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 - 어느 괴짜 천재의 기발하고도 상상력 넘치는 인생 이야기, human RED 001
살바도르 달리 지음, 이은진 옮김 / 이마고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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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없이 늘어진 시계들, 선명한 색채에 비해 도무지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사물들. 무슨 의미로 무엇을 그렸는지 알기 힘든 그림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초현실주의자로 명명한다.

 

초현실주의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 달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 교과에서 다른 초현실주의자는 몰라도 달리는 꼭 배우게 되니 말이다.

 

여기에 달리는 사탕 츄파춥스를 디자인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그림만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다방면에, 그가 영화제작에도 참여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으니, 관심을 가지고 활동한 사람이다. (백화점 내부를 디자인 하는 장면이 이 책에 나오는데, 초현실주의자로서의 달리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의 오만한 모습도 함께)

 

그런 그가 자서전을 썼다. 그것도 36살에. 아마 우리 나이로 하면 37세가 되겠지만, 그가 80이 넘어 죽었으니 자신의 인생을 반도 살지 않은 상태에서 자서전을 썼다. 이 무슨 오만함인가. 아니면 자신의 삶을 계획했다는 자신감인지. 스스로 '세계의 배꼽'이라고 주장하는 그였으니... 뭐,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이 자서전의 끝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작가들은 보통 일생을 다 산 다음에 말년에 가서 회고록을 쓴다. 모든 사람들과 반대로 가는 나는 회고록을 먼저 쓰고 그 다음에 그 내용을 사는 것이 더 지적인 것으로 보였다. 산다는 것! 그것을 위해서는 인생의 반을 다 청산할 줄 알아야 한다. 경험으로 풍성해진 나머지 절반의 인생을 계속하기 위해서 말이다. (385쪽)

 

다른 사람과 같은 방식의 삶을 살기를 거부한 사람의 태도다. 그는 그렇게 살았다. 이 점에 대해서 읽으면서 반감을 가질 사람도 많다.

 

보통 사람의 정서에 의하면 달리의 행동 하나하나는 비난을 받으면 받았지 결코 찬탄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엄청난 비도덕. 자기중심주의!

 

자기 멋대로 산 사람. 남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산 사람. 그런 느낌이 든다. 학창시절도 마찬가지고, 어린 시절에도 마찬가지고,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달리는 달리일 뿐 누구도 될 수 없다. 달리의 삶은 달리가 살아야 한다. 그만의 방식으로. 그렇게 살았음을 느끼게 만드는 자서전이다.

 

달리가 한 온갖 기행들이 이 책에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그래서 달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린시절에 가짜 추억을 만들어낸 일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여인을 어른이 되어 만나게 되어 그와 함께 하는 과정, 미술 학교에서의 일들, 화가로서 겪게 되는 일들을 솔직하게(? - 달리를 잘 믿을 수 없어서, 이 역시 자신의 환상을 섞어서 회고록을 썼을 수도 있다) 쓴 글이다.

 

가끔은 달리 자신이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음을 이 책에서 밝히고 있는데, 그런 환상이 그의 작품에 그대로 투영되었다고 보면 달리의 그림을 이해하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거만한 천재의 글이다. 이런 천재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지만, 과연 모두가 이런 천재가 되어야 할까 하면 부정적인 답을 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달리는 독특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이제 달리로 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0이 되기 전에 자신의 회고록을 쓴 달리. 어쩌면 달리는 이 책의 2부 제목처럼 '얼른, 늙어버린' 천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나이에 회고록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도 들고. 하여간 초현실주의로 유명한 달리, 그의 삶을 그의 글을 통해서 만나게 되고, 이 만남을 통해 그의 그림에 다가갈 수도 있으니... 달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한 가지, 물론 원본에는 달리의 그림이 포함되어 있지 않겠지만, 그래도 번역해서 달리를 소개하는 책인데, 중간 중간에 또는 한쪽에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달리의 그림들을 실어주었으면 훨씬 좋았을 거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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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1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1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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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중국을 "죽의 장막"이라고 했었다. 공산화가 되고 나서 우리와 교류가 끊겼고, 중국은 적대국이었으며, 명칭도 중국이 아닌 중공이었다. 그리고 그 나라를 잘 알 수 없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 바로 '죽의 장막'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과 교류를 하고, 우리나라 최대의 교역국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나라에 유학 오는 학생도 많고, 중국으로 유학 가는 학생도 많다. 중국에 현지 법인을 차린 회사도 많고. 이와 더불어 서로의 나라를 오가는 관광객들도 많고.

 

서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지금의 중국이 있게 한 인물들에 대해 서술한 이 책은 중국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한다.

 

한나라때 태사공이라고 불리는 사마천이 쓴 역사서 '사기'에는 왕조의 역사들만이 아니라 왕조 속에서 살아간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열전'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이 책을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 비긴다면 '현대사 중국인 열전'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근현대사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는데, 그 중에 이 1권에서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우리나라가 일제에 강제합병 당했던 시절, 중국으로 피신해 독립운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과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이야기이기 때문에 무척 흥미롭기도 하다.

 

게다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혁명기 시기의 일들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한때의 해프닝이라고 하기에는 역사적으로 너무도 많은 손실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처음 시작을 '참새 소탕전의 추억'이라고 한다. 참새 때문에 못 살겠다는 농민들의 민원을 받아들여 정부에서 참새를 소탕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중국 전역에서 참새 소탕전을 벌인 이야기.

 

지금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가능했던 이야기. 그러나 한 해 동안 참새를 소탕했다고 해도 자연을 이길 수는 없는 일. 참새를 소탕하자 참새가 먹던 해충들이 천적이 없어져 오히려 농민들을 더 괴롭히게 되는 현상.

 

잘못된 정책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국민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장면이 바로 이 책의 첫장면이다. 이 장면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유를 이렇게 생각한다. 참새 소탕전처럼 역사에는 일방적으로 나쁜 쪽은 없다는 것.

 

역사에서 승자와 패자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들을 선악의 개념으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그들 역시 역사의 한 장면에서는 모두 자신들에게 맞는 삶을 살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 그 점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고, 그래서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을 없애서는 안 된다고 시작을 이해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정권 다툼에서 몰락해 사라진 인물들도 있지만 이들을 일방적으로 역사에서 제거할 수는 없는 것.

 

참새 소탕전에 이어 나오는 인물이 바로 류사오치라는 마오쩌뚱과 함께 혁명을 이끌고 한때 2인자의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문화대혁명 때 몰락한 사람이다. 비슷한 길을 걸은 린뱌오라는 사람의 이야기도 뒤를 이어 나오고.

 

이들은 혁명을 함께 했지만 권력은 함께 누리지 못하는 그런 속성을 너무도 잘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역사에서 늘상 되풀이 되고 있었던 일.

 

격동의 와중에는 함께 해도 안정이 된 다음에는 누군가가 떨려나야 하는 상황. 그런 상황을 너무도 잘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이런 정치사적인 인물들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읽는 재미가 있다.

 

이들의 활동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어서 역사책 속에 죽어 있는 글자로만 남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내 곁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일방적으로 한 편을 몰아세우지 않고 멀리 떨어져서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전달해주려는 듯한 저자의 태도가 어느 한 편에 감정을 몰입하지 않도록 해서 읽기에 좋다.

 

여기에 정치적인 인물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현대 중국을 이끈 문화예술인들도 많이 나온다. 그들이 격동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이 책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마치 장강의 흐름처럼 중국이라는 나라에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그들이 중국 역사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잘 모르고 있었던 수많은 중국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서 좋은 책이다. 특히 우리나라에도 주둔했던 위안스카이(한자어로 읽으면 원세개)의 부인 중에 세 명이 조선인이었다는 사실. 그들의 자손들 중에 잘된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

 

다만 아쉬운 점은 '사기 열전' 처럼 분야가 같거나 또는 삶의 행태가 비슷한 인물들끼리 묶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여기에 작은 제목을 하나씩 붙였으면 훨씬 좋았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2권에는 어떤 인물들이 나올지 궁금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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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5-15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사두기만 하고 미처 못 읽은 책이네요. 리뷰 읽고 나니 찾아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kinye91 2017-05-15 09:03   좋아요 0 | URL
저는 5권 중에 먼저 1권만 구입해서 읽었는데요, 계속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의 객석
강병철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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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이자 시인, 소설가인 강병철이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냈다. 좀 낯선 인물들도 꽤 나온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충청도와 관계가 있다. 저자인 강병철이 충청도에서 활동했기에 그가 자주 만난 사람들이 충청도 출신 혹은 충청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데서 인물 선정의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여기에 교사(또는 교사 출신)들이자 문인인 사람들도 꽤 나온다. 저자 역시 교사이자 문인이기도 하고. 이들은 대부분 전교조와 관련된 교사들이다. 지금 누구는 전교조를 때려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예전에 이들을 해직시키더니, 이제는 한사코 법 밖으로 전교조를 몰아내고 있는 것도 모자라 때려잡아야 한다고, 노조에 대한 인식이, 교사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인 사람이 대통령 후보라니, 세월 참, 앞으로 가지 않고 뒤로 거꾸로 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읽어가면서 전교조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정말로 교사로서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 이들은 대부분 전교조 교사였는데, 이들이 얼마나 잘 살았는지 이 책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아마도 전교조에 대해서 오른쪽으로 치우쳤던 생각들을 조금은 교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는 교육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는 사람들에게 통하는 이야기고.

 

이 책에서 다루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인물도 있고, 지금은 교육감이 되어 지역 교육의 수장 노릇을 하는 사람도 있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다.

 

윤중호, 김성동, 이문구, 한창훈, 이정록, 안학수, 조재훈, 최교진, 나태주, 정낙추, 황재학, 김지철, 김충권, 이순이, 이문복 

 

첫 인물인 윤중호, 제목부터 슬프다. 이렇게 꽃이 피었어도 한 번 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눈을 뜨지 않는다. 윤중호가 그렇다.

 

저자인 강병철과 친밀하게 지냈던 사람들 이야기라서 글 속에서 그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곁에서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들의 고민, 이들의 문학, 이들의 삶에 대해서 강병철은 객석에서 이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자신이 만난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게 하는 것, 그래서 책 제목도 '작가의 객석'이다. 작가는 '객석'에서 주인공들을 바라본다. 그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서 우리 역시 주인공들을 바라보게 된다.

 

따스하게, 애정을 가지고 이들을 바라보기에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따스해진다. 어떤 장면에서는 짠해지기도 한다.

 

안학수 시인 편에서 눈물이 짠해지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장애인에 대해서는 편견을 지니고 있었음은 매한가지. 여기에 더해 장애인을 곯리고 괴롭히기도 했으니, 그런 경험을 성장소설로 썼다는데, 아마도 작가의 삶이었을 그 장면.

 

식모살이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온 누나가 장애인 동생을 보며 주저앉으며 하는 말 "누나가 아무것도 못 사왔다."

 

눈물이 울컥했다. 지지리로 가난한 생활에 무보수 식모로 집안 입 하나 덜어주던 누나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동생에게 하는 말. 이런 슬픔이라니.

 

시인의 이런 슬픔을 작가는 객석에서 우리에게 잔잔하게 들려주고 있다. 아니 들려주고 있다기보다는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편이 다 따스하다. 마음이 짠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들이 한 시대를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그 치열함이 문학으로 어떻게 남게 되었는지를 보게 된다.

 

작가와 같은 자리에서 작가가 보는 것을 우리 역시 보게 된다. '작가의 객석'은 이렇게 우리의 객석이 된다. 우리는 이들의 삶을, 문학을 본다. 작가가 보는 것이 우리 마음 속에 고스란히 담겨지게 된다.

 

좋다. 사람에 대해 혐오감을 갖게 하는 몇몇 군상들을 잊을 수 있게 해준다. 이들이 술을 먹고 온갖 난장을 벌여도 그 난장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고민, 활력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대단한 작가들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울고 웃으며 땀 흘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그래서 객석에서 나와 그들과 함께 한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좋았다는 말 이상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은 책이기도 하다. 문인들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겐 좋은 구경거리(?)를 제공해주는, 그런 책이다. 감사하다. 이런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준 출판사에게. 역시 '삶창'이다. 삶을 보여주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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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6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06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과 일본에 살다 - 재일시인 김시종 자전
김시종 지음, 윤여일 옮김 / 돌베개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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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알게 된 김시종. 그에 대한 세 번째 책. 한 권은 그의 문학에 대한 일본인이 쓴 평론집이었고, 한 권은 그가 광주에 대해 쓴 시집이었다. 이번엔 그의 자서전이다.

 

김시종. 어쩌면 서경식이 쓴 이래로 유행하게 된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가 한다.

 

그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제주도에서 자랐다. 그런데 제주도가 어떤 곳인가. 지금은 우리나라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지만, 예전에는 차별의 섬 아니었던가.

 

결국 그는 출생에서 성장까지 주류에 속하지 못한 삶을 이미 살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더해 그는 일제시대에 태어났다. 그것도 일본어로 교육을 받은, 조선어보다는 일본어를 훨씬 더 잘하는, 그의 말을 빌면 해방이 되기까지 한글 '가나다'의 '가'자도 쓰지 못했던 그.

 

이런 어린 시절은 그에게서 주변인의 삶,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체험이 된다. 그는 어디에도 제대로 속할 수 없는 것이다. 황국신민이 되겠다고 일본 천황의 적자(嫡子, 赤子라고도 하는데, 천황의 어린이라는 말과 또 천황의 서자가 아닌 제대로 된 자식이라는 뜻으로 쓰기도 한다. 여기서는 嫡子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하다)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에게 해방은 함석헌의 말대로 도둑처럼 찾아왔다. 충격이었다. 천황의 자식이 되고자 했는데, 그 천황이 항복을 해버렸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상실감. 그런데 백성들은 좋다고 거리로 나선다. 여기서 느끼는 괴리감. 그에게는 이 거리가 너무도 멀다.

 

거리를 좁혀야 한다. 민족의식이 생긴다. 그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어주는 사람이 나오고, 함께 하는 사람도 나온다. 이 당시 대부분의 민족주의자들, 특히 친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된 사람들이다.

 

김시종 역시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된다. 남로당에 가담한다. 그리고 제주도. 4.3이 발발한다. 그는 남로당의 연락책으로 활동한다. 여러 위기 상황을 거치지만 살아남는다. 하지만 그가 4.3의 중심부에 있었다고는 할 수 없다.

 

물론 열심히 활동을 하지만 그는 말단 연락책에 불과하다. 중앙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지는지, 그 내밀한 사항을 알 수는 없다. 단지 주어진 일을 몸 바쳐 할 뿐이다. 그런 그에게 4.3은 이제 제주도에서 살 수 없는 환경을 제시한다.

 

변경에 속한 제주도, 탄압받는 사회주의, 실패로 돌아간 4.3항쟁, 남은 길은 살 길을 찾아 나서는 길. 부모 곁을 떠나 일본으로 밀항을 한다.

 

일본, 결국 그는 어린 시절 천황의 나라로 돌아온 것이다. 돌아왔지만 어린시절의 그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 디아스포라의 삶.

 

여기서 그를 구원하는 것은 문학이다. 그는 문학을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나고 재일조선인으로서 여러 활동을 한다. 어쩌면 이제는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디아스포라가 된다.

 

그가 믿었던 북조선이 그를 내친 것이다.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었지만 경직된 사회주의는 거부했던 그에게 북조선은 반동이라는 이미지를 그에게 덧씌운다. 그는 이제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내친 사람이 된다.

 

그렇다고 일본에서 받아준 것도 아니다. 그냥 일본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 뿐이다. 그러니 그는 남한도, 북한도, 일본도 아닌 자신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얼마나 신산한 삶이랴. 우리나라가 민주화되고 나서 그는 대한민국 국적을 얻었다고 한다. 부모님의 산소를 돌보기 위해서. 국적을 취득했다고 그가 대한민국 국민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여전히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신산한 삶. 그 삶이 이 자전에 오롯이 담겨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일본으로 건너가 그가 겪은 삶들이 너무도 압축되어 있는 것이다.

 

일본으로 가기까지의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는 반면에 그의 인생 후반부는 소략하게 다뤄지고 있다. 아직 모든 것을 밝히기에는 너무도 가까운 과거인가 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 4.3의 생생한 체험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한 사람의 삶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극, 민족의 비극이 만들어낸 '디아스포라의 삶'이긴 하지만 김시종, 잘 살아내었다. 그런 그의 삶으로 인해 우리는 역사를 잊지 않을 수 있고, 우리가 아직 하지 못한 일이 무엇인지를 상기할 수가 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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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5
마이크 마퀴스 지음, 김백리 옮김 / 실천문학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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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광화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함께 하는 가수들이 있었다. 그들은 공연을 통해 시민들과 함께 했고,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1987년 민주화 투쟁,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왔을 때 노래도 함께 뛰쳐 나왔다. 많은 노래들이 불렸고, 그 노래들을 저항가요라 불렀다.

 

노래는 민중들과 함께함께 하고, 민중들과 함께 한 가수들은 민중들의 가슴에 살아남았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가수와 노래의 경향은 변해갔지만, 다시 사람들이 광장으로 모였을 때 사람들은 또다시 노래를 불렀고, 가수들과 어울렸다.

 

그렇게 세상은 다시 가수를, 노래를 광장으로 불러내었다. 그런 가수들 중에 유명한 사람, 어쩌면 연말에 발표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더 유명해진 사람 밥 딜런.

 

그의 노래도 일종의 저항가요로 우리가 많이 불렀다. 지금 젊은이들은 그를 잘 모르겠지만 김광석이 부른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의 원곡자가 바로 그라는 것을 이야기하면 '아하' 하곤 한다.

 

특히 그의 노래 중에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노래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인데... 이 노래는 예전에 많이 불려지기도 했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 그에 대한 책이 많이 쏟아져 나와 그 전에 나온 이 책은 그를 더 높게 평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읽다보면 비판적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만큼 이 책은 평전이라는 특성에 걸맞게 밥 딜런의 생애 중에서 저항가수로서의 그를 다루고, 어느 순간 그의 음악적 변모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저항가수로 알려진 밥 딜런이 정작 자신은 저항가수로 자리매김 당하고 싶지 않았다는 사실, 그는 시대에 맞는 음악을 한 자유인이었다는 사실, 한 사람의 삶을 일관되게 설명하기 힘든 아주 복잡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는데...

 

이 책은 밥 딜런의 생애 중에서 1960년대에 주목한다. 혜성처럼 등장해 저항가수의 기수가 되고, 그런 그가 어느날 저항성을 포기한 음악을 하게 되고 잠적하는 과정까지, 그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 함께 한 음악가들, 그를 이어서 저항가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활동한 가수들을 다뤄주고 있다.

 

뒷부분에 가서야 최근의 밥 딜런을 이야기하는데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자서전과 출연한 영화까지 언급하지만 이제 밥 딜런은 1960년대의 저항의 상징이 아니라 그냥 가수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또한 자서전에서도 명확하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는데, 그만큼 밥 딜런 자신조차도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 힘들어한다는 얘기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의 음악적 변모가 아무렴 어쩌랴? 1960년대, 그는 분명 시대 흐름의 한복판에 있었고, 그 한복판에서 시대정신을 노래로 불렀고, 시민들과 함께 했음은 분명하다.

 

다만, 시대 흐름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가고자 했을 뿐이다. 자유인으로 살기를 원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을 거부하고, 자신이 이름을 붙이고자 했다고 보면 된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광장에서 노래 불렀던 가수들에게 딱 한 가지의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 그들은 '저항'가수 이전에 '가수'다. 자신의 마음을 노래로 표현하는 자유인. 그렇게 인정해 주면 된다.

 

시대가 격류처럼 흐를 때 그 흐름을 무시할 수 없어 함께 하는 가수들이 있고, 그 가수들의 대표로 밥 딜런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항성만 난무하는 노래를 했느냐 하면 아니다. 그에겐 서정성 넘치는 노래들이 많다.

 

시대에는 저항도 있지만, 사랑도 있고, 평화도 있고, 온갖 것들이 다 있다. 이들이 함께 공존한다. 가수에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모순된 것들을 온몸에 지니고 살아온 존재가 바로 밥 딜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평전이다.

 

그의 개인적인 생활은 이 책에서 다루지 않는다. 대신에 그와 동시대의 음악인들, 특히 저항가수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다뤄주고 있어서, 1960년대와 그 이후 미국의 저항음악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가수를 한 방향으로 규정짓지 않고 복잡한 모순된 존재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한 방향으로 가수를 가두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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