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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위로 - 위로는 정말 그런 걸지도 모른다, 엉뚱하고 희한한 곳에서 찾아오는 것
강세형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7월
평점 :
나의 구내염이 심해지기 시작했을 때, 나를 외롭게 만드는 말이 하나 있었다. "나도 그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피곤하면 나도 그런다, 아니 누구나 다 그러는 거 아니냐.' 그럼 난 별것도 아닌 일로 징징거리는, 꾀병 부리는 애가 된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어쩐지 좀 억울하기도 했다. 그냥 한두 군데 헐어서 아프다고 하는 게 아닌데, 매번 입안을 보여주며 '당신도 정말 이만큼 셀수도 없이 많이, 심하게 허나요?' 이럴 수도 없고, 그래서 언젠가부턴 부러 안 아픈 척 애를 쓰기도 했다. p.24
살다 보면 누구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고단한 일상, 공허한 인간 관계, 무심코 주고 받는 상처 등 힘들고, 아프고, 지치고, 피곤한 일들은 왜 그렇게도 많은지 말이다. 나는 그럴 때 어떻게 위로 받았을까. 나는 그런 순간들을 어떻게 견뎌내고, 여기까지 왔을까. 힘내, 괜찮아 질거야. 다 잘 될 거야. 나도 그런 적이 있어 등의 해맑고 건강한 말들이 공허하게 들렸던 적은 없을까.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말, 무심한 작은 배려,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이에게서 받게 되는 뜬금없는 위로까지.. 애당초 작정하고 덤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볍게 툭 내뱉을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위로인 것 같다. 강세형 작가는 '작정하고 내뱉어진 의도된 말에서보다는, 엉뚱하고 희한한 곳에서 찾아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가끔은 자신이 위로를 '발견'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고. 그러니 이 책은 그녀가 두리번거리다 발견한 희한한 위로들에 대한 일종의 모음집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녀는 가끔 영화와 드라마를 보다 멈칫하고, 책을 보다 밑줄을 긋고,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듣다가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자신을 멈춰 세운 말과 이야기를 곱씹으며 위로를 챙긴다. 마치 위로 수집가라도 된 것처럼. '위로' 수집가라는 표현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라는 것이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누군가의 슬픔을 달래주는, 반드시 동작의 대상이 필요한 타동사 같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굳이 대상이 없어도 상관없는 자동사 같은 느낌일 수도 있는 거라니 말이다. 내가 나를 위해, 그것이 너무 필요해서, 그래야 다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스스로 찾아내거나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이 '위로'라는 말은 이상하게 든든한 기분을 안겨 준다.
하나씩 지워간다는 것이, 꿈이 더 작아지고 삶이 더 초라해지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언제쯤 알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도 알아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하나씩 지워간다는 것은, 초라해지는 게 아니라 그저 달라지는 것뿐이었다. 하나씩 지워간다는 것은, 불행해지는 게 아니라 그저 '나는 사실 이런 사람이었구나'를 깨달아 가는 과정일 뿐이었다. 물론 20년 전의 내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지금의 이 '다른 삶'이 마냥 행복하고 좋기만 한 건 아니다. 그런데 분명한 건, 그 시절의 나는 몰랐을 다른 기쁨과 행복도 있다는 거다. p.135
체력이 약하고 예민하고 자주 아프곤 하는 작가는 주인공이 되어 대화를 이끌어가고 싶은 욕망보다 조용히 듣고 싶고, 누가 날 알아봐 주길 바라기보다는 내가 그들을 관찰하는 쪽이 더 즐겁고, 힘들때 도와달라는 말은 잘 못하고, 개인 SNS는 거의 하지 않고 인맥을 넓히고 사교 생활을 즐기는 건 귀찮은 그런 성격이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제법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자신이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극복할 수 없는 문제들이 연달아 우르르 몰아치자 무기력해졌고, 산다는 것이 귀찮아지고 만다. 그때 그녀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견디고 있는 건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다시 힘을 찾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남들보다 예민해서 자주 아프고 자주 외로워지지만, 그래서 또 자신을 위해 그나마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는 그녀의 말이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되어 주고, 위로를 안겨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지쳐버리고 세상 쓸모없어 보이는 존재도 분명 어딘가에 쓸모가 있어서 태어난 거라는 말이 뭉클하게 와닿았다면,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만의 위로를 발견하게 된 걸테니 말이다. 세상에 사연 하나 없는 사람, 상처 하나 없는 사람, 힘들지 않고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그들 모두가 견디며 버티며 살아내고 있으니, 사실 그 모든 이들의 삶 하나하나가 기적처럼 느껴진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조금은 스스로를 대견하고 기특하게 여겨도 괜찮지 않을까. 겉으로는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우리의 삶은 각자의 자리에서 이미 기적이다. 내일 또다시 시작되는 그 수많은 하루하루를 부디 잘들 견딜 수 있기를, 당신의 모든 시간에 응원과 위로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