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 - The Lo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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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칭하면서 이지적인 체 한다. 사실 조금만 둘러보면 인간이 얼마나 감정적이며 지성과 이성을 지키느라 안간힘 쓰는지 금방 드러난다. 여러 분야에 존재하는 각종 규제는, 실은 인간은 전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걸 부인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법이 일부일처를 법으로 규제하고 간통을 법제하는 기준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일은, 인간의 본성이 이성적이라기 보다는 감정적이라는 걸 에둘러 말하고 있다. 감정을 누르는 성문화된 최소한의 규범이 존재해야 인간은 이성적 존재로 남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험과 일탈은 용기 있는 자만이 떠날 수 있다. 어떤 충동적 행동이나 설명할 수 없는 열정에 온 몸과 마음을 불사르고 감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유전가 있다고, 나는 비겁하게 믿는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지방 소도시에 사는 미모의 유뷰녀, 잔느가 길에서 만난 한 남자, 베르베르와 눈이 맞아 남편과 어린 딸을 버리고 가출하는 이야기다. 잔느가 만난 지 하루 밖에 안 된 남자를 따라 모험을 떠나는지 잔느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 밖에 모르는 남편 때문에 권태를 느끼고 파리의 화려한 사교생활에 시간을 탕진한다. 파리에서 유행하는 옷을 입고 늦게까지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파티를 하지만 잔느의 권태감을 온전히 붙잡지 못한다. 폴로 선수를 애인으로 두었지만 잔느는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잔느의 내면적 권태는 안절부절로 대체될 뿐이다.  

자동차 고장으로 우연히 길에서 만나 동행을 하게 된 베르베르와 시골길을 달리며 잔느는 활짝 웃고 수다스러워진다. 베르베르를 만나기 전까지의 잔느와 다르게 명랑하다. 너무 유쾌해보여서 다른 공간에 속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 영화의 절정은 베르베르와 잔느가 밤 두 서너시간동안 거니는 몽환적이면서도 애로틱한 부분이다. 두 사람은 그저 서로의 이름만을 부르며 연못을 건너고 수풀 속에서 손을 잡고 산책한다. 이들 사이에 생긴 친밀감은 운명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두 사람의 베드씬은 이 후 많은 영화들에서 재생산 돼었다! 새벽에 남편과 친구들이 보는데 두 사람이 손 잡고 함께 떠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잔느는 "지난 밤과 같은 행복이 다시 찾아올 지 의문이지만 불안해도 후회는 없다"라고 말한다. 잔느의 내면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동화처럼 그들은 행복했다,가 아닐 확률이 높지만 잔느는 동화의 끝이 아니라 동화의 과정을 선택했다. 모험과 일탈이라는.   

1. 60년대를 주름 잡았던 잔느 모로가 더 젊었을 때 영화인데 전혀 보지 못했던 앳된 모습이 있다.  

2. 이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했을 때 외설적이라고 극장주한테 벌금형이 선고 되었다고 한다. 미국 재판사에서 외설 기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영화란다. 극장주가 반발해서 항소했고 결국 외설적이 아니라고 판결을 받았단다. 외설적이라고 판결을 내린 판사의 주관적인 말은 바로 "척 보면 안다" 였다는 유명할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규제해도 감정적인 인간의 본성을 막을 수는 없다.  

2-1. 지금 보면 이 영화는 전혀 외설적이지 않다. 이 영화가 외설적이라면 난 <아이 엠 러브>가 더더더 외설적이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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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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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의 치매를 치료하기 위해 개발한 약이 예상치 못한 효과를 낳는다. 지능 향상이라는 부수적 효과로 뛰어난 지능을 가진 침팬지가 태어난다. 인간의 실수로 태어나서 동족 대신 침팬지는 사람과 초년을 보낸다. 지능이 뛰어난 침팬지는 커 가면서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갖는 적대감을 마주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물을 오랜 시간 길러본 적이 있다면 이런 서사가 꽤 그럴듯하다고 느끼게 된다. 동물이 자신이 속한 종과 격리돼서 종간에 의사소통을 배우지 못하면 같은 종을 만나도 혼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사람만 눈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동물도 사람처럼 눈으로 희노애락을 표현한다. 어렸을 때 봤던 <혹성탈출>과 많이 다른 느낌인데 영화 자체보다는 동물을 바라보는 내 시각이 변해서 그럴거다.  

2. 인간 입장에서는 유인원들의 반란이자 폭동이지만 유인원들의 입장에서는 동물의 권리와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다. 시저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초년에 애정을 교류한 인간 아빠를 버린다. 하급한 동물 취급과 조그만 철창에 갇혀 학대당하는 같은 무리를 구출하기 위한 대의를 위해 사사로운 정을 기꺼이 희생한다고나 할까. 여기서 중요한 건 시저를 비롯한 유인원들이 자신들이 행동에 대한 의사결정자로 변했다는 점이다. 오랑우탄은 시저가 위험할 때 자신의 몸을 던져 시저대신 죽는데 감동적이었다. 

3. 꽤 그럴듯해도 말이 안 되는 점도 아주 많다. 샌프란시스코 내에 웬 유인원이 그렇게 많으며 인간과 싸우는 장면에서 죽어도 죽어도 숫자가 줄지않는다.  

4. 혹성이란 말이 무슨 말인지 찾아봤더니 행성이란 말이다. 20세기 <혹성탈출>의 유인원들이 우주에서 밑도 끝도 없이 침입하는 상상력이라면 21세기 <혹성탈출>에 나오는 유인원은 인간의 이기심으로 만든 결과물이다. 유인원이 인간의 자장권을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상상력이다. 인간의 상상력 관점도 성찰적으로 변한 듯하니 인간도 조금은 똑똑하게 진화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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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얼간이 - 3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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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을 다룬 영화는 기본적으로 향수를 자극하며 과거는 좋았지, 하는 기억의 왜곡에 기초한다. 올 여름이 유난히 비가 많이 와서 해를 볼 수 없어서 요즘 맑은 하늘을 신기하게 보고 있는 중이다. 마치 늦여름의 날씨를 처음 겪는 것처럼. 늦여름은 매년 왔다가 갔지만 올해 뭉게구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기억의 왜곡은 현재의 상황이 열악할 수록 더 심해진다. 마치 어제 본 뭉게구름처럼 웃음이 실실나게 하는 영화다.  

란초, 파르한, 라주가 인도 명문 공대에 들어가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경쟁 사회에서 대학은 지적 호기심이나 즐거움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라 경쟁에 익숙하게 만들어 계급을 재생산하는 곳이다. 세 얼간이는 경쟁의 틀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기도 한다.

동양적 정서상 가족간의 유대와 그 유대에서 파생되는 세대간의 갈등도 다룬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가족의 기대와 자신의 열정은 다르지만 부모의 기대 때문에 갈팡질팡하는 이들. 부모가 정해준 삶은, 기성세대의 질서에 안착하는 것. 미래는 안착이 아니라 도전에 있다는, 란초의 가르침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란초 자신은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대학에 왔다. 재력가의 아들 이름으로 대학생활을 보내고 자신이 딴 학위는 재력가의 아들한테 줬는데 학력위조범이 아닌가. 올바른 철학자 역할을 하는 란초 자신이 범한 심각한 오류는 모두가 행복하다면, 그 쯤이야, 이란 말인가. 삐닥하게 보면 그렇지만 영화란 현실을 구원해주는 도구니 투덜거리지 말고 눈 꼭 감고 모른 척 넘어가자. 이 영화는 계몽영화가 아니라구. 

시나리오가 탄탄하고 무엇보다도 화려한 카메라의 움직임에 깜짝 놀랐다. 원래 발리우드 영화는 다 이런건가, 아님 이 영화가 이런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때깔이 인도 영화라기 보다는 할리우드 영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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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도시 2 - The Border City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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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저러한 이유로 놓쳤던 다큐인데 EBS 다큐페스티벌에서 지난 일요일에 방영했다.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1. 먼저 법의 자의성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국가보안법이란 준거틀 아래서 인간 송두율의 신념은 유죄라고 판결을 받는다. 노동당원이며 북한을 스무 번 방문한 이력 속에 한 개인의 소신이나 신념이 숙고되진 않는다. 그의 소신은 남북한의 평화적 교류를 원했다는데 주입식 이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사회는 그를 간첩으로 규정짓는다.  그의 바람은 외로운 영혼이 조국의 품에 안기는 것이었는데 조국과 조국의 법은 다른 입장이었다. 그가 만난 모든 이가 전향을 권유했다. 전향란 말 속에는 이미 그의 유죄를 인정하는 집단심리가 들어가있으며 전향하면 한국사회는 관용을 베풀거라고..

법을 전달하고 강제하는 건 권력집단이고 네트워크란 말이 있다. 다수의 의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가 질서를 위협하는 모든 행동을 규제하는 게 법이기도 하다. 국가 질서를 위협하는 기준이 애매모호한데, 그리고 애매모호하다고 생각해야 당연한데 다큐 화면에 담긴 모든 이가 법의 확고한 전달자이면서 집행자로 보인다. 수구든 진보진영이든 언론이든 일반인이든 모두 하나였다. 

한 개인의 신념이 적색으로 분류돼 관용을 구해야하는 입장에 대해 분개하는 건 그의 아내가 유일했다. 그의 아내는 전향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표현했다. 송두율 교수는 그저 침묵만 지켰다.

 2. 미디어의 경박함이다. 송두율 교수가 지난한 과정으로 유도한 게 언론이다. 그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한 말이, 가장 실망과 상처를 준 게 언론이라고 말했다. 언론의 경박함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이기까지 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언론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다. 
 

거의 모든 곳에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있는 나라에서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이 다큐에서 인상적인 뉴스 인용을 한다. 시청앞에 있는 건물들에 설치된 LCD화면으로 나오는 두 줄짜리 제목이다. 자세한 상황을 가지치기한 제목은 송두율 씨 간첩, 유죄..이런 극단적 활자화는 정보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한테는 폭탄과 같다. 간략한 활자화는 광고처럼 일방적 수용만을 강요하는 일방통행이다. 바쁜 우리는 아무리 경계해도 때때로 간략한 활자의 편리함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편리함을 이겨내고 언론이 제시한 일방적 정보를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시각을 가지려면,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노출되기를 즐겨야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3. 송두율 교수는 자신의 신념을 뒤로 물러놓고 한국사회가 원하는대로 일단은 일을 마무리지었다. 타향에서 외로운 영혼이 돌아와 쉬기위해 받아들일 관문이라고, 인천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말했다. 일련의 일을 겪으면서도 그 생각이 변함이 없는지 궁금하다. 조국은 정말 뭘까? 

4. 한국에서 겪은 일을 책으로 쓰고 싶다고 했는데, 그의 책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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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 활 - War of the Arr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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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전반부에 박진감있고 후반부에 처지면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사람의 기억력에 한계까 있어서 재밌는 초반부보다 지루한 후반을 비난하기 쉽다. 반대로 전반부가 늘어지고 후반부가 재밌으면 한 시간 정도 하품하며 앉아있던 걸 모두 잊고 웃으면서 극장을 나온다. 이 영화는 지루한 한 시간 이십분 쯤을 버티다보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아쉬움까지도 끌어내는 묘한 영화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재밌기 시작하는 지점은 추격전이 벌어지면서다. 추격전은 기시감을 심하게 준다. 서부영화에서 많이 봤던 추격 대형과 비슷하다. 추격당하는 한 사람과 추격하는 무리가 있다. 추격당하는 일인은 추격자들을 매복해서 볼 수 있지만 추격하는 이들은 늘 한 박자씩 늦는다. 서부영화에서 추격당하는 일인이 살아 남은 이유는 산을 모두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하고 다가오는 이들을 따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런 익숙한 패턴에 무기가 총이 아닌 활이라는 것만 다르다. 활의 위력이 실제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영화 속에서 활은 총 보다도 훨씬 근사한 무기였다.  

화살이 시위를 벗어난 후 화살의 속도감과 돌진하는 소리, 그리고 과녁에 맞았을 때 나는 켱쾌한 소리는 음향을 뛰어넘어 고유한 리듬을 가진 음악같다. 미국 서부가 황량한 산이라 시원하고 매복자와 함께 추격하는 이들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다면 이 영화는 한국지형을 추격 당하는 이와 함께 누벼야한다. 눈 앞은 쭉쭉 뻗은 나무와 골짜기들이다. 추격전을 벌이는 이들의 발걸음을 따라 나무와 바위틈들을 함께 봐야하기에 답답하면서도 쫙 펼쳐진 시야가 주는 긴장감과는 또 다른 긴장감이 있다. 추격하는 이들이 달릴 때 머리가 보였다가 사라져서 공격의 시점이나 사건이 벌어질 시점을 가늠하기 힘들다. 서부 영화에서는 상대가 조준 거리에 다가왔을 때 총의 방아쇠를 당기지만 활은 나무 사이로 목덜미가 드러나면 시위를 당기고 화살은 기다렸다는 듯이 신나게 날아간다. 활을 당기기 전에 화살촉이 클로즈업 될 때는 총을 쏠 때 목표물을 사정권 두고 방아쇠 당길 타이밍을 찾는 것처럼 숨을 죽이고 있게 된다.  

인질들을 밧줄을 공중에서 빙빙돌려 사람 목에 걸어 죽인다. 서부 영화에서 말이나 동물을 잡을 때 카우보이들이 쓰는 방법을 연상시키는데,고증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민간인을 죽이는 아주 잔인한 방법이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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