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 시간에 이미 말씀드렸듯, 제 천성은 비록 게으르나 약조한 일은 어찌하든 지키려는 성정을 지닌 탓에 오늘 밤을 넘기지 않고 이렇게나마 글을 올립니다. 사실 더 붙잡고 있어봐야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은 연유도 있겠지만요. (어째 사극~~)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 마지막 발표를 맡은 배경완입니다. 멋진 피날레를 장식해야 할 터인데, 걱정이 앞서네요.

 

아참!! 이상원 선생님, 빨리 알라딘 회원 가입하시고, 발표문 순서랑 간략한 소감이라도 올리시죠^^

 

 

내 맘대로 뽑은 2011년 최고의 영화, 최악의 영화 - [그을린 사랑]과 [마이 웨이]

 


내 처지가 반 백수인 관계로 사람이 뜸한 조조할인 시간대에 주로 영화를 관람하게 되는데, 무엇보다 큰 이점이라면 영화보다는 먹을거리에 집중하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땐 영화 시작 후 적당한 때를 봐 좌석을 옮길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고작 몇천 원이긴 하지만 저렴한 가격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좋은 점만 있는 건 결단코 아니어서, 가끔 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교차상영으로 인해 그 시간대에 배정되지 않거나, 그야말로 진상 관객이 입장했을 때는 불가항력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이런 장단점보다 나를 더 일희일비하게 만드는 건 바로 영화 자체였으니, 부족한 잠을 떨쳐내며 아침부터 출동했는데 시쳇말로 “이건 뭥미?”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영화를 만났을 때의 절망감이란! 지면으로는 옮기기 어려운 육두문자가 입에서 절로 튀어나온다. 물론 아침 댓바람부터 좋은 영화를 보게 되면 관람하는 시간뿐 아니라 하루가 행복하게 되는 건 당연지사고….

 

[그을린 사랑]과 [마이 웨이]를 2011년 최고와 최악의 영화로 꼽은 데에는 우선 조조할인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내 경험이 기여한 바가 크다. [그을린 사랑]의 경우에는 개봉관 수도 극히 적고, 무엇보다 일몰 이후 시간대로 집중 편성되어 있어 적잖은 짜증이 밀려왔다. 물론 그 이유가 단순히 상업적인 교차상영 때문이 아님을 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에 반해 [마이 웨이]는 ‘이 시간에도 영화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꼭두새벽부터 상영을 시작해, 말이 좋아 당일 상영이지 26시 종료가 뭔 말인지…. 하여간 개봉관 수도 빵빵하고, 상영 스크린 수는 단연 최고였으니 시쳇말로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했고, 조조할인의 선택 폭도 넓다 못해 거의 ‘광활한 만주 벌판’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이유만으로 위의 두 영화를 2011년 최고와 최악의 영화를 뽑았다면 품평은 여기서 끝날 테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지금부터이니 차근차근, 잘근잘근 두 영화를 되짚고, 곱씹어 보자.

 

불타는 사랑도 아니고 그을린 사랑이라니

 

[그을린 사랑]이 이야기하는 내용만 두고 보자면, 이건 이론의 여지없이 최악의 영화다. 전쟁, 테러, 고문, 살인, 영아유기, 근친상간 등. 살인 하나만 보더라도 암살부터 명예살인, 민병대의 민간인 학살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다양하고 사실적이어서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저리도 천연덕스럽게 읊조릴 수 있을까, 놀라우면서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 그런 요소를 희화화하거나 오락적인 요소로 취급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태생적으로 상업적인 요소를 잉태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이 말은 [그을린 사랑]이라는 영화가 재미있어서 또 보고 싶은 영화가 절대 아니라는 뜻,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는 할리우드 영화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뜻, 어쩌면 보는 내내 불쾌하고 언짢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관람 이후에도 그 기분 나쁜 잔상이 오래 남는다는 뜻, 되시겠다.

 

한 여인이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눈앞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잃고, 그 남자의 아들을 낳지만 출산과 함께 아이를 빼앗기고, 다시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지만 정치적 격동에 휘말려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체포되어 구금된 상황에서 고문과 성폭행을 당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자신을 임신시킨 고문기술자가 바로 자신이 낳은 아들이었다니!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과 슬픔을 당하고도 삶의 끈을 놓지 않는 한 아랍 여성의 일생을 차분히 그려낸 이 영화는, 그래서 단순히 반전영화라기보다는 강인하지만 순수한 영혼을 가진 한 인간을 노래한 송시(頌詩)에 가깝다.

 

이 영화가 갖는 가장 큰 덕목은 큰 목소리로 휘몰아치지 않고, 차분하면서도 객관적으로 사태의 추이를 따라가는 데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감정이 유쾌하든 불쾌하든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잔상이 오래 남는다는 건 내 영혼을 그토록 심하게 흔들어 놓았다는 말이 되겠는데, 그걸 격정적인 목소리로 선동한 것이 아니라 우수에 젖은 듯 촉촉한 목소리로 노래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을린 사랑이지 뜨거운 사랑이나 불타는 사랑은 절대 되지도, 될 수도 없다.

 

심신이 약한 노약자나 임산부를 비롯해 많은 분께 이 영화를 추천할 수는 없지만, 세상 쓴맛을 단 한 번이라도 맛보셨던 분들이라면 용기를 내어 한번쯤 보시는 것이 어떨까? 무엇보다 그리스 비극, 콕 집어 이야기하자면 오이디푸스 신화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절대 ‘강추’하겠다. 소소한 장치들에 담긴 오이디푸스 이야기와의 연관성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누가 뭐래도 난 내 갈 길을 가겠다고?

 

한국영화사상 최고의 제작비! 그러니까 영화를 만들면서 이제까지 한국에서는 써본 적이 없는 돈을 썼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일단 한국 최고다. 거기다 한중일 3국의 유명 배우들이 주조연을 맡았을 뿐 아니라 유럽 출신의 배우와 스텝들까지 이 영화에 참여한 것이 확실해 보이니, [마이 웨이]가 갖는 국제성은 기존의 한국영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국제성은 배우들의 국적과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전 세계적이라는 뜻이지, 영화의 완성도나 혹은 감동, 흥행이 국제적이라는 말은 절대, 절대 아니다.


왜 이렇게 말하느냐? 이유는 간단하다. 나와 같은 한국인 감독이 만든 영화를 봤는데, 같은 국적을 가진 내가 어디서 어떻게 감동해야 할지 알 수 없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세계인들이 이 이야기에 감동할 수 있을까? 그런 의심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구조는 간단하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던 조선에서 한 청년이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게 되고, 이후 소련군과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2차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다 전사하게 된다는 것. 아니다. 여기서 하나 빠뜨린 게 있으니, 그건 바로 이 조선인 청년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초월적 선’의 소유자이며,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되었든 언제나 달리기만 한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볼거리를 위해 얼굴도 잘 생기고 몸매도 좋은 주인공이 죽어라 밤낮없이 달릴 수도 있다. 백번 양보해서 영화의 주인공이니 초월적인 선을 가질 수도 있다. 다만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 자연스럽게 융화되면서 달린다면 뭐라 할 말이 없을 텐데, 주인공은 얼토당토않은 상황에서도 무조건 달린다. 혹한의 추위에서, 그것도 포로의 신분으로 한밤중에 수용소를 자유롭게 달린다는 설정이 도대체 가능하기는 한 걸까? 이건 흔하디흔한 SF영화의 설정보다 더 안드로메다적인 상상력이 아닐까? 초월적인 선도 그렇다. 지금이 무슨 쌍팔년도도 아니고, 초월적 선의 현현이라는 예수마저도 십자가에 못 박힌 상황에서 인간적으로 갈등한다는 영화가 나온 이 시대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그것도 정치나 종교적 신념도 없이 오직 선을 구현하려는 설정이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든다. 단 한 번만이라도 내가 누구이며, 내가 왜 이런 억울한 상황에 놓여야 하며, 이 시련은 언제 끝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아니 그냥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를 밀쳐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만 했어도 나는 주인공에게 ‘기꺼이’ 감동받았을 것이다.


이런 재앙은 시스템의 부재가 불러온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감독 한 명에게 절대적 권한이 집중되어 있으니, 감독의 컨디션에 따라 영화가 진행된 것은 아닐까? 시나리오고 연출이고,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단 한 사람이 결정했다는 것은 단연코 축복일 수 없다. 더욱이 이 영화처럼 300억이라는 현실감 없는 자본이 투입된 영화에서는 말이지. 영화 제목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냥 내 길을 가겠다.’는 정도가 아니고, 그야말로 ‘누가 뭐라 해도 난 나만의 길을 달리겠다.’이다.

 

그런데 [마이 웨이]를 내가 본 2011년 최악의 영화로 뽑으며 더욱 화가 나는 것은 단순히 이 영화의 실패가 이 영화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이다. 왜 나는 이 영화를 생각하면 할수록 이토록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생뚱맞은 용어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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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워니 2012-02-03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알라딘 회원이었습니다! 물론 비밀 번호 잊어버려서 인증 받아 간신히 복구하긴 했습니다만.^^

소감요? 그건 제가 아니라 님이 올리셔야 하지 않을지;;;

돌이 2012-02-14 18:49   좋아요 0 | URL
선생님께서 첫 시간에 알라딘 회원 가입하셔야겠다고 하셔서, 그리 말씀드린 것이니 개념치 마시옵소서. 벌써 마지막 만남이군요. 아쉬움과 해방의 기쁨이 교차합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고, 참석자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강의도 오랜만인데 이벤트는 없나요? 박태근 인문MD님께 뒤풀이라도 건의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깊네요.ㅎㅎ

이준입니다. 2012-02-05 0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경완님 글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면서, 왜! 수업을 신청했는지 궁금합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저도 대학 다닐 때 조조할인을 무척 애용했는데, 그냥 수업 들어가기 싫어서, 아침에 영화관으로 등교한 적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은 혼자 영화를 본 적도 있었습니다. 그날의 감동, 영화에 대한 감동이 아니라, 그 큰 상영관(요즘처럼 멀티플렉스가 아닌 대형 상영관)을 혼자 차지하고, 영사기 바로 밑에서 영화를 봤던 그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뭐 요즘은 혼자 가는 것도 싫고, 영화에 흥미도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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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천병희의 숲에서 헤매고 있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을린 사랑]은 꼭 보도록 하겠습니다. 결말과 그 생생한 묘사가 정말 궁금합니다.

숙제를 위해서 굳이 사족을 달자면, [마이웨이]와 함께 제일 마지막 문단이 마음에 걸리네요. 원작을 읽어 보지도 않았고 영화를 본 적도 없지만, 원작자의 인터뷰 내용이 기억납니다. 다른 내용은 각설하고, 원작자는 영화에서 내면적 갈등의 묘사가 부족한 것이 아쉬웠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분의 감상평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흥행에 실패한 것이 감독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는 이 부분에 의문을 던집니다.

영화감독의 권력이 우리나라만 제왕적인가? 과연 원작이나 시나리오에는 문제가 없었을까?

원작자는 경영학과 출신의 소설 습작 경험이 없는 사람이고 원작은 작가의 첫 작품에 해당합니다. 물론 오랜 시간을 작품에 시간을 투자했다는 것과 영화보다 소설이 호평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그 소설이 문학적으로 우수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부실한 원작과 부실한 시나리오가 영화를 망쳤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결국, 이러한 논의는 소설과 영화를 비교 분석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따라서 제왕적 영화감독 권한에서 제왕적 대통령제 문제를 끄집어낸 것은 사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소포클레스 비극]과 같은 고전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만든 저예산 예술 영화와 현대 소설로 만들어진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비교논의가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돌이 2012-02-14 19:08   좋아요 0 | URL
제 실명을 밝히시다니...도대체 어찌 아셨습니까? 이준님의 과한 칭찬에 애들 표현대로 "쪽팔려서"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겠습니다. 천병희 선생님의 번역의 숲에서 몇 년째 헤매고 있는 저로서는 이준님이 무척 반갑네요. 언제 기회가 닿아 함께 공부할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마이웨이]의 경우 저도 원작인 [디데이]를 읽지 못해 소설과의 비교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감독이 원작을 훼손시키면서까지 시나리오를 대폭 수정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영화의 감동을 극대화하려 했던 것이겠지만, 그런 시도가 오히려 득보다는 실이 많은 결과를 낳았다고 봅니다. 공동작업이었지만 시나리오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 바로 감독이었기에 제가 이처럼 말한 것입니다.

리얼리티 2012-02-05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제된 글 잘 읽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가장 큰 아쉬움은 <그을린 사랑>을 작년에 놓쳐서 이번에 리플레이 행사로 다시 보았는데, 상영일 전 날 이 글을 읽었다는 것입니다. 반전이 강렬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검색한 적도 없었는데, 마음이 아팠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좋은 영화였습니다. 헛소리는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글의 구조와 문장 모두 크게 흠잡을 데 없는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사를 언급하는 도입 부분도 성공적으로 흥미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아쉬운 점은 마지막 부분에 “이런 재앙은 시스템의 부재가 불러온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라고 하셨는데 ‘시스템의 부재’가 감독 한 명에게 집중된 절대적 권한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이것은 비단 <마이웨이>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에게 집중된 권한은 우리나라 모든 영화, 혹은 영화라는 매체가 갖고 있는 일반적 특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나리오와 감독을 한 명이 작업한 영화가 모두 <마이웨이> 같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마이웨이>의 문제점 분석에는 탁월하셨지만, 그 문제점의 원인을 지적하시는 데는 오류가 있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 2012-02-14 19:20   좋아요 0 | URL
따끔한 지적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리어리티님의 말씀대로 시나리오와 연출을 감독 한 사람이 모두 맡았다고 해서 영화가 '개판'이 된다는 일반론을 펼친 것은 아닙니다. 이 영화가 흥행에서나 완성도에서 실패한 것은 공부도 안하고 어설프게 영화를 만든 감독 때문이다...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필요조건과 충분조건...뭐 이런 설명이 가능할 듯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가 갖는 일반적인 특징이 감독의 절대적인 권한이라고 하신 것도 틀린 표현은 아닙니다만, 감독의 어설픈 상상력으로 영화를 만들면 재앙이 되지요. 예술영화나 작가주의영화를 표방하는 것도 아니고, 흡사 실화를 바탕에 둔 것처럼 꾸미면서 고증도 거치지 않고 이 따위로 만들면 이건 관객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영화라면 전투신을 검증할 전문가도 필요하고, 최소한 그 지역의 특징을 살릴 시나리오에 바탕해서 작업을 해야지요. 이런 전문가들이 참여하지 않았다는 걸 영화 요소요소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bytheway 2012-02-06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정적인 목소리로 선동한 것이 아니라 우수에 젖은 듯 촉촉한 목소리로 노래했다는 사실->이 부분을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가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참 좋은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많았는데, 같은 말을 돌려서 하고 또 하신 느낌입니다.
추상적인 이야기로 끝나는 게 보통이긴 합니다만, 그걸 구체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충분하다면 더 나은 표현이 있을 거라고 봐요.
여주인의 시선을 봐야 했을까요? 대사나 감정선이나 음악이나 조명이나 편집을 봐야 했을까요?
무엇이 정답일지는 모르겠지만, 그을린 사랑의 리뷰는 약간 추상적인 돌려막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이웨이의 문제는 재미있고 쉽게 잘 이야기 하셨어요. 더 뽑아낼 게 없는 영화의 리뷰를 길게 하는 것도 힘든 일이니까요. 누가 저한테 프랜스포머2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 전 정말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돌이 2012-02-15 01:08   좋아요 0 | URL
[그을린 사랑] 자체에 대한 영화평이었다기보다는 여러 가지 면에서 대비되는 두 영화를 간략히 비교하려는 의도였기에 "격정적인 목소리로 선동한 것이 아니라 우수에 젖은 듯 촉촉한 목소리로 노래했다는 사실->이 부분을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가"려는 생각을 미처 못했습니다. 좋은 지적으로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다만 같은 말을 돌려서 하고 또 했다는 점에선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군요. 제가 호흡이 짧아 너무 간략하게는 써도 부언설명을 하는 편은 아닌데...구체적으로 지적해 주시면 다시 검토하겠습니다.

빵가게재습격 2012-02-11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구체적인 장면묘사가 부족한점만 빼고 더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돌이 2012-02-15 01:12   좋아요 0 | URL
지금 생각하니 기독교 민병대원들의 무슬림 민간인 학살을 본문에 녹여 묘사했더라면 더 좋았겠다 싶네요. 참고하겠습니다.

꽃별이 2012-02-12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조조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입니다(한 달에 2편 정도는 봅니다)...신화에 관심이 많은 한 사람으로서 오이디푸스 신화가 <그을린 사랑>에서 어떤 의도로 활용되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돌이 2012-02-15 01:25   좋아요 0 | URL
특별히 의도라기보다는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드러나는 영아유기와 근친상간 모티브를 영화가 차용한 것이겠지요. 사소하지만 무릎을 치며 "아하!!"할 수 있는 장면 하나. 오이디푸스를 버릴 때 아이의 복사뼈에 쇠못을 박았다는 표현(물론 현대적으로는 두 다리를 묶었다고 해석학기도 한다는군요.)이 있는데요...영화에서 아이를 버리기 전, 발뒤꿈치에 문신을 새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관객들은 여기서 이미 비밀의 열쇠를 발견할 수 있겠지요. 특히 발뒤꿈치는 오이디푸스와 그 아버지인 라이오스 왕의 가계와 관련이 있다고 하니, 저는 여기서 정말 재미가 쏠쏠했는데....모르겠습니다. 다른 분들께서는 어떠셨는지. 굳이 더 연결하자면, 수수께끼(비밀)를 풀어가는 과정에서도 유사한 점을 찾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 억지스럽기는 합니다만....

고리 2012-02-14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1년 최고의 영화와 최악의 영화를 뽑아서 품평을 하시는데, 그에 앞서 상영 시간, 개봉관 수, 스크린 수라는 배급 조건을 비판하신 점이 재미있었어요. 영화 보는 환경에 대한 비교를 서두로 이른바 '작은 영화'와 '큰 영화'의 스타트라인을 짚어 주신 점이 좋았어요.
그나저나 <그을린 사랑>을 세상 쓴맛을 단 한 번이라도 맛보았던 사람에게 추천하신다 함은... 만인에게 추천하신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한 건가요? ㅎㅎ

<마이웨이> 부분에서 "나와 같은 한국인 감독이 만든 영화를 봤는데, 같은 국적을 가진 내가 어디서 어떻게 감동해야 할지 알 수 없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세계인들이 이 이야기에 감동할 수 있을까? 그런 의심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저는 마음에 좀 걸렸습니다.
→ 이 부분은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감동하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로 오독될 여지가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인도 이해를 못하는데, 세계인이 어떻게 이해하겠느냐?'라는 말씀이신가요? 제 생각에는 국적이나 문화 배경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보편성에 기대어 감동을 얻을 수 없다고 비판하시려는 것 같았는데, 글에는 그런 점이 안 나타납니다.

그리고 '시스템의 부재가 불러온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는 문장은 영화 제작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에서 감독이 절대적인 권한으로 만든 영화라서 이렇게 망한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하신다는 뜻이겠죠? '시스템 부재'가 문제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시스템'이 무엇인지 상술해 주셔야 좀더 독자의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돌이 2012-02-15 01:45   좋아요 0 | URL
관계자들이 이 영화를 홍보하면서 '세계시장' 어쩌구...그런 말들을 많이 했습니다. 이러저러한 국적의 배우를 쓴다고 별구름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인류의 보편성"에 호소할 수 있는 감동을 끌어낼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비슷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 같은 '한국 사람'은 식민지배나 전쟁의 참혹상에서 느끼는 감정이 남다를 수 있고, 서로는 또 유사할 수 있다, 그런데 난 그런 걸 이 영화에서 느끼기 힘들었다, 과연 이런 감정을 영화가 인류의 공통감에 호소할 힘이 있을까? 그런 지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스템은 이미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구체적으로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감독이 시나리오 작업이나 연출을 하면서 실수를 범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그런 오류나 감정과잉 등을 지적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전문가들의 참여가 부족했다, 혹은 전무했다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이게 제대로 작동을 했다면 그런 말도 안되는 장면들은 걸러졌겠지요. 그리고 뭔가 이런 대작은 오리지널만이 가질 수 있는 아우라가 필요한데, 저는 왜 영화를 관람하면서 중요한 장면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에너미 엣 더 게이트]가 떠올랐을까요? 몇 해 전에 개봉한 이 영화들보다 리얼리티나 고증 모두 부족하고, 더 나아가서는 이 영화들을 흉내내거나 짜집기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정도의 자기검열도 없었다는 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그런 시스템이 애시당초 없었다고 보는 게 옳을 겁니다.

바다 2012-02-14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을린 사랑이라는 영화는 꼭 찾아서 보고 싶네요. 심약한 저이지만;; 꼭 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글을 잘 쓰셨습니다. 한 여인의 인생에 인간의 잔혹함과 광기의 역사를 담담하게 담아 낸 영화인 것 같습니다. 극적이거나 기구한 삶을 보고 '영화 같은 인생' 이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요, 실제 우리네 삶은 영화화만 되지 않았을 뿐.. 크고 작은 굴곡들을 넘고 넘어가야 하는 험난한 여정길이지 않나 싶습니다.

돌이 2012-02-15 01:4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어쩌면 우리네 '인생 같은 영화'가 더 정확한 표현일 듯도 합니다.

시실리 2012-02-15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와 함께 그 이외의 다른 부분들, 예를 들면 배급문제, 감독의 권한 등등에 대해 언급하신 평 인상깊었습니다. 영화와 관련한 평을 흠잡데 없이 기술하셔서 리뷰를 보고 영화를 선택하려는 독자에게는 님의 의견이 충분이 전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영화 속 배우들에 대한 흠이나 감독의 판단또는 앵글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결국 그 영화의 인물이나 상황에 님의 감정이 충분하게 이입 되지 못한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잠재적 관객이 될 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영화 자체에 대한 평만으로도 감독이 시나리오에 대한 해석이라든지 팀의 운용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악평의 느낌을 충분이 느낄 수 있었읍니다. 그래서 제게는 "시스템..." 이후의 글은 너무 나아간 것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돌이 2012-02-15 01:56   좋아요 0 | URL
제가 글을 마무리하며 '제왕적 대통령제' 운운한 것을 지적하신 거라면, 뭐라 변명을 드리기 힘들겠네요. 제 표현 그대로 너무도 생뚱맞게 그런 생각들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불온한 의도를 갖고 그런 건 아니니, 논리의 비약이 좀 심했다, 그 정도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그런 오류를 앞으로는 각별히 주의하겠습니다. 꾸벅
 

 

 

 

2011528, 오전 1020.

내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서 한국을 떠나 본 최초의 날, 최초의 시간이다. 발권했던 순간, 그날의 이륙 풍경부터 착륙 풍경까지 하나하나 모두가 기억난다. 내게 이 날짜부터 일주일간 기록된 여행은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고, 다시 돌아가고픈그것이다.

 

 

내가 미국으로 여행하게 된 계기 하나는, 퇴직금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직장에서 퇴직금을 받아 봤다. 내가 다니는 곳은 진짜 퇴직해야 퇴직금을 한방에’ ‘왕창주는 곳이 아닌, 연말에 한 번씩 월급을 더 지급해 주어 퇴직금을 정산하는 회사다. 아직 경제 개념 없고, 경제 개념의 필요성도 잘 몰랐던 철부지 나에게 그렇게 털어서 들어오는 돈은 횡재였다. 그날 이후 세부, 홍콩 등 친구들이 적은 돈으로도 쉽게 갈 수 있다고 추천을 한 곳을 하나씩 떠올리며 무조건 해외여행을 마음속에 품게 됐다. 대학교 2학년 때, 당시 패키지로 팀을 꾸린 친한 친구가 한 친구의 펑크 때문에 자리가 났다며 나에게 유럽 여행을 200만원 대로 찍어보지 않겠냐고 무척 권했었던 그 해외여행(그것도 배낭여행!). 20대 초반, 체력이 짱짱하고 배짱도 두둑할 때 가야한다고 늘 방학 중에 묻지 마! 떠나리라!’ 마음먹으며 살았는데, 난 부모님이 아닌 오빠의 결정적 한마디 때문에 그 여행이 좌초된 적이 있다.

 

니가 처음부터 계획하고 준비한 여행이 아니잖아.”

 

오빠의 이 한마디로 그날 가족회의(?)는 끝이 났다. 그날 이후로 모든 해외여행은 내가 계획하고 준비해서 가리라 마음먹고, 가족들한테 돈을 좀 빌려 달라며 생떼를 쓸 필요 없이 내 돈을 벌 힘만 있으면 해외여행을 떠날 생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봤자 세부, 홍콩 정도로 비교적 돈은 적게 들면서 해외에 다녀온 티가 나는 여행지만을 생각했던 내게, 두 친구가 미국 동부 여행을 떠나자고 꼬드기기 시작했다. 미국 동부그냥 미국도 아닌 미국 동부부끄럽지만 이름만으로도 너무 멋있고 폼이 났다. 그리고 한국과는 12시간 시차가 나는 머나먼 대륙이라니. 내겐 정말 평생에 한번 갈까 말까한 큰 이벤트였다.

 

친구들이 미국 여행 이야기를 꺼낸 날, 내가 왜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는지에 대해 고민해 봤다. 돈은 퇴직금이 해결해 준다, 마침 한 친구가 미국에서 유학 중이고 자동차도 있기 때문에 비용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이렇게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한순간 지르는 마음이 없으면 다신 없을지도 모르는 기회다, 여행이란 건 젊을 때 하는 여행일수록 또 다른 의미와 가치가 있다별 생각 없이 생각해 봐도 끄덕여지는 말이었지만, 내가 미국으로 떠나리라 마음을 먹게 된 결정적 계기는, 지금까지 달려 온 회사 생활에 대한 괜한 허무감 때문이었다. 바쁠 땐 죽어라 바쁘고, 여유 있을 땐 여유가 있는, 적당히 좋은 일인 듯한데, 언젠가부터 그런 괜찮은일에 나만이 부여할 수 있는 가치와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니, 결국 나는 잘 살아왔나?’는 무겁고 거친 질문까지 품게 됐다. 그 이후 매일 매일이 막연하게,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연속된 시간 같았고, 내가 참 가엾은 존재라며 이유 없고 대책 없는 자기 동정까지 하게 됐다.

 

결국 4일 뒤, 친구의 도움을 받아가며 난생 처음 미국행 티켓을 예약하고, 구체적인 세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큰 돈을 쓰고 멀리 떠나는 이유를 좀더 탄력 받게 하기 위해, 한편으론 내가 느끼는 현재 나의 모습에 대한 서글픔을 애써 끄집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계획을 짜고, 미국 동부 관련 책을 읽으면서 혼자서 여행의 컨셉과 목적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를 멀리서 바라보기가 내 여행의 목적과 컨셉이었다. 나와 연고가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피부로 느끼면 상대적으로 나를 느끼기도 쉽고, 애달픈 자기 연민과 괜한 걱정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목적과 컨셉이 워낙 묵직한 탓에, 2번을 경유하고 가는 총 23시간의 비행시간마저도 내겐 달콤한, 나만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워싱턴 뉴욕 애틀랜틱 시티 보스턴 필라델피아 워싱턴

 

 

 

먼 대륙에서 다섯 점을 이어가며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가지치기 식 명소 찾기 여행(?)을 하고 다녔다. 애미쉬 타운, 조지타운, 내셔널 몰, MIT와 하버드, 뉴욕 현대미술관, 사무엘 아담스 맥주 공장, 보스턴 레드 삭스 야구 경기, 브로드웨이, 브루클린 브릿지, 월 스트리트, 백악관, 센트럴 파크 그리고 점, , (). 바쁜 여행 일정 속에 묻힐수록 지쳤던 한국에서의 내 생활이 조금씩 잊혀져 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조금씩 보였다. 사람들 속의 내가 얼마나 점(.)인지, 그 사실은 슬픈 일이 아니라 얼마나 힘이 나는 일인지, 아이러니하게 알게 됐다. 내가 지치고 허무해져 갔던 건, 욕심이 많은 내가 주변은 둘러보지도 않고 내가 아는 방법으로만 나의 욕심을 채우려 허우적거리고 있었다는 것, 세상은 생각보다 다양한 삶의 시도가 일어날 수 있는 곳이라는 것, 내가 나만 빛이 나는 그런 반짝반짝 거리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같은 시공간에 흘러가고 있는 소박한 점이라는 것, 그래서 더욱 어깨에 긴장을 잔뜩 넣을 필요가 없다는 것미국에서 본 세상은 천천히 흐르는 여유 속에서도 자신만의 희망을 간직하며 자기만의 속도로 한걸음씩 움직이는 것 같았다. 월 스트리트, 백악관처럼 TV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곳만 떠올려 보면 늘 바쁘고 쫓길 것 같았는데, 그래서 그 바쁨 속에서 내 생활을 잠시라도 잊거나 한 걸음 떨어져 뭐를 붙이고 뭐를 도려내야 하는지 셈을 하려 했는데, 생각과는 반대로 그 곳에서 여유와 느림을 찾고, 내 생활을, 그대로의 나를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하루에 두 끼만 먹으며 8~9시간을 관광하면서도 내가 묵직하게 가져갔던 과제를 생각보다 담담하게 풀어낼 수 있었다. 미국이란 도시가 내게 선물한 건지, 여행이란 자유가 내게 선물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일주일간의 미국 동부 여행은 한번쯤 다시 되돌리고 싶을 만큼 소중한 추억이다. 여행이란 어쩌면 아무 생각 않고, 훌쩍 떠나면 더 값어치가 있을 마술인 것도 같다.

다음엔 어디로 떠나볼까?’

한 문장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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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2-02-03 0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bake1025님.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오뒷세이아>의 역자 천병희 선생은 "<오뒷세이아> 이후 인간은 인간의 삶과 운명을 표현하는 두 가지 비유을 얻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여행'과 '바다'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저는 bake님의 글을 읽으면서 종종 그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공허해진 내면과 여행을 통해 '치유' 또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곁눈질해 볼 수 있었고요. 또한,

' 미국에서 본 세상은 천천히 흐르는 여유 속에서도 자신만의 희망을 간직하며 자기만의 속도로 한걸음씩 움직이는 것 같았다.' 같은 구절은 진정 미국을 밟은 산책자만이 쓸 수 있는 구절이 아닐까요?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제가 좀 아쉬웠던 부분은, 여행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소재를 두고서도 이 글이 그다지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가령, '바쁜 여행 일정 속에 묻힐수록 지쳤던 한국에서의 내 생활이 조금씩 잊혀져 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조금씩 보였다. 사람들 속의 내가 얼마나 점(.)인지, 그 사실은 슬픈 일이 아니라 얼마나 힘이 나는 일인지, 아이러니하게 알게 됐다.'라는 구절은 무척 흥미로운데,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도대체 필자가 어떤 '풍경'속에 서 있었기에 그런 사실이 '자연스럽게' 인지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조금 범박하게 말씀드리면 '친구네 집에서 라면을 끓였더니, 정말 맛있었다.' 라는 문장보다는, '정말 우리는 무지하게 배가 고팠다. 달걀프라이 모양의 자석도 당장 씹어먹을 것 같은 의지로 넘쳐났다. 우리는 냄비에 물을 받아 가스불 위에 올렸다. 보글보글 끓는 물에 면과 스프를 허겁지겁 넣었다. 계란도 하나 풀어넣었다. 4분이 지나자 우리는 그야말로 탄성을 질렀다. 탱탱하게 익어가는 면, 자신의 햐얀 속살을 감질나게 드러내는 계란, 붉은 기운과 노란 기운이 뒤섞인 달콤하도록 매운 라면의 국물, 우리는 그 뜨거운 날것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자지러졌다'라는 문장이(*여전히 별 볼일 없는 문장이긴 합니다만) 좀 더 공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미국동부의 공기는 어떻든가요? 햇빛은 얼마나 따뜻하던가요? 다인종이 섞여 걷는 넓은 거리의 모습은? 복잡한 번화가와 인생이 나른하게 느껴지는 미국의 오후는요? 느긋하게 그늘에서 쉬는 홈리스들의 표정은 어떻든가요? 그것 모두가 어떻게 '삶'과 '자아'로 수렴되던가요? 저는 bake님이 보셨고 느꼈고 감각했을 그곳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치유되었다는 말보다 치유를 이끌어낸 구체적인 풍경이 좀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 같은데, 그 부분이 미약한 것이 아쉽네요. 이상입니다.^^

꽃별이 2012-02-04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쉽지 않은 여행길을 기획하고 실천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이제까지 꽤 많은 시간을 살아오면서도 뭐가 무서운지, 집을 박차고 여행을 다녀본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그냥 스케줄대로만 움직이면 되는, 문학기행 정도로만 다녀봤습니다) 님의 글을 읽으면서, 항상 접하게 되는 '왜 여행을 해야 하는가?'의 중요성에 대해 새삼 공감하게는 되었지만, 큰 틀에서의 여행기보다는 좀 더 개인적인 경험이 살아있는 글쓰기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님의 그 '알 수 없는 미지의 시간'속으로 사뿐히 걸아나갈 수 있는 용기가 부럽습니다...^^

시실리 2012-02-05 0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여행을 무사히 마치신것 같아 보입니다. 더구나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니 기쁩니다. 첫 여행이 결실을 맺는데는 오빠의 쓴 충고가 결정적 요인이 된 점을 자세히 기술한 부분은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다음 여행을 꿈꾸게 되었다는데 공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본인이 계획하고 준비한 것들이 여행에서 어떻게 빛이 났는 지 아니면 문제점은 없었는지, 준비와 실제는 어떻게 달랐는지 하는 구체적인 서술이 아쉽습니다. 첫 여행이었음에도 그 곳 사람들, 또는 그곳 하늘이라던가 음식 분위기 등등에 대한 필자의 인상이 좀더 궁금합니다. "나를 발견 하였다" 어떤 나였나요?

이준입니다. 2012-02-05 0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마지막 문장이 제일 좋습니다. “한 문장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여행을 통해서 얻은 성찰이 그 문장 속에 모두 녹아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자가 아니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요.
다른 선생님이 쓴 기행문 보셨죠. 처음부터 美文으로 독자를 압도 하는 글도 좋지만, bake1025님 글도 좋습니다.
그러나 글에 방점이 없습니다. 마지막 문장을 방점으로 살리기 위해서는, 회사생활에서 느꼈던 공허함을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조한다는 의미가 과장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글을 기행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소재로 한 에세이로 보고 이야기 드리는 것입니다.)
글을 자세히 보면, 회사생활에 대한 공허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관념적이 단어들을 사용해서. 이러한 설명은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첫 시간에 자기소개하면서,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본인은 아니시죠? ^.^;;)“컵에 말라붙어 있는 유자 찌꺼기를 닦다가, 나는 ~~”이러한 시각적 묘사는 독자의 시선을 확 사로잡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에피소드를 추가해서 마지막 문장과 연결한다면 더 멋진 글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네스 2012-02-05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빠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착한 동생이시네요! 저 같으면 어깃장 부리고 보란듯이 떠났을 것 같은데. 오빠의 조언이 아프게 들어온 것은 단순히 여행이 아니라 어떤 선택이 필요할 때 '자신이 계획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반응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그래서 미국행을 감행한 자신이 무척 자랑스럽고 대견하게 느껴지는 듯한 느낌을 글에서 읽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 여행 뒤에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고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자신을 만날 수 있기를 글쓴이도, 이 글을 읽는 독자도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다만 여행 중 이런 자각을 가능케한 에피소드가 하나쯤 있었으면 더 재미있게 읽히지 않을까 합니다. 감상도 구체적인 사건이나 소재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생기를 얻는 것이니까요.

리얼리티 2012-02-05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을 비워버린 느낌이 느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으며 여행이 주는 치유의 힘이 느껴져 좋았습니다. 나만의 속도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살자고 생각하는 요즘이라 “미국에서 본 세상은 천천히 흐르는 여유 속에서도 자신만의 희망을 간직하며 자기만의 속도로 한걸음씩 움직이는 것 같았다”라는 문장은 특히 와 닿았습니다. 하지만 위에 여러분이 말씀하신 대로 글이 구체성을 띤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고리 2012-02-06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 동부여행'이 글쓴이 bake1025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여행을 결심하게 된 계기부터 해외여행을 꿈꾸게 된 근원의 사건!까지 거슬러올라가서 '나는 왜 이 여행을 떠나야 했는가'라는 여행의 변을 충실히 쓰신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미래를 그리기 위해서 떠나는 여행자의 마음가짐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이 과정에서 오빠와 가족회의 에피소드가 생생하게 그려졌는데 자기 주체적 여행의 조건(?)을 생각해 보게 하는 재미난 일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독자로서 품게 된 궁금증이 몇 가지 있어서 질문드립니다. 나와 연고가 눈꼽만큼도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피부로 느끼고자 하셨다고 하셨고, 뒤에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점처럼 소박한 존재라는 점이 위안이 되셨다고 하셨는데, 뭔가 예시가 될 만한 이야기를 풀어 놓아 주시면 더욱더 생생한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다양한 삶의 시도가 일어날 수 있는 세상의 사례도 궁금하다고 생각했고요. 또, 이번 여행이 나만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고 하셨는데, 동행이 함께하는 여행을 하시면서 어떻게 온전히 나를 위한 여행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비결을 좀 알려 주세요!ㅎㅎ

bytheway 2012-02-06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가 처음부터 계획하고 준비한 여행이 아니잖아.”-> 저 이거 정말 싫어요. 사람이 의도하지 않고 몸으로 때우면서 느끼고 경험할수도 있잖아요.
젊어서 하면 좋은게 여행이랑 연애라고 하잖아요. 연애를 의도와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하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그런게 없어도 자기 입장과 가치관만 뚜렷하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시작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막연하게 여행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미국 동부 여행이야기가 여행기가 아니라 독후감처럼 읽혀요. 글만 읽어서는 무척 재미없는 여행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건 여행에 대한 기대가 달라서 그런 걸수도 있겠네요. 전 여행은 모험 혹은 뭔가 새로운 걸 느끼고 경험하는 것으로 생각해요. 자신을 돌아보고 깨달음을 얻는게 아니라.
이글에 대한 리뷰는 리뷰가 아니라 친구만나서 술먹으며 수다떠는 것처럼 쓰게 되네요. 원글 자체가 무척 자연스럽고, 이상하게 친근하고 내 이야기 같고 친구이야기같아요.

보거스 2012-02-06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여행을 하고 오셨군요. 여행에서는 때로 무엇을 보았냐보다 무엇을 느꼈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은데, bake 님께서 느꼈던 중요한 축을 보여주셔서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해외여행을 했을 때, 제가 보아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분위기-풍경 속에서 오히려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것 같아 참 아이러니하다 느꼈는데, bake 님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오신 것 같아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왜 볼까,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제 경우를 돌이켜보니, 여행을 하고 온 사람이 느끼는 새로운 공간의 분위기 속의 감정을 읽으며 제 가 여행에서 느꼈던 것들에 대해 추억해보게 되어 즐겁더군요. bake 님의 글처럼 무엇을 보았는지보다 그때 그 장소, 날씨, 만났던(혹은 만날) 사람들이 주는 감정과 제가 생각했던 것들이 더 많이 떠오르더라고요. <모나리자> 같은 명작을 본 기억보다 시골 어느 동네 작은 미술관에 걸려 있던 그림 속 주황색-분홍색 사이의 색감에서 노을이 지는 벼 밭을 상상하며 얼마나 청량감이 느껴졌는지가 더 기억나는 것 같은 거죠. 제가 여행을 기억하는 것과 비슷하게 bake 님의 글은 본 것보다는 느낀 것에 집중한 글 같습니다.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없어서 독자들이 이 글을 읽으며 미국여행을 추억하거나 상상하기는 좀 힘들겠지만, 그래도 부모님 돈으로 여행하며 약간 죄책감을 느낀적이 있다거나, 지루한 일상 속에서 훌쩍 여행을 떠나봤거나 그렇게 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겐 충분히 공감을 얻을 만한 글인 것 같습니다. 전 미국여행은 다녀오지 않았지만 제 여행에 대해서도 추억해보게 된 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희망둥이 2012-02-06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기는 언제 읽어봐도 재미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댓글처럼 저 역시, 20대 후반에 인도여행을 했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고생도 고생이지만, 자기 인생에 대한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는 것이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행이 일상탈출이라고 하지만, 사실 여행이야말로 일상 그 자체를 다시 재조명하는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우리네 삶이란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든, 지구 반대편 어느 마을에 사는 사람이든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점에서 여행기는 언제 읽어도 신선하고 삶의 활력이 되어 좋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문장이 좀 더 다듬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책을품은삶 2012-02-07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 동부를 향한 해외여행의 의미와 즐거움, 팡팡 묻어납니다. 그러나 어떻게 여행을 가게 됐고, 준비과정이 어땠는지에 무게가 많이 실린 탓에 정작 여행과정의 즐거움과 의미는 두루뭉술합니다. 구체적으로 여행의 어떤 지점이 깨달음을 줬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빈약합니다. 다녀온 곳 중심으로 나열한 것에서 글쓴이가 찾은 의미를 건져올리기까지 근거나 에피소드 등이 부족한 탓으로 여겨집니다.

아울러, 글에 기교를 부리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니나, 여행에서 찾은 의미와 깨달음을 전달하는데 있어서 진정성이 떨어집니다. 글에 힘을 좀 뺐으면 좋겠어요.

돌이 2012-02-07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 위에 선 여행자는 자신이 떠나온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다고들 하죠. 이 여행으로 직장 생활에서 받았던 '허무감'을 조금이라도 떨칠 수 있었다면, 미국 여행은 무엇보다 소중한 경험이었을 겁니다.
사회 초년생의 고민과 여행의 기대감을 느낄 수 있는 글입니다. 이 글을 읽으니 저도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네요. 다만 관념적이고 상투적인 표현들이 많아 깊이 공감하기는 어렵습니다. 자신만의 구체적인 경험으로 서술하셨다면 bake1025님께서 느끼셨을 감동을 나눠 가질 수 있었을 텐데, 그 부분이 안타깝습니다.
 

저는 이수미입니다.

수정을 할까 하다가 단점 많이 찾으시라고 그냥 올려 봅니다.

(귀찮아서는 절대 아닙니다.)

 

세권의 책 리뷰이구요, 책은 피터 조셉의 시대정신, 커트 보네거트의 나라없는 사람, 김광기교수의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 입니다.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는 다 읽지 않은 상태에서 올려서 좀 어리버리합니다.

 

한미 FTA 협정이 체결되었다고 한다. 잘은 모르지만 체결 과정 중의 정황으로 보아 우리나라보다는 미국에 더 유리한 협정이었을 것이다. 정치나 경제에 무지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감히 추측해 보건데, 미래의 전쟁은 바로 이런 형태가 아닐까 싶다. 총과 폭탄을 들고 하는 전쟁이 아니라 경제적 이권을 다투는 전쟁. 강대국이 자신의 국가적 권력을 배경으로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에 투자를 빌미로 자국의 이권을 챙겨가는 형태가 진짜 전쟁일 것이다.

그러면서 갑자기 미국이라는 나라의 경제체제, 정치체제에 대해 약간의 관심을 갖게 되었다. 벌써 지난 가을의 일이니 3개월도 더 되었다. 학생 하나가 추천해 준 피터 조셉감독의 시대정신을 시작으로 커트 보네거트의 나라 없는 사람, 김광기 교수의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라는 책을 읽으며 미국이라는 나라의 단점을 다룬 책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위에 언급한 책들은 미국에 대해 소위 좌파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이들의 작품인 듯하다.

피터 조셉 감독의 시대정신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책으로 다시 엮어 출판한 작품으로 대기업에 좀 먹히고 있는 미국의 경제체제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끔은 이게 정말이라면 너무 황당한데. 미친 짓이군하는 사실 혹은 의견도 있어서 읽는 이를 혼란스럽게도 한다.

혼란스러운 사실 한 가지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국화폐 달러가 우리나라처럼 공기업인 조폐공사 같은 곳이 아니라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라고 하는 사기업에서 만든다는 것이다. 사기업에서 만든 달러를 미국 정부가 구입하여 사용하는데 1달러짜리 지폐를 한 장 구입하려면 1.1달러를 지불해야 한단다. 이러한 화폐체제를 개선하고 국가에서 화폐를 발행하고자 했던 링컨대통령이나 케네디대통령은 FRB 관계자들에 의해 총격당하여 살해되었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또 이 FRB 관계자들이라는 사람은 당연히 미국 내 대기업 소유주라고 한다.

혼란스러운 의견 한 가지는 2001년 전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9·11 테러가 이라크 탈레반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의 주도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와 대기업의 자작극이라는 의견이다(차마 사실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한 국가의 정부가 아무리 사악하다 해도 그럴 수가 있겠는가.). 작가는 당시 세계무역센터로 돌진하던 비행기가 민간 비행기가 아니라 군용 전투기였다는 점과 모 대기업 고위 근로자가 테러가 나기 전에 지인에게 귀띔해준 말을 근거로 주장하고 있다.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에 대해 반심반의하며 읽었지만 페이지마다 흥미진진하여 생소한 분야이고 어려워 시간이 많이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글이 끝나는 것이 사뭇 아쉬웠던 책이다.

커트 보네거트의 나라 없는 사람은 팟캐스트 방송인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에서 듣고 읽게 되었다. 커트 보네거트는 대단히 풍자를 즐기는 작가인 듯하다. 이 책은 수필집으로 앞부분은 신변잡기적인 자신의 이야기나 일상 속의 생각들을 늘어놓고 있지만 중간부분부터 글을 쓸 당시의 조지 부시 정권과 미국사회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내용들이 나온다. 특히 맞는 말이다시리즈가 인상적이다. 여러 가지 맞는 말 중에 기업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은 뇌물을 줘도 괜찮고, 환경을 조금 파괴해도 괜찮고, 가격을 담합하거나 멍청한 소비자들을 우롱하거나 공정 거래를 위반해도 괜찮고, 파산 시 국고를 낭비해도 괜찮다,‘ 라는 글이 나온다. 왠지 익숙한 느낌이다. 우리나라 대기업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을 해 본다. 특히 미국의 절대 권력자들에 의해 절대타락한 미국이 이성적인 나라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라고 서술하고 있다. 나라에 대한 실망과 개선불가능을 인지하여 결국 나는 나라 없는 사람이다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작가는 풍자가 심하기 때문에 이것을 감안하지 않고 읽으면 이렇게 심하게 비난할 것까지야...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는 반전주의, 환경보호, 가족 중시, 인간관계 중시 등 괜찮은 생각으로 똘똘 뭉친 사람인 것 같다. 그러므로 그의 글을 더 나은 미국사회가 되길 바라는 일종의 어리광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는 아직도 읽고 있는 책 김광기 교수의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이다. 이 책은 소소하게 미국 가정의 경제와 소비형태 변화에서 시작하여 국가적인 경제의 변화로 확장시키며 52가지의 에피소드를 전개해나가고 있다. 앞부분은 노숙자나 미국가정의 가축 사육, 실업률, 교도소의 죄수 수감 비용 등 흥미롭고 쉬운 내용들이라 새로운 사실을 알아 가는 재미에 쉽게 책을 덮을 수 없다. 하지만 중간 이후로 넘어가면 책읽기에 심한 정체현상이 생긴다. ‘부도덕이 난무하는 월가라는 부분부터인데 금융과 관련된 단어들과 통계수치 같은 것들이 많이 나와 경제, 수학적 지능이 부족한 나로서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자신이 유학시절 겪었던 미국 시민들의 타인에 대한 신뢰와 경영에 있어서의 청렴함을 이제는 더 이상 미국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고 말한다. 노력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아메리칸 드림의 신화가 사라졌다고 한다.

나는 항상 정치인이 바로 서고 나서야 그들이 정한 법령에 의해 기업을 경영하는 자들이 투명하게 경영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왔다. 하지만 대기업 소유주들에게는 법보다 더 강력한 이라는 권력이 있었고 이 권력에 좌지우지되는 정치인들은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게 이 책과 시대정신에 서술되어 있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대기업 역시 오랫동안 중소기업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분야에 진출하여 우위를 점하고, 공공사업을 따내어 국민의 세금을 쉽게 벌어 챙기고 있다고 들었다. 재벌기업의 이라는 권력에 점령당한 정치인들이 그들을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스럽게도 정치에는 여권과 야권이 있고 공중파뿐만 아니라 인터넷뉴스에서도 정보를 취하여 국민들이 움직일 수 있지만,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재벌기업에게는 어떤 대항을 한 들 그들을 막을 수 있을까?

언젠가 안철수씨의 기업가적 사고방식이라는 라디오 방송을 얼핏 들은 적이 있다. MBA과정 중 성적이 가장 좋은 학생들이 나중에 금융사범이 되어 감옥에 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인성이나 기업윤리에 대한 자각이 없는 대기업 소유주들이 경제적 이윤만을 쫓고 있는 가운데 그들의 시장이 되는 소비자들은 앉아서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가.

나는 오늘도 의심해 본다. 당연한 듯 진행되는 컴퓨터 기반 수업과 특별실마다 들어 있는 컴퓨터와 모니터들. 교실마다 들어가 있는 LED TV, 도저히 적절하다고 말 할 수 없는 학생들의 손에 들려 있는 높은 이용료의 휴대전화, 해가 거듭될수록 복잡하고 집요해지는 온라인 업무처리시스템, 교원의 수는 늘리지 않으면서 리모델링만 거듭하고 있는 학교현장까지, 이 모든 것들이 대기업의 권력인 의 운영결과가 아닌가 하는 의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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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2-02-03 0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수미님. 글 잘 읽었습니다.^^ 책을 세 권을 겹쳐 읽고 독후감을 쓰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닌데, 핵심을 빠르게 요약하면서 연결하는 솜씨가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두 가지가 인상적이었는데, 첫째, 글이 <책의 핵심 요약 + 자신의 짧은 감상>의 구조를 반복하고 있어서 자칫 산만해지지기 쉬운 다양한 내용이 분산되지 않았다는 점. 다른 하나는 이수미님이 골라낸 '책의 핵심'이 책의 인상을 정확하게 짚어낸다는 점이었습니다. 가령,

'커트 보네거트는 대단히 풍자를 즐기는 작가인 듯하다. 이 책은 수필집으로 앞부분은 신변잡기적인 자신의 이야기나 일상 속의 생각들을 늘어놓고 있지만 중간부분부터 글을 쓸 당시의 조지 부시 정권과 미국사회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내용들이 나온다.'

같은 문장은 책의 전체적인 인상과 느낌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지 않은가요? 저는 그런 점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다만, 애매하다고 생각한 점은 다음과 같은 점입니다. 글의 초반에 이 글이 '미국과 관련된 세 가지 책의 독서'라는 점을 밝히고 있는데요. ('피터 조셉감독의 『시대정신』을 시작으로 커트 보네거트의 『나라 없는 사람』, 김광기 교수의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라는 책을 읽으며 미국이라는 나라의 단점을 다룬 책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책에 대한 짧은 감상을 빼면 정작 필자가 생각한 '미국'에 대한 평가가 없습니다. 대기업과 기업권력이 지배하는 우리나라 현실에 관한 짧은 결론이 들어가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필자는 '미국'을 통해 '기업'이 권력이 되는 현실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이 같은 초반부와 결론부의 이질적인 결합은 깔끔한 글을 허술하게 느끼게 합니다. 혹은 결론부가 '이상적인 독후감'(읽은 계기-책의 내용-필자가 느낀점)의 공식을 타율적으로 반복했다는 느낌을 들게 하고요. 초반 부분과 결론 부분이 같은 주제로 수렴되든가, '미국'과 '기업권력'을 연결시키는 직접적인 고리가 있다면 좀 더 수월한 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상입니다.^^

이준입니다. 2012-02-05 0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권의 책을 가지고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을 겪고 있는 미국에 대한 주제 서평을 완성하셨습니다. 커트 보네거트 작품들은 제 독서목록 상위에 놓여있고 [나라 없는 사람]은 키보드 바로 옆에 있지만, 완독은 못한 생태입니다. 그러니 3권 모두 읽지 않았습니다. 또한, [나라 없는 사람]을 저는 다른 각도로 읽고 있기 때문에 이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가 없네요.

전체적으로 글의 형식적 논리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서평의 주제와 관련된 책의 선택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만 받은 외국의 사회학 교수, 풍자소설가, 독립영화감독. 이 세 명의 책을 가지고 미국을 분석 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르게 생각해본다면, 한국에서 박사학위만 받은 중국 교수와 우리의 김 총수 그리고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광고인 박웅현의 책을 분석해서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을까요?

당연히 의심하고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서평에서는 그런 고민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서평에 데이비드 하비의 [신자유주의] 정도의 책을 포함 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된다면 전문가가 보는 미국의 상황과 소설가와 영화감독의 견해와 외국인의 시각 등 다양하면서도, 지금 서평보다는 더 정확한 분석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하지 않을까요?

신자유주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사람이 하비 교수입니다. 뉴욕 시립대학교 교수이고, 일부 한국의 무지한 관료들은 도시계획전문가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마르크스주의자입니다. 금서가 아니니 읽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학교에 들고 가시지는 마세요. (개인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bytheway 2012-02-07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편의 글을 하나로 엮는 주제가 없어서 아쉽습니다.
차라리 3편중 하나만 고르고, 나머지 책은 곁다리로 [여기서는 이런 말을 하더라]정도로 다루는 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
[수정을 할까 하다가 단점 많이 찾으시라고 그냥 올려 봅니다.]
->이런 표현은 안 쓰시는게 나을 것 같아요.

꽃별이 2012-02-12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의 물음표가 새로운 앎의 세계로 나서게 하셨네요...^^...저도 세상의 보여지는 구조에 익숙한 사람으로서 요즘은 보여지지 않으나, 실재로 존재하는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읽어낼 수 있는 눈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위에 쓰신 리뷰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차표'처럼 읽혀집니다. 도착지로의 무사귀환을 응원합니다...^^

시실리 2012-02-13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글에 대한 요약과 함께 필자의 견해가 중간 중간 삽입 되어 있어 전체적 흐름이 편안 합니다. 개인적으로 3편에 대한 평을 한 주제로 묶어 필자의 견해를 내 놓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특정 주제 의식을 가지고 3권을 선택하신것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서평이 미국의 사회 구조 특히 정치와 경제와 관련된 문제로 모아지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고리 2012-02-14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편의 책을 엮어 '대기업의 권력에 좌지우지되는 미국'에 대한 글을 쓰셨네요. 연관성은 있을지라도 직접 관계가 없는 책을 엮어서 한 편의 글로 쓰기는 쉽지 않은데, 재미있는 글이었습니다. <시대정신>의 저자가 주장하는 바에 충격을 받고 의심하며 수용하시는 과정이 재미있었습니다. 회의의 시선을 글쓴이의 주변으로 돌려서 글을 마무리하신 점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미국의 경우에서 한국으로 이어지는 전개는 약간 논지가 약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책에서 알게 된 지식을 나의 현실에 비추어 보려는 노력처럼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아쉽게 느낀 부분을 말씀드릴게요. 미국 정부가 사기업이 만든 화폐를 구입해서 쓰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FRB라는 사기업이 1달러 지폐를 생산해 1.1달러 받고 판다'는 현 상황, '화폐 체제를 개혁하려고 했던 링컨, 케네디가 살해됐고, 암살자는 FRB 관계자로서 미국 내 대기업의 소유주다'라는 저자의 주장을 근거로 이루어졌는데요. 글쓴이 또한 부당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어디가 문제라고 생각하시는지를 짚어 주시지는 않으셔서 '음모론'처럼 수상해서 이상하다고만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FRB가 이윤을 많이(?) 남기는 것, 링컨과 케네디를 암살한 FRB 관계자들이 대기업 소유주와 관련이 있다는 것만이 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돌이 2012-02-14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미 FTA 협정을 계기로 미국의 진짜 모습을 알기 위해 위의 세 권을 읽으셨다면 나쁘지 선택이었던 것 같네요. 간단히 말해 대기업의 이익이 현재 미국을 지배하는 '시대정신'이라면, 미국인은 대기업의 은밀한 지배를 받는 '나라 없는 사람'들이며, 이제껏 정의가 살아있다고 배워온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 이렇게 요약할 수는 글이어서 좋았습니다. 비약은 아니지요?
논리적으로 요목조목 따지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이 책들처럼 딴지를 걸 듯, 대기업과 관료들의 꼼수를 까발리는 시도도 때로 중요하고 의미있다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의도의 책을 세 권이나 언급하시면서 정작 dongsin님의 글은 진지하고 조금 무거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그게 조금 아쉬웠습니다.
 

 

 

 

 

안녕하세요, 알라딘 인문MD 박태근입니다. 인문학스터디 11기 글쓰기 워크숍에 보내주신 관심과 성원 고맙습니다. 워크숍 형식이라 많은 분을 모시지 못하는 점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래 함께하실 22분 명단 올립니다. 책임감을 갖고 세 차례 모임에 모두 참석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관련한 내용은 메일로 자세히 정리해 보냈으니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함께하실 분]

강*희 ssolb***@naver.com
고*영 bakereatt***@naver.com
김*지 cisi***@hanmail.net
김*영 soosi***@naver.com
김*호 u***@dreamwiz.com
김*희 pmfar***@hanmail.net
모*현 piedm***@naver.com
박*진 bake1***@naver.com
배*완 bk***@dreamwiz.com
심*희 worker***@hanmail.net
엄*연 dele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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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 lunawo***@naver.com
윤*애 mynamey***@hanmail.net
이*영 leesy1***@daum.net
이*미 astrop***@edurang.net
이*수 jslyd***@lycos.co.kr
이*실 reality***@naver.com
이*석 saurer2***@naver.com
장*희 agne***@dreamwiz.com
정*덕 unix***@hanmail.net
최*이 fil***@dreamwiz.com

 

[강좌 관련 공지]

수업에 참여해주시는 분께서는
감상에세이 한 편을 쓰셔야 합니다.
감상에세이란 보고 듣고 경험한 감상을 나누는 글로,
책, 영화, 그림, 공연, 전시, 음악, 여행 등 감상의 대상은
자유롭게 선택하시면 됩니다.
대상에 대한 객관적 설명보다는 주관적 견해가
드러나는 글쓰기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원고 분량은 200자 원고지 15매 내외(A4 2장)이며
아래 이메일로 수요일 오후 3시까지 보내주시면 됩니다.

sherpa@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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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JSB 2012-01-31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좋은 기회였는데 참여하지 못하게 되어서 아쉽네요. 빈자리 생기면 저에게도 연락 주세요 ㅜㅜ

아네스 2012-02-02 0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멀리 대전, 광주에서 기차를 타고 오신 분들, 칼퇴근하느라 정신없이 달려온 직딩들을 보며 반성했습니다.
그래, 날씨와 상관없이 우리는 간다!

돌이 2012-02-02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위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하신 분이 꽤 계셨던 자리 같습니다. 다양한 연령층에 다양한 직업군. 이후 강의가 더 기대되는 시간이었습니다.

dongsin 2012-02-02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매일 그 나물에 그 밥만 보다가 다양한 직종에 계신분들 만나니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습니다. 일방향적 강의가 아니라 참가한 분들의 생각을 많이 들을 수 있어서 깨달은 바 많았습니다. 제 글이 난도질 당할 날이 머지 않았군요 ㅠㅠ 그래도 기대됩니다 ㅎㅎ

상워니 2012-02-03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어디다 글을 써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ㅠㅠ 일단 여기 올립니다.

제가 어제 부산에 내려오게 되어 함께 읽을 글 공지를 오늘 저녁에 집에 돌아간 후에나 할 수 있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늘 그렇듯 내려오기 전에 콩튀듯 팥튀듯 하다보니 챙기지를 못했습니다. 헌데 글 올리신 걸 보니 알아서 날짜들을 다 지정해놓으셨네요. 공지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

강추위 속에 수요일 저녁 때 다들 잘 들어가셨나요? 애쓰셨습니다.

부산에 이틀 머무르게 되었는데, 여기도 강추위라고 난리지만 서울보다는 한결 낫네요. 해운대 바다는 낮에도 밤에도 여전히 인상적인 풍경입니다.

다음 수요일에 반갑게 뵙겠습니다!

ㄱㄱ 2012-02-03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담당md님께/ 수업시간에 체크할 리뷰 올릴 12명의 이름과, 언제까지 리뷰를 올려야 할지 공지해 주실수 있나요?
이를테면 8일수업에 사용할 리뷰관련해서는 6일까지 올려달라는 식으로요. 저는 15일에 사용할 리뷰을 올려야 하는데, 이번주중에 올려야 하는지 다음주에 올리면 되는지도 궁금해서요. 감사합니다^^~

이상원 2012-02-03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2/8에 당첨된 주인공 여섯 분은 첫 시간 장윤희, 박혜진, 김지호 님 / 둘째 시간 모상현, 정성덕, 이현실 님이고요,
2/15에는 첫 시간 이수미, 김길지, 이서영 님 / 둘째 시간 윤정애, 안세열, 배경완 님입니다.

답글은 월요일 밤 12시까지 올리십시오. 그리고 ㄱㄱ님, 15일에 사용할 리뷰를 올린다는 건 무슨 말씀? 15일에 글을 발표하실 분인가요? 쓰신 대로 지금 올리십시오. 2/2에 다 올려두기로 합의했습니다.

답글은 열두 편 글에는 의무로 다 다셔야 합니다. 일단 2/8의 글 여섯 편부터 출력해 읽고 답글 다시면 됩니다. 그날 글 발표하실 여섯 분은 답글은 자기 글을 제외한 다섯 편에만 달고 자기 글에 달린 답글을 읽고 오십시오.

bytheway 2012-02-05 16:23   좋아요 0 | URL
네, 지금 올리겠습니다. 15일당첨자는 다음주에 올리면 되는지 헷갈려서요.

이상원 2012-02-09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음주가 마지막 시간이네요. 끝나고 맥주라도 한잔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가톨릭회관 바로 옆 와바로 내려오시지요. 맥주는 제가 삽니다. 실컷 고생시켜 드린 보상으로..^^

이준입니다. 2012-02-15 01:01   좋아요 0 | URL
야 꼭 참석해야겠는데요..

마지막 멋진 총평도 기대합니다.

아네스 2012-02-12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지날수록, 질문자의 캐릭터만 점점 강화되는 ^^ 질의응답 시간을 좀 줄이고, 선생님 강의를 듣는 시간을 가졌으면 어떨까요?

dongsin 2012-02-17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 위에 있었구나 와바 ㅠㅠ
저도 이상원 선생님 책 왕창 샀는데 사인 받으러 가져갈 걸 그랬어요 ㅠㅠ
나이를 먹을 수록 센스가 거꾸로 가네요. 기차시간때문에 맥주도 못먹고 책 사놓고 사인도 못 받고 저자, 역자와 만남의 기회였는데 사진 한방 못찍고 ㅠㅠ
암튼 짧은 수업이었지만 저에게는 벤치 마킹도 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새로운 직종의 사람들도 만나보고 다양한 생각도 들어보고 정말 유쾌한 시간이었습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어요~
 

<세계경제위기와 잠정적 유토피아> 강의 요약, 홍기빈 박사

 

 

1. 들어가며

- 지금의 세계경제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과 많이 닮아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제 끝장났다는 주장은 위험하다. 그런 식의 접근보다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조직원리를 근본적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결국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성공했던 케이스를 찾아봐야 한다.

- 30년대 대공황을 성공적으로 빠져나온 유일한 케이스로 비그포르스의 정책 외에는 난 모르겠다. 케인즈주의의 뉴딜정책도 다시 공황을 불러왔다. 사실상 2차대전, 즉 전시경제체제 덕에 공황에서 탈출했다고 봐야한다.

 

 

2. 마르크스주의의 역사 결정론

- 비그포르스가 극복하려던 이데올로기는 2가지로 1) 자유주의와 2) 마르크스주의다.

- 마르크스주의를 거칠게 비판해보겠다. 흔히 경제결정론이라 부르는 데, 맞다. 그게 맑스주의다. 19세기 마르크스주의가 사상적으로 경쟁해야 했던 2가지 이론이 있었는데, 1) 바쿠닌의 아나키즘, 2) 페르디난트 라살레의 국가사회주의다.

- 1) 바쿠닌의 경우, '즉각봉기로 즉각 때려부수자'로 요약되는 테제를 내세웠다. 즉 국가없는 사회로 이행하자는 것이었고, 2) 라살레의 경우, 현실적으로 자본에 맞설 유일한 힘으로서 국가를 긍정했다.

- 맑스-엥겔스는 이 두 이론을 비판하며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역사적 필연성”을 주장했다. 즉, 사회체제라는 것이 발전의 단계가 있으므로 없애는 것도 순서가 있다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본가의 사적소유를 철폐하여 노동자가 국가 권력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을 핵심주장으로 내세운 것이다.

- 이를 두고, 맑스주의자들은 ‘역사의 운동법칙(law od motion)을 발견’했다고 맑스를 추앙하고, 이는 마치 다윈이 생물의 진화 법칙을 규명해낸 것과 같이 역사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라고 떠들었던 것이다. 결국 이를 통해 바쿠닌과 라살레를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실제, 맑스주의자들은 이러한 믿음에 기초하여 19세기가 끝나기 전에 자본주의는 붕괴하고, 혁명이 자연적으로 일어날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곧 무너질 체제이므로, 자신들이 할 일은 혁명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복지국가니, 기본소득이니 하는 이야기는 이른바 ‘개량’이고, 이러한 기회주의적 시도를 제압하는 것을 사회주의 정당의 임무로 보았다.

 

 

3. 독일 사민당과 베른슈타인

- 문제는 자본주의가 붕괴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갈수록 경제는 호황기를 맞고, 노동자도 혁명을 원하지 않는 분위기가 굳어지게 되었다.

- 그 와중에 독일 사민당의 지독한 위선에 비판을 가하며 등장한 인물이 베른슈타인이다. 그는 상당히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가 보기에 당내 지식인들은 ‘자본주의는 곧 망한다’는 믿음만을 되풀이하거나 여전히 ‘헤겔 변증법이 어쩌구 저쩌구’만 반복하기만 하면서 정작 하루 하루 당을 어떻게 조직할지, 매일 매일의 정책적 판단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 이에 대해 베른슈타인은 1) 마르크스주의의 ‘사적 유물론과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는 과학적 합리성도 결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2) 그런식으로 혁명을 기다리는 것 자체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을 폈다.

- 그 다음 벌어진 일은? 맑스주의자들이 베른슈타인을 밟기 시작했다. 개량주의자, 수정주의자! 너는 맑스주의를 잘못 이해했다! (이런 식의 논리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즉, 맑스주의를 비판하면, 그건 본래 맑스가 얘기했던 것이 아니고, 네가 말하는 것은 속류 맑스주의다라는 식의...그럼, 대체 맑스주의는 무엇이란 말인가? 실체가 있는 이론이기는 한가? 끝도 없는 논리, 한없는 논리, 유령논리가 되어버렸다. <공산당 선언>을 빌어 이야기한다면 맑스주의가 진짜 유령이다!)

 

 

4. 마르크스주의의 파산

- 1917년 제2제국이 붕괴하면서, 독일 사민당에게 더 큰 도전이 왔다. 여당이 된 것이다. 혁명만을 바라보던 정당이 수권정당이 되면서, 이른바 행정을 하게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사민당은 혁명정당도 되지 못했고, 유능한 정당도 되지 못했다.

- 가장 큰 이유는 맑스주의가 원래 가지고 있던 각본(자본주의 붕괴-노동자 각성-프롤레타리아 독재 등으로 이어지는)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각본대로 되지 않으면 현실(정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마르크스주의의 파산이다.

 

 

5.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치명적 한계

- 1930년대 대공황으로 인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실업률이 20-40%까지 치솟았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자유주의와 맑스주의의 처방은 간략하게 다음과 같다.

1) 자유주의 - 아무 것도 하지 마라. 경기부흥정책은 회복을 오히려 더디게 한다. 복지재정도 안된다. 그냥 시장이 해결하도록 놔둬라.

2) 맑스주의 - 지금 벌어진 공황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단, 이게 자본주의 종말이라 한다면, 전면적 사회화와 국유화에 착수해야 한다.

- 놀라운 것은 대공황이라는 위기 상황 앞에서 자유주의와 맑스주의의 처방이 본질상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맑스주의에 기초한 사회주의 정당들에게 ‘실업대책’과 같은 단기 대책은 중요치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 둘의 공통점은 ‘법칙’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법칙’(시장)과 ‘역사법칙’(사적 유물론).

- 결국 1932년 선거에서 나치당의 집권을 가져오게 된다. 나치의 공약은 단순했다. ‘일자리와 빵’

 

 

6. 비르포그스와 잠정적 유토피아

- 요컨대, 자유주의와 맑스주의 경제학은 대공황을 뚫고 나갈 매뉴얼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여기서 비르포그스의 핵심이론인 잠정적 유토피아를 소개하겠다.

- 잠정적 유토피아는 객관적, 선험적 역사법칙을 끌어내지 말고, 지금 여기있는 사람들의 열망에서 유토피아를 끌어내려는 시도이다.

- ‘유토피아’란 말을 생각해보자. 이상적 담론이 듣는 질문. ‘과연 현실성이 있냐?’ 당연히 없을 수 밖에. 유토피아는 정의상 현실성이 없다. 항상 비현실적이란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다.

- 그렇다고 어떤 정당이 현실주의 노선을 채택한다고 했을 때, 대개 특별한 이상적 모델 없이 현실에서 요구되는 이런 저런 정책을 펼치고 만다. 민주당을 보면 그렇지 않나. 박근혜의 공약보다 더 뚜렷하게 진보적이라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되나. 이게 현실주의 정체의 한계이다.

- 유토피아, 이상사회를 가진 진보정당은 등대정당, 횃불정당으로 찍히고, 반대로 현실주의 노선을 취하면 기회주의 정당으로 찍히는 것이 딜레마이다.

- '잠정적 유토피아' 개념은 이를 해결하고자, 우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어떤 열망이 있는지 찾고, 특히 그중에서 네거티브한 열망, 다시말해 ‘제발 이 꼴만은 안봤으면’하는 소망들을 조직해내는 것이다. 이렇게 모인 열망은 매우 구체적일 수 밖에 없다.

- 우리사회의 경우, ‘의료걱정, 교육걱정, 집 걱정없는 세상’ 이렇게 접근하면 눈이 확 띄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네거티브한 열망을 찾아서 이들이 모순되지 않으면서 일관되게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 시스템을 미래의 사회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 그 시스템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 내적 논리가 어떻게 되는지 설명해낸다면, 그것은 대중들에게 구체적 상상력과 행동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운동으로 터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 비그포르스는 잠재적 유토피아를 ‘청사진이 아니고 길잡이’라고 했다. 비그포르스가 보기에 맑스주의는 '청사진'이었다. blue print. 건물 짓기전에 모든 게 딱 짜여져있고, 일꾼들은 시키는대로 일해서 건물을 완성하는 식의. 치명적 문제는 2가지. 1) 현실이 청사진대로 안 흘러가면 어떻게 되나? 2) 건물 다 만들어졌는데, 나 거기 들어가서 안 살래 이러면?

- 그에 비해 잠정적 유토피아는 ‘길잡이’다. 지금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열망에서 출발했기에 그들 스스로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기폭제 구실을 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몇 십년 몇 백년 후에나 찾아올 낙원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 비그포르스

 

 

7. 나라살림의 정치경제학

- 앞서 말한대로, 비그포르스는 자유주의와 맑스주의 경제학의 한계를 비판하며 자신의 이론을 구축했다. 그것이 바로 플란후스호닝(planhushallning - 스웨덴어)이다. 앞의 플란은 plan이고, 뒤의 후스호닝은 householding, 즉 집안살림이다. 비그포르스 경제학의 핵심은 나라살림 경제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대기업, 소기업, 협동조합, 소비자, 생산자 등 다종다기한 분야의 주체들을 조직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 따라서 여기서의 plan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계획’이 아니고, co-ordinate ‘조직’에 가깝다. 또한 케인주주의식의 재정팽창을 통한 경기부양정책과도 다르다. 산업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조직해낼 것인가가 중요한 화두이다. 그 결과 스웨덴은 30년대 초반 잠깐의 적자재정 이후에는 균형재정을 유지했으며 경기 회복에도 성공했다.

- 이러한 플란후스호닝이라는 기틀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 복지국가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웨덴 하면 복지국가부터 떠올리는데, 그 이전에 비그포르스라는 이론가이자 정책가가 있었고, 전 사회적 혁신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글을 제대로 읽어보시려면 프린트를 하셔야 할 겁니다. 강의 내용을 거의 다 옮겨 놓아버렸네요. 그만큼 하나도 빠뜨릴 부분이 없는 명강의였습니다. 저는 이번 강의를 통해 맑스주의의 역사결정론의 한계를 명확히 깨달았습니다. 유토피아는 아래로부터의 열망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리 어렵지도 않은 ‘잠정적 유토피아’라는 개념을 가지고 SNS 등에서 사람들의 열망들을 모아보는 실험을 해보는 것도 의미있겠다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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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과제리 2012-01-23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정말 완벽한 강연 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강연 들으랴 내용 옮겨적으시랴...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게 가능하세요? 아... 책과 세계님께서는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 이실지도 모르겠습니다.뒷풀이에서 책과세계님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들었었는데... 강연내용에 대한 깔끔한 정리가 돋보이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맑시즘부분에 대한 비판은 너무 길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긴 어렵지만... 정치에 대한 "네거티브적 열망"을 적절하게 집어내고 시민들에게 정치적인 소통, 각종 불만에 대한 일시적(?) 해소라는 "잠정적 유토피아"를 제시한 사례가 나꼼수가 아닐까 생각이 들더군요. 나꼼수에 대해서는 진보라 불리는 인사들도 좀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던데요. 나꼼수의 담론에 100%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그 어떤 진보진영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점에 있어서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딴 곳으로 새어서 죄송합니다. 책과 세계님의 닉네임인 책과 세계는 혹시 강유원씨의 "책과 세계"에 영향을 받으셔서 지으신게 아니실까 생각해봅니다. 혹시 아닌가요? ^^: 홍선생님은 강의 정말 재밌게 하시죠. 개인적으로 경제학 강좌 시리즈로 기획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봅니다. 제3섹터나 사회적 자본에 대한 연구는 많은 진전이 있으셨는지 궁금하구요. 2012년이 un이 정한 협동조합 해라고 하네요. 협동조합에 대한 도서가 출간 되고 있는데... 이론소개에만 그치고 있어 좀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에구 자꾸만 이야기가 딴곳으로 새는군요.) 좋은 하루 되시구요. 상세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책과세계 2012-01-25 13:12   좋아요 0 | URL
칭찬 감사합니다. 강의를 듣고나면 항상 정리를 하는 편인데, 공유도 할겸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제 아이디 강유원님의 '책과 세계' 맞아요.

책세상 2012-01-26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훌륭하십니다. 마치 이것은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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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계님, 저희 블로그에 댓글 남겨주신 것 확인했는데 성함과 연락처가 빠져 있어서 못 보내드렸습니다. 댓글 다시 부탁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