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확의 증언 - 아버지가 말하고 아들이 기록한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들
신철식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1980년대까지 한국의 대표적인 경제관료였던 신현확 전 국무총리의 삶을 통해 바라본 한국현대경제사이자 평전입니다.

시각으로 보자면 지극히 보수적이며 우파적 시각을 대변하는 책입니다.

현재 야당 측에서 주장하는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적 시각보다는 온건한 편의 자유주의적 시각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1970년대 박정희 정부 시절 보건사회부 장관으로 최초로 의료보험 재도를 도입한 ‘안정론자’라는 점은 이분을 단순한 개발시대의 경제관료로만 볼 수 없게 만듭니다. 다만 보편적 복지의 관점이 아닌 ‘시혜적 복지’라는 점이 한계입니다.

가부장적이고 전체주의적 계획경제를 실행하던 박정희 정부가 복지에 재원을 투입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일반적인 국가주도 경제와 다르게 자원을 기업가들에게 너무 편중적으로 몰아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신현확 전 총리는 기본적으로 이승만 대통령 밑에서 경제’부흥’계획을 입안했던 분이고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경제기획원 장관 및 부총리를 지내고 10.26 이전까지 국무총리를 지내신 분이기 때문에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5.16을 ‘군사쿠데타’가 아닌 ‘군사혁명’으로 바라보고 긍정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지점입니다.


분명히 문민정권이 군부에 의해 유린된 쿠데타입니다.


경성제대 법학과 출신에 일제 말기 고등문관 시험에 합격한 엘리트 출신으로서, 다분히 전근대적 가부장적 사고를 가지고 사신분이고 남존여비 의식이 뚜렷하신 분이었고 일중독자 (workaholic) 로 사신 분이기도 합니다.

2021년 기준으로 본다면 결코 민주적이고 가정적인 분이라고 볼 수 없는 분입니다.

이분이 남들과 다른 삶을 산 건 어무것도 없는 식민지의 벽촌에서 태어나 일제 패망과 한국전쟁이라는 미증유의 ‘비정상적’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없으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역설이 성립되는 시기를 사셔서 가능한 업적이기도 합니다.

불안정하고 아무런 사회적 기반시설이 없으니 무엇이든 열심히 만들고 세우고 개발하는 ‘경제성장’이 가능한 것이고 이런 상황이 연간 10%이상 고도성장과 40%에 육박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박정희 정부시절의 경제성장이 꼭 그렇게 과격허게 성급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었는지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서구사회가 200년 가까이 진행시킨 경제발전을 담 한 세대만에 이룩한 건 그냥 봐도 피와 살을 갈아넣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경제가 성급할만큼 급속성장한 반면 대일관계나 대미관계를 한치의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사실상 종속에 가까운 관계를 만들어 온 것도 한국의 엘리트 관료들이 비판받을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전쟁으로 전시작전권을 미국에 이양한 이후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시 작전권이라는 주권이 반환되지 못한 것은 국방부 고위 장성들과 관료들의 책임입니다.

대체 70년간 뭐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도 이승만 정부 시절 경제부흥계획을 만들던 신현확씨도 집에도 못가고 일주일씩 밤샘해서 계획을 만들었다는 에피소드가 자랑스럽게 등장하고 책의 저자인 신철식 전 차관도 경제기획원에서 일하면서 월화수목금금금 일한 일화를 자연스럽게 꺼냅니다.

열심히 일한 건 알겠는데 별로 자랑스러운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미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활을 이렇게 ‘전투적’으로 보낸 분들이라 마찬가지로 전투적 삶을 살았던 박정희씨의 삶이 긍정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런 예외적인 상황을 계속 보통인 것처럼 생각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외는 예외일 뿐입니다.

책 내용은 읽어보면 아실 내용이니 언급할 필요가 없고 책의 톤과 형식에 대해 언급하고자 합니다.

첫째, 평전의 형식이 심각하게 결여되었습니다. 우선 어떤자료가 어떻게 인용되었는지 전혀 알 도리가 없습니다. 저자가 이책에 쓰인 글이 사실이라고 서문에서 ‘강변’하고 있지만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부흥부 장관, 보건사회부 장관, 경제기획원 장관, 국무총리를 지냈으면 정부 공문서나 각종 언론기사 자료가 차고 넘칠만큼 많을텐데 전혀 인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미스테리하기까지 합니다.

영미권애서 전기나 회고록 또는 역사서를 저술할 때 이런 식으로 인용을 누락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경제개발기 한국 경제정책에 큰 기여를 했다고 자화자찬을 할 게 아니라 이분이 실제 이룩한 기록을 보여 주어야 납득이 갈 것입니다.

두번째, 이분의 친일전력에 관한 언급입니다.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되었다가 제외된 일화를 수록하셨는데, 1950년 당시부터 한국 최상위 계층에서 과외를 받고 자라 아버지처럼 엘리트 집단인 경제기획원에서 일을 했던 저자입장과 일반 국민들의 시각은 분명히 다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일제시대를 살아오신 분들 중 일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들이 상당히 적었다는 연구결과를 본 기억이 있는데 일본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일본 정치인과 교류를 수십년 간 해왔는데 이 일본 정치인들 중 기시 노부스케 (岸信介), 후쿠다 다케오 (福田赳夫 ) 등 전후 일본 정계의 거물이며 일본 제국주의를 지지해온 극우 정치인들과 교류했다는 사실을 일반 국민들이 선선히 납득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엄연히 2차 세계대전 전범 출신들인데도 이들과 교류하고 일본어로 1980년대까지도 나라일을 의논 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박근혜 정부당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합의하기 위해 일본 정계 막후 실력자가 청와대에 은밀히 드나들며 소위 ‘정계 원로’들과 일본어로 소통하고 사법부에서 본인들 영역을 넘어 한일 외교에 간섭하고 삼권분립을 위반하고 행정부 수반에게 사법부 수반이 충성을 하는 ‘사법농단’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당시 일본어가 가능한 정계원로들이 얼마나 공화주의 원리에 무신경하고 전근대적인 인물들인지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경제학적 측면에서 이 책이 주장하는 주제 중 가장 유의를 해야 할 점은 이승만 정부의 ‘경제부흥계획’에 대한 점입니다.

아무런 인용이 없이 신현확씨가 주도해서 경제부흥계획을 작성했다고 주장하는데 국가경제계획이 4.19이전에 존재했다면 국가기록으로 존재한다는 점이 증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하나 한국 경제개발계획의 기원이 1960년대 ‘사상계’그룹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이 기안 작성되고 5.16이전 민주당 정부에서 시행하려 하다가 5.16 군사쿠데타로 이 계획이 그대로 제1차 경제개발계획으로 계승되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즉 극우 정치권이 주장하듯 경제개발계획이 박정희 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디.

신현확씨의 주장은 사상계 지식인들의 경제개발계획 기안 주장과 상충되는 지점이 존재하는 보기에 따라 상당히 ‘정치적’인 주장입니다.

책에 따르면, 신현확씨가 노태우 대통령을 조언해 3당합당울 막후에서 조율해서 현재 제1야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 출범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의 사상계 발 경제개발계획 기원 주장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입니다.

끝으로 제가 읽은 몇 몇 평전 내지 회고록을 보면 저자들의 ‘자화자찬’이 너무 과합니다. 읽기 싫어집니다. 훌륭한 경험을 자신들이 얼마나 잘난 사람인지에 할애하면 도대체 그걸 읽고 무엇을 배우나요?
이런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자화자찬으로 일관하는 회고록 나지 자서전은 혐오를 일으킬 뿐 이 분야를 좋아하는 소수의 독자들을 더 멀어지게 할 뿐입니다.

자서전이나 평전은 영미권에서 하나의 논픽션 장르를
이루고 있고 역사서를 보완하는 훌륭한 2차 사료로 가능하기도 합니다.

한국에 자서전 평전 회고록 쟝르가 발전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저자들의 ‘자화자찬’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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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에서 연구를 하셨던 손정목 교수님은 한국의 도시화과정에 대한 역사에 있어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시는 분입니다.

특히 1970년대 강남 개발 과정에 서울시 도시계획 담당 공무원으로 재직하신 바가 있어 정책담당자의 입장에서 직접 경험하거나 일선에서 들은 당시 서울의 도시계획과 국토개발계획의 과정을 직접 설명하셨기 때문에 그 가치가 큽니다.

상당한 수의 서울의 도시계획 혹은 건축관련서들, 도시사회학 관련서 등에서 저자의 책들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저자의 ‘서울도시계획 이야기1-5(한울,2003)’는 서울의 도시공간, 서울의 도시경관 발달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읽어야할 필독서로 자리잡았습니다. 저 역시 시간이 나면 한번 일독할 예정입니다.

지금 소개하는 책은 2005년 초판이 나왔으니 그 내용이 1945년 해방이후 미군정시기를 거치고 한국전쟁을 거친 후 전쟁복구부터 시작해 1960-197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현재 서울의 경관을 이루고 있는 건물들과 도로, 특히 경부고속도로와 영동지역 개발 계획, 그리고 양화대교와 한남대교가 놓이게 된 과정을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광화문 거리에서 전차가 없어지게 된 경위가 1960년대 미국 대통령 방한행사 퍼레이드 때문에 먼저 없앴다고 하는 대목에서는기분이 착잡하기까지 합니다.

1950-60년대 위정자들은 목표를 놓고 달성하는데만 열을 올렸지 국민에 대한 배려따위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선진국이 되는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며 거의 종교적으로 이 목표를 추구했습니다.
정작 국민들의 삶에 대해 전혀 의견을 구하지 않고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바라봤다는 점에서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나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대통령이나 차이가 없었습니다. 근대화를 추구한다고 했지만 당시 고위 관료들이나 대통령 모두 전근대적인 가부장적 봉건사회를 산탓에 매우 전근대적 지도자였습니다.


마지막의 두 장은 공주에서 발굴된 무령왕릉이야기와 구한말부터 1990년대 말까지의 한국의 자동차산업 발달사가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백제의 고도 공주에서 1970년대 진행된 무령왕릉 발굴은 고고학적으로 세계적 대발견인 동시에 최악의 졸속발굴이기도 했습니다. 고고학 발굴을 단 하룻밤만에 졸속으로 끝냈다는 에피소드애서는 헛웃음만 나옵니다. 고고학 발굴이 무슨 촌각을 다투는 군사작전인것처럼 향한 것 자체가 후진적입니다.

1970년 당시는 정말 너무 많은 군인들이 정치에 참여해 국정을 몰상식하게 운영했다고 생각합니다.


도시사와 도시계획과 관련된 설명이니 도로확장이나 수송수단과 관련된 논의는 피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많이 읽는 책이니 가볍게 읽어보길 권합니다.

서문에 따르면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잡지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어서 중복되는 내용도 있지만 자주 인용되는 글들이고 재미가 상당합니다.

끝으로 손정목 교수님이 다른 매체에서 인터뷰하신 글을 보면 소개한 ‘서울도시계획 이야기’ 를 별로 달가와허시지 않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분이 일제시대 도시발달사가 전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30여년 정도 밖에 안된 이분의 일제시대 도시발달사 관련 책들을 구할 방법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1990년대 중반에 출판된 책인데 구할 수가 없다니 황당합니다.

다시 출판되기를 바라는 책으로

일제강점기 도시계획연구(1990)
일제강점기 도시화과정 연구(1996)
일제강점기 도시사회상 연구 (1996)

등입니다.

영미권의 책들 중 출판된지 60년 이상 된 책들도 절판되지 않고 나오는 현실을 생각하면 한국의 출판계, 특히 학술출판계는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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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상명대 교수이신 조관희 작가의 책으로 이미 2013년 출판되었던 ‘ 조관희 교수의 중국현대사 강의’의 개정판입니다.

2019년 출간된 책이니 6년만에 개정되어 다시 책이 출간된 것이죠. 책은 총 6장 440쪽의 본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참고문헌 목록은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다. 편집상의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특이한 점은 중국현대사에 관한 책인데도 중국 측 사료의 인용이 거의 전무하고 한국애서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역 30여년전 번역출간된 중국현대사 번역서의 인용이 많다는 점입니다.

중국 특히 과거 중공이라고 불리던 시기 중국에 대한 자료가 별로 없고 이 자료를 보는 것이 터부시 되었던 1980년대라면 이해가 되지만 2021년 현재나 책이 출간된 2019년 그리고 처음 책이 출간된 2013년으로 시간을 되돌려도 이렇게 오래된 자료를 인용하는 것이 맞는지 의심이 됩니다.

이책에 인용된 몇권의 중국현대사 저서를 일부 소개합니다. 모두 일본 내지 미국의 학자들의 저술입니다.

1. 조너선 D 스펜스, 김희교 옮김 ,현대중국을 첯아서1 (이산,1998)

2. 에드거 스노, 신복룡 옮김, 모택동 자전 ( 평민사,2001)

3. S. 슈람, 김동식 옮김, 마오쩌뚱 (두레,1979)

4. 히메다미츠요시 외, 중국근현대사 ( 일월서각,1985)

5. 장 세노 외, 신영준 옮김, 중국 현대사 1911-1949 ( 까치,1982)


이외에도 몇권 더 있지만 알라딘에서 등록이 되지 않은 오래된 저작이 있습니다.


번역서로만 한정해도 수많은 중국 근현대사 관련 서적이 2010년대 이후 출간되었을텐데 최신 연구성과를 책에 반영하지 않는 건 좀 안타깝습니다.

초고가 2010년 경 작성되었다고 해도 1980년대 출판된 저작들에 주로 인용된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책을 읽게된 동기는 최근에 읽은 한권의 중국현대사 책 덕분이었습니다.

연세대 백영서 교수님의 최신작인 ‘중국현대사를 만든 세가지 사건( 창비,2021)’ 을 읽고 중국현대사를 너무 모른다는 자각과 함께 이 책에서 강조한 ‘신해혁명, 1949년 신중국의 성립, 그리고 1989년 천안문 사건 ‘의 간극을 좀 더 메우고 싶었습니다.

이미 백영서 교수님의 책이 중국현대사 전반에 대해 알고 있다는 가정하에 상당히 저세하게 사건의 내막과 영향을 설명하고 있어 관련 지식이 전무한 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개론서 격인 이 책입니다.

오래된 번역서 위주의 인용이라는 문제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신해혁명이후 권력공백 상태에서 군벌세력이 등장하고 국민당과 공산당 정권이 어떻게 성립되어 변천되어 왔는지, 그리고 동북의 만주지역에 세워졌던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과의 관계와 갈등, 일제의 중국 침략으로 발생한 중일전쟁과 국민당 정권의 수도였던 난징에서 일제의 대학살극, 그리고 마오쩌뚱의 등장, 대장정, 일제에 대항하기 위한 2번의 국공합작, 일제와의 전쟁이후 중국대륙을 차지하기 위한 국공내전,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 설립이후 바로 발생한 한국전쟁과 1960년대 말 일어난 문화대혁명, 이후 덩샤오핑의 등장과 개혁개방 정책과 1989년 천안문 사건까지 모두 아우릅니다.

본문 쪽수가 440쪽에 이르지만 중일전쟁이나 중국내의 군벌간의 다툼, 국공합작, 중국과 미국간의 국교정상화, 문화대혁명 등은 각기 별도의 단행본이 필요한 내용입니다. 개론인 관계로 너무 간략하게 축약되어 설명되아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현대사의 전체적 흐름을 아는데 부족함은 없는 책으로 보입니다. 처음 중국현대사를 접하는 이들에게 권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은 후 워에서 언급한 각각의 사건에 대한 연구서를 읽으면 될 듯 합니다.


한국의 대외관계는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러시아가 항상 같이 고려되어야 할 상수입니다.

미국과 한국이 전략적 동반관계라고 해서 위에서 언급한 국가들과의 관계가 소홀히 취급되거나 적대적으로 취급되는 실수를 범하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이들나라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지정학적으로 이 나라들과 균형을 맞춰야만 하는 운명입니다.

일본이 조선을 어떻게 병합했는지 그과정을 복기하면 이유가 확실해집니다.

일본은 조선을 병합하기 위해 두번 전쟁을 치룹니다.

첫번째가 조선을 속국으로 여기고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청나라와의 청일전쟁입니다.

청일전쟁이후 조선은 힘을 의탁할 강대국을 찿게 되고 울미사변이후 아관파천과 함께 러시아가 그 대상이 됩니다.

국방력이 형편없던 조선은 러시아의 무력에 독립과 안보를 의존하게 되고 청을 물리친 일본은 러시아가 연해주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력을 어떻게 제거할지 고심합니다. 기회를 엿보던 일본은 러시아와 마침내 전쟁을 하게 됩니다.
러일전쟁입니다.

이 두 전쟁이후 청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제거한 이후 일본은 조선병합을 진행합니다. 병합이후 일본인들을 한반도와 만주 그리고 중국본토로 서서히 이주시키고 이후 조선을 병참기지로 삼고 만주지역에 만주국을 세운 후 본격적으로 중국을 침략합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청조 멸망 후 국민당과 공산당으로 남북으로 갈려있는 중국대륙에 군벌들까지 자신들 세력권 안에서 독자적으로 행동했으니 중국이 권력 진공상태라고 여길 여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어난 전쟁이 중일전쟁입니다.
임진왜란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일본의 중국대륙 침략여욕이 1930년대 마침내 현실이 된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1930년대 만주국의 관동군 일부 장교는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일본 본토의 군부 중앙의 지시를 받지않고 무단으로 사변을 일으켰다는 겁니다. 추후 일본 군부는 이들의 이런 무단적 무력사용을 추후 승인했다는 점입니다. 일제 당시 군인들의 호전성과 막무가내는 군의 지휘체계조차 우습게 볼만큼 몰상식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난징에서 중국인들을 무차별 학살한 것도 아들의 무모함과 호전성과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일본의 전쟁범죄는 공산권과의 대결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야 하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자 패전국인 일본과 그 식민지였던 조선을 공산주의 중국과 러시아의방어선으로 삼으면서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단시키고 일본과 한국을 병참기지로 만들면서 단죄를 거치지 않은 체 수면아래로 잠복합니다.

미국은 원래 장제스의 국민당 정권을 지원하면서 당시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을 중국 본토에서 막으려고 했으나 마오쩌뚱이 중국을 접수하고 공산주의 중국을 세우자 한반도 남쪽까지 공산주의 봉쇄선이 밀린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부 소위 보수쪽애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미국은 20세기 초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던 초기 소련과 공산정권 수립이전 중국의 공산당과도 활발한 교류를 했습니다.

이외로 장제스의 국민당 정권의 무능과 부패를 혐오하고 국민당을 지원하면서도 내심 달가와허지 않은 면이 있었습니다.

군인이었기 때문에 장제스라는 인물 자체가 민주적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 한국의 몇몇 골수 보수 또는 극우세력이나 그에 동조하는 이들이 무조건 중국을 무시하고 친미일변도로 기우는 것은 첫번째로 무식의 소치이고 두번째로 한국의 안보를 불안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한국은 절대 중국을 무시할 수 없는 상대인데 철이 없는건지 생각이 없는건지 중국을 무시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중국은 우리의 중요한 외교 파트너이고 이들을 어떻게 상대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국익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 첫번째가 바로 상대를 알아야 하는 것이죠.
중국에 대해 아는 건 따라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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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8장 본문 450쪽, 참고문헌 약 50쪽으로 구성된 역사사회학( historical sociology) 연구서입니다.
서구의 실증적 연구방법론에 따라 한국 중국 일본 미국의 관련 연구가 상당한 정도로 인용되어 있습니다.
다른 한국 연구자의 연구서와 확연히 다른 점이기도 합니다. 논픽션인 각종 연구서는 형식적으로 각주와 참조연구도서 목록은 기본으로 구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형식에 대한 논의는 이정도에서 그치고 내용적인 면을 보겠습니다.

저자는 1960년대 태동한 한국의 개발주의적 군사주의적 동원체제 ( a system of mobilization)의 기원이 구체적으로 일제의 괴뢰국으로 알려진 만주국(滿洲國, 1932-1945)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 1960년대 5.16군사정변 이후 만주군 출신 쿠데타 세력들이 행한 정책과 만주국에서 행했던 정책간의 비교를 시도하고 그 유사성을 찿아냅니다.

이책이 주장하는 흥미로운 지점 몇가지를 지적하는 것으로 글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첫째, 이 책의 전체적 논조를 보면, 일단 식민주의 (colonialism)이 현대 한국에 미친 영향에 대해 어느정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일제의 식민주의가 한국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에 미친 영향에 대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단순히 ‘항일투쟁의 무대’로만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만주라는 공간이 당시 젊은이들과 지식인들에게는 기회의 공간이기도 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다면적 해석을 시도합니다.

다면적 해석이란 긍정과 부정을 포함하고 항일의 공간을 뿐만 아니라 생활의 공간으로서 그리고 중국이라는 나라가 형성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있지만 일단 저자의 논조가 식민주의에 대한 긍정적 부분을 포함해 극우 뉴라이트 세력에 의해 이런 해석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빌미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습니다.
전체적으로 저자의 논조는 상당히 보수적입니다.

만주국은 일본이조선을 병합한 이후 중국대륙 침략을 본격화하기 위해 세운 괴뢰국이고, 일본은 실제로 만주국을 발판삼아 실제로 중국 본토 침략했고, 이곳에서 일본 본토에서 행하지 못했던 극단적인 군국주의 체제 실험을 행했습니다.

일본인을 대상으로 행하지 못하던 극단적 체제실험은 물론 731부대로 대표되는 생체실험도 만주국 영토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청나라 당시인 19세기 말 이미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청나라와 전쟁을 벌였던 일제는 1930년대 청조 멸망이후 새로 성립되었으나 군벌들이 난립하고 공산당과 국민당 두 정부로 갈려 내전 상황이었던 중국을 먹기 위해 중일전쟁(中日戰爭,1937-1945)을 일으켰습니다.

따라서 1930년대 당시 만주국에서 행해졌던 각종 군국주의 동원정책을 1960년대 한국 군부가 그대로 시행했다면 일제가 행한 가장 극단적 형태를 한국에서 ‘근대화’의 명목으로 시행했다는 의미 입니다.

둘째, 박정희 정권의 개발 동원 체제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실마리는 결국 독일의 프로이센과 나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30년대 일본의 군국주의를 추동한 군부세력도 그리고 일본의 제국 헌법을 기초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19세기 말 프러시아에서 정치체제와 법률을 연구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의 경제발전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추앙받는 박정희 대통령이 마치 ‘자유민주주의’의 화신 인 것처럼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이 주장은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주장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일 뿐입니다.

박정희 정부에서 추진한 경제개발계획의 원형은 이미 5.16 쿠데타 전 민간정부인 장면정부에서 입안한 것입니다. 다수의 입안자들은 박정희 정부의 최대 비판자였던 장준하 선생이 이끌던 ‘사상계’ 그룹이었고 대부분 평안도와 함경도 출신 지식인들이 그 계획을 입안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단순히 실행만 했습니다.

김건우 교수의 ‘대한민국의 설계자들(느티나무 책방,2017)에 그 내용이 상새하게 나와 있습니다.

경제개발계획은 그 제목이 명시하듯 계획경제를 의미합니다. 소비에트적 의미까지는 아니지만 분명 정부가 생산및 수요를 통제하는 것을 의미하고 자원의 분배과정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시장에 의해 수요와 공급이 결정된다는 시장자유주의 경제와는 대척점( opposite)에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책의 만주국 경제개발을 위해 일제가 밀어부쳤던 계획경제체제가 바로 박정희 정권이 추진했다는 경제개발5개년 계획, 국토개발계획 등의 원형이라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타당하고 공감합니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1960-1970년대에 시행했던 경제개발계획은 그 자체로 이미 사회주의적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계획경제였고, 국가가 자원의 강제배분과 집중을 통해 거대 재벌 기업을 키웠습니다.

1950년대 일제가 남기고 간 귀속재산(歸屬財産)이 일부 자산가들에게 불하된 것으로 알고 있고 그 자산과 정부의 지원이 현재의 대기업집단의 모태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시 거론하겠습니다.

아무튼 정기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추구한 개발주의적 동원체제는 그 기원이 프러시아의 군국주의적 채제이고 이 체제를 일제가 모방해 본토와 만주국에 이식했으며 만주국 장교 출신이던 5.16 쿠데타 세력들은 자신들이 청년시절이던 1930년대 만주국에서 극단적 형태로 행해지던 군사적 동원체제를 ‘조국 근대화’의 명목으로 그대로 들여온 것으로 이해됩니다.

사람은 딱 자신이 경험한 만큼만 이해하고 인식한다는 말이 적용되는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주장을 다시 곱씹어 보면 결국 한국은 1945년 8월 일제가 연합국에 항복하여 ‘광복’을 이루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한 소련의 공산주의 대륙세력과 미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해양새력의 충돌과 그로인한 인명과 재산손실은 논외로 치더라도 만주국 하급장교 출신이던 군인출신 위정자의 통치로 인해 일제가 세운 만주국을 따라한 유사 군국주의 ( quasi- militarism) 체제가 1980년대까지 지속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1979년 10월 26일 이후 다시 정부를 접수한 사람은 전두환씨입니다.

지금도 보수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운운하지만 역사를 둘러보면 실질적 민주화는 1987년 이후입니다.

일본제국주의의 영향은 그 여파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길고 그 영향력도 상당합니다.

솔직히 사회원로 계층에 아직도 일제시대 교육을 받아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이들이 있는 한 그 영향력이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의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는 일본의 영향력을 가장 최근에 목격한 일이었습니다. 한국의 대법원이 ‘사법농단 ‘을 일으키며 한일간 외교에 간섭한 사실도 충격적이었지만 협상의 막후 교섭을 위해 일봉 정계의 실력자가 청와대로 바로 찿아가 일어를 할 줄 아는 정계원로와 대통령, 총리와 더불어 직접 협상조건을 협상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일어로 편하게 협상했다는 대목도 그렇고 일본이 당시 박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의 따님이라는 사실을 몰랐을리가 없기에 사실 여부를 떠나 내용 자체가 무척 충격이었습니다.

일본과 일본제국주의에 대해서는 따라서 과거의 일이라고 지나갈 일이 아니고 현재까지 한국인의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예의 주시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서울의 도시공간에 대한 책을 읽다가 1960-70년대 상황을 궁금해하고 결국 다시 구한말부터 일제시대 관련 책을 읽게 된 건 결국 현재의 우리를 만든 뿌리가 어디서부터인가를 알기 위해서 입니다.

서울만 봐도 현재의 서울은 조선의 한양에서 출발한 도시지만 남아 있는 흔적과 도시체계는 일제 강점기의 경성입니다.

경성에 대한 정보를 모르면 서울에 대해 현재의 모습에 대해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일본이 한국에게 증오를 유발하고 짜증나게 하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다시 치욕을 당하지 않고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과거와 현재의 일본과 한국에 미친 영향력을 면밀히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프로이센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상호영향에 대한 책 한권을 소개합니다.

문화사회학자 전진성 교수의 책입니다

상상의 아테네(천년의 상상,2015)

건축적 입장에서 독일의 ‘고전주의 건축’이 일본과 조선의 도시건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고찰한 책입니다.
눈에 보이는 건축양식을 기준으로 독일건축의 양식적 영향을 살핀 책으로 독일이 19세기 말 식민지로 점유했던 중국 칭다오의 건축도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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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44년의 비원 - 새로 읽는 고종시대사
장영숙 지음 / 너머북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이책은 총 12장으로 이루어진 책으로 약 380쪽의 분량과 미주가 같이 책 뒷쪽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고종의 재위기간 44년을 망라해 그의 개화 근대화 정책에 대한 전개와 인재등용, 당시 일어났던 정치적 격변, 즉 운요호 사건, 강화도조약,임오군란,갑신정변, 갑오경장, 청일전쟁, 러일전쟁, 을미사변,아관파천, 한일의정서, 을사늑약, 그리고 고종 독살설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다룹니다.
각각 책 한권이상이 될 주제를 다루다보니 너무 겉핥기 식으로 지나가 실망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종은 조선을 ‘망국(亡國)으로 이끈 군주로 알려져 있고 따라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조선의 임금입니다.
그가 이루려고 했던 조선의 부국 강병책이 대부분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의 재위기간동안 일제에 의한 조선병햡이 이루어져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영조, 숙종과 더불어 가장 오랜기간 재위에 있었던 군주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고종재위기간 중 일제에 의해 한일의정서가 맺어지고 을사늑약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 조차 ‘망국’에 가려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한가지, 고종 당시 중요한 정치가로 흥선대원군과 민비가 있지만 이 책애서는 그저 조연으로만 다루어집니다.

흔히 극렬한 수구 정치인으로 알려진 두 인물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책에서 흥선대원군이 정권에 집착하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과연 그런 인물인지는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고종은 강고한 유교사회인 조선을 그래도 나름대로 근대화시키고 강한 국가로 만들려고 노력한 군주이기도 합니다.

다만 충효를 기반으로 덕치를 강조하는 유교정치와 근대적 입헌정치 사이에서 방향을 잡지 못한체 자신이 생각했던 근대화와 부국강병책울 이루어보지 못한 체 생을 마친 비운의 군주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다른 글에서도 여러번 언급했듯,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조선이 대처를 못한 것은 정조 사후 만연한 외척에 의한 세도정치의 악영향이 컸습니다. 안동김씨, 풍양조씨, 반남박씨 등 소수의 세도가들이 정치를 마음대로 농단(壟斷)하며 부정축재를 일삼고 군사력을 기르는데 소홀히 한 영향이 큽니다.

사실 조선 유림 중 척화세력들은 17세기 병자호란 이후 전쟁의 패배와 국치를 당하도록 내버려 둔 댓가를 치루어야 했습니다.

이미 멸망한 명을 사대(事大)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은 이후 발생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본인들의 무지로 전란을 초래해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했으면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고 기존의 철학을 무시하고 새로운 철학을 찿는 것이 일반적인데 조선의 사대부들은 일반적이라고 할텐데, 조선의 사대부는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명이 멸망하고 만주족과 몽골족의 연합 왕조인 대청제국이 들어섰지만, 조선의 사대부 특히 보수 척화론자들은 화이론(華夷論)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체 유교적 의리만 강조하며 망해 없어진 명에 대한 사대만을 강조하고 조선에 굴욕을 안긴 청나라를 무시하는 국제정세상 일어날 수 없는 인식을 계속 고수했습니다.

군신의 도리가 의리를 저버리면 안된다고 하면서 백성들은 철저하게 저버렸습니다.

병자호란 이후 대청제국은 17세기 강희제 재위기간 동안 몽골의 서쪽 준가르제국을 정복하고 영토를 확장하였고 러시아 제국과 국경선을 확정짓는 등 동아시아 맹주로서의 영향력을 강화했으나 조선은 이들이 오랑캐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당시 북경에 들어왔던 서양의 문물에 대해 백안시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무시의 결과가 위기로써 고종재위시에 나타난 것입니다.

따로 군사를 키우지 않고 농민들을 차출해 병력으로 차출하던 조선이 재대로 된 군사력을 가지고 있을 수 없었고, 19세기 서구 제국 열강들과 일본은 근대화된 육상병력과 대양해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종은 유교적 전제군주로서 주권이 강화되기 위해 군주권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그 믿음이 근대적 정치행정제도를 도입하는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유교적 전제군주인 고종에게 독립협회에서 요구한 의회의 설립요구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요구였고, 이미 지식인들 사이에서 민주주의와 입헌군주제를 알고 이를 실현해 보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어 정치적 불안정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갑신정변이 3일천하로 끝난 이유도 전제군주권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지키려하는 고종 앞에서 ‘입헌군주제’를 요구했고 고종은 이런 요구를 왕권에 대한 쿠데타로 규정하고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 등을 참살하게 됩니다.

부국강병을 위한 근대화와 서구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자신의 전제군주권이 약화되는 건 볼 수가 없었던 고종은 따라서 개혁 자체가 흐지부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서구적 근대화와 봉건적 전제군주제는 서로 맞지 않는 짝이니 말이죠.

두번째는 군사력 양성을 위해 끊임없이 외세에 의존한 점입니다.

고종은 대원군 섭정기를 지나 친정을 시작한 이후 유선 일본에 도움을 요청해 신식 군대를 만듭니다. 그리고 구식군대를 차별하고 냉대하는 바람에 군사반란이 일어납니다( 임오군란).

국가의 재정이 빈약한 가운데 아무 대책없이 신식군대 양성부터 하다보니 일본과 중국으로부터 차관을 들여오게 되고 이 두나라가 조선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고종은 임오군란을 통해 통치권의 위기를 경험한 이후 신식군대 양성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이후 명성황후의 외척인 여흥 민씨 세력과 오로지 왕권 강화에만 몰두 합니다.

동학농민항쟁이 일어난 이후에도 변변한 군대가 없던 조선은 청나라애게 군대를 요청하게 되고 이를 빌미로 청의 노골적 내정 간섭이 시작되고 청과 일본간의 탠진조약에 따라 청순과 일본군이 조선땅에 주둔하게 됩니다.

수백년간 소중화를 자처하며 중국의 제후국을 자처하던 사대부 양반들의 사대부의는 19세기 말 청의 노골적 내정간섭을 초래했습니다.

북양대신 이홍장과 원세개는 조선이 오랜기간 중국을 숭앙해오던 속국이라면서 완전한 속국으로 정치에 간섭하겠다고 하자 손쓸 방법이 없었습니다.

실제 개화파 양반인 김윤식, 어윤중 같은 이들은 청의 이런 요구를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500년 사대의 결과가 어처구니없이 나타난 겁니다.

저는 이 상황을 되짚어 보고, 조선 내내 중국에 사대를 했어도 ‘사실상(de facto)’ 조선이 독립국이었다는 주장이 얼마나 허황된 말장난인지 실감합니다.

고고한 유교 도덕정치 한다고 조선 내내 사대부와 조선 지배층은 군사력을 키우는데 소홀했습니다.

더구나 16세기 임진왜란, 17세기 병자호란을 당해 국토가 절단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도 사대부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선후기로 갈수록 군대도 안가고 백성들애게 과도하게 세금을 물리고 재물을 빼돌려 부정축재를 일삼았습니다. 그리고 돌아앉아 ‘덕치’를 해야 한다면서 자신들이 저지르는 일과 정반대의 주장을 했습니다.

위선적입니다.


결국 국력의 근간인 군사력이 없는 조선은 청과 일본이 동학농민항쟁을 빌미로 조선에서 전쟁(청일전쟁)을 할때도 속수무책이었고, 러시아와 일본이 동해에서 해전을 벌이고 일본이 경의선과 경부선 철도부설권을 요구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의 군사력이 100만명에 달하는 반면 고종이 겨우겨우 양성한 조선의 군대는 겨우 3만 뿐이었다고 합니다.

조선은 사대부가 의사결정하던 전제군주제 국가이므로 19세기 말 조선의 이런 참혹한 국력의 상황은 전적으로 사대부와 국왕의 잘못입니다.

너무 명백해서 논란조차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제대로 된 군대가 있었으면 청일전쟁도 일어날 필요가 없었고 고종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러시아 영사관으로 파천할 이유도 없었을 겁니다.

19세기 조선사를 읽으면 유학이라는 학문체계가 서양의 물리적 힘을 당해낼 수 없는 허황된 체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조선이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던 주자의 유학은 사람의 내면은 보는지 몰라도 삶의 조건 따위는 너무나 무관심했습니다.

지금 이런 저의 평가는 21세기의 관점에서 보니 이런 단점이 보이는 것이지만 유교가 전부였고 어설프게 서양을 알던 19세기 말의 조선에서는 자신들이 구축한 세계가 무너지는 절망감과 황당함을 느꼈을 것으로 보입니다.

소수의 양반들이 책임을 방기한 체 의무만 짊어진 다수의 백성들의 생산력에 빌붙어 살던 시대가 조선시대라고 거칠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물질적인 것을 만들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우대하지 않고 착취하면서 고담준론만 이야기 하던 일하지 않던 양반들이 상층을 이룬 사회가 조선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19세기 조선이 왜 ‘민란의 시대’라고 불리는 지 그 원인을 고종시대의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피며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고종시대사 관련 저서 몇가지 소개합니다.

고종시대의 한러관계사 관계해서 감영수 교수의 책 2권을 주목합니다.

미쩰의 시기(경인문화사,2012)- 을미사변을 일본 자료 뿐만 아니라 러시아 자료에 근거해 재구성한 책입니다. 명성황후가 기존의 해석대로 과연 수구파만을 대변한 봉건세력이었는지 심각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100년전의 세계일주(EBS Books,2020)- 친러파이자 근왕세력이었던 민영환이 러시아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을 참석하고 러시아의 군사교관을 요청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마찬가지로 러시아 사료가 인용되었고 당시의 기록인 ‘해천주범(海天秋帆)’을 기반으로 재해석 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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