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볼 만한 영화는 모두 봐버려 더이상 볼 영화가 없는 시점. 그래도 발길은 영화관으로 향한다. 어디보자. 썩 맘에 드는 영화는 없지만 봐도 후회는 안할 듯 싶다 싶을 정도의 영화가 하나 눈에 띈다. <블랙아웃>은 그렇게 보게 되었다.

정신의학적 용어로 '일시적인 기억현상'을 뜻하는 '블랙아웃'. 영화 속 모든 사건은 여주인공 제시카(에슐리 쥬드)의 간밤의 기억상실에서 비롯된다. 그녀와 하루밤을 지낸 남성들이 하나둘씩 살인사건의 희생자가 되어 나타나고 모두들 그녀를 용의자로 몰아가는데...

1968년생으로 나보다 딱 11살 많은 그녀가 출연한 영화 중 그다지 성공한 작품은 없다. <하이크라임> <산드라 블록의 행복한 비밀> <프리다> <썸원 라이크 유> 등 들어봤음직 하면서도 그다지 나의 기억창고에 들어있지 않은 리스트들은 이를 증명한다. 물론 내가 보지 않은 영화라 해서 다른 이들 또한 보지 않았다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무리지만. 유일하게 <히트>만이 눈에 들어오지만 여기서 그녀가 나왔던가 하는 의문을 다시 던지게 된다.

<블랙아웃>에서 그녀는 능력있는 강력반 형사이면서 원 나잇 스탠드를 즐기는 개방적인(?) 여성이다. 하루밤 섹스가 나쁘다는건 아니지만 그녀는 병적이라 할만큼 얼굴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많은 남성들과 섹스를 즐긴다. 얼마나 심할 정도면 영화 중 바텐더로 나오는 할아비가 그녀를 향해 "난 당신이 창녀인줄 알았수"라는 멘트를 던졌겠는가.

영화는 범인색출에 있어 한번의 반전을 던져주지만 또다른 반전이 있을거라는 기대를 하는 순간 엔딩 크레딧이 오른다. 아 이 허무함이여. 역시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고 본 영화고 그다지 실망시키지 않았지만 그다지 기대이상의 무엇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단지 애슐리 쥬드와 사무엘 잭슨이 나온다는 이유로 봤던 영화. 나중에 비디오로 즐겼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과 함께 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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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철학교육
서울교육대학 철학연구동문회 엮음, 이초식 감수 / 서광사 / 198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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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년에 출간된 책으로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간혹 헌책방 어딘가를 드나들런지는 모르지만 인터넷 서점에서도 서울의 대형서점에서도 이 책은 더이상 찾아 볼 수 없다.

 지난 4년간 나 혼자만 머리 속에서 대화하고 사색하는 '혼자만의 철학'을 해온 나는 철학교육연구소에서 다수가 참여하는 철학을 접하고는 굉장한 충격과 희열감을 느꼈다. 이런 교육이 가능하구나. 머리 속으로는 언제나 이런 교육을 꿈꿔왔었다. 막연하게. 그러나 내가 머리 속에서 그려왔던 그것을 현실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는 줄은 몰랐다.

 <어린이를 위한 철학교육>은 철학교육연구소의 교육이 가능하게 한 일종의 지침서, 매뉴얼 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이 책의 원본은 미국어린이철학교육연구소인 아동철학개발원 IAPC(Institute for the Advancement of Philosophy for Children)의 이론적 배경과 교수방법을 다룬 책이다. 그리고 1980년대에 서울교대 철학연구동문회 출신들이 모여 함께 번역하고 엮어내고 우리나라 철학계에서 한 축을 담당하신 이초식 교수의 감수를 통해 나온 결과물이 이것이다.

 어린이와 철학을 한다라고 하면(어린이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것과는 다르다) 대개의 사람들은 어린이가 무슨 철학을 하느냐며 그 발상부터 의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경험해본 바 어린이도 철학이 가능하다. 다만 교육에 있어서 목표를 달리하면 될 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과 고학년이 다르고, 중학생이 다르고, 고등학생이 다르다.

 7차교육과정의 영향인지 최근들어 독서교육, 토론교육, 논술교육이 붐이다. 다른 학원들은 EBS 강좌 때문에 다 망하는 판에 이상하게 이 분야 만큼은 이상과열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편으로는 바람직해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스럽다. 제대로 된 독서토론, 논술 교육이라면 과열되어도 나쁠 건 없다. 애초 교육이 목표해야할 바는 이런 쪽이어야되지 않았나 생각하니깐 말이다. 아무리 달달외우는 공부 해봐야 정작 지식을 습득하고 재창조해내지 못한다면 발전이 없다. 우리가 책을 읽고 거기서 어떤 생각을 이어나가고 다른 사람과 토론하고 사색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지식을 재창조해낸다.

 이는 다 자란 성년이나 어느 정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숙한 청소년 뿐 아니라 어린이에게도 가능한 교육이다. 그들은 사고가 열려있다. 나이를 먹고 학교에서 주입식 교육, 입시교육을 받으면서 관심분야가 축소되고 오로지 그것을 위해 매진하게 된다. 어린이에에게는 그런 부담감이 없다. 그들은 깊이있지는 않더라도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수업 중 그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들을 들어보며 놀라움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어린이를 위한 철학교육>은 이러한 교육을 위한 일종의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고, 교육방법적 측면에서 이와 같이 접근한 책은 아직 보지 못했다. 이미 절판이 되었지만 누군가가 원본을 완역해 다시 낸다면 많은 관심을 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은 제 1부 사려깊은 어린이를 위하여, 제 2부 어린이를 위한 철학의 목적과 방법, 제 3부 교육현장에서의 사고기술의 적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부에 3-4개씩의 작은 장들이 속해있다.

 철학교육이 무엇이고, 철학교육을 왜 해야하는지, 철학교육을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어떻게 교육해야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으며, 부록으로 철학소설 해리 스토틀마이어의 발견 1과를 담고 있다.

 아주 오래전에 편역된 책이라 그 서체가 매끄럽지 않고 옛날식 어투 분위기를 풍기는 점이 독서중 거슬리는 점이기는 하지만 이후 개정본이 나오지도 않았고, 누군가 새로 번역하지도 않은 판에 그런 정도의 작은 불편함은 감수하고 읽어야 한다. 내용이 어렵지도 않고 책이 두껍지도 않다. 작정하고 달려들 것 없이 편안하게 쉽게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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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레교습소. 영화개봉당시 여자주인공 김민정의 매력에 빠지고 싶어 보고싶었던 영화였다. 봐야지 하며 차일피일 미룬 것이 이제 접하게 되었다.

<발레교습소>의 감독 변영주는 내겐 낯익은 얼굴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를 개인적으로 잘 안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내가 관심갖고 있는 감독 중 한명이라는 말이다. 내가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영화 <밀애>를 통해서였다. <밀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건 아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기 전부터도 그녀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영화가 섹스에 있어서 남성중심적이었다면 그녀는 <밀애>에서 여성중심적인 섹스를 그려냈다는 세간의 평이 그것이다. 그녀가 감독으로 나선 작품들이 몇 안되고 그것들이 또 상업적인 흥행으로 이어지지도 않은지라 관심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녀를 알리가 없다.

<밀애>에서 여성중심적 섹스를 그렸다면 그녀는 <발레교습소>를 통해서는 하기 싫은 것은 분명하지만 하고 싶은게 뭔지 모르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담아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청소년들이 이유없는 반항을 하면서도 정작 니가 원하는게 뭐냐? 라는 질문을 던지면 선뜻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들의 반항이 무조건적으로 잘못된 것이다라는 말은 아니다. 그들의 반항은 이유가 없을 때도 있지만 이유가 분명할 때도 있다. 내가 싫은 것이 확실할 때 그들은 반항한다.

나도 그랬다. 계속되는 감옥같은 학교 생활이 싫었고, 매번 반복되는 모의고사와 성적표, 이어지는 상담. 그런 것들이 싫었다. 그래서 때로는 모의고사 첫 시간에서 시험보기를 거부한 적도 있고, 일부러 학교 중간, 기말고사 특정과목에서 문제를 보지도 않고 OMR카드에 1,2,3,4,5를 고루 찍어 내기도 했다. 결국 그런 행위로 인한 피해는 내가 고스란히 감당하게 됐지만 어쨌든 나에겐 나름대로 이유있는 반항이었다.

비행기 기장인 아버지는 항공대가 가라하지만 민재는 항공대에 가기 싫다. 항공대에 갈 성적도 안된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점수 맞춰 넣은 대명대 조경학과에 합격. 그러나 기쁘지는 않다.

동완이와 창섭이 역시 마찬가지. 춤을 추고 싶다고는 하지만 막상 사회에 부딪히니 내가 춤을 춰야하는건지, 내가 춤을 좋아하기는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다른 길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막노동판으로 이동.

결국 영화는 예상대로 발레교습소에 모인 이들이 함께 구립회관에서 발레공연을 하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만 이후에도 이들이 발레에 대한 열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마이너리티 인생을 사는 이들의 인생역전기도 아니고, 그저 함께 모여 작은 뭔가를 이룬 것 뿐. 영화는 지극히 밑바닥을 떠돈다. 그래서 즐겁지는 않다. 이들이 느끼는 작은 행복조차도 가련하게 보이는 것은 작은 행복 뒤에 올 희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해피엔딩은 기쁨이 아니라 가련함, 안쓰러움으로 내 가슴속에 남게 된다.

한마디
애초 이 영화를 본 목적은 달성했다. 김민정은 역시 그녀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보여주었고, 난 그 매력에 충분히 빠졌다. 영화 <버스정류장>, 드라마 <아일랜드>에서의 그녀만의 우울하고 고독한 이미지를 여기서도 고수했다. 한 배우가 하나의 이미지로 굳히는 것은 기획사에 의한 상업적인 전략일 수도 있지만 그 배우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은주의 경우가 그러했고, 김민정과 양동근, 이나영의 경우도 후자에 포함된다고 본다. 난 이미지 자체가 그 배우의 삶인 배우들이 좋다. 그들은 적어도 배우로서의 다양함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삶에는 충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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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4-10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영화 감독이 변영주였나요? 관심이 가는군요.

비연 2005-04-11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에 관심많은데..^^

마늘빵 2005-04-11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레교습소 유쾌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영화이지만 볼만합니다. 비주류들의 삶을 다룬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예를 들면 <고양이를 부탁해>같은.

2005-04-14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연애를 하고픈 이들이여 이 영화를 보라." 라는 선전문구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관객에게 먹혀들어가는 영화. 누구나 멋진 연애를 꿈꾸지만 사실상 연애에 성공적인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많진 않은 듯 하다. 어쩌면 내 주변인들에게 국한된 이야기인지도 모르지만 말야.

내 주변 사람들 중 커플, 즉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가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언제나 커플보다는 솔로가 수적으로 월등하게 앞선다.

모든이들이(?) '커플천국 솔로지옥'을 외치며 자신의 짝을 만나기를 소원하지만 언제나 이들의 머리속을 떠도는 이상형은 현실에서 찾기란 힘들다. 이상형이 아니어도 눈에 꽂히는 필받는 인연이라도 좋다. 그런데 그런 인연조차도 쉽게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나의 짝을 만나는 것은 운명일까, 아니면 내가 개척해야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좋겠다.

<미스터 히치>는 위와 같은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내 짝을 만나기 위해서 난 끊임없이 부단한 노력을 해야합니다라고 말이다.

히치의 직업은 데이트 코치다. 하지만 그는 단지 심심풀이 만남을 원하는 이들은 철저히 배제한다. 정말 사랑에 눈이 먼 이들이 사랑에 성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만을 가르쳐준다. 히치로 인해 많은 남성들이 사랑에 골인하지만 정작 히치는 작업을 못한다. 작업을 거는 것마다 실수투성이고 꼬여버린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했던가. 히치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하지만 히치의 작업비법은 먹히지 않았지만 히치의 진심어린 마음이 먹혀들었는지 여자는 히치를 받아준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보자. 사랑에 골인하기 위해서는 연애기술이 필요한 걸까, 아니면 진심어린 마음이 필요한 걸까?

영화는 당연히 진심어린 마음이 먼저라도 대답을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미심쩍다. 마음만 있으면 될까? 연애기술은 상관없을까?

자 이제 이에 대한 대답은 당신들이 연애를 하면서 깨우치길 바란다. 마음만 있으면 될지 연애기술도 필요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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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5-04-10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치, 그녀?! no ---> 그

마늘빵 2005-04-11 0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제가 왜 그녀라 했는지 모르겠네요. 고쳤어요.
 



 

 

 

 

  <여자 정혜>의 포스터와 예고편을 처음 접한 순간, 참 잔잔하다라는 느낌이 다가왔다. 그때 <버스정류장> <생활의 발견> <오 수정>과 같은 영화들이 즉각 내 머리 영화데이터에서 뽑아져 나왔고 이런 영화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기회가 되면 봐야지 하고 마음 먹고 있었다.

 서울극장에서 제일 작은 곳인 12관에서 봤는데 평일 낮인지라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극장도 아담하니 작고 빈자리가 많아 자리를 골라 앉을 수 있었다.

 <여자 정혜>는 내 예상대로 잔잔하게 마음 속에 다가오는 영화였다. 김지수의 일상에서 작은 세세한 부분들을 카메라에 담고 약간은 무기력한 삶을 사는, 하지만 그것이 우리들의 삶의 전형이기도 한, 그런 모습들을 많이 담아냈다. 쇼파에 누워 티비를 보고, 알람을 맞춰 일어나고, 직장에 나갔다가 들어오고, 길을 걷고...

 그녀는 한번 결혼했지만 첫날밤을 치루고 도망왔다. 과거의 경험들과 현재의 사건들이 교차되면서 영화는 말없이 관객에게 그녀의 행동의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리고 나는 이해한다.

 영화에는 대사가 거의 없다. 대사가 있어도 단편적이다. 단편적인 대사는 관객에게 아무것도 전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일상으로 다가가 포착하는 영상은 말하지 않아도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이 영화는 지극히 비상업적이다. 마치 영화주인공이 김지수가 아니었다면 아무도 이 영화를 보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각종 국제영화제나 예술영화들을 찾아다니는 매니아들을 제외하고는. 나 역시도 김지수를 보러 왔던 것이고.

 생각만큼 잔잔했고 생각만큼 단순했으며 생각만큼 지루했다. 거기서 더 나아가지도 않고 덜 하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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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5-03-25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중에 비디오를 빌려다봐야 할 것 같은데... 혹시 동양화 같은 영화인가요?

마늘빵 2005-03-26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양화라기엔 아닌듯 싶고 흠... 제가 위에 말한 <생활의 발견>과 같은 카메라 포착이라고 보시면 되요. 내용은 다르지만 화면이 담아내는 위치가 그것과 비슷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