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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자를 위한 고전노트 ㅣ 책 옆에 책 1
이수은 지음 / 스윙밴드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연애를 많이 해보지 못하고 죽는 건 억울하지 않으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 문학을 다 읽지 못하고 죽는 건 억울하다는 생각에, 일 년에 고전 문학 몇 권은 읽으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유명한 고전 문학 작품일수록 읽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경우 야심 차게 전권을 샀다가 1권도 끝마치지 못한 채 포기했고, <율리시스>는 세 장인가 읽고 폭풍 수면했다. 이럴 때 어려운 고전 문학 작품을 쉽고 재미있게 해설해 주는 가이드가 있으면 참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던 차에 19년 차 출판 편집자 이수은이 쓴 <숙련자를 위한 고전 노트>를 만났다.
이 책은 누구나 한 번쯤 제목은 들어봤을 서양 고전 문학 22편의 줄거리와 배경지식, 작품의 의미와 가치, 작품과 작가에 관한 뒷이야기 등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한다. 소개된 작품으로는 볼테르 <캉디드>, 버니언 <천로역정>, 새커리 <허영의 시장>,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호메로스 <일리아스>, 괴테 <파우스트>,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등이 있다(이 중에서만 내가 읽다 만 작품이 몇 개인지... <두 도시 이야기>! <돈키호테>!! <파우스트>!!!). 2014년에 출간된 김용석의 <고전 문학 읽은 척 매뉴얼>과 콘셉트가 유사한데, 작품 수와 분량, 내용의 깊이는 <숙련자를 위한 고전 노트>쪽이 우세하다.
현대 독자들이 고전 문학을 읽기 어려워하는 이유에 관한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예전 작가들은 중요한 대목일수록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고 비유나 완곡어법 등을 사용하거나 건너뛰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성관계를 하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황홀한 꿈을 꾸었다거나 몸에 어떤 자국이 남았다거나 하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언급하거나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래서 어떤 문학 작품을 읽는데 방금 전까지 남남이었던 두 남녀 사이에 아이가 생기고 가정을 차리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고전 문학을 읽다 보면 소수자를 비하하거나 차별하는 관념이 남아 있는 문장도 빈번히 보게 된다. 특이 여성을 혐오하거나 비하하는 표현은 국적과 시대를 불문하고 수시로 등장한다. 현대 여성 독자들에게는 불편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다.
이 책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줄거리 요약이다. 이 책은 단순히 책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치 방금 책 한 권을 다 읽은 사람이 친구에게 그 책이 어떤 내용이고, 무엇이 좋았는지를 시시콜콜 이야기하듯이(내가 자주 하는 짓이다. 친구야 미안...) 책의 줄거리를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재미 포인트까지 콕콕 집어 알려준다. 덕분에 그 책을 읽지 않은 독자도 그 책을 읽은 듯한 기분이 들고, 어디서 그 책 안 읽었다고 구박 당할 처지는 면하게 해준다. 저자의 설명을 듣고 직접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작품도 적지 않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이 그랬고, 카프카의 <성>이 그랬다.
작품 해석도 작가 자신의 고유한 발상이 돋보여서 좋았다. 괴테의 대작 <파우스트>를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의 '새만금+4대강 프로젝트' 이야기라고 요약한 대목에서 웃음이 빵 터졌고, 도스토옙스키의 걸작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죄 있는 자들을 위한 소설'이니 아직(!) 지은 죄가 많지 않은 청소년들보다는 죄 많은 어른들이 읽어야 한다고 쓴 대목에서도 배를 잡고 웃었다(나에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 어려운 건 지은 죄가 많지 않아서일까? ㅎㅎㅎ). 톨스토이의 <부활>을 설명하면서 '인간은 평등하기보다 자유롭기가 더 쉽기 때문에 우리가 수호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 가치는 평등이다'라고 쓴 대목도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