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의 유산 - 한국전쟁에서 이라크전쟁까지 세계 역사를 조종한 CIA의 모든 것
팀 와이너 지음, 이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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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오기 전에 미 중앙정보부(CIA)에서 이 책의 출간에 대해서 항의를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 50년도 더 지난 일들에 대해 비밀등급 해제가 된 마당에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장장 10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전 세계 도처에서 미국의 대외관계 비밀업무를 관장하고 있다는 CIA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전략사무국(OSS)을 그 모태로 해서 탄생이 되었다. 사실 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대외 첩보 및 정보를 다루는 국가기관이 전무했고,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그 필요성이 대두되게 되었다. 물론 세계대전이 끝나고, 소련과의 치열한 첩보전과 세계 패권을 다투던 상황에서 비밀 정보기관의 필요성은 긴급을 요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보기관의 업무 계획과 장기적인 플랜 없이 거의 급조되다시피 한 CIA는 그 태생에서부터 라이벌 소련의 KGB에 적수가 되지 않았다. 그전은 물론 지금까지도 CIA의 대외 정보부 의존은 여전한데, 결국 1947년 9월 CIA의 정체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던 트루먼 대통령 치세 하에서 CIA는 출범하기에 이른다. 연이은 공산주의 소련의 위협에 대항해서 CIA는 서유럽 각지에서 국회의 승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비밀 업무에 뛰어든다.

예나 지금이나 비밀정보 업무를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했다. CIA는 전후 서유럽 경제부흥 계획으로 엄청난 자금이 투입된 마셜 플랜으로부터 비밀리에 무한정의 자금을 지원 받아(그 소용 처를 밝힐 필요도 없었던), 서유럽 각지에서 공산주의 활동에 대한 각종 비밀 업무에 준군사적 활동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활동에 돌입하게 된다. 특히 CIA는 동독과 동유럽을 석권한 소련군에 대항하기 위해, 나치 전범들과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협력했던 우크라이나 유격대 출신의 난민들을 포섭해서 소련의 배후에 낙하시켜 후방을 교란시키려는 부단한 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던 활동에 소모적인 자금과 인력을 투입했다.

비밀리에 진행되었다고는 하지만 거의 공개적으로 들어났던 CIA의 그 어느 활동도 전혀 효과적이지 못했으며, 정말 중요했던 사실들이었던 소련의 핵무기 개발 상황 그리고 냉전 무력 충돌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전의 발발 조차도 CIA는 예측해 내지 못하면서 비등하는 국내의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하지만 CIA 조직은 트루먼이 이끄는 민주당 정부를 대신해서 들어선 아이젠하워 정부 하에서 비로소 빛을 보게 된다. 실질적으로 CIA의 모든 비밀활동을 주재했던 프랭크 와이즈너와 앨런 덜레스 국장 아래서 CIA는 미국의 국익과 전 세계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게 됐다. 게다가 CIA 조직은 인원과 자금 면에서 해가 갈수록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우선 1953년 석유 국유화 조치를 단행하면서 점점 소련 측으로 가까워져가고 있는 징후를 보인 이란의 모사데드 정권을 무차별 금품살포와 준군사적 활동 다시 말해서 폭력에 근거한 테러를 부추기는 가운데 정부를 전복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후 팔레비 샤는 20여 년간 폭압적인 독재정치를 펼친 끝에 결국 1979년 회교혁명으로 권좌에서 내쫓기는 신세가 되고, 이 근본주의 무슬림 혁명은 CIA와 미국에게 또 다른 재앙으로 다가오게 되는 계기가 됐다.

또 다른 CIA의 성공신화는 소위 “성공작전”으로 불리는 과테말라의 아르벤스 정권을 전복시킨 사건이었다. 점점 사회주의화 되어가는 과테말라는 미국의 안마당으로 간주되던 중앙아메리카에서 그야말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결국 CIA는 유언비어와 역시 뇌물 그리고 카스티요 아마스라는 반정부 인사와 반군을 지원하면서 과테말라에 합법적으로 수립된 정부를 전복시키는데 전력을 다하게 된다. 막판에 가서는 과테말라는 고사시키기 위해 해상봉쇄를 하고  미공군기까지 동원해서 과테말라를 폭격하는 등 그야말로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마침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했지만 그 성공신화는 행운의 연속이었다.

일본에서도 전범으로 기소된 기시 노부스케를 공공연하게 지원하면서, 새로 창당된 자민당과 야심찬 젊은 정치인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제공하면서 맥아더 방식의 군정으로 일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CIA가 창조해낸 새로운 방식으로 미래의 일본을 지배하고 동아시아에서 최대한의 미국의 국익을 확보하기 위한 밀월관계를 조성하기에 이른다.

물론 냉전 초기에 이런 성공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중근동에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시리아에서의 공작실패와 제3세계 론을 주창했던 수카르노를 제거하기 위해 지원했던 인도네시아 작전과 동베를린에서 소련의 정보를 얻기 위해 역시 많은 자금을 들여서 준비했던 땅굴작전들은 그야말로 처참한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게다가 아이젠하워 치세 막판에 벌어진 소련 영내에서 벌어진 U-2기 격추사건과 카스트로가 이끄는 쿠바혁명은 미국과 소련을 극한 대립으로 몰고 가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카스트로가 이끄는 쿠바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한 소위 몽구스 작전의 일환으로 계획된 1961년 4월의 쿠바 피그스만 침공 사건의 처절한 실패는 CIA 비밀공작 작전의 최대의 실패 중의 하나였고, 뒤이어 전개된 미사일 위기 사건은 그에 대한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때에도 CIA는 정확한 정보에 근거한 예측을 하지 못함으로써 제 3차 세계대전의 위기를 몰고 왔다. 게다가 1963년 11월 JFK가 오스왈드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게 되는데, 당시 CIA는 오스왈드와 쿠바/소련의 연계설을 은폐했고 그에 대한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CIA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던 전쟁이었던 베트남 전쟁에 1964년 8월 가공된 정보 조작으로 미 의회가 베트남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개입을 하게 됐고, 부패한 남베트남 정권에 막대한 경제 및 군사원조를 퍼부었지만 그들의 패망을 저지하는데 결국 실패하고 인도차이나가 도미노 이론처럼 차례차례 공산화 되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런 CIA의 계속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1967년 볼리비아에서 체 게바라의 사살과 1973년 칠레의 합법적으로 선출된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몰락시킨 비밀공작은 CIA 최고의 작품 중의 하나였다. 닉슨 행정부를 결국 좌초하게 만든 워터게이트 사건을 통해 미국의 정치지도는 크게 훼손되었고, 그 하수인 역할을 했던 CIA 역시 카운터펀치를 먹고 비틀거리게 됐다.

하지만 80년대 들어서 신보수주의 반공노선을 표방한 레이건 행정부 하에서 CIA는 다시 한 번 화려한 비상을 하게 된다.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군에 대항해서 미국은 아낌없이 무자헤딘 전사들을 지원하고(나중에 자신들에게 큰 해가 되는), 이란-이라크 전쟁을 통해 양쪽 편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면서 중앙아메리카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기 위한 비밀자금을 마련하는 등 세계각처에서 수많은 비밀공작들을 다시 한 번 CIA가 화려하게 장식하게 된다.

CIA는 정작 중요한 소련의 붕괴를 예측해내지 못하면서 급작스러운 붕괴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 등장하게 된 테러조직과의 싸움에서도 전혀 예측 불허한 상황들에 민감하게 대처해내지 못하고 다시 한 번 2001년의 9-11과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존재하지도 않았던 대량살상무기(WMD)를 천명하면서 그 위상은 급전직하하게 되었다.

<잿더미의 유산>에 등장하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미증유의 재난 후에 설립된 CIA는 미국의 전후사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CIA는 기본적인 자신들의 본연의 임무였던 국가의 수반인 대통령에게 장기적 전략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국익을 도모한다는 취지보다, 무소불위의 통제되지 않는 권력과 막대한 예산을 통제하면서 초법적인 존재로 군림해 왔다. 그리고 미국의 국익을 위한다는 전제 하에, 많은 나라들에서 선전선동, 쿠데타 지원, 요인암살 등과 같은 불법적인 행위들을 서슴지 않고 저질러 왔다. 그것은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는 정보기관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역대 대통령들과 CIA 국장들의 계속된 개혁 의지에도 불구하고 CIA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얼마 되지 않는 유용한 정보들조차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서 숱한 위기들을 자초했다. 그들의 잘못과 실수를 은폐하기 위해 역대 대통령들은 미국 사람들과 세계에 거짓말을 해야 했고, CIA 내부에서는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덮어가는 관행이 수립되어졌다.

결국 CIA가 정보 권력을 놓고 국방부와 벌인 지난 60년간의 치열한 경쟁은 국방부의 일방적인 KO승으로 끝이 났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국가 안보와 국민들의 안위를 위한 정보수집의 중요성은 그 가치를 잃지 않을 것이다. 팀 와이너의 역작 <잿더미의 유산>은 새로 거듭나게 될 과거의 ‘실패한 조직, CIA의 슬픈 묘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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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먹으러 가자! - 간사이(오사카, 고베, 교토)편
까날 지음 / 니들북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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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많은 나라들은 아니지만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그곳의 유명하다는 곳들을 거의 다 가봤고, 많은 경험을 할 수가 있었다. 다시 말해서, 볼 것 할 것들은 다 해봤다는 거다. 그런데 나는 많은 이들이 여행의 즐거움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그 나라 혹은 그 지방 특유의 음식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싸돌아다니기에도 바빠 죽겠는데 뭔 놈의 음식, 그냥 대충 때우고 말지’식의 여행이었다는 사실을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한다.

그런데 <일본의 먹으러 가자>의 저자 “까날”(필명이 특이하기도 하다)은 그런 나의 경험에 의거한 고루한 여행관을 이 책을 통해 산산이 부수어 주고 있다. 작가는 순전히 먹으러 여행지를 찾은 것 같이 철저하게 특히 일본의 간사이 지방의 대표적인 도시들이라고 할 수 있는 오사카-고베-교토를 누비면서 별난 맛집들을 소개하고 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적어도 음식문화에 있어서는 일본 최고라는 자긍심을 자랑하는 간사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음식 속으로 들어가 보자.

아무래도 첫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 책의 지은이 까날은 바로 일본 음식을 대표하는 스시로 시작한다. 오사카의 “스시 긴”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 사실 스시는 도쿄에서 시작된 요리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일 수 도 있지만, 예전에 같이 살던 룸메이트 형이 스시맨이어서 그랬는지 일본어로 생선 이름을 많이 들어서 익숙한 말들이 많았다. 특히 이 책을 통해 니기리가 쥠 스시를 뜻한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배웠다. 역시 선도를 위해 최고의 재료들을 사용하고, 맛에 있어서는 절대 타협을 하지 않는다는 소위 말하는 장인 정신이 느껴졌다.

그 외에도 서양요리들이지만 일본에 들어와서 일본의 전통과 만나 일본화된 음식들은 물론이고, 일본 차 문화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내가 좋아하는 화과자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음식들이 소개되고 있다. 게다가 음식들을 소개할 적에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한 페이지짜리 사진들은 식전에 보게 되면 바로 배시계에 경종을 울릴 것만 같다.

오사카에서 소개된 음식 중에서는 역시 오코노미야키와 타코야키가 인상적이었다. 지난 가을 찾았던 인사동에서 무턱대고 입에 넣었다가 제대로 입천장이 모두 데게 고생했던 타코야키의 문어맛이 문뜩 떠오르기도 했다. 다음으로는 서부 일본 최초의 개항장이었다는 고베가 등장한다. 고베는 역시 외래 문화의 유입이 많았던 탓인지 서양음식과 결합된 퓨전 스타일의 음식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진칸과 모토마치에 주로 포진해 있다는 레스토랑들의 소개를 보면서 도대체 난 고베에 가서 뭘 먹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하도 오래 전의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도 않지만 말이다. 자매 식당이라는 루세트와 레시피 편에서 일품 농어 요리에서 소개된 그 바삭바삭한 농어 껍질과 긴 유리잔에 담겨 나온 티라미슈를 보면서 다음번에 고베에 가게 되면 반드시 한 번 찾으리라는 결심을 다졌다.

확실히 서양식 디저트와는 달리 부드러우면서 달착지근한 맛의 일본식 디저트가 더 끌리는 것 같았다. 저자의 모토마치 디저트 투어와 천년왕도 교토에 등장하는 마르브란슈 몽블랑, 마치 주술처럼 그 이름을 외운 비타메르의 케이크들의 위용이 내뿜는 포스들은 정말 대단했다. 게다가 저자의 맛깔나는 글쓰기도 독자들의 미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얻게 된 최고의 수확을 꼽자면, 앞으로 여행을 하게 되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한두 번쯤은 반드시 그 곳의 최고 맛집에 도전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식에 있어서도 전통과의 단절이 아닌 전통과 현대의 조화와 창의적인 재해석으로 멋진 음식들을 만들어내며, 무엇을 하든지 간에 최선을 다해서 만들겠다는 일본 셰프들의 멋진 장인의식에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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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General Manager) 1차전 GM(General Manager) 1
최훈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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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으로 현재도 연재가 계속되고 있는 최훈 작가의 만화이다. 우리나라 프로야구 판을 메이저리그의 구단들의 이름과 심지어는 풋볼 그리고 NBA까지 동원을 해서 다양한 팀 이름을 만들어냈다. 가끔 메이저리그 웹툰도 그리는 최훈 작가는 촌철살인의 깊이를 그가 그리는 만화를 통해 보여 주곤 한다. 정말 진짜 팬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그런 디테일까지도 말이다.

만화 지엠은 초대형 타자인 장건호가 자유계약 선언을 하면서 시작된다. 팀의 우승을 노리는 팀들은 모두 그를 영입하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다. 게다가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는 오히려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이라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몸값으로 이적을 할 거라는 선언을 덧붙인다.

자 바로 이 시점에서 우리의 실제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하민우 대리가(하대리의 계승자!) 등장한다. 모기업의 재정악화로 인해 최악의 경영 상태로 치닫고 있는 하위 팀 수원 램즈 전략팀의 프런트 직원이다. 고교시절 한 때는 잘 나가는 초대형 선수였지만 프로에 들어와서 평범한 투수로 전락하게 되고, 결국 지금은 현역에서 은퇴해서 프런트에서 일하고 있다. 이에 갑자기 등장한 사장인 이윤지는 온통 미스터리로 가득한 묘령의 여인이다. 물론 나중을 대비한 복선이라는 것이 아주 눈에 띄지만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수룩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날카로운 비수 한 자루를 숨겨 가지고 다닌다는 인상이다.

이들의 상대는 바로 만년 하위 팀에서 일약 우승을 넘보게 된 인천 돌핀스의 소위 천재단장이라고 불리는 은종오가 있다. 누가 봐도 은종오의 모델은 바로 오클랜드의 빌리 빈 단장이다. 스몰 마켓 팀으로 해마다 주전급 선수들을 팔아 대면서도 한 때,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를 호령했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빌리 빈 말이다. 물론 지금은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같은 지구에 있는 돈을 물 쓰듯이 펑펑 써대는 에인절스에게 해마다 눌리긴 하지만 언제 또 빅3 투수들이 리그를 호령하던 시절처럼 되돌아갈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이들이 펼쳐내는 인간군상의 모습은 현실 세계의 축소판이다. 본격적인 시즌에 들어가기에 앞서, 트레이드를 통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잉여자원들을 활용해서 부족한 것은 메우는 모습은 야구계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하지만 거래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은 숨기고 유리한 점에서는 최대한 홍보를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고 하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트레이드 과정은 예전에 누군가, 로켓 사이언스만큼이나 어렵다고 한 말이 언뜻 떠오른다.

그리고 하대리가 앞장서서 자신과 친구 사이인 유틸리티 선수인 조민준을 냉정하게 짜르는 장면에서는 프로 세계의 냉혹하기 그지없는 면들을 보여 주기도 한다. 오로지 실력을 갖춘 자만이 인정을 받고, 아무리 팀에 헌신적인 공헌을 했더라도 팀에 더 이상 불필요한 존재가 된다면 내치는 장면은 실제 야구 판의 판박이였다.

물론 곧 이어 전개될, 어느 이야기에서건 빠질 수 없는 하대리와 이윤지 사장 그리고 램즈의 직원 애리 사이에 벌어지게 될 러브라인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를 제공해 줄 것이다. 왜 책의 말미에서 캐릭터들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왜 두 여주인공들을 비키니를 입혀서 출현시켰는지, 작가의 엉큼한 마음이 살짝 엿보였다.

앞으로도 2차전 그리고 3차전이 계속해서 출간될 것 같은데, 당분간 월간 만화가 되어 버린 웹툰은 끊고 앞으로 나올 단행본을 기다리는 것이 정신건강에 유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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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한 라라
마광수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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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형이 돌아왔다. 아주 오래 전에 <즐거운 사라>라는 발칙한 상상력으로 만재된 ‘야한’ 소설로 필화를 겪은 후에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일류로 쳐주는 Y대의 존경받는 국문학과 교수에서 파렴치한 변태성욕자로 급전직하했을 때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시대가 변하면서 그의 섹슈얼 판타지 또한 진화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소설인지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퇴근길 전철 안에서 책을 펴들었다. 처음에 비닐로 포장이 되어 있었고, 19세 이하 판금 뭐 그런 딱지가 하나 붙어 있었던 것 같았는데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몇 장을 넘기자마자 바로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게 됐다. 전철 간에서 남의 신문을 흘끔흘끔 넘겨다보는 이가 행여나 내가 읽고 있는 책에 시선을 줄까봐서 말이다.

마광수 교수는 예나 지금이나 거침이 없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섹슈얼 판타지에 대해 <발랄한 라라>를 통해 분출해내고 있다. 고상한 표현? 그런거 없다,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것이다. 남들과는 상이하게 다른 마광수 교수의 판타지는 필연적으로 ‘외설’이라는 타이틀을 떼어 내려야 떼어 낼 수가 없을 것 같다.

그가 이상형으로 꼽는 여인들의 형상은 도저히 현실세계에서는 볼 수가 없을 것 같다. 대놓고 30센티미터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을 예찬하고, 18센티미터 슈퍼울트라 스틸레토 하이힐로 대변되는 그의 성적 취향은 마광수 교수가 즐겨 쓰는 표현 그대로, 음란무쌍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하긴 판타지 그 자체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개념이긴 하지만. 예전부터 마광수 교수가 길게 기른 손톱과 풋 페티쉬에의 집착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바디 피어싱도 추가가 됐나 보다.

모두 30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발랄한 라라>는 지난 천년에 발간된 <즐거운 사라>의 연장선에 서 있다. 개인적으로 흥미 있게 읽었던 <심각해씨의 비극>은 필화사건으로 자신을 나락으로 몰아 세웠던 주류 미디어와 사법부에 대한 서릿발 같은 조롱이다. 자신의 주장했던 정반대의 얼토당토않은 주장으로 자신에 대한 심판에 대한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전면적인 성의 해방이 아닌 중세적 발상에 기인한 성을 규제해야 한다는 이야기 전개에서, 자신을 물 먹인 이들에 대해 혀를 날름대고 있는 마광수 교수의 건재함이 느껴졌다.

그가 고등학교 때 썼다는 <개미>는 마치 어느 유머집에서 한 번 읽어봤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의 독창적인 이야기였나? 아무래도 그의 전생(全生)을 커버하는 탓인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디즘과 마조히즘에 대한 이야기들은 서로 비슷해서 개성적인 변별점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아마 공인 중에서 이렇게, 개인적인 성적 취향에 대해 자신 있게 까발릴 수 있는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을 다룬 진보적 예술 작품들은 예나 지금이나 혹독한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 작품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사회의 건전한 풍습과 도덕에 위배된다는 이유가 들먹여지곤 했었는데, 사실은 지배계급의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에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무차별적인 검열과 탄압이 뒤따랐다. 물론 그에 앞서 마광수 교수의 성적 담론들이 예술이냐 외설이냐에 대한 규정이 있어야겠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책을 소비하는 독자들의 몫으로 돌려야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가 가진 스펙트럼이 지난 천년보다 훨씬 더 다양해졌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 개인의 독특한 성적 취향 정도야 이제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어쨌거나 읽으면서도 많이 당혹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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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8-10-13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미는 광마님의 첫 수필집 나는 야한여자가 좋다에도 담겨 있었죠. 아마 거기서 읽으신 게 아닐까요?

레삭매냐 2008-10-17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서 익숙하게 느껴졌나 봅니다 ^^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위험한 책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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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 출판사에서 소개하는 영미권의 작가들이 아닌 제3세계의 다양한 문학들을 만나볼 수 있는 일루저니스트 세계의 작가 시리즈의 한 권인 <위험한 책>과의 만남을 가졌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라는 작가의 작품이었다. 서점에서 만났던 이 책과의 첫 대면에서 얄팍하니 금세 읽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목에서 말해고 있다시피, 책이 위험하다고 작가 도밍게스는 서두를 시작한다. 인류의 무지와 암흑의 세계로부터 해방시켜준 책이 위험하다고 하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사상이나 정신적인 차원에서 책이 위험하다는 것이 아니라 책이 가진 치명적인 물리적 위험에 대해 언급하면서 책의 서두를 시작한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스페인어학부 강의를 맡고 있던 블루마 레논이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을 든 채 불의의 교통사고로 작고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대타로 투입되게 된 화자인 “나”는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루과이에서 죽은 블루마에게 의문의 소포 꾸러미 한 개가 도착하면서 <위험한 책>의 미스터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소포 꾸러미 속에서는 시멘트 가루가 폴폴 피어오르는 조셉 콘래드의 <섀도 라인>이라는 책이 튀어 나왔고, 그 책을 보낸 카를로스 브라우어를 찾기 위해 “나”는 머나먼 여정에 나서게 된다. 나의 고향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거쳐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까지 브라우어에게 책을 돌려주기 위해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나. 나에게는 그럴 어떤 의무도 없었지만, 이 기묘한 여행을 통해 열혈 애서가 브라우어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들을 취합해 그에 대한 그림을 그려 나간다.

대형서점의 호르헤 디날리 그리고 역시 애서가로 뛰어난 서가를 자랑하고 있는 오귀스트 델가도를 만나면서 어쩌면 이 책의 실제 주인공인 브라우어에 대한 독자들의 호기심을 증폭된다. 델가도가 말하는 책에 대한 브라우어의 ‘사랑’은 우리가 상상하는 정도를 훨씬 뛰어 넘는다. 열광적으로 책을 읽고 모으는데 열중했던 브라우어는 지나친 책에 대한 사랑에 때문에 친구들과도 관계가 끊어지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만, 그에 책사랑은 멈출 줄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발생한 화재 때문에 열정을 다해 만든 도서목록을 소실하게 되면서 라 팔로마로 떠나 집을 짓게 된다. 바로 그 집에서 이 이야기의 근원을 찾게 된 나.

이 책은 본질적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그 객체가 바로 책으로 나오지만, 그 관계는 우리 일상의 다른 것들로 치환가능한 존재이다. 우리가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듯이, 실제 주인공 브라우어는 책을 통해 그 모든 것을 구현하기에 이른다. 책을 읽으면서 점점 더 책에 나오는 애서가들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 나로서는 무척이나 공감할 수가 있었다.

책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단순한 수집과 읽기라는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나 통제할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삶에 있어서 우선순위는 그 모든 것에 대해 ‘책’이라는 물질이 우선하게 된다. 우리가 살면서 모든 것을 얻을 수가 없듯이, 책에 대한 지나친 사랑은 오히려 행복과 즐거움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번민의 근원이 된다. 책을 보면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고사성어가 내 머릿속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도밍게스가 풀어 나가는 책 이야기에 어느 순간 동화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 역시 책을 읽으면서 각각의 책에 대한 사연을 만들어 가고 있는 나에게, 또 하나의 사연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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