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행동 심리 백과 - 1~3세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 아이 행동 이해하기
앤지 보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지식너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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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고 있다. 이제 막 11개월이 되었는데, 아이와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어 너무 괴롭다. 그래서 심지어 어쩔 땐 이런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아이가 많이도 필요 없고, 딱 다섯 가지만 부모에게 알려줄 수 있다면 좋을까하고 말이다. 먹고 싶을 때, 자고 싶을 때, 아플 때, 싸고 싶을 때 마지막으로 놀고 싶을 때.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상상이다. 스스로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리다. 그래서 부모는 모름지기 아이가 보내는 싸인 랭귀지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앤지 보스가 펴낸 내 아이가 보내는 비밀신호 205가지는 정말 유용한 정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물론, 모든 경우에 다 들어맞는 건 아니겠지만.

 

아이가 손발톱 깎는 걸 너무 싫어해서 항상 고민이다. 몸을 비틀고 난리 치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다. 오늘도 외출해서 분수대로 유인한 다음, 물줄기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서 간신히 깎을 수가 있었다. 손발톱을 제대로 깎아주지 않으면 언제 얼굴을 긁을지 몰라 항상 노심초사하고 있다. <아이 행동 심리 백과>의 저자는 그런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손발톱의 뿌리가 촉각계의 일부이기 때문에 아이가 감각 과잉의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아이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는 우리의 전략이 나쁘지 않다는 자부할 수 있지 않을까. 특정한 장난감에 집착하는 것(담요에 집착하는 만화 <스누피>의 라이너스가 바로 떠올랐다)도 비슷한 사례로, 억지로 타인과 공유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책은 말한다. 아직 다른 아이와 장난감을 공유할 기회가 없어서 몰랐지만 이 역시 유용한 정보라고 생각된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거나 할퀴고 긁는 증상에 담긴 의미를 설명해 주고, 그런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방법론도 제시한다. 보통 우리는 아이가 그럴 행동을 보일 경우에 대뜸 어디 아프거나 가려운 게 아닐까 추정해 보지만, 자기 조절력 저하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설명이 인상적이다. , 역시 육아는 단순한 느낌이나 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선행 경험과 정보를 바탕으로 구성된 대응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다시 느끼게 된다. 어쨌든 그런 행동 때문에 다치거나 얼굴에 상처가 생기거나 그러면 속이 상하는 건 부모로서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기 전에 예방해야 하지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아이의 행동이 번개 같아서 예방과 대처는 언제나 한 템포 느린 게 문제다.

 

우리 아이는 하지 않지만, 다른 아기들이 보이는 반응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했다. 사실 자신이 체험하지 못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가. 촉각 수용기가 예민한 친구들은 씻을 때 물방울이 튀기는 걸 무서워 한단다. 놀랍군. 우리 아이는 특히 소리에 예민해서, 저 멀리서 싸이렌 소리가 들려오거나 아파트 윗집에서 무언가 톡 하고 떨어지는 소리에도 자다가 깰 정도다. 차타고 이동하는 걸 싫어할 정도는 아니지만, 카시트 진득하게 앉아 있질 못한다. 그것도 전정 감각과 고유수용성 감각 적응 훈련이 필요해서일까. 아직 어려서 모르는 반응들도 많지만, 어떤 반응들은 크면서 생겨날 수도 있으니 <아이 행동 심리 백과>를 통해 습득한 지식들을 곧 유용하게 참조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요 앤지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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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꼬? 단비어린이 그림책 15
김인자 글, 한상언 그림 / 단비어린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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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자 씨가 글을 쓰고 한상언 씨가 그린 <누꼬?>는 어린이 그림책이다. 어른이라면 몇 분이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의 그런 그림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절로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떠올랐다. 너무 어려서 몇 살인지도 모를 그런 시절에, 할머니 댁의 평상에 앉아 할머니가 비벼 주시는 콩가루밥을 정신없이 받아먹던 바로 기억이 내가 가진 할머니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다. 정식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으신 우리 할머니의 한글쓰기는 이제 막 학교에서 글을 배우기 시작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은 그 모든 걸 다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 땐 그랬었다.

 

<누꼬>에는 인간이 체험하게 되는 생로병사 그리고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주인공 김입분(분명 이쁜이에서 유래한 이름일 것이다) 할머니는 척추가 휘셔서 키가 주셨다고 한다, 2cm. 김입분 할머니처럼 우리 할머니도 모으기 선수셨다. 지금은 돈을 써야 경제가 돌아간다고 다들 떠들어 대지만, 그 시절에는 아껴야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무장한 세대가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신문지 한 장,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할아버지 댁에 가보면, 안방의 한 구석에 잘 접힌 대로 차곡차곡 쌓여 가는 신문지 더미를 볼 수가 있었다.

 

그 시대를 산 여느 어머니/할머니처럼 우리 할머니도 살림의 선수셨다고 기억된다. 요즘에는 계량기가 없으면 양념 맛이 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항상 수치화된 정량보다 적당히버무린 손맛을 따라갈 수가 없는 것 같다. 고된 가사노동과 전투에 버금가는 육아 때문에 약을 입에 달고 사신 것도 김입분 할머니의 그것과 비슷하다. 약을 드시기 위해 위장을 보호하는 약을 따로 드셔야 한다는 사실을 아마 그 때 처음 알았나 보다. 감수성을 자극하는 텔레비전 드마라를 보면서 눈물지으시는 장면도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모르겠다. 김인자 작가는 어쩌면 우리 할머니를 관통하는 공통점들을 그러모아 이 그림책에 담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접할 때는 미처 몰랐는데, 동료가 한 번 스윽 보고서 김입분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나 보다라고 말했을 때, 마지막으로 우리 할머니와 똑같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 첫손주를 알아보시지 못해 집이라고 부르시던 마지막 기억이 났다. 늘 자식과 손주들의 끼니 걱정, 비가 오면 집에 물이 새지 않나 하는 걱정, 때가 되면 자식들의 월사금 걱정 같은 다양한 걱정거리들을 껴안고 사신 할머니 세대의 단면을 어린 손주의 시선으로 풀어낸 작가의 따스한 시선이 정말 오래 전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이제 아무 걱정 없는 세상에서 편하게 지내시길 바랄게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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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4-25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 Jr.를 위해서 동화도 읽기 시작하셨군요. ^^

레삭매냐 2015-04-30 09:11   좋아요 0 | URL
열심으로 읽고 있습니다 :>
 
공동묘지에 사는 남자
피터 S. 비글 지음, 정윤조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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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하도 공동묘지에 대한 기묘하고 무서운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서 그런지 공동묘지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공동묘지가 거주지에서 아주 멀찍하게 떨어진 곳에 있지 않은가. 미국이나 유럽에 갔을 적에 놀랐던 것 중의 하나는 공동묘지가 주택가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점이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라면 죽음을 생래적으로 거부하기 마련이지만, 죽음 또한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운명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 그런 것일까. 다시 한 번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생각해 본다.

 

1960523, 처음으로 세상의 빛을 본 <공동묘지에 사는 남자>는 피터 S. 비글 작가의 첫 번째 (판타지) 소설로, 이 작품의 주인공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자그마치 19년 동안이나 뉴욕 요크체스터의 어느 공동묘지에 사는 조너선 리벡이다. 그는 남부럽지 않은 약제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샌드위치 따위로 연명한다. 영화 <식스 센스>의 꼬맹이처럼 망자를 볼 수도 있고, 대화도 나눈다. 물론, 자신에게 먹거리를 물어다 주는 까마귀와도 대화가 가능하다. 뭐 이 정도면 판타지 소설로서 필요조건을 충족시킨다.

 

소설의 메인 캐릭터인 리벡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군이 등장한다. 변호사였던 부군 모리스를 잃은 클래퍼 부인, 누가 봐도 한눈에 반할 법한 미모의 아내 샌드라에게 독살당한 대학교수 출신의 마이클 모건, 염세주의자 로라 듀런드 그리고 묘지지기 캄포스에 이르기까지 각자 사연을 갖고 있는 조연들이 비글 작가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만드는 데 한몫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면면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살펴보자. 죽었지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남자 마이클은 사랑스러운 아내 샌드라가 쥐약으로 자신을 죽였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런데 변호사와 함께 묘지를 찾은 샌드라의 말을 들어 보면 그런 것만도 아닌 것처럼 들린다.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이 장면에서 문득 구로사와 아끼라 감독의 <라쇼몽>이 떠올랐다. 누구나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주관적 신념이야말로 삶의 원동력이 아니던가. 단편적 정보와 마이클의 주장대로, 샌드라가 마이클을 죽였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긋한 나이에 모리스의 미망인 클래퍼 부인과 썸을 타는 주인공 리벡은 또 어떤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세상을 등지고, 공동묘지를 자신의 안식처로 삼은 산 사람의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판타지적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 자신의 결점을 충분히 알고 있는 리벡은 클래퍼 부인에게 끌려 자신의 상태를 고백하고 만다. 그것이 과연 사랑의 관문에 이제 막 들어서려는 한 남자의 실수였을까?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카니발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사이드킥으로 흉조의 상징인 까마귀가 풀어놓는 독설은 또 어떤가. 변변한 이름 하나 없는 까마귀는 뉴욕의 상공을 배회하며, 리벡에게 먹이를 공급하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뉴스를 전달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자처한다. 외부와 격리된 그들에게 샌드라의 재판에 대한 정보는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과연 샌드라는 마이클을 죽였을까?

 

<공동묘지에 사는 남자>의 원제는 <A Fine and Private Place>. 좋고 사적인 장소라는 뜻인데, 의외로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공동묘지는 예상대로 죽음과 사랑, 갈등, 질투 같은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들의 집합소라는 느낌이 들었다. 리벡 씨가 새로 사귄 친구인 거트루드 클래퍼 부인은 한 때 뉴욕의 약제사, 아니 주술사로 불리던 그가 공동묘지 생활을 접고 다시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고 거의 강권하다시피 주장한다. 사실 이 소설의 고갱이는 리벡 씨의 귀환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될 것인가가 핵심이다. 그는 혼잣말로 세상이 품위를 갖추게 되면 돌아가겠노라고 말하지만, 언제 세상이 제대로 품위를 갖춘 적이 있었던가. 마이클의 죽음에 대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소설은 클라이막스로 치닫기 시작한다. 대학 교수였던 마이클은 점점 더 염세적인 경향을 띠기 시작하고, 그동안 자신이 사랑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모두 부질없는 사실이었노라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 그렇다면 피터 S. 비글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소설에 따르면 죽음은 우리가 그렇게 두려워하는 만큼 두려워할 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본다면 에피쿠로스학파의 사상처럼 현재를 충분히 즐기면서 사는 게 이승의 복락이라는 주장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다양한 철학적 질문들과 만나기도 하고,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하는 대화들을 만나기도 했다. 망자들에게도 사랑과 질투 같은 감정이 허용된다는 설정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잊히고 싶지 않다는 갈망이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가 있었다.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바로 그런 점에서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표현이 절절하게 다가온 모양이다.

 

리벡 씨가 과연 세상에 나가서 재활에 성공했는지 궁금하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인다면, 클래퍼 부인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다시 뉴욕을 주름잡는 주술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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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
단 T. 셀베리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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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의 이분법을 아직도 믿고 있나. 나에게는 선일 수도 있는 부분들이, 상대방에게는 절대악으로 비출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스웨덴 출신의 단 T 셀베리의 국제 첩보형 SF 스릴러 모나 (Mona)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나는 먼저 첫 페이지를 읽기 전에 스웨덴 말로 쓰인 원서 대신 영역본을 중역했다는 출판사의 설명에서 여전이 영미문학에 편향될 수밖에 없는 우리 출판계의 상황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여전히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을 선(이스라엘)과 악(헤즈볼라/하마스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서구인들의 이분법적 세계관에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비무장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에게 잠정적 테러리스트라는 이유로 최첨단 미사일 공격을 하는 이스라엘의 편을 들어줄 수는 없지 않은가.

 

소설 <모나>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 중의 하나는 복수를 위해 바이러스 공격을 준비하는 천재해커의 타깃이 바로 금융권이라는 사실이다. 천재해커를 후원하는 그룹이 이란과 사우디 오일머니를 가진 거부들이라는 사실은 911 테러의 케이스를 알고 있는 현재로서는 놀랍지도 않다. 모사드 그룹의 리더가 말하는 대로 보이는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무형의 적을 상대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종래의 전쟁이 정치군사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면, 21세기의 새로운 전쟁은 정치군사 위에 서 있는 경제/금융이라는 보다 명확한 표적지를 갖게 된 셈이다. 정치에서도 항상 경제 살리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프로파간다는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오지 않았나.

 

소설 <모나>의 핵심 스토리라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억울하게 죽은 아내 나딤과 딸 모나의 복수를 위해 자신이 가진 세계적 IT 기술을 이용해 변화무쌍하고 대항할만한 안티바이러스조차 존재하지 않는 슈퍼바이러스인 모나를 창조해낸 사미르 무스타프의 이야기다. 복수의 근간에는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해묵은 갈등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다른 하나는 마인드 서프라는 BCI(대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채용한 최첨단 기술을 개발한 스웨덴 출신의 주인공 에리크 쇠데르크비스트가 사랑하는 자신의 아내 한나를 구하기 위해 모나 바이러스의 창조자 사미르를 추적하는 일련의 이야기들이다. 단 T 셀베리 작가는 복수와 사랑이라는 전통적 주제에 세계의 화약고 중동세계의 갈등, 그리고 미국의 FBI를 능가한다는 이스라엘의 악명 높은 비밀 첩보 조직 모사드까지 동원한 그야말로 스펙터클 첩보 스릴러를 만들어냈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두 아이팟 카우보이들의 대결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출발해서 프랑스 니스를 거쳐, 천년왕국의 실제적인 수도 텔아비브 그리고 가자 지구의 칸 유니스를 아우르는 세계적 스케일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앗아간 이스라엘에 대한 복수를 알라에게 맹세한 사미르가 서방세계를 공격하는 창이라면, 어떤 특별한 군사훈련도 받지 못한 평범한 기술자 에리크는 방패로 슈퍼바이러스 모나를 막는 최전방에 나선다. 사미르가 실수로 니스에서 남긴 단서를 바탕으로, 그의 흔적을 추적해 접촉하는데 성공한 에리크는 절박한 심정으로 사미르와 접촉하기에 이른다. 슈퍼히어로 같이 선을 위해 싸우는 무적의 캐릭터가 아닌, 고뇌하고 갈등하는 인간군상에 대한 초상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서로 다른 길에 서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다는 절박함에서 두 카우보이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야기 구조를 더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단 T 셀베리는 모사드의 비밀 특수요원 라헬 파포와 이스라엘 권부의 핵심에서 헤즈볼라의 끄나풀로 활동하는 '시논'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도 개발해냈다. 라헬 파포는 두바이 작전에서 이스라엘의 파멸을 목표로 한 모종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최초의 단서를 잡아내며 화려하게 등장하는데, 이후 이스라엘에 도착한 에리크를 도와 거의 성공할 뻔한 헤즈볼라의 공격을 막는데 수훈을 세운다. 트로이 목마에서 유래한 암호명 시논의 활약은 더욱 눈부시다. 외부의 공격만으로 이스라엘 국가를 전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헤즈볼라 조직은 이스라엘 최고권부에 시논이라는 이름의 스파이를 배치해서, 국가의 향방을 좌우할 수 있는 결정에 대한 사전정보를 가지고 대응전략을 구사한다. 이 둘은 <모나>의 속편에 해당하는 <시논>에도 등장할 정도로 단 T 셀베리 작가가 애착을 가진 캐릭터가 아닐까 추정해 본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소설 <모나>는 무엇이 선과 악인지 독자에게 묻는다. 이스라엘 집속 폭탄으로 억울하게 죽은 한 남자의 복수를 악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어쩌면 자신이 개발에 몰두했던 마인드 서프의 성공에 빠져, 아내 한나를 위험에 몰아넣은 것이야말로 주인공 에리크의 치명적인 실수가 아니었을까. 확실하지 않은 가설을 가지고, 모나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찾을 것이 아니라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를 곁에서 간호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선택이 아닐까. 물론 에리크가 그런 선택을 했다면, 소설의 전개는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겠지 말이다. 인간사가 그렇듯, 소설 속의 주인공들 역시 명확하지 않은 선과 악의 경계에서 위태로운 곡예를 펼쳐 보인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에리크와 사미르는 입체적 캐릭터에 도달하는데 성공한다.

 

소설 <모나>는 스릴러 독자들이 원하는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세계적으로 창궐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비롯해서, 비밀 첩보조직 모사드, 컴퓨터와 대뇌 사이의 인터페이스, 컴퓨터 바이러스에서 기원해서 생명을 위협하는 돌연변이 생체 바이러스, 억울하게 죽은 아내와 딸의 복수, 사랑하는 아내를 살려야 하는 절박함에 내몰려 세계를 누비는 천재과학자 등 이 정도면 블럭버스터급 할리우드 영화는 찜 쪄 먹을 정도의 스케일이 아니던가. 어쩌면 단 T 셀베리는 본 시리즈 같은 연작을 염두에 두고 시리즈(혹은 영화화)를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아랍권에 대한 부정적인 서구세계의 시선이 곳곳에 담긴 것 같아 조금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곧 출간 예정이라는 <시논>과의 재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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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4-14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유럽 스릴러 분야의 책은 우리나라에 나오는 경우가 드문 편인데 출판사가 엄청난 시도를 했군요.
 
비비안 마이어 : 나는 카메라다 비비안 마이어 시리즈
비비안 마이어 지음, 박여진 옮김 / 윌북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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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흑백사진 찍고 현상과 인화하는 법을 배웠다. 아주 오래 전부터 배우고 싶던 거라 그런지 그 과정이 너무 재밌었다. 그런데 그 시절은 이제 막 디지털 카메라가 도입되어 기존의 습식 현상기법과 이제 곧 세상을 바꿀 건식 현상기법의 대결이 막 시작된 터였다. 그리고 후자의 완벽한 승리로 귀결된 것이 오늘의 모습이다. 예전 사진 현상 인화의 단점 중의 하나는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사진의 기초 재료인 필름은 가격이 비쌌고, 암실을 갖추지 못했다면 현상과 인화는 하는 수 없이 DP점에 맡겨야 했다. 그러니 돈이 많을 들 수밖에. 암실이 있는 학교를 찾아다니며 눈칫밥을 먹어가며 어렵게 찍은 필름을 현상하던 시절이 비비안 마이어의 책을 보며 오롯하게 피어올랐다.

 

전혀 알지 못했던 미국 출신의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의 이름은 엉뚱하게도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우리나라에 아직 개봉은 하지 않았지만, 외신을 통해 무명의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를 다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호기심은 이 책에까지 도달하게 됐다. 모름지기 시대는 앞서 나가는 존재를 알아주지 않는 법이다. 비비안 마이어는 생전에 보모로 일했으며 자신의 아티스트 삶에 대해서는 비밀에 부쳤다고 한다. 다른 무명의 아티스트들처럼 그녀 역시 사후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으니 그 또한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비안 마이어는 죽으면서 현상도 안한 어마어마한 양의 필름 네거티브를 남겼다고 하는데, 죽을 즈음엔 거의 노숙자나 다름없었다고 했던가. 사진첩을 보니, 심지어 현금으로 바꾸지 않은 체크(수표)도 있었다고 한다. 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사진들을 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 특히 뉴욕과 시카고[Chicagoland]이라는 도시와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가 있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그저 그런 일상이겠지만, 그것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가 반세기 정도 지난 다음에 보게 되면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진 것들에 대한 회상과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인 융합작용을 일으키면서 기묘한 감상을 자아내는 게 아닌가 싶다. 그녀가 주로 다룬 뉴욕에도 몇 번 가봤지만, 그녀가 사진을 찍던 시절의 그것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조금은 놀랐다. 모름지기 사람의 모습이 세월의 풍상에 따라 바뀌듯 그 사람이 사는 도시의 모습 역시 변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비안 마이어가 사진을 찍던 시절은 1950년대, 1960년대는 이미 칼라사진이 일반화된 시절이었는데 우리의 주인공은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를 목에 걸고 흑백사진을 고집했다. 그런데 흑백사진을 찍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흑백사진 고유의 콘트라스트가 주는 아우라는 칼라사진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며, 하물며 요즘 디지털 사진의 그것과도 격이 다르다. 사진이라 하면 모름지기 빛이 창조해내는 예술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앞에 살던 선구자였던 비비안 마이어는 그 점에 주목했으리라. 그녀 사진의 특징 중의 하나는 셀프 포트레이트가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아마 피사계 심도 조작에 정통했는지 요즘처럼 자동초점도 아닌 수동카메라를 조작해서 흐트러지지 않는 멋진 셀프 포트레이트 사진을 찍었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초반에 프랑스에서 찍었다는 사진도 있지만, 비비안 마이어 카메라의 대상은 미국과 미국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아이들의 워나비 캐릭터인 미키마우스 모자를 쓰고 천진하게 웃는 흑인 꼬마의 얼굴, 뉴욕의 마천루에서 철근을 나르는 인부의 고단한 모습, 플로리다 해변가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일상의 모습, 삶에 고단함 혹은 실연에 지친 어느 아가씨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삶의 매순간 벌어지는 각양각색의 모습을 비비안 마이어는 카메라에 담았다. 물론 오드리 헵번이 등장하는 극장의 프리미어 사진도 있지만, 너무 급하게 찍어서 그런지 많이 흔들렸다. 사진이 갖는 기록성이라는 점에서 감안한다면 그 정도의 실수는 눈감아 줄 수 있지 않을까.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에 실린 사진들을 보면 대부분 장소와 시간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진도 많이 실려 있다. 그런 사진들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도대체 이 사진은 어디에서 찍었을까? 보통 사진을 찍을 때, 스냅샷이라고 하더라도 피사체 특히 사람이 카메라 렌즈를 의식하지 않게 하라고 들었는데 그녀가 찍은 많은 사진들을 보면 사진 속의 인물들은 대놓고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탤런트 릴리스(Talent release)라는 서류도 사전에 받으라고 했는데, 그 시절에는 아마 그런 게 없었던 모양이다. 초상권과 저작권 혹은 퍼블리시티권이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그야말로 사진가에게는 엘도라도 같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오는 4월 30일, 그녀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가 개봉한다고 한다.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비비안 마이어가 남긴 필름을 두고, 2007년 처음으로 그녀의 작품을 세상에 알린 부동산 중개업자이자 길거리 사진가인 존 말루프(경매에서380달러에 필름들을 사들였다고 한다,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의 연출가이기도 하다)와 마이어 연구가라는 데이비드 딜이 수백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비비안 마이어 사진의 소유권 분쟁 중이라고 한다. 2009년 비비안 마이어가 죽고 나서 그녀의 사진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뒤에야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선 모습이 석연치 않지만, 이 소송 역시 베일에 감춰진 작가의 신화를 알리는데 단단히 한 몫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녀가 남긴 15만 장이나 되는 사진 중에 엄선했다고 하지만 235점의 사진만으로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하기는 부족한 점이 없지 않지만, 세상에서 잊힐 뻔한 사진작가의 발견이라는 차원에서 충분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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