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함은 때때로 사람들 사이에 놓이는 물건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졌다.

긴 책상을 사이에 두고 발표자와 질의자로 나뉘면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발표자로서 나는, 생각지도 못한 날카로운 질문들때문에

갑판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파닥거렸다.

때로는 잔털 채 올라온 당근처럼 서늘하기도 했다.

 

하지만, 물밑에서 느끼지 못할 바람과 땅밑에서 보지 못할 따스함때문에

기꺼이 그들의 혀에 안기는 부끄러움과 과감함을  고사 叩謝 하게 되었다.

 

이것은 나무 탁자를 촘촘히 붙인 자리로 옮겨가자 느끼게 된 분위기 탓이었다.

좀더 친밀한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길에서 느꼈던 소통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아이들과 대화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서로 부족한 언어 때문에 쩔쩔 맬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저 알고자 하는 나의 열망이 그들에게 잘 전달되면 되었고, 아이들의 애쓰는 노력이 나의 가슴에 닿도록 집중하면 되었다. 그래서 모르는 명사는 모두 , , ” “요기 조기가 되었고, 나는 완전 말을 배우는 5살배기가 되어 떼를 쓰기 시작했다. “이거 모라고 하니? 수첩에 적어 줄래?” “?” 그림까지 그려주고 내가 발음 한번 할 때 마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셔브Cheveux(머리)?” “아뇨.” “슈보Chevaux()?” “아닌데.” “그게 아니고, 발목이요 셔비Cheville(발목)” 재미 있어 죽을 지경이었다. 비슷비슷한 복모음 발음이 문제였다. 발꿈치Talon 안경Lunettes 같은 생존 단어들을 배우면서, 아이들이 참으로 내가 겪는 어려운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것이 고마워 가슴이 뭉클했다. 이것이 프랑스인들의 뿌리 깊은 앙가쥬망Angagemant 즉 사회 참여의식의 토대가 되는 듯 하였다. <말배기>의 천진함이 아이들로 하여금 사람에게 쉬이 다가서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나의 도보 여행기> 중에서

 

11기 글쓰기 참가자 여러분들과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알라딘과 MD 박태근 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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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g seo 2012-09-14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공화주의 라는제목에 눈이끌림 은 왠지모르는 호기심이발동때문인것 같읍니다,오랫동안 진정 오랫동안 도둑질당하고 강도질당하고,죽임까지당하기만 하던 대한의 국민에게 주권을 되 찻는길을 보여주는 개화의 시간이되기를기원합니다
국가관이 무엇인지 민족의혼까지 유린한 민족의 반역자들을 처단하기는커녕 그들의 개들이 목숨을 부지하고 아직도 부와 새력을 주도하며, 대한의근대사에 가장더러운 시간을 강요하던 기회주의 원조,왜국의 관동군중위 박정희의 딸이하늘을가리고 아비의 길을 재현하려고있다.대한의 하늘아래 나라를 위하여목숨을 버린 영혼둘을 위하고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하여서 결단코 막아야 할것이다,이런일이(공화주의) 진리를덮는 조중동과 사법부 권력조직의더러운 기회주의근성을단절하고새 시대를여는 민족의 여명이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트랙백 : http://blog.aladin.co.kr/astudy/5386660

 

 

 

 

서재에 올려두었던, 1강, 2강 후기를 옮겨놓습니다. 선생님과 참여하신 모든 분들 고생하셨습니다.^^

 

[1강후기]

 

강의 후기를 짧게 남겨둔다. 홍대 카톨릭 청년회관, 저녁 7시. 6모임방에서 열렸다. 참여인원은 대략 스무명 정도. 전체 구성은 참가자들이 자기 소개를 하는 첫 꼭지, 타인의 글을 읽고 의견을 개진하는 둘째 꼭지로 이루어져 있다. 첫 꼭지는 선생님이 들어와 강의 소개를 한다. '타인의 글을 읽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합니다. 타인의 의견도 듣습니다. 함께 이야기합니다. 요컨데 토론식 강의며, 의견을 개진하고 함께 생각하면 됩니다.' 라는 기본적인 소개가 이루어진다. 이후 참가자들은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하게 된다. 눈길을 끄는 점은  자기를 소개할 때 선생님이 "오늘 있었던 인상적인 장면을 소개해 주세요"라고 부탁한다는 점. 그 때문에 참가자는 특별한 준비 없이도, 자신이 하는 일, 근황, 소소한 일상까지 부담없이 소개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부담없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지울 수 있고 타인과의 이물감도 덜수 있다. 좀 더 나아간다면 친근감도 느낄 수 있겠다. 실제로 몇 분이 자기 소개를 한  이후 웃음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 시작했으며, 교실을 편하게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았다.

 

  둘째 꼭지는 다음 강의에 대한 소개를 곁들이면서 '타인의 글에서 무엇을 읽고 말할 것인가'를 강의한다. 하지만 일방향 강의가 아니다. 실제 글을 나누어주고 글에 대한 평가를 유도하면서 참가자들이 직접 '실행'하며 익힌다. 요컨데 글에 대한 평가를 이끌어내면서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방향을 잡아주는 형태다.(변증술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 우선 글을 한 편 나누어 준다. 짧은 시간을 주고 주욱 읽게한다. 그 다음 종이를 뒤집고 글이 무슨 내용이 적혀 있었는지를 묻는다. 대답은 다양한데, 선생님은 참가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핵심을 요약해준다. 일종의 퍼즐과 비슷해서 각 참가자들에게 남아있던 여러 부분을 취합, 개괄적인 인상을 그린다. 이것은 확실히 참가자들과 공유된다. 큰 틀이 그려지고나면, 글에서 '좋은 점'부터 묻는다. 사람이란 첫인상에 많은 것이 좌우되기 마련이니, 처음부터 '단점' 또는 '자유롭게'를 선택하며 글이 폄하되는 것을 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발언의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하며, 내용은 존중된다. 선생님은 필요에 따라 발언을 요약하기도 하고, 더 이야기 할 수 있을 법한 화제를 이르집어놓기도 한다. 예컨데 '글을 쓰다보면 자신의 의견과 무척 다른 이야기가 나올때도 있잖아요...?' 라는 발언이 나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쓰기에서 자신의 의도와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건 스스로 허용해야 하는 것일까요?' 하는 식으로 화제를 주지시킨다. 참가자는 그 화제로 옮겨갈 수도 있고, 여전히 글에 대한 자신의 다른 생각을 피력할 수도 있다. '장점'이라는 가이드 라인만 지켜진다면, 제약되는 건 없다. 다음 순서인 '단점' 역시 마찬가지이다. 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듣는다. '장점' 부분과 대동소이하다.

 

  '장점' / '단점'이 끝나면 이제 다시 글을 뒤집어 놓고 꼼꼼히 읽는다. 다시 읽으며 펜을 들어 줄치거나 표시하면 된다. 물론 자신이 생각하는 어떤 목적하에서다. 좋은 구절이나 인상적인 예시 등에 표시를 해도 좋고 단점이나 논리적 비약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줄을 쳐도 좋다. 그 다음, 다시 똑같은 방법으로 '장점'과 '단점'을 말하는데, 이때 참가자들은 자신이 전에 가졌던 글에 대한 '인상'과 다시 읽은 '이해' 사이를 가늠해보게 된다. 발언은 동일하지만 내용은 좀 더 세밀하고 정밀해진다. 인상과 이해가 달라 평가가 달라지기도 한다. 신문의 칼럼에서 인터넷 잡문으로 평가가 널뛰기를 하기도 하고, 부정적 글에서 평균적이고 무리없는 글이라는 평이 이어지기도 한다. 좀 더 눈에 띄는 것은 선생님의 역할인데, 발언의 핵심을 요약하고 화제를 제시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작문적' 평가와 '가치관의 개입'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도록 한다는 것. 독자의 가치관이 충분히 개입되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이 대화와 토론이 '작문'으로 수렴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지시키는 균형이랄까.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수업 분위기는 편안하다. 특별히 긴장한 사람은 없지만, 느슨하게 딴 짓을 하는 건 아니다. 모두들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고, 다양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가벼운 이야기가 나오면 참가자들은 웃고 선생님도 재미있는 것을 찾아내려 한다. 정치적 견해가 표출되기도 하고 글의 형식에 관한 논의가 오가기도 한다. 참가자들 사이에 놓여있는 '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허용되고 발언된다. 반박은 할 수 있지만 부담스럽지 않는 분위기다. 그렇게 수업은 2시간 가량 진행되고 마지막엔 다음 수업이 공지된다. 다음 수업에 읽을 글 6편이 선정되고, 답글을 달아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진다. 답글의 형식은 오늘과 유사하게 할 것, 단순히 '잘 읽었습니다'라는 감상으로 끝나면 안 된다는 것, 너무 단점을 강조하면 안 된다는 등의 주의사항이 주어진다. 이렇게 1강 끝.  다음 주 수요일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다. 서로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넨다.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다채롭다.

 

 

[2강 후기]

 

저번에 이어 2강 후기를 남겨둔다. 새로운 사항이 많았던 전 강의에 비해 이번엔 정리할 내용이 그리 많지 않다. 참가자들은 이 수업이 모두가 참여하는 강의임을 알고 있어 공지사항이 따로 필요없다.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도 모두 공유하고 있다. 달라진 점은 두 가지. 첫 번째, 발표자들에게 책상과 걸상이 따로 마련된다. 책상은 일반참가자와 마주보도록 설치된다. 일반 참가자와 발표자 사이에 대립적 긴장감을 주기 위한 것이다. 두 번째, 선생님도 한 명의 일반 참가자로 참여한다. 여전히 발언내용이 나오면 핵심을 요약해주는 역할을 하긴 하지만 그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대부분의 발언이 그냥 발언되고 꼭 필요한 경우만(대개 불분명한 발언이나 오해의 여지가 있을 것 같은 내용, 간혹 글쓰기 강의로 수렴되어야 할 내용이 주지되어야 할 경우다. 하지만 대개는 논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이다.) 선생님이 정리를 해 주는 식이다. 발표자는 세 명씩 두 모둠으로 나뉘어져 있고 한 모둠당 시간 배분은 1시간씩.

 

  순서는 이렇다. 우선 발표자들이 지정된 자리에 앉는다. 이미 그들은 자신의 글을 넷상에 올린 상태고, 모든 참가자들로부터 자신에 글에 대한 총평을 받은 상태다.(총평은 답글로 달린다. 답글의 형식은 따로 주문받은 것이 없지만, 칭찬과 비판이 공존하는 형태가 선호되었다.) 각 발표자는 5분 정도 자신의 글에 대한 발표, 예컨데, 원래 의도,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어떤 배경에서 썼는지, 자기 글이 상당히 별로인 것 같다든가, 이런 부분은 스스로 생각해도 좋다든가 하는 부분들을 언급하고 발표한다. 물론 개개의 총평에 대한 답변도 한다. 자기 변호를 하기도 하고, 지적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이야기도 한다. 세 명이 이런 형식으로 자기 글에 대한 발표를 하고 나면 이제부터 일반참가자와 발표자 사이에 '질문 - 의견 - 답변'의 형태로 수업이 진행된다. 순서가 특별히 지정되어 있지 않으며, 발언내용에도 제약은 없다. ㄱ 발표자에게 질문한 후, ㄷ 발표자로 넘어가도 좋고, 글의 전체 구조를 언급해도 좋으며, 세밀하게 지적해도 좋고, '글쓰기'와 큰 관련없는 일반적인 화제로 대화가 넘어가기도 상관없다. 처음에는 분위기가 다소 어색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먼저 질문을 던지며, 질문 답변의 흐름이 끊어지거나, 너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거나 하면 선생님이 다른 발표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개입하여 화제나 대상을 변경하기도 한다. 선생님이 던지는 질문은 그리 난해하거나 어려운 것은 아니며, 오히려 쉽고 간단하며 '웃을 수 있는' 질문이 많다. 요컨데,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뒤에서 든든히 받쳐주는 역할이다. 덕분에 참가자들과 발표자들은 자주 웃으며 재미있는 것을 잘 찾아내는 편이다. 분위기는 대체로 화기애애하다.

 

  발언과 지적은 다양하다. 글쓰기 강의라고 해서 꼭 내용이 '글쓰기'에 관련된 내용으로 수렴되지는 않는다. 철학적인 논제로 넘어가기도 하고, 개인적이고 사소한 감상이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자유롭기는 하지만, 몇몇 참가자는 다소 불만스러운듯이 보이기도 한다. 단 3 강 밖에 없는 강의인데, 글쓰기에 관한 내용으로 짜여졌으면 하는 바램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분위기도 있고,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제약도 없다. 모든 발언은 존중되고 허용된다. 발언 내용이 불분명 할 때만 종종 선생님이 개입하여 논점을 좀 분명히 할 뿐 특정방향이 가시적으로 유도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대체로 모든 강의는 참가자들에게 맡겨져 있다.

 

 

  전에 비해 사람이 좀 줄었다. 알라딘 MD님들이 참석하셨는데도 전보다 자리가 좀 비어보인다. 사람들은 자신이 너무 발언을 많이 하는 건 아닌가 조심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하고, 발언하며 충분히 즐거워 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글쓰기로 내용이 한정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기도 하고, 글을 지적하면서 어느 선까지 이야기해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해 다소 혼란스러운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두 모둠의 발표가 진행되고  "오늘은 여기까지!" 라는 선생님의 경쾌한 발언으로 수업은 끝난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모두들 다음을 기약하며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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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올려 죄송합니다. 처음에 이메일로 보냈던 글은 발표로 하기에는 제 개인적인 얘기가 많아서 다른 글을 올립니다. 

고민하고 망설이는 과정에서 시간이 너무 지체됐습니다. 죄송해요.  

아래글은 문화초대석에 당첨돼서 갔었던 이태석 신부님 추모 2주기에서 느꼈던 감동을 후기로 올린 글입니다.  

전문적인 글쓰기를 하고 계신 분들 앞에 다듬어지지 않은 제 글..부끄럽구요. (주기자 버전)

추모 상영회와 강연에서 큰 감동을 받아, 돌아와서 바로 썼던 글이라 생생함은 좀 있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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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렇게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알라딘과 영화를 만드신 구수환 피디님께 감사드립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이태석 신부님을 이번에 알게 됐습니다. 

다녀와서는 이태석 신부님의 고귀한 삶을 2주기 추모행사를 통해서라도 알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추모행사에 가기 전에 이태석 신부님이 쓰신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를 부랴부랴 읽고 가긴 했습니다.

책을 읽을 때보다 영화로 직접 그분의 생전에 모습들을 보니까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직도 그리워하는 많은 이들의 눈물을 보며 이 분의 삶의 발자취가 너무 크고 아름답다 느꼈습니다.

상영되는 내내 눈물이 계속 나서 훌쩍거리면서 봤습니다.


열악하고 위험한 나라 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에서 신부이자 의사이자 선생님, 아버지의 모습으로 많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과 사랑을 심어주고, 아픈 사람들의 상처와 마음을 어루만져준 귀한 삶을 보며  제가 한없이 작고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쳐 병원을 손수 짓고,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주는 신부님.

그들과 함께 하는 삶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시는 모습, 돌아가신 소식을 듣고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톤즈 주민들과 한센병 환자들, 70되신 노신부님의 인터뷰를 보고 또 같이 울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을 그리워 하며 눈이 안 보이는 한센병 환자가 신부님 사진에 입맞춤하며 울 때, '사랑해 당신을' 이라는 한국노래를 연주하며 따라 부르는 브라스밴드 아이들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특히 70되신 외국인 신부님이 유창한 한국말로.. 나이도 많은 당신이 차라리 죽었더라면 기쁘게 갔을 거라고 하실 때 너무 눈물났습니다.  한창 젊은 나이에 재능도 많고 해야 할 일이 많은 젊은 신부님을 왜그리 일찍 데려가셨는지 모르겠다며 말씀하실 때에는 저도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분의 삶이 사랑을 실천하는 성직자의 참모습이기에 많은 이들에게 감동이 되어 그리움으로 남은 것 같습니다.

 

상영이 끝나고 영화를 만드신 구수환 피디님 말씀에도 참 많이 공감했습니다.

그동안 KBS '추적60분' 이라는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하시던 분이 왜 이런 다큐를 찍게 됐을까 궁금했었는데 그에 대한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처음엔 방송에서 기획으로 쓸 테마를 고심하다 우연히 인터넷 기사를 통해 그 분을 알게 됐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를 바꾸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던 이 사회의 잘못된 관행들이 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을 봤다고 하셨습니다.    


구 피디님 또한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다 보니 직업병이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자녀들을 대할 때 꼬치꼬치 캐묻던 버릇이 없어지고 믿음을 가지고 부드럽게 대하게 됐다며 합니다. 제일 먼저 바뀐 것은 본인 자신이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자 주위에 반응이 달라졌다고 하시네요. 그 말을 듣고보니 티비에서 볼 때는 다루는 주제가 무거운지라 굳어진 표정이었는데, 직접 강연회장에서 뵈니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이셨습니다.


피디님의 이야기처럼 이 사회의 리더들이 정말 아니다 싶은 행태를 많이 보이는데요. 이태석 신부님과 같은 진정한 '성김의 리더십' 을 배운다면 이 사회가 좀 더 살만한, 건강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귀감이 되는 좋은 분들을 롤모델로 삼아 인생의 목표를 정할 수 있다면 권력과 지위를 이용하는 나쁜 어른으로 성장하지는 않을테니까요.

잘 나가는 유망직종에 유망직업을 갖겠다 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의사, 희망을 심어주는 선생님, 따뜻한 부모님 미소를 짓는 성직자와 같이

직업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마음을 가슴속에 새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직업 앞에 붙는 수식어가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라구요.

저부터가 작지만 바로 할 수 있는 사랑실천의 방법을 찾아 한걸음씩 내딛으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이태석 신부님의 따뜻한 미소를 떠올리며 글을 마칩니다.



p.s. 강연회에서 나온 질문과 답변을 듣고 느낀 점을 소개할게요.

1. 구수환 피디님의 종교가 궁금하다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천주교 신자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는다고 하시는데, 본인은 불교 신자라고 하십니다.  이태석 신부님 같은 훌륭한 성직자의 사랑 실천의 가르침은 종교를 초월해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종교의 큰 가르침은 사랑과 자비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 마음 속에 심어주고자 하는 것은 '사랑과 자비의 씨앗' 인데, 

그것을 죽이지 않고, 계속 물을 잘 줘서 '사랑과 자비의 열매'로 키우는 것은 우리들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2.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께서 감동을 많이 받으셨다고 하며 학교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좋은 가르침을 주고자 한다고 하셨습니다. 구수환 피디님 이름처럼 말씀도 구수하게 잘 하신다며 박수를 치자, 강연장에 있던 사람들도 따라 웃으며 힘찬 박수를 보냈습니다.  저도 초 중등생 공부를 가르쳤던 경험에서 느낀 점이 있었습니다. 환경이 안 좋은 아이들은 주늑이 잔뜩 들어 칭찬을 해줘도 어색해 하는 것을  봤습니다. 아이를 믿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어려서 선생님께 들은 칭찬과 좋은 평가가 가슴속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좀 더 많은 아이들이 불우한 환경탓만 하지 않고 자신감을 갖고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해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문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좋은 환경과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어른들이 문제입니다. 어릴 때 좋은 경험들을 많이 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것은 어른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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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sin 2012-02-11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울지마 톤즈를 보았을 때와 친구가 되어주실래요를 읽었을 때의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하네요. 그런데 이렇게 좋은 행사를 다녀오신 글을 읽고 있으면 도대체 언제 어디서 이 행사가 있었으며 어떤 계기로 알게 되어 혼자만 쏙 갔다 오셨는지(^^) 마구 궁금해 집니다. 장소와 시간과 참석하시게 된 계기도 작성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리얼리티 2012-02-1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강연을 많이 찾아 듣는 분이시군요! 저도 다양한 것을 많이 경험하려는 마음은 있는데, 일상에 그런 시간을 끼워 넣는 게 사실 쉽지는 않습니다. 게으름 때문이지요. 긍정의 힘님은 아마도, 무척 부지런하실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돌아와서 바로 쓰신 글이어서 감상이 생생하게 잘 드러나 있습니다. 다만, 급히 쓰셔서 문장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너무'라는 부사가 쓰임에 맞지 않게 쓰이기도 했고, 뜻이 명확하지 않은 문장도 있습니다. "그리고 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를 바꾸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던 이 사회의 잘못된 관행들이 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을 봤다고 하셨습니다." ->이 문장은 무엇을 바꾸려고 했고, 무엇이 바뀌었는지가 명확해 보이지 않습니다. 문장을 다듬으면 더욱 좋은 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꽃별이 2012-02-12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지마 톤즈>보면서 병자답지 않은, 가을국화 같이 화사했던 신부님의 웃음과 신부님이 주신 십자가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울음을 터뜨리던 소년 브릿지?때문에 눈물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드러나지 않아도, 스스로 사랑으로 존재하는 이태석 신부님과 같은 분이 계셔서, 삭막한 세상이라 해도 아직은, 따뜻한 눈물 한 방울과 같은 세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덕분에 글을 읽으면서 이태석 신부님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볼 수 있었으나, 전체적인 글의 구성이 하나의 개요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님의 마음을 흔들었던 한 부분이 섬세하게 부각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실리 2012-02-13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지마 톤즈>를 봐서 일까요? 이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회자된터라, 그분을 회상하게 만든 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강연을 다녀 오신 후 바로 쓰신 글이라 신부님에 대한 맺음글은 고백처럼 느껴졌습니다. 두번째 강연자 질의 응답 부분은 보고 형식으로, 마지막으로는 님의 바램글 이네요. 영화 또는 TV 에서 얻지 못하는 강연장의 분위기나 강연자의 메시지 같은 것을 삽입하셨더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좋은 행사에 직접 다녀오신 느낌이 더 생생하게 살지 않을까요?

이준입니다. 2012-02-13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잘 아는 교회 집사님 소개로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는 종교를 초월해서 감동을 주는 것 같네요.

전체적으로 매끄럽게 읽히는 글입니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시는 분이 아니신데도 이 정도이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제일 마지막에 첨부해 놓은 것들이 모두 본문 속에 녹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추신하는 부분에 극적인 반전이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손으로 편지를 쓰고 빠뜨린 부분을 첨부하는 것이지만, 요즘에야 수정이 편리하니 )
그리고 전체적으로 좋았다는 점 이외에 무엇을 강조하고 싶은지 모호하다고 생각합니다.

bytheway 2012-02-13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디님의 이야기처럼 이 사회의 리더들이 정말 아니다 싶은 행태를 많이 보이는데요. 이태석 신부님과 같은 진정한 '성김의 리더십' 을 배운다면 이 사회가 좀 더 살만한, 건강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귀감이 되는 좋은 분들을 롤모델로 삼아 인생의 목표를 정할 수 있다면 권력과 지위를 이용하는 나쁜 어른으로 성장하지는 않을테니까요.

->그러면 좋겠지만, 너무 추상적이고 인과관계가 약합니다.
'한국방문의 해' 캠페인 몇번 하면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 한국이 관광선진국이 된다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섬김의 리더쉽을 보고 아이들이 롤모델을 잡을 가능성은 무척 작아 보여요.

학교폭력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학교폭력은 권력과 폭력의 시스템을 아이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학교에서 학교폭력을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걸 아이들은 경험을 통해서 배웁니다. 폭력피해를 이야기해도 학교에서는 사이좋게 지내라고 충고하는 정도가 고작이고 피해자를 돕거나 보호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죠.
섬김의 리더쉽은 의도는 좋지만, 시스템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는 기만으로 보일것 같아요.
가난한 사람도 똑같은 권리를 누릴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게, 그런 시도를 계속하는 게 아이들이 긍정적인 비젼을 가지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듯 싶습니다.

돌이 2012-02-14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우연히 [울지마 톤즈]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종교가 갖지 않은 저이지만, 신이 있다면 아마 저런 분들의 모습으로 현현하지 않을까, 그리 생각했습니다.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었던 그 당시의 감동이 살아나네요. 종교를 떠나 그런 분들의 희생과 봉사가 작은 씨앗이 되어 밀밭을 이루지 않을까요?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와 정보를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밈없는 문장도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었습니다. 내용과 형식이 일치되었다,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현장의 감동이 너무 크셨던지, 이태석 신부님과 구수환 피디님의 비중이 비슷해진 느낌입니다. 그렇지만 제게는 크지 않은 아쉬움입니다.
 


안녕하세요, 언제까지 올리는지 몰라서 헷갈리다가 15일에 쓸자료도 빨리 올려야 한다는 거 듣고 급 올립니다~.

sherpa님에게 메일로 보낸 버젼에서 아주 조금 손봤고,메일 보낼때의 길이가 2페이지 반정도라서, 2페이지로 줄였습니다.

빗금 아래부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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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아이 안아주기_바로 당신의 눈앞에_안세열_


 [바로 당신의 눈앞에]_2011 SPAF (서울국제 공연예술제)


이 공연은 '갑 스쿼드'와 '캄포'라는 창작집단이 협업해서 만든 작품이다.

프로가 아닌 7명의 아이들이 무대위의 유리로 둘러싸인 네모난 세트안에서 공연한다. 아이들은 구석 에 설치된 비디오를 통해서 나오는 지시에 따라 말하고 움직인다.세트는 특수유리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세트밖의 관객을 볼수 없다. 아이들이 보는 건 세트안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일 뿐이고, 관객은 세트밖의 객석에서 세트안의 아이들을 볼 수 있다.


비디오의 지시는 아이들에게 19살이 되었을때, 30살이 되었을때,45살이 되었을 때, 그리고 노인이 되고 죽을때등등 이런 저런 상황에 처했을때 어떨 것 같냐고 묻고 연기를 하게 시킨다. 아이들은 각각의 나이에 맞춘 자신들의 미래를 즉흥으로 연기하게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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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19살이 된다면 뭘 할수 있니?>->지금부터 <>안은 비디오의 지시사항입니다.

“비키니 13벌을 가질수 있어.해변에 가서 수영복을 입고 돌다니면서, 수영은 안 할수도 있어.

섹스를 할수 있고, 임신을 할수 있고, 월세를 내야 하고 운전을 할수 있고, 투표를 할수 있고, 도박을 할수 있고, 감옥에 갈수 있고, 내 한계를 알아낼 수도 있지. 사람을 고용해서 내가 가진 문제를 진단하게 할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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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웃는다. 타샤만 빼고.><모두 타샤를 봐.><타샤, 모든 사람에게 네가 가지고 있는 신제품에 대해 말해.>

타샤는 핸드백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사람들에게 그 물건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설명하는 시늉을 한다.


이 연극 전체에서 가장 슬프고 끔찍한 장면이었다. 아이들이 연기하는 설정이 딱 나를 비롯한 어른들이었다. 자기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신경쓰고,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를 걱정하는 건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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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살이 되면되면 뭘 할수 있니?>

“모터사이클한대를 사고 중년의 위기를 부정할수 있고, 내가 젊었을때 어찌어찌 했다고 뻥을 칠수 있지.”“수면제를 먹을 수 있어.”

“간단한걸 계산할 때 전자계산기를 쓸수 있고, 몸에서 악취가 날수 있고, 친구들과 만나 하룻밤을 예전처럼 놀수있고, 섹스를 애들이 잘 때를 틈타 할수 있고 45살이란 건 그냥 숫자일 뿐이라고 주장할수 있어.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내 아이들에게 어떤 옷을 옷을 입으라고 시킬 수 있지”


어른이 된다는 건 특별히 멋있는 일은 아니다. 남들에게 멋있게 보이기 위한 연기를 하기에는 적당한 여건을 갖추게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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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예상했던 대로 일이 안풀렸어? 뭘 기대했지?>

“그와 결혼할 수도 있었지.”“그녀와 결혼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

“더 많은 다른 친구들을 사귈 수도 있었지.”“그 애의 충고를 들을 수도 있었지.”“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걸 할 수도 있었지.”

그리고 모두가 춤춘다. 퀸의 ‘돈 스탑 미 나우.’를 배경음악으로.

한명씩 바닥에 쓰러지고, 마지막 한 명이 쓰러지면 암전되고 공연은 끝난다.


공연이 다 끝난 다음에 이어진 작가와의 대화에서 기획자는 ‘이 공연속의 아이들은 자기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비디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움직인다.

아이들은 미래에 대해 궁금해했고, 자신이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되거나,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특별하게 생각할 거라고 기대했다.


아직 세상을 충분히 살아보지 않은 사람 특유의 ‘나는 반드시 승리할 거야’, 혹은 ‘나는 남과 다른 인생을 살 거야.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삶일 거야.’라고 믿는 태도가 보였다. 초등학생에게 어느 대학교 갈거냐고 물으면 대부분 서울대에 가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다만 눈가에 달마시안처럼 큰 점을 그린 ‘로브’라는 이름의 작은 남자아이는 예외였다. 그 아이는 카메라를 향해서 ‘난 네가 싫어, 네가 보잘 것 없어.’라는 말을 되풀이했는데, 어른이 된 미래의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도 ‘넌 결코 어른이 될 수 없을 거야.’라는 말이었다. 부정적인 쪽의 치기라고 하기에는 어색했다. 이미 냉소가 아이의 성격이 되어버렸고, 얼굴표정이 되어 버렸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시트콤을 보는게 무척 싫었다. 주인공들은 시도때도 없이 화면안에서 ‘자기가 얼마나 밝고 시끄럽게 웃을수있는지 경기라도 하듯이’웃고 있었다.

주인공이 아닌 나머지 사람들은 활짝 웃고 있는 주인공들의 시녀나 하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화가 났고, 왜 나의 하루하루는 웃음과 행복으로 채워지지 않았는지가 억울했다. 내가 시트콤에 출연한다면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로브’를 보면서 어렸을 때의 내 모습이 겹쳐졌다. 난 반항심에 표정을 구긴게 아니었고, 그냥 어쩌다 보니 표정이 구겨져 있었고 주변에서도 내가 밝고 행복한 아이가 아니라는 걸 쉽게 알아차리곤 했다.



어른들이 아이를 보고 해석하려는 노력은 항상 재미가 없고 끔찍하다.모든 어른은 틀림없이 어린시절을 거쳤지만, 이미 어른이 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걸 자기기준에서만 생각하고 끼워 맞추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른에게 어린이는 어쩌면 외계인과도 같다.

이 공연이 특별했던 이유는 아이들이 어른을 연기하는 연기자로 나온다는 점이다. 어른이 된 관객의 눈에 유치하고 틀린 답으로 생각되는 걸 아이들이 말하는 걸 보면서 '나는 저게 틀린 답이라는 걸 알아.'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관객도 답은 모른다. 어른 연기자가 무대에서 움직인다면 객관적으로 보고 틀린 답을 비웃어 넘길수도 있지만, 아마츄어어린이 연기자의 한계때문에 무시할수가 없다.


어린이도 관심이 필요하지만, 나를 포함한 각각의 어른게게도 관심이 필요하다.

누구나 자기의 인생이 드라마이길 원한다. 내 사랑을 로맨스라고 말해달라고 트로트를 부르면서 애원하고, 자기의 손가락에 피가 난 상처, 자기마음에 새겨진 슬픔을 '너에게만 말하는 이야기'라고 하면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자랑한다.


그렇지만 정작 자기의 상처를 깊게 들여다 보거나 찬찬히 생각하는 일은 별로 없다.

20살이 넘어서 내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때는 자기소개서의 '성장과정'을 작성할 때를 빼고는 별로 없었고, 그나마 성장과정을 적을 때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서 좋게 보이려고 스스로 편집을 하곤 했다.


‘바로 당신의 눈 앞에’를 보면서, 난 이 공연이 싸이코 드라마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계속해서 생각하게 되돌아 보게 만드는 공연. 싸이코 드라마를 본 적은 없고, tv에서 싸이코 드라마가 어떤 거라는 식의 말을 들은게 전부지만.

아이들이 무대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관객이 자신의 어린시절을 되새기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관객이 나이를 먹으면서 남들이 바라는 대로 행동하느라 신경을 쓰지 않았던 자기를,  어린시절의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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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sin 2012-02-11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명의 아이들은 인간의 각 성격이나 인생을 대변하고 있는 듯 합니다. 관객들은 연극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한 아이에게 자신을 감정이입하게 되겠군요. 필자께서는 로브라는 아이에게 이입되신 것 같아요^^ 자신의 어린시절을 잊지 않으면 타인을 더 이해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빵가게재습격 2012-02-11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극 관람기 잘 읽었습니다.^^ 다채로운 경험을 좋아하시는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고, 현재보다는 과거와의 화해를 지향하는 '윤리적인'(?)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저는 소소하게 한 가지만 말씀드릴까 하는데요. 글 전체가 연극을 묘사하는 글임에도 대단히 추상적입니다. 글 전체에 걸쳐 연극을 묘사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연극이 상상되지 않습니다. <> 표시에 비디오가 지시를 하고 아이들이 따라한다고 했는데, 세부적인 디테일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어떤 복장을 입고 나왔나요? 조명의 불빛은 어떻던가요? 다른 이들의 반응은? 어느 부분이 어떻게 나왔길래 '가장 슬프고 끔찍한 장면'이라는 표현이 가능한가요? '비디오는 말한다. - 아이들이 답한다 - 나는 경악했다.' 그런데 '왜' 그런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세부묘사를 전혀 하지 않아 묘사하시는 연극모두가 극단의 실험극으로만 느껴집니다. 구체적 묘사가 많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요? 이상입니다.^^

리얼리티 2012-02-11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극을 본 감상이 결국은 자신의 문제로 모이는 것이 좋았습니다. 또 솔직하게 자신에 대해 밝히는 부분도 좋았습니다. 아쉬운 점은 글을 보고는, 연극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연극 묘사 부분이 연극에서 느낀 바를 이야기하는 부분보다 표현이 풍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고 들은 것을 글자로 옮기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겠지만, 조금만 더 세세하고 자연스럽게 묘사가 되면 훨씬 재미있는 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꽃별이 2012-02-12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험적인 재미있는 공연에 다녀오셨네요. 아이들의 마음을 꽤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분이신 것 같습니다...연극 부분을 이야기할 때, 보고서 식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좀 더 '스토리텔링'기법으로 표현하셨으면 훨씬 더 마음에 와 닿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론 부분에서 객관적으로 '자신 안'을 들여다 보는 모습은 좋았습니다...^^

시실리 2012-02-13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극평의 글에 연극을 재 구성하는 방식이 참 새로웠습니다. 감상문에서 연극이 실험극처럼 여겨지는데, 관객으로서 이야기에 몰입을 잘하시고 또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재해석해 내는 결론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연극 설명 부분이 눈에 잘 안들어오고,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극의 묘사를 좀더 '가깝게' 묘사하셨더라면 독자들이 한층 연극을 이해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님이 말미에 쓰신 내용만이 머리에 남습니다.

이준입니다. 2012-02-13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재미있는 실험극입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특이한 설정에 비해서, 글에서는 그 참신함을 못느끼는 단점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차라리 전체적인 설명 이후, 인상깊었던 한 장면만 세밀하게 글로 옮겼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거스 2012-02-13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연극이었겠네요.
이 글을 읽고 저도 이 연극을 보고 싶어서 검색해보았는데, 안타깝게도 연극을 이제 더 하지는 않는군요.
다른 분들은 디테일이 없어서 상상하기 힘들었다고 하셨는데, 전 대충 상상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묘사는 부족했지만 구체적인 대사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대사들 때문에 (저를 포함한) 어른들이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어떻게 보일지 걱정하는지 고민하는 대목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로브에 감정이입하시면서 연극을 봤고,
그 이야기를 끌어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은 것도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속의 어린아이가 있지만, 그 어린아이를 솔직히 인정하고 이해해주고 달래주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래서 글을 쓰신 분께서 자신의 삶에 고민과 관심이 많은 분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다 2012-02-13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시절의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으면 한다'는 마지막 말에 완전 공감합니다. 우리는 남들이 바라는 대로, 사회가 바라는 규격화된 삶을 끊임없이 요구받으며 사는데요.. 그렇게 열심히 달리다 보면 몸과 마음에 상처가 많이 남는데 그게 결국 마음과 몸의 건강을 해치는 것 같아요. 바이더웨이 님은 연극을 보신 후 '내 안의 아이'를 잘 안아주고 달래주셨는지 궁금하네요.

돌이 2012-02-15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전반에는 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서술했지만, 후반에는 너무 사변적으로 흐른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로브'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필자의 감정을 강하지만 짧게 기술했더라면 감동이 배가되었을 거 같네요. 또 점선으로 단락을 구분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문장으로 각 장면들을 분리시켰다면 좋았을 겁니다.
저는 일반적인 연극만 관람했던 사람이기에 이 글을 읽고 실험적인 극을 관람하고 싶다는 극히 개인적인 욕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건 타인의 시선에서는 자유로운 행동입니다.^^

bytheway 2012-02-17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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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건강하셈^^!
 

이글은 124일간의 도보여행을 토대로 작성된 글입니다. 그 중에서 도보 여행의 첫날과 둘째날에 해당됩니다.

도입부 부분이 없기도 할 뿐더러 미욱한 제글을 읽으시려면 상상력을 최대한 키우셔야 할텐데...저와 함께

여행을 떠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구멍난 부분들에 대한 질책과 질문들  댓글로 많이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1.1            내 인생의 혁명

배낭을 지고 길로 나서면 비로서 여정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이 무게는 혼자이기에 허물어지기 쉬울 신념의 무게를 확인 할 수 있는 유일한 실체라 가벼이 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있다. 몸처럼 소중한 배낭은 그렇게 내 등에 착 달라 붙은 일체감으로, 존재를 일깨우기 위해 나는 배낭에 방울까지 매달아 놓았다. “, 여기 있어요.” 누군가 손을 대면 싫어요.”라고 당당히 소리칠 수 있도록! 그렇게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7 14, 파리 시내는 프랑스 혁명 기념일을 축하하러 나온 인파와 퍼레이드로 술렁인다. 대부분의 행정적인 업무가 손을 놓아, 생자크 형제회 사무실로 직행하려던 계획은 무산 되어 버렸다. 대신 수많은 사람들 속에 끼어서 그들의 흥분과 열정에 몸을 내맡겼다. 깜짝 선물같은 하루의 여유는 에펠탑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불꽃만큼이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나라의 국경일이 나 개인의 새로운 출발을 기념하는 날이 되었다. 어둠이 짙어지고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커지는 만큼 장도에 대한 기대감과 흥분이 섞인 설렘으로 대치되어 가고 있다.

 

아침 일찍 우체국으로 나가 여분의 짐들을 순례자들의 성전聖殿인 첫 도시 베즐레Vézelay로 부치고 나자 홀가분하다. 파리 시민들이 점심을 위해 차양 밑으로 모여드는 시간, 한가해진 메트로에 올랐다.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는 파리시민들이 메트로의 흔들림에 따라 경쾌하게 울리는 방울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는 듯하다. 평일 오후에 업무를 본다는 생자크 형제회 사무실엔 셔터가 내려진 채 아무런 팻말도 보이지 않아 온갖 생각들이 떠올랐다 내려 앉는다. 순례자 카드 발급을 위하여 나뮤르Namur로 직접가지 않고 파리로 날라 왔는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이곳에서 순례자 여권을 받지 못한다면 프랑스의 랭스Reims 시에 있는 성당에 가야 한다. 제대로 찾아오긴 한걸까? 도로이름과 번지수를 거듭 확인하는 동안 내가 줏어 모은 정보들이 벌써부터 모험을 하는 것 같아 두려워진다. 어지러이 주변을 살피다 다시 찾아가자 다행히 셔터가 간판 밑에 매달려 있다. 유리문을 밀고 침침한 안으로 들어가 기웃거리다가 가구와 서류들 사이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 서있는 자그마한 할머니를 찾아냈다. 다급한 내 사정과 달리, 이 나이든 봉사자는 다리를 끌며 좁은 사무실을 쑤석거리더니, 내 이름이 적힌 순례자 여권과 함께 안내책자를 갖고 돌아왔다. 내말을 용케도 알아들은 것 같아 살짝 흥분이 되었다. 마침내 벨기에를 비롯하여 프랑스를 통과하는 모든 마을에서 보호받고 환대 받을 준비가 되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270km 북동쪽에 위치한 벨기에의 도시 나뮤르로 가는 기차는 빠리 북역에서 출발한다. 비상용으로 쓸 전화카드를 사기위해 신문판매대로 다가갔다. 잡지와 복권 진열대 뒤에 파묻혀 있는 가게 주인이 나를 빤히 내려다 보는 눈길이 수상쩍다. ‘혹시나하고 고개를 숙인 순간 눈 앞이 아득하다. 허리춤에 채웠던 벨트지갑이 발 옆에 내려와 있었던 것이다. 현지인과의 첫 대화는 이렇게, 정신 바짝 차리라는 경고성 <몸짓 언어>. 간신히 당혹감을 추스리고 전광판을 올려다 보니 기차는 연착이 되고있다.

 

예상 시간보다 늦어진 일정때문에 선택한 떼제베TGV는 전혀 보탬이 되지 않아 발만 동동 굴렀다. 출발시간 10분전에 플랫폼을 알리는 불이 들어오는 바람에 어정쩡하게 서있다가 허겁지겁 달리기 시작했다. 왜 이다지 부산스럽고 수선스러운 시작인지, 신경이 쓰이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래도 어그러짐 없이 한 발짝을 뗀 것이다. 프랑스 혁명 기념일이 시작의 첫날이 된 것도 그 의미를 따져보면 내 인생에 혁명이 일어나고 있음이 감지된다. 프랑스 국가 권력이 더 이상 성직자와 귀족에 종속되지 않음을 의미하는 혁명이었던 만큼 이제 내 목구멍은 내 뜻과 바람에 종속될 것이며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앞으로 4시간 후면 대장정의 시발점인 벨기에의 작은 도시 나뮤르에 도착할 것이다.

 

2. 독보獨步적 호기심

I. 벨기에 편

(나뮤르-말론뉴-디낭-아스티에 빠 델라-보델레마제오와니 띠에라슈부르쥐 휘델)

1.   나도 한통속이다 - Malonne 16/07

[나뮤르는 뫼즈Meuse강과 상브르Sambre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잡은 도시로, 아르덴 지방의 관문이다. 뫼즈강을 따라 곳곳에 성채가 이어지는데 그 중에서 강 합류점에 지어진 성채가 가장 큰 것으로 카이사르 시대에 군사적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시민 공원으로 야외 극장과 삼림 박물관, 고성 호텔 샤토 드 나뮤르가 있다. 뫼즈 강은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발원하여 벨기에, 네덜란드를 거쳐 북해로 빠져 나가 독일의 라인 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벨기에의 수로는 유람선뿐만 아니라 산업용 화물을 실어 나르는 교통로로서, 안셀므Anseremme와 디낭Dinant 사이는 카약 전용 물길이다.]

 

  들뜬 마음에 일찍 유스호스텔을 나섰다. 푸른 하늘에 하얀 붓 자국이 경쾌하게 보이는 한여름의 햇살은 뼈마디 굳은 유럽의 노인들을 바깥으로 불러내기에 충분하리만치 따갑다. 나뮤르의 외진 정류장 앞에 선 내 어설픔이 마음씨 좋은 다니Dany 할머니의 눈에 띈 모양이다. 시내까지 동행을 한 그녀가 암 광장 Place d’Armes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이거 우리 마을의 상징이야.” 그녀의 검지 손가락은 조셉Joseph 과 프랑소와François 조각상과 함께 있는 달팽이를 가리키고 있다. “에스카르고Escargo(달팽이)” “상징이라는 단어가 목에 걸리고 다시 명치 끝에 걸린다. 여정의 시발점에서 달팽이와의 조우는, 길지만 일관성 있게 꾸준히나아가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듯하다.  이곳에서 시작하는 당위성을 공고히 함과 동시에 준비된 행로라 여겨졌다. 이 길을 가는 내내 듣게 될 질문의 해답을 얻은 셈이니까.

 

생자크 교회 앞에서 나는 아직도 내 길의 안내 표시를 발견하지 못했다. 책에는 분명 붉은 선 하나와 하얀 선 하나가 나란히 표시 되어있는데 말이다. 벌써 내가 주워 모은 지식들이 거세게 도전을 받고 있는 중이다. 나는 처량하게도 그녀를 돌아 보았다. “이걸 따라가면 돼요. 이게 당신의 길을 안내해 줄 거예요.” 교회 모서리에 있는 조가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몇 걸음 걷자 교차로가 나왔다.  그곳의 어느 건물에서 조가비를 찾아야 할지 두리번거리자 , 이번엔 바닥을 봐요. 여기 이 동판 조가비가 당신을 도울 거예요.” 큰 도로에서 연결되는 다리 앞에 이르자 이번엔 조가비 표시 대신 내가 찾던 두줄, 그러니까 장거리 도보여행(이후 *GR로 표시)을 위한 표시가 가로등 기둥과 바닥에 페인트 칠로 되어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드디어 신부의 하얀 장갑을 낀 손을 신랑에게 넘겨주듯 그녀가 내 지팡이를 건넨다.

 

부채 살처럼 퍼진 모양의 조가비 동판은 또 다시 횡단 보도 앞에 있고, 건너가니 잘 건너 왔다 확인해 주는 듯 다시 좌측을 향하여 있다. 작은 상점들이 들어선 골목 중앙에 채소시장이 열리는 곳을 지나며, 바닥을 살피랴 동네 구경하랴 두 눈이 바빠졌다. 도로 중간에 놓여있는 차량 밑에 표시가 숨어 있지 않을까 조바심을 치고, 진기한 물건들이 놓인 진열대에 눈이 팔려 조가비를 놓칠까 긴장이 되었다. 첫 번째 골목이 나온 곳에서 방향을 제시해 줄 조가비를 찾지 못해 눈이 세모꼴이 되어 두리번거리다 직진 방향으로 조금 멀리에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제 시야를 멀리 두고 걸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익히는 중이다.

 

오전 내내 헤맨 끝에 만났던 작은 연못 앞. 쓰레기가 넘쳐나는 큰 휴지통이 놓인 벤치 옆에 앉아 점심을 풀었다. <기쁨과 나눔의 순례자들을 위하여>라 쓰인 팻말을 어렵사리 읽어내고는, ‘! 글귀 하나가 큰 힘이 되고 말없는 응원이 되는 길임을 알았다. 내것을 얹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중얼거렸다.‘나도 이제 한통속이다.’

 

첫 걸음을 뗀 후, 길 위에 마련되어 있는 표시를 찾아내고 대화하는 법을 익히느라 도상거리로 17km 전진하는 동안 그 절반에 해당되는 거리는 나의 서투름과 서두름을 인정하는데 모두 소비하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내 신념의 무게에 성난 어깨와 등판, 내 의지에 아우성 치는 무릎관절 그리고 때를 알리는 생물학적 신호에 반응하는 민망한 코 때문에 담장 너머 탐스럽게 매달린 체리를 지나는 것은 정말 고역이다.

 

말론느Malonne의 성 클라라수녀원Monastère des Clarisses의 육중한 문 앞에 낯섦과 두려움의 배낭을 내려놓았다. 깊은 숨으로 초인종을 누르고 마른 침을 삼켰다. “저어 순례자인데..해맑은 수녀님을 따라 정원이 내려다 보이는 방으로 인도되었다. 저녁 식탁에 올라온 정수는 알코올 함유 1.2도의 순하고 착한 맥주 피에뵈프Piedboeuf! '수도원의 음료수는 포도주 아니었던가?' 기울어진 내 지식이 바로잡히는 순간이다. 포도가 아닌 보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대표적 식량이고 보면 풍부한 식이섬유로 보리빵의 기적을 상기하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식사를 마친 뒤 9분의 수녀님들이 드리는 조촐한 저녁미사에 초대되었다. 공동체의 조용한 움직임 속에서 온종일 마음에 떠올랐던 의문들을 내려 놓았다. 첫날밤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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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입니다. 2012-02-04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로만 들었던 그 도보여행을 하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언젠가는 저도 사랑하는 여인과 꼭 걷고 싶습니다. 첫 문장부터 독자를 압도하는 여행기입니다. “이 무게는 혼자이기에 허물어지기 쉬울 신념의 무게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실체라 가벼이 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있다.”문장의 공력功力에 쓰러졌습니다. 완결된 글이 아니고, 전체 글의 서두로 본다면, 다르게 가감할 것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숙제이고 의무이기에 몇 가지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첫째, 글 전체의 시점이 과거와 현재를 오락가락하고 있어서, 읽는 데 걸립니다. 글의 시점을 모두 과거로 쓰고, 강조하시고 싶은 부분만 현재 시점을 사용한다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첫 부분에 기대가 너무 높아져서 그런지, 벨기에 편 첫 문장은 너무 힘이 없습니다. ‘들뜬 마음에 일찍 유스호스텔을 나섰다’ 이 문장을 빼고, 다음 문장을 수정해서 바로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셋째, 좀 더 작품성을 올리기 위해서는 [풍경과 상처]처럼 특정한 테마나 주제와 여행지를 일치시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124일간의 여행기를 지금처럼 한정된 단어로만 힘주어 쓴다면, 독자들이 다 읽기 전에 쓰러질 것 같아서 걱정됩니다.

bytheway 2012-02-06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례자 여행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설명을 해주시면 파악이 쉬울것 같아요.
물리적이고 구체적인 느낌이 들지 않고, 추상적인 느낌입니다.
몸이 걸어서 여행하는 느낌이 아니라, 정신이 유체이탈해서 여행하는 느낌.
제가 상상력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글이 추상적인 느낌이라서,
여행기에서 으레 느껴지곤 하는 낯선 곳을 걷는느낌이 없어서 아쉽네요.

여행기가 아니라 교과서나 철학개론의 문체로 읽혀요.
어려운 단어를 쓴게 아닌데도, 쉽게 읽히지 않습니다.

빵가게재습격 2012-02-1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시실리님. 김훈의 문장을 떠올리게 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단어를 선택할 때 무척 고심하시는 편이 아닐까, 표현 하나하나에 무척이나 세심하게 신경쓰시는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푸른 하늘에 하얀 붓 자국이 경쾌하게 보이는 한여름의 햇살은 뼈마디 굳은 유럽의 노인들을 바깥으로 불러내기에 충분하리만치 따갑다.' 같은 문장은 문학적 수사로 치환해도 좋을만큼 빼어난 표현 아닐까요?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한 글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제가 좀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문장이란 상황과 풍경에 '적합'해야지 상황과 풍경보다 지나치게 무겁거나, 증폭되어 표현되면 문장이 나타내려는 상황과 풍경을 상실하게 됩니다. 가령 100미터 달리기를 했다가 쓰러졌던 운동회의 어느 에피소드를 표현하면서 " 뜀박질의 그 숨가쁜 반복속에서 나는 그만 삶의 페이스를 잃은 것처럼 미끌어지고 말았다. 땅에 스치는 적의에 가득찬 돌멩이들은 내 무릎에 깊은 상처를 아리게 하였다. 뒹굴어 쓰러진 나는 삶의 패배자처럼 굴렀고, 손바닥에까지 그 상흔을 남기고야 말았다. 다시 일어나 뛰기까지 나는 영원처럼 긴 시간을 찰나로 느끼고 있었다." 같은 표현을 쓴다면 운동장에서 쓰러졌던 평범한 에피소드가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의 진한 패배의 몸짓'으로 치환되고 맙니다. 요컨데, 이 문장이 '100미터 달리기의 평범한 풍경'을 묘사하는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문장은 풍경에 '적합'해야지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는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시실리님의 문장 몇 가지를 비슷한 사례로 들어보고 싶은데요. 가령 첫 문단의 첫 줄, '이 무게는 혼자이기에 허물어지기 쉬울 신념의 무게를 확인 할 수 있는 유일한 실체라 가벼이 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있다.' 인데요. 제 생각에 이 문장이 표현하려는 것은, 배낭무게가 무척 가벼운데 이 가벼운 무게는 나의 신념을 확인시켜주는 무게이므로 오히려 무겁다. 정도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요컨데, '배낭의 가벼운 무게가 오히려 무겁게 느껴졌다' 정도의 이야기입니다. 또 하나, 비상용으로 쓸 전화카드를 사기위해 잡지와 복권 진열대에 갔다가 벨트지갑이 헐거워져 흘러내린 것, 그리고 가판대의 아저씨가 그것을 쳐다본 것을 표현하기 위해 필자가 선택한 문장은 이렇습니다. '혹시나 하고 고개를 숙인 순간 눈 앞에 아득하다. 현지인과의 첫 대화는 이렇게, 정신 바짝 차리라는 경고성 <몸짓 언어>.' 풍경과 경중에 비해 문장이 너무 앞서가고 무거워져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네요. 그 부분이 아쉽습니다. 이상입니다.^^

리얼리티 2012-02-11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여기저기서 편집자 냄새가 납니다. 아마도 출판사에 다닌다고 소개하신 분 중 한 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외래어 옆에 붙어 있는 원어 병기가 예사롭지 않아서인데요. 제 추측이 맞는지요? ^^
물론 뛰어난 문장력도 편집자로 의심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모든 편집자가 문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요..)
그런데 글에 비문이 없고, 매끄러운데도 잘 읽혀 내려가지지가 않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여행기에 기대하는 재미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을 조금만 빼고, 활기를 넣으면 더 재미있는 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위에 bytheway님과 빵가게재습격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어쩌면 이런 평은 호오나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꽃별이 2012-02-12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변 사물에서 마음의 표징을 잘 읽어내시는 분이신 것 같습니다(저도 표징 발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달팽이와의 만남 부분이 재미있었습니다. 님의 묵묵한 여행길이 마음에 선명하게 그려지긴 하지만, 그 너머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달보다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게 되는 것과 같은, 님의 발자국에 눈이 머뭅니다...^^

보거스 2012-02-13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현력이 매우 풍부하신 분이 쓰신 글인 것 같네요.
구체적인 상황 묘사가 있어서, 마치 함께 여행을 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같이 간 분의 마음은 잘 보이지 않아서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과 동행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상황을 함께 공유하고는 있지만 마음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는 기분이랄까요.
조금 더 어깨에 힘을 빼고, 그때 그 순간의 마음에 대해 좀더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돌이 2012-02-14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좌충우돌 '순례자의 길' 도보여행기. 혁명을 선언하듯, 혹은 화두를 던지듯 강렬한 제목과 울림이 큰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셨군요. 여행에서 느껴지는 감흥과 소소한 에피소드를 적절하게 묶어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잘 풀어내신 것 같습니다. 문학적 상상력도 풍부하네요. 이 글에서는 파리-베즐레-나뮤르로 이어지는 여정만 읽을 수 있어 아쉬움이 큽니다. 이후에 벌어질 일들이 훨씬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저는 이 글을 죽 내리읽을 수 없었습니다. 도표나 숫자가 많은 통계자료도 아니고, 그렇다고 심오한 내용을 담은 철학책도 아닌데 말이지요. 그 이유를 나름 차분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차치하고라도, 주술관계나 조사의 쓰임이 많이 어색하고 투박하네요. 마치 번역서를 읽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비문이 아닐까, 다시 읽게 되는 문장도 제법 보입니다. 덧붙여 '기쁨과 나눔의 순례자들을 위'한 여행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산티아고 길이라는 내용와 전체적인 루트, 그리고 조가비가 왜 심볼로 쓰이는지에 대한 정보가 누락된 것 같습니다. 단순하지만 꼭 필요한 내용이라고 봅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자꾸 검색하게 되더군요.

바다 2012-02-14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낯선 외국땅에 도보 순례여행이라 대단하시네요. 글을 봐서는 일행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장기간에 걸친 도보여행을 떠난 계기를 듣고 싶네요. 그리고, 저는 프랑스 플럼블리지나 미얀마 파옥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요. 이 글을 통해 구체적으로 여행계획을 세워 나중에 꼭 가보려고 합니다.

글을 읽고 저도 쉽게 읽혀지지가 않았습니다. 글에 수사가 많아서 좀 더 쉬운 문체로 쓰셨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혁명 기념일이 시작의 첫날이 된 것도 그 의미를 따져보면 내 인생에 혁명이 일어나고 있음이 감지된다. 프랑스 국가 권력이 더 이상 성직자와 귀족에 종속되지 않음을 의미하는 혁명이었던 만큼 이제 내 목구멍은 내 뜻과 바람에 종속될 것이며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앞으로 4시간 후면 대장정의 시발점인 벨기에의 작은 도시 나뮤르에 도착할 것이다.]
내 인생의 혁명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리고 내 목구멍은 내 뜻과 바람에 종속될 것이란 말은 무슨 말인지 의미가 와 닿지 않네요. 이 부분에서 고개가 갸우뚱해지더라구요.

그리고 프랑스를 경유해 벨기에로 가셨는데요, 이제 막 이야기의 시작인 것 같아 기대감에 읽다가 보니 끝이여서 뒷 얘기가 무척 궁금합니다. 예고편만 본 느낌이 들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