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종 - Grain In Ea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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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이 영화를 보게 되서 얼마나 다행인지. 전체적으로 담담하지만 서늘한 충격을 주는 영화다.

1. 이 영화 이미지들은 한 순간 굉장히 장면들이 익숙하다가도 또 어떤 순간에는 굉장히 낯설다. 카메라는 늘 인물보다 먼저 기다리고 있다. 인물은 프레임 밖에 있다가 프레임 안에 들어왔다가 다시 프레임 밖으로 빠져나간다. 인물이 빠져나간 자리를 카메라는 얼마간 그대로 비춘다. 때로는 벽이 있고 때로는 인물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있다. 같은 거리, 같은 동작을 보여주면서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조용히 전달한다.  처음에 주방에 쥐가 나타날 때 순희는 소리를 지른다. 쥐약을 놓고 쥐가 죽는다. 아들을 불러 쥐의 사체를 처리하라고 시킨다. 아들은 도구를 이용해 쥐 사체를 치운다. 다음 번에 죽은 쥐를 보고 순희는 놀라지 않는다. 후반부에 가면 순희는 죽은 쥐를 손으로 처리한다. 척박한 환경에서 사물을 대하는 순희의 태도기 서서히 변해가는 걸 알 수 있다.

카메라가 공간을 비추는 방식은 일상적 삶과 닮아있다. 늘 같은 곳이지만 시간에 따라 인물들의 행동과 감정에 따라 다른 곳처럼 보인다. 계속 카메라가 인물과 거리를 두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으로 최순희를 놓치지 않으려고 뒤를 따라간다. 이 때 처음으로 단편적으로만 봤던 최순희가 살고 있던 공간을 비로소 전체적으로 볼 수 있다. 작은 기차역 근처고 사스 검사를 했던 스산한 곳은 역사며 역사 밖을 나가면 철로가 있고 철로를 지나면 황량한 들판이 있다.   

2. 극의 중심은 어린 아들을 키우며 김치 행상을 하는 조선족 최순희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 어려운 일상이지만 얼굴 표정은 담담하기만 하다. 조선족 남자의 표정도 독특하다. 이 남자의 표정은 늘 지쳐있다. 순희한테 말을 걸때도 순희한테 속마음을 비출 때도 아내한테 거짓말할 때도 지쳐있다. 사람이 어떻게 같은 표정을 계속 지을 수 있을까?;;  

3. 어려운 상황에서 한 순간 호시절처럼 보이는 때가 있다. 노점 허가증을 손님이었던 경찰 도움으로 받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도 생겼다. 공무원 여인은 조선족 춤을 배우고 싶어하고 쓸쓸했던 환경이 따사로운 햇살로 가득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열심히 쌓은 도미노가 하나가 무너지자 모든 게 와르르 무너진다. 가혹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안 좋은 상황에 있는 사람이 아무리 애써도 안 될때가 있는 게 현실"이라고. 이 영화는 감독의 말대로 아주 무거운 삶을 짊어진, 어쩌면 희망없는 여인의 이야기를 한다.  

한국 독립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삶의 두께와 비슷한데 <망종>은 결이 다른 삶의 두께를 만들었다. 조용하고 담담하면서도 보는이한테 고통을 공감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투명한 수채화 물감으로 희망 없음을 말하는데 눈이 부시다. 그래서 희망 없다늘 걸 잠시 잊을 정도로 아름다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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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 - Chongqing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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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 감독 영화는 처음 봤다. 내가 왜 여태까지 이렇게 서정적인 영화들을 안 보고 흘려보냈나, 하고 자책했다.  

1. 느린 호흡으로 담담하게 한 중경 시민의 이야기를 한다. 쑤이는 중경출신이면서 북경어를 사용하고 북경어를 가르친다. 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는데 두 사람은 서로 소통하지 못한다. 쑤이는 아버지랑만 소통을 못하는 게 아니라 살고 있는 도시에서 어울리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배회하는 산책자다. 쑤이한테 말을 걸어오는 이들은 모두 쑤이의 마음 따위는 관심없고 그녀의 몸에만 관심이 있다. 쑤이는 매춘을 한 아버지를 혐오하면서 인간의 본질적 욕망에 자신을 내 줄 위기를 맞는다. 중경 사투리를 쓰지 않고 고집스럽게 북경어를 쓰는 쑤이는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 중 외적 자아를 선택한 것 처럼 보인다. 그러다 아버지 일을 계기로 유부남 파출소장을 만나고 외적 자아를 밀쳐내고 내적 자아의 본질을 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상황은 암담하다. 이 영화는 건전한 자아찾기가 아니다. 진정한 자아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공간과 공간을 이루는 사람들은 그녀를 밀어낸다. 혼란만 가중되고 두 자아 사이에 생긴 균열의 틈은 커지기만 한다.  

2. 인물들의 표정이 아주 인상적이다. 웃음기 하나 없고 마치 넋이 나간 것처럼 무표정하다. 영혼은 다른 곳에 있는 육체가 거리를 유영하는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화 속 날씨는 덥다. 모두 반팔을 입고 있으니. 그런데 더위를 쫒는 으으스한 분위기가 영화 전반을 지배한다. 더위와 스산함이 이렇게 조합될 수도 있다니, 신기하다.

3. 장률 감독이 사용하는 영화 언어는 아주 회화적이다. 인물들과 배경을 카메라에 동시에 담을 때 인물들은 그림 속에 있는 것처럼 정지해있다. 특히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개발 반대 문제를 논의하느라 모여있는 장면은, 동양적인 동시에 유화 그림을 보는 착각을 유도한다. 또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은 카메라는 정지한 채 인물들이 프레임 안에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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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 Elizabeth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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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스튜어트> 읽고 이 시기의 영화를 찾아봤다. 엘리자베스 1세가 여왕이 되면서 불안한 집권 과정을 다룬 영화다. 두 시간 안에 역사를 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감독의 시선은 존재한다. 대부분의 시대극이 야사에 중점을 두는 것처럼 이 영화도 엘리자베스 1세의 야사쯤 된다.  

<메리 스튜어트>에서 엘리자베스의 외모가 별로인 것으로 묘사되는 반면에 이 영화에서 엘리자베스는 고혹적이다. 화려하게 예쁘진 않지만 기품있고 화려한 드레스 속에서 빛나는 창백한 피부는 회화 속에 나오는 정지된 인물같다. 영화 서사가 촘촘하거나 그럴듯하지 않지만 아주 탐미적 영상이다. 연회 장면이나 카메라 움직임의 현란함은 아찔하게 멋있다.   

엘리자베스도 꽤 현대식으로 말하고 있다. BBC에서 만든 헬렌 미렌과 제레미 아이언스가 출연한 드라마를 찾았지만 못 찾았다. BBC드라마는 같은 장면도 좀 다르게 만들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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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 - Black Swa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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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보고 너무 좋아서 장편 데뷔작인 <파이>와 <레퀴엠>을 찾아봤다. 세 영화 모두 어찌나 격정적인지 러닝 타임 내내 하드락을 듣는 기분이었다. 영화가 끝나면 모든 게 소진되는 기분. 쉬지 않는 분할 화면이나 쇼트의 움직임, 신체 부위 클로즈업, 무의식적 환상을 이미지로 보고 놀라는 인물들과 함께 화면 밖에서도 움찔하게 만드는 긴장감. 대체로 우리는 이성이 비이성과 무의식을 통제하는 세계에 살고 있고 이성이 지배하는 질서에 익숙하다. 규범에 따르지 않을 때 혹은 어떤 이유로 규범을 따르지 못할 때 우리의 의식은 어떤 사고체계로 들어가는가 하는데 대한 고찰이 감독의 주 관심사다. 

무의식이 만들어낸 상상이 처음에 시작되다 상상이 현실과 공존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상상이 현실을 지배한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망상이란 말을 사용한다. 즉 미친 사람이 된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상상을 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거다. 잠 들기 전에 누워서 내일 하기 싫은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을 그려 보곤한다. 많은 시간을 실제로는 상상하는데 사용하지만 대체로 망상으로 뛰어들지 않은 이유는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강하거나 주제파악을 일찌감치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꿈에 대한 열정도 쉽게 접을 수 있다는 말이다. 

꿈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현실에서건 상상 속에서건 꿈과 함께 산다. 꿈을 이루는 일은 분명히 근사하지만 꿈을 이루기위한 과정은 결코 근사하지 않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하기 싫은 일도 강도 높게 해야하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뇌신경은 늘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감독은 이런 뇌신경의 지배를 받는 인물들을 이미지화한다. 블랙 스완은 <파이>나 <레퀴엠>에서 한번 보여준 장면들을 잘 정돈하고 다듬어서 바느질 자국이 보이지 않게 잘 잇는다. <파이>가 수로 세계의 질서를 파헤치려는 수학자가 겪는 착시와 망상을, <레퀴엠>에서는 각자만의 미래를 상상하며 약물중독이 돼가는 모자, 연인, 친구를 묘사한다. 두 영화 속 인물들이 아웃사이더들인데 비하면 블랙 스완은 익숙한 테마와 주류적 시선으로 접근한다. 
 

그러나 대런 아노로프스키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성공을 들여다본다. 평생을 준비해 온 무대에 설 기회를 가졌을 때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행복이 주인공이 아니라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의 이면을 묘사한다. 객관적으로 행복이나 성공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일이 어떻게 한 개인을 억압하는지.. 그 힘은 무중력 상태 같다. 신발끈을 매는 일상적인 일조차도 훈련없이는 하기 힘들다는 무중력 상태. 무중력에 던져진 니나는 철저하게 자신과 싸움을 벌인다. 평생 지지자였던 엄마도 적처럼 보이고 동료도 위협적 존재로 다가온다. 움직이는 유기체만이 아니라 비유기체도 기괴한 형상으로 니나의 정신 한 자락을 따라다닌다.  

니나와 대척점에 있는 릴리란 인물은 평범한 인물을 독특하게 묘사한다. 같은 일을 해도 별 스트레스 안 받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아니면 말고란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두 사람 모두 매력있는 성격이지만 어떤 성격을 가질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을까. 천성이란 의지와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부분인데 천성은 존재하지 않나...라는 질문으로 이끄는 인물이다. 천성이 백조인 니나가 흑조로 변신하기 위해 결국 니나가 해친 건 자기 자신의 몸인 걸 보면 생긴대로 살 수 밖에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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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브레이브 - True Gri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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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면서 코엔 형제는 왜 웨스턴 장르를 택했을까 궁금했다. 이미 잘 알려져있듯이, 서부영화는 미국이 건국신화를 열심히 만든 게 아닌가. 코엔 형제는 미국적 자본주의를 조롱하는 일에 능하고 미국적 사고를 싫어하는 사람들 아닌가. 결국 그들도 미국인이 아닌가..했는데 웨스턴 장르 영화를 다시 만든다기 보다는 소설을 읽고 14살 된 아이의 내레이션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서 영화로 만들었다고 한다. 

코엔 형제의 말대로 영화의 극 중심에는 14살 소녀 매티가 있다. 아버지 장례식날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잡겠다며 어른도 해내기 힘든 거래를 하는 당찬 소녀다. 무정부 시대인 서부개척시대에 자신을 지키려면 어느 정도의 폭력과 총은 필수며 법이 하지 못한 징벌을 복수라는 이름으로 하는 게 진짜 용기라고 배운다.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한 성장영화쯤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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