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124일간의 도보여행을 토대로 작성된 글입니다. 그 중에서 도보 여행의 첫날과 둘째날에 해당됩니다.

도입부 부분이 없기도 할 뿐더러 미욱한 제글을 읽으시려면 상상력을 최대한 키우셔야 할텐데...저와 함께

여행을 떠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구멍난 부분들에 대한 질책과 질문들  댓글로 많이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1.1            내 인생의 혁명

배낭을 지고 길로 나서면 비로서 여정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이 무게는 혼자이기에 허물어지기 쉬울 신념의 무게를 확인 할 수 있는 유일한 실체라 가벼이 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있다. 몸처럼 소중한 배낭은 그렇게 내 등에 착 달라 붙은 일체감으로, 존재를 일깨우기 위해 나는 배낭에 방울까지 매달아 놓았다. “, 여기 있어요.” 누군가 손을 대면 싫어요.”라고 당당히 소리칠 수 있도록! 그렇게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7 14, 파리 시내는 프랑스 혁명 기념일을 축하하러 나온 인파와 퍼레이드로 술렁인다. 대부분의 행정적인 업무가 손을 놓아, 생자크 형제회 사무실로 직행하려던 계획은 무산 되어 버렸다. 대신 수많은 사람들 속에 끼어서 그들의 흥분과 열정에 몸을 내맡겼다. 깜짝 선물같은 하루의 여유는 에펠탑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불꽃만큼이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나라의 국경일이 나 개인의 새로운 출발을 기념하는 날이 되었다. 어둠이 짙어지고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커지는 만큼 장도에 대한 기대감과 흥분이 섞인 설렘으로 대치되어 가고 있다.

 

아침 일찍 우체국으로 나가 여분의 짐들을 순례자들의 성전聖殿인 첫 도시 베즐레Vézelay로 부치고 나자 홀가분하다. 파리 시민들이 점심을 위해 차양 밑으로 모여드는 시간, 한가해진 메트로에 올랐다.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는 파리시민들이 메트로의 흔들림에 따라 경쾌하게 울리는 방울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는 듯하다. 평일 오후에 업무를 본다는 생자크 형제회 사무실엔 셔터가 내려진 채 아무런 팻말도 보이지 않아 온갖 생각들이 떠올랐다 내려 앉는다. 순례자 카드 발급을 위하여 나뮤르Namur로 직접가지 않고 파리로 날라 왔는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이곳에서 순례자 여권을 받지 못한다면 프랑스의 랭스Reims 시에 있는 성당에 가야 한다. 제대로 찾아오긴 한걸까? 도로이름과 번지수를 거듭 확인하는 동안 내가 줏어 모은 정보들이 벌써부터 모험을 하는 것 같아 두려워진다. 어지러이 주변을 살피다 다시 찾아가자 다행히 셔터가 간판 밑에 매달려 있다. 유리문을 밀고 침침한 안으로 들어가 기웃거리다가 가구와 서류들 사이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 서있는 자그마한 할머니를 찾아냈다. 다급한 내 사정과 달리, 이 나이든 봉사자는 다리를 끌며 좁은 사무실을 쑤석거리더니, 내 이름이 적힌 순례자 여권과 함께 안내책자를 갖고 돌아왔다. 내말을 용케도 알아들은 것 같아 살짝 흥분이 되었다. 마침내 벨기에를 비롯하여 프랑스를 통과하는 모든 마을에서 보호받고 환대 받을 준비가 되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270km 북동쪽에 위치한 벨기에의 도시 나뮤르로 가는 기차는 빠리 북역에서 출발한다. 비상용으로 쓸 전화카드를 사기위해 신문판매대로 다가갔다. 잡지와 복권 진열대 뒤에 파묻혀 있는 가게 주인이 나를 빤히 내려다 보는 눈길이 수상쩍다. ‘혹시나하고 고개를 숙인 순간 눈 앞이 아득하다. 허리춤에 채웠던 벨트지갑이 발 옆에 내려와 있었던 것이다. 현지인과의 첫 대화는 이렇게, 정신 바짝 차리라는 경고성 <몸짓 언어>. 간신히 당혹감을 추스리고 전광판을 올려다 보니 기차는 연착이 되고있다.

 

예상 시간보다 늦어진 일정때문에 선택한 떼제베TGV는 전혀 보탬이 되지 않아 발만 동동 굴렀다. 출발시간 10분전에 플랫폼을 알리는 불이 들어오는 바람에 어정쩡하게 서있다가 허겁지겁 달리기 시작했다. 왜 이다지 부산스럽고 수선스러운 시작인지, 신경이 쓰이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래도 어그러짐 없이 한 발짝을 뗀 것이다. 프랑스 혁명 기념일이 시작의 첫날이 된 것도 그 의미를 따져보면 내 인생에 혁명이 일어나고 있음이 감지된다. 프랑스 국가 권력이 더 이상 성직자와 귀족에 종속되지 않음을 의미하는 혁명이었던 만큼 이제 내 목구멍은 내 뜻과 바람에 종속될 것이며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앞으로 4시간 후면 대장정의 시발점인 벨기에의 작은 도시 나뮤르에 도착할 것이다.

 

2. 독보獨步적 호기심

I. 벨기에 편

(나뮤르-말론뉴-디낭-아스티에 빠 델라-보델레마제오와니 띠에라슈부르쥐 휘델)

1.   나도 한통속이다 - Malonne 16/07

[나뮤르는 뫼즈Meuse강과 상브르Sambre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잡은 도시로, 아르덴 지방의 관문이다. 뫼즈강을 따라 곳곳에 성채가 이어지는데 그 중에서 강 합류점에 지어진 성채가 가장 큰 것으로 카이사르 시대에 군사적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시민 공원으로 야외 극장과 삼림 박물관, 고성 호텔 샤토 드 나뮤르가 있다. 뫼즈 강은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발원하여 벨기에, 네덜란드를 거쳐 북해로 빠져 나가 독일의 라인 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벨기에의 수로는 유람선뿐만 아니라 산업용 화물을 실어 나르는 교통로로서, 안셀므Anseremme와 디낭Dinant 사이는 카약 전용 물길이다.]

 

  들뜬 마음에 일찍 유스호스텔을 나섰다. 푸른 하늘에 하얀 붓 자국이 경쾌하게 보이는 한여름의 햇살은 뼈마디 굳은 유럽의 노인들을 바깥으로 불러내기에 충분하리만치 따갑다. 나뮤르의 외진 정류장 앞에 선 내 어설픔이 마음씨 좋은 다니Dany 할머니의 눈에 띈 모양이다. 시내까지 동행을 한 그녀가 암 광장 Place d’Armes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이거 우리 마을의 상징이야.” 그녀의 검지 손가락은 조셉Joseph 과 프랑소와François 조각상과 함께 있는 달팽이를 가리키고 있다. “에스카르고Escargo(달팽이)” “상징이라는 단어가 목에 걸리고 다시 명치 끝에 걸린다. 여정의 시발점에서 달팽이와의 조우는, 길지만 일관성 있게 꾸준히나아가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듯하다.  이곳에서 시작하는 당위성을 공고히 함과 동시에 준비된 행로라 여겨졌다. 이 길을 가는 내내 듣게 될 질문의 해답을 얻은 셈이니까.

 

생자크 교회 앞에서 나는 아직도 내 길의 안내 표시를 발견하지 못했다. 책에는 분명 붉은 선 하나와 하얀 선 하나가 나란히 표시 되어있는데 말이다. 벌써 내가 주워 모은 지식들이 거세게 도전을 받고 있는 중이다. 나는 처량하게도 그녀를 돌아 보았다. “이걸 따라가면 돼요. 이게 당신의 길을 안내해 줄 거예요.” 교회 모서리에 있는 조가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몇 걸음 걷자 교차로가 나왔다.  그곳의 어느 건물에서 조가비를 찾아야 할지 두리번거리자 , 이번엔 바닥을 봐요. 여기 이 동판 조가비가 당신을 도울 거예요.” 큰 도로에서 연결되는 다리 앞에 이르자 이번엔 조가비 표시 대신 내가 찾던 두줄, 그러니까 장거리 도보여행(이후 *GR로 표시)을 위한 표시가 가로등 기둥과 바닥에 페인트 칠로 되어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드디어 신부의 하얀 장갑을 낀 손을 신랑에게 넘겨주듯 그녀가 내 지팡이를 건넨다.

 

부채 살처럼 퍼진 모양의 조가비 동판은 또 다시 횡단 보도 앞에 있고, 건너가니 잘 건너 왔다 확인해 주는 듯 다시 좌측을 향하여 있다. 작은 상점들이 들어선 골목 중앙에 채소시장이 열리는 곳을 지나며, 바닥을 살피랴 동네 구경하랴 두 눈이 바빠졌다. 도로 중간에 놓여있는 차량 밑에 표시가 숨어 있지 않을까 조바심을 치고, 진기한 물건들이 놓인 진열대에 눈이 팔려 조가비를 놓칠까 긴장이 되었다. 첫 번째 골목이 나온 곳에서 방향을 제시해 줄 조가비를 찾지 못해 눈이 세모꼴이 되어 두리번거리다 직진 방향으로 조금 멀리에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제 시야를 멀리 두고 걸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익히는 중이다.

 

오전 내내 헤맨 끝에 만났던 작은 연못 앞. 쓰레기가 넘쳐나는 큰 휴지통이 놓인 벤치 옆에 앉아 점심을 풀었다. <기쁨과 나눔의 순례자들을 위하여>라 쓰인 팻말을 어렵사리 읽어내고는, ‘! 글귀 하나가 큰 힘이 되고 말없는 응원이 되는 길임을 알았다. 내것을 얹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중얼거렸다.‘나도 이제 한통속이다.’

 

첫 걸음을 뗀 후, 길 위에 마련되어 있는 표시를 찾아내고 대화하는 법을 익히느라 도상거리로 17km 전진하는 동안 그 절반에 해당되는 거리는 나의 서투름과 서두름을 인정하는데 모두 소비하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내 신념의 무게에 성난 어깨와 등판, 내 의지에 아우성 치는 무릎관절 그리고 때를 알리는 생물학적 신호에 반응하는 민망한 코 때문에 담장 너머 탐스럽게 매달린 체리를 지나는 것은 정말 고역이다.

 

말론느Malonne의 성 클라라수녀원Monastère des Clarisses의 육중한 문 앞에 낯섦과 두려움의 배낭을 내려놓았다. 깊은 숨으로 초인종을 누르고 마른 침을 삼켰다. “저어 순례자인데..해맑은 수녀님을 따라 정원이 내려다 보이는 방으로 인도되었다. 저녁 식탁에 올라온 정수는 알코올 함유 1.2도의 순하고 착한 맥주 피에뵈프Piedboeuf! '수도원의 음료수는 포도주 아니었던가?' 기울어진 내 지식이 바로잡히는 순간이다. 포도가 아닌 보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대표적 식량이고 보면 풍부한 식이섬유로 보리빵의 기적을 상기하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식사를 마친 뒤 9분의 수녀님들이 드리는 조촐한 저녁미사에 초대되었다. 공동체의 조용한 움직임 속에서 온종일 마음에 떠올랐던 의문들을 내려 놓았다. 첫날밤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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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입니다. 2012-02-04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로만 들었던 그 도보여행을 하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언젠가는 저도 사랑하는 여인과 꼭 걷고 싶습니다. 첫 문장부터 독자를 압도하는 여행기입니다. “이 무게는 혼자이기에 허물어지기 쉬울 신념의 무게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실체라 가벼이 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있다.”문장의 공력功力에 쓰러졌습니다. 완결된 글이 아니고, 전체 글의 서두로 본다면, 다르게 가감할 것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숙제이고 의무이기에 몇 가지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첫째, 글 전체의 시점이 과거와 현재를 오락가락하고 있어서, 읽는 데 걸립니다. 글의 시점을 모두 과거로 쓰고, 강조하시고 싶은 부분만 현재 시점을 사용한다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첫 부분에 기대가 너무 높아져서 그런지, 벨기에 편 첫 문장은 너무 힘이 없습니다. ‘들뜬 마음에 일찍 유스호스텔을 나섰다’ 이 문장을 빼고, 다음 문장을 수정해서 바로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셋째, 좀 더 작품성을 올리기 위해서는 [풍경과 상처]처럼 특정한 테마나 주제와 여행지를 일치시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124일간의 여행기를 지금처럼 한정된 단어로만 힘주어 쓴다면, 독자들이 다 읽기 전에 쓰러질 것 같아서 걱정됩니다.

bytheway 2012-02-06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례자 여행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설명을 해주시면 파악이 쉬울것 같아요.
물리적이고 구체적인 느낌이 들지 않고, 추상적인 느낌입니다.
몸이 걸어서 여행하는 느낌이 아니라, 정신이 유체이탈해서 여행하는 느낌.
제가 상상력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글이 추상적인 느낌이라서,
여행기에서 으레 느껴지곤 하는 낯선 곳을 걷는느낌이 없어서 아쉽네요.

여행기가 아니라 교과서나 철학개론의 문체로 읽혀요.
어려운 단어를 쓴게 아닌데도, 쉽게 읽히지 않습니다.

빵가게재습격 2012-02-1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시실리님. 김훈의 문장을 떠올리게 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단어를 선택할 때 무척 고심하시는 편이 아닐까, 표현 하나하나에 무척이나 세심하게 신경쓰시는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푸른 하늘에 하얀 붓 자국이 경쾌하게 보이는 한여름의 햇살은 뼈마디 굳은 유럽의 노인들을 바깥으로 불러내기에 충분하리만치 따갑다.' 같은 문장은 문학적 수사로 치환해도 좋을만큼 빼어난 표현 아닐까요?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한 글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제가 좀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문장이란 상황과 풍경에 '적합'해야지 상황과 풍경보다 지나치게 무겁거나, 증폭되어 표현되면 문장이 나타내려는 상황과 풍경을 상실하게 됩니다. 가령 100미터 달리기를 했다가 쓰러졌던 운동회의 어느 에피소드를 표현하면서 " 뜀박질의 그 숨가쁜 반복속에서 나는 그만 삶의 페이스를 잃은 것처럼 미끌어지고 말았다. 땅에 스치는 적의에 가득찬 돌멩이들은 내 무릎에 깊은 상처를 아리게 하였다. 뒹굴어 쓰러진 나는 삶의 패배자처럼 굴렀고, 손바닥에까지 그 상흔을 남기고야 말았다. 다시 일어나 뛰기까지 나는 영원처럼 긴 시간을 찰나로 느끼고 있었다." 같은 표현을 쓴다면 운동장에서 쓰러졌던 평범한 에피소드가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의 진한 패배의 몸짓'으로 치환되고 맙니다. 요컨데, 이 문장이 '100미터 달리기의 평범한 풍경'을 묘사하는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문장은 풍경에 '적합'해야지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는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시실리님의 문장 몇 가지를 비슷한 사례로 들어보고 싶은데요. 가령 첫 문단의 첫 줄, '이 무게는 혼자이기에 허물어지기 쉬울 신념의 무게를 확인 할 수 있는 유일한 실체라 가벼이 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있다.' 인데요. 제 생각에 이 문장이 표현하려는 것은, 배낭무게가 무척 가벼운데 이 가벼운 무게는 나의 신념을 확인시켜주는 무게이므로 오히려 무겁다. 정도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요컨데, '배낭의 가벼운 무게가 오히려 무겁게 느껴졌다' 정도의 이야기입니다. 또 하나, 비상용으로 쓸 전화카드를 사기위해 잡지와 복권 진열대에 갔다가 벨트지갑이 헐거워져 흘러내린 것, 그리고 가판대의 아저씨가 그것을 쳐다본 것을 표현하기 위해 필자가 선택한 문장은 이렇습니다. '혹시나 하고 고개를 숙인 순간 눈 앞에 아득하다. 현지인과의 첫 대화는 이렇게, 정신 바짝 차리라는 경고성 <몸짓 언어>.' 풍경과 경중에 비해 문장이 너무 앞서가고 무거워져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네요. 그 부분이 아쉽습니다. 이상입니다.^^

리얼리티 2012-02-11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여기저기서 편집자 냄새가 납니다. 아마도 출판사에 다닌다고 소개하신 분 중 한 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외래어 옆에 붙어 있는 원어 병기가 예사롭지 않아서인데요. 제 추측이 맞는지요? ^^
물론 뛰어난 문장력도 편집자로 의심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모든 편집자가 문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요..)
그런데 글에 비문이 없고, 매끄러운데도 잘 읽혀 내려가지지가 않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여행기에 기대하는 재미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을 조금만 빼고, 활기를 넣으면 더 재미있는 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위에 bytheway님과 빵가게재습격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어쩌면 이런 평은 호오나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꽃별이 2012-02-12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변 사물에서 마음의 표징을 잘 읽어내시는 분이신 것 같습니다(저도 표징 발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달팽이와의 만남 부분이 재미있었습니다. 님의 묵묵한 여행길이 마음에 선명하게 그려지긴 하지만, 그 너머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달보다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게 되는 것과 같은, 님의 발자국에 눈이 머뭅니다...^^

보거스 2012-02-13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현력이 매우 풍부하신 분이 쓰신 글인 것 같네요.
구체적인 상황 묘사가 있어서, 마치 함께 여행을 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같이 간 분의 마음은 잘 보이지 않아서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과 동행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상황을 함께 공유하고는 있지만 마음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는 기분이랄까요.
조금 더 어깨에 힘을 빼고, 그때 그 순간의 마음에 대해 좀더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돌이 2012-02-14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좌충우돌 '순례자의 길' 도보여행기. 혁명을 선언하듯, 혹은 화두를 던지듯 강렬한 제목과 울림이 큰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셨군요. 여행에서 느껴지는 감흥과 소소한 에피소드를 적절하게 묶어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잘 풀어내신 것 같습니다. 문학적 상상력도 풍부하네요. 이 글에서는 파리-베즐레-나뮤르로 이어지는 여정만 읽을 수 있어 아쉬움이 큽니다. 이후에 벌어질 일들이 훨씬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저는 이 글을 죽 내리읽을 수 없었습니다. 도표나 숫자가 많은 통계자료도 아니고, 그렇다고 심오한 내용을 담은 철학책도 아닌데 말이지요. 그 이유를 나름 차분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차치하고라도, 주술관계나 조사의 쓰임이 많이 어색하고 투박하네요. 마치 번역서를 읽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비문이 아닐까, 다시 읽게 되는 문장도 제법 보입니다. 덧붙여 '기쁨과 나눔의 순례자들을 위'한 여행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산티아고 길이라는 내용와 전체적인 루트, 그리고 조가비가 왜 심볼로 쓰이는지에 대한 정보가 누락된 것 같습니다. 단순하지만 꼭 필요한 내용이라고 봅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자꾸 검색하게 되더군요.

바다 2012-02-14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낯선 외국땅에 도보 순례여행이라 대단하시네요. 글을 봐서는 일행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장기간에 걸친 도보여행을 떠난 계기를 듣고 싶네요. 그리고, 저는 프랑스 플럼블리지나 미얀마 파옥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요. 이 글을 통해 구체적으로 여행계획을 세워 나중에 꼭 가보려고 합니다.

글을 읽고 저도 쉽게 읽혀지지가 않았습니다. 글에 수사가 많아서 좀 더 쉬운 문체로 쓰셨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혁명 기념일이 시작의 첫날이 된 것도 그 의미를 따져보면 내 인생에 혁명이 일어나고 있음이 감지된다. 프랑스 국가 권력이 더 이상 성직자와 귀족에 종속되지 않음을 의미하는 혁명이었던 만큼 이제 내 목구멍은 내 뜻과 바람에 종속될 것이며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앞으로 4시간 후면 대장정의 시발점인 벨기에의 작은 도시 나뮤르에 도착할 것이다.]
내 인생의 혁명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리고 내 목구멍은 내 뜻과 바람에 종속될 것이란 말은 무슨 말인지 의미가 와 닿지 않네요. 이 부분에서 고개가 갸우뚱해지더라구요.

그리고 프랑스를 경유해 벨기에로 가셨는데요, 이제 막 이야기의 시작인 것 같아 기대감에 읽다가 보니 끝이여서 뒷 얘기가 무척 궁금합니다. 예고편만 본 느낌이 들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