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하고 멍때리는 요즘이다.

멍 때리면서도 더, 더, 더...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어찌보면 내 무기력함의 근원은 위, 아래가 꽉 막힌 만성체증 때문인듯도 싶다.

처음엔 책이 쌓이는게 중압감으로 다가오는것이라 생각했는데,

멍 때리며 한발자욱 떨어져 관조적으로 생각해보니,

이 집으로 이사온지 어언 17년째,

책뿐만 아니라 모든 물건이 적체되어 있다.

 

거기다가 나란 사람,

한때 무언가를 버리면 나도 버림 받게 될까봐,

과잉 감정이입을 해서,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기만 했었다.

 

이젠 많이 버려서,

바람도 왔다갔다 할 수 있고,

숨 쉴 구멍 정도는 확보하게 됐는데,

누리게 되니 바람이 왕래하는 숨구멍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달까,

더 격렬하게 비워내고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

 

빨리 치워야지 하고 여러권의 책을 설렁설렁 읽었는데,

몇 권은 리뷰나 페이퍼로 작성했던 것들이고,

오늘은 그 중 '명당은 마음 속에 있다'이다.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
 최창조 지음, 김진태 만화 /

 고릴라박스(비룡소) / 2015년 3월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 2
 최창조 지음, 김진태 만화 /

 고릴라박스(비룡소) / 2015년 5월

 

'최창조 지음, 김진태 만화'라는 정보에서 알 수 있듯이,

최창조 님의 이론을 김진태 님이 만화로 재구성 한것 같은데,

만화로 그려지면서 걸러지고 간경해져서,

깊이 있는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만화가 가지고 있는 장점, 재미있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대신,

개연성 확보에 실패했달까.

내용은 군데 군데 오류가 보이지만,

최창조 님이 그러하진 않으셨을 것 같다.

 

이런 내용은 좋았다.

제목만으로도 책의 내용을 아우르고 있는데,

이런 게 만화책이 가진 힘인 것 같다.

 

1권의 내용이다.

'상황이 변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인간의 삶'이란 말은 맘에 들지 않는다.

이건 지극히 편협한 인간 중심의 사고일 뿐이다.

자연은 늘 그러할진대,

인간이 마음대로 이러구 저러구 하는게 아닌가.

 

2권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2권 에서,

현대 도시 풍수의 가장 큰 지향점을 현시점에서 자연과 친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책의 뒷부분에 가면,

집을 잘 고르는 법과 외국에서 인기있는 인테리어 풍수 팁에 대해서 나오는데,

풍수 이론 자체에 관심이 없더라도,

논리적으로 타당한, 알아두면 유용한, 생활의 지혜 정도되겠다.

 

 

 

 나의 첫 한문 공부
 공원국 지음 / 민음사 /

 2017년 5월

 

오늘 훑어본 책은 '공원국'의 '나의 첫 한문공부'이다.

6월14일 오늘이 '키스 데이'라는데,

키스데이에 협조하기 위해 그런가,

이책은 '존재의 이유, 사랑'이란 내용으로 시작한다.

사랑의 바탕은 진실함과 헤아림이라고 하는 것이나,

진 목공과 윤회를 언급한 것,

궁극적으로 부모의 사랑을 얘기하는 등,

책의 짜임이 단계적이고 차근차근하다.

중반으로 넘어가면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는 얘기가 나오는데,

최창조 님의

'상황이 변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인간의 삶'이라는 명제와 대비하여 생각해 볼만하다.

 

그 간 '공원국'님의 책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좀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사상과 역사, 문학을 아우르는,

한문 고전의 좋은 구절들만을 추려만든 책이란다.

구절들도 좋지만 해설도 일품이다.

 

 

책이라면 어쩔 수 없는,

아무래도 환자이다 보니,

책 얘기는 아무 생각없이도 술술 풀어낼 수 있지만,

휘리릭 읽고,

착착 정리하고,

비울 수 있는 건 비우는 건 아직 낯설다.

비우고 그렇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하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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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4 18: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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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4 19: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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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7-06-14 20:36   좋아요 0 | URL
최창조 선생의 저서를 다 소장하고 읽어오다가 어느 순간 부터 읽지 않게 되었어요. 그 양반도 이제 ‘기‘가 다 한 것인지 그닥 감흥이 없더라구요..ㅎ

양철나무꾼 2017-06-15 09:09   좋아요 0 | URL
찌지뽕~^^
그쵸?
초창기의 그분의 글들은 논리적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어거지 부리고 떼 쓰는 느낌이예요.
뼈대는 튼튼히 하지 못한채 몸집을 부풀려 기진맥진해진 느낌이랄까요.
아무리 만화책이라도 당신 이름 달고 나온 책인데,
한번 읽어보는 수고는 하셨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2017-06-14 21: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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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7-06-15 09:24   좋아요 1 | URL
저 동그라미는요.
풍수하시는 분들, 명당을 고집 하시느라 현실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풍수도 사람이 있고 나서 있는 거잖아요.
내용이 신선했다구요.^^


2017-06-14 22: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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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7-06-15 09:27   좋아요 1 | URL
일부러 챙겨서 하는 그런 거 말고요.
제 나이에 너무 없으면 또 궁상맞은 거 같고, ㅋ~.
바람이 드나들고 숨 쉴 수 있는 만큼이요.
몸도, 마음도~^^

나와같다면 2017-06-15 00:13   좋아요 0 | URL
명당을 고르지 못해 나쁜 땅에 부모를 모실 바에야

화장을 해서 안 좋은 기운이 미치지 않게 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있다

왜 죽음이나, 죽음 그 이후에 대한 부분이 나오면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지..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 읽어보고 싶네요..

양철나무꾼 2017-06-15 09:33   좋아요 0 | URL
사실 전 명당을 고르고 어쩌고 하는 것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한게 아니라,
산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동기감응론이란게 그런거잖아요.^^

만화책이라 술술 넘어가서 금방 읽으실 수 있을 듯~^^

단발머리 2017-06-15 08:09   좋아요 1 | URL
제목부터 딱 제 맘입니다.
더 더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ㅋㅋㅋㅋㅋ
쌓아놓으신 책탑 중에서는 <몸이 따뜻해야 몸이 산다>와 <로마의 일인자 1>이 눈길을 끄네요^^

2017-06-15 09: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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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5 09: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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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1 16: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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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2 09: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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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06-27 15:58   좋아요 0 | URL
역대 대통령의 선친 묘는 명당일까? 챕터 중에서
- 구미 상도동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의 선영은.... 조부 묘 하단에 있는 커다란 암석 덩어리가 후손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의 동작동 국립묘지의 터는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이 많은 곳이다. 한강 물길이 터를 감싸 주지 못하고 휘어져 돌아간 것이 풍수적으로 흉하다는 이유였다.

이 부분 읽고 놀라서 얼른 책 발행일을 봤어요 2015년 3월.. 최창조 교수님 학자로서 자신의 연구를 시대 분위기 상관없이 소신있게 쓰신점 멋있었어요..

2017-06-28 11: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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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선 408
안미옥 지음 / 창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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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Insure safety distance'로 바꾸었지만, 원래 내 서재의 타이틀 명은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나서다'였다.

있는지도, 실체도 알 수 없는 마음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쩌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대략 난감이 아니고, 대략 꿀꿀이었던 터여서,

'오즈의 마법사'의 '양철나무꾼'처럼 그렇게 찾아나서면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마음이란 것이 찾아나선다고 하여 찾을 수 있는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는 고사하고,

나를 객관화시킬 수 없는 데,

내 마음이란 것을 어디서, 어떻게 찾는다는 말인가?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꺽어 너의 곁에 두려 하지말고 가슴에 작은 둥지를 만들어 쉬고 날아갈 힘을 주어야 하리라.'라고 노래하던 서정윤의 시 한구절처럼,

곁에 둔다고 해서 '마음'의 실체를 찾게 되는 게 아니란걸 깨닫게 되었다.

마음이란 건 사랑과 마찬가지로 곁에, 가까이 있을수록 해치고 상처입힐 수도 있으니,

적절하게 밀어내고 끌어당기는 자기장처럼,

안전 거리를 확보할 필요가 있겠다, 는 것이 요즘의 깨달음이다.

 

이 시집의 제목만해도 그렇다.

제목은 '온'이라고 하여 '전부의, 모두의'라는 의미를 갖고 있겠지만,

1부부터 4부까지의 목차를 쭈욱 모아놨을때에야, '온'으로 읽힌다.

1부,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

2부, 어떤 기억력은 슬픈 것에만 작동한다,

3부, 무엇이 만들어질지 모를수록 좋았다,

4부, 부서지고 열리는 어린잎을 만져본다,

로 되어있다.

 

한때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나서다'고 했으니,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를 놓고 고민을 했던 것이 사실이고,

이 시집은 나의 그런 과거 마음을 엿보기라도 한듯,

시집 곳곳에 '마음'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시집 속의 '마음'은 '온'이라고 하여 '전부의, 모두의'라든지,

'진짜'라고 하여 모든 것을 아우르는 듯 여겨지지만,

자세히 시집을 읽다보면 'all or nothing'이고,

'진짜'이지만 동시에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런 허허로움은 꿈의 형태로 드러나고,

일기의 형태로 독백되어진다.

 

한 사람이 있는 정오

 

어항 속 물고기에게도 숨을 곳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낡은 소파가 필요하다

길고 긴 골목 끝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작고 빛나는 흰 돌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지나가려고 했다

자신이 하는 말이 어떤 말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진짜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반복이 우리를 자라게 할 수 있을까

진심을 들킬까봐 겁을 내면서

겁을 내는 것이 진심일까 걱정하면서

구름은 구부러지고 나무는 흘러간다

구하지 않아서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나는 구할 수도 없고 원할 수도 없었다

맨손이면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나는 더 어두워졌다

어리석은 촛대와 어리석은 고독

너와 동일한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오래 기도했지만

나는 영영 나의 마음일 스밖에 없겠지

찌르는 것

휘어감기는 것

자기 빼를 깎는 사람의 얼굴이 밝아 보였다

나는 지나가지 못했다

무릎이 깨지더라도 다시 넘어지는 무릎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

 

이 시를 읽으면서 언젠가 읽었던 마이클 코넬리의 '로스트 라이트'가 생각났다.
'로스트 라이트'는 이렇게 시작했었다.

"There is no end of things in the heart."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을 두고 '전부'나 '모두'라던가 '진짜'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한게 아닐까?

'끝'이 없고 '다함'이 없는 거,

그게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불 꺼진 고백

 

  너의 말이 진짜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에 마음이 간 적 없었다. 고요를 알기

위해선 나의 고요를 다 써버려야 한다고. 가두어둔 물. 멈

춰 있는 몸.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

  버티기 위해선 버틸 만한 곳이 필요했다. 눈동자가 흔들

릴 때. 몸은 더 크게 흔들린다. 중심을 잡기 위해 비틀리는

몸짓. 몸은 더 크게 흔들린다. 중심을 잡기 위해 비틀리는

몸짓. 거울이 나를 도와주진 않는다. 노크하기 직전의 마

음을. 울 수 없는 마음을. 나는 불 꺼진 창을 본다.

 

 

조언

 

  벽돌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림자를 빛으로 생각한 적

이 많다 어제의 날씨는 아주 오래전에 지나간 일 같고

 

  멀리 있는 단어들을 느닷없이 만나게 되는 날이 있다 적

도 생몰연도 부탁 비스킷 소원처럼

 

  누군가는 계속해서 문을 열어놓는다

 

  울퉁불퉁한 기침과 기울어진 위불 위

  노란색으로 된 달력을 갖게 될 때까지

  모과 냄새는 썪지 않는다 잠깐이라는 말을 모른디

 

  네가 붉은빛 금붕어의 얼굴로 듣고 있어서

  오늘은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동물원 퍼레이드 바이올린 두발자전거

  그림 속 개구리들이 점점 더 짙은 색으로 변하고

 

  큰 옷은 내일 입고 싶다고 말하게 될 때

  아프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지

 

  정면에는 흐르는 나무가 있다

  가끔은

  나를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벽돌을 매개로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 만들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모든 그림자 속엔 빛이 들어있다.

벽돌은 매개일 수 있지만,

빛과 그림자 사이에선 기준점일 수도 있다.

 

정면에 흐르는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나무를 바라보며,

나를 객관화시킬 수도 있고,

그래야 비로소...나를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다.

 

좋은 시들이 여럿 있었지만,

나는 '불 꺼진 고백'과 '조언'을 되풀이해서 읽었다.

 

그랬더니 마음은 쓸쓸해져 오는데,

알 수 없는 충만함으로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결국 쓸쓸함으로 충만해져서 어쩌지 못하겠고,

난 그런 마음을 잘 다독여, 느낌을 몇 자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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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7 2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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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 09: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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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1 03: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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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 09: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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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 15: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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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테치먼트'를 보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나온다.

또 내가 요즘 흠뻑 빠져 있는 '춘추전국이야기 2권'에 보면 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는 말이 나온다.

어느게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사람이 안 된 이들에게는 글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선현들의 충고가 떠오른다(354쪽)'고 해석하며 인용하는데,

비단 글에 국한된 문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춘추전국 이야기 2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8월

 

 

 디태치먼트
 토니 케이 감독, 마샤 게이 하든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4년 8월

 

 

'춘추전국이야기1'이 관중과 제나라 환공의 얘기였다면, 2권은 진나라 문공의 얘기다.

1권을 읽고 역사서가 이렇게 재밌어도 되냐고 설레발을 쳤던 나의 전적에 미루어,

2권도 겁나 재밌다고 해야겠지만,

2권은 그렇게 '겁나' 재밌지는 않았다.

왜 재미가 덜 한가 하고 나름 분석을 해봤더니,

역사는 흐르면서 되풀이 된다고,

1권에서 나왔던 환공과 관중의 얘기가,

2권에서 문공과 목공으로 인물들만 달리하여 펼쳐지고 있는데,

1권으로 미루어 2권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인물들이 다르고,

그들이 추구했던 이상이나 원칙도 다르지만,

큰 틀에서 보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일뿐이다.

2권 책머리에 보면,

관중은 적이 비도덕적일 때 쳤지만 이들은 적이 약해지면 쳤다.(15쪽)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그 시대 역사가 어떻게 펼쳐졌는지 모른다면,

환공과 관중이 도덕과 원칙을 앞에 둔 仁을 바탕으로 한 사람이고,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춘추전국이야기 1건과 2권을 읽은 사람, ㅋ~.

문공만 하더라도 아버지는 그에게 칼을 들이댔고,

동생은 군주가 되기 위해 외국에서 떠도는 그를 핍박했으며,

열국의 군주들과 심지어 첩까지도 그를 무시했었던 상황이었으니,

나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것이 다른 나라들보다 인구가 많지도 않았던 진이 강해진 이유이기도 한데,

변화하는 정세를 재빨리 간파하고 다른 나라들 보다 먼저 준비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말은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면 철저한 준비성, 시대의 조류를 읽는 예견력 따위로 얘기될 수 있겠지만,

일관되게 체제와 외교관계를 유지했던 관중과 비교하게 되면,

명분보다는 실리적이고 현실적이다.

책에 나오는 다른 말로 바꾸어 보면 권모술수에 능했다.

1권보다 '덜'이었던건 위 이유말고도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별주를 달아,

『국어』에 나오는 원문은 노래이기 때문에 해석하기 매우 어렵다...고 하면서,

~맞추기 위한 허사로 보인다...라고 하고 있다.

해석하기 매우 어려운걸 해석한 공은 알겠는데,

'~보인다'라는 추측을 독자에게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내용이 책의 흐름 상 꼭 들어가야할 부분도 아니고 말이다.

또 한군데,

'동주의 순마갱'이라는 제목의,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사진이 한장 등장하는데,

'그 밑에 개방하지 않아서 빗장 틈 사이로 어렵게 사진을 찍었다'(111쪽)고 한다.

사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지면을 할애해 놓고 할말은 아닌 것 같다.

말하자면 도촬인데, 너무 떳떳한거 아닌가?

또 한가지,

1권 때도 느낀 건데,

『국어』『사기』『춘추』『한비자』따위 여러 권의 책을 인용하면서 일관성이 없는데,

그렇다고 당신의 견해에 힘을 주어 얘기하느냐 하면,

자신감이 없다.

적어도 기존의 의견을 반대할땐 '그냥 그렇다', '그렇다 카더라'가 아닌,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할만한 의견을 제시했으면 좋겠다.

저런 책들이 후대에 만들어져 권력에 의해 입맛에 맞게 수정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까지를 감안하고 쓰여지고 읽혀지는 것이 역사서이리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청와대 인사도 있고,

그것과 관련하여 청문회도 있다.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인재는 항상 있기 때문에 군주는 배워서 인재를 식별할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자신과 원수를 진 사람은 물론 장애를 가진 사람까지 쓸 수 있어야 군주다. (330쪽)

1, 2권을 통틀어서 하는 얘기는,

환공과 관중이 도덕과 원칙을 앞에 둔 仁을 바탕으로 한 사람이고,

문공은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거다.

그렇지도 않은 사람이 패자에 머물 수 있었던 것은,

본바탕이 대단히 의로운 사람이라고 예단하긴 어렵지만,

끊임없이 반성하는 인물이었다는 데서 해답을 찾을 수 있겠다.

  

얼마전 누군가의 '노 룩 패스'와 관련하여, 썰전 유시민의 코멘트가 큰 울림을 준다.

 

보좌관과 국회의원의 관계는 장군과 장교의 관계와 비슷하다.

서로 계급과 역할이 다른거지 인격의 서열이 있는 것이 아니다.

'춘추전국이야기'를 가속도 붙여 읽을 자신도 없으면서,

이런 책을 간과하지 못하고 들였다.

 나의 첫 한문 공부
 공원국 지음 / 민음사 /

 2017년 5월

 

언제 읽게 될지 모르지만,

사놓으면 기분은 마냥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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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2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7-06-07 17:05   좋아요 0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한표를~^^

겨울호랑이 2017-06-02 18:38   좋아요 0 | URL
그래도 진 문공은 60살에 패자가 되기까지 오래 기다릴줄 안 인물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기는 인물인 것 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7-06-07 17:11   좋아요 1 | URL
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또 그렇네요.
지금은 100세, 120세 시대라고 하지만,
공자는 72세까지 살아 장수하였다고 하는 걸 보면 말예요.
그 시대에는 4, 50정도가 평균 수명이었을텐데,
60세까지 살아서 패자가 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면서 그렇게 갈고 닦은걸 보면,
범상한 인물은 아닌 듯.
춘추전국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 다 대단한 인물들이어서 나라를 달리하고, 기원전, 후를 넘나들며 회자되는 것 같습니다.^^

cyrus 2017-06-02 19:32   좋아요 0 | URL
선현들의 충고가 맞았습니다. 사람이 안 된 ‘닭‘이 글을 배우니까 비상식적인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양철나무꾼 2017-06-07 17:15   좋아요 1 | URL
며칠 전엔 재판 중 그림을 그리셨다죠~.
글은 배우면 안되다 하는데,
그림은 어찌해야 돼죠?^^

cyrus 2017-06-07 18:56   좋아요 0 | URL
닭의 아버지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닭은 아버지의 취미를 물려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닭이 그림을 그려봤자 얼마나 잘 그리겠습니까? ㅎㅎㅎ
 
단어의 배신 - 베테랑 번역가도 몰랐던 원어민의 영단어 사용법
박산호 지음 / 유유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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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산호 님은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박산호 님을  아는것 같다.

소싯적 장르소설을 즐겨 읽을 당시 로렌스블록, 마이클 코널리와 스튜어트 맥브라이드 등의 역자로 알게 되었고,

난해하다던 '콰이어트 걸'을 통해서 완전 애정하고 신뢰하게 되었다.

'페터 회'는 스밀라도 그랬지만, '콰이어트 걸'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역자가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행간의 뉘앙스까지 번역해 내지않는다면,

독자가 이해는 고사하고 읽기조차 쉽지 않은 책이었으니까 말이다.

(돌이켜 보면 완전 영광인데, 그때 내 리뷰에 뭐라고 비밀 댓글을 달아주시기도 했었다, ㅋ~.)

 

그렇게 역자 박산호 님과 나는 각자의 삶을 살아왔고,

단어의 배신이라는 이 책을 통해서 조우하게 된 셈이다.

 

실은 젊은 시절의 나는,

장르소설이 좋아도 너무 좋은데,

읽다보면 너무 날림인 번역들을 만나곤 해서,

'그렇다면 내가 번역을 해봐?'하는 허무 맹랑한 꿈을 꿨었던 터라,

'콰이어트 걸'의 탄탄한 번역이 참 좋았었고,

그런 역자에게 무한 애정을 가지고 신뢰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이 책에는 박산호 님이 그동안 번역하며 만난 단어중에 다양한 의미와 흥미로운 역사를 지닌 100개가 소개됐다.

다 알고있는 듯 여겨지는 단어였지만,

읽다보니 의미와 역사에 대해선 모르는 것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방식이 좋았던건 단어를 무조건 외우도록 소개하는게 아니라,

이해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단어와 뜻을 연결시켜서 설명하는 방법을 취한다.

하나의 뜻에서 꼬리를 물고 다른 뜻을 유추해낼 수 있도록,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연결을 한다.

그렇다고 수다스럽거나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 깔끔하다.

 

예를 들면 fix를 설명하면서,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속성 다이어트를 해야한다고 하면서 상황 속에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끼워넣는 식으로 말이다.

책의 내용은 한 단어에 한장을 할해해서 설명하고 적절한 예문을 나열하는 식으로 좋은데,

아쉬운 점이라면,

편집이라고 해야 할까,

단어를 배치하는 방식과 글씨체가 낯설다.

단어가 앞에 나오는게 아니라,

발음기호와 단어의 뜻이 나열되고,

본문 내용 중에 검은 원 안에 단어가 등장하는데,

그 단어가 또 멋을 부린 글씨체다.

 

영문을 보게 되면,

우리가 흔히 인쇄체와 필기체라고 알고 있는 글자들이 섞여 있다.

g나 y같은 것도 그렇지만 못 알아먹을 정도는 아닌데 s는 좀 심하다.

 

영문과 번역문에서 그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됐는지 확인 하기 쉽게,

그 단어를 돌출시키는 방법으로 필기체를 사용한 예문에 익숙했던 터라,

이 책에서도 그런건가 자꾸 쳐다보게 된다.

 

어찌 되었건 이렇게 얇고 가벼우면서도,

단어의 다양한 의미와 역사를 흥미롭게 써내려간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의 머릿말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인공지능이 번역 시스템에 도입된 시대에 우리가 갖춰야 할 것은 단어를 폭넓게 이해하는 능력이 아닐까? 세계 각국의 사람과 수월하게 의사소통하기 위해 영어 단어에 담긴 여러 갈래의 뜻을 음미하며 원서를 읽고 섬세하게 사유하며 고른 단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을 갖춘다면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힘이 될 것이다.(11쪽)

비단 외국어의 번역에만 국한된 건 아닌것 같다.

내가 내뱉는 말이나 쓰는 글들이 얼마나 상대방을 생각하고 배려한 것인가 라고 한다면,

글쎄다, 상대방 보다는 내 편할대로, 내 위주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에 있어선 외국어 능력도 중요하지만,

번역된 내용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서 제대로 된 국어실력도 중요하다.

 

그렇게 단어에 담긴 여러 갈래의 뜻을 음미하고,

섬세하게 사유하며 고른 단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번역을 하고 글을 썼는가는,

작품이 대신 말해주는 것이다.

부디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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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30 19:30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니까 제가 번역 관련 책을 한 번도 안 읽어봤어요. 그동안 제가 번역본 비교질했던 것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

양철나무꾼 2017-06-02 17:08   좋아요 0 | URL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cyrus님처럼 우리말을 구사하시는 분이라면,
번역본을 가지고 비교질 하는 거,
충분히 용서할 수 있습니다.
모든 언어는 궁극적으로 하나로 통하니까요~^^

나와같다면 2017-05-30 22:16   좋아요 0 | URL
fix.. 마음이 상했을때 콜드플레이 <Fix You> 를 들려줬던 사람이 생각나네요..
켜놓은 향초 때문인듯..

양철나무꾼 2017-06-02 17:13   좋아요 0 | URL
아, 이 노래 알아요.
기네스 팰트로랑 관련된 노래지요?

마음이 상했을때 ‘Fix You‘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옆에 ‘Fix‘해 놓으셔야죠.
‘들려줬던‘이란 과거형에 제 마음도 아립니다.
아마도 향초의 냄새가 여기까지 전해지는 듯 해서요~--;

서니데이 2017-05-31 23:11   좋아요 0 | URL
번역하는 분들은 외국어도 잘 해야하지만, 우리말 어휘도 많이 알아야 될 것 같아요.
이게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은데, 말로 옮겨지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요.^^
양철나무꾼님, 좋은하루되세요.^^

양철나무꾼 2017-06-02 17:15   좋아요 1 | URL
때로 그런 경우도 있잖아요.
상황을 말로 표현해 내려면 말문이 콱 막혀버리는 경우요.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도 나이가 드니까 어휘 수가 확 줄어드는것 같아요.
작은 사전이라도 하나 끼고 살아야 할까봐요~^^

AgalmA 2017-06-06 01:50   좋아요 0 | URL
저도 스밀라만큼 콰이어트걸 좋았는데 박산호 번역가님의 노고란 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양철나무꾼 2017-06-07 17:02   좋아요 0 | URL
전 아무래도 페터 화가 어려웠나 봐요.
수잔 이펙트인가, 새로운 작품이 나왔는데,
엄두가 안나는거 있죠~--;
 
당신의 자리 - 나무로 자라는 방법 아침달무늬 1
유희경 지음 / 아침달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때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두렵다.

아니 나이를 먹어가며 책을 읽는다는 것이 두려워진다.

좀 더 자세히 얘기를 해보자면 책이 내가 나이를 먹는 것보다 더디게 나이를 먹거나,

내가 책과 더불어 나이 들지 못하는 것이 두렵다고나 할까.

 

시인의 예전 시집이 참 좋았어서 새로운 시집이라 혹하였다.

'오늘 아침 단어'를 읽고 리뷰를 올린게(<==링크) 2011년 7월이니까 한 6년정도 됐는데,

시인은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인데, 나만 나이를 먹은 느낌이었다.

새로운 시집을 읽고 싶었는데,

예전 시집을 읽으면서 느꼈던 느낌이 치기어린 젊은날의 추억마냥 고스란히 살아나서 좀 당황했다.

 

그러다가 6개월도 아니고 6년인데,

나이를 먹고 생각이 여물어가고, 의 문제가 아니라도,

그때의 시나 지금의 시가 같게 느껴지면, 같은 느낌이 든다면,

그건 또 읽는 나만의 문제는 아니지 싶었다.

 

시집을 다 읽고,

지난 '오늘 아침 단어'의 리뷰를 찾아 읽다보니,

그 시집 속의 시랑 중복되는 시도 있고,

(제일 앞에 나오는 '당신의 자리' 같은거, ㅋ~.)

자주 사용하는 시어와,

생각의 자취들이 비슷해서 느낌이 비슷하다보니 그 시가 그 시 같은 것도 있었다.

 

나이 먹고, 여물고, 무르익고, 하지 않고,

6년 전에 머물며 청춘을 또는 젊음을 돌이킨다고 해도,

겉돌기는 마찬가지다.

 

시인에게 시가 얼마나 가볍거나 무거운 건지 잘 모르겠지만,

단어가 가진 제 각각의 무게를 가늠하고,

그에 맞춰 시를 썼으면 좋겠다.

 

이러구러한 시가 여럿 있었고,

난 이 시가 좋아 여러번 소리내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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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9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9 1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9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30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5-29 19:01   좋아요 2 | URL
시집을 맨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 몇 년 지나서 똑같은 시집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을 서로 비교하면 약간의 차이가 있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시에 대한 반응이 점점 달라져요. 과거에 눈여겨보지 않았던 시 한 편이 몇 년 지난 후에는 좋게 느껴질 수도 있고요. ^^

양철나무꾼 2017-05-30 17:36   좋아요 0 | URL
시집 뿐 아니라 모든 책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달리 읽히는것 같아요.
같은 책을 두고 나이 들어 읽으면 달리 읽히는 것으로 나이듦이나 성숙 따위를 점 칠 수 있을까요?

전 나이 먹어도 시집 한권 읽고, 시 한편 욀 수 있는 감수성은 갖고 싶은데,
어쩌면 죄다 까먹어 시 한편 욀 수 없는 날이 오는건 아닐까 두렵기도 합니다.

이 시집은 6년만의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라는데,
짜깁기를 해도 너무 했지 싶습니다.
그게 아쉬웠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