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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 - 바로 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하여 ㅣ 클래식 클라우드 22
정여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7월
평점 :
헤세가 세 아들을 낳아 키운 곳이며 <수레바퀴 아래서> 라는 출세작을 쓴 곳이기도 한 가이엔호펜은 더욱 그 여정이 험난했다. 일단 가이엔호펜에서는 마음에 드는 숙소를 찾을 수가 없어서 휴양 도시 라돌프첼의 기차역 근처에 숙소를 정했다. 그런데 라돌프첼 기차역에 내리자마자 나는 탄성을 질렀다. 가이엔호펜에 있는 헤세의 집을 찾아가기 위해 잠시 숙소로 정한 곳이지만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p.25
클래식 클라우드 그 스물 두 번째 작품이다. 아마도 고전 작품 중에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읽는 작품이 아닐까 싶은 <데미안>의 헤르만 헤세 편이다. 이번 여행의 가이드는 헤세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작가인 정여울이라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 특히나 이번에 헤르만 헤세를 만나는 여정은 여행자, 방랑자, 안내자, 탐구자, 예술가, 아웃사이더, 구도자라는 7가지 키워드로 헤세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헤세는 학창 시절 두 번이나 퇴학을 당했고 따돌림도 당했으며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버려지기도 했다. 기댈 수 있는 학벌도 이렇다 할 지연도 없었고, 힘들 때 의지할 만한 그 어떤 성공한 사람도 주변에 없었다. 대신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무릎 꿇지 않았고, 그 누구 앞에서도 자기답지 않은 모습을 꾸며내어 잘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헤세의 삶에 대한 정여울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순간 뭉클해졌다. 바로 이 문장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헤세는 나이 들수록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갔다'라는 말만큼 대상에 대한 진짜 애정이 묻어나는 글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여울 작가가 헤세를 왜 좋아하고, 그의 작품을 통해서 어떤 영향을 받았으며, 그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가 클래식 클라우드의 여정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부끄럽지만, 뭔가를 시작해야 할 때가 있다. 그때 시작하지 않으면 또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내 안의 진정한 열망이 타오를 때까지.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올 때까지. 데뷔작은 항상 마음속에서 꿈틀거리지만, 첫 작품을 쓴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도 설레는 일인가. 헤세는 첫 장편소설인 <페터 카멘친트>를 통해서 단번에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사실 작가가 되기에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고 할 수 없지만, 자신을 둘러싼 불리한 환경을 작품 속의 '드라마틱한 배경'으로 삼을 줄 알았다. p.92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수백 년간 우리 곁에 존재하며 '클래식'으로 남은 세계적 명작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제대로 읽지 않는 작품들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거장의 흔적을 따라서 그가 태어난 곳부터 마지막 눈감는 순간까지의 여정을 직접 여행을 통해서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이다. 정여울 작가 역시 헤세의 작품을 눈으로만 읽는 것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았기에, 그가 작품을 쓰고, 아이들을 키우고, 사랑에 빠지고, 삶을 꾸려가던 장소에 직접 찾아가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 여정은 작가의 저서인 <헤세로 가는 길>을 통해서 보여졌었고, 그걸 통해서 지금까지 헤세에 관한 글을 꾸준히 써오게 된다.
이번 클래식 클라우드는 그 작품에 이어 또 다른 헤세와의 만남을 꿈꾸는 두 번째 책이다. 관광지도 아닌 외딴 시골, 헤세의 고향인 독일 남부의 소도시로 가는 길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작가는 그 아름다움을 '풍경 자체라기보다는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까지의 설렘이 만들어낸 신기루'일지도 모른다고 표현한다. 목적지보다 그곳으로 가는 길이 더욱 아름답다면, 나 역시 언젠가는 한번쯤 헤세의 문장을 살아 있는 가이드 삼아 그 곳에 가보고 싶다.
작가는 헤세를 통해서 배운 것들을 이 여정 속에서 끊임없이 말해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헤세를 통해 내 그림자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대목이었다. 자신이 지닌 빛보다도 그림자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웠다니 말이다. 열정이나 재능이 '빛'이라면 상처나 두려움이 '그림자'에 속할 텐데, 그림자가 자신을 움츠리게 하고 기죽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스스로를 '성찰'하게 했다는 것이다. 과연 나에게는 이런 존재가 있을까 돌아보게 되었다.
나 역시 특별히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이 있고, 그들의 전작을 사서 모으고, 여러 번 읽어 왔지만 이렇게 사랑하는 작가와 완전히 혼연일체가 된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는지는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뭉클했고, 설레었다. 헤르만 헤세의 삶과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알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이토록 영향을 받아 성장하고, 변화해온 과정을 엿볼 수 있었던 점이었다. 살면서 이런 대상을 단 한 명이라도 만난다면, 그 삶은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으니 말이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을 다시 꺼내어 읽어 보고 싶어졌다. 정여울 작가가 이렇게나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