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5
마이크 마퀴스 지음, 김백리 옮김 / 실천문학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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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광화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함께 하는 가수들이 있었다. 그들은 공연을 통해 시민들과 함께 했고,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1987년 민주화 투쟁,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왔을 때 노래도 함께 뛰쳐 나왔다. 많은 노래들이 불렸고, 그 노래들을 저항가요라 불렀다.

 

노래는 민중들과 함께함께 하고, 민중들과 함께 한 가수들은 민중들의 가슴에 살아남았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가수와 노래의 경향은 변해갔지만, 다시 사람들이 광장으로 모였을 때 사람들은 또다시 노래를 불렀고, 가수들과 어울렸다.

 

그렇게 세상은 다시 가수를, 노래를 광장으로 불러내었다. 그런 가수들 중에 유명한 사람, 어쩌면 연말에 발표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더 유명해진 사람 밥 딜런.

 

그의 노래도 일종의 저항가요로 우리가 많이 불렀다. 지금 젊은이들은 그를 잘 모르겠지만 김광석이 부른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의 원곡자가 바로 그라는 것을 이야기하면 '아하' 하곤 한다.

 

특히 그의 노래 중에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노래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인데... 이 노래는 예전에 많이 불려지기도 했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 그에 대한 책이 많이 쏟아져 나와 그 전에 나온 이 책은 그를 더 높게 평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읽다보면 비판적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만큼 이 책은 평전이라는 특성에 걸맞게 밥 딜런의 생애 중에서 저항가수로서의 그를 다루고, 어느 순간 그의 음악적 변모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저항가수로 알려진 밥 딜런이 정작 자신은 저항가수로 자리매김 당하고 싶지 않았다는 사실, 그는 시대에 맞는 음악을 한 자유인이었다는 사실, 한 사람의 삶을 일관되게 설명하기 힘든 아주 복잡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는데...

 

이 책은 밥 딜런의 생애 중에서 1960년대에 주목한다. 혜성처럼 등장해 저항가수의 기수가 되고, 그런 그가 어느날 저항성을 포기한 음악을 하게 되고 잠적하는 과정까지, 그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 함께 한 음악가들, 그를 이어서 저항가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활동한 가수들을 다뤄주고 있다.

 

뒷부분에 가서야 최근의 밥 딜런을 이야기하는데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자서전과 출연한 영화까지 언급하지만 이제 밥 딜런은 1960년대의 저항의 상징이 아니라 그냥 가수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또한 자서전에서도 명확하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는데, 그만큼 밥 딜런 자신조차도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 힘들어한다는 얘기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의 음악적 변모가 아무렴 어쩌랴? 1960년대, 그는 분명 시대 흐름의 한복판에 있었고, 그 한복판에서 시대정신을 노래로 불렀고, 시민들과 함께 했음은 분명하다.

 

다만, 시대 흐름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가고자 했을 뿐이다. 자유인으로 살기를 원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을 거부하고, 자신이 이름을 붙이고자 했다고 보면 된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광장에서 노래 불렀던 가수들에게 딱 한 가지의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 그들은 '저항'가수 이전에 '가수'다. 자신의 마음을 노래로 표현하는 자유인. 그렇게 인정해 주면 된다.

 

시대가 격류처럼 흐를 때 그 흐름을 무시할 수 없어 함께 하는 가수들이 있고, 그 가수들의 대표로 밥 딜런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항성만 난무하는 노래를 했느냐 하면 아니다. 그에겐 서정성 넘치는 노래들이 많다.

 

시대에는 저항도 있지만, 사랑도 있고, 평화도 있고, 온갖 것들이 다 있다. 이들이 함께 공존한다. 가수에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모순된 것들을 온몸에 지니고 살아온 존재가 바로 밥 딜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평전이다.

 

그의 개인적인 생활은 이 책에서 다루지 않는다. 대신에 그와 동시대의 음악인들, 특히 저항가수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다뤄주고 있어서, 1960년대와 그 이후 미국의 저항음악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가수를 한 방향으로 규정짓지 않고 복잡한 모순된 존재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한 방향으로 가수를 가두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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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외지사 1 - 우리 시대 삶의 고수들
조용헌 지음, 김홍희 사진 / 정신세계원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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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다. 그리고 인생은 반복되지 않는다. 인생은 그야말로 단 한 번 있는 일이다. 자신에게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물론 윤회를 생각하면 그렇다고 할 수도 없지만, 윤회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다른 인생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인생은 단 한 번의 경험이다.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한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특성도 있겠지만, 이상하게 여러 관계들에 매여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용한 전원생활을 해야지 하지만 복잡하고 시끄러운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 태반이며,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죽어라 하는데, 막상 하고 싶은 일을 할 여유가 생기자 이제는 몸이 버티지 못한다든지, 죽음을 앞에 두고 있다든지 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그만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적다. 그렇게 하기도 힘들다. 그런데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부러워하면서 그들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다. 하지만 마음뿐이다. 더이상 거기서 한 발 나아가지 않는다.

 

시간이 없다는 둥,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둥, 그러다가 굶어죽겠다는 둥 기타 등등 여러가지 이유를 대면서 차일피일 자기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룬다.

 

뒤로 미루다 미루다 포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도 못하고 무언가에 끌려다니다 끝내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바로 방외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조금 높여 부른다치면 방외지사(方外之士)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체제 내에 있다고 하기보다는 체제 밖에, 즉 보통 사람들이 지닌 삶의 틀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말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실행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남들 눈에는 특이하게 보인다.

 

특이한 것이 아니라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그들이야말로 인생의 참맛을 알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이 책은 1,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중고서점에서 구입하는 바람에 1권만 있다. 그러나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이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하는지는 이 1권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1권에는 7명의 사람이 나오는데...

 

20년 공무원 생활을 접고 고향에 돌아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시골집을 가꾸며 사는 박태후, 대책 없이 지리산으로 가 오토바이 하나와 함께 사는 시인 이원규, 평생 직장 생활을 하지 않고 고봉 기대승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기씨 집성촌에서도 가장 큰 집을 관리해주면서 사는 강기욱, 기천문 2대 문주가 되어 계룡산에서 생활하는 박사규, 차 맛을 감별하는 품명가 손성구, 역술계에서 살아남고도 유명해진 박청화, 의사이면서도 도학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이동호

 

모두들 우리가 원하는 직업을 지닌 사람은 아니다.(물론 의사인 이동호는 빼고) 또 이들에게는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 다만 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다.

 

돈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고 최소한의 돈으로도 생활을 하면서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고, 남들이 꺼려하거나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다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기의 일에 온몸을 바친다는 것. 남들은 직업이 없으면 그냥 논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다. 강기욱의 경우만 해도 고택을 관리하는데 엄청난 노동력이 들어간다.

 

그러니 이들이 팔자 좋게 논다고만 생각하지 말자. 이들은 자기가 있는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것이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을 후회하지 않도록.

 

이 세상을 뜰 때 '아, 그거 했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지금은 방외인 또는 방외지사라고 부르지만 이들처럼 사는 삶이 방내의 삶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의 삶이 보편적인 우리들 삶이 되도록 해야 한다.

 

마냥 부러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역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겠다는, 그것이 참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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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8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18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yureka01 2017-03-18 0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아 공감~~입니다..저도 언젠가라는 것만 되풀이중이라서요..미칠 노릇입니다.^^..

kinye91 2017-03-18 10:02   좋아요 1 | URL
하, 저에게도 그렇지만 유레카 님께도 ‘언젠가‘가 ‘지금‘이 되는 때가 오기를 바라겠습니다.

우민(愚民)ngs01 2017-03-18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거, 현재, 미래중에서 현재가 제일 중요한데 이상하게 과거에 얽메이고 미래에 불안해서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노래가서 중에서 고개가 끄덕여 지는게 있네요!
노세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kinye91 2017-03-18 13:26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과거는 지나가 버린 것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인데, 지금 내 앞에 없는 것들 때문에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현재를 즐길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미래도 역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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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라져서는 안 될 사람들'이라고 해야 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패자가 없다면 역사가 발전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패자는 역사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이지만, 그 역사를 구성하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 또는 안다는 것은 승자를 알아야 하지만 마찬가지로 패자를 알아야 한다. 그만큼 역사에서 패자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기록이 남지 않아 쉽게 잊혀지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룬 인물들은 꼭 패자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역사에 자신의 온몸을 바친 사람들이다. 물론 이 중에는 나중에 평가가 달라진 인물도 있지만 (이 책에 나온 인물 중에는 김지하와 박노해를 들 수 있다) 그것이 그 당시 그 사람의 실천까지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니.

 

그렇다고 아주 유명한 사람들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 책에는 처음 들어보는 인물이 더 많다. 한 세기를 살아간 사람들 중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 몇명이나 되겠느냐마는, 그동안 학교 교육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인물들을 이 책을 통해서 알아갈 수 있다.

 

특히나 일본인과 같은 경우는 처음 듣는 인물이 대부분이다. 지금도 우리는 일본과 역사투쟁을 하고 있는데, 그러니 일본인들 중에서 20세기를 치열하게 살아간 인물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일본과 역사투쟁을 하면 일본에 대해서는 좀더 많이 알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저자인 서경식이 일본에 살고 있는 관계로 이 점에 대해서는 이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생각을 한다.

 

제국주의 일본에서도 전쟁을 반대한 사람들이 꽤 많았다는 것, 평화주의자들도 꽤 많았음을, 그것이 일본과 우리의 역사투쟁이 단지 자기 나라의 이익만을 위해서 벌어지면 안 되고 세계 평화를 위해서 우리나라와 일본 사람이 서로 협력할 수도 있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나온 일본인들은 다음과 같다. 그들의 국적은 무시하고 태생이 일본인인 사람들을 모두 골랐다.

 

잭 시라이. 사에키 유조, 아이미쓰, 가모이 레이, 마키무라 고우, 오구마 히데오, 하라 다미키, 가네코 후미코, 하세가와 다루, 오자키 호쓰미, 가와카미 하지메, 에브리 만(실제 인물이 아니라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이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가네코 후미코 외에는 잘 모르는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그래도 이들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었는지, 일본에서도 이렇게 고뇌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그래서 우리는 일본과 연대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우리나라 인물들도 다루고 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들도 다루고 있다. 세계적인 인물들이야 한 번쯤 이름은 들어본 사람들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으로도 조문상, 이진우, 양정명이란 이름은 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유명한 사람들처럼 이름을 드러낼 수 없고, 또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것도 아니지만, 그들 나름대로 세계에 맞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 한 사람들도 다루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이들의 삶, 결국 신영복 선생의 말처럼 지혜로운 사람의 삶이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의 삶일테고, 그렇지만 역사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발전시킨다고 했으니... 이들로 인해 역사는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그래서 우리는 이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이들은 역사에서 '사라져서는 안 될 사람들'이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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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043 2017-02-06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사랑, 백남준 - 아내 구보타 시게코가 말하는 백남준과 함께한 삶, 사랑, 그리고 예술
구보타 시게코 지음, 남정호 옮김 / 이순(웅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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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그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니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더 적을지도 모른다. '비디오 아트'라는 분야를 창시한 세계적인 미술가. 우리나라 사람으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몇 안 되는 예술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비디오 아트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른다. 어떤 감동을 받은 적도 없다. 그냥 거대한 전자기기들의 모음이라는 단순한 생각만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되어 있는 '다다익선'을 보고서도 어떤 감흥도 받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

 

그만큼 그의 예술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 그의 개인사에 관심을 가질 일도 없었다. 하지만 백남준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알고 싶었다.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그가 세계적인 예술가가 아닌 것은 아니니까.

 

이제는 세상을 뜨고 없는 그지만, 그의 작품은 세계 미술관에 남아 그를 기억하도록 하니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의 아내인 구보타 시게코와 우리나라 기자의 합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합작품이라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화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내인 구보타 시게코이다.

 

구보타 시게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백남준의 아내가 일본인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아내가 누구인지는 관심 없었다. 그의 아내가 그와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예술가일 거라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했다.

 

부부가 모두 예술가일 때 주로 남편 쪽은 유명하고, 아내 쪽은 묻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오노 요코-백남준과 친구였다고 한다-를 아는 사람보다는 그의 남편이었던 비틀즈 멤버인 존 레넌을 더 잘알고 있듯이, 백남준을 비디오 아티스트로 알고 있지만, 그의 아내 구보타 시게코를 비디오 아티스트로 알고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남정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책 프롤로그에서 그의 글을 읽어보면 구보타 시게코라는 예술가, 백남준의 그늘에 가려버리는 예술가가 아니다.

 

미국의 뉴욕 현대미술관에 백남준의 작품과 같은 숫자의 작품을 보관하게 하고 있는 작가, 구보타 시게코... 그가 들려주는 백남준과 그의 예술 이야기.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백남준이라는 사람을 가장 가까이서 접한 사람을 통해서 듣게 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적인 내용들도 이 책에 많이 나온다. 백남준의 예술세계 뿐만이 아니라 인간 백남준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시게코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백남준의 기사를 보고, 그 기사에 난 사진을 보고 백남준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고. 그를 자신의 남자로 만들고 싶었다고.

 

'스물일곱 살에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별처럼 멀리 있는 예술가였다. 남자로서도 좋아했지만 예술가로도 흠모했다. 저렇게 빛나는 남자를 어떻게 잡을 수 있겠느냐고 친구가 물었을 때, 나 역시 치열한 예술가가 되어 그에게 닿겠노라고 다짐했었다. 그의 연인으로, 그리고 아내로 살아온 지난 40년은 그의 예술적 동반자가 되기 위한 열망과 정진의 시간들이기도 했다. 때론 고통스러웠지만, 더 큰 희열이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362-363쪽)

 

그리고 그를 자신의 남자로 만드는데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같은 예술가 동료로서 만남을 유지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일본도 아닌 미국에서, 백남준에게는 가정은 관심 밖의 일. 결국 다른 남자와 결혼해 살다가 헤어지고 다시 백남준에게로 돌아간 시게코.

 

헤어짐과 만남의 과정에서 백남준은 어떤 결정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시게코가 결정한다. 그리고 그 결정대로 백남준은 따른다. 어린 시절 전쟁으로 일본으로 독일로 미국으로 세계를 유랑하다시피 한 백남준에게 한 곳에 머문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여자에게 매인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시게코와 함께 살면서도 결혼은 하지 않는다. 사실상의 혼인관계 생활을 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이는 시게코도 마찬가지다. 백남준과 함께 있으면 되니...

 

이런 그들이 공식적으로 결혼을 하게 되는 계기는, 바로 시게코의 병이다. 여자로서는 치명적인 병. 낯선 타국에서 가난한 예술가들이 걸리면 치료하기 힘든 그런 시절, 백남준은 시게코와 결혼식을 올리고, 시게코가 치료하게끔 한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순간, 그들은 함께였던 것이다. 그리고 함께 삶. 함께 하는 예술가의 삶. 물론 앞에서 인용한 시게코의 말처럼 백남준의 예술 활동으로 인해 시게코는 손해를 많이 본다.

 

여전히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양 예술가 부부들 역시 마찬가지다. 여성보다는 남성 쪽이 좀더 활동하고 여성은 묻히는 경우도 꽤 있었으니... 그렇다고 시게코가 예술 활동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보완을 해주는 예술 동료로서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백남준 쪽이 좀더 혜택을 보았다 할지라도 시게코는 그에 대해서 큰 불만을 지니지는 않는다. 그것을 앞에 인용한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체계적인 미술 공부를 하지 못한 백남준에게 체계적인 미술 공부를 한 시게코는 정말 좋은 동반자였을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동료.

 

그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다음의 일들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더이상 예술활동을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접고, 그는 그 와중에도 예술활동을 한다. 마지막 열정을 불사른 것이다. 그리고 죽음.

 

이 과정을 글로 풀어낸 책. 그들의 사랑과 예술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그냥 전위예술가라고, 나와는 동떨어진 예술가라고 생각했던 백남준을 내 곁으로 오게 만들어준 책이다. 그를 좀더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책이라고 할까.

 

내가 읽은 책은 2010년 판인데, 2016년에 다른 판으로 다시 이 책이 나왔다고 한다. 그 사이 백남준의 부인인 구보타 시게코 역시 세상을 떴다고 하고. 2015년에.

 

이 책에 '야곱의 사다리'라는 예술 작품이 나온다.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 백남준의 예술작품 이름이기도 하지만, 백남준과 시게코가 함께 올라간 사다리이기도 하리라. 두 분이 하늘에서 서로에게 영감을 불어넣으며 지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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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준 평전 - 통합과 인애의 정신 실천한 민족운동가
박남일 지음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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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장병준이라니... 우리나라 근대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책을 읽고,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장병준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다.

 

아마 이 이름을 처음 들어본 사람이 나만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만큼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이 집안 사람들이 많이 독립운동에 관여했는데, 이렇게 알려지지 않아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제대로 기억되지 않은 것이다. 이 책의 뒤에 사진을 보니 장병준이 죽은 뒤 그의 장례를 가족장이 아닌 사회장으로 치렀다.

 

사회장이라 함은 사회를 위해서 일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주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 역시 당대에는 독립운동가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얘기다. 다만 그가 중앙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지방에서 지냈기에, 많이 잊혀졌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이 지긋지긋한 중앙주의)

 

물론 그가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그는 앞에 나서서 이름을 떨치기 보다는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민족을 위해서라면 궂은 일도 마다않고 나섰던 사람.

 

그렇다고 사회주의다 자본주의다라고 진영 논리에 가둘 수 없는 사람. 비록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 돈을 민족을 위해서 썼고, 교육 운동에도 투신했고, 그의 사위들 중에서는 사회주의자들도 있고 했으니... 그에게는 어떤 진영보다는 민족을 위한 길이 무엇일까가 더 중요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일제시대에 좌우합작단체인 신간회에 그가 참여한 것으로 드러나고, 전라도 지역, 특히 목포지역에서 그는 신간회가 잘 운영되도록 힘썼다고 한다. 민족독립을 위해서는 좌든 우든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을 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세상은 이러한 민족주의자들이 전면에 나설 수가 없게 흘러갔다. 장병준 역시 마찬가지다. 해방이 되고 난 다음에 그는 미군정에서 실시한 과도입법정부에 참여하여 좌우합작을 추진하지만, 남과북에 각기 다른 정권이 들어서고, 전쟁이 나면서 그의 가족 역시 풍비박산된다.  전쟁으로 사위 두 명을 잃었으니...

 

하지만 이승만 독재를 용납할 수 없었던 그는 이제 부정선거 규탄에 앞장선다. 1960년 3.15부정선거를 폭로하는 시위에 앞장서는 그는 4,19혁명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산 시위보다도 광주 시위가 더 먼저 일어났다고 하고, 그 시위의 맨 앞에 장병준이 있었다. 사진으로도 남아 있으니...

 

그후 도지사 자리를 마다하고 참의원 선거에 나가 낙선한 다음에는 조용히 물러나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

 

자신의 행적에 대해서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으며, 중앙에 진출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음에 더 빨리 잊혀졌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로 인해서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려울 때 알게모르게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한 사람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꼭 해야할 일이라면 한 사람들. 그리고 그 보상을 받으려 하지 않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 덕분에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병준이라는 이름이 낯설기는 하지만, 그처럼 민족을 위해서 일한 사람은 영원히 잊혀지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그 이름이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다.

 

독재에 분연히 맞섰던 그... 일제라는 침략자에 맞섰던 그... 그의 정신이 지금 우리에게도 남아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민족주의자들. 반갑다.  이런 작업이 지속되어 더 많은 잊혀진 민족운동가들이 우리 곁으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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