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이야기 - Tokyo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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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해 상반기에 병원 출입이 유난히 잦았다. 가벼운 교통 사고, 그리고 이어진 장염과 이석증으로 잠도 잘 못자고 힘들어하자 곁에서 지켜보던 엄마는 더 힘들어했다. 당신이 아픈 게 낫지, 자식이 아픈 걸 지켜는 건 죽을 맛이라고 하면서 각종 영양식을 차려내시곤 했다. 자식 봉양을 받을 나이에 자식 뒤치닥거리나 하시는 엄마한테 미안했지만 내 몸이 아프니, 하고 눈 꼭 감았다. 어제 아침에 일어났더니 엄마가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나는 살짝 귀찮아하면서 어떻게 아픈지 대충 질문했고 병원에 가 보라는 의례적인 말을 했다. 그리고는 오즈 영화를 보러 아트씨네마로 향했다. 

2. <동경 이야기>에 나 같처럼 싸가지 없는 자식들이 나온다.;;; 시골에 사는 노부모가 동경에 사는 자식들을 만나러 온다. 부모 눈에는 대도시에서 각자 자리잡고 살아가는 게 대견하고 기특하기만하다. 자식들은 하루하루 일상에 치여 모처럼 오신 부모님을 대접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내리 사랑이란 말이 있듯이 자식에 대한 섭섭함보다는 속 깊은 어른의 시선으로 자식들의 단점을 어루만진다. 노부부는 자식들이 각자 잘 살아가고 있는 걸 봤으니 동경에 온 보람이 있다고..그리고는 정정했던 어머니가 고향에 내려가자마자 죽는다. 급히 모인 자식들은 장례 후 함께 밥을 먹는다. 애도의 시간은 생략된 채 동경으로 돌아갈 때를 이야기하면서 동경에서 삶을 꾸려가려면 밥 힘이 있어야하니 밥 더 달라고 하면서 밥을 먹을 먹는다. 노부부의 시선은, 어른이 되면 각자의 삶이 있으니 모두 이해할 수 있다. 노부부의 막내 딸은, 흐느끼며 그렇게 사는 게 어른이라면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3. 이 영화를 보면서 엄마가 아프다는 말을 흘려 듣고 내 여가 시간을 즐기는 게 더 중요한 게 나, 라는 생각이 들자 영화를 보면서 감동받고 깨달으면 뭘 하나, 하는 한숨이 나온다. 영화 속 작은 아들은 어머니 장례 직후 가야할 이유를 "다음날 야구시합도 있고"라고 했다. 병원에 가봐, 하고 오즈 영화를 보러 나온 내 초상이 영화 속에 있어 아주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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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에 얹은 녹차의 맛 - Flavor of Green Tea Over Ric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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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이 다른 중산층 부부의 권태와 권태 극복기로 미장센이 돋보이는 영화다. 중매로 결혼한 부부는 취향이 아주 다르다. 남편이 "싸고 좋은"을 추구한다면 아내는 품위를 추구한고 할 수 있겠다. 남편은 전형적인 다다미 방에서 생활하고 아내는 침대와 소파가 있는 방에서 생활한다. 부부란 밥도 같이 먹어야하는데 같은 공간이 밥상이다. 밥에 국을 말아먹는 걸 '개 밥'같아 혐오스러워하는 아내 앞에서 남편은 조심하겠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아내는 자유부인으로 말 없이 훌쩍 여행도 가고 온천도 다닌다. 자유부인의 운명은 객관적으로 보면 팔자 좋아보이지만 본인 자신은 조울증을 경험하는 아주 괴로운 운명이다. 오즈 영화는 정적인 편인데 이 영화는 시작할 때 기차가 달리는 창 밖에 카메라를 놓고 교각을 받치고 있는 버팀대와 기차 사이에 좁은 공간을 속도감있게 잡아낸다. 이런 장면이 중간에 한 번 더 나온다. 아내의 심정을 드러낸 장면들이다. 한편 남편은 후배를 따라 빠징코 게임에 입문하고 빠징코 볼에 격한 일체감을 느끼는데 아주 코믹하게 묘사된다. 

두 사람이 결국에는 화해하는 걸로 싱겁게 결말짓는다. 갑작스럽게 아내가 자신의 태도에 대해 급반성해서 황당하지만 결말까지 가는 소소한 에피소드가 재치와 기지 때문에 오즈 영화는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극장 불이 켜지면 모두들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다. 어둠 속에서 대체로 미소를 짓게 하는 힘이 오즈 영화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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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야가와가의 가을 - The End of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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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야가와의 가을>은 좀 더 경쾌하고 역동적이다. 이 영화도 역시 삼대가 살고 있는 고하야가와가의 이야기다. 다만 1대인 아버지가 옛사랑을 다시 만나 애정 행각(?)을 벌이는 게 좀 다르다. 시대가 변해서일까, 자식들과 홀아버지 사이에 애증이 있다. 특히 결혼한 딸이 아버지한테 갖는 애증은, 과거 아버지의 한량 기질 탓에 어머니가 겪었던 고통을 암시한다. 철 없고 한 없이 낙천적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못마땅해 하는 딸 간에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웃음을 유도해서 경쾌하다. 사소하고 자잘한 일은 당사자들한테는 심각할지 몰라도 지켜보는 이한테는 피식거릴 웃음의 소재가 되는 게 우리 일상일 터이니.

이 영화에서 특이한 점은 결혼 전인 시누이와 남편을 여의고 혼자 아들을 키우는 올케 사이에 우정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서브 플롯처럼 따로 진행된다. 가족이 다 모인 자리에서도 두 사람은 다른 공간(시누이의 다락방, 해변가, 장례식에서도 맨 뒷줄에서 행렬에서 뒤처진다)에 종종 배치된다.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주고 받는다. 때로 자신의 마음을 자신도 모르는데 두 사람은 서로에게 멘토와 같은 존재로 담소를 나누며 그 해답을 찾는데 도움을 주고 받는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은 두 여인한테 교훈을 준다. 마음 가는대로 할 것. 아주 쉽고 익숙한 말이지만 실행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말이어서 아버지의 죽음으로 두 여인은 용기를 얻는다. 인생 무상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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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 Early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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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식사 풍경으로 영화는 시작하고 영화가 계속 되면서도 별 특별한 사건은 없다. 한 집에 삼대가 살면서 겪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담는다. 노부부, 결혼 한 아들 부부와 손자, 그리고 결혼을 앞두고 있는 딸. 이야기의 큰 틀은 딸, 노리코의 결혼에 대한 세대 간의 입장 차이를 보여준다. 이제 더 바랄 게 없다는 노부부의 쓸쓸한 얼굴, 여동생의 결혼 추진을 하나의 일처럼 추진하는 오빠, 그리고 친자매 이상으로 살가운 사이 시누이와 올케. 

노리코가 결혼을 하기로 결심하면서 가족들은 각기 다른 세계관이 드러나지만 모두 한결같이 노리코의 행복을 걱정한다. 내가 흥미롭게 본 건 노리코의 결혼을 둘러싼 에피소드를 풀어가는 방식이다. 노리코가 마음을 주고 결혼하기로 작정한 사람과 둘이 마음을 주고 받는 장면은 전혀없다. 두 사람의 사랑이나 애정보다는 주변 식구들의 걱정과 기쁨으로 노리코의 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50년대 시대 상황이 한 번 보고 결혼하던 시절이라도 영화에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건 낯설다. 적어도 영화에서는 당시의 상황이 어떻든 결혼 당사자 사이게 애틋한 눈빛이라도 교환하게 하지 않나. 뭐 이런 것도 영화가 제시해 온 틀에 사고가 지배당해 그럴테지만 결혼 이야기를 두고 두 사람의 심리가 아니라 식구들의 심리로 가족 드라마를 만드는 방법도 있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다. 

덧. 왜 제목이 맥추인가, 영어 제목은 초여름인데, 찾아봤더니 맥추는 보리를 추수하는 음력 4월이란다. 보리 추수도 가을에 하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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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연인들 - Regular Lo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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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루톨루치 감독이 <몽상가들>에서 68혁명을 낭만적으로 스크린에 담은 데 대한 프랑스 감독의 항의라고나 할까. <몽상가들>에도 나왔던 루이 가렐이 똑같이 등장하지만 같은 소재인 두 영화는 전혀 다른 색조다. 2004년작이란 정보를 접하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영화 중간에 이 영화 60년대에 만들어진 건가, 하고 착각할 정도로 60년대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아무래도 주인공도 같으니 <몽상가들>과 비교를 안 할 수 없다.  

<몽상가>가 뮤직 비디오처럼 예쁘고 소비사회에 알맞는 향수를 부추긴다면 필립 가렐이 만든 <평범한 연인들>은 68이란 시대정신이 저항한 소비사회의 미덕은 모두 제거했다. 낡아서 삐걱 소리가 나고 두 사람이 앉으면 답답할 정도로 좁은 스튜디오에서 인물들을 주로 클로즈업이나 미디엄 쇼트로 잡는데 영화는 계속 긴장감을 준다. <몽상가>들에서는 시위장면에서 조차 파리의 거리는 고풍스러운 배경으로 스펙터클화 되지만 이 영화는 파리의 아름다움 보다는 파리의 일상성에 주목한다. 벽과 골목에서 종종 스틸사진처럼 카메라가 정지하지만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벽과 골목으로 일반화해 버린다. 감독은 파리가 이방인들에게 향수와 이국적 상품으로서 소비되는 걸 거부라도 하는 것같다. 아름다운 파리 거리 좀 보여주지, 이렇게 야박하게 장소를 익명화하다니...이방인한테는 좀 아쉽다.  

우리한테는 너무나 익숙한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시위 장면인데 어둠 속에서 차량이 뒤집어져 있고 차 뒤로는 불길이 보인다. 시위의 격렬함이 소란과 역동성이 아니다. 두 서너명의 경찰과 두 세사람의 시위 학생의 실루엣으로 프레임 안에 또 프레임이 있을 거란 확신을 심어준다.  한 시위학생인 프랑스와는 경찰한테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을 치는 이야기가 한 시간 가량 이어진다. 프랑스와의 심리 상태를 따라서 지붕 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프랑스와가 릴리를 만나 헤어지는 이야기가 두 시간 동안 지속된다.  

5월 이후에 시대정신은 프랑스와란 개인의 삶을 통해 드러난다. 뚜렷한 목적 없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부자 친구가 대 주는 아편을 피우고 모임에서 어슬렁거린다. 릴리란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프랑스와의 내적 갈등은 서서히 드러난다. 릴리는 눈 앞에 닥친 집세를 걱정하고 미래를 위해 기성세대 질서로 들어갈 것인지 고민한다. 프랑스와는 릴리의 고민을 부정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패배감 탓에 무기력하다. 릴리를 잡을 수도 릴리에게 무언가를 제안할 수도 없게 의기소침하다. 릴리는 알 턱이 없고 시간은 흐르고 친구들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지 앞으로의 일을 조금씩 말하기 시작한다. 릴리를 잡고 싶지만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방문 열쇠를 베개 밑에 숨기고 질 좋은 아편에 불을 정성스럽게 붙이는 정도다.

프랑스와는 시를 쓰지만 시가 위안인지는 모른다. 어떤 것에도 애착을 보이지 않는 척하는 태도는 결국 자신을 옥죄고 고민을 피하고 하는 심리는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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