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사랑 - Incendi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종교나 이념은 인간이 필요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난 믿는다. 전쟁이 필요해서 종교나 이념을 만든 건 아니다. 모든 종교가 화해와 사랑을 기본 교리로 한 건 인간이 화해와 사랑을 갈망하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갈망이란 갖지 못한 혹은 갖기 힘든 대상에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신의 힘을 빌어 사랑과 화해를 추구하는 거 보면 인간은 사랑과 화해에 능숙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영화는 중동지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전을 소재로 삼고 있다. 지난 겨울 모로코에 다녀와서 이슬람교에 급관심을 갖게 됐다. 외부자로서 바라본 이슬람교는 폐쇄적이고 맨날 전쟁이나 테러나 일삼는 교리를 지닌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슬람교 창시자 마호메트는 그런 가르침을 한적이 없다. 오히려 수많은 암살과 싸움 때문에 이슬람교를 창시했고 기본 원리는 '놀랍게도' 평등이었다. 세부적 실천지침도 기독교의 지침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다. 다만 형식적 세부사항들이 그 문화에 조절되었을 뿐이다. 이슬람교가 과거 한 때 세력을 확장할 수 있던 이유도 모든 이들이 평등하다는 원리였다. 십자군 전쟁 당시 기독교의 불평등한 교리보다는 이슬람교의 교리가 훨씬 종교적 품위를 더 유지할 수 있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은 인간의 평등 개념을 바꾸기 시작했다. 같은 종교인만 평등하고 같은 인종만 평등하다. 전쟁의 발단은 이 지점이고 인간은 종교가 태어나던 시기와는 다른 평등 개념을 선호한다. 이 영화는 종교적 이념이 얼마나 부질없는 지 나왈 마르완이란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인인 한 여인의 비극적 일생을 들여다보며 성찰한다.  

2. 역사는 굵직한 사건의 물리적 기록이다. 아무리 비극적 전쟁도 사상자의 수를 적는 게 고작일 수 있다.  현재를 살고는 있는 기독교인들이 오래 전 십자군 전쟁이 뿌리고 거둔 비극의 깊이를 가늠하는 건 힘들다. 그러나 전체 역사에 녹아있는 개인의 역사는 시공을 초월하는 현재성이 있다. 나왈 마르완의 기구한 일생을 통해 종교전 혹은 전쟁의 참상은 비극의 깊이를 오감으로 상상하고 나아가 분노하고 자책하는 일로 이끌어주는 힘이 있다.   

3. 이 영화는 강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인간의 우둔함을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반성하도록 이끈다. 보복이나 전쟁은 또 다른 보복과 전쟁을 낳는다. 비극적 역사의 산 증인이 나왈은 경험과 세월을 통해 이 사실을 깨닫고 아이들한테 관용과 포용은 좋은 일이라는 유언을 남긴다. "과거가 어찌됐건 현재 함께 있는 건 좋은 일"이라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나왈은 분명히 보통 사람은 아니다. 아니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불행을 겪으면 담담해질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삶은 계속 되니까. 보통 사람인 나는, 이성적으로는 용서와 관용이 이상적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또 다른 나는 복수의 화신까지는 아니어도 받은 만큼 갚아줘야하는 게 당연하다고, 한편으로는 믿고 있다. 사람이 둘 중 절대적으로 어느 한 마음으로 기우는 게 가능한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 '무조건적'이란 말을 믿지 않기에 나왈이 보여주는 무조건적 관용 태도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 내 이성과 감정이 충돌하는 걸 지켜봐야하기에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이 불편했다.  

4. 이 영화는 좋은 영화지만 영화적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마지막 반전을 향해 모든 인물이 움직이고 있다. 반전 부분에서 헉,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나오지만 이 모든 걸 교차 편집에만 의존하고 있는 터라 영화가 다 끝난 후에는 조금 허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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