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 - Bleak Nigh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5분이 지나도 카메라만 정신없이 움직인다. 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하는 궁금증을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끌어가는 영화다. 극의 시간을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 배치해서 현재 인물들의 상황을 통해 과거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낯선 방법은 아니지만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데 끝까지 인물들한테 몰입하게 만든다. 기태의 죽음이라는 사건 결말을 먼저 준다. 기태의 죽음은 자살였다는 것도 기태 아버지가 기태 친구들을 한 명씩 만나면서 알 수 있다. 정보 유출 방식이 매우 조심스럽게 펼쳐진다. 기태가 자살한 원인을 찾아가면서 세 명의 십대 소년들이 겪었던 우정과 균열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십대 남고생들의 일상이지만 십대 소년들의 감정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심리를 통찰하고 있다. 말하기 힘든 복잡하고 섬세해서 느낌만 있는 심리를 잘 묘사한다. 

한 집단이나 조직은 물론 세 사람 이상 모이면 일대일의 관계를 넘어서는 투명하면서도 미묘한 그물이 생긴다. 어떤 그물망을 통해 누구와의 관계는 발전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와는 겉과 속이 조금은 다른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중학교 동창인 기태와 동윤, 기태와 같은 반인 희준. 기태를 통해 알게 된 동윤과 희준. 이 세 사람의 우정은 균일하지 않다. 기태의 주목받고 싶어하는 심리 때문에 드러나는 언어적, 육체적 폭력이 희준에게 큰 상처가 된다. 말은 마음과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지만 실제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왜곡되기 쉬운 수단이다. 게다가 말은 무형이어서 폭력을 행사해도 물리적 폭력보다 그 무게를 가볍게 본다. 그러나 언어적 폭력은 외상없이 사람의 영혼을 잠식한다. 

기태가 자신의 콤플렉스를 덮으려고 했던 말들이 친구들한테는 가시가 돼서 피를 흘리게 한다. 기태는 두 사람의 우정을 믿었고 믿음은 두 사람한테 더 친밀한 말이라고 착각하는 험한 말을 한다. 친한 관계일수록 막대하는 건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식구보다는 친구한테 더 예의있게 말하고 친구보다는 그저 아는 사람한테 더 예의를 갖춰 말하니. 희준이 전학까지 결심할 정도지만 기태는 희준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머리로는 이해하는 일이 마음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기태가 사과를 했을 때 희준의 심정이 아마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전학을 택한 것일 것이다. 희준을 잃고 난 기태는 동윤에게 좋을 충고를 한다. 하지만 충고란 하지 않을 때가 더 나을 때가 많다. 충고란 상대를 자신의 잣대로 판단해서 호불호를 결정한 후 좋은 걸 선택한 것인데 전적으로 자신의 입장이지 상대의 입장이 아니다. 동윤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받고 기태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말을 하고 만다. 기태가 죽은 후, 그 말이 얼마나 끔찍한 폭력이었는지 드러난다. 

세 사람의 우정은 이어붙일 수 없을 정도로 조각나버린다. 인물들이 성장기에 있기에 더 큰 상처처럼 보이지만 성인이 된 후에도 우정이 혹은 믿음이 조각날 때 견딜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덧. 이 영화는 참 특이하게 찍었다. 의도적으로 인물들만을 카메라로 잡는다. 배경은 거의 대부분 아웃 포커싱해 버렸다. 배경은 없고 인물만 스크린 안에 있어서 연극 같은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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