이 한자루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둘다 자기거라고 우깁니다. (새연필도 아니구요, 절반 이상 쓴 짧은 연필입니다.)
사소한 것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여서 둘다 울고 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개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너희들이 엄마라면 어떤 판결을 내리겠느뇨...
물었더니, 아들놈이 이번 시험 잘 보는 사람이 갖자 라고 합니다.
(이건 아들놈에게 몹시 유리합니다. 평소에 아들놈의 목표는 반 평균을 깎아먹지 말자 이지만, 딸아이의 목표는 꼴등은 하지 말자 니까요.)
아들놈이 머리를 써가며 적당히 자존심을 자극하여 딸아이가 오케이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들더군요.
(여기에 끼어든 6살 늦둥이, 그럼 점수 똑같으면 자기가 갖겠다 고 했다가 언니오빠에게 한꺼번에 당하고는 또 울었습니다 ㅜㅜ)
제가 다짐을 받았죠. 너희 둘이 아무런 이견 없느냐, 정말 따르겠느냐... 거의 딸아이를 보고 다짐을 받는 형국이었습니다. 선뜻 응한 녀석 때문에 아무래도 불안했습니다. 둘 다 좋답니다.
시험 전날,
아들놈은 연필을 바라보며 공부를 열심히 했고(시험 전날만), 그저 시험공부보다는 세상일에 흥미가 훨씬 많은 딸아이는 연필을 쳐다도 안 보고 룰루랄라 놀았습니다.
그리고 시험일...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 이렇게 다섯과목을 3월부터 11월까지 범위로 봐서 거의 평소실력으로 보는 분위기였습니다.
아들놈은 평소와 비슷하게 봤습니다.
수학은 생각보다 못봤고(자기는 왜 큰시험에 약한 줄 모르겠답니다. 이녀석, 큰 시험에 약하기는. 수학 점수는 단원평가나 경시대회나 똑같습니다. 어차피 계산에서 실수가 많으니 ^^),
사회는 대전의 생활인지 충청남도의 생활인지 하는 걸 안배워서(유성구의 발달한 산업에 대해 쓰시오... 이런 문제가 나왔다는데 이 녀석 유성구가 어디 있는줄도 모르는데 말이죠) 못봤다고 합니다.
나머지 과목들은 잘 봤습니다.
딸아이는...
아마 잘본 것 같답니다.(당연히 안 믿었죠)
시험 다음날
점수가 나왔는데, 아들놈이 총점에서 딱 2점 높은 겁니다. (딸아이로서는 지금까지 맞아본 적이 없는 점수를 맞았습니다만...)
울고 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딸아이는 이렇게 시험을 잘 봤는데 연필을 갖지 못하게 되었으니 억울해서 울고, 아들녀석은 자기가 이겼는데 동생이 우긴다고 또 울고...
저는 웃고만 있으니 엄마는 왜 웃느냐고 또 울고,
늦둥이는 그럼 자기가 갖는다고 끼어들었다가 언니 오빠한테 쌍으로 구박받고 또 울고 ^^
한참을 울더니 결국 딸아이가 오빠한테 사과하면서 연필 직접 갖다주고 저는 딸아이에게 기특하다고 칭찬하고... 일단락되었죠.
그런데 점수 발표 다음날,
딸아이가 바람처럼 집에 뛰어들어오더니, 흥분해서 소리지릅니다.
과학을 자기가 하나 틀렸는데 그게 자기가 쓴 것도 답이 되었다고 그래서 총점이 4점 올라갔으니, 2점차로 오빠 이겼다고, 그러므로 연필은 자기 것이라고...
문제가 초파리의 눈 색깔이었는데요, 빨갛다고 배웠으니 그렇게 쓰면 될 것을 이 녀석은 흰색이라고 적었답니다.(완벽한 오답)
그런데 돌연변이에 의해 흰눈이 나온다고 어떤 녀석이(딸아이의 표현에 의하면 무지무지 똑똑한 어떤 애가) 무슨 어려운 책을 찾아서 들고 왔더랍니다.(고등학교 땐가 반성유전 운운하면서 흰눈보다 빨간눈이 우성이라고 배운 것도 같고)
그래서 흰눈도 맞다고 해줬답니다.
우리집 또 한번 뒤집어졌습니다.(이번에는 아들놈만 울었고, 늦둥이도 두 번의 교훈으로 끼어들지 않아서 울지 않았습니다)
혹시 그 연필 파는 곳 아시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