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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 도시로 읽는 미국사 - 세상을 움직이는 도시가 들려주는 색다른 미국 이야기 30개 도시로 읽는 시리즈
김봉중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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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도록 미국을 가본 적이 없다. 중고교 시절 외에는 미국의 역사에 대해 따로 배워본 적도 없고, 스스로 미국에 관심을 가진 기억도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기 소개된 30개 도시 대부분이 익숙했다. 심지어 더 많은 수의 도시를 알고 있다.

반면 미국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여행도 다녀온 유럽의 도시들은 어떤가. 파리나 런던, 로마, 바르셀로나 등 유럽 각국의 대표적인 도시는 알지만, 그 외의 도시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왜일까?

곰곰 생각해보니 끊임없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만들어진 제품들, 문화와 예술계 그리고 사람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듣고 본다. 한 번도 가보지 않는 미국의 도시들이 익숙한 것은 그야말로 미국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새삼 미국이 얼마나 강한 나라인지, 무서운 나라인지 깨닫는다.

이 책은 각 도시가 어떻게 시작되어 발전했고 현재는 어떤 모습임을 간략하게 설명해준다. 읽는 내내 남북전쟁, 노예제도, 개척정신과 모험이 모조리 들어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조지아)를 시작으로 무수한 영화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대부><러브 스토리> <갱스터 오브 뉴욕>(뉴욕),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라스베이거스), <8마일>(디트로이트), <록키>(필라델피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시애틀), <소스 코드>(시카고), 라라랜드(LA), <패턴슨>(뉴저지 패터슨)까지 100편이라도 댈 수 있을 것 같다. 심지어 역대 미국 대통령 이름도(그걸 왜 죽자고 외웠는지 참).

하지만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도시였기에 이번 기회를 통해 비교적 상식적인 수준의 지식과 정보를 보탤 수 있었다. 가보지도 않은 도시에 대해 아는 체를 할 수는 없으나 미국 중간선거 소식이나 각종 사건 사고를 볼 때 도시가 가진 특수성을 떠올리게 될 듯하다.

입시 철이라 그런지 미국이라는 나라는 우리 반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데 그냥 알게 되는 전교 1등 같은 존재인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거대하고 다양한 그리고 복잡한 미국의 역사를 들여답는 최고의 방법이 무엇일까?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이 책은 시작되었다. (중략) 30개 도시를 통해서 미국 역사와 문화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조명하는 동시에 그 다양함을 관통하는 어떤 미국적 가치와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자 함이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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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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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펼쳤을 때 약간 당황스러웠다. 작가의 외모나 이름은 한국인처럼 보이는데 번역자가 있는 외국 소설이라니. 더군다나 소설은 19세기 초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다룬다. 생물학적으로는 한국인이나 미국에서 교육받고 미국 사회에 정착한 작가는 거의미국인이다, 그런 작가가 독립운동가였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영어로 쓴 이야기를 번역본으로 읽는다는 게 여건 어색한 게 아니었다.

내용은 딱히 새로운 것은 없다. 사냥꾼, 군인, 기생, 깡패, 학생, 사업가, 혁명가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인연이라는 끈으로 얽혀, 만나고 헤어지고 재회하며 혼란스러운 시대와 맞서는 이야기다.

한국 근대사를 다룬 소설 중 탁월한 장편이 많다. <토지>, <태백산맥>, <혼불>, <장길산> . 작가도 헛갈릴 만큼 나오는 인물도 많고 관계도 복잡하고 최소 3대 이상의 걸친 긴 시간의 이야기인데 무지하게 길지만, 무지하게 재밌어서 드라마나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일찌감치 외국에 번역되어 소개된 것으로 아는데 그리 큰 반향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에 반해 김주혜 작가의 이 작품은 정말 소품에 가깝다. 출판사의 자랑처럼 각종 문학상에 후보에 오르고 아마존에 상위에 오르는 등 인기가 많다니 반가운 일이다. 나 같은 토종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이야기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신선하고 역동적으로 느껴진 모양이다. 이 책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가 어떠했는지 제대로 알고, 우리 작가들의 좋은 책들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이 소설의 임무는 충분하다.

 

 

P. 603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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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물리학 - 거대한 우주와 물질의 기원을 탐구하고 싶을 때
해리 클리프 지음, 박병철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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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은 정이 많다는 뜻이고, ‘()’은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랑이나 친근함을 느끼는 마음이다. 그렇다면 다정한 물리학이란 물리학에 사랑이나 친근함을 느낀다는 뜻인데 내게는 전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요즘 여기저기서 다정한 ○○○가 유행이다보니 나온 제목 같은데, 독자에게 혼란만 일으키는 제목이 아닌가 싶다.

처음부터 나오는 사과파이 얘기가 뭔가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원제가 <How to make an apple pie from scratch>. 사과가 뭔가. 과학과 담쌓고 사는 나조차도 사과는 뉴튼, 애플의 사과, 즉 과학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신의 아이콘임을 알고 있다.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데 몰두한 물리학계에서 힉스 입자의 발견이 엄청난 성과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세계 최대 규모의 입자연구소 CERN의 지하실험실 그랑사소 연구소에는 사과파이의 달콤한 다정함 따위는 없다.

이 책의 저자 해리 클리프는 힉스 입자를 발견한 CERN 소속 실험물리학자다. 그는 사과파이 만드는 법을 예로 삼아 우주의 기원은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입자연구소 CERN에서의 실험을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하지만 글만으로 그가 느꼈던 경이, 좌절, 설렘 따위를 느끼기 어려웠다. 아주 작은 입자를 통해 우주의 기원을 알아내기 위해 지하에 벙커를 만들어 빅뱅을 재현하는 실험이 선뜻 그려지지 않았다.

내게 입자란 마블의 영화 <앤트맨> 수준으로 이해하는 개념이다. 극소립자에 갇힌 앤트맨을 보면서 더는 잘게 쪼개지지 않는 입자란 저런 거구나 싶었다. 비교적 최근에 본 <만달로리안> 시리즈도 떠올랐다. 먼 미래의 인류는 21세기에는 가늠할 수 없는 환경과 시스템에서 지구 외에 수많은 행성과 종족 사이에서 살고 있다. 우주란 인간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부터 받아들여야 재밌어지는 장르다. 물리학이란 이런 것들을 연구하는 학문인건가?

이 책의 부제는 거대한 우주와 물질의 기원을 탐구하고 싶을 때. 이 책을 선택하기에 앞서 이 부제를 꼭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P. 451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우주가 탄생한 순간(중력, 시간, 공간, 양자장 등 모든 것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던 순간)에 도달할 수 없을 것 같다. 실망스러운가? 그럴 필요 없다. 사실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질과 우주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 꽤 먼 길을 걸어왔지만, 플랑크 규모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고도 멀었다. 궁극의 이론을 논할 때가 아니다. 아직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사방에 널려 있다. 암흑물질의 정체는 무엇인가? 빅뱅의 와중에 물질은 왜 반물질보다 많아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는가? 힉스장이 기적과 같은 값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다행히도 과학은 미스터리가 많을수록 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더욱 희망적인 것은 방금 열거한 미스터리가 앞으로 몇 년 안에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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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다 사진관
허태연 지음 / 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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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아 잡화점의 기적>이 출간된 지 10년이 넘었는데 최근 몇 년 새 비슷한 아니 비슷해 보이는 책들이 여러 권 나오는 모양새다. 국내에서는 <불편한 편의점>이 많이 팔리면서 새삼스레 오쿠다 히데오의 <무코다 이발소>, 아가와 다이주의 <막차의 신>부터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목요일에는 코코아를> <여기는 커스터드, 특별한 도시락을 팝니다>까지 출간되었다. 전부 읽지는 못했고 아마 끝까지 읽지 않을 것이다.

사연이 있어 보이는 주인공이 하는 잡화점, 편의점, 이발소, 서점, 사진관 등에 사람들이 잠깐 들러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 구성인데, <하쿠다 사진관>도 예외는 아니다.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혼자가 된 주인공 제비는 아무 연고 없는 제주에 내려와 우연한 기회에 하쿠다 사진관에서 주인 석영을 돕는다. 남자친구의 아이를 홀로 낳은 후 입양시킨 비밀을 간직한 채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마을 해녀와 이웃들과 어울리면서 조금씩 자신의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다.

전작처럼 작가는 인생의 숙제를 참 쉽게 쉽게 해치워버린다. 시종일관 철없는 취준생 역할만 하던 제비는 그저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무슨 각성을 한 것인지 용기를 얻고 결국 아이를 버린 죄책감에서 벗어난다. 사진관에 온 손님들조차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쉽게 털어놓고 또 쉽게 각자의 방법으로 매듭지어 버린다.

상황을 바꾸지 않는다면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인지, 단지 남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모든 갈등이 술술 풀리는 이야기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하쿠다하겠습니다라는 말이라니 이제부터라도 뭐라도 하겠지 했는데... . 실컷 수다 떨다 집에 오니 후련한 마음보다는 목구멍만 아프고 채워지기는커녕 구멍만 넓어진 기분이 든다. 그저 흘러가는 상황에 내 몸을 맡기는 게 위로와 힐링이라면, 그게 된다면 참 좋겠다.

P.200
"만일 물꾸럭 신이 있어 사람에게 길흉이 가져온다면, 그리고 네가 잠수에 실패해 액운을 당한다면, 그때 너는 후회할 거야. ‘아 물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해냈어야 했는데.’ 그런 다음 울겠지. 지금처럼 서럽게. 하지만 네가 잠수에 성공한다면, 언젠가 네게 액운이 닥쳐도 후회하진 않을 거야. 그러니까 수영을 배워. 살아보니 그렇더라. 뭔가를 위해 무슨 일을 하다 보면, 계속 하다 보면, 그게 언젠가 너를 구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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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 인 케미스트리 1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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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성 과학자라는 말도 쓰면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일까? 처음 몇 장은 약간 울화통이 터졌다. 단지 여성 과학자라는 이유만으로 비커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헤이스팅스 분위기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아 여긴 1950년대 미국이었지, 여성이 참정권을 얻은 것이 불과 100여 년 전 일이었지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지도교수로부터 성폭력을 당했으나 오히려 추문에 휩싸여 쫓겨난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헤이스팅스 연구소에서 비슷한 과학자 캘빈과 사랑에 빠지지만 결혼 대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동거를 택한다. 그러나 임신 한 채 사고로 연인을 잃고 임신했다는 이유로 연구소에서 또다시 쫓겨난 후 홀로 아이를 키운다. 1편은 괴짜 화학자이자 미혼모인 엘리자베스가 TV 요리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되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엘리자베스는 놀랍도록 현대적이다. 그래서 종종 그녀가 사는 시대가 1950년대 미국이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 헤이스팅스를 지금의 어느 직장으로 배경을 바꿔도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부모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외롭게 자란 그녀는 자신의 캘빈의 도움조차 받길 거부하는데, 그건 누구의 도움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실험 끝에 도달한 팩트를 잘 알기 때문이다. 100번 거절당했다면 101번째도 거절당할 확률이 높다. 대책 없는 문과생처럼 혹은 도박사처럼 101번째 행운 같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특히 자신의 불행에 대해 징징거리지도 않는다. 이런 그녀의 태도가 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P.75
"캘빈. 내가 배운 게 하나 있어.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복잡한 문제를 풀 때 언제나 간단한 해결책을 간절히 바란다는 점이야.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설명할 수 없고, 변할 수 없는 걸 믿는 편이 훨씬 쉽거든. 실제로 보이고 만져지고 설명할 수 있는 걸 믿기는 오히려 어려워. 말하자면 실재하는 자기 자신을 믿기가 어렵단 말이지."

P.132
인생은 열심히 노력해서 헤쳐나가면 되는 거라고 계속 믿고 있지 않은가. 물론 노력도 중요하지만, 운도 따라줘야 하는 법인데, 하지만 이제껏 엘리자베스는 운이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 운이라는 걸 믿으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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