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보호, 간섭, 감시, 통제, 위험, 재난
이런 낱말들을 나열해 본다. 말에는 힘이 담겨 있고, 그 힘은 사람들을 구속하는 능력을 발휘하기도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낱말이 바로 "안전불감증"이란 말이 아닐까 싶다.
안전불감증.
이 말은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은데도 사람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산다는 말로 들린다. 그리고 이런 안전불감증이라는 말을 연일 언론에서 뱉어내고 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 안전불감증이라는 말에는 우리 사회가 위험사회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도처에 위험이 있는데 그 위험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사회가 이토록 위험하니 학생들의 안전에 만전을 기해라. 아이들을 위험에서 구출하라. 일반 시민들도 한 순간에 환풍구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조심해라. 불이 나면 대피할 수 있도록 해라. 지하철, 버스, 비행기, 배 사고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조직해라 등등.
세상에 이 많은 방법들을 머리 속에 넣고 다니다가는 정작 위험에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어떤 때는 어떻게 라는 시험을 볼지도 모르겠다. 시험하면 또 우리나라 아니던가. 시험에 나온다고 하면 기를 쓰고 외워버리지 않는가.
그런데 이번 "민들레 95호"에서는 이런 '안전불감증'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질문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예전보다 더 위험해졌는가?
왜 언론은 이 상식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까? 굳이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대답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거나 또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하여 보호라는 이름으로 감시를 하고, 위험이라는 말로 통제를 정당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이 매뉴얼의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매뉴얼을 지키지 않아서라고 말하는 것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하려는 모습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사람들의 자율성을 보호라는 이름으로 빼앗아가고 있는 본질을 가리기 위한 꼼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래서 이번 "민들레 95호"의 특집은 '보호와 감시 사이'다. 우리는 보호라고 생각하겠지만, 보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기득권을 지닌 집단, 이미 권력을 지닌 집단이고, 이 보호를 감시라고 생각하는 집단은 기득원이 없는 집단, 권력이 없는 집단일 수밖에 없다.
하여 보호는 통제의 다른 이름이고, 감시를 감추기 위한 보호색일 뿐이다.
학교라는 공간을 생각해 보자. 학교가 딱히 더 위험해 진 것이 없는데, 세월호 이후에 학생들의 수학여행이나 체험활동이 전면 금지되기도 했고, 또 학교에 엄청나게 많은 안전에 관한 공문이 온다고 하고, 안전교육을 실시하라는 압박이 많다고 한다.
학교는 예전과 다름이 없는데, 아니 오히려 예전에 비하면 더 안전해졌다고 할 수 있는데, 안전! 안전! 하는 것은 학생들을 더 통제하려는, 시키는 대로만 하는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그런 의도라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매일 매일 모든 행동이 부모에게 통보되는 아이와 가끔은 부모 몰래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아이, 둘 중 누가 더 행복하겠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안전은 어느 지점에 있어야 하겠는가.
이번 호에 이런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진정한 안전이란 무엇인지. 도대체 우리는 보호와 감시 사이에서 어떤 관점을 취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이번 호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저런, 안전에 관한 신화. 또는 통제에 대한 감추기. 이런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만든 민들레였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학교나 아이들에 대한 안전을 강조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는다. 다만, 이런 식으로 기계적 통제, 보호를 하려는 모습이 잘못된 점이고, 우리 사회가 위험한 것은 학교나 아이들뿐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에게 해당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호에서도 나오지만 우리 사회는 핵발전소, 썩어가고 있는 4대강,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산과 들. 그리고 올림픽이다 뭐다 해서 훼손되고 있는 숲들, 생계조차 힘들게 하는 신자유주의 물결로 인한 비정규직 확대,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는 일용직 노동자들, 이제는 노후 걱정까지 해야될지도 모르는 중하위직 공무원들, 졸업해도 도대체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대학생들, 자유무역협정이다 뭐다 해서 자신의 생산지와 생산물을 버려야 할지도 모를 수많은 농민들, 국민의 안위와 복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정치인 계급들 등등.
공연히 이런 위험을 감추려고 학교, 학생, 어린이에게 안전! 안전! 하면서 기계적인 통제, 법적인 통제를 하려고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진정한 위험은 여기에 있고, 우리를 안전하게 할 방법은 이런 사회의 모습들을 바꿔가려고 노력하는 데서 나온다.
이것이 우리가 '세월호'를 잊지 않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