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나요? - 나, 너, 우리를 향한 이해와 공감의 책읽기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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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다락방 님의 새 책 '잘 지내나요?'를 읽었다.

지난 번 책 속에 언급된 책들은 나도 읽은 책들이 많았고 쉽게 교집합이 형성되고 공감이 쉬웠었던 반면,

요번엔 내가 읽은 책들이 거의 없다.

안 읽은 책들이라도 공감을 할 수는 있지만,

내가 나이가 들어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것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감정들이,

그녀가 울고 웃고 행복해하고 절망했던 모든 순간들이,

(여자라면 더 격하게 와닿았을 수많은 감정들이, 그녀에 의해서 부추김을 받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녀를 통해서 나오면 사랑이고,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었다.

 

그런 그녀의 글들이 담긴 책이 요번엔 힘들었다.

로맨스를 꿈꾸기엔 너무 나이들어 버린 것일까.

그럴싸한 로맨스를 꿈꾸기에는 지금의 내 삶이 너무 소중하고 안정적이어서,

포기할 마음이 없다.

 

덕분에 오래간만에 봄바람 가슴에 가득 든 처녀마냥,

설레이고 아슴아슴한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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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22 10:43   좋아요 0 | URL
안 읽은 책에 대한 소개글을 읽으면서 공감을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제가 안 읽어 본 책의 리뷰를 쓰는 분들의 글을 ‘좋아요‘만 누르고 가는 일이 그 글에 공감했다는 의미를 전달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다른 분들의 리뷰를 ‘좋아요‘ 많이 눌러도 그 리뷰에 소개된 책들을 많이 읽지 않았어요.

양철나무꾼님과 다락방님의 리뷰를 읽으면 리뷰에 소개된 책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실제로 그 책을 읽어보는 분들이 많아요. 그만큼 두 분의 리뷰는 독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양철나무꾼 2017-04-26 16:06   좋아요 0 | URL
저는 리뷰고 페이퍼에 ‘좋아요‘를 누를때 ‘잘 읽었습니다‘정도의 의미를 부여해요.
그 책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리뷰나 페이퍼 내용 만으로도 기억하고 담아두려면 과포화 상태 아닐까요?
저는 틀림없이 폭발하고 말거에요~ㅠ.ㅠ

다락방 님 책 리뷰여서 그렇겠지만 같이 묶여서 완전 영광입니다~^^

초딩 2017-04-24 17:19   좋아요 0 | URL
우앗 책 제목 보고 깜딱 반가워합니다~

양철나무꾼 2017-04-26 16:07   좋아요 0 | URL
이게 얼마만인 겁니까?
잘 지내시는 겁니까?
이제 좀 자주 뵐 수 있는 겁니까요~ㅅ?^^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 - 요리사 박찬일의 순수 본류의 맛 기행
박찬일 지음 / 불광출판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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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저녁 밥상머리에서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데 이윤석이 나왔다.

저질체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영혼 탈출한 좀비의 모습으로 어기적거리고 있었다.

입맛이 없다면서 밥 대신 알약 하나 먹고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에게 먹는 즐거움이 얼마나 대단한데 그걸 포기하겠다는 것일까 싶었었다.

아내가 얼르고 달래 한술 뜨는둥 마는둥 방으로 들어가더니,

이번엔 숨겨놓았던 과자를 한가득 꺼내,

'그래, 이 맛이 바로 천상의 맛이야'

하는 표정으로 먹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 나도 모르게 혀를 끌끌거리자 같이 보던 남편이,

"엊그제까지만 해도 편의점 신상 터는 재미로 살던 니가 그러면 안되지."

하는 바람에 화들짝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슴슴하고 음식의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을 살린 음식이 좋다고 하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음식의 맛을 제대로 모르고 인스턴트식품이나 자극적인 음식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 만 하더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소재는 아니었다.

거기다가 쿡방이니 먹방이라고 하여 재빨리 음식을 만들어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익숙했던 터라,

음식이 나는 산지의 취재에서부터 시작해서 음식을 만드는 과정, 밥상에 오르기까지,

그 품과 정성이 영겁의 시간으로만 느껴져,

그 시간을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고행이고 수행이 아닐까 싶었었다.

 

암튼,

박찬일은 새 책이 나왔다고 하면 무조건 들이고 보는 작가 중에 한명이다.

글솜씨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안에 녹아있는 사상도 건강하여,

그가 쓴 글을 읽을라치면 맛깔스런 음식을 먹고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 그가 아무 맛도 없고 슴슴한 사찰음식이라니 아이러니컬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박찬일이 아니라면 누가?'라고 질문의 방향을 바꾸니,

그에게 맞춤한 질문과 답이라는 걸 알겠다.

내 이런 생각을 들여다 본듯 '여는 글'에서 이렇게 밝히고 시작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수도하는 이들에게 미각이 무엇이며 요리법의 고민이 무슨 사치냐고. 나도 그 말에 절반쯤 수긍하던 때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 시선은 한참 본질에서 빗나간 것이다. 만물을 알뜰히 먹는 일은 수행의 고갱이다. 들과 산, 밭에서 얻은 것들을 다듬고 갈무리하고 불(火)과 장을 입혀 요리하는 일은 가장 숭고한 수도다. 그것을 맛있게 요리해서 수도하는 이들과 대중에게 내는 일보다 더 '수도승'다운 일이 무엇인지 내게 말해 달라. 수행에는 각기 다른 방식이 있되, 일상의 수행은 하루 세 번의 끼니에서 출발한다. 왜 아니겠는가. 인간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종교 아니던가.(7쪽)

 

그러고보면 음식이라는건 여러 거창한 이유 이전에 뭔가를 살리고 제 목숨을 일구어야 하는데(17쪽),

난 이런저런 조리과정을 거친, 현란한 맛이나 뭔가 요란한 솜씨를 자랑하는 요리만을 음식과 동격으로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반성을 한번 해주시고~--;

아무 맛도 없고 슴슴한 사찰음식이라고 하여 조리과정마저 간단한 것이 아니란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요즘은 격식에 좀 자유로워서 그렇게 까다롭게 가리지않는 분파도 있겠지만,

일단 육류와 더불어 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 오신채를 먹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하얀 설탕처럼 가공되거나 정제된 재료를 모두 배제하기도 한단다.

 

그러고보면 사찰의 스님들만 수행을 하고 도를 닦는게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모든 사람들이 숭고한 경지에 이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박찬일 이분처럼 음식과 글, 양쪽으로 도를 닦고 경지에 이른 분들도 계실테고 말이다.

 

봄철 음식인 냉이를 얘기하면서,

뭐, 김훈의 남한산성을 (안 읽은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가장 극적이고 진중한 표현으로 골라놓고선 '더 절실하고 아프다'고 한다.

묵은 눈이 갈라진 자리에 햇볕이 스몄다. 헐거워진 흙 알갱이 사이로 냉이가 올라왔다. ㆍㆍㆍㆍㆍㆍ언 땅에서 뽑아낸 냉이 뿔리는 통째로 씹으면 쌉쌀했고 국물에서는 해토머리의 흙냄새와 햇볕 냄새가 났다. 겨우내 묵은 몸속으로 냉이국물은 체액처럼 퍼져서 창자의 먼 끝을 적셨다.(17쪽)

 

봄철 명이 편에선 단식에 대해 얘기를 한다.

나와 대여섯 살 정도밖에 나이 차이가 안 나는데,

춘궁기와 보릿고개 따위를 아는지 단식에 대한 공포를 얘기한다.

나는 단식에서 공포를 떠올린다. 허기에 대해 무너지는 마음이 가엾고, 참아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불만, 그리고 공황에 가까운 공포.(63쪽)

라는 글은 곧 이런 성찰로 이어진다.

비워서 얻는 것, 그것이 어디 단식뿐이랴. 사람들은 이 사바에서 비우지 못해 결국 죄짓고 상처입는다. 비우는 것에 대한 화두 하나를 얻는다.(64쪽)

 

이 책을 다 읽은 뒤 다시 여는 글로 가니,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박찬일 스스로 적어놓은게 보인다.

감자는 원래 하늘의 별이었다고 했던가. 그 감자가 밭에서 태어나는 순간은 여름의 초입이어야 가능하고, 토마토가 맛있는 건 미리 따지 않고 끝까지 열매에서 붉은색을 완벽하게 얻을 때이다. 맛있는 된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한시절을 옹기 안에서 보내야 하며, 시금치의 뿌리는 대지의 마음과 동일하다는 것도 스님과 함께 걸으면서 얻은 교훈이었다. 뿐이랴. 미역에 제 맛이 드는 것은 시린 바람과 바닷물의 깨질 듯한 수온을 견뎌낸 선물이었다. 콩나물이 숨소리를 쌕쌕거리며 일주일을 버텨야 비로소 비리지 않고 고소한 맛을 준다는 것도 움식일 수 없는 상식이었다.(5~6쪽)

 

절밥만 맛있는건 아닐 것이다.

제철,

원 재료의 맛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가미를 하여,

정성스럽게 차려놓은 그런 음식이라면 다 맛이 좋지 않을까?

 

그런대로 좋았지만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사찰음식레시피23'이라고 하는데 사진도 선명하지 않고 레시피가 중간 생략이 많아 친절하지 않다.

음식을 만드는 재주가 메주인 나에게만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읽었던 한창훈은 '그래야 구석구석 살조각까지 살뜰히 먹어진다. 나는 이게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허투루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원재료를 적절히 사용하여, 이 한가지를 추가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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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0 15: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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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1 14: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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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0 16: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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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1 14: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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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0 16: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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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1 14: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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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4-20 16:54   좋아요 0 | URL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면 아름답고, 맛있는 것이군요^^:

양철나무꾼 2017-04-21 14:41   좋아요 1 | URL
그렇게 따지면,
세월이 가는 것도 그렇고,
나이를 먹는 것도 그렇겠죠.

아름다운게 멋있기도 하고, 그리고 맛있기도한 이유인가봐요~^^

cyrus 2017-04-20 17:29   좋아요 0 | URL
감자가 우주의 기운을 받고 자란 채소였군요.. ㅎㅎㅎㅎ

양철나무꾼 2017-04-21 14:43   좋아요 0 | URL
감자가 하늘의 별이라네요.
은하수는 하늘을 흐르는 강이고 말예요.

근데 감자 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우주의 기운을 받고 자라지 않나요?@@
쿨럭~--;

cyrus 2017-04-22 08:49   좋아요 1 | URL
네. ‘그네‘만 빼고요.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7-04-26 16:01   좋아요 0 | URL
놀이터에선 그네 빼면 고무줄 끊긴 빤쭈인데요?ㅋㅋㅋ~.
 

난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

선어와 활어를 따질 것도 없이 회는 물론이고 찜이나 조림, 구이여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내가 게걸스럽게 먹는 건 날치알밥 뿐이다.

소박하게 맑은 조갯국물이라도 있으면 더할 나위없다.

날치알밥을 갯것에 넣기는 좀 민망하지만, 뭐~--;

작은 뚝배기를 불에 올리고, 거기에 밥과 김치를 쫑쫑 썰어넣고 날치알을 올린 뒤,

계란은 1인용 뚝배기엔 좀 과하니까,

메추리알을 하나 깨뜨려넣으면 완성되는 간단한 메뉴 말이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물고기를 좋아하지 않으니,

어류의 이름도 세세히 모르는건 당연지사,

이 책 '인생이 허기질때 바다로 가라'도 사진 속 물고기의 모습이 너무 리얼하다는 이유로 한쪽으로 치워놨었다가,

할일없이 아무렇게나 넘기다가 만난 글들이 좋아서 시작하게 되었다.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를 읽었어도 좋고 안 읽고 이 책만을 읽어도 좋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것들 말이다.

나는 생선 손질을 할 때 지느러미를 잘라내지 않는다. 요리를 해놓으면 등과 꼬리 자느러미가 제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게 보기에도 좋다. 그런데 할머니는 다르다. 모두 잘라낸다. 그냥 두는 나를 보고 뭐라 한다. 짤라버려라, 싫소, 그것을 뭐하러 붙여놓냐, 그냥 두는 게 좋다니까요, 이렇게 투닥거린다.

한번은 전화가 와서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 그새 내 것을 모두 잘라놓고서 모른 체하고 있었다. 아니 이거 왜 잘랐어요? 아 글쎄, 먹지도 않을것을 왜 붙여놓냐고. 둘은 기가 막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합의를 본 게, 영자 것은 영자 맘대로, 순돌이 것은 순돌이 생각대로, 이다.. 그래서 냉동을 해놓아도 네 것, 내 것 구분이 쉽지만 지금도 탐탁지않게 여긴다.

지느러미를 잘라내버리면 단순한 고깃덩어리 같다. 제 모습을 유지해놓으면 생명체의 느낌이 든다. (시인들은 이때 이렇게 말한다. 한때 눈부신 생명이었던 것들이 어쩌고저쩌고). 그래야 구석구석 살조각까지 살뜰히 먹어진다. 나는 이게 예의라고 생각한다.(108~109쪽)

이런 감각적인 글들도 좋지만,

내 시선을 끈건 내가 먹는 '알밥'의 생략된 앞 두글자에 들어가는 '날치',

알들의 엄마ㆍ아빠인  '날치'였다.

책 속의 사진들을 보면 리얼한 것이 바다를 품은 듯도 하고, 하늘을 품은 듯도 하고 생각이 달라지지만,

이 그림으로만 봐선 귀엽다.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손택수 지음, 정약전 원저 /

 아이세움 / 2006년 3월

 

 

날치에 부쩍 관심을 갖게 되었고,

가지고 있던 또 다른 책 손택수가 지은 책'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를 들춰보게 되었다.

귀여운 건 마찬가지인데, 그림체가 다른지라 그림이 한층 자세하다.

 

한창훈과 손택수, 둘다 글이 빠다를 발라놓은 듯 맨도로롬하고 고소하지만,

각자 개성 차이가 확실한지라 다르게 읽힌다.

 

날치 부분에서 손택수가 재미있었던건,

날치를 『산해경』을 인용해가며 '나는 물고기'라고 하는 부분이었다.

('날으는 원더우먼'과 관련 '날으는'이라고 하지 않고 '나는 물고기'라고 한 것도 좋았다.)

 

『장자』라는 책을 인용하며 '곤'이 날치일지도 모른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장자』에도 "북녘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고 한다. 곤의 크기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이 물고기가 변해서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이라고 한다. 붕의 등 넓이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 곤은 바다를 상징하는 물고기이고, 붕은 하늘을 상징하는 새다. 이들은 한 몸으로 이어져 있다. 물고기를 잡아먹은 새가 날아다닐 때, 물고기는 새의 몸을 빌려 입은 것이 된다. 그 새가 죽어 먼지가 된다면 물고기들은 또 그 유기물을 섭취하며 헤엄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물고기는 새가 빌려 입은 몸이 아닌가. 이 신화를 통해 동양 고대의 상상력이 얼마나 유기적인지를 알 수 있다.(92쪽)

 

내가 장자에도 인용되는 '곤'일지도 모르는 '날치'의 알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뭔가 영겁의 시간을 넘나들며 일어나는 우주의 계획과 질서에 간여하는 것 같아서 숙연해지니까 말이다.

 

한창훈의 책 뒷표지를 보면, 허영만은 한창훈의 글을 통해서 '한창훈의 자유로운 삶을 통해 대리만족한다'고 되어 있는데,

나도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자유로운 삶을 대리만족하고 싶기도 한데,

막상 자유로운 삶이 주어지면 만족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버림받았다며 어떠지 못해 하지 않을까 싶다.

 

암튼 자유로운 삶이란 자신이 헤쳐나가기 나름이지 싶다가도,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라고 관조하는 '도깨비'의 명 대사처럼 사람으로선 어쩌지 못하는 신의 영역이 아닐까 싶어 체념해 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실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게 아니고,

땅이나 산은 가다가 협곡을 만나거나 바다를 만나면 끊기지만, 모든 바다는 하나로 통한다는 거다.

바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자연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귀속되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내일 모레면 3년인데, 아무것도 해결된게 없다.

북한에서는 어딘가 바다를 향하여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는 모양이다.

 

봄이 한창이다.

어느 드라마속에선 '도깨비'가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라고 하는데,

난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슬프고 눈물겹다.

봄을 맘껏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나 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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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4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0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4-14 21:39   좋아요 1 | URL
저는 모든 생선을 다 좋아해요. 그런데 유독 먹지 못하는 생선 부위가 있어요. 그게 생선의 눈알입니다.. ^^;;

양철나무꾼 2017-04-20 15:50   좋아요 1 | URL
한창훈의 책엘 보면 말이죠.
한창훈의 아는 형님이, 생선 눈알을 좋아하는 딸내미를 위해.
생선 눈알을 모은다는 얘기가 나와요.

저와 생선을 안 먹으니까 해당사항이 없고,
생선 좋아하는 사람들 보면 완전 좋아하던데,
의외네요~^^

2017-04-17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0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동안 책을 통 읽지 못했었다.

전에 읽은 책들에 이어서 쭈욱 진도를 빼지 못 하고 맥이 끊겨버리자,

고비를 넘지 못 하고 계속 버퍼링 중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중에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를 읽었다.

그가 쓴 '홍합'을 20대 후반에 접했었다.

책이 너무 비릿하여서 버거웠던 기억이 있기에,

그의 다른 책들을 잘 읽어낼 수 있을까 망설였고, 오늘에 이르렀다.

이 책의 원조 격인 '향연'이 좋다더라는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는 '꽃의 나라'를 읽기 전까지는 한창훈을 제대로 읽은게 아니라는 사람도 있었다.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라는 제목만 가지고 작법서쯤으로 생각, 못 읽고 넘어갈 뻔 했는데,

지금이라도 연이 닿아 읽은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내가 왜 이 책에 열광하고 이런 글들을 읽으며 살아야 하는지는 알겠다.

그는 글을 쓰는 것으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 아픈 이야기가 단 열두 줄에,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담겨 있는 거였다. 순간 가슴이 뛰었다. 이게 문학의 언어이구나. 이런 말로 써야 되는구나.

상황을 담담하게 전달하는 언어. 견디는 자세가 아픔을 더 크게 보여주듯이, 이를 악물고 웃음을 참는 자의 얼굴이 좌중의 웃음을 유발하듯이, 언어는 냉정하게 정돈된 거라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164쪽)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것이 진정한 문학이고, 문학의 언어라고 말들을 한다.

때로 말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미미하다 싶어,

말줄임표(ㆍㆍㆍㆍㆍㆍ)를 앞에 내세우고 공허한 웃음을 흩뿌리기도 하지만,

같은 단어를 두고 받아들이는 온도도 차이가 날 수도 있고,

웃음의 표정을 두고도 받아들이는 의미가 다를 수 있다.

 

그 무렵 텔레비전에서 배우 부부가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일부분을 본 것이라서 그 후 어떻게 펼쳐졌을지는 모르겠는데,

남자가 잔소리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는데,

여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식으로 묵묵히 참고 그냥 웃어버리는 것이었다.

희귀병을 앓았다니까 힘이 들때면 더 웃게 된다는 여자의 입장은 이해할 듯도 했지만,

화내지 않고 웃기만 하는 그녀에게 남편이 느꼈을 소외감과 답답함 또한 텔레비전 화면을 통하여 충분히 전해졌다.

 

그 연장선상이 되려나.

이 책에선  '안현미 시인'이 등장한다.

여러 쪽에 걸쳐서 등장하는 그 꼭지의 제목이 '오죽하면 시를'이다.

 

이 책을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되면,

훌륭한 작가들이 여러명 나오고,

한창훈의 가족이나 친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들도 여럿 소개되고는 있지만,

어떤 글이 좋은 글이라거나, 글을 어떻게 써야 한다는 말이 한번도 나오지는 않는다.

그는 삶을 담담히 읊조리듯 써내려가고 있고, 그걸 우리는 문학작품이라고 부를 뿐이다.

 

"시란 한마디로 뭐나."

"ㆍㆍㆍㆍㆍㆍ"

"친구도 없고 장난감도 변변찮은 시골 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신의 상처를 가지고 논다. 무릎이 까지면 자꾸 만져보고 딱지가 앉으면 그 딱지를 뜯어내며 혼자 논다. 시라는 게 바로 그것이다."

상처를 가지고 노는 것. 상처를 확인하고 상처에 집착하며 상처로 명상하며 상처로 의미를 획득하고 상처로 지경에 이르는 것. 내가 창작을 시작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였지만 선생의 그 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223쪽)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한창훈이 글을 쓰는 이유도 이와 다르진 않을 것이다.

 

소유하고 있는 물건과 주인의 품격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 이상의 자아는 없다는 것을 확인했던 것도 그 시절이었다.(123쪽)

 

입은 다물기 위해서 존재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 무심한 품위.(143쪽)

 

글을 쓴다는 것은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는 일일 것이다.

음악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고, 텔레비전 드라마나 예능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 감성의 본질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일상 생활에서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에서 왜 쓰는지 한구절도 알아차릴 수 없을지라도,

삶을 진솔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내 삶 또한 부풀어오르고 윤택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겨울이 깊어가자 눈이 잦았고 호수는 얼음을 뒤집어쓰고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공사 현장 일을 다녔다. 탯속 같은 눈길을 걸어 새벽 첫차를 탔고 밤 깊어 귀가할 때 다시 눈이 내렸다. 지금은 눈 내리는 호숫가에 머물고 있지만 세상 어느 곳인들 춥지 않은 곳 있겠는가. 더 살고 골똘히 궁리하다보면 살아가는 방법 한구석쯤은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리라.

그러고 보면 나는 세상을 좀 앞당겨 살아버렸는데 어쨌거나 젊음이 끝나기도 전에 늙음을 기웃거려보는 것이 소설가의 팔자라고 생각하는 게 그 이유이다. 그런 시간대를 지나면서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어오면 이렇게 대답한다.

"아름답게 늙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그런 나는 찾았을까?(165~166쪽)

 

'개그콘서트'를 보면 '고집불통'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거기 유행어가 '그건 난 모르겠고~'였다.

그 버전으루다가 한창훈이 왜 쓰는지 그건 난 모르겠고,

'왜 사냐건 웃지요.' 할 도리밖에~.

 

이 책의 표지 일러스트가 돋보인다.

책 중간에 나오는 따님 이름이 단하인걸로 봐서 그 '한단하'인가보다.

그림을 잘 그렸는지 못 그렸는지 판단할 깜냥은 아니어 주시고,

그림이 따뜻한 것이 책과 잘 어울린다.

좋다.

 

이쯤에서 접어야 하는데, 구구절절 사설이 길다.

'정미조'의 '개여울'이 듣고 싶은데,

왜 그런지 '그건 난 모르겠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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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17-04-07 17:52   좋아요 2 | URL
이 산문집, 참 좋았어요^^

양철나무꾼 2017-04-07 17:56   좋아요 1 | URL
네, 이 산문집도 참 좋았고,
님이 이 페이퍼에 댓글 달아주신 것도 참 좋아요~^^

cyrus 2017-04-07 18:46   좋아요 1 | URL
책을 읽으면서 아는 것을 글로 정리하니까 안 잊어버리게 되고, 내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던 지식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책만 읽는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똑똑하게 산다고 확신할 수 없어요. 그래도 저는 독서가 아름답게 늙으면서 지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양철나무꾼 2017-04-11 13:44   좋아요 1 | URL
아핫~^^
그러고보면 cyrus님은 리뷰고 페이퍼고 정리력이 탁월하신 것 같아요.
정리하고, 안 잊어버리고, 잘못 알고 있던 지식을 바로 잡기 위해 글을 쓰는 것도 ‘쫌‘ 멋진 일 같아요~^^

겨울호랑이 2017-04-07 18:54   좋아요 1 | URL
^^: 자신이 가진 감성을 온전하게 언어라는 도구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섬세한 ‘줄‘ 또는 ‘사포‘로 자신의 감성을 조각한다면, 저는 그렇게 섬세하지 못해서 망치로 부수는 느낌(?)이 드네요.ㅋ ‘시‘를 정의한 글이 참 마음에 와 닿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양철나무꾼 2017-04-11 13:55   좋아요 2 | URL
언어가 자신의 감성을 표출하는 도구이긴 하지만,
그래서 언어로는 다 표현하지 못 하는 것 같아요.
말이나 글 말고도 감성을 전달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으니까 말예요.

님처럼 어려운 내용들을 쉽게 정리해 글을 쓰시는 분이 이렇게 얘기하시다니...겸손이 지나치시군요.^^

섬세한 줄과 사포로 하는 조각도 좋지만,
때로는 서툴거나 거질거나 무뎌져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햇살이나 바람, 강 하류로 흘러가 굴러다니는 둥근 조약돌 따위의 자연은 서로 다투지 않으니까 말예요~^^

푸른희망 2017-04-07 21:32   좋아요 1 | URL
좋아요를 백번을 누르고싶네요.
저 책도 좋았고 나무꾼님 페이퍼도 좋아요.

양철나무꾼 2017-04-11 13:57   좋아요 1 | URL
요 위의 겨울호랑이 님이 알려주셨는데,
100번은 짝수여서 ‘좋아요‘와 ‘좋아요 취소‘의 반복에서 ‘좋아요 취소‘로 끝난대요.
그러니까 저도 홀수로다가...ㅋ~.

저 책이 좋은 건 당연지사고,
제 페이퍼도 좋다고 해주셔서...좋아요~^^

[그장소] 2017-04-07 23:11   좋아요 0 | URL
음 .. 좋다 .
내 책 읽고 정리는 하나 못해도 , 이런 글 부대낌은 참 좋네요 .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
점점점 미소가 지어져요 . ^^

양철나무꾼 2017-04-11 14:01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도 겸손이시네요~^^
님의 리뷰와 페이퍼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데...ㅋ~.

저는 너무 큰 부대낌은 사양하고요,
님이랑 처럼 가볍고 경쾌한 그런거요~.

그런데 잘 지내시는 겁니까?^^

[그장소] 2017-04-11 17:23   좋아요 1 | URL
아아아아아아~~~, 양철나무꾼님 .
가볍고 경쾌하고 그런거 저도요!^^

잘 지내냐 물으니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못하겠네요 . 괜찮다고 하면 괜찮아 지겠죠?
그러니 괜찮습니다.( 질문은 그게 아닌데..ㅎㅎ)

목나무 2017-04-08 14:41   좋아요 1 | URL
맞아요. 따님인 한단하 양이 아빠의 책 표지를 만들었네요.
한창훈 작가님의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란 책에는 딸인 한단하 양이 책에 실린 일러스트도 그렸어요.
부녀 사이가 참 좋아보이더라요. ^^

양철나무꾼 2017-04-11 14:03   좋아요 1 | URL
님 댓글 보고,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찾아봤어요.
소설집인가 봐요.
아직 못 읽었는데, 언젠가 찾아보고 싶네요.
좋은 추천, 고맙습니다, 꾸벅~(__)

단발머리 2017-04-11 10:39   좋아요 1 | URL
아, 양철나무꾸님~~~ 이 페이퍼 참 좋아요~~~~
저도 예전에 이 책 읽었는데, 전 정말 이 아름다운 문장들을 어떻게 읽어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요.
저는, 이런 일화 있잖아요.
한작가님 옆학교던가, 옆교실의 여학생반의 칠판에 한작가님 욕이 찰지게 적혀 있을 정도로 유명하셨다는 이야기,
그런 게 기억이 나네요.

인용해주신 단락들이 참 좋아서, 혼자 앉아 맞아! 맞아!를 외치고 있는 아침입니다.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7-04-11 14:05   좋아요 1 | URL
아아아아아아~~~~~~~, 단발머리 님.
좋다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 인생이 허기질때 바다로 가라‘ 읽고 있는데,
이것도 왕 좋은 걸요.

책도 좋고,
님이 격하게 좋아해주시는 것도 좋고,
배가 빵빵한 것도 좋은,
좋은 봄날 오후입니다~^^

2017-04-12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4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은 신을 찾아서 - 신념 체계와 삶의 방식에 관한 성찰 성찰 시리즈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1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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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헤닝만켈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의 연장선 상에서 읽게 되었다.

강유원의 책들을 그동안 몇 권 읽은지라,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얘기하라면 반듯하지만 좀 지루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 인식되었었다.

인간 내면에 대한 통찰이나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철학자인 그가 '숨은 신을 찾아서'란 제목의 책을 들고 나왔으니,

얼핏 생경하였었다.

 

"1"장에서 그동안 그가 뜸했던 이유가 나오는데, 이같은 제목을 쓴 이유도 엿볼 수 있었다.

태평양과 이어지는 동해 바닷가 도시의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 일반 병실로 옮겨진 뒤 복도 끝까지 걸어서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좌절은 없었다. 삶을 손에 쥐지도 못했고, 어디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였다. 운명이라든가, 믿음이라든가, 그런 말들도 떠오르지 않았다. 병원을 서둘러 나왔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뿐이라는 허겁지겁만이 전부였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이 밀려 들어왔다. 아니, 그 무기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고 해야 옳겠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절망絶望, 즉 희망을 끝는 일이다.

야욕과 절망 사이에는 10년 정도의 시간이 놓여 있었다. 그 시간은 인간 존재의 하찮음을 가르쳐주었다.(7쪽)

 

10여년 정도 많이 아팠었나 보다.

많이 아프거나 나이 들어 죽음을 예비하게 될 때 삶을 돌아보게 마련인데,

그는 삶을 돌아보는 방식으로 책을 택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데카르트'의 '성찰' 따위,

위대한 사람들의 저서 속 삶을 엿보는 방식으로 자신의 신념 체계를 구축함과 동시에 성찰한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아우구스티누스, 데카르트, 파스칼, 키에르케고어 따위를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펼쳐서 몇 장을 넘기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었던 경험이 있는지라,

그가 독서법을 가장하여 자상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좋았다.

 

논점이 명확하고,

그 명확한 논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예는 자상하게 들되, 중언부언 군더더기가 없다.

 

헤닝만켈'은 '사람으로 살기 위해' 꾸준히 내면에게 묻기를 강조했었는데,

강유원은 신앙의 필수적 전제 조건으로 얘기되는 '자아성찰'과 '자기반성'을 언급한다.

신앙을 갖지 않아도 도덕적으로 건전한 삶을 산다면 훌륭한 삶을 산 것이라는 상식도 있다. 참으로 논박하기 어렵다. 그들에게 초월적 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고 권유하거나 인간의 모든 행위는 헛된 집착에서 나온 것이니 적극적 행위를 포기하라고 설파하는 것은, 망동과 망언으로 간주된다. 그들에게 세계관의 전회를 요청할 수는 없다. 그저 그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한 가지를 그들에게 물어볼 여지는 남아 있다. 자신들의 도덕적 신념은 확고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는 대답을 들으면 우리는 물러나야 한다. 그러한 물음이 그들 자신의 신념 체계에 대한 잠깐의 회의라도 불러일으켜 그들을 더 깊은 의심에서 제기되는 물음들로 나아가게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더 물어볼 수 있을 것인가.(30~31쪽)

 

헤닝만켈도 그랬고, 강유원도 그렇다.

인간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고 생각을 한다.

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그리고 우주에 대해...끊임없이 묻는다.

헤닝만켈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을 다시 읽는다고 표현하면서 자신의 사상과 입장을 표명하는 반면,

강유원은 '신'이라고 불리우고 신념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유명인들과 그들의 저서를 인용하는 방식을 취한다.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 세계는 우주의 티끌들의 우연한 결합이라는 걸 그대는 알지 않는가, 그대의 몸은 언젠가는 티끌로 되돌아갈 것임을 그대는 알지 않는가, 그대의 정신이 탐욕스럽게 읽고 있는 책들이 모두 한순간의 응축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대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대가 그렇게도 소중하게 여기는 만년필은 하찮은 물건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그대는 알지 않은가, 그대가 몹시도 사랑하는 그 모든 것들이 찰라에 스러져버릴 것들임을 그대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대는 왜 그것들에 그렇게 집착하는가, 그대는 존재의 진상을 알면서도 왜 자신을 기독교도라 말하고 신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가.(146~147쪽)

 

슬픔을 이기려면.

  내가 멈춰 선 곳에 신이 있다고 확신한다.(151쪽)

고 얘기한다.

 

그의 방식은 죽음을 거부하거나 저항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삶을 사는 방식을 통하여 죽음을 예비하자는 얘기가 아닐까.

 

그는 이렇게 얘기하며 이 책을 끝맺는다.

우리는 이들의 삶을, 텍스트를 내재적으로 읽거나 삶의 배경 맥락을 읽거나, 증거를 찾아 구축하여서, 해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저 다 덧없는 것이라 여겨 놓아두거나.(157쪽)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검색해 보니, 제주 어디에서 그의 강의가 몇 번 있다.

제주라는 섬이 치유하기에 좋은 곳인가 보다.

덩달아 나도 제주에서 그의 강의나 찾아들으며 일 년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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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3-29 16:25   좋아요 1 | URL
오늘도 주제가 묵직한데도 불구하고, 꼭 한번쯤은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듯합니다..잘 읽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7-03-31 15:01   좋아요 0 | URL
그동안 강유원의 글들은 체화한 글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요번엔 감정은 자신의 것인데 내용은 여기저기서 짜깁기한 느낌이랄까요?
아픈게, 두려워 하는게 고스란히 들어나서 좀 안쓰러웠어요~--;

단발머리 2017-03-29 19:51   좋아요 0 | URL
오늘 아침까지 읽었던 <슬픈 불멸주의자>가 떠오르네요. 그 책에서는 죽음과의 타협을 제안했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의 죽음 앞에서 성숙하고 결연하기 보다는... 처음 겪는 일이니까요. 그 다음을 말해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꼭 알아야하는 이야기지만 ‘죽음‘의 이야기는 참... 부담이 되기는 합니다.
강유원,이라는 작가 이름을 기억해야겠어요^^

양철나무꾼 2017-03-31 15:05   좋아요 0 | URL
저 님의 ‘슬픈 불멸주의자‘리뷰 봤어요.
좋았어요~^^

죽음도 그렇고, 죽음의 애도도 그렇고 ...껄끄럽지만 집고 넘어가야할 문제겠죠.
강유원은 님이 애정해 하시는 강신주와 더불어 제가 참 좋아하는 철학자예요.
강신주에 비해 탈렌트 기질이 좀 떨어지는 듯 하지만,
그간의 저작들을 봤을때, 전 애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님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3-29 19:59   좋아요 0 | URL
강유원이 이런 책도 썼군요.
덕분에 좋은 책 소개 받았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7-03-31 15:07   좋아요 1 | URL
인문고전강의, 역사고전강의, 철학고전강의와 더불어 이 책도 가볍게 접근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님도 분명히 좋아하실 거예요, 불끈~!^^

잠자냥 2017-03-30 13:42   좋아요 0 | URL
아, 강유원 씨가 아픈 줄은 몰랐네요. 이 책 출간 소식 듣고 반가웠는데, 그런 일을 겪으며 나온 책이군요. 도서관에 신청해서 읽어보려 했는데, 왠지 사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하......

양철나무꾼 2017-03-31 15:12   좋아요 1 | URL
한 10여년 편찮으신 후인가 봐요.
당신의 글 같지 않고, 좀 자신감이 떨어지는 느낌이 있는데,
힘내시라고, 응원하는 의미루다가,
별 다섯을 꽉꽉 눌렀습니다~^^헤헤~...

2017-03-31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31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04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05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07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