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을 말하다
천승세 외 34인 지음 / 답게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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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보다는 사람이 더 유명한 시인.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라고들 하는데, 순진무구한 행동과 갖은 기행으로 더 유명해진 사람이다.

 

'귀천'이란 시와 '귀천'이란 찻집으로도 많이 알려진 사람이고.

 

이 책은 그의 13주기에 맞춰 천상병을 알던 사람들의 글을 모은 책이다.

 

사실 그의 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말년에 쓴 시들은 어린 아이의 시라고 할 수 있고, 초기 시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귀천'이나 '새', 그리고 '주막에서'는 유명한 작품이긴 하지만, 시인으로서 그가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그다지 높지 않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천상병으로서는 그는 다른 사람들의 맨 앞자리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남들에게 막걸리 값을 달라고 한 것이라든지, 행려병자가 되어 살아 있음에도 유고시집이 나왔다던지, 술 마시고 벌인 그의 수많은 행동들은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그가 그렇게 기행을 일삼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행은 기행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자연스레 지닌 품성이 발현된 것이라고 이 책에서 글을 쓴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그가 작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본성에서부터 솟아나오는 행동이라는 것, 그래서 그의 행동을 미워할 수 없다는 것.

 

이런 그의 행동들에 대해서 그를 아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천상병이란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더불어 그의 시도 몇 편 읽을 수 있어서 좋고.

 

어쩌면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 또한 우리 사회의 행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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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기억
미셸 라공 지음, 이재형 옮김 / 책세상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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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들은 역사의 휴지통에 들어간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알프레드 바르텔르미가 트로츠키의 말을 빌려 쓰는 말이다. 패자들은 역사의 휴지통으로 사라져 버린다는 말. 이 말은 결국 역사란 승자들의 기억이라는 말이고, 패자들의 기억은 사라져 버린다는 말이다.

 

이 말을 쓴 트로츠키 자신도 역사의 휴지통 속으로 들어갔지만, 정작 그보다도 먼저 역사의 휴지통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아나키스트들이었을 것이다.

 

하여 이 소설은 이러한 아나키스트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도 세계 역사에서 가장 격동기라고 할 수 있는 191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를 중심으로 다룬. 알프레드를 중심으로 우리가 아는 인물이 많이 나오는.

 

그러나 결국 역사의 휴지통으로 사라져 버린 또는 버릴 뻔한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패자들에 대한 기억을 김성동이 되살려 내고 있다. 그가 쓴 "현대사 아리랑"이라든지, "염불처럼 서러워서"를 보면 패자들을 역사의 휴지통에서 꺼내어 복원시키려 애쓰는 그의 노력이 잘 드러난다.

 

이 소설의 제목이 "패자의 기억"인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승자로만 점철된 역사에서 그 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를 복원시켜 내는 일 역시 중요하다는 것. 또 역사는 승자와 패자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헌책방과 휴지통

 

공통점을 찾자. 이 소설은 이 두 단어에서 시작한다. 시작이 바로 헌책방에서의 만남이고, 헌책방에서의 만남은 트로츠키가 했다는 말인 역사의 휴지통과 연결이 된다.

 

헌책방이 어떤 곳인가? 한 때 누군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책들이 이제는 소용이 없다는 판정을 받고 새로운 주인을 찾아 버려진 곳 아니던가. 여기서도 주인을 찾지 못하면 먼지만 뒤집어 쓴 채 세월을 보내다 결국 완전히 잊혀지고 폐기처분 되는 곳.

 

그곳이 바로 헌책방 아니던가.

 

그러나 이러한 헌책방에서 새로운 주인을 만난 책들은 자신의 기록을 기억으로 남기게 된다. 이들은 다시 세상에 나와 활동을 하게 된다. 자신의 쓸모를 찾게 된다.

 

역사의 휴지통도 마찬가지다. 역사의 휴지통이라는 말이 잘 다가오지 않는다면 컴퓨터의 휴지통을 생각하면 된다.

 

지금은 필요없다고 생각해서 휴지통으로 버린 파일들. 그 파일들이 어느 순간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복원시키는 기능을 통해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헌책방으로 부터, 세월이 흘러흘러 결국 헌책방 주인이 된 알프레드를 젊은 내가 만나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그에 대해 알아가면서 그의 전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몇 십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의 이야기를 한 편의 글로 쓰는 과정과 그의 삶에 내용이 이 책에 드러나는 것이다.

 

헌책방에서 옛 아나키스트를 만나고, 그의 삶을 재조명하고, 그의 사상이 버려진 것이 아니라 복원되어야 함을, 따라서 그의 첫책을 그가 다시 펴내려고 하는 것과 그들의 사상이 다시 세상에 나와야 함을 헌책방과 휴지통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역사와 역사소설

 

이 소설은 역사소설이라고 해야 하니, 역사와는 다르다. 그러니 이 소설에 나온 내용이 다 사실이야 하면 안된다. 특정한 인물들이 역사적인 인물이고, 큰틀에서 그 인물들이 겪었던 일들은 사실이나,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허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간혹 역사소설을 읽다가 역사와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소설은 우리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키워주고, 또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경험을 하게 해준다. 그것이 역사소설의 매력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읽을 필요가 있다.

 

아나키즘에 대하여

 

이 소설은 한때는 주도적인 사회사상이었으나 마르크시즘과 다른 사상들에 밀려 우리 기억에서 사라졌던 아나키즘에 대해서 알려준다. 때마침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역사의 휴지통에서 아나키즘이 복원되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물론 아직은 지식인들의- 이 소설에서 그렇게 경계해 마지 않는 - 사상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지만,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아나키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으니... 아나키즘에 다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아나키즘이 어떤 사상이고, 어떻게 활동했으며 그들의 주요사상은 무엇이고, 주요 사상가는 무엇인지 이 책은 역사소설의 형식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다. 역사소설이기에 그것도 프랑스 사람을 주요 인물로 삼고 있기에 크로포트킨이나 바쿠닌, 생시몽, 푸리에 등의 사상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들에 대해서도 오히려 더욱 생생하게 알 수가 있다.

 

이것이 바로 소설의 매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소설을 통하여 역사의 휴지통과 헌책방은 연결이 되고, 우리에게는 이미 사라져버렸다고 생각되었던 과거들을 끄집어내 상기시켜 주고, 그 과거가 지금의 우리와 연결되고 있음을, 지금에도 유용함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방대한 분량의 소설

 

이 소설 분량이 참으로 방대하다. 무려 700쪽이 넘는다. 그것도 한 권으로 펴냈으니, 우선 분량에 망설여진다.

 

두 권으로 분책을 했더라면 좀더 좋았으려나. 하지만 조금이라도 현대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특히 사회주의 운동사나 아나키즘 운동사, 또는 에스페란토어 운동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소설, 결코 길지 않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어야 한다. 한 노동자 출신의 아나키스트가 서구 사회에서 겪게 되는 격동의 30년 정도가 너무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들이 어떻게 탄압을 받고 사라져갔는지를 러시아 혁명에서, 또 스페인 내전에서 겪는 일들에 대한 서술을 통해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문학의 힘이 바로 우리 삶을 이끄는 힘이라고 한다면, 이 소설은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지, 도대체 정치는 무엇인지, 국가는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작년에 읽었던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라는 만화가 마음을 울렸는데, 그와도 연결이 되고, 또 "어느 무정부주의작의 죽음'이라는 책과도 연결이 된다.

 

이 두 책은 모두 스페인 내전에서 아나키스트들의 활동에 대해서 쓴 글이기에 이 책의 중후반부와 연결이 된다. 특히 '두루티'라는 인물은 공통적으로 등장을 하니 이 책들을 먼저 본 사람은 이 소설이 반갑게 다가올 것이다.

 

양차 세계대전에 대한 아나키스트들의 입장, 국가에 대한 아나키스트들의 입장, 정치활동에 대한 입장 등 어쩌면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광범위하게, 그러나 너무도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아나키즘 논쟁과도 연결이 되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정치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다시 부상하고 있는 아나키즘 운동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알프레드 바르텔르미'

 

이 책의 주인공인 아나키스트. 그가 겪은 현대사의 격랑이 아프게 다가온다. 그는 비록 패자에 속하지만,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휴지통에서 다시 복원되어 우리들 기억에 남는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간혹 이런 소설들을 통해서, 또 다른 기록들을 통해서 역사에 복원되어 기억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런 경우가 바로 우리 역사를 더욱 풍부하게 하고 바른 길로 갈 수 있게 한다.

 

비록 소설이지만 많은 경우가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는 역사소설이므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20세초 세계 역사의 격동기에, 또 서양역사에서는 백가쟁명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그 사상 난무의 시대를 온 마음으로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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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사도 - 도킨스가 들려주는 종교, 철학 그리고 과학 이야기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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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의 글 모음집이다.

 

그의 글들을 모아 놓아서 도킨스의 자전적 성격이 강한 글인데, 악마의 사도라는 말은 다윈의 글에서 따왔다고 한다.

 

신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악마의 사도일지도 모르겠다. 요즘도 창조과학학회라는 곳에서는 학교에서 과학 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치면 안된다고 하니 말이다.

 

그들에게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이 환경에 따라 서서히 변화해왔다는 진화론은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고, 신을 거부하는 주장일테니, 모든 학생들이 배우는 과학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반대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창조론자들의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리처드 도킨스이고, 이 책 곳곳에서 그는 이러한 창조론자들에 대해서 혐오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창조론자들과 하는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자신이 그런 토론회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창조론자들을 돕는 행위라고까지 하니, 창조론자들에게 도킨스라는 사람은 정말 악마의 사도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성의 힘을 믿는다. 그리고 이성의 힘이 바로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고 믿고 있다. 이성의 힘을 믿기에 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학생들을 그릇된 방향으로 이끄는 교육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다. 이미 다른 책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며 사는 기쁨:온들의 샌더슨' 같은 글은 지금 우리 교육현실에서도 참조할 점이 많다.

 

작년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학교에서 "안전, 안전"하는 목소리가 더 커졌고, 심지어 단체활동을 할 때는 안전지도사가 없으면 단체활동도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소리도 있는데...

 

'온들의 샌더슨'은 반대로 주장하고 있다. 학생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무언가를 해보지 않으면 어떻게 발전하겠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이는 외국에서 놀이터를 너무 안전하게 만드는 것에 반대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큰 사고가 나지 않도록 방지해야 하겠지만,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지만, 안전 만능주의로 가서는 발전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이 책에 실린 '온들의 샌더슨'은 꼼꼼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그는 이성의 힘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기에 이 책의 맨 마지막 장에서 딸에게 쓰는 편지인 "믿음의 좋은 이유와 나쁜 이유"에서 조심해야 할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증거는 무언가를 믿기 위한 좋은 이유가 되지. 그리고 나는 무언가를 믿기 위한 나쁜 이유 세 가지를 조심하라고 네게 알려주고 싶어. 그것은 '전통', '권위', '계시'라고 불리지.' (449쪽)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우리는 무언가를 믿을 때 증거에 기대지 않고 전통이나 권위 또는 계시에 의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믿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언가에 대해서 들었을 때 그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습관을 지니는 것이 좋겠다.

 

도킨스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는 이 책. 도킨스라는 생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이야기와 더불어 종교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삶에 관한 이야기를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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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지 위를 걷는 시인들
김현성 지음 / 샘터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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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간혹 아쉬움이 남는 책들이 있다.

 

나온 줄도 모르고 있다가 시간이 흘러 그 책이 품절이 된 경우.

 

작은 도서관에 가면 책도 없고, 또 큰 서점에 가도 이미 품절이 된 책은 구하기 힘들고 헌책방에서나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는 책.

 

이 책이 그랬다. 헌책방에서 만나기 전에는 나왔는지도 모르고 지냈다.

 

김현성이라면 믿음이 가는 사람이었는데, 그의 시노래를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데, 사실 주기적으로 서점에 들르지 않으면 어떤 책이 나왔는지 알 수가 없고, 인터넷 서점에서도 마찬가지로 세상에 나와 있는 책을 모두 알 수는 없으니, 이 책의 존재조차도 모르고 지냈다.

 

그러나 어떤 책은 내 손에 들어올 운명이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시노래에 대해서, 시가 노래가 되고 노래의 가사가 시가 되는 그런 상태를 내가 좋아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눈에 띠게 마련이니 말이다.

 

이 책은 노래말을 생각하는, 또는 노래를 만들고 싶어하는 싱어송 라이터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그는 직접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느 날엔가 노랫말을 잘 쓰기 위한 책이 잇는지 찾았다. 그러나 큰 서점임에도 불구하고 노랫말을 잘 쓰기 위한 참고서적이 없었다. 새삼 기이하게 느껴졌다. 세상 온갖 것들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노랫말에 관한 책이 없다니……' (이 책 서문 '좋은 노래가 넘치는 세상'에서)

 

지금은 노래가 워낙 빨라져 젊은이들은 그 속도를 따라가겠지만, 조금 나이 먹은 사람들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또 노래 가사에는 영어와 비속어와 줄임말들이 잡탕처럼 섞여 있어서 노랫말을 기억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노래들은 어른들의 노래와 젊은이의 노래로 양분되어 있는 현실이다. 젊은이들은 텔레비전의 황금시간대에 하는 온갖 음악쇼프로그램을 즐기고, 조근 나이 있는 사람들은 7080이라는 늦은 시간에 하는 음악 프로그램을, 또 더 나이 있는 사람들은 가요무대라는 프로를 즐기고 있는 현실.

 

그래도 '불후의 명곡' 같은 프로그램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예전 노래를 즐기게 하고 있으니, 나름대로 세대를 아우르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즘 노래와 예전 노래의 차이는 속도에도 있지만, 노랫말에도 있다. 예전 노랫말들은 시에 가까웠거나 시였다면, 요즘 노랫말들은 도무지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이해할 필요가 없는 내용들이다.

 

김현성은 이 점을 안타까워 한다. 그래서 그는 노랫말도 노래의 멜로디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좋은 노랫말을 가진 노래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어떤 노랫말들이 좋은 노랫말일까?

 

그건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쓰인, 정확하고 명료하게, 보편적으로 쓰이는 말들을 사용하지만, 그러나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그런 노랫말이다.

 

이런 노랫말들은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어느 순간 우리 가슴에 들어와 우리 세포 하나하나에 들어가 있어 어느 순간 그 세포들을 울리며 다시 밖으로 나온다. 진한 감동으로.

 

이런 노랫말들은 시에 다름 아니다. 그 자체가 시다. 멜로디가 있는 시. 노래로 불리는 시. 노래가 된 시.

 

노래를 우리 민족만큼 좋아하는 민족도 그리 많지 않을텐데... 어디서고 몇 명이 모이면 노래를 하던 예전에서, 이제는 공공예절이 어쩌고 저쩌고 하니 아예 노래방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그곳에서 노래를 하는 민족 아니던가.

 

이런 민족에게 노래는 곧 우리의 삶이었는데, 그런 삶을 표현하는 노래들이 좋은 노랫말로 쓰여져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 점에서 이 책은 노랫말을 쓰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꼭 노랫말을 쓰고 노래를 만들려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으면 노래에 대해서, 그 노랫말들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고, 더불어 좋은 시들도 많이 만나게 된다.

 

여기에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생활을 더 잘 바라볼 수 있게 되기도 하고,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가지게 될 것이다.

 

하나 더, 노래를 좀더 애정을 가지고 대할 수 있을 것 같고, 노랫말에도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굳이 싱어송 라이터들이 아니더라도 그냥 읽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물론 좋은 노랫말과 노래를 만들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가 서문에서 말했듯이 노랫말을 쓰는 기본적인 지침서가 될 것이다.

 

여러모로 유용한 책인데... 품절이 되어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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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는 삶이다 - 복지국가 전문가 이상이의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도전
이상이 지음 / 밈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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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복지를 말한다.

 

아니다. 선거철만 되면이 아니라, 선거철에만 복지를 말한다. 그들에게 복지란 투표용지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복지는 선거가 끝나고 나면, 이미 당선이 확정되면 폐기처분되고 만다.

 

그렇게 몇 년을 폐기처분되었다가 다시 선거철이 되면 또 나타난다. 이번에는 진짜라고, 꼭 실현하겠다고... 마치 양치기 소년 같이 또다시 복지를 들먹인다.

 

"복지가 나타났다! 복지를 이루겠다! 내가 하겠다! 우리가 하겠다!"

 

양치기 소년은 쉬지 않고 소리 친다. 그런데 아직 이 양치기 소년이 거짓말을 세 번을 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딱히 다른 말을 믿을 것도 없다고 여기는지 사람들은 이런 말을 또 믿어준다. 이번에는 복지가 이루어지겠지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역시나로 끝나고, 사람들은 이제 복지는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보편적 복지는 불가능하니 선별적 복지나 제대로 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정치인들을 지지한다.

 

얼마나 당했으면 하는 마음이 일기도 하지만, 양치기 소년은 거짓의 대가를 호되게 치렀는데, 우리 정치인들은 거짓의 대가를 아직도 치르지 않고 있다. 그러니 거짓이 반복될 수밖에.

 

이 책은 복지전문가, 아니 복지국가 전문가인 이상이의 주장이 나타난 글이다. 우리나라 복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겠거니 했다가 처음을 보고 놀랐다.

 

어린시절 자신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사고로 후천적 지체장애인이 되어야 했던 자존감을 잃었던 학창시절, 공부로 극복하고, 우여곡절 끝에 의대에 들어가 비로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았던 젊은 시절.

 

자서전을 읽는 느낌을 주었다. 처음 부분은. 그의 자전적 내용으로 책이 끝까지 이어지는데, 이런 청년 시절을 거쳐 그는 보건의료정책의 전문가가 되어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공공화를 위해 노력을 한다.

 

그가 개입한 일만 해도 많은데, 그 중에 현대사의 격랑을 거쳐온 것들을 이야기하면 의료보험의 국민건강보험으로의 통합, 의약분업, 의료민영화 저지, 건강보험 하나로 등이 있다.

 

이렇게 의료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던 그가 의료분야 만으로는 우리나라 복지를 이룰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래서 이 때부터 그는 복지 전문가가 아닌 복지국가 전문가가 되기로 한다.

 

함께 모여 공부하고 홍보하고, 정책을 강제하고 하는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런 노력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데, 여러 시민단체와 연계하여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활동이 효과가 있으려면   

 

'역동적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세 축의 동시 전략이 필요하다. 첫 번째 축(X)은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을 생산하는 일이다.  ... 두 번째 축(Y)은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을 풀뿌리 시민사회 속으로 확산하는 일이다.  ... 세 번째축(Z)은 복지국가 청치세력화이다.' (282쪽)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첫 번째, 두 번째 것은 그가 속해 있는 단체와 또 여러 시민단체들이 연합하여 어느 정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세 번째 축은 아직도 요원하다.

 

진보정당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작용하고 있겠지만, 제1야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도 큰 원인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박근혜 정부가 복지국가 공약을 철회 또는 파기하는 데서 보듯, 야당의 적극적인 비판과 견인 없이는 이 정권이 스스로의 의지로 복지국가를 건설할 가능성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어떻게 해서든 현 정부가 복지국가의 길로 나아가도록 정치력을 행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을 할 의지와 능력이 없어 보인다.' (280쪽)

 

그러니 여당이나 청와대가 잦은 실정으로 민심을 잃어가도 야당이 떠오르지 않는다.

 

왜?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대로 된 정책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집권 여당이나 청와대에 대해서 제대로 견제조차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복지정책은 자꾸 후퇴만 하고, 대통령의 공약을 하나하나 철회하고 폐기해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정치권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나? 이는 선거제도의 개선을 통해선만이 가능하다. 지금의 선거제도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또 그놈이 그놈인, 양치기 소년들만 득시글거리는 정치권을 양산할 뿐이다.

 

하여 그는 말한다.

 

'복지국가 정치의 기치는 장차 이런 변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선거제도가 지금의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에서 비례대표제를 대폭 강화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실질적인 다당제가 출현해야 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합의제 민주주의의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낼 것이며, 이런 정치 환경 속에서 복지국가 건설 과제는 꾸준하게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283쪽)

 

이 말이 맞다. 그러나 시민들 다수가 선거제도의 개혁을 강제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이미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정치세력들이 선거제도를 개혁할 리가 없다.

 

그러니 뭐니뭐니 해도 깨어 있는 시민들이 많아져야 하고, 그들이 각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이런 사정을 그는 진보정권 10동안 뼈저리게 깨달았다. 시민들의 힘이 있어야 정책을 강제할 수 있음을, 진보 정권이라고 해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고 민영화라는 이름의 사영화 정책을 펼쳐서 공공성을 해칠 수 있음을 자신의 사례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사영화나 공공성 파괴를 막는것은 결국 정치권이 아니다. 정치가들이 어떻게 변질되는지는 이 책에 언급된 우리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정치가들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다. 그러니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깨어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상이는 '복지국가 소사이어티'를 창립하여 복지 담론을 만들어내고 또 홍보하고 퍼뜨리고, 현실성 있는 정책으로 다듬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여 이 책은 우리가 살아야 할 국가의 모습에 대해서, 우리 모두가 행복한 국가는 어떤 국가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천천히 읽으며 30여 년간 우리 사회가 어떻게 공공성을 확보해 왔는지, 어떻게 복지가 확대되어 왔는지를 살펴 보자.

 

여기에 더하여 그럼에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음을 직시하고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

 

너무 좋게 읽었다. 한 사람의 일대기로 읽어도 좋고, 우리나라 현실에서 어떻게 복지를 이룰 것인가를 중심에 놓고 읽어도 좋은.

 

덧글

 

참... 이 책에서 보편적 복지를 이루기 위해서는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세금을 올리지 않고 복지 정책을 펴는 것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증세를 이야기하지 않는 복지 정책은 양치기 소년의 말과 같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국민이 모두 증세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국민이 증세를 반대하는 것은 세금이 제대로 쓰인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세금이 정말 필요한 곳에, 보편적 복지 실현에 제대로 쓰인다면 우리 국민들도 증세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증세를 국민들이 반대한다는 것은 세금 내기 싫어하는 국민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고, 지금까지 얼마나 세금 운용을 잘 못했으면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할까 정치권은 고민해야 한다.

 

보편적 복지로 세금이 제대로 쓰인다는 믿음이 있다면 세금 증세에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런 믿음, 지금까지는 정치권들에 양치기 소년들이 너무도 많았기에 국민들이 반대하는 것이다.

 

국민을 비난하기 전에 정작 비난을 받을 사람이 누구인가 먼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또 하나, 그는 보건의료 활동과 국민건강보험 통합, 의약분업 등으로 의료 공공성을 확장하는데 앞장섰다. 그 결과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이었다. 1심 재판에서 유죄, 2심 재판에서 선고유예, 3심에서 무죄 파기 환송, 결국 최종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그 과정이 무려 8년이 걸렸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 말기였고, 재판 진행은 노무현 정부 때 계속 이루어졌다. 의료 공공성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정책이라고? 북한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그랬단다. 물론 무죄 판결이 나긴 했지만... 이런 국가보안법, 아직도 무섭게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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