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은 토끼입니까? 9
Koi 글.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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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화가 예뻐서 계속 보게 되는 만화다. 8권이 정발된 이래 1년 5개월 만에 정발된 9권에서 소녀들은 아직 여행 중이다. 교복 차림으로 놀이공원에 가기도 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야경을 보러 가기도 하고, 어른의 기분(!)을 느끼려다 걸려서 호텔 근신 처분을 받기도 한다. 여행을 마치고 원래 살던 마을로 돌아온 후에도 여행 기분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빨리 오늘 묵을 호텔로 이동하자", "여기라면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농담을 하다가 혼이 나기도 한다(ㅋㅋ). 


소녀들이 여행 기분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건, 여행이 끝나면 일곱 명이 함께 지내는 나날도 끝이 나기 때문이다. 누구는 고등학생이 되고, 누구는 새 학년이 되고, 누구는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이런 변화에도 바뀌지 않는 우정이란 존재할까. 부디 이 일곱 소녀가 변치 않는 우정을 증명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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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 - 제9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42
황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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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사이에 '진지충'이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한다. 원래는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를 조롱할 때 쓰는 말이었는데, 이제는 생각이 많은 아이,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아이,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는 아이, 교실에서 책을 읽는 아이까지도 진지충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실제로 이 단어를 사용하는 아이를 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 검색창에 진지충을 검색해보니 검색 결과가 어마어마하게 나온다. 아마 내가 요즘 아이들과 학교에 다녔다면 영락없이 진지충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나는 어디서나 책을 읽고, 어려운 단어 사용을 즐기며,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고, 생각도 많으니까. 


황영미 작가의 소설 <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의 주인공 다현은 아이들이 진지충이라고 부를 만한 속성을 지닌 아이다. 중학교 2학년인 다현은 책을 좋아하고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으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클래식 음악과 가곡을 좋아한다. 하지만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친구들이 알면 진지충이라고 놀리고 따돌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짜 모습은 오직 비공개로 운영하는 개인 블로그 '체리새우'에만 털어놓는다. (블로그를 하는 사실조차 친구들에게 알리지 못한다. 친구들에게 블로그는 진지충들이나 하는 올드한 취미이기 때문이다...) 


변화의 계기는 국어 선생님이 내준 모둠 과제다. 처음에는 친한 친구들과 같은 모둠이 안 되어 서운했는데, 알고 보니 같은 모둠이 된 아이들은 모두 능력자였고 호흡도 잘 맞았다. 특히 은유가 그랬다.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잘난 척이 심하고 다른 아이들을 무시한다고 했는데, 직접 대화해 보니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책을 좋아하고 또래에 비해 성숙한 취향을 가진 것도 다현의 진짜 모습과 비슷해서 호감이 생겼다. 하지만 은유와 친하게 지내면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당할 게 분명하다. 전에도 여러 번 은따를 당한 경험이 있고 그로 인한 상처가 아직 남아있는 다현으로서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나를 속이고 좋아하지도 않는 친구들과 지내는 게 맞을까, 따돌림을 당하더라도 나에게 솔직한 편이 맞을까. 이건 이 나이 때는 물론이고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하게 되는 고민인 것 같다. 결국 다현은 용기가 필요한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되지만, 현실에서도 다현처럼 용감한 결단을 내렸을 때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릴 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바른 소리 했다가 혼자만 다치는 경우도 현실에는 왕왕 있으니. 하지만 내가 원하는 나, 진짜 나로 살기 위한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새우도 사람도 껍질을 벗고 세상 밖으로 나올 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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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시를 향하여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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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님이 추천해 알게 된 작품이다. 제목의 '0시'는 일종의 비유로, 시곗바늘이 0시를 향해 도는 것처럼 모든 정황이 살인이라는 하나의 지점을 향해 간다는 의미다. 그러니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사건 자체만 보지 말고 사건 주변의 모든 관계자들과 그들의 관계, 상황, 입장 등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조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야기는 한 여자가 저택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살해 당시 이 저택의 분위기는 결코 온화하지 않았다. 저택의 주인인 트레실리안 부인에게는 네빌 스트레인지라는 조카가 있는데, 잘생기고 부유한 테니스 스타인 네빌에게는 전 부인 오드리와 현 부인 케이가 있다. 조카가 착하고 고상한 오드리와 이혼하고 젊고 화려한 케이와 재혼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트레실리안 부인은 오드리만 저택으로 초대한다. 그런데 네빌이 원래의 휴가 계획을 수정해 케이와 함께 트레실리안 부인의 저택을 방문하면서 일이 틀어진다. 여기에 전부터 오드리를 짝사랑했던 토마스, 트레실리안 부인의 개인 하녀인 메리 등의 관계가 얽히면서 사건이 점점 복잡해진다. 


설정도 그렇고 전개도 그렇고 치정 소설 느낌이 많이 난다(막장 드라마?). 전 부인을 질투하는 케이야 그렇다 쳐도(남편 뭐임??), 대놓고 조카며느리들을 차별하는 트레실리안 부인의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았는데, 작가도 같은 입장인 듯 작품 속에서 시원하게 질타한다. 결말이 사족 같은 느낌이 없지 않은데, 당시 독자들은 좋아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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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
이수은 지음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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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외국문학 편집자 이수은의 독서 에세이집이다. 저자의 전작인 <숙련자를 위한 고전노트>를 무척 좋게 읽었는데, 그에 비해 이 책은 분량도 적고 글의 밀도도 높지 않은 편이다. 이 책을 읽고 이수은 저자에게 관심이 생겼거나 저자의 가이드를 따라 외국 문학을 좀 더 깊이 있게 읽고 싶다면 <숙련자를 위한 고전노트>를 꼭 읽어보길 권한다. 


이 책은 일종의 '책 처방전'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슴속에 울분이 차오를 때, 사표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 통장 잔고가 바닥일 때, 왜 나만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지 한스러울 때 등등 이런 상황 저런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소설을 적절하게 소개해 준다. 지금 당장은 문제 상황이 없어도 만약에 대비해 읽어두면 훗날 요긴하게 쓰일지도. 문제 해결이 시급해 보이는 친구에게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을 살포시 권해주는 것도 좋겠다(단, 힘들 때도 힘들지 않을 때도 책을 읽는 나 같은 사람 한정. 안 그럼 절교 당할 수도...). 


<달과 6펜스>, <변신>, <레미제라블> 등 유명한 외국 문학 작품들은 물론이고, <울분>, <이름 없는 주드>, <폭풍의 한가운데> 등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외국 문학 작품들도 소개되어 있다. <밀크맨>, <방랑자들> 같은 최근 작품들도 있고, 한국 작품으로는 정세랑 작가의 <옥상에서 만나요>가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을 읽고 코맥 매카시의 작품에 관심이 생겼다. 마초 느낌이 강해서 안 좋아했는데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인 듯. 이제부터 찬찬히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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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자를 위한 고전노트 책 옆에 책 1
이수은 지음 / 스윙밴드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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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많이 해보지 못하고 죽는 건 억울하지 않으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 문학을 다 읽지 못하고 죽는 건 억울하다는 생각에, 일 년에 고전 문학 몇 권은 읽으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유명한 고전 문학 작품일수록 읽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경우 야심 차게 전권을 샀다가 1권도 끝마치지 못한 채 포기했고, <율리시스>는 세 장인가 읽고 폭풍 수면했다. 이럴 때 어려운 고전 문학 작품을 쉽고 재미있게 해설해 주는 가이드가 있으면 참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던 차에 19년 차 출판 편집자 이수은이 쓴 <숙련자를 위한 고전 노트>를 만났다. 


이 책은 누구나 한 번쯤 제목은 들어봤을 서양 고전 문학 22편의 줄거리와 배경지식, 작품의 의미와 가치, 작품과 작가에 관한 뒷이야기 등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한다. 소개된 작품으로는 볼테르 <캉디드>, 버니언 <천로역정>, 새커리 <허영의 시장>,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호메로스 <일리아스>, 괴테 <파우스트>,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등이 있다(이 중에서만 내가 읽다 만 작품이 몇 개인지... <두 도시 이야기>! <돈키호테>!! <파우스트>!!!). 2014년에 출간된 김용석의 <고전 문학 읽은 척 매뉴얼>과 콘셉트가 유사한데, 작품 수와 분량, 내용의 깊이는 <숙련자를 위한 고전 노트>쪽이 우세하다. 


현대 독자들이 고전 문학을 읽기 어려워하는 이유에 관한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예전 작가들은 중요한 대목일수록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고 비유나 완곡어법 등을 사용하거나 건너뛰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성관계를 하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황홀한 꿈을 꾸었다거나 몸에 어떤 자국이 남았다거나 하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언급하거나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래서 어떤 문학 작품을 읽는데 방금 전까지 남남이었던 두 남녀 사이에 아이가 생기고 가정을 차리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고전 문학을 읽다 보면 소수자를 비하하거나 차별하는 관념이 남아 있는 문장도 빈번히 보게 된다. 특이 여성을 혐오하거나 비하하는 표현은 국적과 시대를 불문하고 수시로 등장한다. 현대 여성 독자들에게는 불편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다. 


이 책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줄거리 요약이다. 이 책은 단순히 책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치 방금 책 한 권을 다 읽은 사람이 친구에게 그 책이 어떤 내용이고, 무엇이 좋았는지를 시시콜콜 이야기하듯이(내가 자주 하는 짓이다. 친구야 미안...) 책의 줄거리를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재미 포인트까지 콕콕 집어 알려준다. 덕분에 그 책을 읽지 않은 독자도 그 책을 읽은 듯한 기분이 들고, 어디서 그 책 안 읽었다고 구박 당할 처지는 면하게 해준다. 저자의 설명을 듣고 직접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작품도 적지 않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이 그랬고, 카프카의 <성>이 그랬다. 


작품 해석도 작가 자신의 고유한 발상이 돋보여서 좋았다. 괴테의 대작 <파우스트>를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의 '새만금+4대강 프로젝트' 이야기라고 요약한 대목에서 웃음이 빵 터졌고, 도스토옙스키의 걸작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죄 있는 자들을 위한 소설'이니 아직(!) 지은 죄가 많지 않은 청소년들보다는 죄 많은 어른들이 읽어야 한다고 쓴 대목에서도 배를 잡고 웃었다(나에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 어려운 건 지은 죄가 많지 않아서일까? ㅎㅎㅎ). 톨스토이의 <부활>을 설명하면서 '인간은 평등하기보다 자유롭기가 더 쉽기 때문에 우리가 수호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 가치는 평등이다'라고 쓴 대목도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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