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뻔한 여름용 재난 영화겠지, 하고 별 기대없이, 더위를 피해 극장을 찾았다. 더위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상상력을 발동하게 하는 여름날이다. 추위도 무섭지만 더위도 생존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도 있다는 걸 체험하고 있는 요즘이라 재난 영화에 대한 상상력이 극대화되었고 영화를 감상할 자세가 충분히 갖추어졌다.

 

2.

영화는 예상대로 그럭저럭이었지만 유머코드도 있고 핵심을 짚어내는 예리함도 있다. 재난에 대처하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희화화 했다. 부실공사로 터널이 무너졌고 그 다음은 우리가 아주 아주 잘 알고 있는 언론과 당국의 태도가 다시 한번 영화 속에서 등장한다. 언론 보도의 태도는 갇힌 사람의 생사나 구출 보다는 "단독 생존자로서 세계 최고"란 타이틀에 관심있다. 갇힌 사람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토론회를 각계 전문가를 모아놓고 논의하고 한 사람 때문에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다는 암시를 던진다.

 

장관 역시 협의 부서가 잘 알아서 하길 지시하고 해당 부서는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구출작업이 장기화되면서 경제 득실을 수치화한다. 제설차를 보내달라는 구조대장의 말에, 솔직히 거기는 한 사람이지 않냐고, 담당자가 말한다. 처음 듣는 말도 아닌데 영화는 힘이 세다., 그 한 사람이 내 가족이라면, 으로 치환하자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린다. 더불어 실제로 일어났던 각종 재난 보도에 처음에만 관심을 보이지 시간이 흐르면서 정말 기사로만 받아들이는 태도가 되곤 하는데 당사자만 억울하다. 다행히 영화 속과 현실에서 재난을 타자화 하지 않는 진정한 도덕적 판단력을 가진 이들이 극소수지만 그래도 여전히 존재한다는데 안도가.

 

3.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희생자의 가족 관점을 꽤 잘 묘사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정수의 아내 역할을 한 배두나의 연기는 언제나 갑이다. 구조작업 중 구조작업 반장이 사고로 죽고 갑자기 이정수의 아내는 죄인이 된다. 죽었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계속 살 수 있는 사람을 희생시켰다는 여론과 자책감. 여기서 비난을 받을 사람은 두 희생자가 아니라 정부의 구조적 모순과 방향몰이를 하는 여론이다. 두 사람은 모두 희생자인데 우리는 제3자가 되어서 이 사실을 종종 잊고 여론과 정부과 지시하는대로 희생자들을 비난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사실 현실은 계속 이 패턴의 반복이다. 희생자를 비난할 게 아니라 당국이 한 일을 잊지 말고 감시해야하는데...

 

4.

영화는 해피엔딩이지만 해피엔딩까지 이르는 과정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결국 당국은 여러 욕망들의 층위로 겹겹이 둘러싸여서 생명의 존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집단이다. 생명의 존엄을 아는 사람은 결국 소수의 개인들이다. 터널에 갇힌 이정수 개인의 살려는 불굴의 의지, 자신이 맡은 일이 무슨 일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 일에 대한 책임 의식이 강한 구조대장, 그리고 남편의 생존을 굳게 믿는 아내. 그리고 유일하게 외부소식을 전해주는 클래식 방송 디제이. 어떤 판단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대로 전달하는 관점을 보여준다.

 

결국 사회적 구조는 글러먹었으니까 이런 훌륭한 개인의 의지만이 재난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진정한 해피앤딩인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기 팍팍한 이유가 바로 개인이 모든 책임을 져야하는 구조적 모순 때문인데 그걸 명쾌하게 정리해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행복도 불행도 개인이 모두 책임져야하는 사회.

 

5.

요즘 더위로 몸은 지치는데 감성은 돋아나서 영화를 보면서 문득, 먼 훗날, 내가 극한의 곤경에 빠지면 누가 애달파해줄까로 생각이 미치니까, 쓸쓸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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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8-14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이 영화 그냥 방학용 재난 영화인 줄 알았는데 아니로군요.
한번 보아야겠네요..

넙치 2016-08-16 08:29   좋아요 0 | URL
재밌게 보시고 재미난 글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