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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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장소를 알 수 없는 곳에 한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 마치 지구 멸망의 날을 겪은 것 같은 그 곳에서 그 둘은 살아남기 위해 따뜻할 거라고 생각되는 남쪽 바닷가로 향한다. 그 둘은 단 한 번도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자식과 부모의 관계만큼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역설적으로 철저하게 익명성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물자들은 하나도 없다. 도대체 소설이 시작되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 <로드>의 저자 코맥 매카시는 독자들에게 어떤 유추를 해낼만한 그 어떠한 정보도 허락하지 않는다.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온 세상이 잿빛으로 가득하고, 사방에 죽음이 널려 있다는 것 정도다. 어쩌면 그렇게 저자의 의도대로 책을 읽는 이들은, 그런 인과관계보다 아버지와 아들의 생존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의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아버지는 사방을 경계하고, 유사 이래 모든 아버지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생존 게임에 나선다. 연명을 위한 식량 확보와 가족의 안전이라는 대의명분 앞에 이 부자(父子)의 일상적인 약탈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그리고 역시 자신들의 운명이 어떤 식으로 결정이 되리라고 예상하고 있는 어린 아들에 대해 계속해서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불어 넣어준다. 죽음을 꿈꾸는 이가 역설적으로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외부로부터 얻고 싶어 하는 생존에 필요한 물자와 식량 외에는 모두가 적대적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노인도, 그리고 자신의 아들 또래의 사내아이도 모두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잠정적인 위험요소들이다. 물론 총과 칼 혹은 원시적인 화살로 무장한 이들이 끊임없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식량과 보잘 것 없는 물건들을 노리고 있다. 내부는 안전하고, 외부는 위험하다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이 이분법적 사고는 오늘날을 사는 미국인들의 그것을 닮아 보인다. 9-11이라는 전대미문의 충격에 깜짝 놀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감정적인 대응 말이다.

삶 가운데 행운과 불운이 교차하듯이 생명의 위협을 당하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우연히 음식과 각종 물자로 가득 찬 벙커를 발견하고 부자는 호사를 누리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위험하다고 말을 하면서 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아버지. 왜 이 소설에서 여성성은 제거되고, 남자들만이 등장할게 되었을까? 아마 아버지와 동등한 발언권을 가진 어머니가 존재했더라면 갈등은 더 심화되고 이야기는 복잡하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가부장적 시스템’은 노인과 자기 또래의 소년에 대한 인도적인 아들의 발언들에 대해 어떠한 여지도 남겨 두지 않는다. 아버지가 말하면, 아들은 따라야만 하다. 왜? 늘 그래왔으니까.

어쩌면 저자 코맥 매카시는 소설 <로드>를 통해, 인간의 최소한의 존엄성마저 무시된 세상의 끝에서 오늘날의 디스토피아를 말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다. 문제의 해결이나 갈등의 해소를 위한 대화는 부재한 가운데, 일방적인 의사소통만이 넘쳐흐르는 현재의 모습은 오로지 생존을 위해 약육강식 같은 삶의 전쟁터에서 먹고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으로 보이는 <로드>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의 초상이다. 이 소설이 현재, 코엔 형제의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이어 다시 영화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자꾸만 윌 스미스가 주인공을 맡았던 영화 <나는 전설이다>와 <행복을 찾아서>의 이미지들이 중첩되는지 모르겠다.

사족으로 카피에 ‘<성서>에 비견되었던 소설’이라고 하는데, 뭐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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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에센스] 서평단 알림
경제학 에센스
한진수 지음 / 더난출판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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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하면 고리타분하고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부터 드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런데 오늘 읽은 한진수 교수가 쓴 <경제학 에센스>는 나의 그런 고정관념을 뒤흔들어 주었다. 경제학이, 아니 우리네 실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 적절한 비유와 친절하면서도 쉬운 설명이 그야말로 머리에 쏙쏙 들어와 박히는 느낌이었다.

우선 가장 먼저 편익, 기회비용 그리고 최대 효용의 개념들을 초반부터 확실하게 이해할 수가 있게 되었다. 무언가 배웠다면 바로 현실에 적용해 볼 일이다. 우선 이 책 <경제학 에센스>를 읽는데 든 기회비용은 무엇일까. 책을 구매하는데 든 금전적인 비용이 있을 것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책을 읽는데 든 시간이라는 무형의 재화일 것이다. 물론 책을 읽는 시간 동안에 다른 일들도 가능했을 것이다. 밤에 조금 더 잘 수가 있었을 것이며, 출퇴근 시간의 만원전철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했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러저러한 기회비용에 비해, 이 책을 읽은 후에 나에게 발생하는 편익은 어떤 것일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바로 합리적인 선택을 좀 더 할 수 있게 되었다라는 나의 생각이다. 21세기 주체적인 소비자로서, 생산자들에게 내가 가진 소비자잉여를 빼앗기지 않고(혹은 착취당하지 않고) 보다 적절한 정보들을 취합해서 개인의 상황과 능력에 맞는 합리적인 선택 궁극적으로는 소비하는 법을 배웠다는 편익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이 책에는 우리 현실세계에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흔하디흔한 예화들을 통해 복잡한 경제학 이론들을 아주 쉽게 풀이해 주고 있다. 하나의 예로, 학교 근처에 짜장면 집에서 일반과 학생에 대한 가격차별화가 등장한다. 이는 또한 탄력성의 개념과도 연관이 되어 있는데 짜장면과 같이 수요가 가격에 민감한 탄력적인 상품에는 소비자들이 가격인상에 예민하다는 게, 저간의 사정을 돌아볼 때 누구나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매몰비용을 설명하면서 든 미국의 베트남전 예화 또한 백미이다. 사실 미국은 아무런 명분도 없이 프랑스의 뒤를 이어 개입하게 된 베트남전에서 국내외의 반대와 천문학적으로 치솟는 전비(戰費) 그리고 사상자수에도 불구하고 확전에 확전을 거듭했다. 초기에 투자비를 매몰비용으로 생각하고 베트남에서 손을 뗐다면, 결국 전쟁에서 참패하지 않고 명예로운 철군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교훈에서 미국이 잘 배웠다면 현재 이라크라는 수렁에 다시 빠져 있지 않았을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 1941년 테드 윌리엄스 이래 4할 타자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 대한 경제학적 설명 또한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다. 선발 투수가 한 번 등판을 하면 이기건 지건 간에 한 경기를 모두 책임지던 60년 전과는 달리 현대야구에서는 선발투수, 중간계투, 원포인트 릴리프 그리고 마무리 투수에 이르기까지 전문적인 분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그만큼 타자들의 근력강화 프로그램 그리고 타구의 비거리가 늘어난 보다 강한 야구 배트가 나오긴 했지만 투수들이 타자들에 비해 비교우위에 서 있기 때문에 더 이상 4할 타자의 등장이 요원해졌다는 분석은 그야말로 무릎을 탁 칠 정도였다.

이 책을 다 읽는데 모두 해서 3일이라는 시간적 기회비용이 소요되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효용이라고 얻게 된 편익은 너무나 값진 것 같다. 책 표지에 나오는 카피대로 복잡한 세상 가운데, 쿨(cool)한 선택을 하기 위한 너무 멋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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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오드리!
로빈 벤웨이 지음, 박슬라 옮김 / 아일랜드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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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16살 난 오드리. 그녀에게 특별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여느 또래들처럼 같이 학교에 다니고 쇼핑몰의 아이스크림 매장에서 알바를 뛰는 지극히 평범한 여학생이다. 굳이 남들과 다른 점을 찾는다면, 음악에 대해 조예가 거의 마니아급이라는 것 정도? 아 하나 더, 그리고 언젠가 오버 그라운드를 꿈꾸며 밴드활동을 하는 남친이 있다. 바로 이 중요한 포인트가 바로 이 책 <잠깐만, 오드리!>의 시발점이 된다.

자신보다는 오로지 음악에만 매달려 사는 남친 에반에 대해 오드리는 이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절교를 선언한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실연을 당한 에반은 이 실연을 소재로 해서 노래 <잠깐만, 오드리!>를 만들고, 그가 이끄는 밴드 ‘두 구더스’는 그야말로 대박을 친다. 사방에서 <잠깐만, 오드리!>가 들려오고, 보통의 삶을 원했던 오드리는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일반적인 칙릿 소설 같기도 하지만, <잠깐만, 오드리!>에는 얼핏 보면 그냥 무심코 넘기기에는 심오한 주제들이 많은 것 같다. 일단, ‘두 구더스’로 대변되는 음악 산업계의 일면이 그 하나이다. 팝차트 정상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어느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기타를 뜯고, 드럼을 두들겨 대는 밴드의 자화상이 보인다. 대중음악이라는 것은 결국 팬들의 관심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 아닌가. 거대한 소비 시스템 하에서 움직이고 길들여지는 주인공들이 어떻게 보면 체스 판의 말과도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밴드들은 대중이 좋아할만한 노래들을 만들기 위해 고심을 하고, 대중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소비한다. 소비의 통로는 정말 다양하다. 우리나라에 싸이월드에 해당하는 마이스페이스가 그들의 주요 홍보매체가 되고, 메신저과 핸드폰은 그런 음악 상품들을 계속해서 확대 생산하는데 있어서 한몫하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아주 일상화가 되어 버린 파파라치들은 확실하게 “뜬” 대중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사진을 찍어서 대중들에게 전달한다. 이런 상황들은 너무나 복잡해서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이 되었는지조차 헷갈릴 지경이다.

한편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가정의 중요성은 어김없이 다시 한 번 등장해서 오드리를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새로 사귄 남친과 다투고 절친 빅토리아와도 대판 붙어서 그야말로 어디에 마음 둘 데 없는 오드리의 최후의 보루는 결국 아빠와 엄마 그리고 뚱뚱한 애완고양이 벤도몰레나가 지키는 홈 스윗 홈(home sweet home)인 것이다.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이 소설에서도 헤어진 남자 친구가 만든 노래 때문에 일상의 삶이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그런 사건(!!!)이 없었더라면 이 소설이 쓰일 일도 없었을 것 아닌가. 자신은 앵무새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은근 콘서트 장에서 VIP 대접을 받고, 백스테이지를 마음대로 드나드는 그런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특권을 마냥 즐기지 않았던가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전히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놓여 있는 그 넓은 태평양 바다만큼의 거리감이 느껴졌다. 자유로운 그네들 미국의 십대들의 삶은 역시나 입시지옥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네 그것과는 메울 수 없는 괴리감이 느껴졌다. 각 장의 부제처럼 달려 있는 팝송들 또한 예전 같았으면 모두 꿰고 있었을 테지만, 팝송에 대한 미련을 던 지금으로서는 낯설기만 했다. 물론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밴드의 곡들도 있어서 반갑기도 했지만, 대개의 경우 거의 모르는 밴드들이 많았다. 이런 노래들에 대해서 더 많은 정보들을 알고 있었다면 소설을 읽으면서 좀 더 이해가 잘 되었으련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X세대, Y세도 아닌 아이팟, 메신저와 마이스페이스로 무장한 새로운 Z세대의 삶을 관통하는 즐거움이 있는 <잠깐만, 오드리!>의 세계에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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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5
마이크 마퀴스 지음, 김백리 옮김 / 실천문학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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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출신의 마이크 마퀴스가 쓴 <밥 딜런 평전>의 원제는 <자유의 종소리: 밥 딜런 예술의 정치학>이다. 1960년 초반 포크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당시의 치열했던 시대정신을 노래했던 밥 딜런에 대한 헌정사라고 할 수가 있겠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 세계를 제패한 미국의 팍스 아메리카나가 위세를 떨쳤던 50년대가 지나고 60년대로 접어들면서 미국 사회는 내외의 많은 문제점들로 그야말로 폭발 일보 직전에 있었다. 우선 흑인들이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시작된 공민권 투쟁으로 대표되는 내부문제들과 외부적으로는 바로 미국의 앞마당이라 불리던 쿠바에서 카스트로의 혁명으로 촉발된 미사일 위기와 점점 수렁으로 빠져 들고 있던 베트남전의 확대는 물질적 풍요로 가득했던 미국 사회에 일대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 미국 사회는 물질적으로는 더 이상 바랄게 없을 정도의 풍족했지만, 평등에 기초한 공존과 반전을 요구하는 청년들의 이상주의는 보수적인 기존 질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상황이었다. 소위 말하는 베이비붐 세대들이 제도사회권으로 진입하게 되면서 그들의 부모세대들과는 전혀 다른 생활 패턴과 사고방식으로 인한 갈등은 필연적이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 가운데, 미네소타 히빙 출신의 유태계 출신 밥 딜런(이 사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알게 됐다)이라는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는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쿠스틱 포크기타와 현실에 기초한 가사로 무장한 약관의 예의 싱어 송라이터는 말랑말랑한 팝송들이 판을 치고 있던 세태에 일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때 빚어진 반항아적이면서 구시대의 권위에 도전하는 그의 이미지는 그 후 밥 딜런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물론 그가 작가가 말한 대로 저항그룹들과 명백하게 선을 그으면서 변절을 한 후에도 말이다.

밥 딜런이 자신의 최전성기를 달리던 1962~7년 동안 지금까지도 많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커버가 되는 그야말로 주옥같은 명곡들을 연달아 히트시킨다. 모든 아티스트들이 그렇겠지만, 팬들의 인기를 염두에 두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음악을 만들고 싶은 아티스트로서의 진정성 사이에서 고민하던 밥 딜런은, 1965년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주었던 뉴포트 포크페스티벌에서 종래의 어쿠스틱 기타 대신 전자 기타를 들면서 팬들을 경악시키기에 이른다. 진보진영으로부터는 ‘자본주의화’되었다는 혹평을 받는 수모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1960년대 음악계에 한 획을 그었던 우드스톡 페스티벌에도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저항정신의 아이콘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이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음악도 모두 상업화시켜 버리는 음반업계의 생태를 알고 있었던 밥 딜런은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음악을 추구할 수 있게 된 다음부터는 자신만의 길을 방법을 선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런 자신의 음악적 시도들이 팬들로부터 다양한 반응을 받은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선배 우디 거스리로부터 다양한 영향을 받은 밥 딜런은 동시대의 필 옥스와 같이 정치적 성향이 강한 노래들을 발표한 아티스트들과 서로 상호교류를 통해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 갔다. 그 후 70년대 초반 등장한 미국 노동자 계층의 영웅이라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들이 책의 후반부에서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제목이 왜 <밥 딜런 평전>이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사실 책을 읽어 보면 알게 되겠지만, 밥 딜런의 평전 같은 성격보다는 밥 딜런이 전성기를 누리던 1960년대 음악계 전반에 걸친 작가의 통찰이 돋보이는 보고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전부터 팝송을 즐겨 들었지만, 왠지 포크하면 노친네들이 부르는 진부한 노래라고만 생각을 하고 아예 귀를 닫았던 적이 있었다. 이 책 <밥 딜런 평전>을 읽으면서 예전엔 일부러 듣지 않던 밥 딜런의 노래들을 구해서 듣게 됐다. 시대가 변하면 사람도 바뀐다고 했던가. 하지만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은 오늘날에도 당시 시대정신을 노래했던 밥 딜런의 노래들이 새로운 커버 버전으로 해서 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걸 보면 진정성에 기반한 예술의 불멸성이 새삼 느껴졌다.

*** 내가 찾은 오탈자
1. 케네디 대통령 -> 로버트 케네디 대통령 후보 (224페이지)
2. 아티스 -> 아티스트 (233페이지)
3. Yours -> Your (27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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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에 입맞춤을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9
에펠리 하우오파 지음, 서남희 옮김 / 들녘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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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리 하우오파.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이 책 <엉덩이에 입맞춤을>을 쓴 통가 출신의 인류학자이자 작가이다. 1939년 통가 출신의 선교사 부모님 슬하에서 파푸아 뉴기니에서 태어났다. 뉴기니-통가 그리고 피지를 잇는 그야말로 남태평양 토종 작가라고 할 수가 있겠다. 아울러 그의 작품을 통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태평양 출신의 작가가 쓴 글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바로 남태평양에 있는 가상의 섬, 티포타에 사는 오일레이 봄보키 그리고 그의 엉덩이 질환이 주소재이다. 아니 좀 더 에펠리 하우오파 스타일로 까발리자면 똥구멍이 문제라는거다. 하지만, 비위가 약하신 분들도 있을 터이니 앞으로는 항문으로 통일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 어쨌든 남태평양에 둥둥 떠 있는 조그만 섬 티포타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유명인사인 우리의 주인공 오일레이가 정말 남부끄러운 병에 걸려 고생을 하게 됐다. 그의 전력은 전 헤비급 챔피언으로 철저한 남성우월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정말 남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병이 났다면 바로 고쳐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티포타 사람들 모두 현대식 병원에 가기를 꺼린다. 그건 바로 병원에 가서 병이 낫는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우수한 의료진과 약품의 부족으로 담당의사인 타우비 메이트마저 병원에 오는 것을 마다할 정도란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치료사 혹은 치유사라고 불리는 엉터리 주술사들이다. 하지만 어느 의사들도 그리고 도토레(치료사-치유사들의 고상한 표현이랄까)들도 오일레이의 엉덩이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또 티포타 사람들은 어찌나 그렇게 남의 이야기들을 하기 좋아하는지 그렇게 쉬쉬했건만 오일레이의 엉덩이에 대한 비밀은 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그렇게 전국적인 소문이 되어 버렸다.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은 정말 포복절도할 만큼 재밌고 신나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지은이 에펠리 하우오파는 역시 인류학자답게 곳곳에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남태평양 사람들의 삶에 대한 분석들을 죽 나열해서 보여 주고 있다. 작은 공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타인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관심과 걱정들이 그것이다. 이제 핵가족화의 전개로 전통적 지역공동체의 개념이 파괴된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모습들이 그네들의 삶 가운데서는 절절하게 드러나고 있다.

현대의술이 아닌 전통신앙에 의존한 치료사 혹은 치유사들에게 병 치료를 구하는 모습도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그네들만의 문제가 아니듯이, 정도에 상관없이 일단 아프면 돈이 든다. 하지만 먹을 것조차 변변하지 않은 마당에 남태평양에 사는 이들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그들이 병원을 찾지 않는 이유는 단지 현대의학이 못미더워서만이 아닐 것이다. 값비싼 진료비와 그에 상응해서 들게 되는 약값을 도대체 감당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뭐 이런 문제는 마이클 무어의 <식코>에서 보이듯이 제3세계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주인공 오일레이가 부인 마카리타에게 청혼하는 과정 또한 남태평양의 풍습을 엿볼 수 있는 재미를 보여준다. 이름나고 이젠 지역유지로 돈 많고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은 오일레이가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미래의 와이프 마카리타를 만나고 첫 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단도직입적으로 마카리타의 부모님을 찾아가서 그네들의 딸을 자신에게 달라고 하자 마카리타의 부모님들은 엉뚱한 오해를 하면서도, 과히 싫지 않은 내색을 한다. 에펠리 하우오파의 재치와 유머가 반짝반짝 빛을 낸다.

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하필이면 신체의 많은 부분 중에서 하필이면 작가는 엉덩이를 소재로 삼았을까? 일단 어느 정도는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에 의거한다고 한다. 4년간의 엉덩이 질환으로 고생한 그는 자신의 엉덩이가 다 나으면서 엉덩이를 소재로 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는다. 신체의 부위 중에서 가장 천대 받는 엉덩이를 위해서 말이다. 그건 바로 은유적으로 세계사적 국면에서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는 남태평양 아일랜더(섬나라 사람들 정도가 되겠다)들을 지칭한다.

그들의 삶의 터전인 남태평양 바다는 강대국들의 핵실험장이 되고, 참치사냥을 위한 낚시터가 되고, 돈 많고 부유한 관광객들을 위한 휴양지가 될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네들의 삶의 연속성을 계속된다는 것이다. 엉덩이가 아프고, 그 아픈 엉덩이를 낫게 하기 위해서 굿판을 벌이고 침을 맞고 별의별 짓을 다해도 낫지가 않는다. 가난과 고통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3세계인들은 몸부림을 치지만 그들의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하우오파의 그런 재밌는 해학 속에는 이런 반의적이면서 고의적인 숨김 들이 존재한다. 확실히 <엉덩이에 입맞춤을>은 읽기에 재밌는 책이다. 하지만, 살짝 한 꺼풀만 벗겨 보면 21세기를 살아가는 남태평양 사람들의 삶의 애환들이 책의 곳곳에 배어 있다. 이런 뛰어난 작품을 만나게 된 행운에 입맞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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