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셜리 클럽 오늘의 젊은 작가 29
박서련 지음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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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공녀 강주룡>, <마르타의 일>을 쓴 박서련 작가의 최신작이다. <더 셜리 클럽>은 작가가 전작들에서 보인 강점을 결합한 작품으로 보인다. <체공녀 강주룡>에서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진행되는 기발한 형식과 여성들 간의 연대와 협력을, <마르타의 일>에서는 한국의 20대 여성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실감 나게 보여준 것을 기억한다. 여기에 전작들에서는 느끼기 힘들었던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더해져, 이 책을 읽는 내내 즐겁고 행복했다. 


스무 살 '설희'는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난다. 도착한 날은 마침 호주에서 열리는 최대 규모의 축제 중 하나인 '멜버른컵 페스티벌'의 개막일. 축제를 구경하던 설희는 한 무리의 할머니들이 비슷한 명찰을 달고 행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명찰에 적힌 이름은 하나같이 '셜리'. 알고 보니 이들은 셜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클럽인 '더 셜리 클럽'의 멤버들이었다. 그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친구가 될 수 있다니! 설희는 자신의 영어 이름도 셜리라며 가입 신청을 하고, 할머니들은 이렇게 어린 여자(셜리는 한국으로 치면 '자'나 '순'으로 끝나는 이름처럼 옛날에 유행한 이름이다)가, 그것도 외국인이 가입 신청을 하는 건 드물다고 하면서도 셜리를 '임시 명예 회원'으로 받아준다. 


한편 셜리(설희)는 축제 기간에 우연히 S라는 청년을 만나 알고 지내게 된다. 영국인 아버지와 독일계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S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셜리에게 잘 해준다. 셜리는 주중엔 치즈 공장에서 일하고 주말엔 S를 만나거나 더 셜리 클럽의 할머니들과 어울리며 바쁘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셜리에게 안 좋은 일이 연달아 생기고,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셜리는 절망에 빠진다. 셜리의 사정을 알게 된 더 셜리 클럽의 할머니들은, 셜리가 마치 자신들의 친손주인 양 물심양면으로 셜리를 돕는다. 부모의 이혼과 외로웠던 학창 시절의 기억 때문에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지냈던 셜리는, 할머니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마음의 문에 걸려 있던 빗장을 조금씩 푼다.


우리는 누군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누군가로부터 무조건적으로 사랑받기를 기대한다. 셜리는 일찍이 부모로부터 그런 기대를 배신당하며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고 사는 편을 택했다. 그러다 처음으로 이 사람한테만은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 사람만은 지구 끝까지라도 달려가서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더 셜리 클럽의 할머니들이 문자 그대로 '여기저기서' 나타나 셜리를 무조건적으로 도와주고 지지해 준다. 이런 사랑. 이런 응원을 받아본 적이 있던가. 내 이름은 여자 이름으로는 흔하지 않아서 같은 이름을 가진 할머니는커녕 언니, 동생도 찾기 힘들다는 게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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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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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 사람이 죽은 집을 청소하는 직업이 따로 있는지 몰랐다. 이 책을 쓴 김완 작가가 바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다. 저자는 출판과 트렌드 산업 분야에서 일하다 일본으로 건너가 유품 정리 사업에 관해 공부했다.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후 귀국해 특수청소 서비스 회사를 설립하여 일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죽은 사람(때로는 동물)의 집을 수습하고 청소하는 일을 하면서 겪은 일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저자에게 들어오는 의뢰는 자살이나 살인으로 사람이 죽고 난 후의 현장을 치우는 일이 대부분이다. 사람이 죽은 현장이니 죽은 사람의 몸에서 나온 피나 기름을 보는 일은 자주 있다. 그보다 끔찍한 건, 집 주인이 남긴 물건들을 치우며 집 주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상황이나 환경을 짐작하게 되는 일이다. 저자의 경험에 따르면, 혼자 죽는 사람들은 대체로 가난하다. 취업준비생, 중병을 앓는 환자, 시골에 혼자 사는 노인 등등 가까운 가족한테도 의지할 수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가난하고 쓸쓸하게 죽은 사람들의 마지막 자리를 치우면서, 오히려 저자는 누구도 끝까지 혼자가 아님을 확인한다. 어떤 사람도 자신이 죽은 자리를 치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누구의 삶도 함부로 예상하거나 재단할 수 없음도 깨닫는다. 저자는 언젠가 한국에서도 이름난 부촌으로 소문난 동네에 일을 하러 간 적이 있다. 죽은 사람의 집은 겉보기엔 화려했지만 실제로는 전기세가 밀려서 집에 불이 안 들어오는 상태였다. 남들 눈에는 분명 사이좋게 만 보였을 부부가 끔찍한 방법으로 삶을 끝낸 경우도 있었다. 대체 이들에게 사랑이란 무엇이었을까. 목숨과 바꿀 정도라면 차라리 욕망이 아니었을까.


쓰레기집을 치워달라거나 동물의 사체를 수습해달라는 의뢰를 받는 일도 자주 있다. 쓰레기집을 치우는 이야기도 끔찍하지만, 집 안에 케이지를 몇 개씩 설치한 다음 그 안에 동물들을 욱여넣고 키워서 파는 '동물공장' 이야기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참혹했다. 그런 일을 저지른 것으로 모자라, 썩어서 뼈와 머리통밖에 남지 않은 동물의 시체를 치우는 일을 남에게 시키고 돈만 주면 된다고 믿는 인간. 이것이 정말 인간인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나누어 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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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의 시칠리아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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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기 힘든 시기이다 보니 저자의 여행 이야기를 읽으며 대리만족하기도 하고, 언젠가 상황이 좋아져서 편하게 여행할 수 있게 되면 그때는 나도 저자를 따라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해보리라 하는 다짐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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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의 시칠리아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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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가 2009년에 발표한 여행 에세이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의 개정판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서문을 읽다가 '언젠가 읽어본 글인데...' 싶어서 확인해 보니 짐작이 맞았다. 서문의 내용이 워낙 강렬해서 기억한 것일 뿐, 책의 전체 내용을 기억하는 건 아니라서 찬찬히 읽어보았는데 역시 좋았다. 여행하기 힘든 시기이다 보니 저자의 여행 이야기를 읽으며 대리만족하기도 하고, 언젠가 상황이 좋아져서 편하게 여행할 수 있게 되면 그때는 나도 저자를 따라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해보리라 하는 다짐도 해봤다. 


이 책은 저자가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지역을 여행한 기록을 담고 있다. 저자는 당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상황이었다. 국립대학(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방송국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다양한 행사에 불려 다녔고, 여러 매체에 수시로 글을 기고했다. 덕분에 남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서울에 괜찮은 집 한 칸도 가졌지만, 정작 자신의 글은 쓸 수가 없었다. 소설가인데, 소설을 쓸 여력이 없었다. 그런 상황을 알아본 사람들이 "좀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해도 "괜찮아."라고 말하며 도리질하고 하던 일에 열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이대로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얼마 전 방송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를 여행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일정에 쫓겨서 가보지 못한 곳들, 가봤지만 또 가보고 싶은 곳들이 생각났다. 아내의 동의를 얻어 장기 여행을 계획했다.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고 집도 내놨다. 그리하여 떠난 여행은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열차가 지연되지 않나, 숙소가 예상한 것과 다르지 않나,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도 없고, 인터넷 연결이 잘 안되는 곳도 많았다. 열차 예약도 숙소 예약도 짧은 이탈리아어와 웬만해선 통하지 않은 영어로 해결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칠리아 여행을 마쳤을 때, 저자는 진심으로 여행하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단지 여행을 계기로 단조롭고 권태로웠던 일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먼 곳을 여행하며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며 글을 쓰는 삶은 어릴 때부터 저자가 동경한 것이었다. 그러한 동경을 현실로 이룰 수 있어서 기뻤고, 덕분에 잃어버렸던 과거의 꿈도 떠올리고, 이를 통해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었으니 여러모로 유익했다. 저자의 이야기처럼, 떠남으로써 도착할 수 있는 상태가 있고 삶이 있다. 여행을 하기 힘든 요즘이 그래서 더 힘든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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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지갑을 채울 디지털 화폐가 뜬다
이장우 지음 / 이코노믹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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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암호화폐 대란이 일어났던 것을 기억한다. 그 후로 암호화폐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때 투자한 사람들은 돈을 벌었는지 못 벌었는지에 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아는 것이 없다. 그러던 중에 한양대학교 글로벌기업가센터 겸임교수이자 블록체인 비즈니스 전문가인 이장우의 책 <당신의 지갑을 채울 디지털 화폐가 뜬다>를 만났다. 이 책에 따르면 내가 기억하는 암호화폐의 큰 버블 이후, 암호화폐 산업은 엄청나게 성장했다. 페이스북, 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 뛰어들면서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었다.


현재 디지털 화폐 시장의 상황은 이렇다. 미국은 디지털 달러 발행을 적극적으로 논의 중이고,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 사용이 이미 시범 단계에 접어들었다. 페이스북은 암호화폐 리브라(libra) 코인을 발행할 예정이다. 스타벅스는 비트코인 거래소(bakkt)에 투자했다. JP 모건은 글로벌 B2B 결제를 위한 JPM 코인을 발행했다. 한국은 카카오톡이 암호화폐 KLAY 코인을, 네이버의 라인이 LINK 코인을 출시했다. 정부와 기업, 국내외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디지털 화폐 산업에 뛰어들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주요 경제 주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디지털 화폐 산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IT 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가 디지털 기기에 의해 연결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기업의 경우에는 수익성 향상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예를 들어 애플의 경우, 애플 기기의 사용자는 전 세계에 퍼져 있지만 그들이 결제할 때 사용하는 화폐는 나라마다 다르다. 만약 이것이 애플에서 개발한 디지털 화폐로 통일된다면, 그만큼 사용자들의 편의가 증대되어 궁극적으로는 애플의 수익성이 향상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위기를 느끼는 업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예가 금융계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카카오, 네이버 같은 IT 기업들이 카카오뱅크, 네이버페이 등의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기존 은행들이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었다는 보도를 여러 번 접했다. 디지털 화폐 기술이 발전하면 오프라인 매장 운영에 필요한 직원들의 수가 감소해 서비스업 분야의 고용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예측과 분석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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