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전 - The Front 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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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다닐 때 반공방첩이란 국가 모토 아래서 6.25 기념 글짓기나 포스터를 과제로 제출해야했다. 어린 마음에는 그저 짜증스러웠을 뿐이다. 매년 되풀이되는 주제로 6년이나 포스터와 글짓기를 해야하니. 지도부가 물론 반전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군인출신들이어서 명령에 복종하는 식의 교육과정이었다. 공산당은 무조건 무찔러야한다는 식의 세뇌교육이었다. 머리가 크고 현상을 양쪽에서 바라보게 되면서 빨갱이의 개념이 모호했고 서서히 그 말도 잊혀져갔다.

한국은 종전이 아니라 휴전중인 나라다. 하지만 휴전이 아니라 종전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전쟁이 일어났고 휴전이 돼서 전쟁은 역사 속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연평도 폭격이 있었을 때 프랑스에 있는 외국인 친구한테, 너랑 식구들은 괜찮니?하고 묻는 메일이 왔다. 외국인들이 볼 때 서울이나 연평도나 거기서 거기고 우리는 휴전중이니 사소한(?) 잡음도 전쟁재개처럼 여겨지는 모양이다. 그러나 정작 나는 연평도 폭격이 뉴욕 한복판에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이는 폭격의 무서움이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전쟁의 무서움을 극도로 주입받았지만 무서움은 주입받는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영화 속 두 인물의 시각차를 그린다. 후방에서 휴전 회담을 지켜보던 방첩대 출신 강은표와 50만명이 죽는 전쟁터에서 하루하루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김수혁은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강은표한테 전쟁은 추상적인 명령일 뿐이었다. 조금 전까지 함께 웃던 이가 피를 흘리며 죽어갈 수 있는 게 전쟁이란 걸 몰랐다. 무수한 죽음을 목도한 김수혁은 이념이나 명령이 아니라 전쟁터에 있는 한 적을 죽이는 것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두려움과 마주한 이들은 휴전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싸우기 싫다고 우는 군인들의 마음을 휴전 회담자들은 모른다. 휴전 회담자들한테 전쟁터의 피비린내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머나먼 추상일 뿐이다.   

전쟁 속에서 피어난 우정이나 휴머니즘을 그리는 전쟁 영화는 좀 비겁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휴머니즘에 감동 안 할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이 영화는 휴머니즘을 필요한 만큼만 사용했고 많은 부분을 전쟁을 직접 겪는 이의 두려움에 할애했다.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고 전쟁이 일으키는 폭력은 희생자만 만든다. 인간이 아무리 적응을 잘 하는 동물군에 속한다 하더라도 전쟁은 적응하기에 바람직한 상황이 결코 될 수 없다. 전쟁이 종종 예술의 소재로 다뤄지는 이유도 전쟁의 폭력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폭력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현명하게 행동하라는 일종의 지침이자 메시지다.  

힘겹게 휴전을 기다리다 마침내 휴전이 발표되고 효력이 발휘되기 열두 시간 전에 무참히 죽어간 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휴전중이라는 사실이 마른 하늘에 치는 번개처럼 선명하게 다가왔다. 연평도 폭격사건을 뉴스에서 봤을 때보다도 백만배는 섬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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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 The Silenc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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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남기는 게 사실 불가능하다. 영화가 하나의 주제로 명확히 표현되기 위한 연속성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게 최소한의 서사가 아주 없진 않지만 서사가 무의미한 게 베리만 영화다. <침묵>굳이 말하라면 어긋난 자매애 혹은 한 비극적 가족사쯤 될 수 있지만 느낌만 있을 뿐이다.<늑대의 시간>도 같은 범주에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남편과 헤어진 한 여자의 이야기다. 남편의 트리우마와 무의식과 의식의 혼재 속에서 결국 영적으로는 헤어진다. 이 느낌의 실체도 열심히 영화를 보면서 무언가를 찾아내야한다는 강박 관념때문에 머리를 굴린 탓이다. 영화들은 굉장히 추상적이다. 추상적 텍스트는 여러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기는 하지만 왜 꼭 해석을 해야하나, 하는 피곤함이 몰려오기도 한다.-.-   

인물을 클로즈업할 때 사용하는 카메라 앵글의 다양성은 인물들을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 카메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인물들이 주는 인상이 강렬하고 진지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진지해질 수 밖에 없다. 인물들의 의식과 무의식을 구별하려고 애쓰다보면 부질없어지는 순간이 도래한다. 그럼 베리만의 추상적 메시지들은 그냥 추상적으로 받아들이면 되지않나...
 

인간의 의식은 명료하지않다. 말이나 이미지같은 수단들을 통해 모호함을 명료하게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상식은 상식일 뿐이다. 실제로 우리의 의식이나 무의식은 섞여서 그물처럼 엉킨다. 스크린을 보면서도 영화보고 난 후 자장면 먹을 생각에 자장면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인간의 뇌는 고차원적 멀티 기능을 장착하고 있다. 형이상학적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형이하학적 생각도 동시에 할 수다. 어두운 영화관에서 짬뽕 이미지가 불쑥 튀어나오는 게 말이 안 되지만 실제로 우리 의식이 하는 일이다. 

베리만 영화 속 인물들은 우리가 가진 멀티 기능보다 더 사양이 높은 기능을 장착하고 있다. 이전 장면에서는 아내한테 총을 쏘고는 다음  장면에서는 아들인지 아니면 어린 자신이지와 몸싸움을 하고 있다. 아들 혹은 어린 자신 같은 어린 남자아이의 공격에 분노해서 소년을 죽인다. 그뿐이다. 소년과 남자의 관계도 모르고 남자가 살의를 느끼는 이유도 모른다. 또 실제인지 단지 남자의 생각인지도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건 남자가 분열적 행동이 영화 내내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켜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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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사랑 - Incendie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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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교나 이념은 인간이 필요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난 믿는다. 전쟁이 필요해서 종교나 이념을 만든 건 아니다. 모든 종교가 화해와 사랑을 기본 교리로 한 건 인간이 화해와 사랑을 갈망하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갈망이란 갖지 못한 혹은 갖기 힘든 대상에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신의 힘을 빌어 사랑과 화해를 추구하는 거 보면 인간은 사랑과 화해에 능숙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영화는 중동지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전을 소재로 삼고 있다. 지난 겨울 모로코에 다녀와서 이슬람교에 급관심을 갖게 됐다. 외부자로서 바라본 이슬람교는 폐쇄적이고 맨날 전쟁이나 테러나 일삼는 교리를 지닌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슬람교 창시자 마호메트는 그런 가르침을 한적이 없다. 오히려 수많은 암살과 싸움 때문에 이슬람교를 창시했고 기본 원리는 '놀랍게도' 평등이었다. 세부적 실천지침도 기독교의 지침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다. 다만 형식적 세부사항들이 그 문화에 조절되었을 뿐이다. 이슬람교가 과거 한 때 세력을 확장할 수 있던 이유도 모든 이들이 평등하다는 원리였다. 십자군 전쟁 당시 기독교의 불평등한 교리보다는 이슬람교의 교리가 훨씬 종교적 품위를 더 유지할 수 있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은 인간의 평등 개념을 바꾸기 시작했다. 같은 종교인만 평등하고 같은 인종만 평등하다. 전쟁의 발단은 이 지점이고 인간은 종교가 태어나던 시기와는 다른 평등 개념을 선호한다. 이 영화는 종교적 이념이 얼마나 부질없는 지 나왈 마르완이란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인인 한 여인의 비극적 일생을 들여다보며 성찰한다.  

2. 역사는 굵직한 사건의 물리적 기록이다. 아무리 비극적 전쟁도 사상자의 수를 적는 게 고작일 수 있다.  현재를 살고는 있는 기독교인들이 오래 전 십자군 전쟁이 뿌리고 거둔 비극의 깊이를 가늠하는 건 힘들다. 그러나 전체 역사에 녹아있는 개인의 역사는 시공을 초월하는 현재성이 있다. 나왈 마르완의 기구한 일생을 통해 종교전 혹은 전쟁의 참상은 비극의 깊이를 오감으로 상상하고 나아가 분노하고 자책하는 일로 이끌어주는 힘이 있다.   

3. 이 영화는 강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인간의 우둔함을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반성하도록 이끈다. 보복이나 전쟁은 또 다른 보복과 전쟁을 낳는다. 비극적 역사의 산 증인이 나왈은 경험과 세월을 통해 이 사실을 깨닫고 아이들한테 관용과 포용은 좋은 일이라는 유언을 남긴다. "과거가 어찌됐건 현재 함께 있는 건 좋은 일"이라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나왈은 분명히 보통 사람은 아니다. 아니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불행을 겪으면 담담해질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삶은 계속 되니까. 보통 사람인 나는, 이성적으로는 용서와 관용이 이상적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또 다른 나는 복수의 화신까지는 아니어도 받은 만큼 갚아줘야하는 게 당연하다고, 한편으로는 믿고 있다. 사람이 둘 중 절대적으로 어느 한 마음으로 기우는 게 가능한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 '무조건적'이란 말을 믿지 않기에 나왈이 보여주는 무조건적 관용 태도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 내 이성과 감정이 충돌하는 걸 지켜봐야하기에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이 불편했다.  

4. 이 영화는 좋은 영화지만 영화적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마지막 반전을 향해 모든 인물이 움직이고 있다. 반전 부분에서 헉,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나오지만 이 모든 걸 교차 편집에만 의존하고 있는 터라 영화가 다 끝난 후에는 조금 허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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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 블랭크 - Point Blank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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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액션 영화는 대동소이한 줄거리에 추격전과 액션이 더해진다.  액션영화가 재밌다 재미없다는 극의 흐름을 풀어가는 서사나 인물의 감정선이 아니라 뻔한 추격씬을 어떤 식으로 카메라가 잡아내느냐가 관건이다. 그래서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액션 영화에 지대한 힘을 발휘한다. 이 영화는 이런 면에서 좋게 말하면 클래식하고 나쁘게 말하면 구시대적이다. 추격씬이 많은데 화려한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주인공들이 두 발로 냅다 달려주신다. 잔 트릭이나 기술을 사용하기보다는 정직하게 추격을 한다.  

복잡한 경찰서 복도씬은 인상적 공간 사용을 보여준다. 원래 프랑스 경찰서가 그렇게 혼잡한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영화 속에 묘사된 경찰서는 경찰과 용의자들로 가득 차 있다. 마구 뒤섞여 있는 사람들은 시장이나 축제에 나온 사람들처럼 지나가는 행인한테 무관심하다. 지명수배자가 경찰 완장을 차고 돌아다녀도 무사할 정도니. 카메라는 아우성치는 사람들 무리를 먼저 비추고 저 멀리서 군중 속으로 들어오는 추격 당하는 사람의 모습을 담는다. 복도 코너를 돌 때마다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무조건 부수고 화염 속에서 건물이 폭발하고 불이 나는 원초적 자극보다는 훨씬 고급스럽다. 물론 내 취향이긴 하지만. 

그러나 이 영화가 참신한 건 아니다. 재수없게 우연한 사고에 말려들어 사랑하는 아내를 구하려는 남자의 절박함은 지겨운 소재다. 또 정의를 지키기로 돼 있는 경찰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동료도 죽이고 죄 없는 사람도 죽이고,도 지겨운 소재다. 여러 영화가 다루었던 이야기를 정직하게 다룬다. 사실 액션 영화가 혹은 영화가 새롭게 보이려면 같은 소재여도 다른 뭔가가 하나쯤 있어야하는데 이 영화는 익숙한 이야기를 익숙한 포맷으로 풀어간다. 하나 신선한 점은 런닝 타임이 84분이어서 극도로 지루해지기 전에 영화가 끝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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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방랑자 - The Man from T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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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일기>와는 분위기가 아주 다르다.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불사조 테츠를 제거하려는 야쿠자들의 육탄전이 오묘하게 이어진다. 뮤지컬 영화처럼 아주 자주(누군가 6분 마다라고 기록해 놨다) 동경방랑자라는 노래가 울려퍼진다. 쇼처럼 테츠를 사모하는 여가수가 부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주인공이 부르기도 한다. 대사보다는 노랫말이 더 기억에 남도록 각인 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조명과 세트의 사용이다. 대놓고 인공적인데 세트는 미니멀한 게 극이 일어나는 곳이 아니라 콘서트나 연극 공연이 있을 법하다. 조명은 세련된 게 아니라 자극적이다. 하얀 세트에 노란 조면으로 시작해서 총질이 시작되고 총질이 끝나면 빨간색이 된다거나 혹은 흰색이 되거나 하는 식이다. 요즘처럼 세련된 빛깔이 아니라 원색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필터링하지 않고 원색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 방법은 촌스럽긴하지만 독특하다. 정육점이나 캬바레 분위기도 나고.ㅋ 

이렇게 조명이나 세트 사용, 또는 레오 까락스를 연상시는 컷들도 가끔 눈에 보여 프레임 안을 채우는 방법들은 꽤 흥미롭다. 하지만 영화를 온전히 즐기기에는 주인공이 몰입이 안 되게 생기셨다.@.@ 무엇보다도 맥락없이 벌어지는 싸움질은 지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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