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굵게 일합니다 - 불필요한 것은 걷어내고 본질에 집중하는 7가지 정리 습관
곤도 마리에.스콧 소넨샤인 지음, 이미정 옮김 / 리더스북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역시 정리할 때는 모두 한곳에 모아놓고 시작한다. 그냥 책장에 꽂은 채 제목을 훑어보면서 남길 책을 고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제발 그러지 말길 바란다. 책장에 너무 오랫동안 묵혀뒀던 책은 배경의 일부가 되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 상태에서는 당신에게 영감과 아이디어를 주는 책이 무엇인지 고르기도 어렵다. 한 권 한 권 꺼내 손에 쥐어봐야 독립적인 개체로 보인다. 아무리 봐도 뭐가 설레는 책인지 모르겠다면 이렇게 자문해 보자. 이 책을 언제 샀지? 몇 번이나 읽었지? 다시 읽고 싶은 건가?    p.70~71

 

세계 최고의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와 미국 500대 기업의 생산성 멘토 스콧 소넨샤인이 만났다. ‘곤마리하다(to konmari)’가 ‘정리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로 사전에 등재되었을 정도로 곤도 마리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리의 여왕’이다. 곤마리 열풍을 몰고 온 <정리의 힘>은 전 세계 1,200만 독자의 삶을 바꾸어 주었고,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그녀의 모토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였고, 물건만 남기고 버리는 작업을 하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까지 파악하게 된다는 거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곤마리 정리법의 핵심이다.

 

이번에는 그녀가 업무 공간 정리법으로 돌아왔다. 업무 공간은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직장에서도 정리를 통해 일과 업무를 보다 효율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집 정리로 보다 나은 삶을 만들어나가는 것처럼, 업무 공간을 정리하면서 직장에서도 더욱 나은 결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의 공동 집필자인 스콧은 조직 심리학자이자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로 훨씬 효과적이고 생산적인 업무 처리법과 문제 해결법 등에 대해 오랜 시간 연구해왔다. 이들이 제시하는 정리정돈의 기술은 단순히 물건을 치우는 행동이 아닌, 일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는 하나의 루틴이라 더욱 흥미롭다.

 

 

정리를 하면서 물건을 마주 보는 것은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는 것과 같다. 정리를 하다 보면 가끔 '이걸 왜 샀지?'라며 후회하거나 과거에 자신이 내린 결정에 당혹해 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어 감사하다는 마음을 갖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과거에 했던 선택을 인정하는 과정이다. 정리를 하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아내고, 무엇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모든 선택에 확신을 갖는 긍정적 관점이 생겨난다.    p.98

 

우리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낸다. 어쩌다 칼퇴를 한다고 하더라도, 약속이 있거나 외식이 있을 수 있고, 정작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잠자는 시간과 아침 정도인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시간을 회사 책상에서 보내다 보니, 자신의 책상에 뭐가 뭔지 모를 잡동사니들이 점점 쌓이게 되는 경험을 다들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업무와 상관이 있든, 전혀 관련이 없든 간에 대부분의 회사 책상들은 어수선하고, 복잡하게 뭔가가 쌓여 있게 마련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책상 정리 한번으로 직장 생활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에 대한 조언으로 시작해, 정리를 하고 싶은 근본적인 이유를 되짚어 보고, 책, 명함, 서류, 소품 등 항목별로 정리 방법을 알려준다. 그래서 누구나 한 번에 완벽하고 빠르게 정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단순히 '공간적인 정리'뿐만 아니라, 디지털 데이터 정리하기, 시간, 결정, 관계 정리하기에다 회의, 팀 정리하기까지 그야말로 일 잘하는 사람의 정리정돈 기술이 총 집합되어 직장인들을 위한 종합 선물 세트같은 책이다. 곤마리식 정리법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와 닿았던 것은 그것이 단순한 ‘수납’과 ‘미니멀리즘’을 넘어선 인생에 대한 태도 자체를 바꿔주는 강력한 리추얼이기 때문이다. 책상을 수백 번은 정리했지만 어느새 또 어질러지는 경험을 했다면,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진 책상을 보며 우울해진 적이 있다면, 할 일을 산더미 같은데 시간은 부족하다면, 뒤죽박죽 엉켜버린 일과 삶의 질서를 되찾고 싶다면, 당신에게 이 책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알려주는 7가지 정리 습관을 통해 누구나 '일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름을 지나가다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3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차라리 그랬다면, 그는 종우를 희망이라 믿고 좀 더 버텼을지 모른다고, 버텨야 한다고, 일단 살아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자고 다짐했을 수도 있다고, 그 모든 것이.... 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가정, 그런 안개 같은 가정들, 매 순간 숨을 옥죄어 왔던, 그러나 감정의 차원에서만 세워지고 무너지길 반복했던 텅 빈 성전 같은 고통일 뿐이란 걸 가장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민이었다. 누군가 어깨라도 잡아 주면 나도 지쳤어, 라고 자동으로 말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아무도 민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p.96

 

약혼자와 결혼이 깨지고 나서 회사를 나온 뒤 부동산중개소에서 일하는 민은 종종 버려진 가구점에 몰래 들어가 시간을 보낸다. 인스턴트 커피를 타서 마시며 고가의 원목 가구 사이를 걷는 한밤의 산책은 오로지 그녀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공간에 자신 외에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버지 덕분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다른 사람의 신분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수호 역시 곧 폐점될 그 가구점에 종종 들러 시간을 보낸다. 그곳은 수호의 아버지가 하던 가구점이었고, 사업 실패에 이어 얼굴 한쪽에 마비가 온 뒤 아버지는 칩거 중이었다. 영원히 팔리지 않을 판매용 침대에 누워 우는 여자와 아버지가 실패한 상가에서, 아버지가 만든 침대에서 스스로에게 문자를 보내는 남자. 그리고 곧 폐허가 될 그들만의 작은 피난처는 고립된 이들이 버려진 공간에서 잠시 나마 숨쉴 수 있는 시간이다.

 

민은 부동산중개소에서 일하게 되면서, 매물로 나온 집에 주인이 없을 때 몰래 들어가 그곳 주인의 삶을 짧게 나마 살아내곤 했다. 대학생, 헤어디자이너, 서점 직원, 요가 강사, 호프집 주인, 대형 마트 계산원, 휴대폰 판매원, 그리고 승무원. 그렇게 30분짜리 생애를 수집할 수 있는 그 직업이 민은 좋았다. 한 달도 못 버틸 거라 여겼던 중개사무소에서 1년 가까이 일해오고 있는 것도 타인의 삶을 살아보는 것이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명백한 범죄인 줄 알면서도, 그 집이 담고 있는 짧은 생애의 시작과 끝을 누리고 싶었다. 입대를 앞두고 있는 수호는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가족들 모두가 차례로 신용불량자가 되자, 우연히 피씨방에서 주운 신분증을 위장하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남의 신분을 도용한다는 것이 합법의 테두리를 넘는 것이라 겁이 나기도 했지만, 그저 타인의 삶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위로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독촉전화와 협박성 이메일을 피해 휴대폰을 꺼놓고 낯선 사람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 그가 꿈꾸는 미래는 오로지 아버지처럼 살지 않는 것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은 노인이 되는 동안 결핍은 보완되고 상처는 치유되는 것, 혹은 삶이란 둥근 테두리 안에서 부드럽게 합쳐지고 공평하게 섞이는 것이므로 아픈 것도 없고 억울할 것도 없는 것, 그런 환상이 가능할까. 누군가 죽은 자리에서 누군가는 태어나는 방식으로 무심히 순환하며 평형을 유지하는 이 세상에서 꿈에서 본 죽은 노인을 기억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그러나 민에게 일러 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자명한 건 오직 하나, 미니 회전목마를 타기엔 민 역시 몸집이 너무 커져 버렸다는 것뿐이었다.     p.188~189

 

민과 수호는 곧 폐점될 버려진 가구점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 우연히 마주하게 된다. 수호는 곧 철거될 옥상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함께 하며 연주와 조금 가까워지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고 만다. 약혼자와 함께 살 집까지 마련했지만 그의 일방적인 결별로 인해 상처 받은 민의 마음과 아버지가 진 빚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타인의 명의를 도용하고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은 수호의 마음, 그리고 오직 돈을 벌기 위해 퇴근 시간도 없이 맹목적으로 일에 헌신하지만 결국 일자리를 잃어 버리게 되는 연주의 일상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을 통과한다. 이들 각자에게 여름은 위태롭고, 아프고, 힘들고, 겨우 버텨내야만 하는 계절이지만, 그럼에도 여름은 지나가고, 가을이 온다. 물론 여름 한철을 겨우겨우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각자의 마음에 남은 상처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고통도, 믿기지 않을 만큼의 행복도, 결국 지나간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 말이다. 민은 자신이 30분씩 경험했던 타인의 삶들이 기차처럼 칸과 칸으로 이어진 생애들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잠깐 거쳐온 중개 사무소 직원의 칸을 지나며 견디기 힘든 상실감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기차는 계속 앞으로 달려 간다. 고단하지만 묵묵하게, 끊어질 것처럼 위태롭더라도, 멈추지 않고.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내더라도, 어찌되었건 버텨낸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들 역시 곧 폐점될 가구점에서 생강차를 함께 마시고, 곧 철거될 옥상 놀이공원에서 맥주 캔을 나눠 마시며 잠깐의 위로를 받는다.

 

8월, 여름이 무르익어 깊어지는 시간, 그리고 여름의 끝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는 시간이다. 푹푹 찌는 무더위가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창문을 열어놓으면 선선한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불어온다. 매번 이상하게도 여름은 내게 그늘 한 점 없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부지런히 뛰어 다녀야했던 기억들을 잔뜩 안겨주곤 했다. 그래서 내가 여름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인생에서 의미 있는 챕터들을 꼽을 때 항상 여름이라는 계절이 포함되고는 했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세 젊은 남녀 역시 아마도 영원히 기억에 남을 만한 자신만의 여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한 발만 잘못 디디면 계획에도 없던 다른 종류의 삶으로 빨려 들어가는 허약한 지점들이 우리의 인생에는 생각보다 많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당신에게, 이 작품을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원
존 마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20대 시절에 엘리는 매치되지 않은 사람과 미친 듯이 사랑에 빠지는 일도 가능하다고 믿었다. 어쨌거나 문제의 유전자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그런 일이 수천 년 동안 벌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30대의 문턱을 넘어서면서, 엘리는 유전적으로 매치되지 않은 누군가와 자신이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잃어버렸다. 데이트에서 불꽃이 튀는 느낌도 경험해보았지만, 그 불꽃은 상대의 진짜 의도를 알게 되면 늘 싹 식어버렸다.    p.127

 

여자 여섯 명을 살해하고 영국 최악의 살인마라고 불리는 크리스토퍼는 'DNA 매치'에서 온 이메일을 받는다. 이메일은 그에게 돈을 내고 상대에 대한 연락처 정보를 받아보겠느냐고 묻는다. 그럴까 고민하는 그의 곁에는 몇 분 전에 자신이 살해한 여자가 슬레이트 바닥에 누워 있다. 목에는 여전히 교살용 흉기가 파고든 채였다. 평생 누구에게도 별로 사랑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그였지만, 생물학적 특징에 따라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로 결정된 여자에게는 호기심이 생겼다. 자신의 매치가 누구일지 무척 궁금했던 그는, 상대에게 연락을 하고 만나기로 한다. 그녀는 아주 매력적인 외모에 직설적인 성격이었고, 크리스토퍼는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다. 문제는 그녀가 경찰이었다는 점이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와 자신이 벌이고 있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경찰 여자친구가 유전자 정보에 기반한 필생의 인연이라는 것이다.

 

 

여기 결혼을 앞둔 한 커플이 있다. 그들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남은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매일매일 부족한 것도, 걱정할 것도 없이 행복하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사실은 영혼의 동반자가 아니라면'이라는 의문이 들었고, 머리카락 한 올 혹은 입속에 넣었던 면봉 하나로 그 사실을 과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말이다. 누구라도 우리가 서로의 반쪽인지 검사해보고 싶지 않을까.

전 세계의 수억 명이 'DNA 매치'를 통해서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시대였다. 사람들은 매치 결과에 따라 기존의 배우자 또는 연인을 떠나고, 대륙을 가로질러 이주하고, 유전자를 제공한 뒤 기다리고 있다. 덕분에 이혼율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덕분에 이혼 변호사나 관계 전문 상담가, 그리고 결혼 산업이 호황을 누리게 된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걸 알면 기꺼이 상대에게 평생을 바치려 하니 말이다. 게다가 이 사업으로 인해 결혼을 통해 무엇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시대, 매치에 대한 신뢰가 인종 차별과 각종 혐오를 무너뜨리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상대를 처음 만나자마자 그 사람이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 알아요. 난 다양한 사람들이 어디에 매력을 느끼는지 살피는 연구를 시작했어요. 얼굴인지 체형인지 태도인지 등등. 그런 다음 즉각적인 매혹 이상의 뭔가가 있는지 살펴봤어요... 평상시의 이상형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사람과 결국 짝을 이룬 사람들은 어떨까 하고요. 난 몸이 머리와는 다르게 반응하게 만드는 어떤 요소나 유전자가 있을지 궁금해졌어요. 우리 모두가 다른 한 사람과 본질적으로 연결되는 게 과학적으로 가능할까?"    p.228

 

서른 일곱의 이혼녀 맨디는 두 차례 유산이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르게 된 큰 원인이었음에도 여전히 아이를 원한다. 그녀는 자신의 매치를 찾아 가지만, 그는 사고로 죽었다는 걸 알게 되고, 만난 적도 없는 죽은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게다가 가족들로부터 그가 남겨둔 냉동 정자가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닉은 여자친구의 권유로 마지못해 테스트를 받는데, 그의 매치는 놀랍게도 잘생긴 남자였다. 닉은 게이가 아니었고, 상대 역시 여자친구가 있는 이성애자였는데도 말이다. 호텔 접수대에서 일을 하며 유일한 낙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자신의 매치와 통화하는 거였던 제이드는 결국 서른 몇 시간의 비행을 거쳐 그를 만나러 간다. 그런데 제이드를 맞아준 것은 림프종 4기로 이제 살 날이 한두 달 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 환자였다.

 

이야기는 다섯 커플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이들은 각자 ‘DNA 매치’를 통해 운명의 연인을 만나지만, 결코 평범하게 행복할 수만은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너무 다양하고, 스펙터클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라 한번 읽기 시작하면 결코 멈출 수 없는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 전개가 아닐까 싶다. 거듭되는 반전과 전혀 상상도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에 독자들을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엄청난 페이지 터너였다. 유전자 정보에 기반한 ‘DNA 매치’ 시스템이라는 설정 또한 매우 흥미로운데,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그 수많은 실패와 눈물, 고민, 실연 등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으니 말이다. 누구도 더 이상 사랑에 실패할 필요가 없는, 성공룔 백퍼센트의 사랑만 남아 있는 세상에서 여전히 그 놈의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다섯 커플의 이야기를 만나 보자. 단 한 페이지도 지루할 틈 없는, 처음부터 예측할 수 없는 작품을 만나게 될 테니 말이다. 이 작품은 올해 하반기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10부작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하니 드라마도 놓치지 말아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헤세 - 바로 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하여 클래식 클라우드 22
정여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헤세가 세 아들을 낳아 키운 곳이며 <수레바퀴 아래서> 라는 출세작을 쓴 곳이기도 한 가이엔호펜은 더욱 그 여정이 험난했다. 일단 가이엔호펜에서는 마음에 드는 숙소를 찾을 수가 없어서 휴양 도시 라돌프첼의 기차역 근처에 숙소를 정했다. 그런데 라돌프첼 기차역에 내리자마자 나는 탄성을 질렀다. 가이엔호펜에 있는 헤세의 집을 찾아가기 위해 잠시 숙소로 정한 곳이지만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p.25

 

클래식 클라우드 그 스물 두 번째 작품이다. 아마도 고전 작품 중에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읽는 작품이 아닐까 싶은 <데미안>의 헤르만 헤세 편이다. 이번 여행의 가이드는 헤세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작가인 정여울이라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 특히나 이번에 헤르만 헤세를 만나는 여정은 여행자, 방랑자, 안내자, 탐구자, 예술가, 아웃사이더, 구도자라는 7가지 키워드로 헤세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헤세는 학창 시절 두 번이나 퇴학을 당했고 따돌림도 당했으며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버려지기도 했다. 기댈 수 있는 학벌도 이렇다 할 지연도 없었고, 힘들 때 의지할 만한 그 어떤 성공한 사람도 주변에 없었다. 대신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무릎 꿇지 않았고, 그 누구 앞에서도 자기답지 않은 모습을 꾸며내어 잘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헤세의 삶에 대한 정여울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순간 뭉클해졌다. 바로 이 문장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헤세는 나이 들수록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갔다'라는 말만큼 대상에 대한 진짜 애정이 묻어나는 글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여울 작가가 헤세를 왜 좋아하고, 그의 작품을 통해서 어떤 영향을 받았으며, 그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가 클래식 클라우드의 여정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부끄럽지만, 뭔가를 시작해야 할 때가 있다. 그때 시작하지 않으면 또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내 안의 진정한 열망이 타오를 때까지.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올 때까지. 데뷔작은 항상 마음속에서 꿈틀거리지만, 첫 작품을 쓴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도 설레는 일인가. 헤세는 첫 장편소설인 <페터 카멘친트>를 통해서 단번에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사실 작가가 되기에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고 할 수 없지만, 자신을 둘러싼 불리한 환경을 작품 속의 '드라마틱한 배경'으로 삼을 줄 알았다.     p.92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수백 년간 우리 곁에 존재하며 '클래식'으로 남은 세계적 명작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제대로 읽지 않는 작품들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거장의 흔적을 따라서 그가 태어난 곳부터 마지막 눈감는 순간까지의 여정을 직접 여행을 통해서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이다. 정여울 작가 역시 헤세의 작품을 눈으로만 읽는 것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았기에, 그가 작품을 쓰고, 아이들을 키우고, 사랑에 빠지고, 삶을 꾸려가던 장소에 직접 찾아가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 여정은 작가의 저서인 <헤세로 가는 길>을 통해서 보여졌었고, 그걸 통해서 지금까지 헤세에 관한 글을 꾸준히 써오게 된다.

 

이번 클래식 클라우드는 그 작품에 이어 또 다른 헤세와의 만남을 꿈꾸는 두 번째 책이다. 관광지도 아닌 외딴 시골, 헤세의 고향인 독일 남부의 소도시로 가는 길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작가는 그 아름다움을 '풍경 자체라기보다는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까지의 설렘이 만들어낸 신기루'일지도 모른다고 표현한다. 목적지보다 그곳으로 가는 길이 더욱 아름답다면, 나 역시 언젠가는 한번쯤 헤세의 문장을 살아 있는 가이드 삼아 그 곳에 가보고 싶다.

 

 

작가는 헤세를 통해서 배운 것들을 이 여정 속에서 끊임없이 말해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헤세를 통해 내 그림자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대목이었다. 자신이 지닌 빛보다도 그림자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웠다니 말이다. 열정이나 재능이 '빛'이라면 상처나 두려움이 '그림자'에 속할 텐데, 그림자가 자신을 움츠리게 하고 기죽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스스로를 '성찰'하게 했다는 것이다. 과연 나에게는 이런 존재가 있을까 돌아보게 되었다.

 

나 역시 특별히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이 있고, 그들의 전작을 사서 모으고, 여러 번 읽어 왔지만 이렇게 사랑하는 작가와 완전히 혼연일체가 된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는지는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뭉클했고, 설레었다. 헤르만 헤세의 삶과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알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이토록 영향을 받아 성장하고, 변화해온 과정을 엿볼 수 있었던 점이었다. 살면서 이런 대상을 단 한 명이라도 만난다면, 그 삶은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으니 말이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을 다시 꺼내어 읽어 보고 싶어졌다. 정여울 작가가 이렇게나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한한 위로 - 위로는 정말 그런 걸지도 모른다, 엉뚱하고 희한한 곳에서 찾아오는 것
강세형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구내염이 심해지기 시작했을 때, 나를 외롭게 만드는 말이 하나 있었다. "나도 그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피곤하면 나도 그런다, 아니 누구나 다 그러는 거 아니냐.' 그럼 난 별것도 아닌 일로 징징거리는, 꾀병 부리는 애가 된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어쩐지 좀 억울하기도 했다. 그냥 한두 군데 헐어서 아프다고 하는 게 아닌데, 매번 입안을 보여주며 '당신도 정말 이만큼 셀수도 없이 많이, 심하게 허나요?' 이럴 수도 없고, 그래서 언젠가부턴 부러 안 아픈 척 애를 쓰기도 했다.    p.24

 

살다 보면 누구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고단한 일상, 공허한 인간 관계, 무심코 주고 받는 상처 등 힘들고, 아프고, 지치고, 피곤한 일들은 왜 그렇게도 많은지 말이다. 나는 그럴 때 어떻게 위로 받았을까. 나는 그런 순간들을 어떻게 견뎌내고, 여기까지 왔을까. 힘내, 괜찮아 질거야. 다 잘 될 거야. 나도 그런 적이 있어 등의 해맑고 건강한 말들이 공허하게 들렸던 적은 없을까.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말, 무심한 작은 배려,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이에게서 받게 되는 뜬금없는 위로까지.. 애당초 작정하고 덤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볍게 툭 내뱉을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위로인 것 같다. 강세형 작가는 '작정하고 내뱉어진 의도된 말에서보다는, 엉뚱하고 희한한 곳에서 찾아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가끔은 자신이 위로를 '발견'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고. 그러니 이 책은 그녀가 두리번거리다 발견한 희한한 위로들에 대한 일종의 모음집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녀는 가끔 영화와 드라마를 보다 멈칫하고, 책을 보다 밑줄을 긋고,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듣다가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자신을 멈춰 세운 말과 이야기를 곱씹으며 위로를 챙긴다. 마치 위로 수집가라도 된 것처럼. '위로' 수집가라는 표현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라는 것이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누군가의 슬픔을 달래주는, 반드시 동작의 대상이 필요한 타동사 같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굳이 대상이 없어도 상관없는 자동사 같은 느낌일 수도 있는 거라니 말이다. 내가 나를 위해, 그것이 너무 필요해서, 그래야 다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스스로 찾아내거나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이 '위로'라는 말은 이상하게 든든한 기분을 안겨 준다.

 

 

하나씩 지워간다는 것이, 꿈이 더 작아지고 삶이 더 초라해지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언제쯤 알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도 알아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하나씩 지워간다는 것은, 초라해지는 게 아니라 그저 달라지는 것뿐이었다. 하나씩 지워간다는 것은, 불행해지는 게 아니라 그저 '나는 사실 이런 사람이었구나'를 깨달아 가는 과정일 뿐이었다. 물론 20년 전의 내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지금의 이 '다른 삶'이 마냥 행복하고 좋기만 한 건 아니다. 그런데 분명한 건, 그 시절의 나는 몰랐을 다른 기쁨과 행복도 있다는 거다.    p.135

 

체력이 약하고 예민하고 자주 아프곤 하는 작가는 주인공이 되어 대화를 이끌어가고 싶은 욕망보다 조용히 듣고 싶고, 누가 날 알아봐 주길 바라기보다는 내가 그들을 관찰하는 쪽이 더 즐겁고, 힘들때 도와달라는 말은 잘 못하고, 개인 SNS는 거의 하지 않고 인맥을 넓히고 사교 생활을 즐기는 건 귀찮은 그런 성격이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제법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자신이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극복할 수 없는 문제들이 연달아 우르르 몰아치자 무기력해졌고, 산다는 것이 귀찮아지고 만다. 그때 그녀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견디고 있는 건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다시 힘을 찾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남들보다 예민해서 자주 아프고 자주 외로워지지만, 그래서 또 자신을 위해 그나마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는 그녀의 말이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되어 주고, 위로를 안겨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지쳐버리고 세상 쓸모없어 보이는 존재도 분명 어딘가에 쓸모가 있어서 태어난 거라는 말이 뭉클하게 와닿았다면,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만의 위로를 발견하게 된 걸테니 말이다. 세상에 사연 하나 없는 사람, 상처 하나 없는 사람, 힘들지 않고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그들 모두가 견디며 버티며 살아내고 있으니, 사실 그 모든 이들의 삶 하나하나가 기적처럼 느껴진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조금은 스스로를 대견하고 기특하게 여겨도 괜찮지 않을까. 겉으로는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우리의 삶은 각자의 자리에서 이미 기적이다. 내일 또다시 시작되는 그 수많은 하루하루를 부디 잘들 견딜 수 있기를, 당신의 모든 시간에 응원과 위로를 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