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책을 통 읽지 못했었다.
전에 읽은 책들에 이어서 쭈욱 진도를 빼지 못 하고 맥이 끊겨버리자,
고비를 넘지 못 하고 계속 버퍼링 중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중에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를 읽었다.
그가 쓴 '홍합'을 20대 후반에 접했었다.
책이 너무 비릿하여서 버거웠던 기억이 있기에,
그의 다른 책들을 잘 읽어낼 수 있을까 망설였고, 오늘에 이르렀다.
이 책의 원조 격인 '향연'이 좋다더라는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는 '꽃의 나라'를 읽기 전까지는 한창훈을 제대로 읽은게 아니라는 사람도 있었다.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라는 제목만 가지고 작법서쯤으로 생각, 못 읽고 넘어갈 뻔 했는데,
지금이라도 연이 닿아 읽은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내가 왜 이 책에 열광하고 이런 글들을 읽으며 살아야 하는지는 알겠다.
그는 글을 쓰는 것으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 아픈 이야기가 단 열두 줄에,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담겨 있는 거였다. 순간 가슴이 뛰었다. 이게 문학의 언어이구나. 이런 말로 써야 되는구나.
상황을 담담하게 전달하는 언어. 견디는 자세가 아픔을 더 크게 보여주듯이, 이를 악물고 웃음을 참는 자의 얼굴이 좌중의 웃음을 유발하듯이, 언어는 냉정하게 정돈된 거라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164쪽)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것이 진정한 문학이고, 문학의 언어라고 말들을 한다.
때로 말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미미하다 싶어,
말줄임표(ㆍㆍㆍㆍㆍㆍ)를 앞에 내세우고 공허한 웃음을 흩뿌리기도 하지만,
같은 단어를 두고 받아들이는 온도도 차이가 날 수도 있고,
웃음의 표정을 두고도 받아들이는 의미가 다를 수 있다.
그 무렵 텔레비전에서 배우 부부가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일부분을 본 것이라서 그 후 어떻게 펼쳐졌을지는 모르겠는데,
남자가 잔소리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는데,
여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식으로 묵묵히 참고 그냥 웃어버리는 것이었다.
희귀병을 앓았다니까 힘이 들때면 더 웃게 된다는 여자의 입장은 이해할 듯도 했지만,
화내지 않고 웃기만 하는 그녀에게 남편이 느꼈을 소외감과 답답함 또한 텔레비전 화면을 통하여 충분히 전해졌다.
그 연장선상이 되려나.
이 책에선 '안현미 시인'이 등장한다.
여러 쪽에 걸쳐서 등장하는 그 꼭지의 제목이 '오죽하면 시를'이다.
이 책을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되면,
훌륭한 작가들이 여러명 나오고,
한창훈의 가족이나 친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들도 여럿 소개되고는 있지만,
어떤 글이 좋은 글이라거나, 글을 어떻게 써야 한다는 말이 한번도 나오지는 않는다.
그는 삶을 담담히 읊조리듯 써내려가고 있고, 그걸 우리는 문학작품이라고 부를 뿐이다.
"시란 한마디로 뭐나."
"ㆍㆍㆍㆍㆍㆍ"
"친구도 없고 장난감도 변변찮은 시골 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신의 상처를 가지고 논다. 무릎이 까지면 자꾸 만져보고 딱지가 앉으면 그 딱지를 뜯어내며 혼자 논다. 시라는 게 바로 그것이다."
상처를 가지고 노는 것. 상처를 확인하고 상처에 집착하며 상처로 명상하며 상처로 의미를 획득하고 상처로 지경에 이르는 것. 내가 창작을 시작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였지만 선생의 그 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223쪽)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한창훈이 글을 쓰는 이유도 이와 다르진 않을 것이다.
소유하고 있는 물건과 주인의 품격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 이상의 자아는 없다는 것을 확인했던 것도 그 시절이었다.(123쪽)
입은 다물기 위해서 존재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 무심한 품위.(143쪽)
글을 쓴다는 것은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는 일일 것이다.
음악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고, 텔레비전 드라마나 예능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 감성의 본질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일상 생활에서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에서 왜 쓰는지 한구절도 알아차릴 수 없을지라도,
삶을 진솔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내 삶 또한 부풀어오르고 윤택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겨울이 깊어가자 눈이 잦았고 호수는 얼음을 뒤집어쓰고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공사 현장 일을 다녔다. 탯속 같은 눈길을 걸어 새벽 첫차를 탔고 밤 깊어 귀가할 때 다시 눈이 내렸다. 지금은 눈 내리는 호숫가에 머물고 있지만 세상 어느 곳인들 춥지 않은 곳 있겠는가. 더 살고 골똘히 궁리하다보면 살아가는 방법 한구석쯤은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리라.
그러고 보면 나는 세상을 좀 앞당겨 살아버렸는데 어쨌거나 젊음이 끝나기도 전에 늙음을 기웃거려보는 것이 소설가의 팔자라고 생각하는 게 그 이유이다. 그런 시간대를 지나면서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어오면 이렇게 대답한다.
"아름답게 늙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그런 나는 찾았을까?(165~166쪽)
'개그콘서트'를 보면 '고집불통'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거기 유행어가 '그건 난 모르겠고~'였다.
그 버전으루다가 한창훈이 왜 쓰는지 그건 난 모르겠고,
'왜 사냐건 웃지요.' 할 도리밖에~.
이 책의 표지 일러스트가 돋보인다.
책 중간에 나오는 따님 이름이 단하인걸로 봐서 그 '한단하'인가보다.
그림을 잘 그렸는지 못 그렸는지 판단할 깜냥은 아니어 주시고,
그림이 따뜻한 것이 책과 잘 어울린다.
좋다.
이쯤에서 접어야 하는데, 구구절절 사설이 길다.
'정미조'의 '개여울'이 듣고 싶은데,
왜 그런지 '그건 난 모르겠고~'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