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레나타 살레츨 지음, 박광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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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한국어판 서문
선택 이데올로기의 역설은, 현실에서 선택의 여지가 점점 더 줄어든다 할지라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자기 잘못이라고 믿어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13-14
어떤 인생을 선택할까 궁리하느라 실제 살아가는 일 자체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새뮤얼 존슨의 “라셀라스” 30장에서 이믈락이 라셀라스에게 하는 말)

“선과 악, 행과 불행을 결정하는 원인들은 너무나 다양하고 불확실하며 또 서로 뒤엉켜 있을 때가 참 많습니다. …… 따라서 삶의 진로를 결정하기 위해 어떤 확고하고 절대적인 선택 기준을 찾으려는 사람은 아무리 평생 동안 궁리하고 모색해도 결코 그것을 찾지 못한 채 죽어 버릴 겁니다. …… 인생을 스스로 선택해서 사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예측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순응하고 싶지 않았던 원인들에 이끌려 현재의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랍니다.”(새뮤얼 존슨, “라셀라스” 중 어떻게 하면 최선의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느냐는 왕자의 질문에 대한 이믈락의 답변)

15 서론
개인은 자기 삶의 세세한 모든 것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궁극적 주인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소비 사회는 우리에게 상품을 선택하라고 요구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결정과 선택들의 혼합물로 보라고 말한다.

26
이 책의 목적은 우리가 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생각, 그리고 ‘자기만의 모습을 찾아라’라는 명령이 어떻게 우리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동하기 시작했고,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더 불안하고 더 탐욕스럽게 만들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28
자신의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고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하는’ 일에 힘쓰는 동안 우리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전망을 잃어버리고 만다. 또 자기 계발에 몰두함으로써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과 능력도 상실하고, 왠지 실패하고 있다는 느낌에 늘 불안해한다.

31
선택은 우리가 갖고 있는 강력한 기제로 정치적 개입과 정치적 과정 전반의 토대가 된다. 하지만 선택이 개인적 삶을 꾸려 나가는 데 필요한 궁극의 수단으로 찬양될 때, 사회적 비판의 여지는 거의 사라지고 만다. 개인적 선택에 집착하는 동안 우리는 선택이 결코 개인적이지 않으며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55
자기 계발서와 관련해 결정적인 점은, 분명히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갈구하는 독자들이 엄청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계발서는 더 행복하고 정신적으로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자기 계발서가 이룬 실제 결과이다. 다시 말해 이런 책들은 불행을 없앤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은 어디에나 만연해 있다는 생각을 강화했다. 자기 계발서는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결점들과 부족함에 관심을 집중시켰고 늘 자기 결함에 노심초사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자기 계발을 추구한다.

58
코치의 지도 아래 학생은 삶을 지배할 수 있다고 배운다. 하지만 역설적인 점은, 학생이 코치에게 복종하고, 자신의 환경에 순응하는 법을 코치에게서 배워야만 자기 삶에 대한 지배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단속사회 -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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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내가 글과 말을 팔아먹고 살면서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은 ‘곁’과 ‘이야기’다. ‘곁’은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듣는’자리에 가깝다.

7
지금 우리 곁에는 말을 듣는 사람이 점점 사라져가고 자기 말을 들어달라는 사람만 가득하다. 자기 말은 호소하고 싶은데 남의 말을 듣는 것은 힘들어지면서 사람들은 힐링이니 상담이니 하는 사적이고 상업적인 자리라 재빠르게 몰려갔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반응하며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반응은 꼭 친절하지 않아도 좋다. 오히려 호통치고 야단칠수록 마치 그것이 애정의 표현이고 관심이며 깨달음을 주는 죽비소리인 듯 여겨진다. 말할 수 있는 곁이 사라지자 이처럼 돈 내고 야단맞으러 가는 세상이 되었다.

49
하승우는 일제 식민 권력이나 이후 독재 정권이 가장 두려워한 것이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었고 회의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말 많으면 빨갱이’라는 표현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은 곧 이견을 제시한다는 것이고, 이견을 제시한다는 것은 자신이 지금 ‘불편하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표현하고 힘을 모으는 과정이었는데, 그동안의 권력은 그것을 불온시해왔다.

57
사람은 말하는 것을 통해서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이 ‘말’을 체계적으로 구성하면 바로 ‘의견’이 된다. 의견을 제시하는 대신 침묵해버리는 것, 이로 인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정치적 행위는 결정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75-76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우리 사회에는 이미 정해진 길이 있다. 성취와 발달이라는 이름의 이정표다. 몇살까지는 뒤집기를 해야 하고 몇살까지는 옹알이를 해야 한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는 연애도 하지 말고 오로지 공부만 해서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대학 이후의 삶에서도 언제까지는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식으로 성취요건별 시기가 통념화되어 있다. 이 발달의 이정표를 따르지 못하면 낙오자, 실패자가 된다.

109
개인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것이다. ‘나’라는 개인은 다른 누구하고도 다른 자기만의 독특함을 지닌다. 이 독특함은 다른 어떤 특성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것이어야 하며 다른 것으로 강제로 환원하려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110
우리는 기본적으로 ‘네’하며 순종하는 주체가 아니라 ‘아니오`라고 반발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네`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그 말을 한 사람에 종속되는 부차적인 존재가 된다.

125-126
관계도 사라지고 프라이버시도 없는 이 공간에서의 삶을 버티게 하는 것은 오로지 아파트의 자산가치다. 단독주택이나 다른 주거는 값이 오르지 않는 데 반해 아파트만 값이 올랐다. 그러니 ‘입주자’로서의 의식보다는 ‘소유자’로서의 의식이 더 강하다. 그 결과 사생활을 대신한 것은 소유 의식이다. 소유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생활을 누린다고 착각한다. 주거지가 아니라 자산가치로서의 아파트는 그 어떤 괴로움도 참을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살 것이 아니라 언제든 값이 오르면 팔아치우고 이곳을 탈출하여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141
‘함’이 지나칠수록 인간에겐 생각할 틈이 줄어든다. 생각할 공간, 즉 내면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함이 과잉된 인간에게 내면의 풍요, 즉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함을 통해 만족을 얻는 것이 전부다. 이처럼 행복이 아니라 만족이 삶의 목적이 된 존재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소비를 통해 만족을 추구하는 삶에 질문이 들어설 여지는 없다.

187~188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에서 보편성을 발견하려 하기보다는 개별적인 상담만을 추구한다. 사적인 것을 공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인 것을 사적인 것으로 남겨놓은 채 개별적인 해결책만을 바란다. 그렇다면 이 ‘힐링과다’ 시대에 멘토란 뭘 하는 사람들일까. 그들은 개별적인 경험을 보편적인 것으로 이끌어내는 안내자가 아니라 어쩌면 개별적인 맞춤형 상담사에 불과한 것 아닐까.

236~237
점검하는 삶은 자신의 확신을 괄호로 묶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삶이다. 배움에 주저함이 없는 삶, 배움을 위해 타자와의 만남에 주저함이 없는 삶이 바로 이 ‘점검하는 삶’이다.



 
 
 
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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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뉴스는 사회의 악행을 폭로하고 그 고통을 직시함으로써 사회를 돕는 한편, 선함과 용서와 분별력을 충분히 갖춘, 구성원들이 기여하기를 원하는 가상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중요한 임무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85-86
헤드라인 밑에서 자신만만하고 냉정하게 자신의 중요성을 내뿜고 있긴 해도, 우리가 읽는 기사들은 천사들의 비밀회의 후 나온 초자연적인 칙령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라 전망 좋은 사무실에서 머핀과 커피를 앞에 놓고 골치 아픈 회의를 해가며 그럴싸하게 기사 목록을 만들고자 분투하는, 보통은 다소 피곤에 절고 압박에 시달리는 편집자 집단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기사 제목은 현실에 대한 궁극적인 설명이라기보다는, 우리와 똑같이 편견, 실수, 미혹에 시달리는 필멸의 존재인 편집자들이 무엇이 정말 중요할까라는 질문에 맨 처음 떠올린 생각을 통해 정해진다. 우리 종족에게 날마다 닥칠 수억 건의 잠재적 사건들의 웅덩이 속에서 솟아오른 어림짐작 말이다.

86
개개의 뉴스들 역시 뉴스 브랜드의 비호 아래 전달됨으로써 힘을 얻는다. 탁자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이 제기했다면 우리가 보다 철저하게 검토하려 들었을 의견들이 특정한 언론사 이름 아래 있기만 하면 거의 신화적인 힘을 획득할 수 있다.

197
시기심은 언제나 맹렬한 도덕주의적 비판의 표적이 되어왔지만, 이는 품위 있는 삶에 꼭 필요한 감정이기도 하다. 시기심은 신중해져야 한다는 신호다. 이 감정에는 우리 인격의 혼란스럽지만 중요한 부분에서 보내온,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뒤틀린 메시지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시기심을 주의깊게 응시하는 건 우리가 진정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고통스럽지만 꼭 필요한 발걸음을 떼는 데 도움이 된다.

시기심은 처음에는 굴욕감과 열패감을 동반하며 일어나는 감정이지만, 이를 통해 우리가 시기하는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질문을 가만히 던질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이 감정을 통해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

208
만약 그들(유명인들)이 이런 유의 관심, 즉 저질스런 관심이라 일컬을 만한 것에 불평이라도 할라치면, 사람들은 이내 근엄한 척 굴면서 그들의 분수를 깨닫게 해준다. 대중의 환심을 얻으려 하는 자는 자기에게 어울리는 관심을 고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러니 어떤 관심이든 감사히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217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뒤 자기 눈을 후벼판 남자의 이야기(오이디푸스 왕), 동생의 아내가 저지른 부정에 대해 복수하려는 계획의 일환으로 자기 딸을 살해한 남자의 이야기(이피게네이아),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려는 부정한 남편의 계획을 망치고자 자기 아이 둘을 살해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메데이아) 등을 보라.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35년경에 저술한 “시학”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고상한 사람이라면 응당 피해야 하는 기괴한 구경거리로 간주하는 대신, 이런 이야기에 끌리는 인간적 매혹을 관대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그러한 이야기들이 잘 쓰이고 솜씨 좋게 상연될 경우, 사회 전체의 정서적이고 도덕적인 교육에 결정적인 자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거기 묘사된 잔혹행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들은 사람들을 교화하는 힘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올의 교육입국론 - 혁신교육감시대를 위한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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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우리가 지금 ‘도덕’이라는 말을 서양말의 모랄리티에 해당하는 말로서 의식 없이 쓰고 있는데, ‘도덕’이라는 말은 본시노자의 사상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것은 도와 덕의 합성어이다. “도덕경” 51장에 보면, “도는 생하는 것이고 덕은 축하는 것이다.”라는 함축된 명제가 있다. 도는 생생하는 천지 그 자체를 일컫는 것이라면 덕이란 그 천지의 생생지덕을 몸에 축적해 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도는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그것은 교육의 대상이 아니다. 교육이란 축적해 나가는 과정, 즉 덕의 측면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59-60
평균적 가치의 시민상의 핵심을 ‘자유’로 생각하는 것은 거대한 오류이다. 민주는 오직 성숙한 인간의 관계망 속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도덕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민주 사회 제1의 명제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시민의 제1의 덕성은 자유가 아니라, 협력이다.” 자유는 소극적 가치이며 협력은 적극적 가치이다.

60
시민은 개인의 모든 덕성을 포섭하지만, 반드시 협력을 전제로 해야만 시민다움을 구현할 수 있다.

64
서울대학은 학부가 폐지되고, 그 전체가 새로운 고등 교육기관으로 승격되어야 하며, 전국의 국립대학이 국립서울대학 부산캠퍼스, 광주캠퍼스, 대구캠퍼스, 전주캠퍼스, 제주캠퍼스, 청주캠퍼스, 대전캠퍼스, 춘천캠퍼스…로 통합된다. 그리고 전국 국립대학의 등록금은 사립대학의 3분의 1이하가 된다. 그리고 교수들에게는 정당한 재원이 지원되며 주기적으로 각 캠퍼스를 따라 이동한다. 우수한 교수들의 이동은 대학을 평준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학생은 통합시스템 속에서 학점을 자유롭게 트랜스퍼할 수 있다.

76
인간이 소유를 통하여 삶을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형성한다는 꿈은, 결국 소비를 조장하는 극소수 대기업과 그 기업과 결탁된 관료제의 폭력이 조작하는 자국민의 식민지화정책의 일환일 뿐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면 허망한 것이 되고 만다. 소유모드에 빠져있는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이 자기가 소유하는 것의 양과 질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에 되도록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소유하려고 하며, 이를 위하여 힘을 필요로 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힘의 요청이 ‘여민동락’을 거부하는 ‘독락’의 폭력 사회를 요청하게 되는 것이다.

77
자율이란 반드시 교육을 통하여 달성되는 교양이며 이 교양의 집합을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81-82
나는 우리나라의 사범대학제도와 교사임용고시제도를 전면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대학에 문리과 대학의 국문과, 물리학과와 사범대학의 국문과, 물리학과가 2원적 구조로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 대학에서는 무전제의 순수학문을 전공하고, 교사의 임용은 대학원 레벨의 고등교육기관의 심오한 훈도를 받은 자들에게 자동적으로 허락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100
교사의 자질을 결정하는 두 가지 위대한 덕성이 있다. 그 첫째는 학생들에 대한 따사로운 인간적 사랑이다. 학생들을 인격적 개체로 존중하고 그들의 마음상태에 이입하는 정서적 폭을 갖춘 인격이다. 둘째는 자기가 소유한 지식과 자기가 신념으로 생각하는 정당한 가치를 가급적인 한 효율적으로 학생에게 분유시키고자 하는 지적 열정이다.

102
국민의 의견이 획일주의적으로 통일되면 국가가 강해진다는 생각은 모든 우파적 성향의 꼴통들이 지니는 독단이다. 의견의 제일성은 국가멸망의 첩경이다.



 
 
 
노동자, 쓰러지다 - 르포, 한 해 2000명이 일하다 죽는 사회를 기록하다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7
희정 지음 / 오월의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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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 법 형식상으로는 자본가와 대등한 입장에서 노동 계약을 맺으며, 경제적으로 생산 수단을 일절 가지는 일 없이 자기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삼는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등록된 노동자에 대한 정의이다. 이 글을 쓰는 나는 노동자이며,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노동자일 확률이 매우 높다. 사무실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일을 하는 사람도, 사람들 잠든 새벽에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미화원도, 갖가지 먹을거리로 진열된 대형 마트의 계산원도, 편의점 시간제 직원도 모두 노동자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기업에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한다.


그런데 어떤 노동자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어떤 노동자는 제 노동력을 제공하고 돈을 벌지만 개인 사업자로 등록되어 있고, 어떤 노동자는 자신을 향한 모욕과 폭력에도 미소를 지으며 일하고, 어떤 노동자는 일하다 다치거나 병에 걸려 죽는다. 


“스웨덴 사람에게 ‘일하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사람이 일하는데 왜 죽느냐’고 의아해했다. 나는 당시 그 답변이 한국의 상황과 너무 달라서 충격을 받았다.”(노동건강연대 임준 교수)


“지구상 어딘가에 노동자가 일하다 죽지 않는 나라가 있다면, 한국에서도 사람이 일하다 죽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 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먹고 살려고 일을 하는 이들이 일하다 죽는 사태가 벌어져서는 안 된다. 이 책은 일을 하지만 돈을 벌지 못하고, 일을 하다 다치고, 일을 하다 죽는 사람들을 썼다. 


신문 기사나 텔레비전 뉴스, 각종 시사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에 쓰여 있는 내용들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넘어선다. 가령 이런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안 되는 것 두 가지가 있다. 산재 신청과 노조 활동. 퀵서비스와 택배 기사들은 분명 노동자다. 그런데 이들은 산업 재해를 신청할 수 없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이 개정된 뒤에나 신청 자격이 생겼지만, 산업 재해를 인정받기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의료보험, 연금보험은 맨날 적자라고 그러잖아요. 고갈된다고. 그런데 국가가 관리하는 보험 중 산재보험만 흑자예요.”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얼마 전 2014년 7월 현재 포털에서 ‘건강보험 인상’이라고 치면 다음과 같은 기사 제목이 뜬다. ‘2016년 건강보험 적자 전환 전망, 건보료 인상될까?’(파이낸셜 뉴스), ‘건강보험 2년 뒤 적자 예상, 건보료 대폭 인상 우려’(JTBC) 등 다른 언론사들도 비슷한 제목을 달고 있다. 어느 기사에서 공단 관계자는 “앞으로 5년 동안 건보료 인상률을 연 1.35%로 가정하고 4대 중증질환 보장 확대 등 국정과제 계획에 따라 지출이 늘어나는 것으로 계산하면 적자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건강보험 인상 우려에 대해 그 이유를 말했다. 공단이 적자를 보는 데에는 공단 관계자의 말과 같은 요인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유도 있다. 


“2011년 근로복지공단은 1조 원가량 흑자를 냈다. 우스운 이야기로, 조선소 지역에서 산업재해를 밝혀내는 유일한 국가기관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라고 한다. 산업재해를 당해놓고도 산재보험이 아닌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이들이 많아, 적자에 시달리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런 환자들을 찾아내어 산재신청을 종용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일하다 다친 노동자들이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청해봐야 되지도 않을 뿐더러 신청하면 기업에서 나쁘게 생각하여 제 일자리가 사라질 거라고 예상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아마도 예상이 아니라 현실일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미 이전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내가 일하다 다친 것이 분명하지만 그런 티를 내서는 안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 외주 노동자이기에 언제든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때문에 그들은 산재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을 적용받아 치료한다. 


한 철도 노동자가 야간 선로 작업 중 열차 파편에 맞아 죽었다. 그러나 동료들은 구급차를 부르지 않는다. 허가받지 않은 작업이었고, 안전장비도 갖추지 않은 상황에서 인명사고가 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렵게 구한 일자리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죽은 동료를 선로에서 먼 곳으로 옮긴다. 선로 사고가 아닌 것처럼 위장하기 위하여.

다행스럽게 이것은 현실이 아닌 영화 ‘네비게이터’의 내용이다. 그런데 이 내용을 읽다가 현실처럼 느꼈다면 우리 현실에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 실제 이보다 더 한 일이 벌어졌다. 코레일테크 산하 협력업체 노동자 다섯이 야간 선로 작업을 하다가 순간 덮친 불빛에 목숨을 잃었다. 이미 지나갔다고 여긴 열차가 그들을 친 것이다. 작업자 과실을 외치던 철도 공사의 주장과 달리 그들은 작업 장소에 대한 정보, 안전 장비를 제공받지 못했다. 

 

영국에서 한 회사에 대해 기업 살인법으로 유죄 판결을 내린 판사는 판결문에 이렇게 덧붙였다. “벌금 때문에 회사가 파산한다 해도 이것은 불행하지만 필연적인 결과다.” 한국 사회라면 어떨까. 노동자 스스로 산재 신청을 꺼리게 만들고, 산재 신청을 해도 인정되지 않는 나라에서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이 책을 구입하고 첫 장을 넘기면서 발을 떼 보자. 

 




5
300여 명이 탄 배가 바다로 가라앉고
구조라는 말이 무성해도 살아 돌아오는 사람은 없을 때,
거대 기업의 조선소에서 8명의 노동자가 차례차례 죽어나갈 때,
나는 이 책이 소꿉장난 같다고 생각했다.

어떤 행위도 어떤 사물도 노동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커다란 선박과 이를 관리하는 안전 시스템 또한 노동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그 노동의 어딘가가 고장 나면
배는 가라앉고 누군가 목숨을 잃는다.
지금도 삐걱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노동에,
그리고 목숨을 잃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50
“의료보험, 연금보험은 맨날 적자라고 그러잖아요. 고갈된다고. 그런데 국가가 관리하는 보험 중 산재보험만 흑자예요.”
2011년 근로복지공단은 1조 원가량 흑자를 냈다. 우스운 이야기로, 조선소 지역에서 산업재해를 밝혀내는 유일한 국가기관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라고 한다. 산업재해를 당해놓고도 산재보험이 아닌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이들이 많아, 적자에 시달리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런 환자들을 찾아내어 산재신청을 종용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이런 아이러니는 산재를 은폐하는 기업과 이를 방조하는 국가 덕분이다.

57-58
노동안전보건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물은 적이 있다. 인간이 일하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냐고. 그는 ‘감수성’이라 대답했다. 안전장치와 관리 감독과 구조와 시스템을 제치고, ‘감수성’이라니.
그는 인간이 일하다 죽는 것을 아파하는 감수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대답이 오래 남은 까닭은 죽음을 하찮게 보도록 연습되어진 우리 삶 때문이다.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사회보다 더 문제는,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다.

86
원칙적으로 모든 산재는 예방 가능하다. 사람이 실수하더라도 사고가 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산재 예방의 기본이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환경과 구조를 만들어놓고 노동자 실수 운운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 건설 현장에서 어쩔 수 없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면, 왜 유럽 주요 나라 건설 현장에서는 사고가 적은 것인가? 문제는 한국 노동자의 ‘안전 불감증’이 아니다. 한국 기업의 노동자 생명과 건강에 대한 책임 회피, 속도 경쟁, 실적 위주의 관리와 운영이 문제인 것이다.(2012년 최악의 살인 기업 시상식)

142
우리의 역할은 기업이라는 논에 키워지는 미꾸라지이다. 눈을 감고, 메기에게 쫓겨 숨이 차고 지느러미에 경련이 일 정도로 아팠던 헤엄질을 떠올려보자. 위험을 가까스로 피했을 때 대신 메기 입으로 빨려 들어간 동료를 떠올려도 좋다. 죽지 않기 위해 지금보다 더 빨리 헤엄치기만 한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통통한 몸이라는 단기적인 실적과 짧아진 수명뿐이다.

321
감정 노동은 노동 시장에서 여성의 위치와 맞물리면서, 재미있지만 씁쓸한 경로를 그린다. 얼굴과 젊음마저 하나의 서비스가 되는 20대 여성은 주로 화장품 등의 판매직에, 육아와 병행을 할 경우가 많은 30~40대 여성은 콜센터에, 젊음을 잃은 40~50대 여성은 마트 판매직으로 간다. 그리고 더 이상 사회가 그들에게 젊음의 싱그러움, 환한 웃음과 같은 서비스를 요구하지 않은 나이가 되면 청소, 식당 노동자로 또는 어머니의 역할이라 믿어지는 간병인, 산모 도우미 등 돌봄 노동자로 변모하게 된다.

352-353
영국에서 ‘기업살인법’으로 첫 유죄판결을 받은 기업은 지질환경측정회사였다. 노동자가 시험 광구에서 샘플을 채취하다 웅덩이에 빠져 사망한 것이다. 기업에 부과된 벌금은 38만 5,000파운드(한화 7억 원)였다.
당시 판사는 판결문에 이 말을 덧붙였다.
“벌금 때문에 회사가 파산한다 해도 이것은 불행하지만 필연적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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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비용’의 문제로 다가가는 것이 기업이다. 안전을 책임지지 않았을 때 자신들이 져야 할 부담이 크다는 것을 말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