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선생님이 도서관수업을 요청하셨다.

주제도 아무 거나, 방식도 아무 거나... 오늘 장학사들이 와서 연구수업하는 날인데, 그 옆반이 수업이라 혹시 방해할까봐 아이들을 도서실로 유배보내는 게 목적인 듯했다.(도서실 담당샘만 아니었음 안한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우쨌든, 두 시간을 하자고 해서 알겠다고 하고, 고민하다 이번엔 사회 환경 관련 내용을 하기로 했다.

모둠별로 프레젠테이션 자료 만들기

주제는 우리 모둠은 도시계획가

먼저 설정을 했다.

대지진으로 도시 하나가 완전히 파괴되어서 재건설해야 한다는 것. 모두 6팀이 프레젠테이션에 참여하였는데(아이들이 6모둠이므로) 14:00까지 프레젠테이션 준비 완료할 것.

그리고 설명회를 가졌다.

1. 우리 도시는 대한민국 대전시 정도의 넓이와 인구입니다. 지도를 참조하세요.(대전 백지도 하나 첨부)

2. 우리 도시는 선사유적지가 있습니다. 많이 파괴되었지만 발굴하고자 합니다.(지도에 유적지 지역 표시)

3. 우리 도시는 천이 도심을 가로질러 흐르고, 산도 많이 있어서 자연환경을 잘 이용하고 싶습니다. 우리 시민들은 쾌적한 도시를 원합니다.

4. 우리 도시 주민들의 일터는 바로 이 도시입니다. 당장 일할 곳이 필요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번 지진으로 일터를 잃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반드시 들어가야 할 내용을 써주고

(도시 이름, 도시 특징, 생활폐기물 등의 처리방안, 교통수단, 주거지 특징, 조감도 등)

그 다음으로 참고할 만한 도시들 이야기를 해줬다.

빠질 수 없는 곳이 꾸리찌바. 그 외에 검색해서 세계 여러 나라의 생태도시들에 대해 얘기해주고, 우리나라 은평 뉴타운이 생각하고 있는 클린시티랑 행정수도에서 한다는 에코시티 이야기도 해주고.

그렇게 해서 결국 시간 안에 두 모둠이 완성했다.

한 모둠은 생태도시라는데, 뭐, 거의 도시라기보다는 자급자족형 농촌의 모습이다.

도시 한쪽에 아파트는 몰아두고, 거의 공원과 논밭이다. 물론 아파트 옆에는 반드시 학교와 도서관을 그려두는 센스^^

또 한 모둠은 관광도시로 산악지대는 전부 스키장을 만들고, 반대쪽엔 주거 교육시설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이 도시의 주거지역에서는 일주일에 하루만 자가용을 이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 한단다. 쓰레기는 모두 모아 대형 분쇄기에 갈아서 거름으로 만들어 논농사에 이용한다고 한다.

주거지역에만이 아니라 스키장 중간중간에도 도서관을 지어두는 센스 ^^

난 좀더 진지하게 아이들이 고민해주기를 바랬지만 욕심이었다.

차라리 세계 여러 생태도시를 직접 조사하게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다만... 도서실 시설이 너무 열악하다. 환경관련 책들도 거의 없고, 검색할 컴퓨터도 없고.(솜씨 없는 나뭇군이 연장탓을 한다나 어쩐다나...)

이렇게 또 하루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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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5-30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호랑녀님의 수업은 정말 듣고 싶어요

호랑녀 2006-05-30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이번 수업은 ... 급하게 준비한 거라 도서실에서 수업을 했을 뿐, 정식 도서실 수업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왜냐... 아이들이 도서실의 자료를 활용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초보 사서교사의 실수입니다. 아이들이 직접 자료를 찾아 활용하게 했어야 했는데... 그냥 두 시간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

가을산 2006-05-30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b

hnine 2006-05-30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의력'이 요구되는 수업이었군요. 이런 수업, 너무 좋아요.
그런데 '꾸리찌바'가 뭔지요...?

sooninara 2006-05-30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 꾸리찌빠 살까 말까 하다가 안샀는데..
사야될듯..

조선인 2006-05-30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 제발 수원으로 이사와줘요!!!

호랑녀 2006-05-30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암호해독 들어갑니다. 최고 뭐 이런 걸까요? 으쓱...
꾸리찌바는 브라질의 생태도시 이름이래요. 이것에 관한 책이 어른용도 있고 아이용 동화도 있어요. (제가 동화는 서평도 썼습니다요)
생태도시가 꾸리찌바만 있는 줄 알았더니 여기저기 몇 군데 있더군요. 뱅쿠버는 신축을 하면 반드시 같은 넓이의 녹지를 확보해야만 하더군요.
수니님, 대전 나들이 한번 하셔요. 빌려드릴게요.
수원에 오라굽쇼? ^^ 직접 수업 보시면 산만하고 나만 소리지르고... 아주 엉망입니다.

반딧불,, 2006-05-30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쫌만 지나면 꾸리찌바 살 거예요!

가랑비 2006-06-12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쪄요!!
 

오늘은 6학년들을 데리고 책만들기를 했습니다.

주제는 [우리 모둠이 만든 위인전]

목표는 도서실에 있는 위인 관련 자료를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40분 가지고는 어림없는 일이죠.

첫반은 위인퀴즈를 해가며 한 5분을 썼더니 더 시간이 없어서, 나머지 두 반은 그냥 책만들기로 갔습니다.

제가 미리 샘플북을 하나 만들어봤구요,

모둠별로 책만드는 방법 4가지 정도의 자료와 위인전 만들 때 주의할 점을 미리 프린트해서 두었습니다.

위인전을 만들 때 반드시 들어가야 할 내용으로

1. 위인 소개

2. 위인이 살았던 시대 배경

3. 이 시대 다른 나라의 상황

4. 참고자료

5. 저자 소개

이 다섯 가지를 정해주었구요,

시대 배경이나 이 시대 다른 나라의 상황을 알기 위해서 참고할 만한 책도 일러주었습니다.

특히 참고자료는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너희들이 대학교에 가서 레포트를 쓸 때 이걸 밝히지 않으면 외국 대학의 경우엔 그대로 퇴학이라고 강조! 했습니다.(맞나? 뭐, 외국 대학을 다녀봤어야 알쥬 ㅠㅠ)

아이들은 그 동안 먼지 탱탱 끼었던 백과사전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위인의 생몰년도를 알아낸 후 그 년도에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세계사책과 연표를 활용하였습니다.

사실 인터넷 자료도 찾게 하고 싶었지만, 아직 리모델링 전이라 도서실에는 반납대출용 낡은 컴퓨터 한대가 있을 뿐이거든요.

아이들이 원하는 자료 중 필요한 부분은 행정실까지 뛰어가서 복사도 해다 주고 한 덕분에 제법 모양을 갖춘 책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래도 40분 안에 완성하기는 힘드네요.

나머지는 다음주에 한번 더 오든가 아니면 숙제로 해오라고 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제처럼 내내 내가 떠들어야 하는 수업은 아니라서 덜 힘들지만, 그래도 한 반이 수업 마치고 가면 도서실은 폭격맞은 집이 되고 마니, 힘들긴 하네요 ^^

 내일은 네시간인데... 서서히 체력의 한계가 오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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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6-05-24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호랑녀님 멋져요~~~
이렇게 알찬 독서수업을 하시다니~ 그 핵교 아이들은 복 받았어요!
그나저나 도서실에 복사기 설치를 강력히 희망하심이.....

호랑녀 2006-05-24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리모델링할 때 복사기 설치해줌 좋겠는데, 겨우 5천만원 가지고 교실 세칸을 새로 만들다시피 해야 하니... 될라나...ㅠㅠ
그냥 애들하고 같이 노는 거여요.

hnine 2006-05-24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eference밝히지 않고 자기것인양 쓰면 퇴학감 맞지요 ^ ^
그나 저나 정말 체력 싸움이시겠어요. 수업 마치고 나면 보람은 크시지요?

조선인 2006-05-24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연달아 고생이십니다.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씩으로 조정하시든지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호랑녀 2006-05-24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하루에 한 반만 하면 좋죠. 그런데 담주에 장학지도가 있어서 그 전에 다 해야 한다나 어쩐다나 그렇답니다.
에이치나인님, 퇴학감 맞아요? 그러니까 제가 완전 협박을 한 건 아니로군요 ^^ 도서실이 교실보다 조금 더 커서, 큰소리로 얘기해야 하고, 또 간 다음에 폭격맞은 거 청소해야 하고... 그래서 좀 힘드네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재밌어요. 그렇게 힘들면 하지 마 이럴까봐 힘들단 말 안해요 ^^

가을산 2006-05-24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이런 수업 한번만이라도 받아봤으면!

호랑녀 2006-05-24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아드님 학교가 어디죠? 제가 거기로 옮길까요 가을산님?
(그런데요, 제가 이런 수업하는 거, 학교에선 암도 안 알아줘요 ㅠㅠ)

에로이카 2006-05-24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훌륭하신 선생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 아이들이 알아주겠지요... 그리고 좋은 선생님을 오래도록 기억하겠지요..

호랑녀 2006-05-24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거덕, 훌륭하신 선생님이라니... 이제 제가 그만 잠수할 때가 되었나봅니다 ㅠㅠ;;
에로이카님, 금방 서재 가보고 왔어요. 가끔 놀러가도 되죠?
진짜 서재로 놀러가서 책 빌려읽고 싶은 생각도 들고...^^

하늘바람 2006-05-25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호랑녀님 수업듣고 싶습니다. 정말 알차고 도움될것같아요
 

우여곡절 끝에... 도서관 수업을 하게 되었는데,

오늘 1교시부터 5교시까지 내리 다섯 시간을 했다. 헥헥...

도서실 이용법 이런 거 하믄 부담 없는데, 교과 관련된 도서실 활용수업을 사서교사가 해보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뭐... 계약직한테, 일당 3만 얼마쯤 되는 사람한테 너무하는 거 아냐 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우쨌든 하라믄 해야지 우짜겠노 ㅠㅠ

오늘은 5학년 친구들에게 6단논법에 대해 설명하고 써보는 시간을 가졌다. 교재는 5학년 읽기책에 나온 박제상 이야기.

박제상이 어느 나라 사람인 줄 아냐?

이러면서 신라 이야기를 좔좔 들려준다. 박혁거세에서 남해차차웅, 유리, 석탈해... 그러다가 김씨 중에 미추왕이 제일 먼저 왕이 되고... 그러다 내물왕이 왕이 되었는데, 이때 고구려는 광개토대왕이고 백제는 근초고왕 시절이고...볼모가 어떻고 실성왕을 거쳐 눌지왕이 왕이 되고...그 다음엔 읽기책에 나온 그대로이고,  박제상이 죽고 나서... 부인 죽고, 둘째딸은 미사흔 왕자의 부인이 되고, 아들은 백결선생이고... 그래서 방아타령까지...

이쯤해서 이렇게 재미있는 역사이야기가 어느 책에 나왔는지, 어느 코너에서 책을 고르면 되는지 살짝 곁들여주고...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정말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나도 신나서 점점 말이 빨라진다. 1교시때는 15분 걸렸던 이야기가 5교시가 되니 10분에 끊었다. 아이들은 무지 숨가빴겠지.

그 다음은 6단논법.

오늘의 논제는 '충성도 좋지만 박제상은 한 가정의 가장이므로 가족을 먼저 돌보았어야 했다' 였다.

참 이상한 게, 일단 자기 생각을 정리해보라고 한 후에 조용히 손을 들게 했는데, 반에 따라 확! 쏠린다. 어떤 반은 가장의 의무에, 어떤 반은 신하로서의 의무에.

토론을 붙이고, 생각지도를 완성한 후 6단논법으로 정리하게 했다.

그 중 눈에 띄는 의견

왕의 동생 둘이 어떻게 자기 아들보다 더 중요합니까!

그렇게 자기 동생이 중요하면 자기가 가지 왜 신하를 보냅니까, 혹시 눌지왕이 죽으면 왕이야 다시 뽑으면 되지요.(선거가 얼마 안 남은 관계로 ^^)

가장은 한명이지만 신하는 여럿이다. 고구려에 한번 다녀왔으면 할 만큼 했다.

그렇다고 어떻게 집에 들르지도 않고 일본에 또 가냐. 충성이 그렇게 중요하면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지.

아버지가 그렇게 고생을 시키니까 내공이 쌓여서 백결선생 같은 음악가가 나온 거다. (예술은 원래 배고픔에서 나온다나?)

미사흔과 복호는 단순히 왕의 동생이 아니다. 우리가 독도를 지키려고 하는 게 땅값때문은 아니다. 나라의 자존심이다.(와우, 얘 5학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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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5-23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엄청난 강의였겠군요. 저도 듣고 싶어요. @.@

세실 2006-05-23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다섯시간이나 스트레이트로 하시다니....많이 힘드셨겠습니다~
님의 박학다식함에 저도 입을 벌렸습니다. 흐 부러워라~~~ 애들이 참 좋아했겠군요~ 역사와 토론의 접목. 이런것이 바로 통합적 독서교육 이겠죠?

호랑녀 2006-05-23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은 6학년 4시간 잡혀있습니다. 모둠별로 위인 한명씩 뽑아서 책만들기 하려고 합니다. 제목은 '내가 만든 위인전'
뭐, 계획이 그렇다는 거죠. 내일이 되어봐야 알겠죠.

호랑녀 2006-05-23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다 아시면서...ㅎㅎ 책 보믄 다 나와요. 열심히 공부해서 재미있게 들려주는 게 우리들 전공 아니겠습니까 ^^

sooninara 2006-05-23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그학교 아이들은 복도 많다니깐요^^

호랑녀 2006-05-23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별님은 뭐라고 하셨을라나... 궁금 궁금...
수니나라님, 이게 다섯 반 해서 나온 말들이거든요? 대부분의 시간은 버벅대면서 보냈어요. 한쪽에선 딴소리하고, 내내 목 터지게 설명하면 정확히 1분 뒤에, 생전 처음 본다는듯이 '선생님 반론꺾기가 뭐에요?' 이러기도 하고...

반딧불,, 2006-05-23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여기는 안될까요?
(정말 부럽다..)

마태우스 2006-05-24 0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제상이 일본 가서 안오고 아내는 돌이 되었다는 그 사람으로만 기억하는데, 미사흔과 눌지왕 백결선생 등과의 관련성은 모르겠군요. 아무튼 토론식 수업, 대학생들도 잘 못하는데 애들은 잘되나봐요. 우리의 미래는 밝은 거죠??

호랑녀 2006-05-2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이게 글로 쓰니까 있어보이는 것일 뿐 ㅠㅠ
마태님... 반에 따라 굉장히 달라요. 토론을 해본 반과 안해본 반이 확실히 표가 나구요, 수업분위기도 반에 따라 참 다르대요. 담임선생님의 영향이 참 크구나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하늘바람 2006-05-24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엄청난 강의네요 제게 필요한. 아이들 좋았겠어요
 

금요일 저녁, 부쩍 말 안 듣는 딸내미때문에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내 옆에 남편이 왔다.

늘상 하던 일, 저녁 준비하는 내 옆에서 얼쩡거리면서 이리저리 간섭하는... 을 하는데 나는 계속 폭발 직전의 얼굴을 하고 남편에게 툴툴거렸다.  결국 남편,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고마 해라~ 좀 심해.

라고 한마디 하고, 나는... 그래, 누군가 건드려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는데 그게 너였니? 하는 투로 째려본 후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갑만 챙겨 나갔다.

한참을 걷다 보니, 극장이다.

무조건 제일 먼저 시작하는 영화를 끊었는데... 그래도 할인받느라 이동통신사 제휴카드를 사용했고, 사용내역이 집에 있는 핸드폰에 삐리리 문자로 떴다.

마누라 행방을 알게 된 남편...

집에서 입는 고무줄 반바지 차림에, 거기에 신발은 또 구두 차림으로... 극장으로 찾아왔다. 극장사람들에게 영화 끝나고 나오는 곳이 어디냐고 물은 후에 그곳에서 팔짱끼고 지키고 섰다. 극장 직원들, 비상 걸려서 계속 감시한다.

두시간 내내 낄낄대고 영화보고 나오다가... 그런 모습의 남편을 봤다. 가출한 딸 잡으러 급히 뛰어온 아버지 모습!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풀렸고, 남편은 지뢰 밟은 셈이다.

둘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낄낄대고 웃고 집에 오다가... 남편이 그런다.

야, 나는 이러는 거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중에 우리 아들이 이러면 어쩌냐? 저놈도 나 닮아서 마누라 화나면 벌벌 떨면서 머슴 되는 거 아니냐?

남편이 머슴인 건 가끔 괜찮은데, 아들이 나중에 며느리 머슴노릇하면 ... 좀 그렇긴 하겠다. 뭐, 안보고 살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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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5-15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래서 시어머니 마음이군요^^

hnine 2006-05-15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호랑녀님, 괜찮은 방법이네요. 폭발 직전에 그 자리에서 일단 나와주는 방법.
남편의 애정도 확인해주고.
좋은 남편이세요.

울보 2006-05-15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의 마음이지요 후후

반딧불,, 2006-05-15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그래도 찾으러 가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뭐 저는 그렇게 살아라고 맨날맨날 아들한테 사주하는데요ㅡ.ㅡ;;

세실 2006-05-15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남편분이 많이 사랑하시나부다~~~
울 신랑은 그러고 나가도 별반 찾는 노력 안하거든요. 흑...

아영엄마 2006-05-15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찾으러 나와주시기까지 하시는 거 보니 많이 아껴주시는군요. ^^

가을산 2006-05-15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반바지에 구두 신는 사람이 우리 남편 말고도 또 있군요!

마태우스 2006-05-15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났을 때 영화보는 건 좋은 취미 같습니다....

호랑녀 2006-05-15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남편은 아마 멋모르고 당했을 거에요. 이젠 다시는 안 그럴 거에요...
아니, 반바지에 구두 패션이 우리남편 말고 또 계셨단 말임까? 그것도 한 동네에? ^^
(정말 솔직한 말로... 아는 척 해? 말아? 고민했다니까요)
울 아들도 이렇게 하라고 키워야겠습니다. 화났을 때 영화보면 일단 시간이 잘 가서 좋더군요. 화내고 나왔는데, 바로 들어가긴 좀 그렇잖아요...ㅜㅜ

날개 2006-05-15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써먹어봐야겠군요..흐흐~

진/우맘 2006-05-17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남편.....^^

sooninara 2006-05-18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흐
이제야 이 페이퍼를 보다니..아영엄마가 갈쳐줘서 들어왔어요.
저도 집나가면 영화 보러가는데..ㅋㅋ 찌찌뽕.
저희남편은 부인이 집에 올지알고 안찾아요.ㅠ.ㅠ
반바지에 구두 패션이 대전에서 유행이군요.ㅋㅋ
 

어느 학교의 홈페이지에 공지사항으로 뜬 내용입니다.

기증 도서 및 DVD구비 안내

1. 2006년 1학기 전교회장으로 선출된 *** 어린이가 도서관에 월간 “과학쟁이”, “생각쟁이”를 구독하겠다는 공약의 실천으로 2006년 4월부터 2007년 3월까지 1년 정기구독하여 주셨습니다. 우리학교 도서관 정기간행물 코너에 있으니 많이 활용하여 주세요.

2. 2006년 1학기 전교어린이부회장으로 선출된 @@@ 어린이가 도서관 DVD를 구비하겠다는 공약의 실천으로 DVD 총 17개를 기증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치킨런”,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신데렐라”, “포카혼타스”, “오즈의 마법사”,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피터팬”, “하울의 움직이는 성”, “코러스”, “뮬란”, “노틀담의 곱추”, “은하함대 지구호”, “어사 박문수”, “애나앤더킹”, “윌리엄텔의 모험” 총17개.
매월 첫째주, 셋째주 수요일에 DVD 상영을 합니다.
우리학교 도서관 홈페이지에 공지사항에 DVD상영 계획 안내를 보시고 많은 관람바랍니다.
 
도서실에 잡지, DVD 무지 필요합니다. 혹시 누군가가 기증해주신다면 정말 고맙게 받겠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교어린이회장 부회장 당선사례쯤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떨어졌다면 당연히 기증하지 않았겠죠?
이거, 학교에서, 교육의 현장에서 이런 건 안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아이들 이름까지 해서 학교 홈피 맨 처음에 뜨는 공지사항에 올려두었군요.
 
몹시 씁쓸했습니다. 나 뽑아주면 피자 쏠게 라고 말해서 된 피자반장하고 근본적으로 뭐가 다른지...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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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5-10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

진주 2006-05-10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웃긴다.........

히피드림~ 2006-05-10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너무 얄팍해 보입니다.

아영엄마 2006-05-10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별별 것을 공약으로 내거는군요. @@;

반딧불,, 2006-05-10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나. 이걸 공지로 내건 학교가 더 우습네요.

가을산 2006-05-11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말씀에 동감

가랑비 2006-05-11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공약이란 학교에서 학생에게 필요한 걸 구비하게끔 노력해서 성취해야 할 텐데... 저 학교 어린이들이 저런 걸 기증할 여력이 없는 친구는 학생회장도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어쩌지요? (저 누군지 아시겠죠? ^^)

sooninara 2006-05-11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ㅠ.ㅠ
학교에서 생각이 짧았어요.

진/우맘 2006-05-17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ㅡ,,ㅡ

진/우맘 2006-05-17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벼리꼬리님 말씀이 정확하네요. 공약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걸 걸어야지....
저래서야, 좀 심한 비약이긴 하지만....시장 출마 하면서 (시민의 혈세로) 잔디운동장을 만들겠슴다~하고 뭐가 다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