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교습소. 영화개봉당시 여자주인공 김민정의 매력에 빠지고 싶어 보고싶었던 영화였다. 봐야지 하며 차일피일 미룬 것이 이제 접하게 되었다.

<발레교습소>의 감독 변영주는 내겐 낯익은 얼굴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를 개인적으로 잘 안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내가 관심갖고 있는 감독 중 한명이라는 말이다. 내가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영화 <밀애>를 통해서였다. <밀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건 아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기 전부터도 그녀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영화가 섹스에 있어서 남성중심적이었다면 그녀는 <밀애>에서 여성중심적인 섹스를 그려냈다는 세간의 평이 그것이다. 그녀가 감독으로 나선 작품들이 몇 안되고 그것들이 또 상업적인 흥행으로 이어지지도 않은지라 관심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녀를 알리가 없다.

<밀애>에서 여성중심적 섹스를 그렸다면 그녀는 <발레교습소>를 통해서는 하기 싫은 것은 분명하지만 하고 싶은게 뭔지 모르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담아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청소년들이 이유없는 반항을 하면서도 정작 니가 원하는게 뭐냐? 라는 질문을 던지면 선뜻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들의 반항이 무조건적으로 잘못된 것이다라는 말은 아니다. 그들의 반항은 이유가 없을 때도 있지만 이유가 분명할 때도 있다. 내가 싫은 것이 확실할 때 그들은 반항한다.

나도 그랬다. 계속되는 감옥같은 학교 생활이 싫었고, 매번 반복되는 모의고사와 성적표, 이어지는 상담. 그런 것들이 싫었다. 그래서 때로는 모의고사 첫 시간에서 시험보기를 거부한 적도 있고, 일부러 학교 중간, 기말고사 특정과목에서 문제를 보지도 않고 OMR카드에 1,2,3,4,5를 고루 찍어 내기도 했다. 결국 그런 행위로 인한 피해는 내가 고스란히 감당하게 됐지만 어쨌든 나에겐 나름대로 이유있는 반항이었다.

비행기 기장인 아버지는 항공대가 가라하지만 민재는 항공대에 가기 싫다. 항공대에 갈 성적도 안된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점수 맞춰 넣은 대명대 조경학과에 합격. 그러나 기쁘지는 않다.

동완이와 창섭이 역시 마찬가지. 춤을 추고 싶다고는 하지만 막상 사회에 부딪히니 내가 춤을 춰야하는건지, 내가 춤을 좋아하기는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다른 길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막노동판으로 이동.

결국 영화는 예상대로 발레교습소에 모인 이들이 함께 구립회관에서 발레공연을 하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만 이후에도 이들이 발레에 대한 열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마이너리티 인생을 사는 이들의 인생역전기도 아니고, 그저 함께 모여 작은 뭔가를 이룬 것 뿐. 영화는 지극히 밑바닥을 떠돈다. 그래서 즐겁지는 않다. 이들이 느끼는 작은 행복조차도 가련하게 보이는 것은 작은 행복 뒤에 올 희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해피엔딩은 기쁨이 아니라 가련함, 안쓰러움으로 내 가슴속에 남게 된다.

한마디
애초 이 영화를 본 목적은 달성했다. 김민정은 역시 그녀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보여주었고, 난 그 매력에 충분히 빠졌다. 영화 <버스정류장>, 드라마 <아일랜드>에서의 그녀만의 우울하고 고독한 이미지를 여기서도 고수했다. 한 배우가 하나의 이미지로 굳히는 것은 기획사에 의한 상업적인 전략일 수도 있지만 그 배우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은주의 경우가 그러했고, 김민정과 양동근, 이나영의 경우도 후자에 포함된다고 본다. 난 이미지 자체가 그 배우의 삶인 배우들이 좋다. 그들은 적어도 배우로서의 다양함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삶에는 충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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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4-10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영화 감독이 변영주였나요? 관심이 가는군요.

비연 2005-04-11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에 관심많은데..^^

마늘빵 2005-04-11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레교습소 유쾌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영화이지만 볼만합니다. 비주류들의 삶을 다룬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예를 들면 <고양이를 부탁해>같은.

2005-04-14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