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수를 論한다 - 보수주의자의 보수 비판
박효종 외 지음 / 바오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한국의 이념은 보수주의이고, 또한 보수주의자가 한국에 제일 많다고 생각하지만, 보수진영에서의 보수에 대한 논의는 사실 전무했었다. 반면 소수의 진보주의자들은 진보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진행해 나갔고 흔히 진보주의 인사라고 생각되는 사람들끼리의 진보에 대한 설전도 많이 오가며 서로 물어뜯는 형국도 종종 보여줬다. 그래서 어쩌면 진보주의자는 적으나 진보가 마치 한국의 주도세력인 것처럼 보여졌을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엄연히 우리사회에 진보주의자는 극히 드물고 진보라 생각되는 사람들도 실제로는 보수주의자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나 또한 포함될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말하지만 가끔 나는 내가 보수주의자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으니까.

 <한국의 보수를 논한다>라는 책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보수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 책은 아마도 처음으로 보수주의자라 칭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보수에 대해 성찰해본 최초의 책이 아닌가 싶다.

 한국의 보수를 말하는 보수주의 진영의 인사로 이름이 거론된 이들은 서울대 국민윤리학과  박효종 교수. 그는 민주화된 이 시대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국민윤리학과'라는 이상한 학과의 교수이기도 하며, 역시 국민을 교육시키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지 한국일보에 꾸준히 자신의 글을 기고하고 있다. 또한 그의 이름이 유명한 분야는 중등 임용시험이다. 그는 중등 도덕윤리교과 임용시험 출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그의 책을 보지 않고는 시험을 볼 수조차 없다고 한다. 한국의 중등 도덕윤리교사들이 그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있다.

 두번째로 이름을 내놓은 사람은 복거일.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아도 익숙한 인물이다. 한국의 보수주의진영의 대표적인 인사이며, 영어공용화론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젊은 나이에 대단한 내공과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유명한 소설가이다. 또한 한국의 지식인 이념지도에서 비판적 자유진영에 속하는 한국일보 편집위원 고종석씨가 좋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세번째는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고 한나라당에서 유일하게 내가 괜찮게 보고 있는 인물이다. 예전에는 지금 열린우리당에 몸을 담고 있는 이부영 의원을 한나라당에서 유심히 바라볼 유일한 인물로 보고 있었는데 그가 열린우리당으로 옮기고 난 뒤에는 원희룡만이 지켜볼 만한 인물로 남아있다.

 네번째는 이한우. 조선일보 기자이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한 인물로 현재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로 있다. 책도 무쟈게 써댔다.

 다섯번째로 김정호. 이 인물은 사실 처음 본다. 자유기업원 원장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름은 처음 접하고 대외적인 행보를 자제하는 인물인 듯 하다. 내 그물망에 걸려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여섯번째 함재봉. 어디서 들어본 거 같으면서도 잘 모르는 인물. 연세대 정외과 교수라고 하는데 별로 관심없다.

 마지막으로 정성환. 서울대 국문과 학부 졸업생이고, 대학 때 <데일리안>이라는 인터넷 신문의 기자였단다.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데 아마도 '서울대'라는 간판이 없었다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갓 학부를 졸업한 사람에게 글을 쓰게 할 만한 곳은 아무데도 없으니깐. 

 필자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한도내에서 간략한 소개가 끝났다. 책의 전체적인 부분에 대해서 먼저 말하자면 이 책은 '보수주의자의 보수비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자의 진보비판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 참 못마땅하다. '보수주의자의 보수비판'은 결국 자기들끼리 물어뜯으라는 건데 자기들끼리 물어뜯기는커녕 상대 진영에 대해 물어뜯기를 시도하고 있으니 이 책은 책 제목과 글 내용이 상반되고 있다. 주제를 줬는데 논점일탈했으니 논술고사 빵점이다.

 본래 책을 집필하자는 의도는 좋았는데 그 필진들이 영 아니올시다 이다. 하긴 보수진영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써야하니 이 사람들 아니면 쓸 사람도 없을 터인데 그 대표자들이 논점일탈을 해버렸으니 뭐 볼 장 다 봤다고 해야겠다.

 그래도 그중에서 괜찮은 글을 쓴 사람으로는 복거일과 원희룡을 들 수 있다. 이한우나 김정호, 함재봉 같은 이들은 결론은 보수주의자의 보수비판으로 내리면서도 근거로 삼고 있는 내용들이 죄다 보수주의자의 진보비판이라는 점에서 근거부실이다.

 일단 안된 글의 유형을 먼저 살펴보자. 그래도 보수주의자의 보수비판이라고 삼고 있는 근거라는 게 우리는 진보진영처럼 선전을 잘 하지도 못했고 잘 뭉치지도 못했다 라는 건데 이건 사실 진정한 의미의 보수비판은 아니다. 물론 비판은 비판이지. 진보를 본받아 우리도 변신을 꽤해 성공해보자 라는 내용을 담고 있으니 비판은 비판인데 발전적인 비판이 아니라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봐야겠다.

 그중에서도 김정호라는 잘모르는 이 인물이 펼치는 논리는 가히 못봐주겠다. 

 "진보진영은 외국의 것들에 대한 폐쇄성도 그러내고 있다.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는 안되고 한국의 영화는 된다고 한다. 어떤 것이든 한국의 영화 소비자들이 원해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한국인은 한국의 영화인이 만든 것만 봐야 한다는 투이다."

 "쌀도 그렇지 않은가. 진보주의자들은 쌀 시장 개방에 반대한다. 한국 사람은 한국 농민이 재배한 쌀만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만한 차별이 어디 있는가."

 등등 많이 살펴봐야 타자치고 있는 내 손만 아프다. 김정호는 그의 글 전체에서 계속 이런 냄새를 풍기며 논리를 펼치고 있다. 굳이 명칭을 붙이자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의도생성의 오류' '의도확대의 오류'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 사람은 한국 농민이 재배한 쌀만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라는 식의 논리는 저들의 없는 의도를 아예 만들어낸 대표적인 부분이다. 그의 글 중 어느 한 곳만을 따와 이렇게 비판해봤지만 그의 글 전반에 걸쳐 이와 같은 논리가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일단 이와 같은 글의 내용은 처음 지적한 바와 같이 '보수주의자의 보수 비판'이라는 주제에 대한 논점일탈임과 동시에 각종 오류 투성이로 점철되어 있다 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또 다른 이들의 글 또한 더 살펴봐야 내 팔만 아프고, 그중 괜찮은 이들이 복거일과 원희룡이다. 박효종 또한 봐야 눈만 아프다. 그는 아직 박정희과 전두환 시절을 살고 있는 인물이고, 여전히 국민을 가르쳐 교육시켜야 한다는 시각을 품고 있는 인물이다.

 복거일이 괜찮은 것은, 그가 보수에 대한 정의를 먼저 내리고, 현재 보수가 부진한 이유를 살펴보는데, 그 내용들이 진보진영에 대한 비판이나 진보진영의 선전전을 본받자는 투가 아니라 정말로 보수가 부진한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에서 언급한 몇몇 인물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사고 후회를 하지 않은건 순전히 복거일 때문이다.

 나의 복거일에 대한 옹호에 대해 못마땅한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보수주의자 중에서 복거일에 대해서는 좀 특별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일정부분 자유주의자 고종석씨 때문으로 사료된다. 나는 고종석씨를 좋아하고, 고종석씨는 복거일에 대해 괜찮게 생각하니 나 또한 복씨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복씨에 대한 '한번 더'의 배려를 제외하더라도 이 책에서 건질만한 것은 복거일의 글 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복거일의 글은 매우 짧지만 체계적이다. 보수를 정의내리고 보수가 부진한 이유를 드는데 첫째 현존하는 체제를 지지하고 변호하는 일은 어느 사회서나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체제를 옹호하기보다 비판하기가 쉽기 때문에 진보주의가 더 우세한 영향력을 키우게 됐다는 것이다. 일리는 있는 말이다.

 두번째 현 체제에 대한 태도들을 변별하는 일에서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일반적 관행에 내재하는 편향이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는 보수라는 말과 진보라는 말이 가진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다. 보수는 뭔가 안좋은 것 같고, 진보는 뭔가 좋은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는 말로 이도 일리는 있다. 

 셋째, 자본주의의 본질과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큰 지적 투자가 필요하다. 넷째,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정의롭지 못하다는 견해가 널리 퍼졌다. 다섯째, 우리사회의 거센 민족주의가 체제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해왔다. 여섯째, 그리고 아마도 가장 직접적인 까닭은 보수의 핵심적 집단들이 모두 과거의 잘못들로 '오염'되었다는 사실일 터이다.

 이와 같은 말들로 보수가 현재 부진한 이유에 대해 진보를 거들먹거리지 않으면서 분석해냈다고 볼 수 있다. 대략 이해되는 부분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그는 보수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우리 체제에 대한 비판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우리는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요구해야 한다.
 둘째, 우리 시민들이 자본주의를 보다 잘 이해하고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정의롭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애써야 한다.
 셋째, 우리는 민족주의가 너무 극단적인 모습으로 분출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넷째, 어떤 이념이나 체제는 궁극적으로 그것들의 추종자들에 의해 판별된다.

 
 그러나 복거일에게서도 드러나는 헛점은 가장 중요한 보수진영에 대한 처절한 비판이 없다는 점이다. 보수가 부진한 이유를 살펴보자는 것이 아니다. 진보가 진보를 물어뜯듯이 보수도 보수를 물어뜯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그런게 없다. 그런점에서는 복거일도 다른 이들과 다를바는 없다.

 원희룡의 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지만 그도 역시 보수에 대한 진정한 비판은 없다는 점에서는 이 책의 부제와 일치하지 않는다. 다만 처음에 복거일과 원희룡이 그나마 낫다고 말 한 것은 다른 이들이 진보를 물어뜯으며 보수진영의 혁신을 꾀하려 하는 반면, 이들은 상대진영을 뜯지 않고 보수에 대한 성찰을 한다는 점에서 좀 낫다는 말이었다. 물론 원희룡의 글에서도 '진보의 보수비판은 정당한가'라는 부분을 통해 진보를 비판하지만 애교있게 봐줄만 한 부분이다.

 결국 글쓴이들 모두가 '진정한 보수비판'이라는 점에서는 별로 보여주는 바가 없었다. 오히려 이들이 이런 책을 낸 것은 책의 어떤 이들이 말하듯 진보진영의 선전전을 본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그렇다면 저들은 이 책을 선전전의 한 유형으로 삼아 진보진영을 물어뜯으려 한 것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보수비판은 여전히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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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후사 2005-05-30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쓴이 중에 제대로 정신 틀어박힌 놈이 하나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죠. 이한우, 박효종, 함재봉, 우와, 희대의 똘아이들이 한데 모였군요. ㅋㅋ 근데 복거일이 교수에요?

마늘빵 2005-05-31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넵 조갑제나 박지만도 가세했으면 딱이었을텐데

마늘빵 2005-05-31 0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기론 복거일 어느대학에 국문과 교수로 있는걸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요?

노부후사 2005-05-31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여... 복거일이 교수라는 말은 처음 들어서...

마늘빵 2005-05-31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어디서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ㅡㅡa 착각했나? ^^
 
신곡 - 김혜니 교수 에센스 세계문학 8
단테 지음, 김혜니 옮김 / 타임기획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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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나라로 가려는 사람, 영원의 가책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 파멸의 사람들 속에 끼려고 하는 사람은 나를 거쳐 가라. 나는 무한으로 이어지니 나를 거쳐 가려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제3곡 주께 충성도 반역도 하지 않은 자들 - 지옥의 문 문구)-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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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 김혜니 교수 에센스 세계문학 8
단테 지음, 김혜니 옮김 / 타임기획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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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 말해도 누구나 다 아는 고전 중의 고전. 단테의 <신곡>이다. 단테의 <신곡>은 수많은 번역서들이 나왔지만 내가 읽은 단테의 <신곡>은 김혜니 교수의 에센스 세계문학으로 축약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이런 고전들의 축약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축약본들을 읽는 것은 나의 직업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 그러나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완역본을 읽겠다는 마음은 언제나 가지고 있다.

 두껍고 어려운 고전인 <신곡>의 축약본인지라 이 책은 중고등학생을 독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물론 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포함하여. 친절하게도 축약된 번역 뒤에 '작품 해설과 독서 토론'이라는 부분을 상당 분량 첨가함으로써 이 책을 가지고 어떻게 토론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에 대한 매뉴얼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는 사실. 이는 <신곡>을 가지고 아이들을 지도해야하는 선생님 입장에서는 지도준비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해준다.

 단테의 본래 이름은 알리기에로 드란테였는데, 드란테라는 세례명이 단테로 변해버려 이렇게 불리고 있는 것이다. 단테의 <신곡>은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총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장에서 단테가 그곳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지옥편과 연옥편에서는 단테가 당시에 존경하는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의 안내자 역할을 하며, '천국편'에서는 단테가 사랑했던 여인 하지만 연이 이어지지 않았던 여인 '베아트리체'가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

 본래 <신곡>은 장문의 시이며 결코 소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시가 아닌 소설처럼 읽혀지는 것은 그 시가 장문이라는 점, 그리고 우리나라말로 번역되면서 그 시적인 묘미가 한층 떨어졌다는 사실에 기인할 것이다. 원어로 읽었을 때 어떤 시적인 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글로 번역된 이 책을 읽는 우리는 지루하고 따분할 수 밖에 없다. 내용이 다 한결같이 재미없고 딱딱하다. 그래서 책이 얇음에도 불구하고 참 오랫동안 읽은 것 같다.

 단테의 <신곡>은 본래 'comedy'라는 제목을 갖고 태어났다. 즉 희곡이라는 의미였는데 데카메론을 쓴 보카치오가 이 앞에 'divine'을 붙이면서 '신곡'이 되어버린 것이다. '신성한 희곡'. 단테의 <신곡>이 희곡인 이유는 지옥과 연옥을 거쳐 결국 천국에 도달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지옥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천국에 이른다.

 단테는 <신곡>을 왜 썼을까? 단테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 때문이기도 하고, 베아트리체 때문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베아트리체 때문이라는 이유는 순수한 이유라기 보다는 단테가 <신곡>을 쓰게 된 동력이 됐다고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8살인가에 만난 호기심을 갖게 됐고, 16살인가에 다시 만나 사랑에 빠졌고, 베아트리체는 다른 남자에게 갔고 24살인가에 죽었다. 베아트리체만을 사랑했던 단테는 죽을 때까지도 그녀를 사랑했었나보다.

 단테가 <신곡>에서 말하려는 바는 까발리고 말하면 이런 것 같다. "믿어라 믿을지어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리라. 회개하라."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던 단테는 이 책의 지옥과 연옥을 통해 사후세계의 무서움을 알려주고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믿을 것을 종용하는 것이다. 이는 비기독교신자이고 기독교의 이런 부분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나의 편협된 시각인지도 모르지만. 

 단테는 지옥과 연옥에 별의 별 인간을 다 집어넣는다. 폭식을 한 인간, 자살한 자, 타인을 해한 자, 고리대금업자, 위선자, 이간질 한 자 등등등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단테가 지옥의 제일 위에 올린 사람이 '주께 충성도 반역도 하지 않은 자들'과 '세례를 받지 않은 자들'이었다는 사실. 이 점은 이내 못마땅하면서도 당시 단테가 살던 시대를 생각해보면 그런 분위기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이 딱딱하고 재미없는 책을 읽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나중에 완역된 책을 다시 읽으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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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개 2005-05-30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해문집인가 에서 이번에 새로 나왔다는데 한번 읽고 좋은지 말씀해 주세요. 재미있다 하시면 한번 읽어볼까 합니다.

마늘빵 2005-05-30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지난준가 신문에서 봤어요. 기행문 형식으로 풀어썼다구 ^^; 기회되면 볼까 해요.
 



 

 

 

 

 


 

 

 

 

반드시 꼭 봐야할 영화였다. 그래도 이제야 본 것은 다행이었다.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꼭 봐야할 영화.

 이 영화가 개봉했던 당시 분명히 이 영화를 봐야겠다 하고 마음 속으로 찜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사정으로- 그것은 아마도 이 영화와 동시에 개봉되었단 다른 로맨스 영화에 눈길이 더 쏠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지금 그 영화가 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 그냥 지나치게 된 영화다.

 '길 영거'라는 우리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무명감독이 만든 영화이지만 주연 '제니퍼 러브 휴잇'이라는 문구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시선을  끌만한 영화였다. 제니퍼 러브  휴잇이 출연한 영화들은 대개 성공을 거두었다. <시스터 액트>도 그러했고,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도 그러했고, <하트브레이커스>나 <턱시도>, 그리고 최근에 본 <어바웃 러브>까지 그녀가 출연한 영화의 제목들은 모두 익숙하다. 특히나 나는 그녀가 지금 언급한 영화들에 출연했는지조차 몰랐는데 이는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데 비해 배우들에 무관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각각의 영화들에서 보여준 이미지들이 모두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본지 얼마 안 된 <어바웃 러브>에서 조차도 그녀가 나왔는지를 나중에 알았으니.

 그녀에 대해 한 마디 더 하자면 79년생으로 나와 동갑내기인 이 여자는 참 일찌감치도 성공의 문에 발을 들여놓은 셈이다. 영화계에서도 CF계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으며, 실제로 음반을 낼 만큼 뛰어난 가창력을 소유하고 있기까지 하니 성공할 만도 하다. <이프온리>에서는 마지막에 그녀가 직접 노래를 부르기까지 했다. 영화를 보면서 설마 실제로 부르는 거겠어? 했는데 진짜였다.

 '사랑'이라는 같은 주제를 놓고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영화들을 접해왔고 앞으로도 이 주제를 가지고 무수히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무리 퍼내어도 바닥이 나지 않는 주제이고 아무리 접해도 언제나 새롭고 참신한 주제가 사랑이다. 나이 어릴 때, 성년이 되어서, 사회에 발을 디디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동안에 같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놓고도 각각의 시기마다 다른 느낌을 품게 된다. 시간의 흐름뿐만이 아니라 만남, 설레임, 익숙함, 갈등, 이별로 이어지는 사랑의 시작과 끝-사랑에 시작과 끝이 있는지는 더 이야기해봐야할 거리이지만- 의 시점에서도 같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놓고도 사랑의 대상이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느낌은 다르다. 
 
 성공한 젊은 비지니스맨 이안과 이안을 따라 미국에서 영국으로 와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졸업을 맞이하는 사만다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하지만 둘 사이엔 뭔가 문제가 있다. 이안은 언제나 사만다보다 일이 먼저이고, 사만다는 이런 점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사만다의 졸업식 연주회 날짜도 까먹고, 사만다를 위해 부모님을 뵈러 미국에 갈 생각도 시간도 없으며, 졸업선물을 해줄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둘의 일상 속에서 이안은 언제나 사만다를 소외되게 만든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라는 류시화 시인의 시집 제목은 이런 상황을 적절하게 표현해준다. 함께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그리워하는 사만다. 

 졸업연주회가 끝나고 밥을 먹고 이안에서 이런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해버린 사만다는 택시를 타고 훌쩍 떠난다. 미국으로 가려는 셈. 하지만 이안은 함께 택시를 타지 않는 것을 선택했고, 그 결과는 사만다의 죽음이다.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 이안은 그때서야 자신이 사만다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를 이안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 이런 자고 일어나니 사만다가 내 옆에? 이안을 놀라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사만다가 살아있고 나는 꿈을 꾼 것인가? 그러나 너무 생생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지만 이상하게도 사만다의 죽음 이전의 상황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이안은 사만다의 죽음을 막기 위해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려하지만 아무리 피해도 결국 이전과 같은 일이 반복된다. 그리고 이안은 깨닫게 된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 것은 나에게 사랑을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라는. 그리고 운명을 받아들이고 마지막 순간. 사만다와 함께 택시를 타고 교통사고는 난다. 하지만 정면충돌한 것은 이안이고 사만다는 이안의 품에서 살아남았다.

 슬픔은 이안에서 사만다에게로 옮겨갔지만 적어도 이안은 저 세상에서 행복하다. 나중에서야 사만다는 깨닫는다. 이안이 이런 결과가 올 것을 짐작했었다는 사실을. 이안은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며 사랑하는 사람을 지켰고 이로써 이안이 사만다를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소중하게 생각했다는 사실은 증명되었다. 물론 이는 이안에게 주어진 기회를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이었지만.

 나는 이안와 참 비슷한 놈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사랑은 다른 것과 함께 순위를 매길 수 없는 것이라고 되뇌이곤 하지만 솔직히 다 드러내고 말하자면 나는 나의 자아실현이 첫번째이고, 사랑은 그 다음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만다와 같은 소외감을 느낄 것이며 나 또한 이를 알고 있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변하지 않고 있다. 사만다의 죽음과 같은 극단적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아서일까.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사랑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할까. 그건 모르겠다.

 단 지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순위가 내게 있어 아직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 확실한 것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또 내가 그녀에게 미안해한다는 사실. 그것뿐.


 아래는 제니퍼 러브 휴잇이 영화 속에서 졸업연주회 마지막에 직접 부른 노래이다.

  < Love will show you Everything >

Today, today I bet my life
You have no idea
What I feel inside
Don't, be afraid to let it show
For you'll never know
If you let it hide

I love you
You love me
Take this gift and don't ask why
Cause if you will let me
I'll take what scares you
Hold it deep inside
And if you ask me why I'm with you
And why I'll never
Leave
Love will show you everything

One day
When youth is just a memory
I know you'll be standing right next to me

I love you
You love me
Take this gift and don't ask why
Cause if you will let me
I'll take what scares you
Hold it deep inside
And if you ask me why I'm with you
And why I'll never
Leave
My love will show you everything
My love will show you everything
My love will show you everything
My love will show you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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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워지고 여름이 다가오다 보니 이제 서서히 공포영화들이 속속 개봉하고 있다. 올 여름 공포영화물의 시작을 알리는 <그루지>는 사실 새로운 영화는 아니다. 일본의 공포영화 <주온> 1편과 2편의 미국 리메이크작인 <그루지>는 이미 <주온>시리즈를 본 사람에겐 익숙한 장면들이다. 단지 달라진 것은 주연인 일본인이 아닌 미국인이라는 점만 다를 뿐.

 이제 더 이상 미국식 공포물은 우리에게 식상하다. 매번 똑같이 등장하는 잔인하고 엽기적인 살인마들. 미국의 공포영화를 보면서 으례 이런 장면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이런 시점에서 일본의 공포영화가 안겨주는 그 섬뜩함은 참신하다. 미국의 공포영화가 단 하나의 괴물을 등장시킴으로써 오로지 그에 의한 공포를 조성한다면 일본의 공포영화는 괴물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처해진 상황이 안겨주는 섬뜩함을 공포의 요인으로 삼고 있다.

 이미 일본의 또다른 공포영화 <링>이 미국식으로 리메이크된지 오래고 곧 리메이크작 <링2>가 다시 나온다. 그리고 <그루지>는 단지 일본 공포영화 <주온>을 이름만 바꿔 내놓은 작품이다. '주온'은 본래 '죽음 사람의 저주'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하고, '그루지'는 '원한'이라는 의미이다. 결국 뜻은 그대로 지닌채 단어만 교체한 것이다. 이는 어쩌면 영화 <그루지>가 <주온>의 재탕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관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상술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나 역시 그 사실을 모르고 봤으니.

 <그루지>가 만들어내는 공포는 <주온>이 만들어내는 공포와 별반 다르지 않으며, 이미 <주온>을 봤지만 내가 <주온>을 봤을 때 느꼈던 그런 섬뜩함은 <그루지>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영화를 두번 보면 처음의 느낌이 반감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루지>를 볼 때는 그렇지는 않았다. 단지 이 영화 주온이랑 비슷하네? 재탕이구나! 라는 생각만 가졌을 뿐. 그런 점에서 <주온>을 재탕한 <그루지>는 나름대로 제대로 리메이크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내가 <주온>을 본지 오래됐고 이를 전부 기억해내지 못하는데서 비롯된 무감각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주온>을 이미 본 사람에게 영화표 값을 지불하고 다시 보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주온>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봐도 무방할 듯. 아니 어쩌면 이 영화는 <주온>을 보고 푹 빠져들었던 사람들이 봐야할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줄거리와 공포가 목적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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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5-06-08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온 받는데, 제가 3초 기억력? 뭐 그런 비슷한거라서
그루지에서 '아 이 장면 어디서 많이 봤는데 ..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중에야 주온을 리메이크한 걸 알았다는 ;
근데 정말정말 무서웠어요! 역시 이런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제맛 ! +_+

마늘빵 2005-06-08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그쵸 주온을 기억못한다면 재밌는 영화죠. 전 봤던 장면이 또 나와서 다음엔 이렇겠구나 하고 예상을 하고 보니깐 조금 진부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