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빛 - Lights In The Du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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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몰 경비원 코이스티넨을 바라보는 부정적 사회적 시선에서 출발한다. 어떤 연민이나 따스스함은 서늘한 헬싱키란 도시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밤에 불빛이 듬성듬성 켜진 도시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차갑다. 야간 경비 근무를 하고 고급 식당에 어울리지 않은 작업복을 입고 보드카 한 잔을 위로삼아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혼자서 묵묵히 견딘다.   

그런 그에게 저녁을 함께 먹자고 하는 여인이 나타난다. 코이스티넨은 봄날에 피는 꽃처럼 마음이 살랑이지만 봄날의 꽃 만큼 덧없는 게 세상에 또 있을까. 여인의 목적은 그가 근무 중에 지닌 보석상 열쇠였다. 흥미로운 건 그 이후다. 코이스티넨은 여자가 자신을 이용했다는 걸 알고도 변명이나 항소할 의지가 없다. 그는 결국 1년이 넘는 수감생활을 하는 걸 선택한다. 어떤 말도 하지 않는데서 자존심을 지키려는 굳은 의지가 엿보인다. 그가 어떤 말을 해도 결과는 같았을지 모른다. 법정에서 그는 이미 공범자로 분류된 채 재판을 받았다. 그의 결백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다. 무죄를 증명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생리적으로 알았을지도 모른다.  

감옥에서 나온 후에 접시닦기를 하지만 그의 죄를 안 주인은 그를 해고한다. 상황에 대한 고려나 참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보석을 훔쳤던 절도범이고 감옥에 갔다왔다는 사실만이 그를 따라다닌다. 그는 어떤 절망이나 희망도 내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가 황혼의 빛이에서 '빛'을 찾으려했지만 난 빛을 찾을 수 없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을 암시하는 데, 그를 이해라고 그에게 다가가려는 유일한 여인(핫도그 매점을 운영하는) 이 그의 마지막 숨결을 들여다보지만 코이스티넨은 이 여인의 관용과 이해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적 드문 바닷가에서 피 흘리며 조용히 눈을 감는 코이스티넨은 죽음으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고 한다. 가진 게 없는 사람, 혹은 비주류에 속한 사람에게 자존심이란 모든 것이다.  

미국영화라면 아마 자신의 억울함을 해결하려고 복수를 하는 과정을 영화로 만들었을 것이다. 복수 과정에서 그는 악에 응징하는 영웅이 되거나 광인이 되거나. 그러나 이 영화는 핀란드 영화다. 고결한 한 영혼의 터무니없는 죽음을 그리면서 이래도 이 사람이 잘못했니, 하고 묻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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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그림자 - Shadows in Parad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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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감정표현이 풍부한 사람이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 강도가 충격적이지 않다. 그러나 평소에 무뚝뚝하고 무미건조한 사람이 어떤 사람으로 인해 안 하던 일을 하면 사람들은 놀란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이 후자에 속하는 인물이다. 쓰레기 수거 트럭 운전수이고 늘 같은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 주어진 일에 성실하고 취미로 영어회화를 배우는 모범 소시민이다. 

베인 팔에서 피가 흘러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남자한테 따뜻하게 관심을 보여준 여자를 만난다. 남자는 허둥대고 양복도 입고 식사도 설레며 준비한다.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선뜻 받아주지 않아 핀란드식으로 방황(?)을 하고 결국 여자가 남자의 마음을 받아주는 평범한 이야기지만 표현방식이 평범하지 않다. 

등장인물들의 무표정 뒤에 음악들은 유연하게 흐른다. 대사 역시 단촐한데 일상적이다. 근데 이게 아주 웃음을 만든다. 주절거리지 않으면서 툭툭 던지는 인물들의 간결한 한 마디가 상황을 함축한다. 게다가 인물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 더 웃음을 촉진한다. 일부러 상활을 설정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유머를 끌어내는 게 이 영화의 커다란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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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스피치 - The King's Spe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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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간의 사랑이나 연애를 다룬 영화보다는 우정을 다룬 영화가 나는 더 좋다. 로맨틱 코미디는 세대를 초월한 공식을 가지고 있다. 남녀간에 사랑이 애틋하기 위해서는 장애물이 있고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을 영화는 주로 담고 결론은 선남선녀들의 해피엔딩이다. 실제 인생은 해피엔딩도 아니며 극적이지도 않다. 실제 연인들 사이에 놓인 장애물은 알콩달콩한 재미를 선사하는 대상이 아니라 영혼을 좀 먹는 실체다. 뭐 이렇게 말하지만 정말 큰 이유는, 내 삶이 알콩달콩한 연애 따위와는 거리가 먼 탓이다. 언제부터인가는 연애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상상력마져도 증발해서 연애사를 담은 영화를 보면 내가 왜 이런 공허한 화면을 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_-;
 

하지만 우정은 다르다. 친구들과 가끔 십 년후, 혹은 더 미래를 상상하면서 우리는 계속 이렇게 살 것 같다고 말하곤한다. 이따금씩 영화 보고 책 읽고,  가끔 여행가고, 일은 힘 닿을 때까지 하면 좋고....엄마, 아빠가 곁에 없을 먼 미래(사실 상상이 되진 않는다-.-)에 가족처럼 남아있을 몇 사람은 친구다. 그래서 우정을 다룬 영화를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곤한다. 누구나 단점이 있지만 단점이 아니라 장점을 봐 주고 등을 두드려주는 이가 친구라고 생각하기에. 

아카데미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들 대부분은 사실 진부하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휴머니즘을 갖고 있다. 이 영화 역시 런닝 타임 내내 지루했지만 마지막 연설을 하는 과정을 담은 몇 분만이 살아있는 씬이다. 조지6세가 핸디캡을 극복하고 라이오넬 로그한테 my friend, 하고 말할 때 주책맞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조지6세의 핸디캡이 평생 좋은 친구를 얻는 기회가 됐다. 처음에 왕 서열 넘버 원과 치료사가 만난다. 치료사가 계급을 무시한 채 왕 서열 넘버원에게 친구와 동급으로 대하고 사생활까지 누설하라고 하는데, 왕 서열 넘버원은 낯설어하다 위기를 함께 겪고 티격태격하면서 정이 들고 진짜 친구가 되어간다. 

그러고보면 이성간의 사랑이든 우정이든 티격태격은 필수요소이다. 사랑이나 우정이 금이 가는 건 티격태격이란 필수요소을 잘 못 넘겼을 때인데 관계에서 장애를 극복하는데 믿음은 훌륭한 방패다. 상대가 어떤 상처주는 말을해도 믿음이란 방패를 가지면 창 같은 말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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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1-04-05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국식 농담과 브리티시 잉글리쉬를 오래만에 들으면서 즐거웠던 영화였어요. 아무도 웃는 사람이 없어 저혼자 웃기가 민망했지만 말이에요.
 
이노센트 - The Inno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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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소재도 우리나라 드라마 단골 메뉴다. 남편이 바람을 피고, 정부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을 아내한테 토로한다. 아내는 고통을 참다가 시동생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다. 이런 과정들이 일일이 열거된다면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일 것이다. 영화는 이런 일은 모두 생략하고 그 후의 이야기를 한다. 아내가 바람 피는 것을 안 남편은 아내한테 새로운 사랑을 느낀다. 사랑은 대상을 소유할 수 없을 때 샘 솟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남편 툴리오처럼 소유욕이 강한 이기적 인물은 더 소유하지 못한 것에 집착한다.과거보다는 현재를, 가진 것보다는 가질 수 있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인물이다. 툴리오가 아내의 불륜을 알아 챈 후 툴리오의 태도는 바뀐다. 아내 줄리아노의 관심, 혹은 감시를 하기 위해 정부도 만나지 않는다. 그러나 신은 있는 걸까. 두 사람의 애정전선이 다시 쾌청하자마자 시련이 닥친다. 아내가 애인의 아이를 출산한다. 아내의 현재는 사랑하지만 아내의 과거 흔적은 용서할 수 없어서 괴로운 남자는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선택을 한다. 

이렇게 줄거리를 적으면 흔해 빠진 치정극인데 화면으로 만나는 인물들이 변하는 과정은 흥미롭다. 많은 부분이 인물들의 시선처리를 통한 암시로 내용이 전달된다. 아내와 아내의 애인이 만나는 장면은 단 한 번도 안 나오고 아내의 애인과 펜싱을 한 후 샤워장에서 쳐다보는 살의에 찬 남편의 시선을 통해 아내의 애인의 육감적 육체를 보여준다. 아내와 아내의 애인이 처음 알게 되는 것 역시 시선을 통해 앞으로의 일을 짐작 할 수 있다. 남편이 아내의 비밀을 알고 아내를 좆는 시선을  통해 아내에 대한 태도가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영화적 장치들 때문에 익숙한 이야기도 새롭고 창조적이 된다. 클리세를 비트는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이 창작이며 창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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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 Bleak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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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이 지나도 카메라만 정신없이 움직인다. 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하는 궁금증을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끌어가는 영화다. 극의 시간을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 배치해서 현재 인물들의 상황을 통해 과거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낯선 방법은 아니지만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데 끝까지 인물들한테 몰입하게 만든다. 기태의 죽음이라는 사건 결말을 먼저 준다. 기태의 죽음은 자살였다는 것도 기태 아버지가 기태 친구들을 한 명씩 만나면서 알 수 있다. 정보 유출 방식이 매우 조심스럽게 펼쳐진다. 기태가 자살한 원인을 찾아가면서 세 명의 십대 소년들이 겪었던 우정과 균열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십대 남고생들의 일상이지만 십대 소년들의 감정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심리를 통찰하고 있다. 말하기 힘든 복잡하고 섬세해서 느낌만 있는 심리를 잘 묘사한다. 

한 집단이나 조직은 물론 세 사람 이상 모이면 일대일의 관계를 넘어서는 투명하면서도 미묘한 그물이 생긴다. 어떤 그물망을 통해 누구와의 관계는 발전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와는 겉과 속이 조금은 다른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중학교 동창인 기태와 동윤, 기태와 같은 반인 희준. 기태를 통해 알게 된 동윤과 희준. 이 세 사람의 우정은 균일하지 않다. 기태의 주목받고 싶어하는 심리 때문에 드러나는 언어적, 육체적 폭력이 희준에게 큰 상처가 된다. 말은 마음과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지만 실제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왜곡되기 쉬운 수단이다. 게다가 말은 무형이어서 폭력을 행사해도 물리적 폭력보다 그 무게를 가볍게 본다. 그러나 언어적 폭력은 외상없이 사람의 영혼을 잠식한다. 

기태가 자신의 콤플렉스를 덮으려고 했던 말들이 친구들한테는 가시가 돼서 피를 흘리게 한다. 기태는 두 사람의 우정을 믿었고 믿음은 두 사람한테 더 친밀한 말이라고 착각하는 험한 말을 한다. 친한 관계일수록 막대하는 건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식구보다는 친구한테 더 예의있게 말하고 친구보다는 그저 아는 사람한테 더 예의를 갖춰 말하니. 희준이 전학까지 결심할 정도지만 기태는 희준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머리로는 이해하는 일이 마음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기태가 사과를 했을 때 희준의 심정이 아마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전학을 택한 것일 것이다. 희준을 잃고 난 기태는 동윤에게 좋을 충고를 한다. 하지만 충고란 하지 않을 때가 더 나을 때가 많다. 충고란 상대를 자신의 잣대로 판단해서 호불호를 결정한 후 좋은 걸 선택한 것인데 전적으로 자신의 입장이지 상대의 입장이 아니다. 동윤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받고 기태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말을 하고 만다. 기태가 죽은 후, 그 말이 얼마나 끔찍한 폭력이었는지 드러난다. 

세 사람의 우정은 이어붙일 수 없을 정도로 조각나버린다. 인물들이 성장기에 있기에 더 큰 상처처럼 보이지만 성인이 된 후에도 우정이 혹은 믿음이 조각날 때 견딜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덧. 이 영화는 참 특이하게 찍었다. 의도적으로 인물들만을 카메라로 잡는다. 배경은 거의 대부분 아웃 포커싱해 버렸다. 배경은 없고 인물만 스크린 안에 있어서 연극 같은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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